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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1:03 524회 0건
-게임 속으로…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청명한 하늘이다.
푸른 하늘에 선명한 하얀 구름이 보였고, 그 중간 사이로 정체불명의 새들이 날고 있었다.

‘여긴…?’

아픈 몸을 억지로 일으키자 넓은 초원이 보였다.
절대 대한민국에 있을 수 없는 넓디넓은 초원이었다.

‘난 아까 전만 해도 번개에 맞아 기절했는데….’

아까 전의 일을 떠올리며 머리를 긁적인 나는 ‘될 대로 돼라.’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한 채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비록 이상한 초원에 왔다지만 분명 한두 명쯤의 사람과 만날 수 있다는 기대 하에 무작정 걸어간 것이었다. 그러면 이곳에 어딘지를 알게 되겠지.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잠시 후에 알 수 있었다.

“크르르르르르….”

“헉! 뭐야?!”

나의 앞에 등장한 거대한 괴물. 그것도 눈이 3개였고, 팔은 4개, 그리고 다리는 6개인 거대 곤충 괴물이 유령처럼 슬그머니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괴물은 머리라고 짐작되는 부위를 휙휙 돌려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정말 실감이 있어서 두려울 정도였다.

‘뭐야? 주라기 공원이라도 찍는 거야?’

다행이도 그 괴물은 가까이에 있는 날 눈치 채지 못한 듯,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에 기회를 포착한 나는 슬금슬금 걸음으로 괴물에게서 벗어났다.
하지만 내 앞에 등장한 또 다른 녀석 때문에 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건 또 뭐다냐?’

나의 앞에 등장한 또 다른 녀석은 악마처럼 박쥐 날개를 지닌 거대한 장신의 남자였다. 그 남자는 붉게 혈충 된 두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마침 내 뒤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곤충 괴물을 발견했는지 두 날개를 크게 퍼덕이며 뛰어올랐다.

“우아~”

그 남자가 10m 넘게 도약을 하자 나의 입에서 나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감탄사는 무시 받았는지 크게 도약한 남자는 곤충 괴물 머리 위에 올라타더니 그대로 주먹을 내뻗어 곤충 괴물의 머리를 박살냈다.



단 일격. 곤충 괴물은 머리가 터지는 동시에 곧바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 옆으로 그 남자가 살며시 착지하며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내려다보았다.

‘뭐하는 거지?’

지그시 남자를 주시하자 남자는 내가 안 보이는지 날 무시하며 곤충 괴물의 시체를 일자로 간단히 갈랐다. 그런 다음 그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헤집기 시작했다.

‘욱! 저거 뭐야?!’

속이 울렁이는 것을 느낀 나는 입을 막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곤충 괴물 시체 속에서 무언가를 찾지 못했는지 그 남자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원래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저 남자를 쫓아가보자!’

저 남자가 날 의식하지 않는 것이 조금 불안했지만 여기에 혼자 있는 것도 그러하니 난 남자를 뒤쫓기로 하였다. 잘만하면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

남자의 뒤를 따르면서 느낀 것은 ‘뭔가 잘못됐다.’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가 가는 곳마다 괴이한 괴물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그 괴물들을 남자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해치운 것이었다.
판타지 영화를 찍기엔 너무나 많은 괴물들의 숫자였고, 너무나 생생한 현실감이다. 괴물들의 피에서 느껴지는 혈향에 절로 인상을 찡그러질 정도니 더 뭘 말하랴?

“이제 좀 사람 사는 곳으로 돌아가자아~!”

나는 남자가 내 말을 안 들어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괜히 투덜거렸다. 신기하게도 남자는 내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무언가 이상해서 남자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눈앞으로 손을 휘두르기도 하고, 그 남자의 몸을 툭툭 쳐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남자는 나의 그런 행동에 무시할뿐더러 아예‘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였다.
그래서 지금 뭔가 잘못되었다는 위화감을 있는 것이었다.

‘이거야 원, 다른 세상에 떨어진 것 같으니….’

아까 전의 괴물들도 그랬고, 이 비상식적으로 넓은 초원도 그러했다.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있어 너무 이질적이었던 것이다.

