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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8:22 481회 0건
#1 : 날 보러오지 않아


아직도 그 희미하던 시멘트 먼지의 맛이 기억난다. 비에 젖은 공사장을 떠다니던 알 수 없는 냄새도, 입을 맞춰오던 그 남자의 까끌거리던 수염의 감촉도, 시간이 지나며 따뜻하게 느껴지던 눅눅한 돌바닥의 온기도. 그립고 또 그립다.

"학생, 여기서 누가 오줌 싸라고 했어? 학생은 학생 책상에 누가 오줌 싸면 기분 좋겠어? 공사판이라고 깔봐?"

왜 그날 그렇게 새벽 같이 등교를 했었던나. 잊어버렸다. 새벽부터 내린 빗발이 거셌다. 될되로 되란 마음에 맨발에 슬리퍼를 끌며 집을 나섰다. 걸어서 15분 거리의 등교길, 굳이 화장실을 참지 못했던 건 오랫동안 공사가 멈춰있던 한 건물이 보여서였다. 지금 떠올려보면 정말이지 순식간의 일. 온통 그림자가 진 건물에는 층마다에 메워지지 않은 파이프 구멍에서 물이 줄줄 세고 있었고, 차지게 바닥을 때리는 물줄기들은 그 남자의 발소리을 감추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남자는 어떻게 나를 보고 쫓아 왔을까. 그저 어쩌다 였을지도 모른다. 비린 입 맛에 섞인 술냄새, 그 남자는 충동적이었을 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자 최초의 경험을 준 것임엔 분명하다.

쪼그려 앉아 있던 내 뒤에서 가만히 밑으로 밀어 넣던 손. 찰나의 순간에도 느껴지던 그 굳은 살 베긴 손의 강경함을, 그 강경함 안에 있는 기묘한 부드러움을 생생히 떠올리곤 한다. 너무 놀랐음에도 엉덩이 골에서 뒷목까지 찌르르 하고 타오르는 전율은, 앞으로 영원히 나를 이 나선 안에 가둘 것이 었다는 걸, 그 순간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를 받아드리는 수밖엔.

그 남자는 운영에 숨어 아직 일을 다 못마친 날 괴롭혔다. 그는 손이 젖어가는 것은 아랑곳 안은 채 내 다리 사이에 교묘히 팔을 넣어왔다. 처음 느껴보는 남자의 손길은 취해 몸서리치는 한 마리의 뱀처럼 움직였다. 이제 막 고등학생 정도라는 걸 교복을 입은 모습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으면서도, 앞쪽조차 처음인 내게 뒤쪽 은밀한 구멍의 희열까지 강요했던 그 남자. 냄새나는 내 다리사이를 맛있다는 듯 혀로 닦아내던 그 남자.

잊을 수 없다.

하얀 교복을 입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나를 힘으로 제압하면서도, 때론 부드럽게 때론 따뜻하게 몸을 붙여오던 그 남자를.

"날 보러 와요. 내 다리를 다시 열어줘요. 더 부드럽게, 더 거칠게."

"아저씨, 이제 그만요. 이제 그만. 아저씨. 아저씨, 제발. 아저씨! 아저씨!"

소리 죽여 애원했다. 소리를 지른다면 그와 몸을 섞은 모습을 누군가 발견하게 될 것이 오히려 더 두려웠다. 어째서 더 두려웠을까. 왜 당장 멈춰주길 바라지 않았을까. 내가 애원하며 우는 소릴하면 내 안에 담겨있던 그는 한 층 더 단단해졌다. 달과진 쇳덩이 같던 그의 분신과 그의 뜨거운 콧바람이 내 등에 포근히 닿으며 허리를 타고 흐를 땐, 나도 덩달아 몸이 달아올랐다. 그는 비에 젖은 내 맨발을 침으로 더 축축하게 만들어 나가며 허리를 흔들었다. 나는 더 애타게 그를 거부했고, 그럴 수록 내 머릿속은 하얗게 타오르며 나를 몇 번이고 절정에 다다르게 했다.

그 남자를 잊을 수 없다.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왜 그때 소리쳐 붙잡지 않았을까. 아니, 아마 지금 돌아간다고 해도, 그를 붙잡을 용기는 들지 않겠지.

"계속 날 강간해줘요."

그런 말을 뱉는 순간, 내 욕정은 촛불처럼 꺼질 걸 나는 알고 있었나보다. 그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부르고 싶은 욕구에 몸서리치던 그 순간부터.
한 장 티슈처럼 나를 쓰고 버린 그 남자. 불꽃처럼 나를 범하곤 뒤돌아가 다시는 돌아올 생각도 없던 그 남자. 한 번만 더, 그 남자처럼 나를 뜨겁게 범해주었으면.

