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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삽입면허 - 14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02:57 697회 0건
007 삽입면허-14부-



“미라야...... 나 좀 보자.”



“네, 마스터님”



깊은 밤, 한창 바빠야 할 시간이지만 카이로의 대기실은 계집애들로 인산인해였다. 군데군데 둘러앉아 제각기 화투를 치는 모습이나 카드 따위로 놀이를 즐기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며칠 동안 이르다 싶을 정도의 찜통더위가 이어지더니 결국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지고 아스팔트 바닥을 두들기는 빗줄기에 매캐한 먼지 냄새가 올라와 한적한 카이로의 대기를 가득 채운다.



주당들에게야 비 오는 날은 비가 멈출 때까지 마시는 날이라지만, 어쩐지 오늘은 일찍부터 비가 내려서인지 손님이 그리 많이 들지 않아 대기하는 아이들로 가득 찬 대기실은 여자들 특유의 비릿한 냄새에 온갖 화장품이며 향수 냄새까지 섞여 기찬의 코를 찔러 댄다.



특히 오늘처럼 습한 날은 그 도가 더한 법이니 기찬이 대기실에 들렀다가 장난스럽게 코를 막고 인상을 찡그린다.



“어머! 싫어요. 강하사님......”



여기저기서 계집애들의 앙탈 섞인 소리가 들려오고, 몇몇 계집애들은 눈을 하얗게 뒤집어 흘겨보며 교태를 흘린다.



“나는?......”



“으응?...... 너도 있었니? 너도 와라.”



한 구석에서 화투를 치고 있던 여진이 미라를 불러내는 기찬을 보고 따라 나선다. 미라를 불러들인 건 자신인데 오히려 요즘 자꾸만 미라에게 뒤처진다는 기분을 떨치지 못하던 여진은 기찬이 미라만 불러내자 마뜩치 못한 시선으로 미라의 뒤를 따라 나선다.



자신의 방으로 따로 불러낸 뒤 기찬은 형수 보라가 들려 줬던 찬합을 꺼내 두 사람 앞으로 내민다.



“어머! 이게 다 웬 거예요? 불고기도 있네?......”



고기와 밥 등 다양한 반찬까지 정성껏 담아 기찬의 야식으로 준비를 해 줬던 모양이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반가워하는 미라와 달리 여진은 벌써 삐쳐 모로 돌아앉아 기찬의 관심을 유도하고, 기찬이 그 속내를 모르지 않으니 여진의 엉덩이를 두들겨 준다.



“우리 조강지처께선 왜 이리 삐치셨나?...... 너는 룸에 들어가 있는 줄 알았다니까...... 이거 이인분도 훨씬 넘어. 너는 나중에 불러서 주려고 했다니까...... 정말이야.”



“그 거짓말...... 정말이지?”



다정하게 챙겨주는 기찬에게 못 이기는 척 여진도 돌아앉고, 그 모습에 미라도 기찬도 모처럼의 여유를 갖고 둘러앉아 즐거운 한 때가 시작된다.

미라와 여진의 수다로 카이로까지 뒤를 밟아 왔던 세희의 남편으로부터 세희를 따돌려 준 일이 화제에 오른다.



“호호호...... 계집애들이 모두 난리잖아...... 지금...... 특히 결혼한 애들은 더 하지.”



“왜?......”



“음...... 자기들도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기찬씨가 그렇게 해 주는 걸 보고 부러워서 그러죠. 뭐......”



“후훗, 그럼 역시 전시효과가 있었던 셈이네?...... 그래도 기존에 마스터를 두고 있던 애들은 끌어들이지 마. 괜히 시끄러워지니까......”



“으응, 알았어. 참, 미라야......”



“으응?...... 왜?......”



느닷없이 여진이 미라를 부르고 기찬과 미라는 여진을 바라본다. 여진은 두 사람을 돌아보더니 갑자기 피식 웃어 버린다.



“아, 아니...... 왜 이렇게 긴장들을 하고 그러시나?...... 그냥...... 너 말이야. 왜 자꾸 기찬씨한테 존댓말을 쓰는 거야? 이젠 우리끼린데 반말을 해도 되지 않아? 음...... 우리야 뭐, 마스터를 떠나서 기찬이 친구로 먼저 만난 사인데 말이야...... 자꾸 너는 존댓말을 하니까...... 뭐랄까, 내가 자꾸 두 사람한테 소외당하는 기분도 들고 말이야...... 이렇게 맛있는 것도 너만 불러내서 주고......”



