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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29 593회 0건
[11부]


[야! 서현우~! 살아있었냐~.]

현우는 활짝 웃음지으며 다가오는 영민을 보며 반가운 얼굴로 친구를 맞아들였다.

[니가 여기 어쩐일이냐?]
[어쩐일이긴 어쩐일이야. 니가 하두 생존신고를 안해서 몸소 찾아오신거지. 그래. 알바짓은 할만하냐?]

현우는 테이블을 M던걸 끝마치곤 손님들이 버려두고간 햄버거 포장을 휴지통에 버렸다.

[할만하긴. 그냥 용돈 조금 벌자고 하는짓인데. 재미없어도 참고 하는거지.]
[오~. 서현우 성질 많이 죽었는데~?]

영민은 현우의 줄무늬 알바유니폼 가슴에 달려있는 M자 마크를 장난스레 쿡쿡 찌르며 말했고 장난기가 돈 현우는 영민에게 헤드락을 걸어버렸다.

[이 자식~! 어디 감히 본좌의 몸에 손을데~?]
[아~아야~. 항복~! 항복~! 지금 안 놔주면 공주님 생신잔치에 안데려가 준다?!]
[엉? 공주님 생신잔치?]

현우는 목메인 영민의 목소리에 솔깃해져서 재빨리 헤드락을 풀어주었다. 영민은 장난이라도 아팟었는지 목언저리를 주무르며 말했다.

[하여튼 힘만 무식하게 세요 그냥..]

푸념섞인 영민의 말에 현우가 다시 인상을 찡그리며 마수를 뻗쳐왔고 깜짝놀란 영민은 급히 정보를 내뱉어버렸다.

[자,잠깐~! 임마 그거 진짜 아프단 말야~! 요번주 토요일에 정유리 생일이야~.]
[뭐? 진짜?]
[그래~. 넌 어째 관심있는 애 생일도 모르냐?]
[윽. 알아낼 방법이 있어야지.]
[어이구...아무튼. 유리가 친구는 많아도 생일에는 진짜로 친한친구 몇명만 초대해서 놀거든. 아마 대여섯명 정도만 초대될꺼야. 물론 난 윤지 덕에 거기 포함되지. 후후...]

영민은 의미심장한 눈길로 현우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현우는 재수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영민을 쏘아봐 주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뭘 원하나?]
[피자 두판. 빅맥 세트 한달간 일주일에 세번씩. 맥주 마실때마다 치킨 쏘기.]
[...죽일놈.]
[어허~~. 공주님 생신잔치 티켓이 걸려 있는데도?]
[쳇. 빅맥은 빼자.]
[일주일에 두번.]
[제길...다팔고 남은거 쳐먹여 줄테다.]

영민은 야속하단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현우에게 낄낄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어쨋건 deal~.]
[제길. 이것도 친구라고.]

탁--.

두 남자는 손을 마주잡았다. 계약 성립. 비록 잠시후에 영민이 벌겋게 달아오른 손을 부여잡곤 중국집 메뉴판을 읊으며 계약 조건을 바꾸려는 시도를 했지만 그것은 현우의 압도적인 무력앞에 간단히 제압되었다.




[아빠~. 우리 오늘 좀 일찍 마치니까 나중에 삼겹살 구워먹자~. 어때?]

유리는 저녁 프라임 시간에 난 짧막한 휴식시간때 아빠의 목에 매달리며 말했다. 태현은 깡총 뛰어올라 자신의 목을 끌어안는 사랑스런 딸을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안아주며 말했다.

[조금있다 여기서 밥 안먹고?]
[응-. 오늘은 삼겹살이 먹고 싶어~.]
[그래두...그러면 저녁시간이 너무 늦어지는데-. 너 그렇게 저녁 늦게 먹으면 살찐다?]
[에이~. 한번인데 모~. 괜찮어~~.]

태현은 오랜만에 유리와 함께 고기를 구워 먹는것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러자.]
[정말~? 야하~! 고기 먹는다~.]
[하하. 유리야~. 무거워~. 이제 좀 놔~.]
[어휴~. 이제 우리 아빠도 너무 허약해 지셨어~~.]
[뭐어~? 요녀석~.]
[꺄하하~! 하지마~~.]

