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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그리고 사랑 - 62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8:20 1,062회 0건

이사를 했다.
새 주인은 집을 수리해서 이사올 것이라고 했다.
잔금을 받은 이상 비워놓건, 내년에 이사를 오건 현석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수리해 오건 말건 무슨 상관이랴.
혼자 살 때에야 갖추고 살 만한 게 별로 필요 없어서 집안에 있는 대부분의 가재도구들을 정리 했다.
장롱 한세트, 설합장 하나, 책걸상 한세트와 컴퓨터, 그리고 책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팔거나 버렸다.
취사를 위한 약간의 도구들은 혹시나 친구들이 손님으로 오거나 어머니가 오실경우 등을 대비해서 일부를 남기긴 했지만, 그래도 많이 정리를 했다.
그리고 하영과의 기억이 될 만한 것들도 모두 없앴다.
텔레비젼도 팔았다. 어차피 텔레비젼 잘 안보니까, 있으면 짐이다.
이제 완전하게 정리는 끝난 셈이다.
정리를 하고나니 너무 단촐한가 싶기는 하지만 뭐 상관 없다.

지수에게도 이사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이사를 했다.
금요일이 광복절, 그리고 일하는 토요일과 일요일로 이어지는 샌드위치 휴일이었기에 현석은 광복절에 지수와 하루를 보내고, 일요일은 고향을 좀 다녀와야 할 일이 있다고 둘러대고, 일요일에 이사를 했다.
지수에게 알리고 이사 후에 저녁시간을 함께 지낼까 생각을 하며 많이 망설였지만, 참기로 했다.
이사 한다는 사실을 꼭 감추어야 할 일은 없었지만, 그녀가 따로나와 살기위해 별도로 집을 마련한다고 하였기에, 현석이 이사를 가는 그 작은 집을 지수에게 알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잔금을 받은 현석은 하영의 통장으로 집값의 반을 송금했다.
하영이 집값의 반을 부쳐주면 자기를 용서 안하는것으로 생각하겠다는 말까지 했었지만, 이건 용서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나쁜놈이냐 아니냐의 문제라 생각되었고, 여자가 번 돈을 낼름하는 형편 없는 놈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실제 하영이 부담한 주택자금 상환이 반이나 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네가 부담한게 30프로 정도이니 그만큼만 돌려줄께 하는건 더 우습다.
현석이 알고 있는 계좌는, 하영이 계좌를 없애지는 않았던지 정상적으로 송금이 이루어졌다.
하영이 직장생활을 했고, 대출을 받아서 산 집은 하영과 두 사람이 힘을 합쳐서 대출금을 상환했기에 그녀가 떠나면서 이별의 편지에 뭐라고 했건, 그것은 상관 없이 절반은 그녀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집값은, 현석의 연봉이 작지는 않는데도 현석의 연봉을 십몇년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될만큼의 큰 돈인데, 그것의 반이면 결코 작지 않다.
집값이 예상 외로 많이 오른 덕분에 그렇게 된 모양이다.
어찌 되었건 작은 월셋방으로 이사를 했으니 돈이 너무 많이 남았다.

박일한 사장의 말처럼 정말 유동성 위기가 오면, 현금보유가 최선책이라는 말이 생각이나서 통장에 얌전히 넣어둘까 생각을 했지만, 통장에 그냥 넣어 두느니 투자라도 해 두자는 심정으로 증권회사에 가서 계좌를 개설 했다.
그리고는 조금의 여유만 남기고 모든 돈을 넣어 버렸다.
적지 않은 월급 꼬박꼬박 잘 나오고, 혼자이니 지수와의 데이트에 들어가는 정도와 새 집의 월세정도를 제외하면 별로 돈이 들어갈 일도 없으니, 이제 이 돈은 없는 돈이다 라고 생각했다.
현석은 주식을 전혀 모르지만, 청평에서 지수가 이야기 하던 중에 돈이 여유가 있으면, S회사의 주식을 사라고 했던 것을 기억에 담아두고 있었다.
물론 지수가 이야기한 6개 회사의 상황을 다 보긴 했지만, 사실장 S회사의 주식가격이 가장 낮았다.
현석의 계좌를 관리하는 주무 담당자가 배정이 되었다.
“S회사 주식으로 모두 사 주세요.”
“네? 손님. 그 회사 조금 위험한데요.”
담당인 강대리는 현석의 주문에 놀란 눈으로 말했다.
“상관 없어요.”
“음, 그래도 분산투자 하는 것이 위험을 줄일수 있을텐데요.”
현석의 상관 없다는 말에도 강대리는 걱정이 되는듯 현석에게 만류의 의사를 보였지만, 지수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냥, 사 주세요.”
“알겠습니다. 체결이 완료되면 여기 기록하신 연락처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세번을 같은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강대리는 그러겠다는 대답을 했다.
망할.
돈을 잃으면 내돈잃지 제돈 잃나?
지는 내가 따던지 잃던지 상관없이 수수료는 다 챙길거면서.
“네, 그래 주세요. 그리구요. 현재 시가를 기준으로 매입하면 대략 몇주나 될 수 있을 것 같은가요?”
“음, 증권통장에 있는 돈으로 모두 매입하면, 물론 주가가 지속적으로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조금 차이는 있습니다만, 대략 19만주 전후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주가가 싸기도 하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계속된 부도설의 여파인듯 하다.
한 주에 천 원 남짓 하기에, 체결이 완료되면 주식 보유량이 제법 된다.

