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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그리고 사랑 - 74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8:18 731회 0건
“그럼 우리.”
“응 왜?”
“우리 할 때, 조심해야 하는거 아냐?”
“앗. 그렇네.”
그녀는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그지?”
“난, 그게 안되는데. 어떡하지 헨리? 헨리의 등에 난 내 손톱자국도, 아무리 안해야지 해도 그게 생각과 달리 안되는데, 그래서 손톱자국이 자꾸 늘어가는건데. 어떡해?”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녀가 쾌감에 몸을 떨면 모든 것이 자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오직 그녀의 본능에 따른 몸놀림만 있을 뿐이다.
그녀의 교성은 거의 쉬지를 않고, 때때로는 너무 크게 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랬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언젠가 현석이 녹음을 해서 들려주었을 때, 그녀는 정말 자신이 그랬느냐며 놀라워했다.
다만, 그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니 걱정 말라고 하는 현석의 말에 안심을 했을 정도였다.

“얼마간만 조심하면 될거야. 내가 알기로는 출산 예정달에만 조심하면 된다고 듣긴 했는데, 그래도 한두달 전에는 조심은 해야겠지.”
현석은 조금전 그녀의 뜨거웠던 몸을 생각하며, 잠시 웃음이 나왔지만, 대답은 그렇게 했다.
“그래?”
“응. 불안하면 의사한테 물어보구.”
현석이 그렇게 알고 있긴 하지만, 한 침대에서 자면서 과연 참아질까?
아니, 현석도 현석이지만, 그녀가 참아질까?

요즘 들어서 그녀의 몸이 좀 달라지긴 했다.
모성애 때문에 성욕이 저하되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더 늘어나는 사람도 있는것으로 알고 있는데,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고, 최근에 보여준 그녀의 행동을 보면, 그녀는 후자쪽인 것 같다.
그래도 조심은 해야 하는거 아닌가 싶지만, 그녀가 오르가즘에 도달하면, 자제가 안되는데, 조심하는것이 가능할까?

“응. 알았어. 병원에 가서 물어볼께, 그런데, 그때도 지금처럼 참지 못할 정도로 하고 싶으면 어떡하지?”
그녀가 오히려 걱정인 모양이다.

“그럼 지금 얼마나 된거야?”
“6주.”
지수의 대답에 현석은 그녀의 아랫배를 한번 쓰다듬어 보았다.
아직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평소와 같이 매끈한 느낌만 전해진다.
이 뱃속에 우리 두사람의 2세가 이제 자라고 있단 말이지?
그토록 작은 몸을 엄마의 뱃속에 깃들이고, 이제 자라기 시작했단 말이지?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가야. 엄마뱃속에서 엄마는 괴롭히지 말고 잘 자라거라.
그리고, 아빠랑 엄마가 사랑을 나눌때는 눈감고 귀막고 있어야 한단다. 알겠지?”
현석이 전혀 표시가 나지 않는 그녀의 배를 어루만지면서, 마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말했다.
“후훗. 애기가 들을까?”
“글쎄, 태교에 좋다고, 좋은 음악 듣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 보면, 이런말도 계속해 주면 들을수 있는거 아닌가? 다만, 기억을 못하겠지만.”
“정말 그럴까?”
“몰라 나도.”
“아가야 아빠 말 잘 들어야 한다.”
그녀도 아직은 전혀 표시가 나지도 않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보자 그럼 결혼식이 3월 15일이니까 2달 반 남았는데, 그러면 10주, 합쳐서 16주정도 되는데, 드레스 입었을때 약간 배 나오지 않을까?”
“음, 약간, 그래도 의사말이 그정도면 표시 안날거래.”