태현과 유리는 그렇게 장난을 치다 레스토랑일을 마무리하곤 마트에 들러 돼지 삼겹살과 쌈싸먹을 채소 몇가지를 사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일단 집으로 돌아와 씻고난뒤 두사람은 정원(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마당에 가깝지만)에 가스버너와 사가지고 온 고기, 채소를 가지고 나왔다. 거실에 불을 환하게 밝혀 놓았기 때문에 정원은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아니, 어느정도 무드도 있는 그런 밝기였다. 그것이 비록 삼겹살보단 스테이크를 썰기 더 적당한 분위기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쨋든 태현과 유리는 가스버너를 정원에있는 테이블에 올려놓는등 금세 삼겹살 구워먹기 준비를 끝냈다.

[자~. 어디 구워볼까~.]

태현은 간만에 가지는 야외에서의 식사가 가져다 주는 즐거움에 입가에 웃음을 달며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유리는 그런 아빠를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태현은 은연중에 유리의 그런 시선을 느꼈지만 모른채하며 고기를 굽는데만 신경을 기울였다. 곧 삼겹살은 금세 노릇노릇하게 굽혔고 태현은 일단 둘이서 요기를 할정도 만큼만 구운뒤 의자에 앉았다.

[자~. 일단 이것부터 먹어.]
[응~. 헤헤~~. 맛있겠당~.]

유리는 생글거리며 고기쌈을 싸서 아빠에게 내밀었다.

[자~. 아빠 아~~.]
[아~~.]
[옳치~.]

태현은 유리가 내미는 쌈을 넙죽 받아먹었고 유리는 그런 아빠가 아주 귀여워 죽겠다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태현은 자신도 유리에게 쌈을 싸서 주었고 유리 역시 그걸 답싹 받아먹었다. 꼭꼭 씹어 꿀꺽 삼킨 유리가 생글거리며 다시 아빠에게 쌈을 싸주었고, 그런식으로 두사람은 서로에게 쌈을 싸주며 즐겁게 식사를 했다. 잠시후, 다시한번 고기가 굽히고. 이번에도 유리에게 주려고 쌈을 싼 태현은 왠지 장난기가 돌았다.

[자. 유리야 아~.]
[아~~.]

아빠가 내미는 쌈을 받아먹으려 유리가 귀엽게 입을 벌렸고 태현은 싱글거리며 거의 유리의 입까지 쌈을 가져갔다가 재빨리 방향을 돌려 쌈을 자신의 입속에 쏙 집어 넣어버렸다.

[어! 뭐야~그런게 어디있어~.]
[하하. 속았지~.]

쌈을 왁왁 씹어 꿀꺽 삼킨 태현이 고소하다는 얼굴로 유리를 바라보며 말했고 유리는 그런 아빠를 약이오른 표정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씨이~. 뱉어내-.]
[하핫. 이미 삼켜버린걸 어떻게 뱉어내~?]
[싫어~싫어~. 나 그거 먹고싶었단 말이야-. 얼른 뱉어내~.]

태현은 유리의 억지에 약간 당황스러워졌고 유리는 잔뜩 삐진 얼굴로 볼을 부풀렸다. 태현은 볼을 부풀리며 자신을 흘겨보는 유리의 모습에, 이런 사소한것에도 삐지는 딸이 왠지 어리게만 보이고 너무 귀여워서 빙긋 웃으며 유리의 볼을 장난스레 잡으며 말했다.

[으이구~. 알았어. 아빠가 다시 쌈 싸줄게~. 그러면 됐지~?]
[싫어! 난 방금전 그게 먹고싶단 말야~!]

하지만 유리는 막무가내였다. 태현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유리를 바라보았고 유리는 냉큼 아빠의 입앞에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러니까 얼른 뱉어내.]
[하지만 이미 삼켜버린걸...]

유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아빠를 잠시 흘겨보더니 곧 자신이 쌈을 싸서는 아빠에게 내밀었다.

[자. 그럼 이걸 아빠가 씹어서 줘.]
[뭐,뭐?]
[아빠가 방금전껄 삼켜버렸으니까 별수없잖아. 그러니까 얼른 이거 씹어서 나한테 먹여줘. 그래야 공평하지.]

유리의 말에 태현은 당혹스런 얼굴로 대답했다.

[하,하지만 내입에 있던걸 어떻게 너한테 줘..?]
[치이! 왜 못줘?]
[더,더럽잖아...]
[아빠 입안에 있던건데 뭐가 더러워~? 자. 그러니깐 일단 아~~.]

태현은 막무가내로 들이미는 유리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단 그녀에게서 쌈을 받아먹었다. 유리는 잔뜩 기대어린 눈빛으로 아빠을 바라보았고 태현은 그냥 이대로 쌈을 입안에 넣고 있기도 좀 그래서 일단 씹기 시작했다. 그리고...