객장으로 나가 보았다.
에어컨 가동으로 시원한 객장에는 한쪽벽면 전체가 전광판이다.
증권사와 거래를 하면서, 증권사 본사의 객장을 자주 방문했던 탓에 이런 분위기는 무척이나 익숙하다.
그리고 안락한 소파 수십개가 줄지어 전광판을 향해 놓여있고, 많은 사람들이 전광판을 쳐다보고 있거나, 주위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수 아버지의 회사인 H사 주식은 주가가 대단히 높지만 현석이 매입을 요구한 S회사는 정말 가격이 낮은편이다.

현석은 지수가 말했던 나머지 회사들도 주식 시세표를 보았다.
그러나 시세표만으로는 어느정도 수준인지 알 수가 없다.
객장 한쪽에 비치된 주가조회용 단말기 앞에 서서 6개사 모두와 지수 아버지 회사인 H사를 조회해 보았다.
그나마 이 객장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컴맹인지, 이 조회단말기를 쓰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현석이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이런 조회시스템을 개인이 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증권사에서는 내부적으로 개발이 다되어 있긴해도 개인용으로는 여러가지 이유로 아직은 공급하지 못한다고 했다.
현석이 생각하기에 아무래도 통신트래픽으로 인한 문제로 생각이 들긴하지만, 개인들이야 다이얼업 모뎀을 사용하기 때문에 약간의 무리가 있어도 전용선을 사용중인 회사에서는 그다지 문제가 없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하긴, 비싼 사용료를 지불하는 전용선을 직원들이 이런용도로 사용한다면 회사가 그냥두지 않을것이다.
증권사 본사 직원의 말로는 통신이 더욱 발달하면, 개인이 집에서 개인용 컴퓨터로 증권을 매도, 매수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지만, 전화선로를 이용하는 다이얼업 모뎀으로는 아직은 어렵다고 했었다.
하긴 아직 통신은 수준이 멀었지만, 컴퓨터는 개인용 시대로 접어들고 있으니 틀린말은 아닐 것 같다.

* * *

띠리링~
객장을 막 나서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김현석입니다.”
‘나, 하영이야.’
전처인 최하영이다.
“그래, 잘 지내지?”
‘왜 돈 보냈어? 보내지 말라니까.’
현석은 할 말이 없었다.
전화 통화가 되자 말자 돈 이야기부터 하다니.
하긴 두사람사이에 그런 것 말고는 더 정리할건 없는 상태이다.
현석이 멍하니 있는사이에 그녀가 게속 말했다.
‘그리고 또 뭘 이리 많이 보냈어? 다신 연락 안하려고 했는데, 돈을 보내서 연락한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밝아보였다.
목소리만으로 본다면, 전에 현석과 있을때보다 나아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때는 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였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헤어진 것이 다행인가?
현석으로서는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는데, 얼굴을 마주대하고 느끼는 것이 아니긴 하지만, 그녀의 말투에서 묻어나는 느낌은 좋은 느낌이다.

