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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부제 : 암캐 본능 깨우기) - 11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8:59 771회 0건
그렇게 날짜는 정신 없이 흐르고 흘러, 그 주 토요일이 되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학교의 시험 마무리를 끝내고, 드디어 외쳤다.

"끝이다~!!!"

드디어 끝난 것이다. 이 초췌한 생활과도 잠시만은 안녕이다. 거의 하루 대여섯시간 집에 들어가서 자는 것 빼고는 학원에만 있었던 것 같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머리 감고 면도하고 세수하고만 학원에 나오는 생활의 반복이었으니......

뭐 시험이 끝났다고 선생들한테 휴가가 떨어지거나 그러진 않지만, 그래도 그는 기분이 좋았다. 물론 이 기간이 지나가서 성적이 나오면, 부모들에게 또 전화를 돌려서 이번 시험에 대한 피드백을 해 줘야 할 테고 애들 어르고 달래서 다음 진도를 또 빼야 하는 고된 생활의 반복이지만 분명히 이번에는 아이들 영어 성적이 많이 오를 거라고 자신했고, 아이들이 환한 얼굴로 성적표를 들고 올 생각을 하니 괜히 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가장 기분이 좋은 건, 이번 주에 그녀를 보기로 했다는 것.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짐 정리를 시작했다. 시계는 어느 새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영쌤 요즘 여자 친구 생겼나봐~"

주임 선생이 빙글빙글 물었다. 주임이라 그래서 나이가 많은가 했지만, 사실 뭐 사회에서 만났으면 형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몇 살 차이가 나지 않았다.

"요즘 얼굴이 좋아보여~"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며칠 동안 쌩고생 한 얼굴이 좋아보여요? 어우 같이 고생하는 사람들 끼리 이러지 맙시다~"

"하하하 하긴 그건 그래~ 영쌤 근데 진짜 여자 친구 안 만들어?"

"만들 시간이 있어야죠~ 언제 뭐 집에나 보내 줬나...... 심심하면 같이 피시방 가자 그럼서......."

"에이~ 영쌤도 알잖아 나 쌤들 빼고는 친구 만날 시간도 없는거~"

"그런데 제가 무슨 여친을 만들겠어요~ 집에 가서 잠 잘 생각 하니 좋아서 그러지......"

"그럼 오늘은 피시방 안 갈거야?"

주임의 얼굴이 못내 서운해 하는 얼굴이다. 체력도 좋지. 어떻게 며칠을 그리 날밤을 새고도 놀고 싶을까.

"오늘은 집에 가서 좀 쉴래요. 오늘 안 쉬면 몸살 날 거 같아요."

"그래~ 좀 쉬어~ 영쌤 수고 했어요~"

"네~ 주말 잘 보내세요~"

그는 학원 문을 가열차게 닫고 나와 매어 둔 자전거를 풀러서 가볍게 올라탔다. 교통비도 아끼고 싶은 그였기 때문에, 출퇴근은 자전거로 한지 벌써 반 년이 넘었다.

귀를 다 막지 않는 반 오픈형 커널 이어폰을 귀에 꼽고, 노래를 플레이 하자 상큼한 노래가 흘러 나왔다.

"널~ 처음~ 만나는 날~ 노란 세 송이 장미를 들고~"

노래에 맞추어 힘차게 페달을 밟자, 자전거는 쭉쭉 달리며 그의 얼굴에 맞바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슬슬 자전거 타기에도 추워지는 날씨였다.

- 조금 있으면 자전거도 추워서 못 타겠다.

맞바람에 얼굴이 얼얼했지만, 오히려 그 얼얼함이 멍했던 그의 머리를 확 맑게 만들며 청량감을 주었다. 노래를 휘파람으로 따라 부르며 그는 더욱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내일 분홍이 볼라면 좀 일찍 자 둬야지."

일찍이라고 말 하기엔 어폐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꾀죄죄한 얼굴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조금이라도 더 자는게 체력 회복의 지름길이다.

- 그런데 왜 한 동안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연락을 했을까?

갑자기 궁금해지는 그였다.

- 흠...... 궁금하네......

잠시 생각에 빠진 그는 그냥 고개를 저었다.

- 뭐, 바빴겠지.