현석은 지수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기쁘긴 하지만, 그녀도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 정말 좋다.
“우리 결혼전에 혼인신고 해도 되는거지?”
그녀가 현석을 보고 물었다.
“왜? 아직 결혼식도 안했는데, 그렇게 빨리 하려구?”
“혹시 다음에, 우리 애기가 어른이 되서, 엄마 아빠, 과속했죠? 하고 물으면 어떡해?”
“에이, 그럴리가 있겠어?”
“그래두. 혹시나.”
“그래, 그럼 하자. 이미 양가의 허락도 받은 상태이니 아무상관 없지.”
“혼인신고는 엄마 아빠 도장 이런거 없어도 되는거야?”
“있긴 해야 할걸. 그리고 내일, 우린 쉬지만 공무원들은 일 하니까 우리 가서 혼인신고 할까?”
“응. 그래. 혼인신고를 하면 확실하게 난 헨리의 여자가 되는거잖아? 난 조금이라도 빨리 헨리의 여자이고 싶어.”
“지금도 엘리는 내 여자 맞아.”

현석은 지수를 다시 꼭 안아 주었다.
“서류상으로도.”
품속에 안긴째 그녀가 한마디를 추가했다.
“알았어. 그러자구. 참 신고가 내일 다 못할 수도 있어, 구청가서 서류 받아서. 양가부모님 도장 날인하고, 증인 2명 도장 날인해야 하거든.”
“그래? 그럼 내일 준비 해서 가능한때 하면 되지 뭐.”
“알았어.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는 임신 사실을 알려 드려야할 것 같아. 둘째 아들의 손주를 기다리다 눈이 빠지셨거든.”
“으응, 그건 언제 어머님 찾아뵙고 말씀드려, 전화로 하는 것 보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리고, 아버님 어머님께 안 알렸지?”
“응. 아직.”
“그래, 그럼 내일저녁은 아버님 어머님 모시고 함께 하자. 이 소식도 전하고.”
“으응. 근데, 나 헨리한테 하는 말 이거 고쳐야 하는데. 이제.”
“왜, 난 편하고 좋은데.”
“애기가 듣잖아?”
현석은 조금 쉽게 생각했는데, 애기가 들으니 안 된단다.
그래 실제로 듣건 듣지 못하건, 상관없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그렇게 마음가짐을 갖는다는것이 중요한 일이다.
참으로 좋은 여자이다.
참으로 좋은 아내가 될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좋은 엄마가 될 것 같다.

* * *

띵똥~
신년 연휴의 마지막 날, 지수와 함께 서재에 앉아서 책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현관 벨이 울렸다.
“누구지? 신년벽두부터?”
“내가 나가 볼께요.”
“아냐, 여기 있어. 내가 나갈께.”
현관에 걸린 비디오폰 화면에 한지혜가 보였다.
“반가워요 제부.”
문을 열자 말자 한지혜가 현석을 보면서 인사를 한다.
“아, 예. 어서 오세요. 어떻게 연락도 없이?”
“연락 안하고 와야 할 것 같아서요.”
한지혜를 뒤따라, 한지원과 두 동서들이 함께 들어왔다.
“언니 어서와.”
“그래, 안녕이다.”
지수가 인사를 했지만, 한지혜는 들어오면서, 지수를 보고 인사는 하는 둥 마는둥 하고, 코트를 벗어서 소파에 대충 던지면서 바로 침실로 향했다.
“야. 야. 야. 이것봐라.”
한지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 이런.
침실에 있는, 대형의 직물에 플로팅 된 사진을 보는것이다.
이 사진은 현석과 그녀가 둘다 누드로 앉아서 먼곳을 응시하는, 몸을 가린 것이 전혀 없어서 젖가슴과 젖꼭지도 선명하게 보이고, 그녀의 수풀도 보이는 모습인데.
그럼 이걸 알려준 사람이 혹시, 장모님, 이연지여사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집에 들어오자 말자 침실부터 찾아가서 말 하는것으로 보아 아마 그런 것 같다.
“남푠들, 거기 정지.”
그녀는 자신의 말을 듣고 침실쪽으로 이동하는 다른 세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남편을 못오게 했다.
“왜?”
박창세가 계속 이동하면서 물었다.
“오지 말라니깐, 이인간이 말은 무지 안들어요.”
한지혜는 침실 문을 닫았다.
“아, 왜? 이유나 좀 알자니깐.”
“처제 누드사진을 보고싶어? 이인간아?”
“뭐?”
정병윤과 박창세가 조금은 놀란것처럼 말하면서 그자리에 섰다.
“언니만 와봐. 와 이거 진짜 대단하다. 정말 멋지고.”

