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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02:58 657회 0건
007 삽입면허-7부-



“강백수...... 강백수......”



“......”



지난 밤 차윤정과의 일 이후 집으로 돌아 온 기찬은 최근 급박하게 돌아가는 자신의 주변정황과 연이어지는 정사에 적잖이 피곤했는지 꿈도 없이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노량진 언덕 위에 위치한 기찬의 집은 아파트와는 떨어진 주택지역으로 곳곳에 나무들도 제법 있어서인지 새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아침공기의 청량감은 단연 발군이었지만, 이부자리를 부여안고 여운을 즐기는 기찬의 귓전에 하이 톤 엄마의 목소리가 꽂히기 시작하면서 기찬은 눈을 비비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강백수, 일어났니?”



“으잉?...... 강백수?...... 허이구...... 노인네......”



“야...... 강백수......”



기찬은 할 수 없이 이부자리에서 빠져나와 거실로 나선다.



“아니?...... 엄마. 내가 아무리 백수라지만, 그렇게 동네방네 광고하면 뭐 생기는 거라도 있는 거요? 거 참......”



“호호호...... 백수라도 돈만 잘 벌어다 주니 괜찮다면서? 너, 오늘 심부름 좀 해라.”



“심부름이요? 뭔데?...... 나 오늘 친구 이삿짐 날라 주기로 했는데......”



“이삿짐?...... 그럼 거기 가기 전에 얼른 먼저 갖다 주고 가든지......”



“무슨 일인데?...... 뭐를......”



“으응, 엄마가 어제 물김치를 많이 담갔거든. 싸 줄 테니까 네 형 좀 갖다 줘라. 네 형수도 요즘 가게 일이 바쁜 모양이던데 반찬이나 제대로 해 먹는지 모르겠다.”



“아! 그래요? 가만...... 그럼 가게로 갖다 줘도 되겠네.”



“가게로?......”



“으응, 그냥 지나가는 큰길가에 있으니까 택시에서 내려서 가게에 주고 가면 안 될까? 집으로 가려면 한참 돌아가야 되잖아. 뭐...... 형수 차도 있는데 괜찮겠지?”



“그래, 그럼 그러든지...... 네 형수한테 전화 해 둘 테니까......”



“네. 알았사옵니다. 마마......”



잠시 후, 집을 나서는 기찬의 손에는 커다란 보자기로 덮인 들통이 들려 있어, 몹시 난감한 표정이었다.



“아...... 이거 영 스타일 구기는데...... 아파트도 들렀다 가야 하는데......”



할 수 없이 기찬은 머리를 긁으며 택시를 타기 위해 큰 길로 터덜거리는 걸음을 옮긴다.



이미 출근시간이 지난 아파트는 한적한 모습이었다. 기찬은 들통을 경비실에 맡기고 걸음을 옮겨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새삼 어제의 일이 떠오르고, 의외로 적극적으로 자신을 받아들이던 윤정의 생각에 웃음 짓는다. 이제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새댁의 몸짓에 자신도 적잖이 당황했지만, 예기치 못한 남편의 행동으로 그녀도 몹시 혼란한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아! 이것 참......”



“기왕 도와주시는 거...... 제발 사정 좀 봐 주세요. 네?”



“잠깐 기다려 보세요. 이래서 될 일이 아니고, 우선 전화부터 한 통화 합시다.”



부부와 마주앉은 기찬은 또 다시 난감한 상황에 직면한다. 이야기가 길어질 모양이라 미라의 이사를 도와 주겠다던 약속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할 수 없이 전화로 설명을 한다.



“아...... 걱정 마세요. 기찬씨...... 짐도 별로 없고 인부들이 모두 알아서 해 준다고 했어요.”



“그래? 그나마 다행이네. 그래도 난 겸사겸사 오빠하고 인사라도 하려고 했었는데......”



“참! 오빠도 마침 전에 같이 근무하던 분 소개로 오늘부터 다시 출근했어요. 후훗...... 어차피 오늘 왔어도 오빠는 못 만났을 텐데요. 뭐......”



“아! 그것도 좋은 소식이네...... 그래, 하기로 한 일이 무슨 일인데?”



“그건 저도 잘 몰라요. 오빠가 내성적이라 그런 얘기는 잘 안 해 줘서......”



“으응...... 그렇구나. 어쨌든 다행이다. 그럼 나중에 가게에서 보자.”



“네...... 나중에 봐요.”



전화를 끊는 기찬에게 시선을 맞추고 있는 부부를 보니 다시 기가 막혀 온다. 기찬의 돈에 대해서 저렴한 은행이자만을 받겠다는 말인데도, 이 집을 장만할 때 윤정의 시댁에서 모든 지원을 해 준 것은 아니었는지, 남자의 급여에서 빠져나가는 대출원금과 이자 때문에 기찬의 몫까지 당장 정리를 해 주기는 벅차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 무작정 예전 주인을 잡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말씀입니까?”



“죄송합니다. 지금 경찰에도 신고는 해 두었으니까 조만간 무슨 결과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기왕에 도와주시기로 하셨으니 조금만 더 참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오늘 이 집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듣는 사내의 목소리였다. 기찬은 사내와 눈을 맞춘다. 윤정이 기찬 자신의 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남편이 윤정을 홀대한다는 것에 배알이 뒤틀리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기왕 사태를 무마시켜 주기로 약속하고 윤정의 몸도 취한 입장이니 기찬도 더 이상 버틸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아무런 연결고리 없이 그냥 물러날 수도 없었거니와 이 사내에 대한 괜한 반발심리가 기찬의 장난기를 발동시킨다.



“좋습니다. 까짓 거...... 하지만 이대로 넘어가면 제 돈에 대한 이자도 계속 누적돼서 두 분도 점점 더 힘들어집니다. 이렇게 합시다.”



“어, 어떻게요?”



예상치 못한 기찬의 동의에 부부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 앉으며 합의점을 찾기 위해 기찬을 바라본다.



“제가 출장을 자주 하는 편이라 매일은 아니겠지만, 여기 작은 방 하나를 저에게 할애해 주시고, 제가 집에 있는 날은 제 식사도 여기서 준비해 주시는 것으로 이자를 탕감합시다. 제가 이자비용으로 하숙을 하는 셈 치면 어떻겠습니까?”



기찬의 발언에 윤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자신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내가 아예 집안에 들어앉겠다는 선언이니 자신도 모르게 남편 얼굴을 바라보게 되고, 남편 역시 신혼인 입장에 외간남자를 집안에 들인다는 것은 마땅치 않은 일이었다.

기찬은 마지막 쐐기로 예의 신분증을 꺼내 사내의 면전에서 흔들어 댄다.



