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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그리고 사랑 - 76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8:17 677회 0건

“내가 운전 한다니까.”
현석은 지수의 옆자리에 앉아서 지수가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약간은 불안한 모습으로 말했다.
그녀는 이제 사직을 했고, 집에서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은 웨딩드레스 피팅을 한다면서 함께 가자고 했었다.
임신 중이니 가능하면 힘든일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녀는 운전이 뭐 힘든 일이냐며, 회사 앞으로 와서 자신을 태우고 직접 운전을 했다.
“헨리는 위치를 모르잖아요?”
“그거야 엘리가 말 해주면 되지.”
“괜찮아요, 내가해도.”
“일았어. 그래도 조심해.”
“네에~ 서방님. 알겠사와요.”
그녀의 그 말에 함께 웃었다.

“지금 가는데는, 학교 후배가 하는 패션샵인데, 정말 뛰어난 디자이너예요. 처음에는 후배인줄 몰랐거든요. 옷을 맞추러 가서 후배인줄 알게 된 관계인데, 지금은 참 친해요.”
“그래?”
“네, 그냥 손님과 주인으로서 친한 그런관계가 아니고, 자매처럼 친해요.”
“하긴 엘리는 동생이 없지.”
“네, 그래서 동생처럼 여기기도 하지만, 그 후배의 디자인이 참 좋아서 내가 거기 단골이거든요. 그 후배가 원래 웨딩드레스는 잘 안하는데, 내 웨딩드레스는 꼭 자기가 해 주고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어요.”
“좋은 후배네.”
“네, 그렇죠?”
“응.”
“그런데, 참 이해가 안되는 구석이 있어요.”
“뭐가?”
“독신주의를 고집하던 아이였는데, 어느날 갑지기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독신주의?”
“네, 좀 신기했죠. 어떻게 마음이 바뀌었나 싶어서 정말 신기하기도 했지만, 정말 많이 축하해 주었는데, 지난해 봄에 헤어졌다고 하더라구요.”
그거야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니 이상할 것 없다.
사귀다가 헤어질 수 있는거지 뭐.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아이를 낳았어요.”
“그래?”
그건 좀 의외다.
헤어지고도 아이를 낳다니.
“네, 그런데 막상 문제는 그사람은 그 사실을 모른대요.”
“저런, 대체 왜 그런대?”
“그걸 잘 모르겠어요. 말을 안해서. 나랑은 흉허물 없이 가까운 사이인데도 그건 말을 안해요.”

“그럼 그 남자는 아직도 여전히 모르고 있는거구?”
“네, 그런가 봐요. 딸을 낳았는데,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는 했느냐고 했더니 그것도 말을 안했대요.”
“참 이해가 안되는 구석이 있긴 있네 정말.”
“지금 애 낳은지 두달쯤 됫거든요. 그런데 너무너무 예뻐요.”
“언제 봤기에?”
“드레스 맞출 때 잠깐 봤는데, 진짜 인형같아요. 아니 어쩜 인형보다 더 예뻐요.”
“그래?”
“네.”
“혹시 엘리가 임신을 해서, 어린 아기들은 다 예뻐 보이는거 아냐? 임신하면 애들이 다 예뻐 보인다 하던데.”
“아뇨, 그런것만은 아니에요. 그 후배가 무척 예쁘거든요.”
“예쁘기로 치자면 엘리를 따라올 사람이 없지.”
“그 후배도 참 예뻐요, 나랑은 조금 다른 느낌으로 예뻐요. 좀 다른 느낌이라서 더 예쁜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엄마가 예뻐서 그런지, 애기가 엄마를 쏙 빼 닮았는데,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애기가 예쁜건 그렇다 치고, 그래도 애 아빠에게 알리라고 해.”
“그렇게 말 했죠.”
“그런데.”
“알릴 수 없대요.”
“연락처를 모르는가?”
“느낌으로는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알리지 않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참 이상하긴 하네.”

