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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1:05 481회 0건
-접신(接神)-

난 글을 쓰다가 또다시 책상에 엎어졌다. 그 순간은 언제나 어지럼증과 함께 밀어닥쳤고, 그렇게 쓰러지는 시간은 겨우 5분에서 10분 사이….난 머릿속이 텅텅 비어 버리고, 온 몸의 생기는 어느덧 달아나, 그렇게 맥없이 책상에 엎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뒤, 난 누가 깨우는 것처럼 벌떡 일어난다. 침을 좀 흘리고, 정신이 멍하긴 하지만, 난 곧바로 안개가 걷히듯이 맑아져 오는 기운을 느낀다. 그게 나의 이상 증상이다. 난 혹시나 이게 간질의 초기증세가 아닌가 싶어, 지난 달에는 병원에도 다녀왔었다.

‘간질이기도 할 거야. 허구한날 섹스에 미쳐 사니, 간질에 발작도 오겠지! 뭐는 안 오겠어?’

아내가 농 삼아 놀렸지만, 병원에 다녀온 나로서는 자못 심각한 지경이었다. 의사는 CT촬영이나 MRI를 권했고, 나도 그러마 하고 예약을 하기까지 했다. 별로 머리를 쓰는 법은 없었지만, 그래도 지병으로 고생하며, 가산마저 탕진하다 죽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머나먼 앞날의 일이고, 죽음에 대한 것은 생각해 보질 않고 있었기에, 이렇듯 급작스럽게 닥쳐온 불안감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이 나이에 혹시 죽을 병이라도 걸렸다면 어쩌나 싶기도 했고, 남겨질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은근히 치솟기도 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보험을 들긴 들겠구만.’

그렇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렇게 쓰러졌다가 일어나면, 한 밤중 인데도 불구하고 졸리기는커녕, 정말 신들린 것처럼, 지금 되돌아 봐도, 정말이지 맑은 정신상태를 유지한 채로 글을 써 내려 갔다는 것이었다. 누구는 난해한 그림까지 곁들여 인물들의 상관 관계와 플롯까지 이리저리 선을 그어대며 준비를 마쳐도, 정작 글을 쓸 때 헷갈리기 일 수 라고 들 했지만, 그렇게 쓰러지고 나서는, 마치 준비된 듯이 밀려 나오는 글발을 어쩌질 못했다. 시간이 모자라 타이핑이 어려울 정도로, 머릿속에서는 자판으로 쏟아 부어질 단어들이 줄줄이 대기하는 그 뿌듯함…..그렇게 마친 글들은 온라인 상으로 업로드 되기 무섭게 리플이 날라 들었다. 내 스스로 대가리를 쥐어 짜면서, 질질대며, 썼던 글들은, 올리기 전부터 좋은 반응이 있기를 기도하건만, 항상 기대치에는 못 미치는 우스꽝스런 결과를 가져왔으니 말이다.

‘이거 쓰세여.’

간호사가 내미는 동의서를 보면서 나는 죽기직전에나 써야 할 이런 무시무시한 글귀의 동의서를 어찌 검사 정도 하면서 써야 하는가에 대해서 반문하고만 싶었다.

‘별 이상 없겠죠?’

의사 양반에게 던지는 나의 질문은 어쩌면 나 스스로를 향한 위안인지도 몰랐다. 웅웅 거리는 MRI(핵자기공명단층촬영기)의 집체 만한 원통 안에 슬슬슬 들이 밀어진 내 대가리 속을 의사들이 지금 보고 있을 거란 생각에 불안한 생각마저도 사진에 찍힐 수 있을까라는 되도 않는 상상을 난 하고 있었다. 검사 전에 주입된 그 놈의 조영제가 뇌 속의 실핏줄들을 낱낱이 도드라지게 하고 있을 것이고, 소머리 고기를 썰듯이, 의사들은 나의 뇌를 썩둑 잘라 놓은 것처럼 단면을 차례대로 찍을 것이었다.

‘수고 하셨습니다.’

‘어떻든가여?’

‘뭐 자세한 것은 분석이 끝나봐야 알겠지만 서도, 아까 촬영 시에 잠깐 보니, 별 이상은 없는 것 같더군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게 오히려 건강에 더 해롭습니다.’

얼마 있질 않아서 검사 결과가 나온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옷을 갈아 입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있어서 그런 어지럼증이나 쓰러짐은 도저히 찾을 수도 없었고, 단지 밤중에 글을 쓸 때, 그것도 자주 등장하는 감초 같은 분위기도 아니며, 특별한 경우에만 발생하는 것이 더 의심을 사게 하고 있었다.

‘의사가 뭐래?’

‘별일이야 있겠니?’

아내는 그래도 살 맞대고 산다는 것으로 인해 걱정이 들기는 하는 모양 이었다. 나는 이틀 후, 병원을 다시 찾아갔다. 사람들 틈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나처럼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어째서 병원에 왔는가 하는 시선을 자꾸 느끼는 통에 자리에 제대로 앉아서 기다리기에 눈치까지 보이고 있었다.

‘윤석준씨?’

‘네.’

‘여기 사진을 좀 보고 얘기하죠.’