예뻐져야했다.

그 남자가 나를 수차례 범하고, 여유로히 담배에 불까지 붙여가며 도망치는 동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뻐져야했다. 한 번더 그를 만나려면, 한 번더 그가 나를 덮치고 싶게 만드려면, 한 눈에 그의 눈에 다시 띄게 되려면, 더없이 예뻐져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왕이면 더 예쁘고, 더 갸냘픈 내가 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반항할 힘도 없어 보이는, 건드리면 흐늘흐늘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그런 여자가 나는 되어야했다. 만명의 남자들이 돌아봐서 만명이 범하고 싶은, 어떤 작은 틈이 보인다면 언제든 꿰뚫어 버리고 싶은 그런 여자.

얼른 집에 돌아와 흙과 빗물에 범벅이 된 교복을 엄마 몰래 빨아 널었지만 맨바닥에 긁힌 상처는 감출 수 없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엄마에게 감기 몸살로 정신을 잃어 넘어졌다고 드라마 같은 거짓말까지 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울 때까지 그 남자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 몸 안에 흔적을 남기고 떠난 그를 보낸 뒤, 한참동안 공사장에 누워 여운을 맞봤다. 그가 남기고간 담배 냄새가 다 가시고도 20분은 미미히 몸이 떨렸고, 다리 사이의 얼얼한 느낌은 그 날 잠들기 전까지도 계속 되었다. 비 내리는 가을날의 아침 한기가 몸을 엄습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누워 그대로 잠들고 싶을 만큼 나른하고 기분이 좋았었다. 두툼한 이불을 뒤집어 쓰며 나는

그 남자를 떠올리며 흠뻑적은 내 다리 사이를 타일려야 했다.

그 뒤로 하루에 한 시간씩은 빠짐없이 운동을 했다. 한창 몸매 관리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본 엄마가 에어로빅 학원을 끊어줬지만, 점점 근육이 붙어가는 것 같아 두 달만에 그만 두었다. 햇볕에 탄 피부를 염려해 항상 집에서 스트레칭을 겸한 운동을 계속했고, 연약해 보이기 위해 평소의 먹던 밥의 삼분지 이 정도만 입에 담아갔다.

그를 기다렸다.

이후로 항상 그 시간에만 등교를 했다. 그 비슷한 남자를 발견만 해도 좋을 것 같은 날도 있었다. 어느날은 공사장 안에 들어가 기다려보기도 했다. 그가 온 것도 아닌데, 공사장을 지나는 발소리 만으로도 슬슬 몸이 뜨거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만, 그는 한 번도 날 찾아오진 않았다. 그를 만날 수 없는 날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예뻐지고 싶었다.
외출을 삼가하고 평소에도 방의 불은 꺼둔 채로만 생활했다. 평소엔 "흰편"이란 말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왜 그렇게 하얘졌어?" 하고 친구들이 물어왔다. 힐끔거리며 나를 보낸 남학생들의 눈빛들이 의식되어 갔고, 은근히 내게만 눈길은 주는 남자 선생님도 생겼다. 도덕 선생님이라면서 그 금태 안경 밑으로 슬금슬금 내 다리를 훔쳐보는 걸 느낄때면, 나는 어김없이 선생님의 모습에 그 남자를 겹쳐보곤 했다.

매일 나를 가꾸는 것에 여념이 없었음에도, 그렇게도 남자들은 나를 힐끔거렸음에도, 매일같이 그 공사장을 들락거렸음에도,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단 한 차례도 강간을 당하지 못했다.

나를 처음 범해준 그 남자도, 나를 힐끔거리기만 하는 남자들도, 모두들 야속하기만 했다.

"나는 강간당하는 게 너무 좋아요. 너무너무 당하고 싶어요."

선언해버리고나면, 그 것은 더이상 강간이 아니라는 애매한 사실도 야속했다. 어쩌다 이런 변태 같은 여자가 됐는지 나도 나를 모른 채, 그 남자가 돌아와 나를 겁탈하기를, 혹은 그 누군가가, 혹시나 도덕 선생님이, 혹시나 어떤 남학생이, 아무 동네 양아치라도, 강제로 내 몸을 품는 순간을 기다렸다.

나를 가꿔가며...

그리고 기회는 뜻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대학교 첫 MT에서 찾아들었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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