꿀꺽--.

[앗! 그,그러는게 어디있어!]

유리는 깜짝 놀라며 태현을 바라보았다. 태현은 씹고있던 쌈을 삼켜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태현에게 그런건 당연한 것이다. 어떻게 먹고있던걸 딸에게 줄 수 있겠는가? 태현은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일단 재빨리 다시 쌈을 하나 싸곤 그걸 유리에게 내밀었다.

[유,유리야. 그래도 어떻게 아빠가 먹던걸 유리한테 줘? 그러니까 그냥 이거 먹고 용서해주라. 응?]
[싫어.]

유리는 아빠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냥 내말대로 한번 먹여줄래? 아니면 나랑 3일동안 말 한마디도 안 할래?]

유리의 말에 태현은 기가 딱 막혔다. 이건 완전히 아빠를 가지고 놀려고 하는거 아닌가? 그러고 보니 오늘 삼겹살을 구워 먹자고 할때부터 유리가 이렇게 자신을 골탕먹일 생각을 했던것 같았다. 태현은 유리가 갑자기 괘씸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들고있던 쌈을 입에 넣곤 우악스럽게 씹기 시작했다. 유리는 아빠의 그런 행동에 드디어 아빠가 자신의 말대로 해주려나보다 생각하며 기대에 가득찬 눈길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사실 오늘 이렇게 아빠와 고기를 구워 먹자고 했을때만 해도 그냥 아빠와 오랜만에 정원에서 둘이서 재미있게 저녁을 먹고 싶었던것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빠와 재미있게 고기를 구워 먹다보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과 같이 아빠에게 억지를 부리면 아빠가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입안에 있던 쌈을 먹여주게 될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자신은 아빠와 딥키스를 할 수 있게 되는것이다. 하지만 태현은 그렇게 유리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꿀꺽--.

[......!!]

유리는 고기쌈을 꼭꼭 씹어서 자신에게 먹여주는줄로만 알았던 아빠가 그걸 꿀꺽 삼켜버리자 흠짓 놀라며 아빠를 바라보았다. 혹시 실수로 삼킨걸까? 하지만 아빠의 얼굴은 전혀 그런 표정이 아니었다. 유리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았지만 아빠의 표정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자신과의 키스(?)보다 3일동안 아무 대화도 하지 않는걸 선택한걸까...? 유리는 눈물이 왈칵 치밀어 오르는것을 느끼며 집안으로 뛰쳐 들어가 버렸다.

[아빠 미워!!]

태현은 울음섞인 유리의 외침을 들으며 급히 그녀를 뒤따라 가려 했지만 곧 마음을 바꿔 의자에 털썩 앉아버렸다.

[후우......]

입에서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불과 몇분전만해도 그렇게나 즐거웠던 정원이 이렇게나 거북하게 느껴질 줄이야. 태현은 머리가 혼란스러워 옴을 느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슴이 답답해 왔다. 태현의 입에선 다시 한숨이 터져나왔다. 한편 자기 방으로 돌아온 유리는 방문에 기대어 서서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안 따라온다 이거지...]

유리의 눈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어디 두고봐.]

이번엔 정말로 화가 났다. 겨우 입으로 한번 먹여주는거보다 자신과 3일간 말을 안 하는걸 선택한데다... 울면서 뛰어가는 자신을 붙잡아 주지도 않다니. 유리는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액자 속에서 환히 웃고있는 아빠를 이를 사려물며 노려보았다.





다음날. 잠에서 깨어난 태현은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부엌으로 향했다. 거기엔 어쩐일인지 예쁘게 차려입은 유리가 먼저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태현이 다가와도 유리는 아빠를 본체만체했다. 태현은 유리의 맞은편에 앉으며 그녀에게 넌지시 인사했다.

[유리야. 잘잤어?]
[......]

하지만 유리는 아무런 대꾸없이 식사만 계속했고 아빠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태현은 또 유리가 삐진걸 어떻게 풀어줄까 벌써부터 앞이 막막해옴을 느끼며 유리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리야. 화났어...?]
[......]

여전히 아무런 대꾸없는 유리. 태현은 천천히 손을 들어 유리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유리야. 아빠가 잘못...]
[손 치워.]