현석에게는 더 급한 것이 있었다.
네사람의 움직임을 보면서 서재로 들어가서 거기 걸려 있는 사진 옆의 줄을 당겨서 말아 올렸다.
서재에는 현석이 지수의 등 뒤에서 지수를 안고, 지수의 꽃잎 부분만을 현석의 손으로 가린채 반쯤 측면으로 서서, 얼굴은 경사지게 정면을 보고 있는 누드사진이 직물에 플로팅되어 걸려있다.
간혹은 두사람이 이 사진을 보다가 두사람이 갑자기 불꽃처럼 타오르기도 하는 매우 유혹적인 모습이다.
이 사진은 혹시 몰라서 줄을 당기면 말려 올라갈 수 있도록 현석이 장치를 달았지만, 침침실 있는 것은, 외부인이 침실까지 올 일은 없으니 그냥 걸어 둔 상태이다.
그런데, 한지혜의 모습을 보니 그걸 보려고 작정하고 온 모습이다.

그러나 현석이 서재의 사진을 감추는 사이에 정병윤과 박창세가 침실 문을 열고 뒤따라 들어갔다.

이 인간들이 정말.
못오게 했으면, 안가야지 왜 가는거야 대체.
공평해 질려면, 두명의 처형의 누드를 봐야 공평해 지는데.
침실에서 환호성과 감탄사가 밖에까지 들려 왔다.
지수가 현석을 보고 약간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현석도 황당했다.

“야, 진짜 멋있다.”
네사람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침실을 나오면서 한지혜가 현석을 바라보고 말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정말 예뻐요. 제부.”
한지원도 약간은 얼굴이 붉어진채 현석에게 말했다.
“아니, 어디서 무슨소릴 들었기에, 새해 벽두부터 집으로 쳐들어 와서는 남의 침실을 뒤져?”
지수가 이제 정신을 차렸는지, 침실로 가서는 문을 닫고 돌아서며 언니들의 뒤에서 소리를 쳤다.
“누구한테 들었겠니? 우리집 식구중에 이 집에 와서 안방에 들어가 본 사람이 누가있어?”
“엄마가 말했단 말이야?”
“그럼, 엄마가 말했지 누구겠어?”
“미쳤어, 미쳤어. 엄만 대체 왜 그런대?”
다른 사람들은 한지혜와 지수의 대화를 흥미 진진하게 보면서 소파에 앉았다.
“엄마랑 앉아서, 우연히 사진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가 그 애들은 너무 예쁘게 사진 찍어서 침실에 커다랗게 걸어 두었더라, 그렇게 엄마가 무심결에 말 했거든, 그래서 어떻게? 하고 물었더니, 안돼, 너희들이 보면 안 되는 사진이야. 그랬는데, 그 말 끝나자 말자 네 언니가 가자고 하면서, 우리까지 끌고 온 거야.”
한지원이 나름 변명을 했다.
“그럼, 엄마는 사진 좀 치우게 미리 전화를 해 줬어야지 세상에.”
“사진 보러 간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면, 엄마한테 이제 다신 안 온다고 했거든.”