“어머!......”



“하하하...... 그래, 알았다. 무슨 말인지...... 그래, 앞으로는 무조건 미라도 반말을 해라. 그건 이유가 어쨌든 간에 나도 대찬성이야. 누가 뭐래도 여진이 말대로 우린 친구니까...... 송미라, 알았지?”



“으...... 으응...... 그럼 그러지. 뭐...... 아, 알았어.”



“참, 그리고 오빠 일도 여진이 통해서 이야기를 들었고, 지금 모종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중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봐. 알았지?”



“으응, 안 그래도 오빠가 전화해 줘서 알고 있어.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깡패 같은 사람들하고도 손잡고 있는 거 아닌가? 무서워서...... 아유, 우리 오빠도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어.”



“하하...... 나, 못 믿어? 걱정할 것 없어.”



“아, 아니...... 기찬씨 실력이야 이 두 눈으로 본 게 있는데 믿고말고...... 하지만 그런 일은...... 기찬씨도 잘 모를 거 아냐?”



미처 기찬이 대답을 하기도 전 기찬의 휴대전화가 바쁘게 울어 댄다.

시간은 이미 새벽 한 시를 지나고 있는데, 이 시간의 전화라니 의아한 마음으로 책상위의 전화기를 앉은 채로 끌어당긴다.



“으응?...... 지수?......”



김비서의 부인 지수의 전화였다. 강지수는 종로 어디쯤 가구 직판장을 차린 뒤 홀 매니저를 맡겨 곁에 두려는 마음에 김비서와 함께 회사 분위기를 익히라는 지시를 해 둔 적이 있었다. 다소곳한 지수의 성격상 먼저 전화를 할 리도 없을 텐데 궁금한 마음으로 전화기를 열어 귀에 갖다 댄다.



“여보세요?”



“네...... 저...... 아시겠어요?”



“하하...... 누님 목소리를 모르면 되나? 무슨 일인데..... 이시간에......”



“죄, 죄송해요. 주무셨을 텐데......”



“아, 아니야. 자긴...... 그래, 무슨 일이야? 뭐, 급한 일인가?......”



“네, 혹시 도와주실 수 있나 싶어서...... 우리 미림이가......흐흑......”



지수의 딸 미림이는 기찬도 그녀의 집에서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 아이였다. 무슨 일이 생겨도 지수와 미림이는 지켜 준다는 약속을 기억해 내고 어려운 일을 맞아 기찬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양이었다. 울기부터 시작하는 지수를 달래서 들은 내용은 미림이가 경찰서에 잡혀 있다는 내용이고, 그 혐의는 원조교제라니 지수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김비서는 어떻게 하고 있어?”



“애 아빠는 아직 몰라요. 다행히 전화를 제가 받아서......”



“그래?...... 그나마 다행이네. 거기가 어디라고?......”



지수에게 경찰서를 확인하고 그곳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아직 미성년자이니 별 일이야 있겠나만, 그런 소식에 침통해 할 지수를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안면이 있는 종로서에 전화를 넣어 자문을 구하고 방을 나서기 전 여진과 미라를 돌아보며 당부를 잊지 않는다.



“참, 오늘 마담하고 어딜 가기로 했었는데...... 혹시 묻거든 급한 전화가 와서 나갔다고 좀 전해 줘라.”



“으응, 알았어.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조심하고...... 다녀 와.”



“그래...... 나중에 보자.”



행선지는 영등포. 지수는 방배동에서 출발할 테니 서둘러 갈 필요는 없었지만, 지수가 도착하기 전 도착해 경위를 알고 싶어 일전에 종로서에서 얻어 둔 경광등을 얹어 둔다. 밤거리의 한적한 도로를 신호를 무시하고 내달려 도착한 경찰서는 역시 여느 곳과 다르지 않게 번잡하기만 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아! 종로서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보안사에 계신가요?



“네...... 뭐, 비슷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우리 미림이는 어떻게...... 별 일은 없는 건가요?”



“네, 다행히 사전에 정보가 있어서 적발을 했기 때문에 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도 미성년자인데다가 처음 일인 모양인데, 데리고 가셔서 잘 달래 주십시오.



