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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0:22 369회 0건
#01



"일어나."

눈을 뜨고 학교를 가면 또 다시 고통스럽고 지옥같은 나날이 반복... 잠깐, 나 분명 자살하지 않았던가?

"일어나라고, 임마."

뭐지? 자살은 꿈이었나? 아니지, 그럴리가! 그런 끔찍한 악몽이 있을 리가 있나.

"이 자식이! 정신 든거 다 아니까, 일어나라고!"

설마... 자살에 실패한건가? 나는 치료를 받고 혼수상태 같은 것에서 방금 막 깨어난건가?

"아주 소설을 써라, 소설을. 당장 안 일어나?!"

"일어났습니다!"

계속해서 윽박지르던 상대의 말에 놀라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일어나서 눈을 뜨고 주위를 보니 온통 하얗다. 그 뿐이었다. 온통 하얗고 하얄 뿐이었다.

"넌 죽었다."

단순명료하군...

"예. 자살했죠. 여긴 지옥인가요?"

"오호! 예상외로 침착한 반응이네?"

상대는 놀랐다는 듯이, 그리고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당신도 죽은 건가요? 여긴 어디죠?"

상대는 피식 웃었다. 상당히 여유가 넘치는 표정이다.

"여긴 어디도 아니야."

??? 무슨 말이지. 상당히 난해한데. 그보다 첫번째 질문에는 대답조차 해주지 않는군.

"첫번째 질문에 대답하지. 난 신이다."

우선 상대가 내 속마음을 읽었다는 것에서 한번 놀라고 신이라는 말에 두번 놀랐다.

하지만...

"당신은 신이라기엔 형체가 인간인데요?"

가깝다, 도 아닌, 말 그대로 남자의 형체를 하고 있었다.

"난 무엇도 될수 있지. 형체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 니들이 그저 삶에서 한가지 취미를 가지는 것과 같은 이치지."

"하지만 신이라면 더욱 크고... 으악!"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한 괴물의 모습이 되었다.

"이 모습이 마음에 드나?"

어마어마한 덩치의 그 괴물은 콧김을 뿜으며 말했다.

"아, 아니요."

내 말에 그는 다시 남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한 것이지."

그렇게 말한 신은 담배를 한개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신이 담배도 피시나요?"

신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담배? 이게 왜 담배지? 담배라는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닌가?"

"하, 하지만 지금 신께서 피시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 만든 담배와 같은 것이 아닌가요?"

신은 진심으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갓난애기와 유교를 논쟁의 대상으로 입씨름 하는 것 같군."

무슨 의미지?

"간단해. 넌 지금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거지."

"저기... 이해가 안되는데요?"

신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게 됐군요.

"넌 닭이 시초인지 계란이 시초인지 니 눈으로 확인한 적이 있나? 혹은 기록이 있냔 말이다. 너희들의 모든것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머릿속에 있었던 것들이다. 이해가 되나?"

"예... 어느정도는요."

더이상 어려운 얘기로 입씨름하기가 싫어 대충 대답했다.

신은 씨익 웃더니 담배를 마저 피웠다.

"이곳이 어디인것 같나?"

오로지 하얗고 하이얄 뿐인 공간. 사실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곳에 오래있으면 정말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이다.

"굳이 따지자면 지옥에 가까울 것 같네요."

"같은 말을 반복하게 만드는군."

신은 머리에 손을 얹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무슨 뜻이죠?"

"천국과 지옥이란 단어, 그리고 그 곳이 어떠한 곳인지... 누가 그 기준을 정한거지? 내가 내려가 누군가에게 전언이라도 내린 거라고 생각하나?"

"윽...!"

신의 말에 나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 대답을 한건지 알수 있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곳은 단지...

"죽게 되면 오는 곳... 인 건가요?"

그제서야 신은 씨익 웃으며 대답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또 뭐가 틀린거야?!

"이곳은 죽은 자들이 오는 곳이지. 그것도 삶에 대한 강한 미련이나 분노가 남은 자들이 말이야."

미련? 분노? 그럴리가! 삶에 대한 애착따위 진즉에 없었고 분노마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져버렸다.

"미련이 남지 않는 녀석은 없다. 아무리 좋은 삶을 살았더라도 미련은 남게 되지. 그리고 분노는 쌓이면 쌓일수록 다른 형태의 감정으로 표출되지."

"후... 믿을 수 없어요. 그저 전 포기한 것 뿐이에요."

"그것도 분노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지."

말장난인가? 이젠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저 신이란 작자 혼자서...

"말이 심하군. 진지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신한테 말이야."

저 말을 하면서도 신은 웃음기를 지우지 않고 있다.

"좋아요. 그럼 이제 한가지만 질문하죠."

"앞으로 너는 어떻게 되는가 말인가?"

이미 예상했다는 그의 대답.