“처제, 근데, 정말 멋지긴 해. 우리도 깜짝 놀랐으니까.”
“인간아, 넌 저런 사진도 좀 못찍으면서, 멋있는건 알아가지고.”
한지혜는 박창세의 감탄에 또 구박을 주었다.
“그렇게 찍고싶어? 그럼 찍어줄께 찍어줄께.”
“으이그, 내가 말을 말아야지. 스냅 카메라 사진도 제대로 못찍으면서 저런 사진을 찍겠다고?”
“뭐 아무렇게나 찍으면 되지.”
“제부, 나도 저렇게 사진 좀 찍어줘요.”
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박창세의 말에, 한지혜는 박창세를 구박하다 말고 현석에게로 말머리를 돌렸다.
“이 아줌마가 지금 뭔 소리를 하는거야? 제부앞에서 옷을 홀랑 벗겠단 소리야 지금?”
박창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 그러는 당신은 처제 홀랑 벗은거 사진으로 안 봤어?”
“그거야 당신이 보여준거잖아?”
“내가 언제? 오지 말라고 했잖아?”
“여기까지 데리고 온 사람은 당신이잖아?”
“좋아, 그럼 공평해 질려면, 우리도 제부 앞에서 홀랑 벗어야 공평해 지는거니까 언니, 우리 침실에 가서 홀랑 벗고, 제부보고 와서 보라고 해야 할 것 같아.”
“이 아줌마가 주책도 없이, 그렇게 벗고싶어?”
“그러니까, 오지 말라면 안 와야지 왜 왔어?”

두사람은 늘 저러고 사는가 싶다.
에너지가 넘친다.
그래도 막상 싸움으로 진전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말로만 본다면, 진짜 벗을것도 아니면서 정말 벗을 것처럼 말한다.
서재의 사진을 빨리 말아올리길 다행이지만, 저 왈가닥 한지혜의 눈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정말 올 여름에 누드사진 짝자고 달려드는거 아닐까?
까짓거, 그럼 올 여름에 처형들의 알몸을 한번 봐 볼까?

* * *

현석은 지수와 함께 구청에 가서 혼인 신고를 했다.
지수의 집에서는 반대하지 않았다.
결혼식을 하고 해도 되는데 뭘 그리 서두르느냐고 한마디 한 정도이다.
지수가 빨리 하기를 원한다고 했더니, 이연지 여사는 그렇게 빨리 아버지 호적에서 떠나서 남편호적에 오르고 싶니? 라고 책망하듯 한마디 물었을 뿐이다.
현석의 어머니 또한 당연히 반대하지 않았다.
잘 생각 했단다.
오히려 잘 했단다.
혼인 신고도 이미 경험이 있는 것이어서 좋은것인지 아닌지 참 애매하다.
이런일은 가능하다면 두번 경험할 일은 아니다.
결혼식이야 일가친지를 비롯해서, 두사람을 알고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 결혼해서 부부가 되어요, 라고 알리는 행사이지만, 혼인신고는 신고를 하므로서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것이다.
혼인신고를 하는지 안하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부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연히 했을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 *

새해가 되자 IMF의 여파는 생각보다 거세게 밀려왔다.
기업구조조정 원칙이라는 것이 새해 벽두부터 발표되었다.
무슨 노사정 위원회인가 하는것도 만들어졌다.
그럼, 노사정 위원회를 통해서 구조조정을 열심히 하란소리야 뭐야?

현직 대통령보다 취임도 하지 않은 대통령 당선자의 입김이 더 쎄졌다.
구조조정을 이야기하는 곳곳에 대통령 당선자가 등장했다.
그렇지만, 어떤면에서는 사또보다 이방이 더 무서운 법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또보다 이방의 움직임이 더 중요하지만, 아무도, 그 어느 누구도 그런 것은 알려주지 않는다.
대통령 당선자는 앞으로 5년간 나라를 통치할 새로운 권력자이고, IMF 라는 특수한 상황을 맞딱드린 상태이다.
IMF 라는것이 나라를 망친것이다 라는 분위기가 있어서, 대통령 당선자가 경제의 순환구조나 원칙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더라도, 누가 불평 한 번 할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있다.