‘무슨 이상이라도?’

‘아니, 뭐 꼭 그렇지는 않은데…’

‘그럼요?’

‘암튼 여기 한번 보실래요? 이 부분이 뇌의 정면에서 조금 틀어진 측두엽에 해당하는 부위 인데요. 지금은 뭐 걱정할 상태는 아닌 것 같고….대개 뇌의 용적과 그 주위의 상태로 볼 때, 사람마다 조금 차이가 있긴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측두엽 부분의 상태가 일정 범위 안에는 들어와 있는데, 조금 위축된 감이 들어서 말이시죠. 검사 소견상으로 볼 때, 현재 경색이 진행되고 있는지, 아니면, 원래의 상태가 그런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구요. 그리고, 별달리 해마 위축이나, 낭종, 혹은 이상혈관질환의 흔적도 없는 걸로 봐서 시급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은 아닌 듯 싶습니다.’

‘아니 그럼 선생님 말씀은, 그러니까 뇌가 쭐어 든다는 말씀인가요?’

‘뭐 그런 셈이죠. 그렇다고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쭈그러 드는 것은 아니고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다거나, 정신노동에 과다한 집중을 요구하는 시간이 연장된다든가 할 때, 나타나는 뇌의 일정부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사 이상이나 일시적인 탠션(Tension:부분적인 긴장) 일수도 있습니다. 다른 부위에 비해서 보시는 것처럼 조금 색깔이 틀리죠? 이것은 그 부위의 체온이 다른 부위에 비해 조금 높다는 걸 말해 줍니다. 만일 경색이나 위축이 진행되고 있다면, 그건 적신호의 성격일 수도 있고요. 경과를 좀 지켜 보도록 하죠. 되도록 일 이외에는 신경을 써야 할 껀수를 줄이도록 애쓰시고요. 일주일 후에 EEG 테스트(뇌파검사) 받으시는 거 잊지 마시고….., 그리고 나서 경과를 살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EG 테스트라뇨?’

‘아, 뭐 긴장하실 것 까지는 없습니다. 뇌파를 상태 별로 예를 들자면, 각성뇌파, 수면뇌파, 비인강뇌파 등등을 검사하는 거죠.’

‘근데 이런 검사는 왜 자꾸 하게 되는 겁니까?’

‘그냥 과정이죠. 본인이 의심이 되기는 해도, 가족 중에 간질 같은 병력은 없다고 기재하셨는데, 맞죠?’

‘네.’

‘그럼 걱정하실 것 까지는 없습니다. 한달 후에 소견상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와다 검사나 브레인 SPECT(뇌단일광전자방출단층촬영)정도는 해 볼 수 있겠죠. 연락 드리겠습니다.’

의사는 그런 검사들의 종류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원래는 간질 환자의 병발 부위를 정확히 추적하기 위해 수술 전에 시행하는 검사들인데, 뇌의 대사부위에 있어서의 변화를 측정하거나, 뇌의 우성반구, 즉 언어중추가 소재하는 반구를 형식상 확인하는 검사라고만 했다. 그를 통해, 만에 하나라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병발 질환의 예방 차원에서 반드시 해야 되는 것들 이라고 해서, 나는 그러려니 하면서 예약을 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딸깍’

‘석준씨, 안녕 하세여?’

‘아니 이게 누구야? 혜원이 아냐?’

집에 들어섰을 때, 나를 반기는 사람은 다름 아닌 혜원이 였다.

‘미국에서는 언제 들어왔어? 공부는 다 마치고?’

‘말도 말어. 저 미친년! 아주 똥꾸녕에서 돈이 삐져 나오는 줄 알고 있다니깐!’

‘그건 무슨 말이래?’

아내의 핀잔 속에는 그녀에 대한 부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어디 많이 아프세요? 병원 가셨다고 언니가 그래서….’

‘아프긴, 그냥 기초 검진 차, 갔다 왔는데 뭘…..근데 한국은 어쩐 일로, 공부는 다 마쳤어?’

‘아뇨. 그냥 접고 들어왔어요.’

아내는 나를 앉혀놓고, 혜원의 귀국에 대해서 입에 침을 튀어가며, 열심히 전달을 했다. 학교 때, 심리학을 전공하다가 자신은 의사가 되어야겠다며, 돌연 유학을 떠나버린 그녀의 행보에 주위의 사람들을 놀래 키더니, 이번에는 그 어렵다는 의대 공부도 홀연히 접고, 귀국했다는 사실을 두고, 아내가 나무라는 것이었다. 사실 집안이 넉넉하고, 주변에 남자들과의 소문도 별로 없었던 그녀였기에, 결혼 어쩌고 핑계를 대며 자빠져도 뭐라 할 사람 없었지만, 그녀는 공부가 더 좋다며, 이성에게는 별 무관심 이었다. 그런 그녀가 밥 먹기보다 더 좋아한다던 공부를 접고 들어 왔다는 것은, 특기할 만한 사항 이었으며, 앞으로 뭘 할 것인가가 더 관심의 초점이었다.

‘저년이 아주 대가리가 삥 돌았지 뭐야?’