“어차피 예전 주인을 잡아야 내 돈도 해결될 모양이니, 서로 협조합시다. 이거 비밀이지만, 나도 수사계통에 몸 담고 있는 사람입니다.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기찬의 신분증은 확실히 강력한 약효가 있었다. 사내의 입장에서도 예전 주인을 잡아야 하니 정보를 공유하자는 기찬의 말에 사내는 천군만마라도 얻은 듯 얼굴엔 화색이 돌고, 윤정의 반응은 볼 것도 없이 기찬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과연 정보를 공유할 것인지, 아내를 공유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아! 그러시군요? 이거 미처 몰랐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차라리 잘 됐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사내는 윤정의 속도 모르고 기찬의 말에 화답해 당장 작은방의 열쇠와 아파트의 키를 분리해 기찬에게 넘기고, 윤정 역시 내색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아파트 아래까지 내려와 인사를 하는 남편을 따라 기찬을 배웅한다.



“아저씨, 남영동으로 해서 천호동 방면으로 방향을 좀 잡아 주십시오.”



“남영동이요? 천호동을 가시려면 저쪽으로 가는 게 지름길인데......”



“네, 제가 좀 볼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기찬은 택시 안에서 지나치는 경치를 바라보며 정말 요즘 같아선 차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중에 적지 않은 돈도 있으니 구하려면 못할 것도 없지만, 백수 입장에 차를 갖고 있으면 들려 올 핀잔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박상사로부터의 일이 진행되는 대로 차를 뽑을 결심을 정리한다.



아파트 문제가 의외의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생각과는 다르게 빨리 마무리되어 늦게나마 형수에게 들러 미라에게 가 볼 생각이었다.



“아! 저 앞에 잠시만 세워 주시겠습니까? 이거, 저기 보이는 가구점에 얼른 전해주고 바로 나오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들통을 들고 가는 기찬의 시야에 가게 밖에 나와 있는 형수의 모습이 들어온다. 손님과 상담 중인지 손짓발짓을 동원해 가며 열심히 설명하는 형수의 모습에 웃음을 짓고 기찬은 형수를 놀라게 해 줄 생각인지 조심스럽게 뒤로 다가간다.



“으응? 뭐야?...... 손님이 아니라 다투는 건가?”



가까이 다가가 들어보니 분위기로 보아 끼어들 일이 아닌 것 같아 형수를 조용히 불러 물건을 전해주고는 바로 자리를 벗어나 버리고, 기찬이 몸을 돌려 택시에 오르자 형수가 달려와 기찬에게 이해를 구한다.



“어머...... 도련님, 미안해요. 하필 이럴 때 오시게 해서...... 자, 이거 차비하세요.”



“네, 형수...... 고마워요. 그리고 기왕 싸울 거면 이기셔야 돼요. 하하...... 파이팅!”



“아유, 놀리지 마세요. 지금 신경질 나 죽겠어요. 나중에 얘기해요.”



“네...... 갑니다.”



차는 다시 강변도로로 접어들고, 기찬은 미라에게 위치를 묻기 위해 전화를 꺼내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동작을 멈춘다.



“뭐야?...... 이 느낌은......”



알 듯 모를 듯 떠오르지 않는 공연한 불안감에 두고 온 물건이라도 있는지 소지품을 만져 본다.



“지갑도 있고, 다 있는데......”



이리 저리 찾아보고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원인을 몰라 불안해 하다가 문득 형수와 다투던 남자의 얼굴을 떠올린다.



“아! 그 사람...... 어디서 봤더라...... 분명히 안면이 있는 것 같았는데......”



혼자 중얼거리던 기찬은 뭔지 모를 불안감에 형수의 안위가 걱정되는지 기사에게 다시 부탁을 하게 된다.



“아, 아...... 기사님, 죄송한데요. 어디 적당한 곳에서 차를 뺍시다. 아까 갔던 남영동에 다시 가야 할 것 같은데......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아! 네, 그러세요? 하하...... 괜찮습니다. 다만 여기에선 돌릴 수가 없으니 좀 많이 돌아서 가야 되겠습니다.”



“네, 네......”



기찬은 쇠뿔도 단 김에 빼랬다고 박상사에게 전화를 넣는다. 어차피 박상사가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가며 자신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은 자신의 효용가치뿐만 아니라 박상사 스스로의 치부를 덮어둬야 하는 이유도 있었을 테니, 다소간의 어려운 부탁도 들어줄 것이라는 짐작이 있었다.



“아! 상사님, 저 기찬입니다.”



“오! 그래, 안 그래도 전화 하려던 참이었다. 지금 내부결제는 승인됐고, 조만간에 사령부에서 명령이 떨어질 거야.”



“아! 그렇군요. 정말 잘 됐네요. 저...... 그리고 상사님, 여쭤볼 게 하나 있는데요.”



“응, 뭔데?...... 말해 봐.”



“네, 제가 부대에 있을 때, 간혹 보면 민간인 복장을 한 사람들이 군용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걸 볼 수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혹시 그런 분야에서 일하던 사람들인가요?”



“음...... 글쎄다. 그건 보안부대 아이들도 그럴 수 있고, 아니면 일반 운전병들도 사용관이 참석하는 자리에 따라서 복장을 달리할 수 있는 일이라서 딱히 뭐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왜?...... 너 혹시 차가 필요해서 그러냐? 지금 차 없어?”



“하하...... 네, 아직 차가 없어서 하나 구할까 싶은데...... 급수가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제 보직에 업무용 차까지는 무리겠지요?”



“으음...... 보아하니 네가 군용 지프가 타고 싶은 모양이구나? 하하하...... 글쎄...... 네 보직 앞으로 차가 지급될지는 모르겠다만, 이 친구야...... 그렇게 되면 오히려 불편해. 일일이 차량기록 작성해야 하고...... 군용차는 대번에 표시가 나서 네 업무성격과도 맞지가 않아. 음...... 그러지 말고 차라리 하나 사서 개조해라. 조달청에 알아보면 국방부하고 연계해서 운행연한이 다 된 차량들을 공매 처분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거든. 너도 군무원 신분이니까 크게 문제될 일도 없을 테고...... 그중에 제법 쓸 만한 차들이 많아. 차량도색 다른 색으로 새로 하고, 필요하면 엔진도 확 갈아버리든가......”



“아! 그렇습니까? 그럼 상사님이 아무래도 발이 넓으실 텐데...... 한 번 알아 봐 주시겠습니까? 비용은 제가 마담에게 맡겨 두겠습니다.”