새 대통령 당선자에게 한국의 대부분의 재벌들은 과거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여태까지의 정서가 그랬으니.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다른 입장이 되었다.
바로 이런 것이 상전이 벽해가 되었다고 하는 말이 바로 이런때 쓰는 말일것이다.
현석이 기억하는 한에서 대통령 당선자는 경제에 관한한 문외한이다.
그렇지만 이 최고의 권력자를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는 없다.
대 그룹들의 전전 긍긍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눈에 뜨인다.

현대그룹이 구조조정계획을 발표했다.
1월의 그 짧은 한달이 가기전에 수 많은 기업들이 부도가 나고 IMF 그늘 아래로 사라졌다.
대기업들은 신문에나고 방송에라도 잠시 나타나지만, 중소기업들은 소리소문도 없이 도산하고 날라간다.
부도가 난 대기업과 거래를 하던 중소기업은 거의 다 함께 도산했다고 보면 되겠지만, 대기업의 도산 이야기는 해도, 그들과 함께 일했던 중소기업의 이야기는 지방신문의 귀퉁이에도 실리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가슴을 부여잡고, 오열하면서 목구멍 너머로 울음을 삼킬 뿐이다.
그리고, 그 중소기업에 몸 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사라진다.
1월 말에는 재경원에서 종금사 10개사를 폐쇠한다고 발표했다.
아마, 그곳에 돈을 맡긴 수많은 서민들이 땅을 치고,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을 것이다.
그 와중에 감사원은 외환위기를 감사 한단다.
누군가 희생자는 필요하겠지.
이러다가는 대기업, 아니 대 그룹들도 살아남기 힘들 것 같다.
정부에서 하는 모양을 보니 마구 칼을 휘두를 모양이다.

개인파산도 부기기수이다.
은행마다 근저당을 설정하고, 돈을 빌려쓴 개인들이 수없이 파산하고 있는 모양이다.
회사가 부도가 나고, 그 부도의 여파로 실직을 하고, 회사가 파산을 해서 갈곳이 없어진 샐러리맨이 거리로 내 몰리고 있었다.
그들이 융자를 받아서 샀던, 경매에 부쳐진 그들의 집은 거의 반토막이 나버리고, 헐값에 팔려서 대금은 은행으로 들어갔다.
돈 한푼 만져보지 못하고 길거리로 나 앉는 상황이다.
자영업을 하던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대기업에 근무하던 사람들은 밀린 월급이나 퇴직금을 받고 퇴직을 했고, 대기업에서 구조조정을 당한 사람들은 몇 년치 월급에 해당하는 위로금을 추가로 받고 퇴직을 했다.
그러나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밀린 월급과 퇴직금까지도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 몰렸다.

대한민국에 중소기업에 근무하는사람이 대체 얼마인데.
그들의 눈물은 누가 닦아줄 것인가?
대기업 하나가 무너지면, 그 대기업에 목을 매고 있던 수십개의 중소기업이 함께 무너지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그리고, 그 많은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도 없는 깜깜한 나락으로 떨어지는것을 알까?
온 국민이 IMF에 고통으로 신음하면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누가 그들을 저렇게 만들었는가?
저들은 모두 다 가해자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피해자가 되어야 했다.

현석은 신문을 보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세상에서 가장 암울하고 힘든 것은 희망이 없다는것이다.
희망.
희망이 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헤쳐나갈 힘을 얻는다.
그러나 희망이 사라진채 거리로 내 몰린 저 많은 사람들은 대체 어찌하란 말인가?
누가 저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아 간 것인가?

그러나, 현석이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현실은, 만일 현석이 있는 회사가 구조조정을 한다면, 현석도 그곳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것이 사람이 아닌가?
쓴 웃음이 난다.
신문을 보면서 조금전까지 분노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만일 회사가 구조조정을 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거지? 라고 질문을 하게 되자 많은 것들이 자신의 문제로 돌아온다.
그런일은 없어야 할텐데.