아내는 눈을 흘기기 까질 한다.

‘왜? 신랑될 사람이 양코뱅이 라도 되남?’

‘어째 들어온 지나 알어, 당신?’

‘아니!’

‘점 친데요 글쎄, 내가 그래서 미아리에 가서 돗자리 깔고 있으라고 그랬어. 간판에다 미국 유학파 점집, 이렇게 쓰면 대박날 거라구…..내 참, 어이가 없어서……’

‘정말이니?’

그녀는 그냥 웃기만 했다. 그녀는 미국에서 죽기 살기로 공부를 했단다. 외국 아이들에 비해서 체력도 딸리는 판국에, 줄줄이 이어지는 시험에 정말 죽고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하는 그녀. TV에서는 한국에서 대학 다니다 미국으로 유학 와서 영어도 되고, 학교 수업도 제대로 따라잡는다는 드라마의 스토리는, 말짱 거짓말 이란 걸 알게 되었단다. 토플 점수만 높다고, 한국에 있을 때, 학점 관리나 잘했다는 것만 가지고, 용기백배 하여 달겨 들고 보니, 현지의 아이들도 날고 기기는 마찬가지 였다는데,

‘그렇게 차이가 나?’

‘암요. 갸들도 고등학교까지 날리던 아그들만 모아 놨는데, 쟁쟁하더라니깐여. 시험 기간에 날밤을 며칠 째 까도 꺼떡도 없어요. 암만 기억력이 좋아도 남의 나라 말에, 남의 나라 글짜라서 그런지, 걔네들 처럼 책을 통째로, 강의 내용을 달달 외우기란 정말 어려웠죠. 그래도 오기가 있어서 인지, 저 잘 버텼거든여.’

‘그런데?’

‘어떤 교수님의 연구과제 정리를 도와드리다가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앉았나 하는 생각이 언뜻 들더라구여. 그래서 뒤도 돌아보질 않고 들어왔죠.’

‘무슨 일로?’

‘맨 처음에는 별로 신경도 안 썼죠. 해부학 실습 때, 우리 팀 앞에 놓인 시체가 바디백에 담겨 있었고, 첫 날, 제가 그걸 열어 보지도 않고, 그 위에 손만 얹어 놓았었는데…..그 사람의 생전 모습이 언뜻 스쳐 지나가는 거였죠. 전 괜한 나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소산이 아닌가 싶었는데…..장난 삼아 제가 교수님께 저 여자, 산속에 버려졌던 여자가 아니냐고 하니까, 눈이 휘둥그래 지시는 거 아니겠어여? 그 날부터, 주구장창 그 시체랑 씨름 하는 사이에, 그녀가 살던 곳, 사랑했던 사람, 주변 등등의 것들이 새록새록 스며올라 오는데 미치겠더라구여. 기어이 학점은 넘길 만큼 받았지만,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 잊으려 했는데….’

‘그랬는데….’

‘교수님의 심부름으로 연구 자료 정리를 도와 드리고 있었죠. 그 중에 어떤 여자의 파일이 손에 잡히는데, 그 느낌이 요상하더라니깐여.’

‘어떻게 요상했는데?’

‘교수님과 무척 가까운 느낌이 들어 살펴 보니, 교수님의 성함과 같은 거 아니겠어여? 그래서 물었죠. 이 파일의 주인이 교수님의 안사람이 아니냐, 그리고, 혹시 지금 뇌종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져.’

‘그게 맞았어?’

‘교수님께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으시더라구여. 어떻게 알았느냐고 말이져. 그래서 난 이름도 확인하질 않고, 느낌이 오는 대로 말씀 드렸을 뿐이라고 했는데, 믿지는 못하시더라구여. 그 당시, 교수님께서는 집중최면 이라는 분야를 연구하고 계셨고…..’

‘집중최면은 뭐래?’

‘그건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외과적인 손이 닿지 못하는 부위를 최면을 통해서 탐험해 들어가는 거죠. 예전에 영화로 만들어 졌던 마이크로 특공대란 영화 아시져? 그것처럼 환자에게 일단 자신의 병발 부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을 하져. 그 다음에는 수술을 할 수는 없지만, 마치 수술을 하는 것처럼 그 과정을 상세하게 계속 반복해서 환자에게 주입시키고, 나중에는 최면을 통해 진짜 그 부위를 헤집고 들어가는 것처럼 최면에 들어가는 거에여.’

‘그게 무슨 효과가 있지?’

‘최면을 통해서 그 병발 부위에 도달해서는 T임파구나, 백혈구, 그리고 지금 복용하거나 주입되고 있는 치료제의 성분과 활동이 집중적으로 몰리게끔 환자 스스로 암시를 하게 되여. 일종의 가상 전투를 진짜 전쟁처럼 변모 시키는 거죠. 대개 그렇진 않지만, 개중에는 그런 치료의 덕택인지는 몰라도 종양의 부위가 수술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현저히 감소해 들어간다는 보고가 있기도 하져. 막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환자들이 해보는 발버둥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을 거에여. 근데, 병원에는 무슨 이유로?’

‘왜, 나도 진찰해 주려구? 혜원인 이제 의사도 아니잖어? 점이나 봐주면 모를까?’

