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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8:39 612회 0건
- 色道의 시작

“그리고 여긴 아르바이트생은 아니고 나랑 언니 동생 하는 지영이

지영이는 자그마한 신문사 기자야”

“반가워 희수씨”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그녀는 마른 체형에 조금은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이목구비가 크고 특히 립스틱을 바른 입이 크고 역삼각형의 얼굴 모양이

한번 보면 잊어버리기 쉽지 않은 얼굴이다



왠지 날 쳐다보는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걸 느꼈다

나 역시 그녀를 보면서 유혹이라는 느낌을 떠올렸다

조만간 그녀와 썸씽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느낌

상희와 두리에게서 느껴졌던 유혹의 냄새였다





============================================================================================





첫날 아르바이트는 생소함의 연속이었다

그 당시 까페 라는 곳은 여자들이 은밀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사모님이 들어가시고 사장님과 석진이 그리고 희준이가 남아

신입인 나에게 메뉴별 레시피를 알려주었다



주방 벽 한 쪽에 가게의 모든 레시피가 적혀 있어서

따로 힘들게 적응해야 할 일은 없었다

손님이 오면 물과 메뉴, 재털이를 가져다 주고 잠시 후 주문을 받으러 간다

주문을 하면 빠 뒷편에 있는 주방에서 레시피대로 메뉴를 만들어

다시 가져다 주고 빠로 와서 장부에 금액과 메뉴를 적어두면 끝

손님이 나갈 때 장부에 적힌 대로 계산을 하고 테이블을 치우면 그만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장 매력 있는 것은

음악을 내 마음대로 틀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빠의 끝 쪽에는 앰프와 턴테이블 2개 그리고 그 위 쪽 벽면으로

약 500장이 넘는 LP판이 진열되어 있었다



음악을 좋아했던 터라 나 역시 LP판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원룸엔 음향기기가 없어 부산에 놔두고 왔었는데

다른 아르바이트들을 보니 자신의 판을 들고 와서 틀기도 했다


첨엔 사장님이나 아르바이트 패밀리들이 가끔 들려서 날 도왔다

복잡한 일이 아니라서 난 금새 적응했고

빨리 적응한 나 덕분에 사장님은 오후 시간이 자유로워지자

나중엔 가게의 마감까지 내게 맡기고 일찍 자리를 떴다



내 아르바이트 시간은 저녁 5시부터 마감 때까지였다

손님이 없으면 보통 12~1시 사이에 마감했고

손님이 있으면 2시까지 영업하기도 했다



아르바이트에 적응될 무렵 학기가 시작되었고

내 일과는 낮 수업과 밤 알바로 나누어졌다



대학생활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녹록하지 않았다

누구의 통제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계획을 세워 움직이지 않으면

한없이 느슨해지고 허송세월을 하기 십상이었다



한 학번 밑의 후배들이랑 수업을 듣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선배 아닌 선배라 다들 나를 어려워했고

나 역시 그들 틈에서 부딪치는 게 어색했다

다행히 작년 학기 같이 보았던 2학년 동기들 중 날 알아봐 주는 애들이 있었고

그 중 경수와 동우가 가장 날 기억하고 친했다



“그럼 너 ‘빙점’에서 알바 하는거야?”

“웅 밤에는 거기서 알바”

“그럼 쉬는 날도 없어?”

“가끔 얘기하면 시간 낼 수 있어”

“그래도 동기인데 저녁에 알바 하니 우리끼리 술 한잔 못하겠다 ㅠ.ㅠ”

“”알바 하는 곳으로 놀러 와 맛있는 거 해줄께”



경수와 동우면 딱히 학교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없을 듯 해서

그 외에 친구들과는 눈인사와 몇 마디를 섞을 뿐 그다지 맘을 주지 않았다

학교에서의 생활보다 오히려 ‘빙점’에서의 생활이 난 더 편했다

낮에도 시간이 나면 ‘빙점’으로 달려 갔고 낮 시간 알바들을 도와주거나

턴테이블에 앉아 음악을 틀곤 했다

‘빙점’의 턴테이블은 각자 음악취향이 다른 알바 패밀리들의 놀이터였고

서로 그 곳에 앉으려고 자리 싸움을 했었다


낮 시간 ‘빙점’은 여대생들의 흡연공간이자 수다 공간이었다

커피와 음료를 시켜놓고 공강시간 내내 수다를 떨며 담배를 피웠고

그런 여유를 갖는 것이 여대생이 누리는 특권이자 멋이라고 생각들을 했다

인기가 좋은 곳이었기에 예쁘고 늘씬한 퀸카 들이 많이 찾았고

그녀들을 보러 남자 알바 패밀리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저녁시간 ‘빙점’은 좀 다른 분위기였다

커피 뿐만 아니라 칵테일이나 술을 판매했기 때문에

1차 또는 2차를 하고 온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술을 깨거나

간단하게 한 잔 더 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빙점의 테이블은 어느 정도 독립공간을 보장했기 때문에

거기에 끈끈한 음악이 더해지면 사람들은 또 다른 일탈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꽤나 잘 나가던 바람둥이들은 늦은 밤 여자들을 이 곳으로 인도했고

난 분위기를 만들어 그들의 작업에 도왔다

그들은 나에게 간접경험 기회를 제공했고 그 대가로 난 훌륭한 조력자 노릇을 자청했다


‘나도 이 곳에서 여자들을 품을 수 있을까?’



그들을 보며 그들과 동화되며 그들 대신 그녀들과의 키스와 스킨십을 하며

나의 밤을 그렇게 하루 하루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꿈꾸던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전혀 다른 루트로 내게 왔다



“희수씨 안녕?”