참 이해할 수 없는 여자들의 마음이다.
현석은 그런 여자들의 심정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긴 어찌 여자로 살아보지 않고 여자를 이해할 수 있으랴.
“나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럼, 헤어지긴 왜 헤어졌다는데?”
“왜 헤어졌는지도 말 안해요. 그리고, 그냥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하더라구요.”
“참, 대책 안서는 아가씨구만. 아니지 애 엄마니까 아줌마인가?”
“그럼 나도 이제 아줌마 되는건가요?”
그녀가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아니, 엘리는 애기가 있는 여신이 되는거지.”
“고마워요. 헨리.”
“뭘 그런걸로.”
“우리 아가도 그애처럼 예뻣으면 좋겠어요.”
“예쁠거야. 엘리가 너무나 예쁘잖아?”
“고마워요.”
“근데, 원래 어제 약속했었는데, 왜 오늘로 연기했어?”
“네, 어제 두통이 너무 심해서 볼 수가 없었대요. 다른 옷들은 다른 디자이너들이 봐도 되는데, 원래 웨딩드레스를 안하는 샵이라서, 다른 디자이너가 봐 줄수가 없으니까, 자기가 봐야하니까 어쩔 수 없었대요.”
“그럼 지금은 괜찮은거야?”
“네, 괜찮대요.”

그 후배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끝났을 무렵, 그녀가 핸들을 꺽으면서 한쪽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들어가는 장소.
이곳.
헛.
여기, 이게 뭐야?
낮익은 장소.
낮익은 간판.
그리고 주차장에 세워진 낮익은 자동차. 스포츠카

피에르체.
예리의 패션샵이다.
쿵~
온몸이 찌르르 울릴정도로 소리를 내며,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순간적으로 숨이 콱 막혔다.
이런, 그녀가 가는곳이 여기?

그럼, 그 후배가 혹시 이예리?
그런건가?
정말 그런건가?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런일이.
그렇다면, 그렇다면, 지수가 말한 그 아기가 현석의 딸?

대체 뭔 이런일이 있는거야?
그녀는 지난해 4월 초에 현석을 떠나갔다.
지금이 3월 초이니까 1달만 지나면 1년이 되는 셈이다.
그녀와 함께 제주로 갔던 이별여행이 4월 첫주였다.
그 기억은 정확하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지 2달이 됫으면, 1월에 태어났다는 말인데, 임신기간이 10개월이니까, 임신 시기가 지난해 2월이나 3월쯤 일 것이다.
그래야 10개월 후인 올해 1월에 아이를 낳았을 것이고, 지금이 3월 초이니, 2달 됫다는 계산이 맞은 기간이다.
임신 시기가 지난해 2월이라면, 예리는 그때 현석과 사귀는 중이었다.

현석과 사귀는 중에, 또 다른 남자를 사귀었을 가능성?
없다.
분명 없다.
이별 여행에서, 예리가 현석과 함께하게 된 이유를 잔잔한 톤으로 마치 독백하듯 말했었다.
그녀와의 첫밤, 그녀는 순백지신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남자를 사귄 적이 없다.
분명 그럴거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 아이는 틀림없는 현석의 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등줄기에서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녀가 주차를 하는 시간동안 머릿속에서 윙윙윙 소리가 났다.
주차를 하는 그 짧은 시간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맞다면, 그 아이가 현석의 아이라면, 도대체 예리는 왜 현석에게 알리지 않았을까?
임신사실은 언제 알았을까?
그리고, 언제 그 사실을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아이는 왜 낳았을까?
처녀가, 처녀의 몸으로 애를 낳아서 기르다니 정신이 있는걸까?
대체 임신사실은 왜 이야기 하지 않은거야?
예리의 나이 올해 스물다섯살일 것이다.
처음 만났을때였나, 추정해서 물어봤고, 맞다고 했었다.
그때가 2년전 겨울이었는데 스물셋이라고 했다.
그럼 스물다섯, 맞다.
예전같으면, 결혼 적령기에 해당하지만 요즈음은 20대 후반이 적령기로 많이 늦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에도 어린애 였지만, 지금도 어린애로 보이는 나이다.
그기다가 그녀는 무척이나 동안이기도 하다.
나이보다도 더 어려 보이는, 그러나 점잖은 어린애다.
지수와의 나이차이가 불과 세살이지만, 그래도 예리는 현석에게 여전히 아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마, 지금도 그럴것이다.

어떻게 미혼의 몸으로 애를 낳아?
그래서 어쩌려고?
대체 무었을 어떻게 하겠다고?
지금까지의 추리한 것으로 미루어 틀림없이 현석의 아이가 맞는데, 현석에게 알리지도 않고.

그러고 보면, 현석은 피임약이나 피임기구를 써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전처인 하영이 불임의 몸이다 보니 신경을 안쓰고 살았다.
아니, 처음에는 애기를 갖고 싶었으니 당연히 피임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불임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피임이란걸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 세월이 몇 년이 흐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피임에 무감각 해졌다.
그래서 예리와도 당연히 피임은 하지 않았는데, 이제야 느끼는 것이지만, 오랜기간 피임에 무감각해져 있다보니 피임의 필요성을 몰랐다.
아니, 아예 생각을 안했다는 것이 맞을것이다.
그런데, 예리가 임신을 했다니.
피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피임기구나 피임약을 사용한 적이 없는, 바로 그 습관 때문에 그녀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이리라.
남자용으로 사용되는 1회용 피임기구 같은 것을 현석은 싫어했다.
하긴, 지수와도 피임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 인해, 지금 그녀의 태중에는 아이가 자라고 있다.