아빠가 자신의 등을 쓸자 유리가 고개를 홱돌려 아빠를 노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태현은 움찔하며 유리에게서 손을 땟고 유리는 그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버렸다. 거칠게 뒤로 밀리는 의자소리가 태현의 귓가를 울렸고, 그의 눈에는 아직 채 반도 비워져 있지 않는 유리의 밥그릇이 들어왔다. 유리는 남긴걸 치워버리고는 자기방으로 올라가버렸다. 태현은 아무말 못하고 유리를 바라만 보다가 그녀가 방으로 올라가버리자 자신도 유리 뒤를 따라 재빨리 2층으로 올라갔다.

[유리야. 아빠랑 얘기 좀 해. 응?]

태현은 유리의 뒤를 재빨리 따라갔지만 유리는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양치질을 하는지 안에서 치카치카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잠시후 욕실에서 나온 유리는 아빠를 쳐다보지도 않으며 자기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유리야. 잠깐만 아빠랑...]

유리는 자기뒤를 따라 방에 들어온 아빠를 한번 노려봐 주고는 책상위에 놓여있던 지갑을 핸드백에 넣고는 방을 나섰다.

[어, 유리야. 어디가는거야?]

태현은 유리가 가출하는가 싶어 깜짝 놀라며 유리 앞을 막아 섰다. 하긴 가출을 하려했다면 자신이 깨기도 전에 벌써 했겠지만 그래도 부심(父心)이라는 게 원래 노파심과 너무나 가까운 단어 아니였던가. 태현이 두팔을 벌리고 막고선채 길을 비켜주지 않자 유리는 아빠를 차가운 눈길로 노려보며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윤지랑 놀러가기로 했어. 괜찮지?]
[으,응? 윤지랑? 그야 괜찮지만..어디로?]
[알거 없어. 그러니 어서 비켜.]

태현은 자신을 노려보는 유리의 눈길을 마주보는 게 왠지 겁이나서 눈을 내려깔며 말했다.

[그래도 아빠한테 어디 가는지 정도는 말해줘야지..]
[싫어. 귀찮아. 그리고 아빠랑 더이상 얘기하기 싫으니까 얼른 비켜.]

태현은 언제나 웃음만을 보여주던 유리가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 이제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거지만 어제 그냥 유리 말대로 해줬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야. 아빠가 잘못했어. 미안해..]
[아빠가 뭘 잘못했는데? 그냥 아빠는 나한테 쌈싼거 먹여주는거보다 나랑 3일동안 얘기 안하기로 한걸 선택했을뿐이잖아? 아빠가 나한테 미안해 할거 하나도 없어. 그리고 3일동안 말 안하기로 했으면, 지켜. 나한테 말 걸지마.]
[유리야...]

태현은 어찌해야할줄 모르며 유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유리는 아빠를 지나쳐 가버렸다.




유리가 없어서 오늘은 두배로 바빳다. 태현은 일하는 중간 중간에 유리에게 어딘지, 언제 올건지 (휴대폰)문자로 물어봤지만 유리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빳지만 가슴은 텅빈 하루가 흘러 밤이 되었고 태현은 혹시 유리가 왔을까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태현의 바쁜 발걸음이 공원을 막 빠져나가려 할때, 그의 발달된 청각에 누군가의 억눌린 비명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마치 다른사람에게 입을 막힌채 지르는 비명같았다. 태현은 설마 유리는 아니겠지 하는 심정으로 소리가 들린곳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굳이 그 비명을 지른 사람이 유리가 아니더라도 태현은 당연히 구해주겠지만..
태현은 금세 소리가 들려온 곳에 도착했다. 거긴 공원에서도 후미진 곳이었는데 뒤쪽은 담벼락으로 막혀있고 앞쪽은 높은 수풀로 가려져 있어 그런 비명소리가 들려오기에는 너무도 적합한 곳이었다. 태현은 일단 수풀에 몸을 숨기며 안쪽 상황을 살펴보았다. 세명의 사내가 한 여자를 겁탈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한명은 여자가 꼼짝 못하게 뒤에서 끌어안은채 그녀의 입을 막고 있었고 다른 두명은 여자의 몸을 마구 주무르고 있었다. 태현은 일단 그 여자가 유리가 아니라는데 안도를 했다. 그녀는 20대 중후반 같아 보이는 여자였는데 굉장히 아름다운 외모를 소유하고 있었다. 마치 텔런트 같은...그러고 보니 TV에서 본것같기도 하다. 태현은 어디서 그녀를 봤었는지 기억이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일단은 그녀를 저 사내들 수중에서 구해내는게 먼저였기에 한달음에 훌쩍 뛰어 수풀 안쪽으로 들어섰다.

