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지배했던 그녀 -

거친 바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낯간지러운 단어 – 사랑

사춘기 청소년들이 겪어내기엔 너무 큰 단어

멀쩡한 사람을 열병에 앓게 하고 미친 놈처럼 실실 웃게 만드는 단어


그 단어가 내게 다가온 건

그 시절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고3을 얼마 앞 둔 초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어린 시절 나의 감성을 지배했던 사람

그녀와의 만남을 시작했던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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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가 되면서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반항의 기운이

내 이성을 덮치면서 용암처럼 솟구쳐 올랐다

철저히 성적 위주였던 극 보수의 고등학교 출신인 나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잔머리 덕분에 성적이 나쁘지 않아

모든 억압과 감시의 시선에서 열외의 대상이 되었다



갑갑한 고등학교 교육이 날 짓누르려 했지만

그건 내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고

현실 속의 난 철저하게 위장된 모범생이었다



“야 희수야 담배있냐?”

“능력 없음 끊어”

“아 씨발 생활관 애들은 검사 안하면서 왜 교실에 있는 애들은 검사해 ㅡ.ㅡ;”

“꼬우면 생활관 들어오던가”



철저히 성적순으로 끊어서 학교 뒷 편 생활관으로 보내는 제도

몇 개 층으로 나누어져서 거기에도 계층이 존재하던 곳

시간이 되면 철문으로 채워져 마감시간까지 갇혀 지내는 곳



선생님들의 눈에는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녀석들에게 자율을 준다고 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온갖 타락을 맛보게 되었다



담배, 술은 기본이요

포르노 잡지와 만화책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창문을 통해 담장으로 나가면

옆 학교 여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비밀 장소로 안전하게 갈 수 있었다

교실에서 야자하는 녀석들에게는 꿈꾸지 못할 일이지만



“똑똑”

“누구냐?”

“희수야 우리 나가자”

“어딜?”

“엽이 새끼가 옆 학교 쪼가리 꼬셔서 애들 데리고 왔대”

“진짜? 그 시키 담배 쪽사리 했다고 자랑하더니만”

“우리도 가서 하나 차고 한번 해보자고”

“난 관심없다 가서 잼나게 놀아라”

“빙시새끼 쥐도 못 먹냐?”

“꺼져 개새야”



살살 꼬시는 병주 늠을 내치고는 꼴 같지 않게 시집을 집어 들었다

고1때 우연히 집어 든 시집을 손에서 떼어내지 못하고 훑어 내려간 후에

난 친구들 몰래 시집에 심취해 있었다

당시 친구들에게 걸렸다면 여지없이 놀림감이 되었을 일

그래서 녀석들이 땡땡이 치러 나가는 때를 틈타 몰래 읽곤 했다



갑자기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 얼른 시집을 숨겼다

문이 확 열리고 병주 녀석이 얼굴을 드밀었다



“야 큰일났어’

“뭐가? 학주라도 떴냐?”

“아냐 옆 학교 씹새들이 우리 학교 애들 모다구리 치고 있더라고”

“어디? 어느 개새들이 지랄이야?”



병주의 뒤를 따라 뛰어 나갔을 때 이미 창문으로 이동하는 몇몇 녀석들을 보았다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고 잘 치는 늠들로 소문난 녀석들

소위 날라리라고 칭하는 정예 친구 녀석들이다



“빨리가자”



병주의 인솔로 날라리 녀석들은 산 속으로 하나 둘 사라지고 있었다



“퍽퍽퍽”

“고마 하이소 잘못 했습니다”

“뭘 고마해 개길때는 언제고”

“아입니다 잘못 했십니다”

“니는 더 마아야 한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더니 4-5명 되는 옆 학교 녀석들이 우리학교 학생 3명을 모다구리 치고 있었다



“뭐하노 이 새끼야 죽고 싶나? 우리 애들 건드리고”




우리 중 덩치가 큰 재경이가 먼저 도착해 으름장을 놓았다



“니는 뭐꼬? 죽고 싶나?”



험한 말을 지꺼리며 다가오던 녀석들은 뒤늦게 도착한 우리를 보고 멈칫 한다



“씨발 뭐꼬? 떼로 왔나?”

“니그들은 떼로 우리 아~들 건드리면서 지금 뭐라 쳐 씨부리노?”