나의 농지기에 세 사람이 다 웃고 말았다. 그 때, 앞에 앉아 있던 혜원이가 나의 손을 꽉 붙들었다.

‘어머, 너 미쳤니? 남의 남편, 손은 왜 붙들고 난리래?’

‘왜, 난 좋구만. 혜원이 같이 이쁜 점장이가 내 손을 착 붙들어 주니, 기운이 빡 나네그랴.’

‘저 놈의 조둥아리! 때와 장소도 모르고, 주어 섬기기는!’

내가 기운이라는 단어만 썼는데도 아내는 그 의미가 저 멀리까지 내닫고 있음을 눈치채는 모양이다. 귀신이 따로 없다니깐? 하여간 눈치 하나는 백 단이야, 헐…..

‘석준씨, 요새 어지럽죠? 그것도 밤에만…..’

‘엥? 그걸 어떻게?’

‘요즈음 밤에 뭐 딴 일 하세여?’

‘아니, 뭐 별로….’

난 글을 쓴다는 사실을 아내에게도 알리질 않고 있었기에,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얘, 뭐하긴? 거 있잖아? 지저분한 싸이트 돌아 댕기면서 오만 잡년 밑구녕 훔쳐보는 거 있잖아! 아주 이골이 났어요, 글쎄…..얼마나 밝히면, 골이다 흔들릴까…..’

그녀는 나의 손을 잡고 있으면서도 말이 없이 나의 미간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많은 영혼이…..기다리고 있어여……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려고……그건 슬픈 노래 같기도 하고……’

‘얘, 그게 뭔 말이니? 나 괜시리 무서워 진다….’

‘…….점점…..더 많은 영혼이 오고 있는 게 느껴져요….’

난 놀라서 나 스스로 손을 잡아 당겼다.

‘혜원아, 정신 차려! 웬 뚱딴지 같은 소리는?’

‘아니에요. 제 말이 맞을 거에여. 영혼의 세계에서도 이곳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부류들이 있어여. 어떤 혼령은 자신의 살았을 적 재능을 물려 주어, 기가 막힌 음악을 연주하게 한다거나, 생전의 화풍을 그대로 유지한 그림을 그리게 한다 랄지, 또는 자신의 못다한 얘기를 집필하게 하는 경우도 있져. 만일, 그 창구가 열려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 소문은 인간 세계보다 무척 빠르게 퍼져 나가서, 쉴 새 없이 몰려 들게 되여. 사랑과 영혼이란 영화에서 오다메가 영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영혼들이 꾸역꾸역 모여 들잖아여? 그거랑 같은 이치 라구여.’

‘근데, 저 쓰잘데기 없는 인간이 무슨 영험한 구석이 있어서 영혼이 모인다구?’

‘잘은 모르겠어여. 서울에 와서 제가 지금 사사를 받고 있는 선생님께서 이런 경우를 접신이라고 하더라구여.’

‘접신?’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일반인들 중에 혹은 전혀 예술 방면의 경험이 없던 사람이 폭발하듯이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데, 그 사람들 사이에서는 종종 이런 현상에 의한 결과로 예측된다고 했다. 믿을 수야 없었지만, 그 영혼들은 해당되는 사람의 영혼 한 구석을 전세 내듯이 비집고 들어가, 자신이 건네고 싶은 것들을 그 사람의 탤런트를 이용해서 뿌리고 온다는 얘기였다. 그림이면, 그림, 음악이면 음악, 문학이면 문학……그 공통적인 표출현상이 바로 내가 현재 겪고 있는 그런 어지럼증, 그리고, 번뜩이게 되돌아 오는 정신상태, 마지막으로 그것이 결집되어, 자동기술 이라는 영혼의 리모트콘트롤 기능처럼 뿜어져 나오는 문화적 앙상블들…..

‘서양에서는 강령회 라는 것이 인기를 끌던 시기가 있었어여. 사기꾼들도 많았지만, 개중에는 진짜 영혼을 불러오는 영매도 있었다 하데요. 영매는 그 사람을 잠시 자신의 몸 안으로 불러들여, 단순히 보여주는, 일종의 전령사 역할 이지만, 접신은 달라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능력을 이용해서 혼령이 하고 싶은 행위를 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져. 혼령들은 끊임없이 밀려들고, 종국에 가서는 그 인간 본연의 심성이 그 영혼들의 영역 확장의 피해자로 남게 된다는 게 문제라고 할 수 있져. 미쳐버릴 수도 있고…..언니, 자리 좀 비켜 줄라우?’

그녀는 나와 방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아내는 불안한 얼굴 이었지만,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녀를 따라 컴이 있는 서재 방으로 들어갔다.

‘여기죠?’

방문을 닫고 그녀가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아마도 방문에 귀를 대고 있을 아내 때문인 것 같았다.

‘응….’

‘….야한 글 쓰시져? 요즈음…..’

‘맞아, 어떻게 알았어?’

‘좀 된 거 같네….한 2년쯤? 지나간 영혼의 흔적을 본다면요….’

