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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7:56 1,066회 0건


-소라야 일단 대실부터 할래?

원찬이 소라의 손을 모텔쪽으로 잡아 끌며 말했다.

-보자마자 겨우 생각하는게 그거야? 일단 뭐부터 먹자. 맛있는거 사줄게...
소라는 잠시 멈칫하다가,
-그런데 왜 대실이야? 외박이라면서?

소라가 의문을 가지자 원찬은 머리를 긁적였다.

-응...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나도 어제 알았거든. 지금 내가 나올수 없는데 나온거야. 분대외박이거든. 분대외박은 반드시 분대원들이랑 같이 활동해야 한 대. 나도 정말 몰랐어. 미안해.
-잠깐. 그럼 나랑 같이 있을 수 없다는걸 알면서도 나한테 얘기 안한거잖아?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그러니깐 지금 대실하는거잖아.
-너는 같이 있는다는게 꼭 그것만 얘기하는거니? 날 보면 그런 생각밖에 안드는거야?

소라는 토라져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원찬은 일단 소라를 데리고 근처 식당을 찾았다. 점심으로는 먹기 버거운 고깃집이나 순대국같은 탕 위주의 식당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J읍을 처음 나온 원찬으로서는 어디에 어떤 식당이 있는지 알길이 없었다. 일단 배고프다는 소라를 순대국집으로 데려갔다. 자리에 앉아 순대국을 바라보는 소라의 표정이 어두워지다 못해 거의 썩어있었다.

-나 이런거 잘 못먹어. 여기까지 와서 이런걸 먹어야 돼?
-오늘 도대체 왜 그래? 오랜만에 봤는데 꼭 이렇게 해야겠어?

원찬은 순대국을 허겁지겁 먹으면서 말했다. 소라는 먼길을 왔는데 여기서 계속 투정을 부리면 모든 일정을 망칠 것 같아 일단 참았다. 순대국을 몇 술 뜨다가 이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군대가 사람을 변화 시킨다더니 원찬이 자꾸 뭔가에 쫓기는 듯한 인상도 받았다. 그런 원찬이 안쓰러워졌는지 소라는 다소 누그러진 말로 위로를 했다.

-피부 까매진것 봐. 고생을 많이 하긴 했나봐.
-그럼.. 진짜 거지같은 데 배치되서 참...
-운전은 많이 해?
-그럼.. 운전... 많이 하지.

원찬은 사실 운전병으로 배치만 되면 바로 차를 몰고 멋있게 드라이브하는 운전병의 모습을 상상했지만 소라에게 자신이 시다바리 역할이나 하면서 하루종일 작업만 한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민성이라는 친구는 잘 해줘? 같이 밥먹기로 했는데 오늘은 따로 있나부네.
-걔? 잘해줄수밖에 없지. 고딩 내내 내 밑에서 굴던 놈인데. ㅋㅋㅋ
-말이라도 .. 그러다가 민성이라는 친구가 해코지라도 하면 어떻게 해?
-걔가 그럴 배짱이라도 있는 놈이겠어? 지금도 나한테는 꼼짝 못해.

원찬은 배짱을 내보이며 소라에게 말했다. 소라는 그 동안의 연락으로 민성이 사람이 진지하고 천성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상대적으로 사람을 우습게 보는 원찬이 참 어리다는 생각도 동시에 했다. 둘은 밥을 다 먹고 계산을 했다. 소라의 순대국은 반도 넘게 남아있었지만, 소라가 먼길 차타고 오느라 입맛이 없다고 한 말을 원찬은 있는그대로 믿어버렸다. 둘은 베스0라0스 아이스크림점에 갔다.

-00선배도 제대하고.. 아 맞다. 00랑 00랑은 너 군대가고 직후부터 사겨.

소라는 시시콜콜한 사회 이야기를 해주었다.