“어차피 그거, 절반은 당신 몫이야. 그리고 집값이 많이 올라서 그런거니까, 당신도 그걸로 새출발 해.”
‘그래도 이건 안돼.’
안된다고 하는 어투가 크게 책망하는 어투가 아닌 것은 다행이다 싶다.
“안되긴, 뭐가?”
‘…’
그녀가 잠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용서하고 안하고 그런이야기 하지 말고, 우리 서로 다 용서하고 용서된거 알아.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잘 살아.”
‘아니, 물론 집값이 올라서 그렇다고 하긴 했지만, 내가 당신에게 지은죄도 많아서 집 명의를 단독명의로 당신앞으로 다 돌려놓은건데. 이렇게 주면 내가 마음에 부담이 너무 많아. 그래서 조금전에 일부를 돌려 보냈으니까 그렇게 알아.’
“무슨소리야 대체?”
‘내가 분명히 안받는다고 했는데도 당신이 그렇게 억지로 보낸거니까, 조금만 받을께. 처음엔 마음만 받을려구 했었는데, 그래도 다 돌려보내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일부만 돌려보낸거야. 그러니까 다시 또 주고받고 하지 말라고 연락한거야.’
“나 참.”
‘그리고, 나 곧 결혼해. 어린 애가 있는 사람이라서 오히려 나도 좋고, 그사람도 좋은데, 그사람 꽤 잘살아. 그러니까 난 이제 별로 돈이 필요없어.’

결혼?
하긴 마음이 떠나 있던것부터 따지면 꽤 시간이 흘렀다.
서류정리야 올 초였지만, 마음은 몇 년전에 떠나있었고, 이혼을 합의한것도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러니 결혼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무리도 아니다.
현석도 결혼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뿐 지수가 곁에 있지 않은가?
‘이번이 마지막이니, 끝으로 내 의사도 좀 존중해 줘.’
“휴~ 할수 없네. 알았어. 결혼은 언제쯤에 해?”
‘왜 올려고? 그런건 우리 피하는게 좋잖아?’
“그래, 가는건 모양이 안좋지 그냥 궁금할 뿐이야.”
‘궁금해 하지말고, 나도 궁금해 하지 않을테니까. 당신도 언른 재혼해.’
“그래, 결혼 축하해.”
‘고마워.’

전화를 끊고 하늘을 한번 쳐다보았다.
하늘에는 하영의 얼굴 대신 지수가 환하게 웃고있었다.
하영이 현석보다 더 통이 큰가 싶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현석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는데, 현석은 그녀의 전화번호도 아는게 없다.
그녀의 친정에 전화해 보면 알수는 있겠지만, 헤어진 전처의 전화번호는 물어서 뭐하게?
그리고, 증권계좌를 개설하기전에 돈을 인출할때도 없었으니 방금 보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도대체 얼마나 돌려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은행에 가서 다시 통장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차피 은행이야 종종 가는것이니 조만간 확인이 되겠지.

* * *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현석이 큰소리로 말하고 회사로 들어서자 대부분의 직원들이 출근해 있었다.
어제 거래처와 크게 술을 마셔서 무척이나 피곤했다.
아직도 몸은 술기운이 풀리지 않고 느낌은 몽롱하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따르르릉
책상 위의 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마침 직원들은 담배를 한대씩 하러 가느라 사무실을 비우고 없었다.
봄까지만해도 사무실에서 누구나 담배를 피웠었지만, 박일한 사장의 엄명으로 근무시간 중의 실내 흡연이 금지된 덕분이다.
그 조치에 남자 직원들은 울상을 하고 불평불만을 터뜨렸지만, 여직원들은 정말 좋아했었다.
퇴근시간 후이거나 휴일의 흡연까지 금하지는 않았지만, 그정도 만으로도 사무실의 공기는 참으로 좋아졌다.
"네 김현석입니다."
‘나, 엘리.’
수화기 저쪽에서 지수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현석은 눈을 들어 두칸 앞의 지수를 보았다.
지수의 책상 주위에는 마침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있었다.
‘어제 술 마셨어?’
"응."
목소리를 낮추었다.
‘여자도 있었어?’
"아니."
이런 때, 설사 여자가 서빙하는 술자리였다고 하더라도 여자가 있었다고 말하는 건 바보이다.
그렇지만 지수가 그렇게 질문을 하자 묘한 마음이 들었다.
‘남자들끼리 만?’
"응."
‘진짜지?’
“그럼, 당연하지.”
‘해장국은 먹었어?’
“응, 대략 때웠어.”
‘그래도, 점심때 추어탕 사 드릴 께.’
다들 해장국으로 북어국이나 콩나물 국밥 같은 것을 좋아하지만, 현석은 추어탕을 더 좋아한다.
그것이 오히려 더 빨리 몸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현석이 술마신 뒷날 점심은 주로 추어탕을 먹으러 가는 것을 현석의 부서 직원들은 다 알고 있다.
"그래, 외출했다가 그 시간에 들어오면.."
‘가능하면 들어와요, 아니면 내가 나가도 되고.’
"응 알았어."
그녀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현석은 전화기를 든 채로 아무 말이나 얼마동안 계속하다가 내려놓았다.
언젠가부터 지수가 이렇게 좀 챙기기 시작했다.
이런 것을 아름다운 구속이라고 해야하나 싶다.
마치 현석의 옆에 있어야 할 여자는 이제는 자기 자신만이어야 한다는 의미를 두고 있었지만, 압박감이 그리 심하지 않기도 하고, 그리 싫지도 않다.
내 여자라 생각하니, 내 남자라 생각한다면, 당연히 주장할 권리가 아닐까 싶긴 하다.

