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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09:42 641회 0건

7일의 휴가

Written by 검은나비

*이 소설은 픽션이며, 현실의 인물과 절대로! 전혀! 네버! 연관이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연상된다면 그것은 눈의 착각.

[5일차 외전] 에리카가 모르는 이야기 part 1

---------------------


"나... 이제 그만 갈..."

결국 기력이 다했는지,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고 흐리면서 에리카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디제니는 당장이라도 스러질 듯 연약한 에리카를 와락 껴안으며 중얼거렸다..

"가긴 어딜 가. 난 널 절대 안 보내. 못 보내! 넌 내 거야! 내 허락 없인 절대로 못 떠나!! 넌... 절대 죽을 수 없어. 절대로."

디제니의 말을 들었는지 에리카의 입이 살짝 열렸지만,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잠깐 움찔거리다가 닫혀버렸다.
에리카가 완전히 의식을 잃은 뒤 방 안에는 진하고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나가."
"어?"
"응?"

무거운 침묵을 찢고 들린 디제니의 말에 태은과 루나는 무심코 반문했지만, 돌아온 것은 친절한 대답이 아니었다.

"당장, 나가-!!!"
"어, 어!"
"나갈게!"

후다닥!
쾅!

당장이라도 그 가냘픈 목을 꺾어버릴 듯 날카로운 살기가 태은과 루나를 덮치자 둘은 본능이 선사하는 진한 공포감에 휩싸인 채 얼른 방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에리카와 디제니 둘만 남은 방 안에선 공간이 일그러져 보일 정도의 살기가 넘실대고 있었다. 만약 작은 동물들이 이 방에 들어왔다간 즉사를 면치 못하리라.
그야말로 영화 속에서나 볼 법만, 작은 소녀가 내뿜고 있다고는 도저히 믿지 못할 살기였다.

그 끔찍한 살기의 근원지, 디제니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에리카의 볼을 쓰다듬었다.

"리카야... 어떻게 네가, 어떻게 네가..."

"나랑 약속했잖아. 영원히 함께한다고 했잖아. 함께 있어주겠다고 했잖아. 날... 지켜주겠다고 했잖아."

디제니의 머릿속에서 18년 전의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1993년, 미국 LA.

"...더 이상, 희망은 없는 건가...?"

당장이라도 주르륵 흘러내릴 듯한 진한 핏빛의 눈동자와 허리까지 오는 진홍빛 머리카락을 가진 미녀가 하늘을 쳐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별도... 이걸로 끝이군."

"그리고, 나도..."

여자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 가냘픈 흰 팔 끝은 정확히 이 별, 지구의 중심을 향하고 있었다.

구우우웅-!

가는 팔 끝에서 상상도 못할, 핵무기는 가볍게 코웃음치고 넘어갈 정도의 엄청난 거력이 일렁였다. 그야말로 "별을 부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거력. 묵직한 공명음을 남기며 허공을 일그러트리는 무형의 거력을 보면서 여자는 조용하게 속삭였다.

"내 저주받은 삶도, 이걸로 끝..."

"크크크크, 그래, 이걸로 끝이다! 모든걸 부수고, 파괴하고, 없애버리는 거다! 너 자신까지!"

"말 안 해도 알아."

여자의 머릿속에서 울린 끔찍하고 기괴한 "목소리"에 여자는 조용히 대답했다. 미친 것일까?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서서히 늘어가던 투명한 거력은 점점 임계점에 달해, 파멸만을 앞두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들 파멸이 꿈틀대고 있을 때.

꾹꾹

"저기, 언니?"

여자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 누, 누구냐!"

"큭, 적인가? 일단 적을 말살...!"

갑자기 옷이 잡아당겨지며 들린 목소리에 여자는 화들짝 놀라며 전신의 긴장을 일으켰다.
그리고 돌아선 여자의 눈에 보인 것은, 정말로 의외의 존재였다.

"꼬마(kid)?"

한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무척이나 귀엽게 생긴 소녀가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그녀는 소녀의 손에 잡힌 옷을 조심스럽게 빼내며 감각을 최대한 확장시켰다.
소녀는 그런 그녀의 반응이 마뜩찮은 듯 볼을 부욱 부풀리며 그녀를 매섭게(하지만 보는 사람에겐 귀엽게)노려보았다.

"씨이! 나 꼬마(kid) 아냐! 나도 아가씨(lady)라구!"
"...그래 아가씨. 나한텐 무슨 일이지?"

"어린아이라고 방심할 순 없지. 누구지? 암살자가 숨어있는 건가? 이 꼬마가 암살자? 아니면 이 꼬마 몸에 폭탄을 심어놨을 가능성도..."

여자는 소녀에게 말을 걸면서도 사위를 최대한 경계했다. 이것은 그녀의 마지막 과업. 이제 와서 조금의 모자람이라도 남겨놓아서야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던 여자의 귀에 들려온 것은, 그녀의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이었다.

"저기 언니, 울지 마."
".....?"

"무슨 말이지? 암호인가? 아님 신호?"