“그래, 그러자. 음...... 돈이 많이 들지는 않을 거야. 한 오백 정도만 마담에게 맡겨 둬.”



“네, 알았습니다. 충성!”



차는 어느덧 남영동에 들어서고,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택시기사를 뒤로 한 채 발걸음을 가구점으로 향한다. 여전히 화사한 모습의 미쓰진이 기찬을 맞는다.



“요즘 자주 오네?”



“으응, 형수는?......”



“잠시 나갔는데 왜?”



“아까 누구하고 밖에서 다투는 것 같았는데, 마음이 쓰여서 일을 볼 수가 있어야 말이지......”



“어이구 차암...... 야! 누가 들으면 네가 내 형부인줄 알겠다.”



“으응?...... 아! 하하하...... 그렇게 됐나? 야, 그나저나 그 사람은 누구니? 내가 안면이 있는 사람 같았는데......”



“네가?...... 아닐 걸...... 잘못 봤을 거야. 그 아저씨...... 우리 거래처 사장님인데 너 같은 백수가 안면이 있을 턱이 없지 않겠니? 호호호......”



“이...... 씨...... 너, 죽을래? 알았어. 별 일 아니면 다행이고...... 그래, 간다.”



“어머! 기찬씨...... 내가 그랬다고 삐친 거야? 일부러 다시 와서 그냥 가면 어떻게 해. 점심이라도 먹고 가지.”



기찬이 그냥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자, 놀란 미쓰진이 뛰어나와 기찬을 만류한다.



“아냐, 갈 데도 있어서 거기 가서 먹으려고...... 잘 있어.”



“그래? 그럼 할 수 없고...... 자식, 누나가 모처럼 밥 한 끼 사주려고 했더니...... 너, 나중에라도 내가 백수라고 놀렸다고 언니한테 고자질 하면 나한테 죽는다. 알았지?”



“으응? 하하하...... 그래, 알았다. 알았어. 다음에 술 한 잔 사면 고려해 보도록 하지.”



“칫...... 웃기셔...... 잘 가......”



카이로는 여전히 한낮인데도 종사원들은 바쁘기 그지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좌석일 테니 그들도 잠을 자고 난 후 정리를 한다면 이 시간이 아침이나 다름없을 일이었다.



어느새 웨이터들에게도 기찬의 존재가 알려졌는지 눈치 빠른 친구들은 알아서 인사를 해오고, 외박을 나가지 않은 채 가게에서 잔 아가씨들도 있었는지 몇몇 아가씨들도 고개를 조아려 눈을 맞춰 오는 모습들이었다.



“어머! 강하사님, 오셨어요?”



“으응?”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마담이었다.



“일찍 오셨네요? 식사는 하셨어요?”



“아, 아니요. 아직...... 그나저나 강하사라니요? 절 부르신 겁니까?”



“네, 호호호...... 사장님이 그렇게 부르라고 하던데요. 그래야 주변에서 박상사님하고 관련이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 게 되고, 자연히 시빗거리가 줄어든다고......”



“아, 아...... 그래서 그랬군요. 허허...... 알았습니다. 강하사라...... 그것 괜찮네요.”



어차피 박상사파라는 게 폭력조직은 아니니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 바닥, 이 울타리를 터전 삼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은연중 박상사의 대리인이라는 상징과도 같은 호칭이었으니 결코 손해 될 일은 아니었다.



“참, 강하사님...... 어제 모니터 앞에 오래 서 계시더니 뭔가 녹화해 두셨나요?”



“아, 아니요. 저는 아직 그 기계 조작할 줄도 모르는데......”



“어머! 그래요? 이상하다...... 그건 누가 만지지도 않을 텐데...... 호호...... 알았어요. 전 시간이 그때쯤이라서 혹시 강하사님이 녹화해 두셨나 하고 생각했어요.”



순간, 기찬의 머릿속에 벼락처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아! 맞다. 그놈이야.”



“엄마야, 깜짝이야...... 아유...... 강하사니임...... 애 떨어질 뻔 했어요.”



“아! 하하...... 미안해요. 그게 어디 있죠? 어디 한 번 봅시다.”



기찬은 마담의 발길을 재촉해 함께 모니터 앞에 다다르고, 마담은 즉시 말했던 화면을 모니터에 띄운다. 기찬이 알지 못하는 다른 화면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어느 장면에 이르자 다시 정상속도로 화면이 움직인다.



“아마...... 여기부터일 거예요. 자세히 보세요.”



“아, 아...... 네......”



그 장면은 사내들끼리만 모여앉아 있어 기찬이 이상하다고 여겼던 바로 그 장면이었고, 기찬이 기기조작을 잘못해서 그 무렵부터 녹화가 진행된 모양이었다.



“이거...... 녹음도 됐겠지요?”



“네, 물론이지요.”



기찬은 마담에게 부탁해 화면을 뒤로 돌린 뒤 헤드폰을 쓰고 다시 들어 본다.



“그러니까 너무 조급해 하지 마. 이제 분위기도 무르익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서 몇 건 더 흡수되면 그 때 가서 정리해도 늦지 않아. 박사장은 나만 믿고 기다리면 돼. 내, 나중에 한 몫 톡톡히 챙겨 줄 테니까......”



“자, 자...... 그럼 합의 봤어. 이제 그만하고 아가씨들이나 부르자고......”



그리고는 이내 계집애들이 들어오고 떠들썩하게 노는 장면들이었다. 기찬은 다시 마담을 바라보고 부탁을 한다.



“이거 따로 저한테 주실 수 있습니까?”



“음...... 그 장면만 필요하시면 따로 디스크에 저장해 드릴게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마담이 처리를 하는 동안 기찬은 생각에 잠긴다.



“그래, 생김새가 분명히 그놈 같았어. 어쩐지 안면이 있는 것 같더라니...... 박사장이라고?...... 그렇지. 미쓰진에게 물어보면......”



기찬은 즉시 가구점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낮에 형수와 다투었던 그 거래처 사장도 박사장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모니터에 나온 얼굴은 너무 작게 비춰져서 그 사람이 정확한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만약 그가 맞는다면 최근의 일에 비춰봤을 때, 형수가 사기를 당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자, 강하사님...... 다 됐어요.”



“아! 네, 고맙습니다. 어어?......”



마담은 기찬에게 디스크를 주려다가 다시 뒤로 감추며 눈웃음을 흘리고, 난처해진 기찬은 멀뚱히 바라보기만 한다.



“호호호...... 보아하니 강하사님께 상당히 중요한 물건인 모양인데 그냥 드릴 수야 없죠. 아직 식사 안 하셨다니까 함께 나가죠? 저도 아직 전인데......”



