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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42 669회 0건


차돌아, 차돌아 [제31부]


새로운 집에서 생활하게 된 차돌 이는 그날부터 죽어라고 공부만 하였다.
공부란 학교공부뿐 아니라 차돌이가 연구하고자 하는 지식을 습득하고 그 지식을 토대로 뭔가 연구에 들어가서 한번 지하실에 박히면 날 밤을 새기가 일수였다.
차돌 이는 자기가 알고자하는 것이 있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차돌이가 사는 집 거실에는 남들처럼 호화로운 것이나 아니면 진열장등 일상용품이나 멋을 부리기 위해 걸어둔 액자하나도 없었다.
한쪽 벽면 가운데 TV를 제외하고는 온통 책장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그 책장 속에는 거의 빈틈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책들로 채워져 있다.
의학서적, 인체에 대한서적, 심지어 곤충이나 동물들의 생활과 습관 등을 알리는 책들
심지어 무술서적까지 진정 일반인들이 별로 보지 않는 책들로 가득 꾸며져 있었다.

차돌 이는 지금 화장실에서 입에 칫솔을 물고 변기에 앉아 인체 혈맥의 흐름 등을 저술한 한의학과 학생들이 볼 수 있는 그런 책을 펴들고 삼매경에 빠져있다.
입에 허연 거품이 말라가는 것도 모르는지 시선은 온통 책 속의 사람그림에 쏠려있다. 사람 그림 속에는 수없이 많은 점들이 찍혀있으며 환자들이 그 점 옆에 깨알 같은 크기로 적혀있다.
그리고 빨간 선과 파란선등이 그어져있으며 무엇을 표시하려 한 것인지 또 다른 선들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차돌 이는 한참을 그 선에서 시선을 놓지 못하다가 뭔가 알 것 같은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책갈피를 접고는 책을 덮는다.
그리고 휴지를 꺼내 뒤처리를 하고는 다시 양치를 하며 변기에서 일어나 물을 내린다.

차돌 이가 세면을 하고 욕실을 나오니 식탁엔 남자둘이 차돌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듯 앉아 있다.

[어.......형들이 기다리는 것도 모르고.....미안해 형.....]

차돌 이는 사람이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미안했다.
아무 생각 없이 천천히 움직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 실례를 범한 것 같아 미안해한다.

[뭐. 대장이 이런 적이 한번 두 번이야......
그래도 이번은 양호한 편에 속하는걸...하하하........]

덩치가 좋은 남자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받는다.
한두 번도 아닌 일이고 이미 수시로 겪는 일이니 괜찮다고 말한다.

[에이..곰 형, 미안해....외팔이 형한테도......
.그렇지만 제일 미안하게 여기는 사람은 우리 형수야, 헤헤헤........]

차돌이가 바쁘게 밥을 나르는 여자에게 웃어 보인다.
형수와 형들을 기다리게 했다는 것이 송구해서 농담처럼 하는 말이다.

[어머...삼촌, 전 괜찮아요..........]

여자는 차돌 이를 보며 놀라는 눈빛을 보내곤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랬다.
차돌 이는 경비를 하게한 중년부부를 형과 형수라 불렀다.
한사코 마다하는 두 사람을 어르고 해서 겨우 그렇게 부르도록 만들은 것이다.
대신 중년부부는 일체 자기들의 옛일을 묻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렇게 하기로 했으며 남자는 그냥 옛날에 자기별명이 곰 이였으니 그렇게 불러라 했다.
또한 곰 형 부부 혼자 집을 관리하기도 뭐했고 한사람을 더 구했으면 의논하였는데 곰 형이 자기가 아는 동생이 있으니 같이 있으면 안 되겠냐고 청하는 통에 그러하라 했고 그렇게 해서 들어온 사람이 한쪽 팔이 없는 외팔이였다.
그도 곰처럼 절대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그냥 자기의 몰골이 이러니 외팔이라 불러라하여 차돌 이는 그를 외팔이형이라 불렀다.
외팔이는 성질이 무척 급하였지만 이상하게도 곰 앞에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꼼짝을 못하였다.
차돌 이는 외팔이가 천성적으로 외팔이가 아님을 알아챘지만 얼굴에 긴 칼자국까지 난 것을 보고 무슨 사연이 있겠지, 언젠가는 스스로 말하지 않겠나하고 덮어두었다.
허나 외팔이는 곰처럼 과묵하지도 않았다.
성질이 급한 만큼 사람의 비위도 무척 잘 맞추는 사람이었다.
이집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모두모여 아침을 하기위해 안채에 들른 것이다.
처음에 식사도 같이 하지를 않으려 하기에 차돌 이는 며칠을 집에서 같이 식사안하면 한 숟갈도 먹지 않았고 차돌이의 고집에 사람들은 어쩔 수없이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처음엔 서먹한 분위기도 지금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일반인들의 형제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듯한 그러한 정경이었다.
허나 곰은 차돌이가 상석에 앉기를 원했고 차돌이가 수저를 들지 않으면 절대 먼저 손대는 법이 없었다.
곰은 일단 상전으로 모시면 철두철미하게 경우에 어긋나지 않는 그러한 행동을 보였다.
차돌 이는 차마 그것까지 마다하지를 못했다.
어 쨌던 자기가 월급을 주는 처지가 아닌가.
차돌이가 식사를 하면서 곰을 쳐다본다.