-너 알바는 어때? 그건 괜찮아?
-학원에서 강사님 보조로 하면서 나도 가르칠때도 있고.. 조금 힘든건 있는데 사람들도 좋고 보수도 괜찮고. 운이 좋았어. 친한 언니가 어학연수가 급하게 잡히느라 내가 대신 한거거든. 올해 수능까지는 계속 일 하기로 했어.
-휴~ 나 제대할때쯤에는 넌 이미 사회에 나가있겠다. 난 그제서야 3학년으로 복할할텐데.
-남자들은 다 그렇지 뭐. 나중 일은 나중에 결정하고 일단 몸 건강히 제대부터 해.
-알았어. 나 잠깐 화장실좀 다녀올게.

원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 소라는 거울을 보기 위해 가방을 열었더니 핸드폰에 메시지가 몇 개 와있었다. 민성에게 온 것이었다.

<소라씨, 오셨다는 얘기 들었어요. 잘 놀고 계세요?>
<아 ㅋㅋㅋ. 도착했어요. 경기도라고 해서 가까울줄 알았더니 정말 머네요 ㅠㅠ>
<괜히 제가 다 미안해지네요. ㅋㅋ >
<아니에요 왜 민성씨가.. ㅋ 그런데 분대외박이라는게 정말 따로 있을 수는 없는거에요? 원찬이가 제대로 설명을 안해줘서....>
<원찬이는 아마 돌아가는 구조를 잘 모를거에요. 근데 저도 잘 모르구요. 분대장친구한테 물어보니까 지금 소라씨 만나게 해주는것도 배려하는거래요. 자는건 반드시 저희와 같이 해야 된다네요>
<아, 그래요 ㅠㅠ>
<저희 근처에 펜션 잡아놓고 있거든요. 방도 몇 개 되고 애들은 다 거실에서 자도 되는데 굳이 숙박비 쓰실거 없으시고 이리로 오세요. 오늘 바로 다시 서울가는건 좀 그렇잖아요. 원찬이도 소라씨 계속 보고싶어 했는데..>

소라는 계속 원찬과의 숙박을 원하다는 말을 할 경우 민성에게 원찬과의 하룻밤을 원한다는 뉘앙스를 줄까봐 조심스러워 하고 있었다.
<이따가 상황봐서 다시 연락드릴게요>

원찬이 일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소라는 황급히 채팅창을 돌리고 핸드폰을 내려놨다.

-누구야? 친구?
-아니야.. 아무것도. 그냥 학원에서 연락온거야. 우리 오늘 뭐할까?

소라가 핸드폰을 가방에 넣으면서 물었다. 원찬은 사실 머릿속이 텅 비어있었다. J읍의 지리를 아는 것도 아니고 날씨가 너무 더워 야외에서 활동하기에는 여자에게 무리였다. 근처에 극장이나 위락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구장이나 PC방을 가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자 그냥 한마디 툭 던졌다.

-대실하자니까. 시원한 거 먹으면서 얘기나 좀 하자.

원찬이 대실이야기를 다시 꺼내자, 소라는 인상이 확 찌뿌려졌다. 소라도 사실 오늘 원찬과의 하룻밤을 기대하고 왔다. 요 며칠 밥도 반씩 먹으면서 몸매관리도 했고 속옷도 일부러 자극적인 디자인으로 하나 사서 입고 왔다. 그러나 이런식으로는 싫었다. 시간에 쫓기고 욕정에 몰려서 짐승처럼 하고싶지는 않았다.

-넌 아까부터 계속 그 생각뿐이지? 생각하는게 왜 그 모양이야?
-무슨말이야. 다 널 좋아하니깐 이러는거지.
-날 정말 좋아한다면 내가 지금 무슨 생각부터 하고 있는지부터 살펴줘야 되는거 아니야?
-근데 지금 여기서 할만한게 없어.
-그럼 그냥 날 무작정 부르기만 했다는 거야?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해? 오로지 그생각...
-나 지금 군인이잖아. 니가 좀 이해 해줘라.
-군대에서 부조리한 것 다 전화로 징징 대면서 이제 자기 필요할때만 군인이라는 타이틀 뒤에 숨으려고?

소라의 ‘징징’이라는 표현이 원찬은 머리에 있던 나사 한 개가 톡 하고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대로 소라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다. 소라가 이 이상 한마디만 더 한다면 외박이고 뭐고 소리를 지르리라... 그때 원찬의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배원찬. 나 두식이다. 적당히 하고 빨리 펜션으로 복귀해라. 위치 모르지? 택시타고 펜션이름만 말하면 기본요금이야. 빨리빨리 정리하고 혼자 온던지, 정 아쉬우면 같이 오던지. 알아서 해라.