‘요즈음 더 심해진 것 같긴 해. 병원에서는 그냥 뇌의 긴장도가 지나치다는 말만 했는데, 그럼 그게…’

‘맞아여. 몸은 알고 있져. 영혼이 들어왔다 나간 자리의 흔적을 말이져. 그리고, 불안해 지기 시작하는 거에여. 나날이 자신의 공간을, 영역을 파먹듯이 내어주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왜 하필 나야?’

‘그건 이제부터 알아 볼 거에여. 틈이 없지 않고서는 혼령들이 다가올 리는 없거든여.’

‘내가 너무 포르노를 좋아해서 그런가? 그것도 변태로만…..’

‘어떤 포르노를 좋아하시는 데여? 종류가 있을 텐데, 가령 예를 들어, DP, 4Some, Swap, Orgy, Anal, SM, Taboo…..등등 많이 있잖아여!’

‘응, 난 주로 근친이랑, 삼섬, 아날을 즐겨 보는 편이지.’

‘제가 한번 볼께여. 바지 좀 벗어 보세여.’

‘엥? 바지는 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 가야져, 밖에서 소리만 질러서야…..’

그녀는 의자에 앉은 채로 내 바지를 벗겼다. 팬티도 마저 벗으라는 눈짓에 나는 마지못해 팬티를 내렸다. 그러나, 부끄럽다기 보다는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 듯한 드라이한 느낌 때문에 좇은 그냥 멀거니 쳐져 있었고……그녀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내 좇을 쓰다듬었다.

‘자, 이제부터 눈을 감고 의자에 편히 기대세여. 잠이 든다는 기분으로…..’

그녀의 길고 가는 손 매무새와 손톱의 날렵한 느낌들이 스멀스멀 좇을 타고 전해지고 있었으며, 나는 눈을 뜨지도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져 갔다. 어둠 속에서 날아다니는 뜻 모를 형상들은 그녀의 손짓으로 인해 점차 형체를 갖추어 가고, 나는 다시금 한 밤중과 같은 어지러움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또 어지러워……억!’

그녀가 갑자기 내 좇을 입으로 물었다. 아니, 물었다기 보다는 입안으로 돌쳐 넣었다는 게 옳을 게다. 그녀는 천천히 내 좇을 입안에서 굴리기 시작했다.

‘가장 흥분이 되는 장면을 떠 올려 보세요…..’

그녀가 잠시 입 안에서 좇을 빼낸 뒤에 명령했다.

‘그러니까…..음…..한 여자를 두 남자가…… 그것도 무지막지한 좇대가리를 휘두르면서……., 울부짖는 여자를……… 위아래 에서 포개어 누르며…….., 보지랑, 항문을…….. 갈갈이 찢어놓는 거야…….. 여자는……..여자는……. 아파서 우는 것이 아니라……, 결국……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거지.’

난 그녀가 내 좇을 입에 물고, 아내처럼 쭉쭉 소리를 내며 빨아준다든가 아니면, 핥아 주는 것이 아니라, 입 안에 넣고, 고개를 빙글빙글 돌리는 것이 자못 의문스러웠다. 그것은 마치 맷돌을 천천히 돌리면서 주문을 외는 것과도 같은 동작 이었기 때문이었다. 난 계속해서 주절댔다.

‘…..음……항상…….여자의 얼굴은…….. 볼 수가 없게 되어 있고……., 남자들도 다리랑, 튼실한 엉덩이만 보여…..난 그게 언제나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여자의 똥구녕과……. 보지에……. 위아래로 좇대가리가 쑤셔 박혀서 들락일 때………, 그 사이로 보여지는……. 여자의 회음부의 살이……… 빤질거릴 정도로 잡아 당겨진…….. 그 팽만감이 날 미치게 하거든……여자는……그러니까….울부짖다가…..웃다가…..꺽꺽 대기도 하고……욕을 하기도 해……그러나, 언제나 씰룩대며…..진저리를 떠는 엉덩이로 봐서…….여자는 무진장 흥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아! 난 미쳐 돌아가신 다니깐…그런데, 왜…옆으로 누워서 보는 것 같지?....…으그극!’

그때였다. 빙빙 돌리던 내 좇을 빨아먹을 듯이 목구녕 안쪽으로 끼워 넣는 그녀의 흡인력이 무자비한 통증을 불러왔다. 점점 도를 넘쳐 올라가는 나의 흥분….그녀는 아내의 가장 절친한 후배인데,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좇물을 처 멕여도 된다는 것인지….그녀는 순식간에 나의 흥분을 끌어올리다가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입 안에서 좇을 털어냈다. 그리고, 양 손을 합장하듯이 내 좇을 부여잡고, 펌핑 비슷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맷돌 휘돌리기는 입에서 손바닥으로 전이 되었지만, 그 동작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자, 어째서 옆으로 비틀어 보이고 있는지 말해 줄께여. 석준씨는 지금 방 바닥에 누워 있는 거에여. 들리는 여자의 비명과 섹스의 환락음에 잠이 깨서 그저 멍하니 바라다 보고 있었던 거져. 왜 일어나질 못하고 있을까여? 그건….바로 석준씨가 너무 어린 아기이기 때문 이에여. 어른들은 석준씨가 잠에서 깼다손 치더라도 아무 것도 모를 줄 알았겠죠. 제가 보고 있기에 그 여자 분은 석준씨의 어머님이고, 위에 올라가 있는 분은 아버님, 그리고,….밑에 있는 분은…..월남에서 전사하셨다던, 말로만 듣던 그 외삼촌 이구여. 아시겠어요? 하나, 둘, 셋! 이제 모든 것이 튀어 나올 거에요! 자!’