“아, 아...... 네...... 그러시죠. 하하......”



사실이 아니라면 천만다행한 일이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이미 배는 떠나 버렸을 것이다. 모니터를 통해 알게 된 사내들의 이야기와 낮에 본 형수의 태도를 종합해 본다면 이미 일은 벌어진 것이고 집은 날아간 것일 터, 지금 서둘러서 바로잡힐 일은 아닐 것이다.



자신도 이 계통에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고 자부하는 터에 사기를 치는 인간들이 그리 허술하게 일을 진행할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니 나중에 그 박사장이라는 인간을 가족들 모르게 따로 족쳐서라도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여유를 회복한다. 게다가 자신의 손에는 그 증거로 삼을 수 있는 디스크도 있으니 서두를 것은 없었다. 박사장이란 녀석은 자신이 올가미에 걸린 줄은 꿈에도 모르고 사기의 교과서대로 자기 역시 피해자인 양 형수에게 떠들어 댈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었고 그 결과를 기찬은 그저 두고 볼 뿐이었다.



“참, 아까 박상사님과 통화를 했는데...... 제가 차를 한 대 부탁 드렸거든요. 그래서 그 비용을 마담에게 맡겨둔다고 했습니다. 좀 제 대신 박상사님께 송금을 해 주십사 하고요.”



“아! 네...... 저도 들었어요. 그리고 그 차 개조도 해야 한다면서요?”



“네, 어디 잘 아시는 데라도......”



“어머! 물론이지요. 제게 맡겨만 두세요. 물장사하는 사람이 발길 안 닿는 데가 어디 있겠어요? 호호호......”



“아, 아...... 역시...... 하하하...... 그럼 비용이 얼마나 들지...... 아니, 그럴 게 아니라 마침 제가 천만 원짜리 수표가 한 장 있으니까 이것으로 송금하고 나머지는 마담이 알아서 하시면 되겠습니다. 부족하면 나중에 제가 다시 결제해 드릴게요.”



“네, 그러죠. 이거면 충분할 거예요. 걱정 마시고...... 나중에 드라이브나 시켜 주세요. 호호호......”



“아! 네...... 그러시다면 영광입니다. 하하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디서나 통하는 만고의 진리인 셈이다. 마담도 박상사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그 수입의 일부를 나누는 사이라지만, 항상 곁에 있을 수 없는 박상사와 달리 기찬은 언제든 자신의 호출에 응할 수 있는 거리에 있으니, 비록 기찬이 박상사의 부하였다고 하더라도 기찬에게 밉보여 좋을 일은 없는 것이었다.



이 점을 기찬이 모를 리도 없으니 자연스레 접근하여 교태를 흘리는 마담의 향기를 마음껏 즐긴다. 결국 자신도 미라의 아픔을 통해 이런 일에 접근이 가능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함부로 여자의 마음에 수치심이나 상처를 주어 자칫 보복을 유발해선 안 될 일이었다. 모처럼 한껏 들떠 보이는 마담과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아까의 급한 볼 일을 핑계로 자리를 벗어난다.



“가만...... 그러고 보니...... 내가 건드린 여자들 중에 내게 보복할 만한 사람은 없는 건가?”



기왕 마담과 헤어져 밖으로 나오고 나니 마땅히 갈 곳도 없어 여진에게 전화를 걸어 미라의 이사소식을 물어 본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에게 미라의 소식을 물어본다며 고래고래 악을 쓰는 여진을 달래두고 주소를 물어 효창동으로 찾아간다.



“택시!”



“어서 오십시오...... 손님......”



“네, 효창동 부탁합니다.”



“네......”



무심코 삼각지를 지날 무렵이었다. 무언가 발견한 듯 급박한 목소리로 기사를 놀라게 한다.



“아저씨! 여기...... 여기서 내려 주세요.”



“아! 네......”



거스름돈도 받지 않은 채 뛰어내린 기찬은 한참을 두리번거리더니 어디론가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고 무심히 바라보던 기사는 이내 택시를 출발시킨다.



“분명히 봤는데...... 형수였는데......”



오후 내내 형수의 일로 골머리를 썩여서인지 낮에 봤던 형수의 옷차림을 익히 알고 있는 기찬이었다. 분홍빛 물방울무늬의 원피스에 흰색 카디건을 걸치고 있던 여자가 바삐 걸음을 옮기는 것을 지나치는 택시 안에서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이렇게 걸음을 빠르게 가진 않았을 텐데...... 내가 잘못 봤나?...... 아! 저기 있구나......”



한참을 달려왔는데도 형수의 모습이 보이질 않자 기찬은 자신이 신경을 곤두세운 탓에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걸음을 되돌리던 중에 한 카페 유리창 안으로 형수의 모습을 발견한다. 형수는 넋을 잃고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간혹 손목시계를 들여다 볼뿐 시선은 출입구 쪽에 두고 있었다.



할 수 없이 기찬은 건물의 뒤편으로 뒷문이라도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 키를 숙여 골목으로 몸을 움직인다. 마침 위치상 그럴 만한 곳이 보여 열어보니 다행히 주방이어서 예의 신분증을 보이곤 손가락을 입술 중앙에 갖다 댄다.



“으흠...... 진사장, 먼저 나오셨구먼......”



기찬은 바로 뒷자리 키 낮은 파티션일지라도 자세를 숙여 몸을 감출 수 있는 곳에 앉아 귀를 기울여 온 신경을 형수가 앉은 자리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네에...... 어서 오세요.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나도 지금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중에 하나만 잡으면 줄줄이 잡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사람들을 잡는다는 보장도 없는 일이잖아요?”



“인도네시아 본사 쪽에도 내가 선이 닿는 사람이 있어서 일단 말을 해 뒀어요. 뭐......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흐흑......”



기어코 형수는 얼굴을 감싼 채 흐느끼고 있었다.



“어허...... 진사장, 진정해요. 이런다고 일이 해결되는 게 아닌데...... 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니까......”



“흐흑...... 그래요. 나중에 해결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범인을 잡는다고 해 봐야 담보로 잡은 집은 이미 날아가고 없을 거 아니에요? 이미 등본 상에 주인도 바뀌었다면서요?”



기찬은 귀가 번쩍 곤두선다. 확실한 전문 사기꾼들임에 분명한 모양이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이미 주인을 갈아치웠다면 보통 솜씨가 아닌 것이다.



“휴우...... 그러니 어쩌겠어요. 저도 피해를 입었는데......”



“박사장님이야 그래도 건재하시지만, 저는 어떻게 해요? 우리 어머니 댁을 담보로 잡혔던 건데...... 흐흑...... 네?...... 사업이랍시고 따로 나와 사는 며느리 입장을 생각해 보셨어요? 흐흑, 허엉......”