단순하게 생각을 끝내고 나자, 분홍이 첫 만남 때 그에게 남겼던 말이 생각이 났다.

- 오빠는 참 단순한 것 같아.

"그러게...... 참 단순 무식하게 살아왔구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사실 그가 분홍의 처지를 잘 이해하는 것은 그도 우등생 생활을 강요 받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서울에 올라오자 마자 일탈을 시작했었다. 술, 여자, 유흥...... 모자라는 돈은 노가다를 뛰어서 메꾸고, 아르바이트는 닥치는대로 하면서 어떻게든 학교 수업은 중상위권 수준으로 막아나갔다.

체력이 남아나질 않았지만, 그가 너무도 열망하던 자유가 펼쳐져 있었기에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일탈에 대한 즐거움을 알아 버렸기 때문에.

"뭐...... 그랬던 때도 있었지."

무슨 일이든 끝을 보려면 그 끝이 있겠냐마는, 지금은 그가 원하던 일탈들을 어느 선까지는 즐긴 상태였다. 이제는 궁금한 것이 없으니 그닥 땡기지 않는다고나 할까. 착실하게 돈 벌면서 취업 준비나 하고 있는 그였다.

"그런데 말이지......"

그런데 그녀가 나타났다. 분홍 구름. 그가 이때껏 겪어보지 못한 무엇인가를 그에게 주면서 다가온 그녀. 그래서 그의 마음이 이렇게 떨리는 걸까? 내일 그녀를 만날 생각을 하자 그는 다시 한 번 심장이 두근거렸다.

- 이런 기분도 참 오래간만이네.

마치 처음 대딸방을 갔을 때, 어떤 아가씨가 들어올까를 상상하면서 문이 열리기 전까지 두근대던 그런 느낌이 그의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이제는 누가 들어올지 뻔히 아는데도 불구하고.

- 아는데도 떨린다는건 말이지......

그녀가 아직 그의 무엇이 될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끼익-

시원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자전거가 섰다. 김유신의 말 처럼, 그가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에 그의 자전거는 어느새 그를 그의 집 앞에 데려다 놓았다.

"오늘은 잘 잘 수 있겠는데?"

그는 씨익 웃고는,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토요일이 되었다.

아침 일찍 눈을 뜬 그는 피곤해진 몸도 풀 겸, 때 빼고 광도 낼 겸 동네 목욕탕을 다녀왔다.

"어우 시원하다."

몇 주 치 피곤이 싹 풀리는 느낌이었다. 오늘 컨디션은 무조건 최상이어야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말이다.

집에 들어온 그는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분홍 구름에게 메세지를 넣었다. 생각해보니 분홍에게 메세지를 먼저 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오늘 보기로 했지? 어디서 몇 시에 볼까?

문자를 보내자 마자, 지이잉- 하고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 오후 1시에 전에 봤던 거기 어때? 오빠는 먹고 싶은 거 생각해 놔. 내가 사 줄게.

전에 했던 약속을 잊지 않고 잘 지키고 있다. 그는 손가락에 힘을 실어 답문을 보냈다. 그렇다고 답문이 힘차게 갈리는 없겠지만.

- 오케이.

----------------------------------------------------------------------------------------------------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그는 신촌 시계탑 근처를 서성였다.

- 45분이네.

뭐, 이 정도 일찍 나온 것 정도는 준수하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쌍쌍이 팔짱을 낀 채로 어디론가 사라지는 연인들, 저 쪽은 무슨 오프 모임을 하는지 사람들로 왁자 왁자 하다. 한 떼의 여고딩들이 엄청나게 시끄럽게 깔깔대며 맥도날드 쪽으로 사라진다.

모두 행복한 얼굴로 어디론가 향하는 길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겨울이 오려는 하늘 답지 않게 맑고 청명했다. 가을이 아직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듯한 그런, 겨울이 오면 쨍 하고 깨어질 것 같은 그런 새파랗게 맑은 하늘이었다.

- I"m a fool, to want you~

귀에서는 빌리 할리데이의 목소리가 가을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었다. 그는 가만히 눈을 감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때 였다.

"오빠!"

뒤에서 들리는 낯 익은 목소리에 그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귀여운 방울이 달린 얇은 체크무늬 분홍 코트를 입은 분홍이 발그레해진 얼굴로 쌕쌕대며 서 있었다.