해가 길었지만 어느새 뜨거운 해는 수그러들었다. 원찬은 빨리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펜션이라니깐 방은 여러개 있을 것이다. 민성에게 부탁하면 온전히 방 하나는 내 줄것 같았다.

-소라야, 너 애들 있는 곳에 같이 갈래?
-그게 무슨소리야?
-이대로 너 보내면 내가 너무 힘들거 같아. 나 같이 군생활 하는 사람들도 볼 겸 펜션가자. 거기가 경치도 좋고 니말대로 얘기도 많이 하고 쉬기에는 진짜 딱 좋을거야. 그냥 애들한테 인사만 하고 우리는 우리시간 갖자.

원찬은 자신이 말을 하면서도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일단 자신이 최고 낮은 계급인것을 소라에게 보여야 한다. 소라앞에서 만큼은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엔 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조금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그럼.

의외로 소라가 한번에 허락을 했다. 내심 거절을 하면 자신의 불안감이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밖으로 소라가 허락을 하자 당황한 쪽은 원찬이었다.

-거기 민성씨도 있는거지? 어차피 셋이 밥한번 먹기로 했으니까 겸사겸사 해서 가자. 우리가 뭐 사갈건 없는거야?
-걔네들이 다 사놨을걸.




민성은 침대에서 일어나 소라와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이야기가 어느정도 일단락 된 뒤에 거실로 나갔다. 물놀이가 지쳤는지 다들 거실에 퍼져서 자고 있었다. 두식만이 과자를 먹으면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형, 뭐야... 지금 몇시나 됐어?
-한지연 하사는 갔어?

두식이 무슨일이 있었는지 다 안다는 식으로 씩 웃으며 민성에게 물어봤다.

-응 갔어.. 자기 있으면 우리끼리 잘 못 노는거 같아서
-됐어... 굳이 변명 안해도 돼. 좋았는지만 얘기해 ㅋㅋㅋ

두식이 말을 잘라 민성에게 말했다. 민성도 머쓱했는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엄지손가락을 곧게 세워 두식에게 보여줬다.

-두식 형 빨리 원찬이한테 전화해서 돌아오라고 해.
-나 그 새끼 번호 모르는데
-내가 알려줄게

두식은 원찬에게 전화를 걸어 할말만 다 하고 끊었다. 조만간 둘이 오든 하나가 오든 올 것이다. 민성이 소라에게 어느정도 양념을 쳐놨기 때문에 꼭 같이 왔으면 하고 바랐다.

-야야, 다들 일어나라. 모처럼 나왔는데 자러 왔냐? 군바리들 아니랄까봐

두식이 발로 애들은 다 일으켜 세웠다. 술과 물놀이로 퍼져자던 애들은 낮잠이 개운했는지 다들 기지개를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에 개기름 낀놈들은 가서 세수좀 해라. 2부 게스트 오신다.
-누굽니까? 누굽니까?

여기저기서 기대반 의심반으로 두식에게 물어봤다. 정일과 원재는 누군지 직감했다. 다들 한번씩 샤워를 하고 점심 먹었던 상을 치우고 냄새를 없앴다.

잠시후에 원찬과 소라가 펜션으로 들어왔다. 군인들은 하나같이 소라를 지켜봤다. 늘씬한 몸매, 예쁜 마스크, 사진으로만 보던 글래머러스한 가슴과 엉덩이... 어떤 이는 음흉하게 위아래로 훑었고 어떤 이는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안녕하세요. 원찬이 여자친구 유소라라고 합니다. 오늘 신세지게 돼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잘 오셨어요.

민성이 대표로 소라를 맞이했다.

-아, 그쪽분이 최민성씨? 반가워요. 이렇게 보네요.