이쯤에서 뛰어나가 박사장이란 놈을 개 패듯 할 수도 있었지만, 혹시라도 중요한 정보를 흘릴 수도 있는 일이니 놈이 늘어놓는 사설을 더 들어 볼 일이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진사장 입장이 그렇지요? 이거 참......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내가 알아보고 정 안되면......”



“흐흑...... 네......”



“정 안되면 우선 진사장이 담보로 잡혔던 그 집을 내가 다시 매입을 해서라도 진사장 시어머니가 모르게 해 줄 테니까 우선 그렇게라도 합시다. 진사장 남편이야 같이 일을 당했으니 기왕 알고 있는 일이고...... 모친 속상하시게 사실대로 말할 리도 없으니 그러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 않겠소?”



“......”



“자...... 진사장 그러지 말고......”



“어머! 박사장님...... 왜, 왜 이러세요?”



“어허...... 알잖아? 내가 진보라씨 좋아하고 있는 거......”



진보라. 기찬의 형수 이름이었다. 박사장이 보라의 손목이라도 쥐었는지, 보라의 움츠리는 소리가 기찬의 귀에 들려오고 이어서 사설이 이어진다.



“진사장만 눈 감고 있어. 내가 나중에 마누라가 잊을 만하면 그 집을 아예 진사장 앞으로 해줄 수도 있어. 이만하면 내 마음 알 거 아냐? 그 집이 시가가 얼마나 나갈지는 모르지만 못해도 일, 이억은 줘야 할 것 아냐?”



“......”



보라는 갈등을 일으키는지 대꾸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실수로 날려버린 집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라지만 지금 박사장은 통정을 요구하는 것일 테고, 그것은 평생을 갈지 모르는 짐일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음...... 진사장 남편에게는 이렇게 말하자고...... 나도 소개를 잘못한 도의적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 집을 매입해서 노인네 충격 받지 않게 해 드린 거라고 말하면 되잖아? 내가 나중에 그 집을 진사장 앞으로 해줄 때야 범인이 해외에서 잡혀서 일부라도 회수할 수 있었다고 둘러대면 될 일이고......”



“하, 하지만......”



“자, 자...... 내가 앞으로도 진사장은 남처럼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나만 믿어요. 진사장도 시간이 자유로운 사람이니 뭐...... 우리만 조심하면 만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자, 이만 나갑시다. 진사장 시어른이 사는 집이 걸린 문제요. 나는 정말 진보라씨가 내 여동생 같아서 그래. 잘 생각하고...... 지금 따라 나오지 않으면 피차간에 체면 문제이기도 하니 이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할 수밖에......”



이어지는 둔탁한 구둣발소리는 박사장의 것이었다. 기찬이 보기에는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치한 스토리의 사기일 뿐이지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절박한 문제인 것이었다. 난관에 봉착한 사람에게 인정을 베풀고 그 몸을 취하는 것은 기찬 자신도 즐겨 써먹는 수법이었으니, 궁지에 몰린 이들에게서 정상적인 사리분별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기찬은 주먹을 불끈 쥐고 마음을 모아본다.



“안 돼. 형수...... 일어나면 안 돼. 따라가면 절대 안 돼......”



하지만 잠시의 터울을 두고 이어지는 하이힐 소리는 기찬의 바램과는 달리 그의 귀를 울리고 있었다.



“이, 이...... 씨바...... 박사장...... 이 놈...... 너는 내가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주고 말겠어.”



번화한 삼각지 로터리를 벗어나 뒷골목은 의외로 한적한 곳도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큰길가의 카페를 약속장소로 정해서인지 두 사람 모두 택시를 이용해서 약속장소에 온 듯 걸어서 뒤를 밟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두어 걸음 떨어져서 뒤를 따르던 형수도 거듭된 박사장의 채근에 어느덧 어깨를 나란히 하고, 몇 번인가 골목을 돌아나가 어느 건물로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한다. 기찬은 자칫 잘못해 형수와 마주칠 수도 있으니 박사장만을 따 내야 한다는 생각에 약간의 시간을 두고 입구로 향한다.



“이, 이런 씨바......”



두 사람이 사라진 입구는 다름 아닌 엘리베이터만 늘어서 있었고, 기찬은 할 수 없이 그중 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이런 시스템은 처음 보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비상버튼이며, 호출버튼을 닥치는 대로 누르고 뒤 이어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득달같이 달려든다.



“네. 무슨 일이세요?”



“아! 거긴 어딥니까? 사무실로 가고 싶은데......”



“어머! 무슨 일이신데요?”



“이, 이런...... 젠장......”



이런 일을 가끔 경험하는지 여자는 의뭉스럽게 시간을 끌고 있었고, 형수의 걱정에 침착하던 기찬도 허둥거리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지갑을 꺼내 어디인지 모르는 카메라에 비추기 위해 사방에 신분증을 들이대며 빨리 말하라고 소리를 지른다.



“방을 이용하실 거 아니면 우선 내리세요.”



“이, 이런...... 씨바......”



대안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문을 개방해 밖으로 나오고, 누군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다 한 곁에 보이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니 자동응답 시스템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지만 발만 동동 구를 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느릿느릿 나타나는 사십 대의 사내에게 신분증을 보이고 사정을 설명한다. 사내가 몇 번이고 신분증을 확인하는 동안 기찬은 드디어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낸다.



“당신, 만에 하나...... 시간을 끄느라고 이러는 거라면, 사실 확인 후에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어. 내 평생을 두고 당신 뒤만 쫓아다닐 거야. 알았어?”



기찬의 반응에 약간 당황했는지 그제서 사내는 기찬에게 대꾸를 한다.



“아, 아닙니다. 경찰 신분증은 많이 봤지만, 이런 신분증은 처음 봐서 그런 겁니다. 오해는 하지 마시고,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하기야 이런 업에, 이만한 시설을 운영하는 이라면, 경찰 관계자 한두 사람 모를 리 없을 테고 이런 경우, 나름의 노하우도 충분한 듯 여유롭게 기찬을 상대하고 있었다.



“방금 들어간 여자가 우리 군이 관계하는 사건에 소중한 증인인데 방금 유인납치를 당했단 말이오. 만에 하나 사고가 일어나면 지금 당신이 이렇게 시간 끌고 있는 것도 모두 반영될 테니까 각오해 두는 게 좋을 거요. 당신 공범으로 몰아서 아주 매장시켜 버릴 수도 ......”



“아! 그럼 빨리 타십시오. 키는 자동으로 개방되게 해 드리겠습니다.”