[멈춰라.]

낮고 힘있는 목소리가 울렸고 사내들은 여자를 희롱하던걸 멈추며 깜짝 놀란눈으로 태현을 바라봤다. 하지만 겨우 한명이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것을 보자 그들의 얼굴엔 여유로움이 떠올랐다.

[이봐. 괜한 신경끄고 가던길이나 가시지?]
[그래. 우리도 귀찮은건 싫으니깐 말이야.]

여자를 잡고있던 사내 한명을 빼고 나머지 두명이 주먹을 뚝뚝 거리며 태현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아침에 유리와 그런일도 있고해서 기분이 안 좋았던 태현은 괜히 이런 녀석들을 오래 상대하고 있기가 귀찮아졌고 그냥 간단히 손봐주고 쫓아버려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기회를 주겠다. 다섯 셀동안 꺼져라. 하나...]

그래도 최소한의 도망칠 기회는 줘야...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런 기회를 잡는 양아치는 별로 없다. 물론 지금 이 세 양아치들도 마찬가지였고. 태현의 입술이 다섯이라는 단어를 내뱉을때까지 그들의 발걸음은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 이제 어쩔건데?]

태현은 피식거리는 두 양아치들에게서 천천히 시선을 돌려 겁먹은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에게 안심하라는 눈길을 보냈다. 그리곤 지체없이 몸을 날려 두 양아치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담배하나 태울 시간상간에 서른명을 해치운 태현이 두명을 바닥에 접착시키는데는 시간이 들었다는 표현도 과분할 정도였고, 친구들이 순식간에 바닥에 구르자 여자를 붙잡고 있던 나머지 한 사내는 겁에 질려 도망쳐 버렸다. 태현은 사내들을 혼내주는것보단 여자를 구하는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 사내를 뒤쫓지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태현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 여자에게 다가가며 말했고 그녀는 아직도 겁에 질려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태현에게 말했다.

[구,구해주셔서..정말...감사드려요..]
[하하. 아닙니다. 그보다, 괜찮으십니까?]
[예,예...감사해요..]

태현은 여자에게 손을 내밀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때 태현은 바닥에 쓰러져 있던 두명의 사내들이 절뚝거리며 도망치는걸 눈치챘지만 굳이 그들을 붙잡진 않았다. 그들은 <두고보자>내지는 <담에 보면 죽었어>등의 양아치들의 상투적인 발언도 없이 도망쳤고, 그것이 태현으로 하여금 그들을 잡을 생각이 더욱 들지 않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태현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그녀의 핸드백을 주워주며 말했다.

[이런 시간에 혼자 공원을 지나가는건 좀 위험합니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큰길로 돌아가시는게 안전할겁니다.]
[예..정말 감사해요...]

그녀는 방금전 일때문에 굉장히 놀란 상태였지만 태현의 부드러운 목소리 덕에 이제는 좀 안정을 되찾은듯이 목소리에 떨림이 많이 사그라 들어 있었다.

[제가 공원밖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가시죠.]
[예...너무 감사드려요...]

태현은 앞서서 걸어가기 시작했고 그녀는 재빨리 다가와 태현과 발걸음을 맞추기 시작했다.

[저어...너무 감사드려요...하마터면 큰일 날뻔 했는데...연락처라도 주시면 제가 어떻게 사례라도...]
[아. 아닙니다. 그런걸 바라고 구해드린게 아니니까요.]
[예,예? 아,아...저..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해요...]
[하하. 괜찮습니다.]

태현은 그녀에게 한번 싱긋 웃어보여 주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여자를 구해준다고 시간이 더 늦어져 버렸기 때문에 더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직 유리가 집에 안 들어왔을까? 오늘 도대체 어디서 무얼하고 논걸까? 태현의 머릿속에는 온통 유리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들어차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옆에서 여자가 말을 거는것도 듣지 못해버렸다.

[아..저기...저기요--.]
[......]
[저기요--.]
[........예? 아. 부르셨습니까?]

태현은 급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고 그녀는 태현이 갑자기 돌아보자 약간 놀란듯이 눈을 크게 떳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태현은 그녀가 대단한 미인인걸 알 수 있었다. 아까 잠깐 봤을때도 굉장한 미인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렇게 보니 그녀의 미모가 더 눈에 잘 들어왔다. 정말 아찔할 정도의 미모다. 그녀는 뭐가 부끄러운지 시선을 내려깔며 말했다.

