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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7:50 1,015회 0건
큰 상처엔 흉터가 남는다. 배를 째면, 당연하게 기운 흉터가 남게 되지만, 볼 때마다 아플 흉터가 두려워서 속이 썩어들어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멍청이는 없다. 괴롭더라도 싹둑 잘라버려야 할 때가 있다. 미진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옷을 챙겨 입고서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마을 휘휘 돌았다.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잘못을 하고나서 침대에 머리를 박고 엉덩이를 내놓은 채 숨었다고 생각하는 꼬마 아이처럼, 미진이는 아직 덜 성숙한 그런 면이 있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았지만, 미진이는 없었다. 결심을 했을 때 바로 이야기 하는 것이 좋지만, 살다보면 그런 순간은 자주 마주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거기에 아주 조금쯤은 미진이의 얼굴을 마주하고, 괴로운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을 미룰 수 있어 좋기도 했다. 결별의 시간은 내겐 아주 두려운 일이었다.

동네를 돌아다니다 돈까스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어렸을 때 가난하게 산 것도 아니었지만, 시골에 살았어서, 돈가스는 내겐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고, 그만큼 귀한 음식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양식돈가스보다는 일식 돈가스를 더 좋아하긴 했지만, 음식점의 간판에 그려져 있는 돈가스 그림만 보고서도 무조건 먹고 싶었다. 배가 고팠다.

주문을 하고, 핸드폰을 꺼내서 다시 한 번 미진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전화기는 신호음만 갈 뿐 받진 않았다. 무료하게 핸드폰의 미진이 이름을 지켜보고 있는데, 가게의 문이 열리며, 서로 알지만 친분은 없는 법대 후배 녀석과 여자 하나가 같이 들어왔는데, 여자는 안면이 없었다. 여자친구인가 하고 잠시 생각했는데, 녀석은 들어와서 나와 눈이 마주치고서도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인사 정도는 괜찮지 않나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친분이 없는데 꼰대처럼 굴기는 싫다라는 마음도 있어서 나 역시 그냥 모른 척을 했다.

두 사람은 서로 존대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소개팅을 하거나 해서 그리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은 상태 같았다. 두 사람을 보는 것은 실례 같아서 눈길을 핸드폰에다 두고는 둘이서 나누는 대화를 들었는데, 녀석은 그다지 대화엔 재주가 없었다. 그다지 흥미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구속적부심에 대해서 꽤나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설명이 틀린 부분도 있어서 묘하게 참견하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고민에 빠졌던 나를 구원하듯, 돈까스가 나왔다. 돈까스가 나오자 이번에는 여자쪽에서 내 앞에 나온 돈가스 그릇을 훔쳐보는 것이 느껴졌다. 음식은 맛이 있었다. 두 사람을 신경쓰지 않고, 천천히 돈까스를 먹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승현이었다.

"전화했었네요?"
"응. 저녁 먹지 않았으면, 같이 먹으려고 했었어."
"어. 진짜? 나 안 먹었는데, 공부하다가 먹는 거 잊어버렸어요. 어디에요?"
"나 우리 동네 돈까스집."
"시켰어요?"
"아니. 아직. 올래?"
"네."
"그럼 뭐 먹을래? 시켜 놓을게. 아니다. 와서 고르자. 오자마자 음식 나오고 먹는 것도 별로니까."
"그렇겠죠. 그럼 잠깐만 기다려요. 한 이십분 정도는 걸릴 것 같은데요."
"응. 기다릴게."

전화를 끊고서, 난 주인 아주머니를 찾아서, 여자친구가 저녁을 먹지 않았다고 해서, 여기로 불렀는데, 같이 먹고 싶으니까 새로 주문을 받으시고, 지금 테이블에 있는 것은 싸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고, 아주머니는 흔쾌히 그렇게 해주시겠다고 했다. 여자의 감탄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때, 나를 보는 여자를 보고서는 후배 녀석이 나를 아는 척 했다.