기찬이 의외로 차분하게, 하지만 힘을 주어 또박또박 설명하자, 사내는 낯빛이 변하며 기찬의 말도 채끝나기 전에 신분증을 돌려주며 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연이어 호출버튼을 누르고는 예의 여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방금 들어간 방을 강제 개방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바로 앞은 방문이었다. 기찬은 사내에게 손사래로 사라지라는 듯 표시를 하고 손잡이를 움켜쥔다. 얼마나 흥분했는지 기찬의 손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고 시간이 적잖이 지났으니 방안의 풍경이 어떨지 모를 일이었다.



욕실은 방금 샤워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물기를 머금은 채 문이 열려 있었고, 입구에는 박사장의 구두 옆에 보라의 하이힐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크윽......”



기찬의 앙다문 입술 사이로 격한 신음이 흘러나오고 걸음을 옮겨 방안으로 들어서자 모퉁이 너머로 침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두 사람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원초적인 모습으로 변해 있었고, 허겁지겁 젖가슴을 빨아대는 박사장과 그 행동에 약간 당황했는지 완급을 당부하는 보라의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흐읍...... 쭈우웁......”



“하응...... 잠깐만이요...... 좀 살살 해요. 아무 데나 자국 남기지 말고......”



“이, 이....... 개...... 새끼......”



기찬은 거칠게 침대로 뛰어올라 박사장에게 무차별 가격을 하고 두 사람은 느닷없는 기찬의 출현에 그만 자지러지고 만다.



“허억!”



“어머!...... 꺄.......아악......”



그저 잠깐이었다. 잠깐의 소란 후, 기찬은 이내 냉정을 회복해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고, 박사장은 이미 기절을 한 듯 침대 밑 한 구석에 흉물스럽게 너부러져 있었다. 보라는 침대보를 끌어당겨 몸을 가린 채 침대 끝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형수, 괜찮아?......”



“허엉...... 도련님...... 잘못했어요...... 허어엉...... 제가 잘못했어요......”



이유야 어떻든 외간남자와의 부정현장을 시동생에게 들킨 기가 막힌 상황이니 잔뜩 경직되었던 터에 기찬이 다정스럽게 안부를 묻자, 보라는 침대에 엎어져 오열을 한다. 하얗게 드러난 보라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찬은 보라의 옷을 가져다 덮어준다.



흐느껴 우는 보라의 곁에서 일어선 기찬은 문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전화를 넣는다.



“접니다. 기찬이......”



“으응, 그래. 어디니? 자주 전화 한다?”



“네, 볼 일이 있어서 점심 먹고 잠시 밖에 나와 있습니다. 저기...... 내부결제가 떨어졌다면 제 수사관 코드도 혹시 나왔는지 알고 싶어서요.”



“으응?...... 벌써 그건 왜?...... 가짜 갖고는 안 통하는 데가 있나 보지? 하하하......”



상대는 박상사였던 모양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자신의 수사코드를 묻는 기찬에게 박상사는 기다려 보라며 확인을 하고 있는지 잠시의 정적이 흐른다.



“어이..... 강기찬.”



“아! 네......”



“받아 적어라. 하지만 아직 일선 기관 컴퓨터에서는 확인이 안 될 거야. 확인이 필요할 경우에는 사령부 상황실로 하라고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쭉 불러주는 번호를 메모하고 곁에 있는 여관의 전화기를 들어 주인을 호출한다. 여관 주인도 무슨 사고라도 나는 것은 아닐까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 인터폰 소리에 바로 응대를 한다.



“네, 네......”



“여기 상황정리가 끝났으니까 사람 좀 보내주세요.”



“아! 네, 네......”



여관 주인은 아무래도 기찬이 미심쩍었는지 기찬을 들여보내고 나서는 이미 경찰에 연락을 해 둔 모양이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일 테니 무슨 사고가 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았는지 인터폰을 내려놓고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경찰이 들이닥치고 보라는 여전히 벗은 채로 침대 커버를 뒤집어쓰고 있어야만 했다.



기찬은 밖으로 나와 출동한 두 명의 경찰에게 신분증을 보이며 코드를 불러주고 나중에 신병을 인도하러 갈 것이라고 얘기를 한 후, 군의 일이니 심문을 일체 하지 말고 강간 혐의로 유치만 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박사장은 그렇게 경찰에 의해 깨어나 백차를 타고 사라졌고, 이제 방안에는 기찬과 보라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형수, 이제 아무도 없어. 어서 옷 입어요. 나 잠깐 나가 있을 테니까......”



“흑......”



차마 숨 쉬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다가 기찬의 목소리가 들리자, 다시 흐느끼기 시작하는 형수를 두고 기찬이 몸을 일으킨다.



“도, 도련님...... 잠깐만......”



“네...... 말해요. 아직 안 나갔어요.”



부스스 몸을 일으켜 얼굴을 내미는 형수의 얼굴은 잔뜩 울어 퉁퉁 부어 있었다.



“저...... 도련님...... 제가 알아서 이혼 할 테니까...... 제발 형에게는...... 비밀로 해 주세요. 네?...... 제가 이렇게 빌게요. 아니면 저...... 차라리 죽어 버릴지도 몰라요.”



보라는 띄엄띄엄 말을 이어가며 손을 모아 빌기 시작한다. 그 탓에 몸을 가리고 있던 천이 흘러내려 상체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모아 둔 양팔 사이로는 젖가슴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선 채로 그것을 보고 있는 기찬은 물론, 손을 모아 비느라 젖가슴 밑으로 거뭇한 방초마저 드러내고 있는 보라도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단지 두 사람 모두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가야 하는지에만 골몰하고 있을 뿐이었다. 기찬은 다시 침대에 다리를 접고 걸터앉아 보라의 손을 잡는다. 어찌 생각하면 자신이 조금만 빨리 개입했더라도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을 수 있는 일이었으니 그저 보라를 달래려는 모양이었다.



“형수, 왜 그런 생각을 해요? 다행히 아무 일 없었잖아. 그러면 됐어요. 설혹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형수 편이니까 다른 걱정 하지 말고 어서 갑시다.”



이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박사장에 대한 분노도 수그러들고, 오히려 이런 형수가 안 됐다는 생각과 어처구니없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다시 보라는 기찬의 무릎에 쓰러지며 오열을 한다.



“흐윽......”



“형수......”



보라의 삼단 같은 머리카락이 모두 기찬의 무릎으로 쏟아진다. 창백하도록 희고 기다란 목은 너무 가늘어 보여 차마 손을 얹을 수도 없었다. 기찬을 붙잡고 흐느낄 때마다 요동치는 어깨를 따라 가는 허리 밑으로 커다란 둔부도 모두 드러나 있었다. 이미 보라는 기찬에게 모든 치부를 보인 상태에 더 부끄러울 것도 없었으니 이런 이상 더 자제할 것을 당부할 바도 아니었다.