“아, 네...... 미림이 엄마가 오기 전에 한 번 만나보고 싶은데......”



“네, 그러시죠. 이리 오십시오.”



아이는 살벌한 분위기에 압도당해 보호실에서 쪼그린 채 앉아 있었다.



“미림아, 나 좀 보자.”



불러내는 기찬도 경찰일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일어서 책상으로 다가온다. 의자를 내 주는 기찬의 곁에 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는 미림이는 자신의 앞으로의 처지보다는 곧 부모의 귀에 이 일이 전해질 것이라는 게 더욱 못 견딜 일이었을 것이다.



“미림아, 나는 엄마가 보낸 사람이야.”



“네에?......”



미림이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기찬을 바라보고 기찬의 표정에 다소 안심한 듯 고개를 숙인다.



“음...... 나는 미림이 외삼촌이라고 생각을 해도 돼. 아저씨 이름은 강기찬이거든...... 엄마하고 성도 같잖아? 그렇게 할 수 있지?”



“네......”



“그리고 아빠가 나가시는 회사 사장이기도 하고...... 아빠가 최근에 회사를 옮기신 건 알고 있니?”



미림이는 의외였는지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기찬을 확인하고는 대답을 한다.



“네......”



“외삼촌은 그게 궁금하거든...... 미림이가 왜 그런 일을 하려고 했는지...... 엄마에게나 아빠에게 말 못할 일도 외삼촌이라면 말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미림이 편이 돼 주고 싶은데......”



“......”



선뜻 말하지 못하는 미림이를 기찬은 담배를 피워 물며 기다려 주고, 잠시 후 미림이의 말이 이어진다.



“그냥 용돈이 부족해서 그랬어요. 갑자기 요즘 들어서 엄마도, 아빠도 용돈을 안 주시니까...... 잘못했어요. 흐응,,,,,,”



역시 어린애는 어린애일 수밖에 없는 일, 앞뒤 생각 없이 저지른 일에 기찬은 자신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김비서의 집을 넘겨받은 뒤, 김비서와 지수는 앞으로의 생활을 위해 긴축을 했을 것이니, 그동안의 씀씀이가 있는 미림이는 상당히 곤혹스런 입장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 일단 나가자.”



기찬은 미림이를 데리고 구내식당을 찾아 의자에 앉힌다. 감정적으로 유약한 미림이를 경찰들이 드나드는 형사과에 그냥 앉혀 두기가 마땅치 않았던 모양이다.



잠시 후, 형사과에서 지수를 만난 기찬은 지수를 데리고 빈 사무실로 들어간다.



“기, 기찬씨...... 우리 미림이는요?”



“으응, 저쪽 식당에 잘 있어요. 우선 마음 진정하고...... 다행히 아무 일 없다니까......”



“흐흑......”



지수는 기찬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기찬은 그녀의 머리칼에서 잊었던 향기를 가슴 깊이 들이킨다.



“자, 자...... 진정하고...... 미림이도 많이 놀란 모양이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 나무라지도 말고...... 알았어?”



“네에...... 그럴게요. 흐흑......”



지수의 눈물을 닦아주며 기찬은 농담을 던진다.



“자, 자...... 요즘 선전도 안 봐? 눈물 흘리면 판다곰처럼 된다니까?...... 뚜욱!”



“칫...... 지금은 화장도 안 했는데......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래, 그렇게 웃으니까 예쁘잖아. 자, 자...... 미림이가 기다리니까 얼른 가자. 참...... 오랜만인데 뽀뽀는 한 번 해야지. 후훗......”



“아, 안 돼요. 누구 들어오...... 흐흡...... 흐으음...... 쭈우웁......”



기찬의 기습키스에 당황하지만 끝내는 기찬의 목을 마주 끌어안아온다. 부드러운 혀가 엉키고 마주 안은 팔에는 떨림이 전해진다.



“하악...... 나빠요. 한 번도 전화도 안 해주고......”



“곧 내 곁으로 부를 거야. 지금 같이 출근하고 있지? 미림이 아빠하고......”



“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겠어요. 남자들 하는 일......”



“으응, 그 냥 구경만 하면 돼. 생산과정 따위를 알아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 테니까...... 자, 일단 미림이를 데리고 나가야지.”