오전 까지는 정신이 멍한 상태로 지나갔다.
접대를 안하거나 안 받을 수는 없지만, 너무 많이 마신 뒷날의 이 멍한 느낌과 울렁거리는 속은 정말 좋지 않다.
오전에 한 약속을 뒤로 미루고 일 하는 척 하며 열한시쯤 되어서 밖으로 나갔다.
대중 사우나에서 몸을 뜨거운 물 속에 푹 담그고 땀을 빼자 정상적으로 돌아 오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는 것을 보고 지수에게 전화를 해서 나오라고 했다.
그녀는 현석이 오전의 외출을 취소한 것을 알고 있었다.
회사로부터 한 블록 떨어진 사거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사우나 갔었나봐. 얼굴이 뽀얗네.”
"응."
추어탕을 시켜 놓고 지수가 질문한 것이다.
"술 많이 마셨어?"
"응. 얼마나 마셨는지 모르겠어, 거래처 접대라는건 참 사람을 힘들게 만들어.”
"술 많이 드시지 마요."
그녀가 진정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다.
"그래. 엘리가 마시지 말라면 그래야지."
"피. 말로만 맨날 그래."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게, 요령껏 좀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지 뭐야.”
“아무튼, 오늘 나랑 갈데 있는데.”
“어딜?”
“집.”

지난주 금요일에 현석에게, 주말에 이사 할 것이라고 했다.
가서 이사를 도와줄까냐고 물었을 때, 몸만 가는 이사에 옷을 제외한 대부분은 새로 구입하는 것이라 와서 도와줄 것이 없다고 했고, 또 가족들이 올거라서 아직 인사도 하지 않은 상태라서 좀 애매하니 오지 말라고 했었다.
“그래, 언제 초대하나 했었지. 나 무지 기다렸는데.”
“그래도 물어보지두 않구.”
이사하고 4일이나 지났는데 물어보지 않았다는 말이다.
"음. 서운했어?"
"그럼, 이젠, 나 삐져야지."
"미안, 미안, 난 집들이 초대해 주길 기다렸지.”
현석은 사실 물어 볼까 하다가 몇일이 그냥 가버리긴 했다.
“그래두.”
“미안, 오늘 가면 돼?”
“응.”
“음, 집들이 선물 뭐 해줄까?”
“집에 가서 말 해줄께.”
“그러면 너무 늦지. 가기전에 준비해 가야 하는데.”
“그냥 오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지 뭐.”
그녀는 현석에게 말 하고는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래도 그냥가면 서운하지. 그래 뭐 해줄까 말해봐.”
“진짜라니까. 헨리가 와 주기만하면 가장 큰 집들이 선물인데.”
“알았어. 그럼 내 몸뚱이 포장해서 우체국 가서 소포로 부치고 올께, 여기서 잠시 기다려.”
“후훗. 부치고 어떻게 오려고?”
현석이 우스개소리처럼 말하자 그녀가 환하게 웃으면서 되 물었다.
“일단, 나 올때까지 엘리는 망부석이 되어야지.”
“아. 싫어, 부치는것두 싫구, 망부석두 싫어. 그러니까 부치러 가지마.”
지수는 현석의 말 장난에 같이 장단을 맞추며 대답했다.
“그럴까? 망부석이 싫다면 할 수 없네.”
“그리고, 나 이제 차 가지고 다니는데, 내차로 같이 가도 돼?”
“그래? 주차장에서 차 못봤는데?”
“우리회사 주차장에 안세우고, 우리회사 뒷쪽 빌딩 주차장에 양해를 구하고, 거기에 월정 유료주차로 끊었어.”
하긴, 오히려 그것이 좋을수도 있을 것 같다.
“왜, 그냥 우리 주차장으로 끌고 들어오지. 다들 놀라서 뒤로 넘어지게.”
“진짜 놀라서 뒤로 넘어지면 어떡해? 거기서도 주차관리실 아저씨가 놀래서 넘어질뻔 했지만.”
하긴 거기야 주차관리원만 놀라는것으로 끝나겠지만, 회사 주차장에 세우면 놀라서 넘어질 사람이 꽤 많을것이다.