지수가 임신을 한 것, 그것은 행복이지만, 예리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은 것, 현석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불행이다.
예리에게도 분명 불행일 것이다.
예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뺀다면 그게 맞다.
그것이 모든사람이 인정하는 축복 받은 결혼이냐, 아니냐에 따라, 여인의 몸으로는 축복받아 마땅한, 임신이라는 결과도 완전히 달라지는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럼 지난 여름에 카페에서 마주쳤을 때 느꼈던, 그 약간의 변화, 그것이었나?
정하니가 말했던, 어떤상태인줄 아느냐고 했던, 그것이 바로 이것이란 말인가?
언젠가 후회할 것이라고 했던 그것이 바로 이것이란 말인가?
왜 이렇게 눈치가 없는것일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예리와 관계된 것을 애써 무시했고, 그 인연이 지속되기를 바라지 않았던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 정하니의 이야기에도, 여름임에도 얼음이 얼 정도로 정말 쌀쌀하게 대했고, 카페에서 예리를 보았음에도, 의례적인 인사 한마디만 하고 머리속에서 애써 지웠던것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연락도 하지 않았고 궁금해 하지도 않았었다.
그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 왔을 줄이야.

지수는 차에서 내렸지만, 현석은 내릴 수가 없었다.
그녀가 밖에서 내리라고 손짖을 했지만, 현석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게 무슨 운명이란 말인가?
이게 무슨 장난이란 말인가?
가능하다면 만나지 말아야 할 여인을 의외의 장소에서 이렇게 만나야 하다니.
그리고 그 여인과의 사이에 딸이 있다는, 거의 확실한 사실.

생각 같아서는 이상황을 피하기 위해 소리없이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나의 여인, 지수의 웨딩드레스 피팅을 위해 온 자리이다.
가슴을 쓸어 내렸다.
여기까지 와서 되돌아 갈 수도 없다.
무슨 핑계를 어떻게 대더라도 지수에게 통할 수 있는 핑계는 없다.
몇일 전부터 약속을 했고, 어제의 약속이 오늘로 하루가 지연되었지만, 드레스피팅하는것을 보기위해 모든 일정을 비워둔 시간이다.
현석은 지수에게 비밀이란것이 없다.
하루의 일과를 지수는 모조리 알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잊은 약속이 있다고 핑계를 대고, 혼자 드레스피팅을 하라고 하면, 받아들여질까?
아니다.
그건 절대 아니다.
그것은 절대로 이해가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예리와의 관계.
지수에게 속인 것은 없다.
비밀이어야 할 것도 없다.
그런데, 지수와의 사랑과는 상관 없고, 그리고 결혼과도 상관 없는, 흘러간 과거의 인연이었기에 말 하지 않은것 뿐이다.
그리고 지나간 일이니 상관 없다 생각했다.

예리가 알까?
지수의 남편이 될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까? 모를까?
알건 모르건, 얼굴을 볼 수 밖에 없는데, 모르는체 해 줄까?
그러나,
안 내릴 수가 없다.
안 따라 갈 수가 없다.
자매처럼 지낸다니, 웨딩드레스를 안하지만, 언니의 드레스이기에 특별히 만들어 주기로 했다는데, 그 언니의 드레스피팅 하는데 직원들이 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예리가 있을것이고, 예리가 피팅을 하게 될 것이다.