“네...... 고마워요. 어서 가요. 그리고 미림이 아빠한테는 말씀하지 마세요.”



“으응, 물론이지. 누님도 그저 독서실에 있는 애를 비가 많이 와서 데리고 왔다고 해.”



“알았어요.”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미림이가 지수와 함께 들어서는 기찬을 보고는 고개를 숙인다.

지수는 미림을 보자 다시 울음을 삼키고 기찬이 그녀의 등을 두들겨 달래준다.



“자, 자...... 미림아, 엄마 오셨는데...... 자, 누님도 이제 그만 해요. 애가 보는데......”



“네......”



“엄마, 잘못했어요. 흐흑......”



식당 입구, 쏟아지는 비를 피해 기찬과 두 모녀가 마주 보고 있다. 기찬은 지갑을 열어 뒤적이더니 만들어 둔 명함과 수표를 한 장 꺼내 미림이에게 쥐어주고 그것을 본 지수는 황급히 만류한다.



“어머! 애한테 무슨 그런 큰돈을 줘요?”



“아니, 괜찮아요. 미림이도 자기 용돈 알아서 관리할 줄 알 나이니까...... 그리고 이 명함은 가지고 있다가 언제든지 외삼촌이 보고 싶거나 필요할 때 전화하고...... 음...... 용돈이 필요할 때라도 대환영이니까 부담스러워 하지 말고 전화해. 알았지?”



쭈뼛거리는 미림이를 보고 지수가 채근을 한다.



“뭐하니? 아빠 회사 사장님이셔. 어서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네...... 고맙습니다. 외삼촌.”



“어머머! 얘 좀 봐. 외삼촌이라니?...... 사장님이 그런다고 너까지......”



“하하하...... 뭐, 어때서...... 내가 외삼촌 한다고 그랬어요. 자, 누님...... 갑시다. 나는 남아서 뒷정리 좀 더 하고 갈 테니까 미림이 데리고 가세요.”



“네, 그럼...... 고맙습니다.”



“외삼촌 안녕히 계세요.”



“그래...... 다음에 보자. 엄마 말씀 잘 듣고......”



기찬은 형사에게서 들어 둔 얘기가 있었다. 미림이와 연결됐던 사내가 영등포에서 컴퓨터 따위의 전자상점을 운영하는 자라는 말을 듣고 그 자를 이용할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마침 미라의 올케 최강희가 파출부로 있던 영진기업의 사장이 강희에게 계속 추파를 던지고 있다는 것에 착안, 그 사장을 올가미 안으로 몰아넣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저...... 그러면 우리 조서에 서명을 하나 남겨 주시고 정식으로 인도를 해 가시면 되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마침 제 수사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인물인 것 같아서......”



“네, 얼마든지 협조 해 드려야지요. 자, 그럼 수고하십시오.”



돌아서는 기찬의 전화가 다시 불빛을 반짝이고, 번호를 확인한 기찬은 난감한 얼굴을 하고 있다.



“네......”



“뭐예요? 정말...... 이렇게 제 자존심을 뭉개 버리셔도 되는 거예요?”



“하하...... 아, 이거 곤란한데...... 홍세미 여사...... 그럴 리가 있나? 내 조카한테 갑자기 사고가 생겨서 그랬어요. 내가 이 원수는 톡톡히 갚을 테니까 좀 이해 해줘요. 우리 이젠 그럴 사이가 아니잖아요? 얼마든지, 언제든지 세미씨가 부르면 달려 갈 세미씨 남잔데......”



“흥...... 그런 감언이설에 넘어갈 줄 알고......”



“하하...... 그 대신 내가 내일 예쁜 속옷 사 줄게요.”



“어머! 정말이에요?”



“그럼...... 내일 같이 백화점이라도 갑시다. 우리의 처음을 기념하는 예물로 바치지 뭐......”



“피...... 그런 게 무슨 예물?...... 반지라면 모를까?......”



“음...... 그러면 이제 정말 박상사님을 떠날 결심을 해야 할 건데?......”



“칫...... 그건 벌써 아까 약속했잖아요. 왜 자꾸 같은 말을 물어요?”



“아, 아...... 알았어. 어휴...... 사납긴...... 하하...... 그럼 내일 봐요. 내 사랑 세미씨......”