소라는 민성에게 인사를 했다. 인사할 때 아래로 흐트러진 머리를 소라가 귀뒤로 넘겼다. 그 세세한 자태가 기품있어보이면서 섹시하기 까지 했다. 소라는 민소매 남색 원피스와 그 위로 하얀색 망사 가디건을 입고 있었다. 위는 쇄골 한참 아래 부분에 일자로 되어 있는 라인이 형성되어 있었다. 가만히 서 있을때는 가슴골은 보이지 않았지만 유방의 윗부분이 자연스럽게 보여 음영이 져 있었다. 소라가 테이블 앞에 앉으려고 숙였을때 군인들이 다들 소라의 가슴골을 보기 위해 시선을 집중 시켰다. 밑에는 플레어스커트 스타일이었는데 무릎위에서 길이가 끝나는 다소 짧은 치마였다.
민성은 펜션에 구비되어 있는 얇은 담요를 소라에게 가져다 주었다.

-소라씨, 불편하실텐데 이거 덮으세요.
-아! 감사해요.

소라는 민성이 가져다 준 담요로 다리 위를 덮었다. 소라와 군인들은 식사시간이 훨씬 지났다는 걸 알았다. 원찬은 펜션에 온 뒤로부터 말이 없어졌다. 두식의 눈치를 보는 것도 있었고 민성과 소라의 묘한 기류를 감지하기 위해 더듬이만 치켜 올리고 둘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친님, 드시고 싶은거 있으세요? 저희 배달시킬건데...

두식이 쿠폰북을 통째로 소라에게 주었다.

-모처럼 나오셨을텐데 기두식 상병님 드시고 싶은거 드세요. 저는 그냥 손님인데요 뭘.

소라가 손사래를 쳤다.

-저희는 아무거나 다 잘 먹습니다. 어차피 사람이 많아서 골고루 시킬 수 있으니까 그냥 아무거나 하나 말씀하세요.
-원찬아. 너 뭐 먹을래? 아무래도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는 니가 제일 무언가를 먹고 싶을것 같아. ㅋㅋㅋ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소라의 말에 다들 웃었다. 소라는 원찬을 배려한 것이지만 원찬은 괜한 자격지심이 생겼다. 왠지 자신이 제일 짬찌라고 비웃는 듯 했다. 두식이란 놈이 소라의 바로 옆에 붙어서 평소에도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상냥하고 친절한 모습에 가식적이라고 생각했다.

-난 그냥 아무거나 먹을래. 난 족발. 너도 그냥 족발 먹어.

원찬은 다소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테이블 끝에 앉아있던 민성이 말을 끼어들며 말했다.

-소라씨는 낙지전골 한번 드셔보세요. 족발도 시키기는 할건데... 저희 햇반을 피엑스에서 이미 왕창 사다놨으니깐... 밑반찬은 제가 주인아저씨한테 부탁드려볼게요. 여기 낙지전골 잘하는 집 있거든요. 냄비채 포장되어 오니깐 드시는데 문제 없을거에요.
-그래요?? 잘먹을게요.

민성의 추천요리에 소라는 배시시 웃었다. 원찬은 무릎담요에 이어 2점을 내줬다고 판단했다. 가식적인 두식과 매너있는 민성보다는 소라에게 미움이 생겼다. 낮 동안 자신에게 갖가지 투정을 부려놓고는 이제와서 이런 상황을 즐기는 것 마냥 웃고 있었다.

-원찬아 그릇이랑 숟가락 날라라.

정일이 원찬에게 눈치를 주었다. 공고 자동차과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온 정일이었다. 외박을 나와 펜션에서 지켜보니 군인의 색채가 약간 옅어졌다. 자신보다 두 살이나 어린놈이 보란듯이 이래라저래라 하고 있는 꼴이었다.

-원찬이가 좀 센스없고 느려터지죠? 소라씨도 사귀면서 은근 답답했을 거에요. 저놈 저거 혹시 밤에도 그러나 하하하?

정일이 소라앞에서 대놓고 무시하는 말을 한 대다가 성적인 모욕도 서슴없이 지껄이고 있었다. 원찬은 기분이 확 나빠졌지만 할 수 없이 주방으로 가 그릇을 챙기고 있었다. 소라는 대놓고 기분나쁜 티를 낼 수 없어, 무의미한 웃음으로 무마하고 있었다.