* * *

지난해 말에 회사에서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오던 것이 조용히 잠수를 탓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대신 올해 급여 인상은 없단다.
동결이란다.
동결이면 어때, 구조조정 안하는것만 해도 감지덕지 해야할 상황인데.
구조조정 이야기가 소리소문 없이 잠수를 탓지만, 물 위로 다시 고개를 내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구조조정 이야기가 사라져서 다행이야.”
“그래요. 정말 다행이에요. 그래도 난 2월 말쯤에 사직할래요.”

지수는 정말 새해에 청평에서, 임신소식을 알리면서 말을 고쳐야 한다고 했는데, 처음에 조금 어색해 하더니, 이제는 존댓말로 완전히 돌아섰다.
그래서 현석도 같이 존대를 했더니, 그건 정말 어색하다면서 못하게 했다.
전처럼 꼭같이 말 하는 것이 자연스럽단다.
하긴 어색하긴 하지. 현석도 무지 어색했으니.
“꼭 그래야겠어?”
“크게 상관은 없지만, 결혼 준비도 해야하고, 혹시 또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오면, 그나마 걱정 없는, 나 같은 사람이라도 없으면 좀 편하지 않을까 해서요.”
“그래, 뜻이 정 그렇다면, 할수 없지.”
“그리고, 최대리님이 내가 차 몰고 나가는걸 봐 버렸어요.”
“으잉? 어떻게?”
“엊그제 외출할 일이 있어서, 아가도 걱정되고 해서 차를 가지고 나갔는데, 주차장에서 도로에 집입하다가 최대리님을 딱 마주쳐 버렸어요.
오늘 물어 보던데요.
그 주차장에가서 다 확인 했는가 봐요.”

“그놈도 참.”
“아까 회의실에서, 꼬치꼬치 캐 묻더라구요. 바른대로 말 하라고.”
“그래서?”
“어느정도까지 이야기를 해 줬어요.”
“별 말 안해?”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느냐면서, 저한테 배신감 느낀대요. 자기가 부서원들에게 이야기 하기전에, 공개하래요. 안그럼 자기가 말 한다고.”
“거참. 할 수 없네.”
“그래서, 내가 말하는 것 보다, 헨리가 부서 회식 형태로 날자 좀 잡아줘 봐요. 부서 직원들에게 한턱 내는것으로 할테니까.”
“그래 그렇게 하자. 그리고 내면 내가 내야지.”
“아니에요. 내가 속인 것이 되는데, 내가 내야죠. 그쵸?”
“알았어.”
“그리고, 사직하는거 그때 직원들에게도 이야기 할께요. 혹시 2월 말 이전에 미리 좀 그만 둘 수도 았어요.”
“왜?”
“3월 초에 아빠회사 주총도 있지만, 다른 회사 주총에도 가야 하는데, 이것저것 좀 알아봐야 할것도 있고 해서요.”
하긴, 지수는 꽤 여러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주총시즌에는 꽤 바쁜 편이다.

“거긴 지난해 실적이 어때?”
“전년과 비슷해요. 그래서 배당도 좀 나올 것 같아요.”
“다른데는 다들 힘든다고 하는데, 아버님 회사는 그 상황에서도 좋았는 모양이네.”
“으응, 그런가 봐요. 그리고 올해는 더 좋아 질 것 같대요.”
“왜?”
“PCS써비스가 궤도에 오르면서, 그것과 관련된 일이 너무나 늘어나서 외주공장이 24시간 돌아가나 봐요.”
“그래?”
“PCS만 늘어난게 아니라 기존 셀룰러폰쪽도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 투자를 많이 늘리나 봐요.”
하긴 016, 018, 019로 대변되는 PCS 폰은 없어서 못살지경으로 가입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거리로 내몰린 개인들이 집에 있을 수 없고, 그로 인한 연락 수단이 없어져 버리자, 밖에 나가 있더라도 연락이 될 수 있는 통신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이야기 이지만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인 것 같다.