현석은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몸이 천근 만근이다.
이렇게 무기력하고 무감각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리고 피에르체의 입구로 저만큼 가있는 그녀를 따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오세요.”
현석의 느린 걸음과 느린 행동이 답답했는지, 현석의 심정을 모르는 지수가 어서 오라며 재촉을 한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점원이 아는체를 하면서 지수를 반긴다.
“잘 있었지?”
“네, 이리 오세요.”
1층의 안쪽으로 안내되었다.
현석이 와 본적이 없는, 그래서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안쪽의 별도의 방으로 안내 되었다.
그곳에는 몇 개의 푹신한 소파와 작은 유리테이블, 그리고 여러 개의 거울과 여러 개의 마네킹, 한쪽으로는 문이 나 있다.
방 안은 다소곳 하지만 우아하게 장식되어 있고, 한쪽으로는 옷들도 여러가지가 걸려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실장님 모셔올께요.”
“응.”
안내를 해 왔던 그 직원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언니.”
잠시 후 들려온 귀에 익은 목소리.
예리다.
예리의 목소리가 귓전을 스치고 지나간다.
지수의 로리타렘피카가 아닌 예리의 로리타렘피카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래, 예리야. 바쁘지?”
지수가 일어서면서 현석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예리를 반갑게 맞았다.
지수는 문을 측면으로 바라보는 쪽이었지만, 현석은 문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언니 드레스인데, 아무리 바빠도 무조건 시간을 내야지.”
두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자, 여기 내 남편되실 김현석씨.”
지수가 현석의 방향으로 손을 뻗으며 예리에게 소개를 했다.
예리의 몸이 현석의 방향으로 빙그르 돌았다.
그리고 깜짝 놀라서 동그래진 예리의 눈.
벌어진 입.
예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현석은 얼굴이 달아 올랐다.
예리의 그 모습이 현석의 눈에 스틸컷처럼 한 동작씩 보였다.
억겁의 시간이 흐르면 그렇게 되려나?
귓속에는 무언가 모를 웅웅거림이 카세트테이프의 노래를 잘반의 속도로 플레이 시킨것처럼 이상한 음향을 내면서 웅웅거린다.

예리도 놀란 모양이다.
돌아서던 예리가 현석의 얼굴이 보이는 지점에서 동작을 딱 멈추었다.
침묵의 시간.
무척이나 놀란 얼굴로 예리 역시 말을 잃었다.
“아… 하… 안녕하세요.”
띠엄 띠엄 인사를 한다.
“흠.”
현석은 인사 대신 목에서 넘어오는 놀란 숨을 입 안으로 삼켰다.
이미 알고 들어 왔는데도 이렇게 놀랐는데, 예리는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헨리, 이쪽은 아까 내가 말한 후배, 이예리, 여기 사장이기도 해요.”
현석은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아는체를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래도 아는체 하면 안되겠지?
그래서는 안되겠지.
“안녕하세요. 김현석입니다.”
안된다는 판단이 서자, 비록 떨리는 목소리이지만, 그렇게 인사를 했다.

“현아도 잘 있지?”
“응. 언니.”
예리의 코끝에 땀방울이 맺힌 것 같다.
현석의 등줄기로 땀이 주르르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나 배 안불러보이지?”
지수는 임신사실을 예리에게 말 한듯 했다.
자매처럼 지낸다 했으니, 당연히 말 했겠지.
“언니는, 결혼식때까지 10일정도 남았는데, 그정도면 결혼식때도 표시 안나.”

입구가 술렁거리더니 한지원이 이연지여사를 모시고 왔고, 한지혜가 애를 안고 뒤따라 들어왔다.
같이 보기로 약속이 된 모양이다.
그 혼란속에서 정신없이 인사를 나누었지만 머릿속은 멍 하다.
처가의 여자란 여자는 다 몰려왔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담배를 끊은지가 언제인데, 이런 순간에 온 몸이 옜날을 기억하듯 담배를 간절하게 원했다.
그러나, 그녀가 피팅을 위해 드레스를 갈아입으러 들어간 사이,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마음이 진정되었다.
무었을 어찌 해야 할런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은 착 가라 앉았다.
제법 시간이 걸려서 옷을 갈아입는 모양이다.
옷을 갈아 입는사이에 한지원도 한지혜도 탈의실로 들락 날락했다.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할까 라는 생각을 끝없이 했지만, 무었하나 정리가 되지 않았다.
마침내 옷을 다 갈아입은 지수가 나타났다.

헛.
너무 놀라서 눈이 튀어 나올뻔 했다.
오늘, 놀라는 일이 너무 많다.
물론 지금은 전혀 다른 놀라움이긴 하다.
웨딩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이 어찌 저리 아름다울 수가 있단 말인가?
세상에 저토록 아름답다니.
여태까지 예쁘고 아름답다고 하던 한지수, 엘리가 맞는거야?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평소의 느낌보다 열배는 더 예쁜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그녀의 몸매가 잘 드러나도록 몸의 곡선을 따라 엉덩이까지는 몸에 달라붙었다.
엉덩이 아래쪽부터는 부채살처럼 펼쳐졌지만, 아름다운 꽃무뉘가 허리에서 내려 앉을 듯 날렵한 모습으로 수십겹으로 겹쳐진 모습이다.
가슴부위는 그녀의 가슴이 도드라져 보이도록, 적당히 노출되는 모습인데 젖가슴 위쪽으로는 몸이 모두 노출되는 모습이다.
그래서 그녀의 아름다운 젖가슴이 반은 보이는 것 같다.