[저어...그래도 구해주셨는데...제가 언제 차라도 대접해드려야...도리인것 같아서요..]
[예? 아. 하하하. 아닙니다. 전 정말 괜찮습니다. 참, 그보다...우리 어디서 본적이 있었던가요?]
[예? 아,아닌데요...?]
[그렇습니까? 거참...낯이 익어서...]

태현의 말에 여자는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아마 절 TV에서 보셨을 거에요. 채지현이라고...아시나요?]
[...아~! 그러고 보니...!]

태현은 손뼉을 짝 쳤다. 요새 유리가 한창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가 있는데 그 드라마의 주연의 이름이 채지현이라고 해서 얼마전에 흥미가 생겨 드라마를 한번 본적이 있었다. 아내와 똑같은 이름...물론 그럴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설마하는 심정으로 드라마를 봤지만 그녀는 아내와 조금도 닮지 않았었고 그래서 약간 엉뚱한 실망감을 느낀 기억이 났다. 태현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그 드라마 속 주연 여배우와 똑 닮았다. 아니, 똑같다.

[야아...정말 반갑네요. 우리딸이 채지현씨 팬이거든요.]
[어머...그래요? 근데...딸이 있으세요?]
[예?]
[아니 저...젊으신 분이 딸이 있다고 하시니까...아, 죄송해요. 제가 엉뚱한 말을...]

태현은 자신이 젊어보인다고 하는 그녀의 말에 왠지 쑥쓰러워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하하...제가 나이보다 좀 낮게 보이기는 하죠...하지만 벌써 고2 딸이 있습니다. 하하..]
[예에? 고2요?]
[아. 뭐...좀 일찍 낳긴 했지만..]
[아...그렇군요...]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입을 다물었고 태현도 굳이 그녀와 할 얘기가 없었기에 아무말도 하지 않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두 사람의 발걸음은 공원을 빠져나와 있었다. 태현은 그녀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말했다.

[저, 그럼 조심해서 가십시오.]
[예...오늘 너무 감사했어요. 그리고...]
[...?]
[연락처라도 주시면 제가 차라도 한잔 대접해 드릴께요. 그래도 이렇게 인사만 하는건 도리가 아니다 싶어서..]
[예? 하하. 하지만 전 정말 괜찮습니다.]
[그래도...]
[흠...뭐, 정 그러시다면 싸인이라도 한장 해주십시오. 우리딸이 좋아할것 같으니까.]
[..예. 그거라도 괜찮으시다면...자녀분 이름이..?]
[정유립니다.]

그녀는 싸인 한장을 해서 태현에게 내밀었다. 태현은 빙긋 웃으며 그녀에게서 싸인을 받아들고는 말했다.

[혹시 네잎클로버라고 아십니까?]
[예. 지나가면서 봤는데..레스토랑 아닌가요?]
[예. 제가 거기 사장인데, 혹시 시간 나시면 한번 들리시죠. 제가 싸게 해드리겠습니다. 하하..]
[아...거기 사장이셨군요. 네~. 꼭 들릴께요-.]
[네. 그럼.]
[예-. 오늘 너무 감사했어요~.]

태현은 그녀와 헤어지고 난뒤 급히 발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향했다.





[...하아...흐...응....]

살며시 벌어져 있는 문틈새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불빛과 함께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촉촉하게 젖은 무언가가 숨가쁘게 비벼지는 마찰음도...

[흐윽...아빠...아...하아...아빠...]

태현은 환히 웃고 있었다. 귀여운 눈망울을 반짝이는 사랑스런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직도 기억난다...그때 아빠의 부드러운 손길과...따뜻한 숨소리...
유리는 가쁜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자신의 분홍빛 속살을 마구 학대했다. 떨어져 나갈듯이 비벼대고...끊임없이 문질러서 분홍빛이 붉게 물들어버릴 만큼.
치마와 팬티를 벗은채 침대에 주저 앉아서 하얀 피부를 파르르 떨며 자위를 하는 유리의 모습은 열여덟이라는 그녀의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도 뇌쇄적이었다. 평소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뿜어내던 유리는 온데간데 없고 지금 침대에서 욕망에 물든 손길로 아빠를 끊임없이 되뇌이는 유리는 너무나 다른 사람같아 보였다.

찰칵--. 끼이...찰카닥. 유리야~. 왔니~?