그녀의 말대로 나는 공중으로 미친 듯이 내 좇물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난 아직도 눈을 뜨질 못하고 있었고, 이제사 명확해진 그 섹스의 광경이 바로 어머님과 삼촌의 근친상간에다, 아버님까지 가세한 삼섬임을 깨닫게 되었다. 머릿속을 텅텅 비워대는 것처럼 좇물은 나의 뇌 속을 깨끗이 씻어내는 느낌이었다.

‘헉헉…..’

나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녀 앞에서 사정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 보다, 나의 유아기 시절, 무의식 적으로 망막에 남아버린 그 섹스의 도화경이 기억에서조차 찾을 수 없건만, 이렇게 자라서까지 나의 전신을 흔들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난 더 당황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석준씨 뇌 속의 틈은 기억에도 없겠지만, 그 옛날의 섹스를 아무런 가감 없이 받아들였던 흔적이에요. 애기들은 언어가 없고, 지식이 형성되기 이전이라,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영화처럼 기억해 버리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에여. 그 잠재해 있던 섹스의 환영이 포르노를 대하면서 솟구쳤고, 그에 대한 갈망의 틈바구니에, 그 전사하셨다던 외삼춘의 혼령이 자리를 틀고, 그 틈을 있는 대로 벌려 이 지경을 만든 거에요. 애들 앞에서는 물도 가려 마셔야 된다는 옛말, 하나도 틀린 게 없어여. 아마 세 분은 그 당시, 깨어있는 석준씨가 아기라는 사실 때문에 무시한 채, 진한 섹스놀음에 빠져 계셨을 거구여.’

난 그녀의 손과 얼굴에 온통 좇물을 쏴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미안하다는 말도 못한 채, 넋을 놓고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휴지를 뽑아, 축 늘어진 나의 좇대와 자신의 얼굴과 손을 덮고 있는 내 좇물을 차근차근 닦아냈다. 그리고, 어린 아이의 바지를 다시 입혀주듯이, 나에게 팬티와 바지마저도 입혀주고…..나는 눈을 감은 채,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갔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아내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제 병원에는 안 가셔도 될 거에여.’

나는 아득해져 오는 의식 속에서 방금 전 보았던 그 섹스의 환영을 뒤쫓았지만, 어쩐 일인지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고 있었다.

-끝-




P.S.: 한번쯤은 공식적으로 말씀 드려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렇게 이어서 적어 봅니다. 그간의 일들에 대한 저의 쪼잔한 생각들 입니다


한동안 나는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중독행위를 그쳐야 하질 않을까 하는 생각에 빠져 지냈다. 그건 중독이 분명했다. 아무런 이해관계나 연관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내 글에 대한 의견이 교환되고, 온라인 이라는 상황이 연출하는 그 작위에 매료되어 지나온 세월들을 돌아다 보면서, 이 일을 얼마나 계속할 수 있는가에 물음표를 던진 때문이었다. 글을 쓰는 동안 행복했다고만 말 할 수는 없었다. 시간과 제약을 넘어야 하는, 그 하고 많은 거짓말과 잔업에 대한 핑계…..그리고 언제나 찾아오는 그 수면부족과 노곤함.

‘당신 무슨 걱정 있어?’