"어, 경민이형. 저 아시죠? 장환입니다."
"응. 밥 먹으러 왔어?"
"네. 그런데, 여자친구라니. 형 여자친구 있으셨어요?"
"아니, 그냥 설명하기가 그래서. 승현이랑 밥 먹으려고."
"승현이면.. 남승현이요?"
"어."
"승현이랑 사귀시는 거에요? 형, 저 못본 척 해드릴테니까요. 저도 좀 못본 척 해 주세요."
"그래. 알았다."

굳이 감추겠다는 녀석에게 옆의 여자가 누군지, 어떤 사이인지를 묻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접시를 들고 가시더니 포장용기에다 금방 포장해서 가져오시더니, 이번에는 종이컵에 맥심 커피를 타오셔서 내게 내미시는 것이었다.

"여자친구가 그 때 그 여자친구지? 우리 집에 한 번 왔었잖아."
"네? 절 기억하세요?"
"응. 되게 마른 여자친구랑 같이 왔었잖아. 기억하지. 두 사람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 나도 나중 우리 딸이 저런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었거든."
"아. 그러셨어요."
"전화 통화하는 걸 들었는데, 역시 요즘 학생들은 달라. 난 학생이 밥 먹고 있다고 이야기 할 줄 알았거든. 그리고 보통 남자들은 시켜 놓거든. 그런데, 여자들은 그런 거 별로거든. 와서 허겁지겁 밥 먹고, 먹자마자 나가고 그런 거. 아주 자상하네."

서너 달 전에 미진이와 한 번 왔다갔을 뿐이었는데, 의외로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몰랐다. 승현이가 오기전에, 미진이와 헤어진 것을 이야기하고, 승현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지 몰랐다. 대화가 한 번 끊겼지만, 장환이는 계속 구속적부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여자는 이제는 재미없는 장환이의 이야기를 흘려들으며, 나와 아주머니의 대화에 몰입되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시계를 흘깃 보았는데, 더 미루면 더 꼴이 우스워질 것 같아서, 난 그 때 왔던 미진이와는 헤어졌으며, 지금 오는 여자는 새로 사귄 여자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갑자기 내 어깨를 살짝 쳤다. 바람둥이구만 하는 살짝 주책인 주인 아주머니에게 네, 그러니까 나중 승현이가 왔을 때 빈틈없이 연기를 부탁드린다는 내 말에 갑자기 여자가 피식하고 웃는 것이 보였다.

장환이네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두 사람은 천천히 음식을 먹었다. 나는 무심히 인터넷 기사들을 검색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승현이가 들어왔다. 화려한 얼굴의 승현이를 보고서는 아주머니와 여자는 동시에 내게 경멸의 눈을 보냈는데, 장환이는 괜히 승현이와 아는 척을 했고, 여자는 본격적으로 기분 나쁜 티를 내기 시작했다. 역시 법대 남자들은 요령이 없었다.

"오래 기다렸죠?"
"아니. 빨리 왔네?"
"자전거 타고 왔어요. 선배랑 같이 다니려고 점심 때쯤에 중고로 하나 샀어요."
"춥지 않았어. 바람 차던데."

난 승현이의 손을 쥐었는데, 역시나 손은 찼다. 마주 잡은 손의 온기가 전해졌다. 그 때 아주머니가 와서 매우 딱딱한 어조로 주문을 받았고, 주문을 마친 후, 승현이는 외투를 벗어서 옆 자리의 의자에 놓아두며 내게 살짝 물었다. 아주머니 태도가 너무 이상하다고. 난 숨기지 않고, 잠시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미진이 이야기를 그냥 한 것은, 승현이를 믿고 있기도 했고, 나 역시 미진이와의 완전한 결별을 각오하고 있어서였다. 난 승현이에게 포장해둔 돈까스를 보여줬고, 그런 나를 여자는 호감있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선배, 공부 얼마나 했어요."
"깨서 지금까지 쭉 했지. 지금 첫끼야."
"나랑 비슷하네요. 나도 그랬거든요. 나는 점심은 먹었어요. 밥 먹고 뭐 할 거에요?"
"나, 특별한 일 없으면, 공부를 해야지. 공부하려고 휴학한건데."
"합격! 나도 그럴게요."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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