그때 모든 정신을 밀려오는 쾌감에 집중하고 있던 유리의 귓가에 아랫층에서 아빠가 돌아온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녀의 손길은 순간 흠짓 놀라며 숨가쁜 움직임을 멈췄고, 잠시 그 상태로 가만히 있던 유리는 곧 천천히 기어가 문에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그녀의 손놀림은 다시 계속 되었다. 나무로 된 계단이 삐걱거리며 아빠가 올라오고 있음을 유리에게 외쳐주었지만 유리의 손놀림은 그치지 않았다. 가느다란 숨소리와...숨가쁜 손놀림... 발자국 소리가 이제는 거의 지척에서 들려왔다.




똑 똑.

[유리야~. 왔니?]

태현은 천천히 문을 열었다. 닫혀진 방문으로 불빛이 새어나오는걸 봐서는 유리가 돌아왔지 싶었다. 문이 서서히 열리며 방안의 모습이 태현의 눈에 들어왔고, 태현은 자기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있는 유리를 볼 수 있었다. 태현은 천천히 유리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유리야~. 아빠왔어-. 오늘 재미있게 놀았니?]
[......]

하지만 태현의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유리의 고운 음성이 아니라 사각거리는 연필소리 뿐이었다. 하지만 태현은 시종 그의 입가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으며 다시 말했다.

[아빠가 오늘 여러번 문자 보냈는데..못봤어? 아빠 많이 걱정했는데..유리가 답장 안 해줘서.]
[......]

수학문제를 푸는 유리의 손길이 점점 빨라졌다. 그리고 노트에 적혀나가는 숫자들도 점차 진해졌다. 태현은 유리가 아직도 많이 화가 났다고 생각하며 일단 유리의 화를 누그러뜨리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평소에 좋아했던 연예인의 싸인을 주면 기뻐하겠지...
태현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띄우며 거창한 손놀림으로 주머니에서 채지현의 싸인을 꺼내어 유리 앞에 놓았다.

[짠~~. 아빠가 뭐 가져왔는지 봐라~. 하핫. 텔런트 채지현 싸인이야~. 어때? 가지고 싶지~~? 아빠보고 한번만 웃어주면 아빠가 이거 너한테 줄께~.]

뚝--.

그때 유리의 연필심이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 태현에게 유리의 이마에 가느다란 실핏줄이 솟아오른게 보였다. 그리고 바르르 떨리는 유리의 콱 움켜쥔 손도... 태현은 기뻐해야할 유리가 도리어 이렇게 나오자 어찌된 영문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당혹스런 얼굴로 유리를 불렀다.

[유,유리야? 왜그래...?]

아빠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려왔다. 단지 자신을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일 뿐인데 유리는 그 목소리가 너무 화가났다. 유리는 천천히 <유리양~항상 행복하세요♡ 멋진 아빠를 두셔서 좋겠어요~^^>라고 적힌 채지현의 싸인 종이를 들고 일어났다.

[...다른 여자 만나고 온거야...?]

싸인종이를 들고있는 유리의 손도,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와 그녀의 아미도 떨렸다. 아니..그녀의 몸 전체가 분노로 파르르 떨고 있었다. 사실 유리는 오늘 윤지와 놀러가지 않았었다. 단지 만약 아빠에게 연락이 오면 모른척 해달라고 윤지에게 부탁해놓았을 뿐이다. 오늘은 독서실에 가서 하루종일 공부만 했다. 그리고 그 중간 중간에 오는 아빠의 문자는 왠지 유리를 너무 기분 좋게했다. 자신이 답장을 하지 않자 아빠의 문자에는 더욱 걱정이 실려왔고 유리는 아빠가 자신을 계속 걱정하고 있다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계속 걱정하고 있다는건 하루종일 자신을 생각한다는 것이니까. 그런데..그랬었는데... 알고보니 아빠는 오늘 다른 여자와 만나고 왔던것이다. 그것도 텔런트 채지현... 어떻게 무슨 이유로 아빠가 그녀와 만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문제는 아빠가 오늘 자신 이외의 여자와 만났다는것... 유리는 아빠에게 너무나 배신감을 느꼈다. 오늘 하루종일 아빠가 자신만 걱정할줄 알았는데...그리고 자신은 그 사실 때문에 너무나 기뻐했었는데...사실은 아빠가 오늘 다른 여자와 만나고 왔다니...

[다른 여자...라니? 유리야. 그게 무슨말...]
[다른 여자 만나고 온거잖아!!]