아내가 수없이 물어 온 그 질문. 난 없다고 하면서도 또다시 멍 하니 생각에 잠긴다. 머릿속을 뒤흔드는 글에 대한 상념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덜그럭거리면서 소리를 낼 때면, 버릇처럼, 나는 하얀 백지를 화면에 띄우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글을 써 오면서 내 스스로 스토리에 빠져 허우적대던 때도 있었다. 전철을 타고 오가는 사이, 귓가로 흘러 나오는 음악과 새벽에 마무리를 한 글로 인해,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감정의 흐름은 쉽사리 맥을 끊지 못했다. 세상의 돌아가는 구석들이 모두 섹스로 보이던 초기에는, 겁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렸었다. 손에 칼을 쥐고, 내 멋대로의 상상과 오만으로 난도질을 해나가면서, 나 스스로 다음 번에는 좀 더 깨끗한 마무리를 보여주는 살인을 저지르고 말거야 라며 다짐하는 연쇄살인범의 심리상태처럼, 글을 쓰던 초기의 내 모습은 혼자 곱씹어 봐도 웃긴 짬뽕 이었다. 아마도 난 스스로의 방자함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우쭐대는 심정으로 파생된 스타 의식에 빠졌을런지도….누구는 나를 가리켜 야설을 쓰기 위한 벤치마킹의 대상이라며, 내 신분과 맞지도 않는 격찬을 보낸 분들도 있었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있었지만, 난 아무래도 슬며시 올린 글이라도 꼼꼼히 찾아서 읽어주는 폐인이 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섹스라는 화두를 언제나 배배 꼬아 틀어대는 나의 잔머리에 글을 읽어 주는 분들을 우롱까지는 아니더라도, 편식하게 만든 건, 악랄한 나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야설 이라는 바닥에 발을 담그고 있었으면서도, 겉으로는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글 속에서 야설의 한계를 불분명하게 조작하여, 글을 읽는 사람들을 잘못된 오솔길로 빠져들게 하면서 쾌재를 부르곤 했으니 말이다. 그저 그런 평범한 섹스놀이를 글로 옮기면 그 뿐 아니겠는가 라고 스스로 단순해져야 한다는 다그침을 한적도 많았다. 몽둥이 질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스스로 뭐나 되는 것처럼 자기도취에 빠졌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고….자기반성 이라고 하기는 좀 그래도, 난 점점 글을 쓰면서 두려움 같은 것을 느꼈다. 처음엔 글을 올리면서 농구 골대를 향해 3점 슛을 날린 심정으로 조마조마하게 기다렸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무뎌져서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조차 척박해지는 못된 인간이 되어 감을 보면서 말이다. 나 스스로의 벽과 영역을 싸잡아 거두어 들이면서도, 오히려 그 영역의 테두리를 기꺼워하며, 즐감 하는 해괴한 습성을 지니게 된 나. 하루하루 시간과 세월을 좀먹어 들어가면서도 나의 오만함은 자지러 들 줄을 모른 채 뻗어가고, 난 그게 나 자신을 두렵게 만들 줄은 정말 모르고 있었지 싶다. 한동안 많은 시간, 같이 했던 친구는 술자리에서 나를 보며 그렇게 얘기 했었다.

‘정말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게 뭔지, 넌 쫌 알아야 돼.’

‘내가 뭐 잘못 산 거라도 있어 뵈냐?’

‘아니, 넌 지금, 점점 밖이 안 보이도록, 담장을 예전보다 더 높게 올리고 있잖니?’

담장의 비유. 아마도 나를 우물 안 개구리라고 표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실, 대가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을 빌미 삼아, 강권적으로나마 내 글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며, 서슴없이 남들의 코 앞에 글을 들이민 것은 사실 이었다. 내 글속에서 당신들도 나와 같은 의지, 생각, 사상, 흥미에 대한 코드를 공유 내지는 그 속으로 혼취 되어야만 한다는 주장을 은연중에 주입시키려고 애써왔던 것을 그 친구가 단적으로 표현한 것일 게다.

‘야!, 야설에다 그것도 취미 삼아 긁적이고 있는 마당에, 뭔 놈의 대대한 의미?’

‘넌 취미라고 얘기하지만, 나 제수씨에게 들어서 아는데, 너 허구 헌날 일한다고 하면서 날밤 깐다며? 남들에게는 별 거 아니라고 하면서, 너 스스로는 언제나 칼끝에 서 있는 것처럼 좌불안석 인 거, 내 모를 줄 아냐? 그게 니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하디?’

‘뭐 그렇게 까지야…’

그러나, 그건 거짓 이었다. 대가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온라인의 생리에 점점 빠져들어 이제는 글을 쓰지 않고는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는 금단증상으로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 것처럼……난 나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이기고자 경쟁적으로 글을 써 왔던 것 같다. 남의 글을 주의 깊게 읽지도, 그 곳에 남겨진 리플을 살피지도 않지만, 나는 게시판 이라는 공간에 내 아뒤와 글이 단순한 키 조작으로 자리를 기어이 차지한다는 그 상황을 너무 사랑했다. 어떤 이들은 악플에 상처 받고, 저조한 리플에 좌절하여 터를 등지기도 했건만, 나는 그런 것에 의연한 전쟁광 이었다. 그저 마음속에는 누가 죽건 말건, 다치건 말건, 신경 쓰려는 마음도 없이, 전진,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라는 심정으로,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이라며, 글을 썼으니 말이다. 막말로 눈이 뒤집힌 채로 글을 써 왔던 시간들……

‘이제 그만 만나.’

‘왜? 내가 잘못한 거 라도 있니?’

‘그걸 몰라서 물어? 너 나랑 있었던 얘기, 인터넷에 올렸지?’

‘………’

‘니가 사람이니? 아무리 알아보는 사람 없다고, 교묘하게 글 속에 비벼 넣었다고 쳐도, 당사자인 내가 척 보면, 그게 누군지 금방 알아 채는데……’

난 그런 놈이었다. 누군가 나의 레드 콤플렉스에 대해 우려의 표시를 한 적이 생각나는 순간 이기도 했다. 언제나 공산주의 어쩌고 하면 튀어 나오는 18번 대사.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질 않는 철저한 빨갱이…..난 어쩌면 일탈의 순간마저, 즐거움이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한 동기를 부여 받기 위해, 연연해 온 이른바, 빨갱이 전쟁 광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걸 모를 그녀들이 아니었다. 살인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어느 작가의 고뇌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야 문학의 범주에서나 있을 수 있는 클래식이었다 쳐도, 나란 사람의 그런 행위는 지탄 받아야 마땅한 지지래 였다. 섹스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섹스, 그 까이꺼 하면서 초월적인 자태로 위장했던 것은, 정말이지 나 스스로 생각해도 위선의 극치가 아닐 수 없었다.