-아직 이등병이라서 그래요. 정일씨가 잘좀 챙겨주세요.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저 이제 20살이거든요. 누나도 편하게 말 놓으세요. 뭐 저희가 군인이지 누나도 군인인가요...

정일이 한껏 열받게 말을 하다가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그래.. 그러지 뭐. 제가 다들 나이를 몰라서.. 민성씨만 동갑인걸로 알고
-그럼 소라씨 저랑 친구해요. 나이도 같은데
-그래. 그러자.

민성과 소라는 말을 트고 친하게 지내기로 했다. 원찬이 듣지 않는 곳에서 이미 그들은 다 나이를 공개하고 누나 친구 동생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릇을 챙겨와서 세팅을 하고 있는 원찬에게 정일은 다시 말했다.

-아 이건 나랑 애들이 할게. 넌 나가서 신발좀 정리해라.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완전 다 엉켰다.

원찬은 이번에도 하는 수 없이 묵묵히 신발장쪽으로 가서 신발을 정리했다. 소라는 거기서 뭐라고 한마디를 거들면 오히려 더 원찬이 난감한 상황이 올까봐 잠자코 있었다. 민성은 소라에게 가 넌지시 말했다.

-원찬이도 저런 모습 보여주는거 싫을거야. 니가 좀 이해좀 해줘.
-응.. 다들 거쳐가는 건데. 이등병이면 이등병 답게 해야지.
-그래 이해해줘서 고마워. 나도 좀 배려해주고 싶은데 단체생활이라는게 또 그게 아니잖아. 나도 곧 집에 가는데 그럼 원찬이만 더 힘들어져.

제일 처음 치킨이 도착했다. 족발, 낙지전골, 피자도 도착하자 슬슬 앞접시에 놓고 저녁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소라야 많이 먹어. 군바리들은 흙을 섞어도 맛있게 먹겠지만 ㅋㅋㅋㅋ 민간인이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

오빠 동생 사이를 하기로 한 두식이 소라에게 말했다. 두식의 농담에 다들 웃었다.

-맛있네요. 특히 낙지전골이 맛있네요. 민성이가 센스가 좋은데?

소라가 민성을 치켜세우자 민성이 꾸벅 인사하는 제스쳐를 보였다. 원찬은 점점 끓어올랐다. 펜션에 온 뒤로 자신은 완전히 소외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상 멀리있는 음식을 소라가 집을 때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앞 섶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멀리 팔을 뻗으면 앉은 키가 큰 남자들이 가슴골을 은근슬쩍 보기 때문이었다. 대놓고 보는 놈들도 있었다.

-소라 누나는 학교에서 인기 정말 많겠어요.

말이 없고 샌님같은 일신이도 분위기가 즐거운지 소라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인기많긴... 나도 이제 고학년인데 그런거 즐길 수나 있나. 일신이도 귀여워서 제대하고 나면 인기 폭발할거 같은데?
-저는 그런거 뭐 없어요
-아니야.. 귀여운거 좋아하는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자신감 가져. 민성이는 여자친구 있어?

소라가 민성에게 물었다.

-난 없는데.
-학벌도 좋고 오늘 보니깐 외모도 괜찮은데 왜 아직 없을까?
-나 곧 휴가 나가는데 니가 한명 소개해줘라.
-맨날 곧 나간데. 도대체 언제 나오는거야? 너 나오면 내가 바로 바로 소개팅 해줄게
-어? 진짜다? 나 다음달부터 쭉 휴가야. 휴가 몰아서서 한달동안이나 나간다고. 2학기 복학도 할 수 있어.

식사를 어느정도 하고 점심에 사둔 술을 먹기 시작했다. 후임병들이 마트에서 산 술과 한지연이 사온 술까지 해서 어느 정도 남아있었다. 한잔씩 잔에 따르고 기두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멋지게 인사말을 했다.

-갈사람은 가고, 좆뺑이 칠 사람은 치고!!!

웃는 사람과 장난으로 울상을 짓는 사람이 나뉘였다. 원찬은 아무 표정도 짓지 못하고 조용히 잔을 꼴짝 거렸다. 술잔과 이야기가 어느정도 돌자 정일이 발그레진 얼굴로 소라에게 물어봤다.