유리가 바락 고함질렀다. 태현은 유리의 갑작스런 고함소리에 움찔 놀랐고, 유리는 아빠를 노려보며 싸인종이를 구겨버렸다.

[누가 이따위꺼 가지고 싶댔어?!!]

유리는 구겨진 싸인종이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태현은 도대체 유리가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유리가 자신을 남자로서 좋아하는건 눈치채고 있다. 하지만 이번엔 단지 녀석이 좋아하는 텔런트 싸인을 받아와 준것 뿐인데 그게 화를 낼만한 것이란 말인가? 태현은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가슴이 답답해오는걸 느끼며 무심결에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러자 유리가 눈꼬리를 치켜 뜨며 아빠의 입에 물린 담배를 뺏어 바닥에 거칠게 던져버렸다.

[내가 담배 피지 말라고 몇번을 말했어?!!]

앙칼진 유리의 고함소리가 다시 따갑게 귓가를 울려왔다. 태현은 한숨을 푸욱 내쉬며 침대로 가서 앉았다. 정말...유리를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아빠를 남자로서 좋아하는거야 유리 또래의 여자애라면 조금은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 쉽게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그건 자연스러운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다. 단지 유리가 어릴때부터 소유욕이 강한것이 걱정되긴 했지만... 어쨌든, 태현은 지금 그 충분한 시간이 지날때까지 유리를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것이다. 가까이는 지금 당장 유리에게 어떻게 해줘야 좋을지...어떻게 유리의 화를 풀어 줄지부터가 걱정이었다. 태현은 일단 자신의 옆자리를 톡톡 두드리며 유리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유리야. 이리로 와서 아빠 옆에 앉아봐.]

유리는 태현의 부드러운 음성에 아무말 없이 태현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화가 나있었다. 태현은 무슨말부터 꺼내야 할까 잠시 생각하고는 천천히 유리의 등을 쓸어주며 말했다. 하지만 태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유리의 차가운 음성이 태현의 귓가를 때려왔다.

[내 몸에 손대지마.]
[아! 미,미안.]

태현은 급히 손을 유리에게서 뗐다. 그리곤 최대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유리야. 왜그렇게 아빠한테 화가 났는지 말해주면 안 돼?]
[......]

하지만 유리는 아무런 대꾸 없이 태현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태현은 유리가 아무런 대답도 없자 어찌할까 고심하다가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아빠가...유리말고 다른 여자랑 만나고 와서 화가 난거야...?]

아빠의 말에 약간 놀란듯이 유리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설마...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는걸까? 유리는 한순간 가슴이 덜컹했지만 곧 그럴리 없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럴리가 없잖아. 아빠가 누구를 만나든 내가 무슨 상관이야.]
[그러면...왜 방금 전에 아빠보고 다른 여자 만나고 온거냐고 한거야...?]

아빠의 말에 유리는 순간 아차 싶었다. 방금 전엔 자신도 모르게 너무 화가 나서 그만 그런 말-자신의 속마음을 들켜버릴지도 모르는 말-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유리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서 변명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목소리의 떨림마저 숨길순 없었다.

[그,그건..아빠가 벌써 엄마를 잊었나 싶어서...]
[...유리야.]

태현은 태연한척 하려하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심했다. 그냥 이대로 넘어갈 것인가..아니면 그냥 사실대로 자신이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걸 말하는게 좋을까. 태현은 방금전 유리의 변명을 통해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유리의 마음이, 단지 자신이 다른 여자를 만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토록 화를 낼만큼 깊어져 있다는 것을. 과연 그냥 이대로 시간이 흐르길 기다려서 딸의 마음이 돌아서도록 만드는것이 좋을까...? 하지만 태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한다면 그 시간동안 유리가 너무나 힘들어 할것 같았다. 차라리 그보다는 유리에게 자신이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걸 말해주고,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게 좋을것 같았다. 한편으론 태현은 유리가 너무 가엽게 느껴졌다. 엄마 없이 자라서 그만큼 아빠에게 더욱 많은 애정을 바라게 된 것일테니까. 태현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 유리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유리야...아빠가 유리 사랑하고 있는거..알지?]
[......]

유리는 아빠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불안한 얼굴로 아무 대답없이 아빠만을 바라봤고, 태현은 유리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쥐며 말했다.

[언제부터였니?]
[......뭐가...?]

유리의 눈동자에 점차 불안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유리가 아빠를...]

설마...설마...
유리의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는듯 했다. 태현은 유리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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