[형, 외팔이형이 있을 방은 언제 끝나.....
내가 보기엔 거의 끝나 보이던데.........]

[안 그래도 그걸 보고하려던 참 이였어.
오늘 모든 작업이 끝나, 그런데 결재를 해줘야 하는데........]

곰은 차돌 이를 주시하지 못하고 밥상을 쳐다보며 말끝을 흐린다.
자기가 아는 자를 기거하게 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거기에다 기거하는 집 공사비까지 손을 벌려야 했으니 체면이 서지 않았다.

[왜 그래 형, 말해봐.....아. 아........인부들 품삯 때문에.....]

차돌 이는 곰이 어려워하는 이유를 알았다.
필요 없는 식구를 자기가 데려오고도 그 사람이 거처할 집을 짓게 하는 수고로움 외에 경비까지 달라하려니 여간 민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안해. 자꾸 대장님에게 염치없는 짓 하는 것 같아서.....]

그렇다.
곰과 외팔이는 차돌 이를 사장이라 부르기도 무엇하였고 해서 그냥 대장님이라 불렀다.
곰은 미안하고 쑥스러워서 머리를 들지 못한다.

[알았어, 형, 그것도 모르다니.....확실히 난 바보야....
미안해 형 그리고 형이 알아서 인부들에게 섭섭하지 않도록 품삯을 후하게 드려.
난 모든 집안일은 형과 형수님에게 일임했잖아....
앞으로 그딴 것은 형이 알아서 처리해.....
그러라고 내가 도장과 통장을 맡겼잖아.....]

차돌 이는 귀찮다는 듯 모든 일을 일임했으니 알아서 해라고 해버린다.
곰은 더 송구한지 괜히 밥그릇에 담긴 밥을 저로 휘저어댄다.

[고마워. 대장
정말 대장님이 어찌 보면 우리 형제에게 은인이나 다름없어.
갈데없는 우리를 돌봐주는 것도 고마운데 이처럼 우릴 믿고 그런 것까지 맡기다니...]

곰은 너무나 고마웠다.
아직 자기들의 신원을 정확히 모를 것인데 사람을 믿고 행하는 차돌이의 통 큰 행동에 감격했다.

[에이.....형, 또 왜 그래.....
난 사람을 볼 줄 안다고 믿어.
설령 형이 나를 실망시켜도 그건 내 탓이야.
형. 난 이래봬도 어리 숙한 사람이 아냐...언젠가는 형도 알게 될지 모르지만.......
에이........그만하자.......
난 밥 먹고 학교가야 돼........]

차돌이가 급하게 밥을 입에 우겨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는 남은 사람들을 보며 웃어보이고는 안방으로 사라진다.

[형. 천천히 들, 먹어..난 사실 많이 늦었어,]

차돌 이는 많이 변해 있었다.
섹스를 할 때의 습성은 여전한데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현저하게 변해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교만해서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고 탐욕해서 낭패를 당하는 꼴 역시 종종 볼 수가 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조금 남보다 잘났다고 하는 교만처럼 무서운 적은 없을 것이다.
공자도 그러지 않았던가..
빼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도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것은 보잘 것 없는 것이 다 라고.........
매사에 겸손하고 겸허한 몸가짐을 가진다면 벼랑으로 떨어질 위험에 처하더라도 능히 피해가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진정 차돌이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차돌이의 넉넉한 웃음과 호기는 그런 생각을 품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차돌이가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오니 곰과 외팔이는 보이지 않고 아주머니만 있다.