“아참, 나도 주총 참석통지 왔던데.”
“주식 삿어요?”
“응. 지난 여름에 엘리가 6개 회사인가 말해줬잖아? 그중에 하날 샀지. 근데 주가가 얼마인지도 몰라, 신경을 안써서.”
“그중 어느회사인데요?”
“S회사.”
“거기, 년말에 비해도 굉장히 많이 올랐는데. 여름에 샀으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올랐을텐데. 몇주나 갖구 있어요?”
“19만 4천주.”
“우와. 진짜요?”
지수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응.”
“굉장히 많네요?”
“응, 엘리도 잘 아는 이야기 이지만, 지난해 이혼하고, 재산분할이 필요해서, 집을 팔아서 분할을 했잖아?”
“네, 그랬다 그랬죠.”
“재산분할하고 내 몫으로 남은 돈을 몽땅 그 회사 주식을 샀거든.”
“그걸 다요? 한 종목에 올인?”
“응.”
“위험한 투자를 하긴 했는데, 그래도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잘 한거같아요.”
“잘 몰랐으니까 그냥 그것만 산거지 뭐.”
“그런데, 보유주식이 그정도면 주요주주인데 2 프로 넘죠?”
“총 주식수를 모르니까, 보유율은 잘 모르겠구, 주식수는 맞아.”
“지금 거기 주가가 얼만지 알아요?”
“아니. 모르는데.”

신경을 좀 못썼다.
그러니 얼마인지 당연히 모른다.
“세상에 자기가 투자한 주식의 주가도 몰라요?”
“잘 모르니까 신경을 안썼. 난 엘리의 말만 듣고 산거니까.”
“그래도 이제 신경좀 쓰세요.”
“그래, 엘리가 그러라면 그래야지.”
“지금 거기, 여름기준으로 보면, 정말 어마무지하게 올랐어요. 이제는 간혹 주가 모니터링을 좀 하세요.”
“다른데는 대부분 다 떨어지는데 오르고 있다고?”
현석은 정말 궁금했다.
왜 오르고 있을까?
그리고 어마무지 하다니? 어느 정도일까?
“그렇다니까요. 일단 내년 중반기까지는 계속 오르지 않을까 싶어요.”
“왜?”
“Y2K 문제가 우리회사에서는 별 상관 없지만, 그래도 우리도 대응준비 하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아마도 S사의 경우에는 이게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도 그 주식이 7만원이 넘으면 5만주 정도는 팔고, 나머진 가지고 있어보세요.”
“헛, 뭐 7만원? 그렇게나 올랐어?”
깜짝 놀랐다.

이게 대체 뭔 소리야?
하긴 그녀는 주식에 관한한 고수다.
작은 모티브 하나도 놓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아직은 아니에요. 그런데 조금 더 있으면, 그 정도까진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
“얼마에 삿기에 그래요?”
“내가 1,100원쯤 할때 삿을걸.”
“우와. 진짜 대단해요. 그때 난, 신경을 못써서 놓치고 지나갔다가 7,000원 무렵에 3만주를 샀는데.”
그녀도 입을 쩍 벌린다.