“피...... 알았어요. 내일 봐요.”



문득 시계를 바라보는 기찬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진다. 달콤한 말로 마담을 달래놓고 보니 시간은 이미 아침을 향해 가고 있다.



“에구...... 벌써 시계는 내일인데...... 잠은 언제 자나? 이거......”



쏟아지는 빗속을 붉은 색 지프가 경광등을 번쩍이며 내달리고 있었다. 조수석에 탄 사내는 잔뜩 풀이 죽은 채 차창만 내다보고 있고, 기찬은 가끔 그를 돌아보고 있었다.



“이것 봐. 최규철......”



“네...... 말씀하십시오.”



“너, 이 새끼...... 이대로 한강 변 구덩이에다 파묻어 버릴 수도 있어. 그 애는 내 조카란 말이다. 내가 경찰에 네깟 놈 인계받아 온 거...... 서류 한 장 찢어 버리면 그만이야. 어떻게 할래? 이대로 한강으로 갈래? 아니면 기회를 줄 테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할래?”



“뭐, 뭐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다 하겠습니다.”



이미 규철은 기찬에게 혼쭐이 났는지 코 밑으로는 경광등 빛을 받아 붉은 빛이 비치고 있었다.



“자, 두 사람이 의견을 맞춰서 내게 제공할 방을 하나 지정해요. 거기에다 최규철씨는 시설을 꾸며주고...... 내가 내일 사용해야 하니까 당장 시작해서 오전 중에 결과를 얘기해 주고......”



“네, 네...... 알았습니다. 서두르겠습니다.”



삼각지 숙박업소에 규철을 데리고 와 그 주인과 안면을 트게 한다. 방을 지정해 카메라 설치를 시키고 있는 것을 보니 영진기업 사장을 몰아넣을 우리를 꾸미고 있는 모양이고, 그 사장이라는 인물은 올 해 토정비결이라도 다시 살펴봐야 할 모양이다. 모름지기 남자라면 세 가지의 끝을 조심하라고 했다 하니 그것도 삼재라면 삼재일 터, 분명히 그 중 하나는 해당되는 사장의 앞날이 매양 고단하기만 할 터였다.



“아휴...... 무슨 비가 이렇게 내리나? 도대체......”



카이로에 돌아와 늦은 잠을 청한 기찬은 정오 가까이 돼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손님이 없어서 그랬는지 여진과 미라는 기찬의 방에서 자고 있었고, 기찬은 입을 벌린 채 자고 있는 그녀들 곁에 누워 잠을 청했었다. 여진과 미라가 굳이 이 방 아니라도 잘 곳이야 있었겠지만, 기찬이 사용하는 이 방을 자기들만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일종의 소속감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 작용했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습기 차고 무더운 날, 벗은 채로 자고 있는 둘의 모습을 보면서도 이성에 대한 유혹보다는 마치 동기간의 애틋한 마음이 드는지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리해 주고 잠자리를 배려해 담요를 덮어주던 기찬이었다. 잠을 깨니 이미 여진과 미라는 자리에 없었고, 기찬은 전화기를 확인한 뒤 복도로 나선다.



주방에는 몇 몇 웨이터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기찬에게 자리를 내주고 기찬은 늦은 식사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오늘은 날씨가 이래서 뭐...... 영업이나 되겠어요? 앉아서 좀 쉬어요. 아직 시간도 많은데......”



다시 전화기를 꺼내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최근 들어 너무 많은 일을 벌려두어 그저 원격으로 관리를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어 버렸다.



“응, 은진씨...... 나야.”



“네, 사장님......”



“지금 어디야?”



“네, 여기 송만호 사장님 계신 사무실이에요. 지금 이것저것 일 배우고 있어요.”



“으응, 잘 하고 있네. 내가 오늘은 바빠서 그쪽 사무실로 나가 보기가 어려울 것 같거든. 차근차근 잘 배워 둬.”



“네, 알았습니다.”



기찬은 또 다시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고, 신호가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으흠...... 그래, 어떻게 돼 가고 있어요?”



“아! 네...... 지금 마지막 테스트를 하고 있습니다. 거의 성공적으로 됐으니까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알았어요. 자, 나중에 봅시다.”