[형수, 나, 갔다 올게요........]

차돌 이는 아주머니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며 신발장을 뒤적인다.

[저...삼촌.....여기 물이나 마시고 가세요.]

여자가 나가려는 차돌 이를 세우고는 숭늉을 사발에 담아 들고 와서는 준다.
차돌 이는 그걸 받아 입에 대고 벌컥벌컥 마신다.

[여...시원하다. 역시 형수가 최고야........하하.]

차돌이가 빈 그릇을 형수에게 주고 소리 내어 웃는다.
그리고 바쁘게 신발을 신고 휑하니 문밖으로 사라진다.
차돌이가 대문을 급히 벗어나려 하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린다.

[대장, 바쁜 것 같은데 태워드릴까........]

곰이 뛰어나오면서 차돌 이를 쳐다본다.

[괜찮아요, 형.]

차돌 이는 한손을 저어 거부의 표시를 하고는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차돌이가 버스 정류장을 향해 바쁘게 걸어간다.
사실 차돌 이는 이러지 않고도 편하게 학교에 갈수 있었다.
집에서 생활하려니 일일이 버스를 타고 다니는 곰 처의 행색을 보고는 급히 중고 승용차를 사서는 곰에게 맡긴 것이다.
허나 차돌 이는 아직 나이도 있는데 벌써 승용차에 젖어 게으름이나 피우고 사고가 낙관적으로 바뀌는 것이 두려워 일부러 버스를 타고 조금이나마 젊은이다운 고초를 맛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차돌이가 열심히 정류장을 향해 길을 가는데 저만치서 오던 승용차가 차돌이 옆에 정차하더니 멈춘다.
그리고 차문이 열리더니 꾀꼬리 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차안에서 터져 나온다.

[후. 그럴 줄 알았어. 미련한 곰 탱 이.........어서 타.........]

미지였다.
미지는 이렇게 가끔 집에 와서 차돌 이를 태우고 가기도 했다.

[히히....누나네. 알았어.]

차돌이가 주저 없이 조수석의 문을 열고 몸을 들이민다.
차는 다시 달린다.
차가 학교정문을 거쳐 커다란 건물 옆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차돌이가 차에서 내리려고 안전벨트를 푼다.

[누나. 고마워..........]

차돌이가 미지를 향해 웃어주고는 차문을 밀려하자 미지가 정지시킨다.

[잠깐, 차돌아........]

차돌이가 차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미지를 쳐다본다.
미지는 아직 핸들에 손을 잡고 움직이지 않고 앞만 보고 있다.

[나중 마치고 기다릴게.....할 말이 있어.]

미지는 차돌 이를 보지 않고 있다.
예쁜 얼굴에 무언가 심각한 표정이 어려 있다.
차돌 이는 한동안 미지를 바라보다가 거부할 수 없음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누나..........그럼 나중에 봐.]

차돌이가 차에서 나간다.
미지는 차돌이가 가는 모습을 차안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는 얼굴을 찡그린다.
차돌이가 가고 있는데 어디서 여자가 바쁘게 뛰어와서는 차돌이의 팔짱을 끼고는 건물로 들어서지 않는가.......

[현영이 저 계집애가.........]

차돌이의 팔짱을 낀 여자는 현영이었다.
현영 이는 몇 번인가 차돌 이에게 만나기를 청해도 응해주지를 앉자 자손 심을 상해 못 견뎌 하다가도 또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 것이 매력으로 자기의 마음을 파고들지 않는가.
어떻게 하면 차돌 이를 자기와 가깝게 지내게 할 수 있는 가 온통 그 생각뿐이 없었다.
그래서 말로 안 되면 육탄공세라도 펼쳐야겠다고 생각하고 학교에 먼저 와서는 어디엔가 숨어 있다가 차돌이가 나타나면 번개같이 뛰어가 팔짱을 끼고는 같이 강의실로 가는 것이다.
그러면 현 영이는 느끼는 게 있었다.
남자들의 시퍼런 광기와 여자들의 부러운 시선들을........
그만큼 차돌 이는 학교에서 조금은 명물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목석같은 사내를 현영이가 꿰차고 들어가니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들은 부러운 시선을 보낼 수밖에......
차돌이도 처음엔 거부의 표시를 완강하게 했으나 조금도 물러나지 않는 현영이의 끈질김에 내 맘대로 해라는 식으로 버려두고 있었다.
그때마다 속삭이는 현영이의 약속을 무참하게 바람 놓는 것으로 만족하기도 했다.
오늘도 현 영이는 숨어서 기다리다가 차돌이가 미지와 같이 차를 타고오자 마음속에서 알지 못 할 질투가 치밀어 올라 미지가 보란 듯이 더욱 밀착하여 차돌이의 팔짱을 끼고는 속삭인다.