‘혹시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많지는 않아도 내 글에 대한 관심을 비즈니스로 연장해 보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는 친절한 분들을 나는 개 패듯이 후드려 쳐 내쫓는 게 대부분 이었다. 아무리 시절과 세상이 바뀐다손 쳐도, 한국의 실정과 윤리의 잣대 하에서, 야설이 그 전신을 대중과 함께 열어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움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분들에게는 야설이 대중화의 물결을 타고, 한 글자도 변질됨이 없이, 활자화 되는 그 날을 기다린다는 억지주장으로 담을 쌓던 나의 오만불손……그건 글을 쓰기 시작한 초기의 희망사항 이었고, 지금도 갖고 있는 나의 바램일 뿐인데, 그걸 이유 삼아, 성의껏 다가오시던 그 분들을 그렇게 냉대하며, 돌려보낸 나의 태도는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울 따름이다. 야설이 물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윤색과 각색, 또는 표현이 순화(?!)되어야 하는 과정을 솔직히 지금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글에 관심을 갖고 제의를 해오시는 분들에게 나는 작은 성의라도 보여야만 했다. 그러나, 난 우위를 점하고 있고, 기득권을 쥐고 있다는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그 분들의 제안을 무슨 거지동냥에 침 뱉듯이 떨쳐 버렸으니, 후회가 밀려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속으로야 모바일 서비스나 성인용 컨텐츠를 위한 순화된 소프트 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느냐는 제안에 옳다구나 하고 덤벼들고 싶었지만, 나 스스로를 깎아 가면서까지, 글을 써 준다는 것이 어쩌면, 어떤 부분에서는 시류에 야합하는 치졸한 면을 보이는 것 같아 스스로 그런 이유를 방패 삼아, 숨어 있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그로 인해 나는 순수(?)하게 야설 만을 지향하는 골수분자요 하는 것을 내세우며, 지랄발광을 떤 것은, 어쩌면 어떤 분께서 표현 하셨듯이, 우울한 자위가 아닐 수 없다. 글만 쓰면 됐지, 우리야 그런 사정 알 바 아니요 라고 할 분들도 많을 것이다. 가뜩이나 세상 살기 힘들고, 해골 복잡한 이 시절에 즐기자고 들어온 이 바닥에서 조차, 누구 푸념이나 들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신대도 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한번은 글로서가 아닌, 심심한 사의를 이렇게나마 표해야 나이 값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고…….아무튼 여러모로 관심을 가져 주신 많은 분들에게 본인의 모자람과 되도 않는 억지로 비토를 날리게 되었던 일들을 이 자리를 빌어 죄송스러웠다는 뻔뻔한 단어로 대신 하고자 한다. 이제 조용히 글을 또 써야 할까 보다. 정말 정신 없이 글만을 써왔던 초심을 기억하고, 스토리에 매달리고, 표현의 굴곡에 밤잠을 잊던 그 시절로 나를 다시 몰아가야 살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쓴다는 중독에 시달릴 지언정….단지 내가 마음 먹은 글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이 자리에서 누가 뭐라든 장수하고 싶은 마음이 욕심일까? 나이가 들어가고, 오로지 젊은 사람들만의 공간처럼 차츰 설 땅이 좁아져 가는 걸 느낄 때마다 난 나 자신을 다구친다. 섹스가 오직 풋풋한 젊은 사람들만의 소유는 아니라고……그러나, 아직까지도 난 야설 바닥의 레지스탕스 임을 자처 한다. 끼리끼리 모여 잘들 허는 짓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있을 지언정, 어차피 활자화의 기대가 요원한 이 시점에서 난 사람들에게 단연코 외치고 싶다. 무한정 즐감 하고, 무한정 이 바닥의 생리를, 소문을 마구마구 퍼뜨리라고 말이다. 도저히 조절과 통제가 불가능했던 O양의 비디오처럼……퍼 가버린 글 속에 내 이름이 버티고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또 어떤가? 저작권이고 나발이고 간에, 나는 죽기를 결심한 채, 총구를 기성의 몸뚱아리로 겨눈 뒤, 겁나게 기총소사를 해대는 야설 부대의 레지스탕스 일뿐. 별개 아니지 싶다. 이 자리를 빌어, 나 같이 계급장 없는 전사를 이제는 가만 놔 두셨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다. 나는 정식 부대에 편입되어 군복을 지급받고 싶은 마음도 없고, 훈장도 별 의미가 없는, 그저 섹스라는 이데올로기에 포로가 된 저항군일 따름이며, 밥 세끼 걱정 없이 먹을 수 있고, 쏠 탄환이 탄창에 가득하면, 그걸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그런 부류 이기에…

다시 한번 글을 읽어주시는 소라의 식구들과 선의의 의도로 제안을 해 주셨던 분들께 심심한 사죄와 감사의 마음을 아울러 전합니다.

-블루스맨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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