“형수......”



기찬은 손을 뻗어 보라의 희디 흰 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듯 촉촉한 피부가 금방이라도 손바닥에 감길 것 같아 손을 떼고 어깨를 잡아 몸을 일으킨다.



“형수...... 다 괜찮아...... 이제 가자. 그냥 꿈이었다고 생각해요.”



“......”



눈앞에는 짙은 색상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며 한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대로 형수를 보낼 수 없었던 기찬은 보라를 이끌어 시민공원까지 택시를 타고 나와 숨을 돌리고 있는 모양이다. 두 사람의 무거운 마음과 달리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기만 하였고, 보라의 원피스자락은 속절없이 펄럭이고 있었다.



“도련님, 이제 어떻게 하면 좋죠?”



“......”



기찬도 선뜻 뭐라고 말을 시작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 중에 보라가 먼저 말문을 열어 서늘한 눈빛을 던져온다.



“집은 사기를 당해서 잃어버리고, 도련님에게 못 볼꼴마저 보이고 말았으니......”



“......”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어요. 흐흑......”



보라는 바닥을 한 팔로 짚은 채 다시 고개를 꺾어 흐느끼고 있었다. 기찬은 얼굴을 가리고 있는 보라의 흰 손가락이 유난히 길다는 느낌 외에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버린 것처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니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한다.



“형수, 아버지 얼굴 기억나요? 벌써 돌아가셨지만, 유독 완고하신 분이라서 큰아들밖에 모르는 분이셨지. 그런 훈육환경에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엄마도 형이라면 결코 함부로 하지 않잖아요. 내 입장에서야 서운한 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철이 들 무렵부터는 한 번도 그것을 원망해 본 적은 없었어요.”



“......”



“현재하는 것은 모두가 과거로부터 오는 거라고 하잖아요. 사소한 인자 하나라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구성요소라는 생각에 오히려 그런 추억들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덕분에 나는 잡초처럼 강인한 성격을 갖게 됐고, 아쉬운 일이지만 형은 엘리트코스만을 밟아서인지 형수도 알다시피 나와는 달리 유약한 성격을 갖게 됐어요.”



“도련님......”



“집은 이미 찾을 수 없는 지경이라면 빨리 잊어 버려요. 그것 때문에 형수가 자칫 잘못 판단해서 우리를 떠난다든지 몸이라도 상하게 된다면, 형은 물론 마음 약한 엄마도 살 수 없이 고통스러워하게 될 거예요.”



“그렇지만 바로 어머니가 알게 되실 텐데...... 바뀐 주인이 당장이라도 집을 비우라고 한다면 그땐...... 흐흑......”



“이렇게 해요. 형수는 내 말만 듣고 따라주면 돼요. 내가 어디 취직이 돼서 그 숙소에 들어가야 한다고 할 테니까...... 그러면 자연히 엄마 혼자 남게 되는데...... 걱정이 돼서 안 된다고 하고 엄마를 형하고 형수가 모시고 가면 되잖아...... 집은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는 것처럼 하고......”



“그, 그렇지만 도련님은 어디에 가실 곳도 없잖아요?



“후훗...... 아니에요. 마침 거처가 한 군데 마련돼 있어요. 하숙집처럼 식사도 다 해결되니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흐흑...... 죄송해요. 저 때문에......”



“이제 그만 잊어 버려요. 내가 형수를 처음 본 게 아마 고등하교 졸업 할 무렵이었지요? 그 때 형수는 내겐 우상 같은 존재였어요. 후훗...... 사실 이건 비밀인데...... 나...... 형수 생각하면서 자위를 한 게 얼만지도 몰라요. 언젠가 집에 들러서 형수 속옷도 한 장 훔쳐 갔었고...... 군대에 가서도 철모 속에 형수 사진을 넣어 두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그렇게 형수를 생각하면서...... 그래서 그렇게 힘든 군대생활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는지도 몰라요.”



“도, 도련님......”



“후훗...... 이거 비밀이라고 말했어요. 이제 공평하게 서로 비밀 한 가지씩 나눠가진 거니까 형수도 죽을 때까지 내 비밀 지켜줘야 돼요. 알았죠? 자, 이제 갑시다. 형수도 가게에 들어가 봐야 할 거고......”



“흐흑...... 고마워요. 도련님......”



“자, 자...... 이제 그만하시고......”



“그, 그럼...... 거기는 어디예요? 도련님이 가 계실 수 있다는 데 말이에요. 그거 거짓말이잖아요? 괜히 저 때문에......”



“아, 아니에요. 정말 있어요. 형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그럼 저하고 함께 가 봐요. 도련님이 잘 계셔야 저도 안심이 되잖아요. 그래야 저도 염치없는 일이지만...... 그렇다면 도련님 말씀대로 따르고 열심히 살게요.”



“허허...... 참, 정말이라니까......”



한강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니 흑석동은 금방이었다. 이동하는 동안 박사장에 대한 문제는 기찬이 알아서 처리하여 보라에게 접근 못하도록 조치하겠다는 이야기로 안심을 시키고 보라도 왠지 그런 기찬이 더 할 수 없이 미더워 점차 편해지는 마음이었다.



“자, 여기예요. 저기 위에 1505호......”



“아니, 여기에서 어떻게 알아요? 올라가 봐요. 진짜인지......”



“허헛...... 참, 형수도...... 진짜라니까......”



윤정이 집에 있든 없든 이미 방을 쓰기로 합의한 상태이니 꺼릴 것은 없었다. 잠겨있는 문을 따고 들어서니 마침 윤정이 없었는지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이내 방문을 열고 들어선 기찬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으나 지척에 형수가 있으니 내색을 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하숙을 하겠다고 말을 해 두었지만, 이부자리까지 갖다 두었을 거라고는 생각한 적도 없었고, 신혼부부들에게 기대할 일도 아니었던 것인데 보아하니 윤정이 혼수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이부자리가 한 곁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기야...... 침대에 익숙한 사람들 같으면 이부자리를 쓸 일이 없기도 하겠지......”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거실을 돌아 본 보라가 방 안으로 들어선다.



“도련님, 그나마 가까이 계실 수 있어서 다행스럽긴 한데 정말 죄송해요. 그럼 반찬 같은 건......”



“아! 여기서 다 해 줍니다. 형수는 그런 신경 안 써도 돼요. 자...... 형수, 그러지 말고 좀 앉아요.”