차에서 내리자 말자 그녀는 팔짱을 끼었다.
빌라라고 말은 했었지만, 지수가 차를 몰고 온 곳은 서래마을 빌라촌이다.
부촌으로 소문 난 곳이다.
여기도 반포였구나.

집안은 무척이나 넓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 말자 보이는 커다란 거실은 가운데 커다란 응접세트가 놓이고도 주변이 충분한 공간이 있을만큼 넓었다.
"이야 집 좋은데?"
현석의 집은 여기에 비하면 거적데기 수준이다.
그정도는 아닌가?
그럼 텐트 수준인가?
"..."
그녀는 말없이 윗도리를 받아서 옷장 속에 가져다 걸기 위해 방으로 들어 갔다.

현석이 그녀를 따라 그 방으로 들어가니 방 한가운데 커다란 원형 침대가 놓여있다.
침대머리는 마치 소파의 등받이처럼 침대를 반쯤 둘러서 솟아 있는 것이 현석이 예전에 일찌기 본 적이 없는 모습이다.
침대 옆으로는 안락한 소파와 티 테이블이 별도로 자리하고 있음에도 공간은 충분할 만큼 여유가 있다.
그리고 한쪽 벽면으로는 전체가 옷장으로 되어 있다.
“이방이 큰방이면서 침실이야.”
지수가 옷장을 열고 옷을 걸면서 하는 말이다.
“방이 꽤 크네.”
“응, 그리고 여기, 드레스룸하고, 욕실.”
그 방에는 별도의 욕실이 있고, 그 안에는 드레스룸과 욕실로 나누어져 있다.
“방이 몇 개인데?”
“으응. 네개.”
“혼자 살면서 이렇게 큰 집을 얻었어?”
“조금 작은걸 구하려 했는데, 이것보다 작은집은 너무 작아서 불편할 것 같아서.”
“몇평인데 여기가?”
“실평수로 50평쯤 될거야”

침실의 크기만, 현석이 새로 이사한 집보다 큰 것 같다.
실평수로 50평이면 분양평수로는 대체 몇평이나 된다는거야?
자꾸 물어보기가 그래서 분양평수를 물어보지는 않았다.
다른 한 방에는 커다란 책상 위에 컴퓨터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고, 편안해 보이는 의자도 두 개다.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간이 의자가 테이블 아래에 놓여있다.
그리고 장식장과 침대만 같추고 있는방 하나와 카메라와 기타 기자재들이 있는 방이 각각 하나씩이니 모두 합쳐 방이 4개나 된다.
침실에 있는 화장실은 밖에서만 보았지만, 바깥의 화장실을 둘러보니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는 것 같다.
침실쪽 화장실은 부부용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바깥쪽보다 더 좋겠지 싶다.
부엌도 크고, 거실의 크기는 정말 크다.
그곳에 오디오세트가 잘 갖추어져 있고, 거실의 밖에 아래에서 위까지 붙은듯 보이는 통유리로 베란다가 나 있고, 거실 크기의 창으로는 아래가 다 내려다 보인다.
집이 넓어서 그런지 천정도 높아서 시원시원하다.
“아까 그방은 혹시 모를 손님을 위한 방이구, 이방에 암실을 꾸밀려고 해.”
현석이 둘러보는 뒤를 따라온 지수가 설명을 했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 두대가 놓인 방은 일종의 서재인 셈인가 보다.
“그럼 침실하고, 여기하고 화장실이 두곳이네?”
“응. 침실은 안봤지?”
“안봤지.”