[오늘도 바람 놓으실 거 에요.]

차돌 이는 팔꿈치 근처에 현영이의 물컹한 젖가슴 살이 눌려오며 비벼지자 불연 듯 성욕이 치밀어 오름을 느낀다.
그러나 여긴 학교며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곳이니 숨길 수밖에.........
차돌 이는 모른척하고 현영 이를 바라보며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다.

[허허...참 끈질긴 아가씨네........
좋아, 오늘은 미지누나와 만나기로 했으니 같이 술 한 잔 어때.......
대신 나 돈 없어.]

차돌 이는 미지의 부분적인 승낙의 손을 들어준다.
현영 이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가 금 새 풀어버린다.

[좋아요....둘만이 아니라 조금 섭섭하지만........]

[하지만 현영 이는 우리 뒤를 따라왔다가 우리가 어디를 가던 지 20분후에
들어와야 해.......
우연히 만난 것처럼 말이야........]

차돌 이는 현영 이와 만나게 되는 장면을 우연하게 꾸며 미지에게 쓸데없는 오해를 받기 싫었다.
그래서 그런 제안을 한 것이다.

[어머......여자에게 미행이나 시키다니 난 싫어요.]

현영 이는 고개를 젓는다.

[어랍 쇼..이게 무슨 말이지,
현영 이는 미행에 도사가 아니야...내 뒤를 따라다닌 게 어디 한두 번이야 하하하......]

차돌 이는 현영 이를 보며 크게 웃는다.
얼굴엔 어처구니가 없어하는 표정을 잔뜩 담고서 시선을 현영 이에게 준다.

[어.......어머머......몰라요..............]

현영이가 부끄러운지 아님 자기의 행동이 들통 나 화가 나는지 심 떠 렁 해진다.

[하하하................]

[호호호,,,,,,,,,,,,,,,,]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
.
.
조그만 레스토랑
아담하게 꾸며진 홀에 탁자는 대 여섯 개 정도밖에 안 되는 레스토랑치고는 작은 편이다.

[왜, 누나 아까부터 내 얼굴만 보고 말을 안 하니............]

차돌 이가 커피 잔을 주물럭거리며 미지에게 묻는다.

[,,,,,,,,,,,,,,,,,,,,,,,,,,,,,,,,,,]

그래도 미지는 말이 없다.
차돌 이는 커피 잔을 들어 입에 가져가 남은 커피를 모두 마시고는 자세를 잡고 일어나려는 시늉을 한다.

[할 말 없으면 난 가야겠어.
더 이상 앉아 있기가 어색하고 .............]

차돌이도 이런 분위기가 어색했다.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차돌이가 일어나 가방을 집어 들고 나가려하자 미지가 잡는다.

[앉아 봐....]

[어라...이제 입을 여네........]

차돌 이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미지를 쳐다본다.
미지는 차돌이가 자리에 앉자 테이블위의 커피 잔을 보며 조용히 말한다.

[차돌아,
왜 나를 기피 하는 거니..........]

미지의 음성은 울먹이고 있었다.

[어.........누나, 그렇게 보였어.
난 그런 적 없는데...........
언제는 누나가 날 왕 따 시키더니 갑자기 무슨 말이지........]

차돌 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한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하는 말이지만 실상은 미지의 말이 맞았다.
모든 것은 차돌이의 흉계에 의한 것이지만 미지는 그걸 알 수도 없었고 설령 알았다 해도 이젠 차돌이의 마수에서 벗어날 자신도 없었다.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느냐는 차돌이의 말에 미지는 서운함과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하긴 과거 차돌 이를 못 살게 군 경험이 수도 없이 많지 않은가.........
그것 때문이라면.........미지는 모든 게 슬퍼지고 암담해진다.

[미안해 그때는 정말..,,,,,,,, 허지만 그때랑 지금이랑 다르잖니.........]