사채 사무실 쪽 일과 삼각지 여관에 지시해 둔 작업의 경과를 알아보고, 이내 미라의 올케 최강희에게 전화를 연결한다.



“음...... 나야.”



“네, 네...... 저, 강희에요.”



“나중에 적당할 때, 사장한테 전화를 해서 삼각지로 나오라고 해.”



“삼각지요?......”



기찬은 강희에게 삼각지 여관의 이용방법을 알려준다. 자신도 헤맨 기억이 있으니 더욱 세심하게 알려 주고는 들어가기 직전에 자신에게 다시 전화를 할 것을 당부해 둔다.



“그럼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죠? 그럼 나중에 오실 거예요?”



“어쩌면 못 갈 수도 있고...... 오늘은 마지막이 될 테니까 한 번은 사장의 요구를 받아 줘야 돼. 최대한 빼면서 억지로 당하는 듯 연기도 좀 해야 되고......”



“네, 알았어요.”



이미 기찬이 가구공장 사장이라는 것이 알려진 뒤여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찬의 행동이 이것저것 작업과 거래에 대한 지시를 하는 것으로만 보이니 그저 대단하게만 생각 될 뿐이었다.



이제 막 식사를 마치고 담배연기를 뿜어 대는 기찬에게 올 것이 오고야 만다.



“에이그...... 그저 틈을 안 주는구나. 틈을 안 줘......”



마담 홍세미의 전화였다. 난감한 표정으로 전화를 귀에 갖다 댄다.



“으응, 어디예요?”



“여기, 명동이에요. 어차피 이쪽으로 나와야 될 것 같기도 해서 먼저 나왔어요. 공연히 애들 눈에 뜨일까 싶기도 하고......”



“그래, 그럼...... 어디 백화점 근처에서 기다려요. 제가 그 근처에서 전화를 할 테니까......”



쏟아지는 빗속에서의 데이트라니 기가 막힐 일이지만, 이미 그 선이 짐작되는 만남이니 비가 내리는 것쯤이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기도 하다. 목을 잔뜩 움츠린 채 차로 달려가 올라타고는 빗물을 털어낸다.

사실 그동안 박상사와의 오해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조심했을 뿐, 카이로의 마담이야말로 팔등신의 미인이니 그녀와의 은밀한 만남이 싫을 리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저런 이유로 멀리하다보니 그것이 오히려 마담에게 자극이 되었던 모양이고, 결국 기찬에게 자신의 마음을 빼앗기고 마는 일이 벌어진다.



가구공장 사장이라는 기찬의 배경 또한 결코 녹녹치 않으니 카이로의 주변 인물들도 기찬을 보는 시선이 달라져 예전처럼 적대감정을 드러낼까 두려워 할 필요도 없어졌으니, 박상사에게 말이 들어갈 것을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는 것도 변화라면 변화일 것이다.

역시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것이 크게 틀린 말이 아닌 바에야 누구라도 선뜻 기찬의 행보에 제동을 걸만 한 사람은 더 이상 카이로에는 없을 것이었다.



약속장소에서 기다리는 마담은 비 오는 날이어서 그런지 더욱 화사한 꽃무늬 셔츠에 정장 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큰 키임에도 거침없이 하이힐을 신어 늘씬한 몸이 더욱 빛을 발하고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여기에요. 기찬씨......”



“으응, 봤어. 잠깐만......”



지나는 차에서 물이라도 튈지 모르니 차 사이로 몸을 던져 넣어 조심스럽게 길을 건너가고, 마담은 바로 손을 잡아 와, 함께 백화점으로 들어선다.



“반지부터 선물해 주세요.”



“후훗...... 그래. 어디 봐 둔 거라도 있는 것 같은데......”



“아니...... 설마...... 그럼 제가 기찬씨 바가지 씌우려고 나오라고 한 것 같잖아요.”



“이렇게 예쁜 여자를 내 여자로 만드는 일에 그 정도 바가지라면 얼마든지 쓸 만하지요.”



“호호호...... 그 말 정말이지요?”



자고로 예쁘다는 말을 싫어할 여자는 없을 테니 기찬의 공치사에 들떠 경쾌한 발걸음에 치마폭이 찰랑거린다.



“아저씨...... 음...... 커플 반지 한 쌍 보여주세요.”



보석상에 들러 주인에게 하는 마담의 요구에 기찬이 난색을 표한다.