7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는데 문이 열리는 종소리가 들리며 그녀가 들어왔다



‘지영’



그녀였다

조그마한 지역 신문사에서 기자를 한다던 여성

첫 만남 이후 몇 번 더 얼굴을 비췄지만 혼자 있을 때 온건 이번이 처음이다


“잘 지냈어요?”

“네 그럼요 잘 지내셨어요?”

“네 ^^

근데 희수씨는 넘 예의 바르다

딴 아이들은 나랑 편하게 지내는데”

“제가 좀 그래요 죄송해요”

“그냥 편하게 누나 동생 해요”

“네 누나”

“그럼 난 희수한테 편하게 대한다 ^^”

“그래요 그럼”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지영이는 나랑 편하게 지낼려고

일부러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내가 혼자 있는 틈을 타서 온 거라고 했다

마침 손님도 없고 해서 우리는 빠에 마주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누나 참 매력있는 얼굴이야”

“진짜? 너무 말라서 별로라던데”

“마르긴 했어도 큰 눈이랑 입이 매력있어

줄리아 로버츠도 그렇잖아 ^^”

“그래? 농담이라고 해도 기분 좋네 하하하하하

희수는 여자 기분 좋게 해주는 능력이 있어”

“그래요? ^^”




순간 그녀의 눈빛에서 뭔가 끈적이는 흔들림 같은 것을 느꼈다

그 날 우리의 대화는 방해하러 오는 사람이 없었던 관계로

거의 끝나기 직전까지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확실히 내게 호감이 있다는 걸 느끼게 그 날의 수확이었다


“그럼 담에 또 봐

항상 이 시간에 와야겠다

둘이서 얘기 하니까 편하네”

“그래요 그럼”

“담에는 와서 한 잔 해야겠다 ^^”

“그래요 내가 칵테일 맛있게 만들어 줄께요”

“빠이 희수”


깡마른 얼굴에 묘한 섹시함을 풍기는 여인

커다란 입으로 항상 웃음을 지으며 빠에 앉아

내가 틀어주는 음악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컵을 들어 마시는 모습이 그 날 계속 머리 속에 남았다



그 이후 그녀는 밤 늦은 시간에 자주 날 찾아왔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 있는 일이 잦아지면서

한번은 지영이를 집 앞까지 바래다 준 적이 있다

이모님 댁에 마침 그 근처라서 그 곳에 가야 하는 날에

지영이를 데려다 주고 가기로 했다



그 날 지영이는 술을 좀 과하게 한 상태였고

밤 늦은 시간이라 혼자 보내기 조금 애매한 상태였다



“누나 이제 일어나자

택시 타고 가자”

“근데 같이 가도 되는 거야?”

“나 거기 근처 이모님 댁에 가기로 했으니까

누나 내려다 주고 난 가면 돼”

“그래? 고마워 희수야”


대강 까페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오니 이미 거리는 한산해져 있고

취객들을 태우려는 택시가 줄을 서 있다

지영이를 부축해서 가까운 택시에 태우고 목적지를 말하고 나니

아르바이트를 해서 쌓인 피로감이 졸음으로 밀려온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데 지영이가 팔짱을 끼어 온다

의식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대어 온다

지영이네 집까지는 밤길을 30분 정도 달려야 하는 거리다

오늘따라 유난히 외로워 보이는 것에 대해 물어볼까 하다가

프라이버시라고 생각하고 따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팔짱 낀 그녀의 가슴이 팔에 닿았지만

마른 체형 때문인지 두리에게 느껴지던 풍만함은 없었다

어느덧 그녀의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다 왔다 일어나”

“으웅~~ 벌써 다 왔어?”

“웅 늦었다 얼른 들어가자”



택시비를 지불하고 그녀를 부축해서 아파트 입구로 들어섰다



“우리 잠시만 쉬었다가 가자”

“왜? 힘들어?”

“그냥 바람 좀 쐬고 들어 갈려고”

“어디로 가?”

“저기 놀이터 그네에 좀 앉아 있자”


그녀는 집 앞 놀이터로 날 데리고 가더니 그네에 앉는다

나도 말없이 그녀의 옆 그네에 앉았다


“오늘 무슨 일 있어?”

“웅 그냥”

“무슨 일 있는 사람 같아

슬퍼 보이기도 하고”

“어릴 때 생각나서 우울해져서 그래”

“내가 알면 안 되는 일이야?”

“아냐 안다고 뭐 달라지나?”



잠시 입을 굳게 다물더니 그녀가 서서히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었다고 했다

심각한 우울증으로 자살을 선택한 어머니

그런 어머니 때문에 사춘기를 너무 힘들게 지냈다고 했다


그녀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아버지는 재혼을 했고

새어머니와 세 식구가 살았다고 했다

새어머니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상처를 감싸줄 정도로

다정다감한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그랬구나 어쩐지 슬퍼 보이는 부분이 있었어”

“그랬어? 너무 외롭거나 그럴 땐 가끔 이래”

“너무 힘들어 하지마

이젠 다 지나간 일이잖아

아직 사춘기 소녀로 남아 있을 수 없잖아

이겨 내야지”

“웅 그래야지 고마워”

“뭘…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이거 밖엔 없는데”



눈물을 글썽이는 그녀를 그네 채로 가만히 안아 주었다

어딘가 기댈 곳이 필요했던 그녀는 내 품에 안겨 한동안 흐느꼈다

이대로 그녀에게 조금은 시간을 주고 싶었다

잠시 눈물 짓던 그녀의 어깨가 참 가늘고 애처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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