-누나, 원찬이 이놈 언제부터 사겼어요?
-응? 1학년 여름방학때 동아리에서 만났어.
-올~ 그럼. 2년 정도 됐네요. 그럼 갈때까지 가겠다 ㅋㅋㅋㅋ 그죠?

정일이 정신줄을 놓고 말했다. 소라는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서 두리번거리고 원찬은 정일에게 말했다.

-장정일 일병님, 뭐 그런걸 묻습니까.
-뭐 임마, 물어볼 수도 있지. 무슨 애들 사귀는 것도 아니고. 넌 고등학교때 여자친구하고도 떡 쳤다며?

소라가 화들짝 놀라 원찬을 바라보았다. 원찬은 다 놀라있었다. 술로는 만들 수 없는 시뻘건 얼굴이 되었다. 목과 귀까지 빨개졌다. 언성도 높아졌다.

-누가 그런소리를 합니까? 장난이 씨발,, 너무 하네....
-야, 이 새끼야, 선임이 농담 좀 했기로서니... 뭐 씨발? 아니면 아닌거지 욕했냐 너 지금?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었다. 두식이 중재에 나섰다.

-자자,, 한잔씩들해. 원래 잔치집에서 싸움나는거야. 오늘 술자리가 잘 이어질려고 이러는가부다.

두식이 둘을 얼르며 술을 따라주었다. 소라는 여전히 당황했는지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소라야, 많이 당황했지? 워낙 거친놈들이라 어느정도 예상하고 미리 말해줬어야 했는데 여기까지 오라고 한 내가 참 미안하다.>

민성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아니야.. 뭐 그러려니 해야지. 근데 정일이 말 사실이야? 넌 고등학교 동창이라며? 넌 뭔가 알고 있을거 아니야?>
<동창이라고 뭐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사귄 애는 있었어. >

소라는 배신감을 느꼈다. 원찬이 자신에게 첫 여자친구라고 늘 말해왔기 때문이다. 소라는 사실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지는 않았다. 자신도 원찬이 첫 남자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년 넘게 거짓말을 해왔다는 사실에는 큰 실망을 느끼고 있었다.

-야, 술도 떨어졌는데 가서 술이랑 음료수좀 사와라. 누가 갈래?

두식이 카드를 꺼냈다. 일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일이 앉아있는 원찬의 허벅지를 발로 툭치며 말했다.

-야 임마, 일신이가 가는데 넌 뭐하냐?

원찬이 인상을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에 애들만 보내면 무슨 일 난다. 민규야 너도 갔다와.
-예, 금방 갔다오겠습니다.

민성의 말에 김민규 상병이 군소리 안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민규, 조일신, 배원찬은 펜션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으로 큰길로 나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빠져나가고 펜션 안이 다소 조용해졌다.

-누나 미안해요. 딱히 기분나쁘게 하려고 했던건 아닌데.. 그래도 원찬이 한테 하는건 원래 이렇게 하는거에요. 그것만은 기분 안나쁘셨으면 좋겠어요.

원찬이 나가자 정일이 소라에게 사과를 했다.

-응.. 나도 이해해. 그럴수도 있지 뭐.

-계속 앉아있었더니 소화도 안되고 답답하지? 펜션한바퀴 돌고 올래?
민성이 소라에게 제안했다.

-응. 그러자. 여기 구경시켜줘.

소라도 담요를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쭉 뻗은 다리를 몇시간만에 보자 군인들의 시선이 다시 고정되었다.

둘은 펜션 밖으로 나가 한바퀴 돌았다. 곳곳에 조명이 예쁘게 설치되어 있었다.

-우와. 이쁘다. 여기 정말 잘해놓은거 같아.

소라가 감탄을 하며 걷고 있었다.

-우리 저기 정자쪽으로 한번 가보자. 그 아래로 시냇물 흐르는데 정자에 서 있기만 해도 에어컨보다 더 시원할거야

둘은 정자쪽으로 걸었다. 힐을 신은 소라가 자갈밭이 잘 보이지도 않고 불편한지 계속 뒤뚱거렸다. 민성을 조심하라면서 소라의 등에 가볍게 손을 대고 부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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