“뭐라하노? 빙시같은게”

“저것들이 날 잡았네 확 조지뿌까?”



말빨 좋은 병주가 분위기를 띄우는 동안

맞고 있던 우리 학교 녀석들을 살폈다



“상규야? 니 상규 맞나?”

“어~~~ 희수행님아 내다”

“이 빙시 왜 여기서 쳐 맞고 있노?”

“야자 땡땡이치고 나왔다가 임마들한테 걸맀다 행님아”

“이 새끼들이 죽고 싶나?”



맞고 있던 녀석 중 하나가 잘 아는 동생 규상이였다

고등학교가 되어서야 선후배가 되었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같은 독서실에 다녔던 관계로 잘 알고 지내는 동생

녀석의 누나 상희의 빼어난 미모 덕분에 녀석은 학교 선배들의 보호 대상이었다

녀석이 유난히 날 잘 따르는 관계로 상희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던 나였다



“누가 때맀노?”

“내다 씹새야”



꽤 덩치가 있는 녀석이 앞으로 나온다

나와는 체격의 차이가 좀 있는 것이 외관으로도 느껴진다



어릴 적부터 군인 출신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운동을 꽤나 했던 나다

태권도, 합기도 등 여러 운동을 했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시작한 검도는

내가 제일 좋아하고 내게 맞는 운동이다



검도가 칼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검도의 무서움은 그게 아니었다

수없이 칼을 피하며 익숙해진 눈은 정작 싸움 시 가장 강력한 무기다



자기보다 작은 체구에 날 얕잡아 본 덩치가 선뜻 앞으로 나와 기선을 제압하려 한다

성큼 앞으로 나오더니 내달려 내게 오면서 오른발을 뻗어 날 지르려 한다

거기까지가 그 녀석이 할 수 있는 다였다



찔러오는 칼날 보다 너무도 느린 그 녀석의 발은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껴졌고

살짝 몸이 비켜 피한 나는 그 녀석의 왼쪽 다리를 사정없이 걷어차 버렸다



“우아~~쿵”

“아아아아아~~~~”



맨바닥에 사정없이 내려 꽂힌 녀석은 자기 체중이 더해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기선 제압을 시도했던 녀석의 무리는 덩치가 한방에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지자

갑자기 풀이 죽어 버렸다



“씨발 뭐꼬? 니들 뭐꼬?”



하고자 했던 일이 아작나면서 멘붕이 빠져 버린 녀석들

슬금슬금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려는 녀석들에게 날라리파의 날아차기가 꽂힌다

이미 쓰러진 덩치는 병주가 처리하고 있었고 나머지도 친구들이 정리해 버렸다



“괘안나?”

“괘안타 형님아 몇대 안맞았다”

“새끼 야자 땡땡이치니까 이 꼴이지”

“미안타 행님아 상희한테는 말하지 마라”

“빙시 알았다 쳐맞고 다니고 ㅡ.ㅡ;”



그렇게 한밤의 헤프닝은 일단락되고

생활관에선 날라리파 녀석들의 무용담이 한껏 펼쳐졌다

내가 아니어도 이겼겠지만 기선 제압이 주요했던 건 사실이니까



야자를 마치고 마중 나온 차를 타고 독서실로 향했다

그 시절 교회나 독서실은 유일하게 남녀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그 외의 장소에서 여학생과 노닥거리는 걸 들키는 순간

머리카락은 바리깡에게 길을 내주고 유기정학이라는 딱지가 생활부에 붙을 시절이었다



“희수야 나 좀 보자”

“어… 상희야”

“우리 규상이가 맞고 온 것 같은데 니 뭐 아는거 있나?”

“내가 뭘”



‘이 빙시새끼 누나한테 들킸나 보네’



“아무래도 쳐맞은거 같은데 안 분다”

“사실 일이 좀 있었다”

“뭔데?”



난 상희의 닥달에 못이겨 아까의 일을 말해 주었다



“사내새끼가 쳐맞고 다니고 내가 몬산다”

“고마해라 규상이가 맞고 싶어서 맞았겠나?”

“그래도 ㅜ.ㅜ 어째든 고맙다”

“뭘 내 동생인데”



그 일을 계기로 상희와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고

다른 친구 녀석들의 시기와 질투가 이어졌지만 그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상희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