맨바닥에 달리 깔아 줄 것도 없으니 기찬은 자연스레 이부자리를 한 옆으로 펴서 보라에게 앉을 것을 권하고, 그 위에 몸을 걸치는 보라는 왠지 조금 전의 상황이 떠오르는지 얼굴이 달아오른다. 얼굴이 붉어진 채 잠시 정적이 흐르고 괜히 머쓱해진 기찬이 헛기침으로 정적을 깨뜨린다.



“으흠......”



“저...... 도련님...... 부탁이 있어요.”



“네, 형수..... 말해요. 듣고 있어요.”



“전 도련님만 믿을게요. 정말 비밀을 지켜 주실 거죠?”



“아! 그럼요. 형수, 나 못 믿어요? 그래서 나도 내 비밀 얘기 해 줬잖아요. 하하......”



“네, 도련님, 고마워요. 그럼......”



보라는 카디건을 벗어두곤 부스스 몸을 일으켜 원피스 단추에 손을 갖다 댄다. 기찬은 몹시 당황하여 보라를 만류하기위해 팔을 잡는다.



“어, 어...... 형수 뭐하는 거야?”



하지만 보라는 오히려 차분한 목소리로 기찬을 안심시킨다.



“도련님...... 이미 도련님도 제가 왜 그래야 했는지 이유를 알고 있지만, 어쨌든 부정한 형수임에는 틀림이 없는 일이잖아요? 제가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할 짐이기도 하고요. 도련님은 저를 안심시키려고 그런 우스갯소리도 하시지만, 앞으로 제가 어떻게 도련님을 똑바로 보고 살 수 있겠어요?”



“형수......”



“제가 도련님 앞에서 옷을 벗는 것은 벌써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 되어 버렸잖아요? 도련님말씀처럼 정말 저하고 비밀을 공유해 주지 않는다면 저는 하루하루가 지옥일 수밖에 없는 일이잖아요? 저, 이미 형에게는 부정한 여자예요.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형과 살면서 도련님을 보고, 어머니를 모시겠어요. 이제 도련님만 허락해 주시면 앞으로 남은 삶은 도련님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래요. 저, 형에게도 잘 하고 어머니도 열심히 모실게요. 네?...... 도련님......”



“형수...... 저, 정말 꼭 이래야 되겠어요?”



“네...... 제발......”



보라의 간절한 심정을 기찬이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자신의 은밀한 비밀을 누군가가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유로운 삶이 가능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의 평화를 누구보다도 간절히 원하는 기찬으로서는 구성원으로서의 보라의 위치를 지켜줘야만 그런 모든 것이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보라는 기찬에게 진정한 비밀의 공유를 원하는 것이었다.



“휴우...... 그래요, 우리 사랑하고 살아요. 난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앞으로도 형수 편이라는 것만 잊지 말아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오늘처럼 바보 같은 짓 할 생각 말고 무조건 저하고 상의하는 겁니다. 알았죠?”



“흐윽...... 네에......”



“자...... 이젠 더 이상 울지도 말고...... 내가 사랑하는 여자 눈에서 눈물 흐르는 것도 싫어요.”



“네...... 도련님...... 흐읍...... 흐으응......”



무언가 말을 하려는 보라의 입술을 덮어 자리에 누이고 검은 머리칼 사이로 드러나는 앙증맞은 귓바퀴를 애무해 준다. 그럼에도 낯설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는지 더러 부딪치기도 하는 치아 사이로 살을 내어 주는 보라를 들이마신다.

만지기도 아까운 형수의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제 그 형수의 몸에 체중을 실어 떨림을 진정시키고 희고 기다란 목으로, 봉긋한 젖가슴과 그 돌기에도 입술을 옮겨가며 고이고이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아악...... 도련니임......”



입술이 보라의 배에 이르러 고개를 들자 열망과 경계가 엇갈린 시선으로 기찬을 바라본다. 이내 기찬은 고개를 숙여 비경으로 향하고 보라는 경계의 몸짓으로 다리를 닫는다. 힘주어 강제하긴 싫었다. 닫혀있는 형수의 다리를 들어 풍만한 엉덩이 위로 허벅지에 입술을 가져가 정성을 들이길 얼마...... 이미 비경은 거기에 있었다.

다리를 모아 접은 상태에서 도드라진 음부의 살집에 기찬의 혀가 닿자 보라는 이미 열락의 상태였고, 촉촉이 젖은 살집에는 윤기마저 흐르고 있었다.



“형수, 사랑해요.”



“저도 사랑해요. 도련님...... 어서, 어서 사랑해 주세요.”



기찬은 쥐고 있던 허벅지에서 손을 떼고 다리를 열어주는 보라의 배 위로 몸을 싣는다.

꿈틀거리는 실핏줄이 가득한 기찬의 뜨거운 상징에 보라의 서늘한 손가락이 와서 닿고, 이내 촉촉한 샘으로 이끌어 기대에 가득한 시선을 기찬에게 보낸다. 보라의 입에서 단내가 날 즈음, 이미 보라의 얼굴은 기찬의 가슴에 파묻히고 활처럼 휜 기찬의 허리 밑 용두는 힘차게 보라의 몸 안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하아아악...... 도련니임...... 드, 들어왔어...... 요.”



“으흑...... 응, 형수...... 이제부터 형수하고 나는 한 몸인 거야. 지금...... 봐. 형수도 봐야 돼.”



“으흑, 그래요. 이제부터...... 도련님과 저는 한 몸이에요.”



기찬의 응석인지 굳이 쳐다보라는 말에 보라도 애정 어린 눈으로 기찬을 바라보고 고개를 들어 시선을 아래로 돌린다.



“사랑해, 형수...... 정말 사랑해.”



“고마워요. 도련님...... 차라리 이대로 모든 게 멈췄으면......좋겠어......”



“후욱...... 후욱......”



기찬의 허리놀림이 시작되면서 보라는 말을 채 잇지를 못하고 눈자위를 넘기기 시작한다. 기찬이 들고 날 때마다 그의 심벌을 따라 분홍빛 속살이 따라 움직이기를 얼마인지 모른다. 두 사람의 땀으로 젖은 몸이 크게 한 번 경련을 일으킨 후, 다시는 움직이지 못할 것처럼 쓰러져 부둥켜안은 채 떨어질 줄을 모른다.



“아차...... 형수, 어떻게 하지? 안에다 해 버렸는데...... 괜찮은 거야?”



“흐윽...... 가만히 있어요. 제발......”



“후후...... 뭐라고?......”



“하윽...... 움직이지 말라니까...... 도련님...... 이제 보니 순 장난꾸러기...... 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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