[누나, 뭐가 다른데........
그깟 육체관계 한번 가졌다고 우리 사이가 달라 진거야.....
난 누나를 연인이나 뭐 그딴 것으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
그러니 누나도 그때 일 잊어버리고 살 어.]

차돌 이는 냉정했다.
육체관계가 있었다고 사람을 억압하거나 구속하려 들지 말라는 이야기다.
자기는 벌써 잊고 누나로 여기려하는데 무엇 때문에 누나가 안달하는가 하는 말이다.
속으로는 미지가 이 사슬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걸 알면서 능청스럽게 대수롭지 않은 일로 무얼 그렇게 심각하게 대하는 가 오히려 미지가 이상한 듯 충고 비슷하게 말 한다.

[뭣.........뭣이. 그딴 것이라고........
넌 여자의 순결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 줄 모르고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할 수 있지.......흑....흑.........]

미지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서러운 것이다.
미운 강아지마냥 함부로 대하고 그랬지만 어찌하였건 자기의 23년간을 고이 간직한 처녀를 가져가지 않았는가...
그런 처녀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볍게 여기는 차돌 이가 야속하기만 하였다.
돌이켜보면 그때 못된 짓 한 것도 차돌 이가 너무 영리하고 어른스러워 괜한 심통을 부린 것에 지나지 않는데 남자가 그딴 걸 하나 이해하지 못하다니.........이런 남자에게 내가 순결을 가져갔다고 매달려야하나 그런 생각도 든다.
그래서 서러운 것이다.
알지 못 할 눈물이 흐르고 슬퍼지는데 뒤이어 들려오는 차돌이의 말은 심장을 찌를 듯이 아프기만 하다.

[누나....난 이 세상에서 나의 사랑을 얻을 사람은 오직 한사람이야.
난 그 여자를 위해 이렇게 잘살아 보려고 발버둥치고 있어.
그 여자는 누나랑 태생이나 방식도 틀려.
오직 줄줄만 알고 받기를 모르는 그런 여자이지.
난 평생을 그 여자에게 봉사하고 살기로 맹세한 놈이야.
괜히 누나가 내 옆에서 혹시 나를 어찌 해 보겠다면 일찍 생각을 접는 것이 좋아.
쉽게 말하자면 그 여자 외엔 나에게 여자란 그저 즐기는 대상일 뿐이란 말이야..]

[아니...그럼 나도 그 대상자에 한사람이란 말이야. 내가..이 김 미지가......]

미지는 기가 찼다.
우수에 잠긴 모든 것이 나를 무시한 채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어제까지 분명 허무에 휩쓸렸다가도 한편으로는 야릇한 행복감에 빠져 있지도 않았던가....
우리 것보다는 내 것을 원하고 땅보다는 하늘을 사랑보다는 돈에 탐욕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 아름답고 아늑해야할 이 세상에 이기주이를 뿌리는 몹쓸 사람들이 많은 작금에 차돌 이는 그런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고 순수해 보였으며 자기의 순정을 호소하면 서로 의지하고 행복한 세월을 보내리라 여겼는데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
미지는 차돌 이를 빤히 쳐다보며 자기는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차돌 이는 순간 멈칫해진다.
미지의 눈물에 얼룩진 얼굴과 고운 눈망울을 바로 쳐다보기가 민망해진다.
미지가 누군가......
어떤 남자라도 이렇게 예쁘고 세련된 미지를 좋아하지 않겠는가,
사실 차돌 이도 그런 미지가 처녀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에 적이 놀라기도 했지만...
차돌 이는 미지에게서 눈을 돌린다.

[그래. 누나도 한가지야.......
난 그 여자 외엔 어떤 여자건 내겐 정액 받 이로 밖에 여기지 않아........
누나도 혹시 날 좋아한다면 포기하고 옛날에 날 대했던 것처럼 하는 것이 좋을 거야.
그래야 상처가 덜 할 테니.........]

차돌 이는 확고했다.
사실 그것이 진정 차돌이의 마음이었기에.....................

[엉...엉............]

미지가 그만 대성통곡을 터뜨린다.
아직 초저녁이라 손님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음 다른 사람들의 눈요기가 충분히 될 수 있을 정도로 소리 내어 울어버린다.
카운터에 멍청히 앉아있던 아르바이트 학생이 쳐다보다 차돌 이와 눈이 마주치니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3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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