"후... 예, 맞아요. 이제 저는 어떻게 되는거죠?"

신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날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하늘을 -과연 하늘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바라보며 말했다.

"댓가를 치뤄야지."

"역시나... 지옥에 가까운 곳... 맞잖아요."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날거라 생각했나? 아직 어리군."

고작 고등학생입니다...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통달한 척, 깨달은 척 하더니 고작 한다는 변명이 그거뿐인가?"

이제 신이라는 자가 나의 머릿속을 헤집는 것이 슬슬 열받기 시작했다.

"고작 같은 나이때의 또래조차 어쩌지 못한 니가 내게 화를 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신의 말이 비수가 되어 심장을 후벼파는 것만 같다.

"넌 지금부터 남은 자들의 고통을 공감한다."

"???"

"너의 판단으로 인해 슬퍼하는 인간들이 가지는 고통을 나눈다는 뜻이다.

나를 위해 슬퍼해줄 사람들...? 벌치고는 너무나도 가벼운 것 아닌가.

사실 그런 벌이라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흠... 자신을 위해 슬퍼해줄 사람 따윈 없다는 건가?"

"속마음 읽는건 어떻게 안되나요?"

"칭찬으로 듣지."

신이 씩 웃으며 한발짝 다가온다.

"역시 아직 넌 어려."

그렇게 말하며 신이 내 가슴 언저리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윽!"

그러자 묵직한 무언가가 내 몸 속에서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고 잠시 후 신의 손에는 생물학 시간에 종종 보았던 심장의 모양을 한 무언가가 쥐어져 있었다.

"심장 맞아. 니 것이지."

심장이 꺼내어 졌는데도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나?

"무슨 헛소리야? 넌 이미 죽었잖아."

아, 참!... 그렇지. 당연한 사실을...

"꽤 징그렇게 생겼네요."

"그렇지?"

"왜 그런 모양으로 만드셨나요?"

"모든 것을 견디는... 너희들이 가진 것 중 가장 신성한 부분이야. 그것을 모욕하다니, 생각이 짧은거냐? 아니면 멍청한 거냐?"

둘 다 같은 말이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어쨋든! 댓가를 치르는 건가요?"

"무덤덤하군. 어떠하든 상관은 없지."

긍정이라고 판단한다.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군. 하지만 그래도 의심이 드는 건 사실이다. 과연 나를 위해 슬퍼해줄 사람 따위 있을까?

있다고 해봐야 부모님 정도? 그래봐야...

"마음의 준비를 하는게 좋을거다. 수많은 인간들이 거쳐간 역사가 깊~은 의식이야."

피식.

농당은...

신의 손에 담긴 나의 심장을 바라봤다.

공급이 되지 않음에도 심장은 뛰고 있었다. 일정한 속도로... 그 순간, 저릿저릿한 고통이 내 온몸을 후벼파기 시작했다.

"시작된건가요?"

"응. 아까전부터..."

"생각보다는 견딜만하네요. 그냥 정전기 수준? 제가 그랬죠? 절 위해 슬퍼해 줄 사람따위 없어요."

"이 고통은 너의 지인들의 고통이다. 너와 한번이라도 마주치고, 말을 섞고, 뇌에 너에 대한 기억의 조각이 남아있는 자들이 느끼고 있는 고통이지."

뭐든 상관없지.

"다음으로 너의 친구들이 느끼는 고통이다."

어느 순간 신에게서 표정이 사라졌다.

"이봐요. 저한테 친구 따위가... 크윽! 뭐, 뭐야. 저기, 크윽! 이거 좀 이상한거... 아녜요? 잘못... 됐다구요!"

신의 눈이 감겼다.

"인간이란 생물은... 정말 놀랍지."

크윽! 무슨 여유를 부리는거야!

"니가 어떤 여학생에게 마지막 순간, 저주를 퍼붓든 내뱉은 말... 전해졌다. 눈으로, 피부로, 가슴으로... 저며들었다.

무슨... 크으악! 고, 고통이 점점 심해져.

"그 여학생이 느끼는 고통이라고 할수 있지."

말도 안되는 소리! 난 누군지 얼굴도 제대로 못 봤다고!

"꽤 고통스러울거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지. 마지막이다. 너의 부모라는 인간들이 느끼고 있는 고통이다."

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형용할 수 없는, 마치 천둥 번개가 무한하게 나를 향해 내리치는 고통이 온몸을 감쌌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으으으아아아아아악! 허허허헉! 크.. 사... 살려... 크아아아아아, 으아아악!"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정신을 잃지 않으니 더욱 고통스럽다.

죽을 것 같다.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죽을 것 같나? 하지만 넌 이미 죽어있지. 죽은 자가 느끼는 고통은 산 자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불변의 진리지."

신의 말이 가슴을 후벼파듯 저민다.

이 고통이 꼭 징벌이란 의미가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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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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