“나, 나도 하라고?......”



“흥...... 그럼 거저 될 줄 알았어요? 저도 이 이상은 양보 못해요. 안 그러면 여진이나 미라, 세희하고 다를 게 뭐가 있담......”



새침하게 몸을 돌리는 마담을 어쩌지 못하고 반지를 손에 맞춰본다. 의외로 보기 좋은 모양에 기찬도 만족을 하고, 마담과 기찬은 커플반지를 나눠 끼고 만다.



“에이...... 이거 너무 알이 굵은 거 아닌가?”



“아니에요. 남자 반지는 알이 그 정도는 돼야 멋이 나요.”



“알?...... 큭큭큭......”



“어머! 아유, 엉뚱한 생각 하지 말고......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저리 가 봐. 속옷도 예쁜 거 있으면 사 줄 테니까......”



그렇게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담이 만족할 만한 쇼핑을 마치고 입구로 나오니 빗줄기는 더욱 강해져 있었다.



“아유, 어떻게 해요? 이젠 막 바람까지 부네......”



“저 앞에 있는 골목으로 빠져 나가지? 마담 아직 식사도 안 했을 거 아니야? 그 근처에 괜찮은 카페가 있으니까 식사하고 나는 커피나 한 잔 하지. 뭐......”



“어머! 밖에서도 마담이라고 할 거예요?”



“아! 미안, 미안...... 홍여사......”



“뭐예요? 점점......”



“큭...... 아, 알았어. 세미씨...... 그냥 장난으로 그래 본 거야. 너무 기분이 좋아서......”



“칫...... 참, 차는요?”



“그냥 백화점에 두지? 끌고 다녀 봐야 여기서 여긴데......”



바람이 들이치며 빗방울을 흩뿌리고 비를 피해 벽으로 바짝 붙어 몸을 피한다. 군데군데 여러 곳에 두 사람과 같은 처지의 손님들이 몸을 피하고 있었다.



“지금은 못 가겠어요. 바람이라도 조금 잦아지면 건너가요. 그럼......”



“으응, 이리 바짝 붙어. 더 들어 와. 옷 버리겠어......”



팔을 들어 세미의 어깨를 붙들고 바짝 끌어당긴다. 이미 젖어 버린 어깨의 피부가 셔츠 밑에서 그대로 느껴지고, 밀착한 엉덩이의 굴곡도 스커트 밑으로 전해진다. 하이힐을 신어 바짝 치켜 들린 엉덩이가 마치 놀리듯 기찬의 심벌을 압박해 온다.

혈관에 흐르는 더운 피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세미의 젖은 몸에선 김이 피어오르고, 그 몽환적인 분위기에 기찬은 한 길가 임에도 불구하고 세미를 쥔 손에 힘이 실리는 것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



“아, 아파요......”



“으응, 미안......”



세미도 마치 만인이 보는 앞에서 성행위를 하는 듯 발가벗겨진 느낌에 몸서리를 치게 되지만, 이 자극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은 알 수 없는 기분에 젖어 버린다. 스르르 감기는 눈은 다른 이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의 무의식일지도 모를 일이다.

잔뜩 발기한 기찬의 심벌을 그대로 엉덩이로 받아내며 더욱 더 기찬에게로 몸을 무너뜨린다.



“흐으응......”



기찬의 손이 부축을 하는 듯 앞으로 감기고, 세미의 팽팽한 아랫배 위에 걸쳐진다. 세미는 팔을 빼내 기찬의 손을 짚고 몸을 의지한다. 거리엔 지나치는 차들과 시커먼 아스팔트 위로 쏟아지는 세찬 빗줄기, 잔뜩 드리운 먹구름이 오래 된 흑백사진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피어오르는 물보라가 비바람 속에서 두 사람을 가려주고 비에 젖은 세미의 머리에선 향기가 피어오른다.



“하으응...... 기찬씨......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세미가 몸을 돌려 뇌쇄적인 눈빛을 기찬에게 보내고 눈을 감는다. 그대로 가슴에 기대어 오는 세미를 안듯이 지탱하고 젖은 세미의 머리칼 속에 코를 묻어 들이키는 향기로 세미를 마셔 버린다. 누구도 빗속에서 마주 안은 연인에게 관심을 두는 이는 없는 모양이었다. 저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오고 갈뿐 마치 정지해 버린 듯 애매한 시간 사이에 버려진 두 사람이었다. 과연 시간은 얼마나 흘러 간 것이었을까?