그런데, 이게 정말 뭐야?
7만원에 5만주면 대체 돈이 얼마야?
자그마치 35억이다.
그래도, 그게 전체 보유주식의 25퍼센터 밖에 안된다.
그5만주를 판다고 해도 14만4천주가 남는다.
만일에 그걸 다 7만원에 팔면 135억이나 된다.
이건 완전 미친거 아냐?
아니, 아직 거기까지 오른건 아니라고 했다.
몸이 후덜후덜 떨린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내일 시간을 내서 객장에 한번 나가 봐야겠다.
“엘리 나 지금, 한번 꼬집어 줘봐, 지금 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세상에, 암튼, Y2K가 호재일 수는 있지만, 막상 뚜껑을 열면 재미가 없어지니까, 아무리 계속 오르더라도 내년 가을이 가을이 가기전에 다 팔아야 해요.”
"그래, 알았어.”
“그거 다 팔면, 헨리도 부자 되는거네요.”
“엘리 말대로라면, 그럴거야 아마. 이건 모두 엘리 덕이야 모두다."
"내가 뭘요?"
"엘리가 있었으니까, 그 주식도 사보라 했던 것이 기억나서 샀으니까 다 엘리 덕이지 역시 엘리는 나한테 보물이야. 그지?"
"고마워요 헨리. 난 너무 행복해. 그렇게 말해 주어서."
"진짜야 엘리. 내가 월급 모아서 가진 건 집 한 채였고, 그 반이 내가 가진 전부였는데 나머진 모두 엘리 때문에 만들어 진거야. 난 정말 엘리를 만나고 난 뒤로 모든일이 다 잘되. 그러니 모든 게 다 엘리 덕이지."
"네. 고마워요."

다음날 정말 주가를 확인하고 현석은 정말 놀랐다.
정말 어마어마 하게 올라있었다.
현석이 매입하고 일주일쯤 지난 뒤부터 지금까지 계속 오르기만 했다.
아주 여러번 연속 상한가를 치기도 했다.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
그리고 오늘도 어제보다 높은 가격으로 매수물량이 집중적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그럼 지수가 말 한대로 하자.
급하지 않으니 조금 더 두고 보자고 마음을 정했다.

(계속)

62부에선가 한번 이야기 했지만, 당시에는 홈트레이딩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홈트레이딩이 시작된 것은 1999년부터 였습니다.
(1997년부터 일부 증권사에서 시행되었다고, 어느 독자분이 62부에서 댓글로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
그 이전까지는 객장에 나가거나, 증권사 지점에 전화를 해서 얼마에 사 달라거나 팔아달라고 해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IMF 전부터 주식이 인기를 끌기 시작해서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이 주식시장으로 대거 몰려 들었었고, 홈트레이딩이 시작되고부터는 개미 투자자들이 정말 개미떼처럼 증권시장으로 몰려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IMF 전, 후 몇년동안이 격동의 시기였던 만큼, 주식시장에서는 실제로 저런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좀 많이 있었습니다.

동아일보 1999년 12월 23일자 기사를 보면, SK텔레콤이 1990년에 39,600원하던 주식이
1998년 12월 22일 기준 3,700,000원으로 10년도 안된 기간동안 12,178% 상승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121배가 오른셈이지만, 집중적으로 오른시기는 IMF 전후로 불과 3~4년에 지나지 않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같은 기사에서 데이콤은 1993년 2월1일 25,000원이던 주가가 1999년 12월 21일 기준 382,000원으로 1,787% 상승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SK텔레콤은 주가가 너무 높자, 그로부터 얼마뒤에 액면 분할을 했지요.
사실인지 유언비어인지는 몰라도, 당시 우리사주를 가지고 있는 SKT직원들은 평사원들까지 갑부라는 말이 돌기도 했고, 한주만 팔면 냉장고와 TV를 사고, 밤새도록 술마시고 놀 수 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실제 그랬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석이 산 주식의 모델인 S사는 1980년에 설립하여 1989년에 상장한 기업으로 2005년에 법정관리 되면서 상장이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실존해 있는 회사이며, 지금은 비 상장회사로 여전히 좋은 회사입니다.
작가의 지인이 이 회사 주식으로 이 작품의 배경시점과 비슷한 시점에 투자해서 사실상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습니다.
부러우냐구요?
그럼요. 안 부러우면 사람인가요? 당연히 부럽죠 ^^;
------- 뜨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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