- 분홍 코트를 입은 분홍이라......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그는 살짝 웃었다.

"응 왔어?"

"응~ 쪼금 늦었지? 헤헤......"

특유의 베시시~ 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가 말한다.

- 늦었다구?

시계를 보니 벌써 1시 10분이다. 시간이 이렇게 지난 것도 몰랐구나. 그래도 얘도 여자라고 약속 시간에 살짝 늦는 센스는 발휘해 주시나 보다.

"너두 여자애라구 일부러 늦는거냐? 으응?"

그는 일부러 그녀의 발그레한 볼을 양 손으로 눌러 일그러뜨리면서 말했다.

"아이야~ 저처 자모타따 마이야~"

이그러진 입술로 뻐끔 뻐끔 말하는 그 모습이 귀여워, 그는 한 바탕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하하하하하하~"

그의 웃음에 그녀가 뾰루퉁해진다.

"뭐야아~ 오빠가 그래놓고 뭐가 우스워?"

가까스로 웃음을 그친 그가 대답한다.

"아니 아니...... 너무 귀여워서...... 큭큭"

"피~ 맨날 귀엽다 그러면서 빠져나가기만 빠져나가구."

"아냐 아냐 진짜 귀여웠다니까? 너 알잖아 오빠가 빈 말 안 하는거."

"그래 그래~ 알았어 그런가 보다 할께 그럼. 자~ 숙제 해 왔는지 검사 할까?"

그녀의 말에 그는 잠시 어벙벙해졌다가, "숙제"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아냈다.

"아, 나 장어. 장어 먹고 싶어."

"장어?"

장어라는 말에 그녀는 살짝 고민한다. 그렇겠지. 장어는 비싸니까. 그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너 한테 비싼 거 사란 말 안 하네요~ 그냥 미다래 같은데서 장어 롤 같은거나 덮밥 같은 거 사 줘~ 나 그냥 니가 보양식 하니까 생각나서 그런거니까."

"그래? 흠...... 그래도 좋은 거 사주고 싶은데...... 그걸로 진짜 괜찮겠어?"

그녀의 눈빛을 보니, 현실적 금전 타격과 자신의 체면 사이에서 고민하는 듯한 눈치다. 이럴 땐 빨리 고민을 종결시켜 주는 것이 좋지.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나 서민 입맛이니까. 좋은 장어 먹어도 좋은 줄 몰라. 그냥 장어면 돼."

"흠......"

그녀는 아직도 생각에 잠겨있다. 그가 그녀의 손을 억지로 잡아 끌었다.

"가자 가자~ 내가 먹고 싶은거 사준다미~ 고민하지 말고 자자~ 이 쪽입니다~"

"어? 어? 오빠 진짜 괜찮아?"

그러면서도 쫄래 쫄래 잘 따라오는 그녀. 뒤에서 계속 꿍얼거린다.

"진짜 더 비싼 거 먹어도 괜찮은데......"

"에이 됐다니깐~ 가자 가자 나 전 부터 그게 먹고 싶어서 그런거니까."

"알았어 그럼~ 가자! 렛츠 고!"

그렇게 미다래에 도착해서 장어 롤과 초밥 세트를 시켜 나눠 먹고, 둘은 부른 배를 부여잡고 가게 문을 나섰다.

"후아 배 부르다~"

"나두 나두. 오빠 진짜 잘 먹는다."

"나 잘 먹게 생겼잖아."

"하긴 그건 그래~"

그녀는 피식 웃으면서 동의한다. 그래 나 살 쪘다. 쳇.

"이제 어디 갈까? 커피나 마시면서 이야기나 좀 할까? 나 너한테 이야기 할 것도 있고."

그의 말에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응, 나도 오빠한테 할 말 있어서 보자구 한거야."


- 작가 한 마디 -

1. 앞의 글이 너무 짧게 끝나서, 수면 시간을 줄여서 썼습니다. 원래는 이 정도가 한 분량이어야 하지요 ^^

2. 그런데 응응씬이 나오면, 이 정도만 써도 짧지 않다고 느껴지는 듯 합니다...... 역시 글의 몰입도는 응응씬의 여부인가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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