혹시 인사를 하느라 고개를 숙이면 젖꼭지가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 정도이다.
그리고 젖가슴 부위에서부터 허리 라인까지 큐빅을 이용하여 몇송이의 꽃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어서 그 장식 만으로도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다.
웨딩드레스와 같은 흰색으로 수놓여진 꽃의 선을 따라 위치에 맞게 크거나 또는 작은 큐빅이 촘촘히 박혀있어서 실내의 불빛에 아름답게 빛이 났다.
마치 바람이 불면, 상랑거리는 바람에 따라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가 흘러 나올 것 같고, 불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모습은 요정이 웨딩드레스에서 춤을 추는듯 하다.
그리고 머리 위에는 찬란한 빛이 나는 보석으로 치장한 왕관이 있다.
그 왕관의 끝에 날아갈 듯 걸려있는 면사포.
아마 그녀의 저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 눈 멀고 귀 멀지 않을까?

“엄마, 너무 예쁘지? 아힝, 나도 이 웨딩드레스 입고 결혼식 다시 하고싶어.”
한지혜가 얼굴에 함박웃음을 웃고있다.
한지원도, 이연지 여사도 감탄한 표정이다.
“그래, 정말 예쁘구나 우리 딸, 마치 선녀같구나.”
“정말이야, 나도 저거 입고싶다. 이실장,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만들었어?”
한지원도 부러운 표정이 역력히 나타났다.
현석이 정말 많은 결혼식에 가 보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보지 못했다.
현석은 옆에서 한지원과 한지혜가 감탄을 하고, 이연지여사까지 정말 감탄을 하고 있지만,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 보았다.
저렇게 아름다운 신부가, 내 여자, 내 아내이다.

지수가 현석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현석도 지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그녀이다.
“엘리, 너무 아름다워서 눈이부셔서 쳐다보질 못하겠다.”
마음속에서는 천근 만근의 무게가 누르고 있었지만, 가능하면 표시를 하지 않고 지수에게 집중했다.
“정말요?”
“그래.”
“난 헨리가 마음에 들어하면 되요.”
“난 정말 마음에 들어. 어느분이 디자인하셨는지 모르지만, 정말 최고인 것 같아.”
“예리가 집접 했대요.”
그러면서 그녀는 예리를 쳐다보았다.

몸에 안 맞는 부분도 없고, 이상한 부분도 없었지만, 예리는 직원 두명을 데리고 세심하게 옷을 살펴 보았다.
한명의 천사와 그 천사를 돌보는 세명의 선녀들 같아 보인다.

지수를 쳐다보며 느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드레스를 살피는 이예리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착 가라 앉았다.
그러나, 겉으로 표시할 수가 없다.
혹시 표시 안하려고 하지만,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겠지?

다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피팅룸에는 커피와 녹차가 들어 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왁자지껄했다.
이런자리에 남자들은 대화거리가 별로 없다.
그리고 7명의 여자가 대화를 할 때는 남자들은 말의 틈새를 찾아들어 자기의 말을 할 수도 없다.
오히려 현석은 그것이 편했다.
과거에 한때, 사랑했던 아이, 예리.
그 전부터 사랑했던, 이제 결혼할 여인 지수.
그 두사람이 한 방에 모여있다.
그 두 여인중에 지수만 현석과 예리와의 관계를 모르는채.
그리고, 그 중 한 여인은 임신 16주, 또 한 여인은 아이가 두달이 되었다.
이 일을 어찌 한단 말인가?

* * *

오늘 드레스를 보러 왔던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왁자지껄한 인사가 끝나고, 각자의 갈길로 떠나고 있다.
한지혜가 애를 태우고 가고, 한지원이 이연지 여사를 모시고 떠났다.
이예리와 점원들이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

“헨리, 나 집에 데려다 주고 갈거죠?”
“그럼, 당연하지.”

집에는 일하는 아주머니가 와 있었다.

현석은 회사 주차장에 차를 두고 지수가 태우고 갔기에, 집에다 차를 두고 뚜벅뚜벅 걸어서 길을 내려갔다.
오늘 피에르체의 일을 되돌아 보았다.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틀림없는 내 아이.
정황상으로 봐서 틀림없다.
그래도 그녀의 입으로 듣고싶다.
지금 당장 다시 찾아가 보고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일로 미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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