‘핫! 드디어 도로를 발견!’

그렇게 남자의 뒤를 따르며 투덜거리는 동안 꽤 멀리 이동했는지 초원 저 너머로 조그마한 길이 보였다. 콘크리트로 만든 길이 아닌 그저 바닥을 평평하게 만든 시골 바닥의 길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해도 감지덕지다. 까닥하다간 그 넓은 초원에서 괴물들과 함께 밤을 보내게 될 테니까.

‘마을이다!’

남자와 함께 그 길을 얼마 정도 따라갔을까? 소로의 끝에 하나의 마을이 보였다.
그리고 그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중세시대의 집들처럼 그런 형상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완전히 촌마을이군.’

마을의 촌스런 모습을 보니 이곳엔 TV나 컴퓨터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응? 저 사람들은?’

나와 남자가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각 집들의 문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그들은 이곳 마을 사람들인지 저마다 마을에 들어선 남자를 환영해주며 반겨주었다.
하지만 나의 감각을 묘하게 거슬리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마을 사람들의 생김새였다.
놀랍게도 그들은 내 옆에 있는 남자처럼 등에 한 쌍의 박쥐 날개를 가지고 있었으며, 어떤 이는 이마에 뿔이 달려있었다.

‘뭐야, 저것들은?’

혼란스러운 정신을 부여잡으며 멍하니 남자와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손짓으로 대화를 할 뿐이지 입으로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들 벙어린가?’

입이 옵션이 아닌 이상 분명히 말할 법도 싶은데, 희한하게도 그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짓으로 이러쿵저러쿵 형식으로 대화를 나눌 뿐이었다.

“아무튼 참으로 희한하구나.”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말해보지만 남자나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내 말에 신경쓰지 않는 듯한 눈치다. 남자뿐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나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같았다.

“에휴! 좀 만 쉬자.”

정신적인 혼란과 피로 때문에 피곤하였다. 그래서 난 마을에 있는 집들 중에서 그나마 제일 화려하게 보이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보통 때라면 무단침입이라 하여 어느 누군가가 날 막을 것이 분명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나를 아예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니 나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끼이익

그렇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내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집 안에 엄청난 미모를 지닌 여자 한 명이 의자에 앉아 커피 비슷한 것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검은 머리칼에 붉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고, 입고 있는 옷은 블루 계열의 원피스였다. 그리고 그 원피스 바깥에는 늘씬한 종아리와 팔뚝이 보여 보는 남자로 하여금 절로 감탄사를 일으키게 만들었다.
다만 문제라면 그녀의 등에도 아까 그 남자처럼 박쥐 날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만….

‘호오? 이게 웬 떡이람?’

터벅터벅 그 여인에게 걸어갔지만 그 여인도 마을 사람들처럼 날 ‘없는 사람’으로 취급한 모양인지 내가 다가와도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더 가까이서 보니까 매우 예쁘네.’

속으로 감탄사를 터트린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여인의 머리 위로 손을 댔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 위로 요상한 글자 하나가 떴다.

‘응? 세리스?’

여인의 머리 위에 뜬 글자는 우리의 한글로 세리스라고 표명되어 있었다.

‘세리스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그렇게 얼마 간 고민하자 난 그 세리스라는 글자를 어디서 보았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베놈이라는 게임의 몬스터 도감에서 레벨 2000이라는 무지막지한 보스급 몬스터에게 달린 이름이었던 것이었다.
조금 진중하게 생각해보자 세리스라는 글자와 레벨 2000, 그리고 그 밑으로는 아름다운 여성형 몬스터가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하하하…하하.”

나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나의 눈앞으로 반투명한 직사각형의 창이 나타났다.
그 창안에는 이러한 글씨가 쓰여져 있었다.

「※공지. 저희 베놈을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시는 여러분께 일단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오늘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업데이트가 있기 때문에 잠시 게임 운영을 중단합니다. 그러하오니 4시가 되기 전에 로그아웃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GM운성-」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내가… 온라인 게임 속으로….”

내가 하려던 베놈이라는 온라인 게임. 그 게임 속으로 내가 들어오고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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