현석이 다시 침실이 있는 방으로 와서 욕실로 들어가는 문을 열자, 넓은 공간에 양쪽으로 옷장이 있다.
옷을 갈아입기 편하도록 넓게 만들어졌다.
침실에도 한쪽 벽면은 모두 옷장이었는데?
이건 뭐가 다른거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드레스룸을 둘러보자 드레스룸의 끝에 반투명 유리가 보인다.
그 곳을 열자 욕실이다.
욕실에는 역시 크다란 욕조와 샤워부스가 따로 있기도 했지만, 샤워 장에 있어야 할 갖가지 시설들이 고루고루 갖추어져 있다.
청평의 별장에서 본 욕실용 침대가 하나 있다.
얘가 이걸 여기도 들여 놨네.
그러고 보니 아까 거실에서 밖으로 볼 때 베란다에 썬텐의자가 2개인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썬텐의자에는 누웠을 때 폭신하고 안락함을 주기위한 침대형 튜브가 얹혀 있기는 했었지만, 분명 썬텐의자였던 것 같았다.

나오면서 드레스룸의 옷장문들을 열어보니, 아하, 이곳은 주로 속옷위주로 있다.
남녀의 가운으로 보이는 것이 몇 개 걸려있고, 속옷도 층층이 놓여있는데, 남자 속옷과 여자 속옷이 모두 다 있는 것 같다.
깨끗하게 다림질이 되어있는 하얀 와이셔츠가 10개쯤 걸려있고, 넥타이도 종류별로 걸려있다.
이건 뭐지?
무슨뜻이지?
웬 남자옷들이지?
"야. 좋은데. 그런데 누가 다른사람도 여기 와서 살건가?”
“응.”
“누가?”
현석은 정말 궁금한듯이 물었다.
대체 지수 외에 또 누가 와서 살건가 싶다.
분명 언니들 밖에 없고, 둘다 결혼 했는데.
그리고 남자용 속옷, 현석이 늘 입는 트렁크형 속옷과 소매없는 런닝셔츠에, 남자 와이셔츠라니, 이건 분명 현석을 위한 준비들로 보인다.

얘가.
현석은 지레 짐작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좀 놀랍다.
"헨리가 자주 올 거잖아. 그러니 둘이지."
그녀는 대답과 함께 살포시 안겨 왔다. 현석은 지수의 등을 힘주지 않고 살며시 안았다.
"우리 둘이?”
"응."
"그래서 내가 오기만 해도 선물이라 한거야?”
"으응, 그 선물이 지금 나 안아 주고 있잖아."
"하하하. 엉터리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현석은 그녀를 꼬옥 안았다.
"자, 배고플텐데 이제 저녁 먹어요."
"그래 나가자."
"어디를? 집에 저녁 해 두었는데."
"나랑 같이 왔는데 언제 저녁을 해?"
"일 봐주는 아줌마 있어. 하루에 서너 시간씩. 그래서 국냄비를 가스렌지에 올리고 끓이기만 하면 돼."
"그래?”

지수가 꾸며 놓은 정도로 보아 이집은 거의 완벽한 신혼집이다.
그리고 그녀는 부자 맞다.
그러니 이런 정도의 집을 구했으리라.
내부에 사용한 가구나 장식들은 얼핏 보기에도 보통 고급품들이 아니다.
일찍이 현석이 본 적도 없는 종류의 물건들이다.
그런데 사는 사람도 아닌 간혹 한 번씩 오는 사람을 위해, 그것도 늘 자고 갈 사람도 아닌데 이런 집을 준비한다고?
그건 말이 안된다.
준비해 놓은 정도로 봐서는 현석이 여기서 항시 생활하는 것을 기준으로 준비 되어 있는것으로 보인다.
말은 현석이 자주 올거잖아? 라고 했지만, 지수의 행동은 느낌이 마치 아내처럼 행동한다.
좋은 건가 나쁜 건가?
드레스룸에 여유있게 준비된 남자용 속옷으로 미루어보아 충분히 그렇게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녀가 하는 행동과 말, 그 모든 게 한꺼번에 맞물려 돌아간다.
사랑하는 그 여인이 오직 한 사람, 현석을 위해 이 집을 준비했다.
그리고 혼자 초대받아 들어 왔다.
지수와 결혼 해야 할 운명이긴 한 모양인가.
그러기 위해서 멀고도 먼 길을 돌아 왔는가?

(계속)

당시에는 홈트레이딩이 없어서 개인이 컴퓨터 앞에서 주식을 사고 팔 수가 없었습니다.
홈트레이딩이 시작된 것은 1999년부터 입니다.
홈트레이딩이 시작되기 이전까지는 객장에 나가거나, 증권사 지점에 전화를 해서 얼마에 사 달라거나 팔아달라는 주문을 넣어야 했었습니다.

------- 뜨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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