“여, 여보...... 나 좀 어떻게 해 줘요......”



“흐음...... 세미...... 사랑해......”



비록 빗속일지라도 간간이 사람들이 오고 가는 백화점 입구에서 두 남녀는 오르가즘에 빠져 버리고 그 누구도 모르는 행위의 은밀함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아직도 그들의 곁에는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비를 피하고 있을 뿐이었다.

턱 밑에서 옹알거리는 세미의 입술과 세미의 귓가에 더운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 기찬도 굳이 이 자리를 더 이상 벗어날 생각을 않는 모양이었다. 마치 최면 속에 빠져 버린 듯 거리에서 선 채로 이들은 상념 속의 섹스를 하고 있었다.



“하악...... 나...... 젖어 버렸어......”



턱 밑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기찬의 가슴을 떨어 울린다. 이제 호흡이 가빠지는 세미를 이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안 되겠어. 세미...... 그냥 비라도 맞고 가자.”



이미 눈빛이 풀려 버린 세미를 안듯이 빗속을 뛰어간다. 아무 곳이나 보이는 간판을 따라 골목을 들어서고 이미 두 사람에게는 식사 따위는 안중에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얼마나 달려왔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계산을 치렀는지도 모른 채 서둘러 거추장스런 모든 것을 떼어내 버린다.



“하악...... 여, 여보......”



“흐윽...... 세미...... 사랑해......”



격렬한 입맞춤 뒤로 기찬을 밀어 버린다. 그 위를 올라 선 세미의 사타구니 사이로 마귀 같은 음탕함이 아가리를 벌리고 기찬을 노려본다.



“사랑해요...... 당신...... 죽여 버릴 거야...... 나쁜 사람......”



알 수 없는 웅얼거림과 함께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기찬을 쥐어간다. 음습하고 더운 기운이 느껴지며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흐으윽......”



옥죄어 오는 그 기운이 세미의 섬세한 살 속에 잠긴 기찬의 심벌, 그 가득한 혈관까지도 느낌으로 전해 온다. 주름진 벽을 따라 긁듯이 눌러오는 전율이 온몸의 피를 한 곳으로 모이게만 하는 모양인지 자꾸만 자꾸만 기찬을 나락으로 몰아간다.



“죽일 거야...... 당신...... 하으윽......”



기찬을 깔고 앉아 방아질을 하는 세미의 눈은 진작 넘어가 버리고 주문에 빠진 듯 알 수 없는 옹알이만 반복하고 있었다. 높이 쳐들은 엉덩이를 찍어 내리며 그 사이로 흐르는 철벅거리는 음탕한 소리에 젖어들고 있을 뿐이었다.

한 순간 크게 몸을 휘청이는 세미의 떨림이 전해 올 무렵 기찬도 거대한 폭발로 눈앞의 광경이 한 순간 까맣게 사라져 버린다.



“흐윽...... 울컥...... 울컥......”



“하아아악...... 으으으흑...... 여보......”



품안으로 쓰러지는 세미의 전신에 비 오듯 땀이 흐르고, 비릿한 냄새마저 사랑스러운 열락의 시간은 그렇게 아득함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모든 것이 멈춰 버린 듯 한동안 그렇게 굳어 있던 두 사람도 열락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 배 고프다......”



“푸훗...... 이제 정신 좀 돌아왔어?”



“몰라요. 나쁜 사람...... 사람들 많은 데서 그렇게 흥분 시키는 게 어디 있어요?”





* * * * 모두들 오늘 한 잔 하실 거죠? * * * *



절 받으소서.



반갑습니다. 푸른별밤입니다. ^^



오늘은 지단을 부쳐서 소주라도 한 잔......



아! 시각이 약주를 드실 시각도 아니고 날짜도 오늘이 아니겠군요.



저는 자유인이라서 그 시각에도 한 잔 할 계획입니다. ^^;



그런 관계로 다음 글은 조금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졸작에 넘치는 성원 늘 놀라고 있을 뿐입니다.



이 경기에서도 다치는 이 없이, 모두 건강 해치지 않고 최선을 다 해 주기를......



물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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