그녀가 소녀의 말에 최대한 머리를 회전시키며 소녀의 말을 분석하려 노력하는데, 소녀가 다시금 그녀의 옷자락을 세게 잡아당겼다.
아무것도 아닌, 그녀에겐 손가락 하나로도 무시할 수 있는 미약한 힘임에도 그녀는 왠지 소녀의 손을 따라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주저앉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온 소녀는 그 작은 손을 들더니 그녀의 눈가를 훔쳤다.

"울지 마, 언니."
".....내가... 울어? 내가?"
"응. 아까부터 보고 있었는데, 언니 얼굴 너무 슬퍼보였어."

"내가 울어? 내가? 나한테 그런 감정 따위가 남아있었던가?"

그녀의 머릿속은 극도로 혼란해졌다.
감정을 잊었다고, 감정 따위 자신에겐 허락되지 않은 사치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길던가?
그런 그녀에게 감정이란 건 생소하면서도, 이상한 것이었다.

"아냐, 난 울지 않아. 난..."

포옥!

"?!"
"우리아빠가 그랬어. 울고 싶은 사람은 누군가 옆에서 꼬옥 안아주고 지켜주면 안 슬퍼진대. 내가 지켜줄 테니까, 울지 마 언니."

그 순간.
그녀의 안에서 무언가가 부서졌다.

"날... 지켜준다고?"

"나를 지켜준단 말이지? 나를? 이 나를!"

수많은 피를 손에 묻히고, 수많은 목숨을 지워버린 그녀에게 소녀의 말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절멸자. 파괴자. 파멸자. 살인마. 악마. 마신. 악당-- 그 모든 악의를 담은 단어들이 그녀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그 누구도 그녀를 지킬 힘을 갖지 못했고, 그 누구도 그녀를 지키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존재였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소녀의 말은 단지 어린아이의 치기에서 비롯된 별거 아닌 말이라는 걸. 아무런 무게도 갖지 못한, 깃털처럼 가벼운 말이라는 걸. 아마 소녀는 며칠만 지나도 오늘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녀는, 왠지 그것에 모든 것을 걸어보고 싶어졌다.

"꼬마야, 너... 정말 날 지켜줄수 있니?"
"씨이! 꼬마 아니라니깐!"
".....그래, 아가씨... 정말로... 날 지켜줄수 있어?"
"응! 내가 꼭 지켜줄게! 영원히 함께 있어줄 테니까!"
"그래..."

스르르르

그녀가 손에 맺힌 거력을 흩어버리자, 수상함을 눈치 챈 그녀 안의 끔찍하고 기괴한 "목소리"가 그녀에게 외쳤다.

"무슨 짓이냐! 당장 그 꼬맹이의 목을 찢고 피를 마셔라! 그리고 이 별을 부숴버리는 거다!!"

"내게... 명령하지 마. 더 이상 네 말은 따르지 않겠다."

"무슨! 감히 네년이...! 크아아악!!!"
"이제는 내 의지대로 살겠어. 너따윈, 사라져 버려."

그녀의 의지가 "목소리"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갑작스런 공격에 "목소리" 는 당황하면서도 거부하려 했지만, 결국 그녀의 힘에 서서히 억눌려 봉인되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목소리"는 원망에 찬 저주를 내뱉었다.

"이, 이런다고 네년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으냐! 네년은 결국 저주받은 운명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거다!"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자신의 속에서 날뛰던 "목소리"가 자신의 깊은 곳으로 침잠하며 침묵하는 것을 느낀 그녀는 살며시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녀를 품안에 꼬옥 안고 있던 소녀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언니? 이제 좀 괜찮아?"
".....그래, 네 덕분에 살아갈 힘을 얻었어. 이 저주받은 운명을 부숴버릴 힘을."
".....???"

소녀는 그녀의 말이 어려운지 살짝 인상을 찌푸렸고, 그녀는 그런 소녀를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아직 어린 소녀가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는 이야기니까.
그때 어디선가 크게 외치는 소리가 다가왔다.

"하연아-! 어디갔니!"
"하연아! 하연아아-!"
"앗, 엄마아빠다! 언니, 나 가볼게! 언니 이름이 뭐야?"
"...난 이름이 없어."

그녀는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그녀를 지칭하는 명칭은 여럿 있었지만, 그녀는 그 잔인하고 끔찍한 이름으로 소녀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싶지 않았다. 피에 젖은 이름은 이제 버리고 싶었으니까.
그런 그녀의 마음까진 몰랐지만, 소녀는 와락 인상을 찌푸리고는 볼을 부풀렸다.

"부우! 세상에 이름 없는 사람이 어딨어!"
"그러게 말이다. 그럼 네가 지어주지 않을래?"
"으음, 알았어! 내가 지어줄게! 디제니(Dijjany) 어때? 예쁜 이름이지!"
"후훗, 정말 예쁜 이름이네."

"디제니... 그게 지금부터 내 이름...!"

그녀의 가슴은 터질 듯이 두근거리며 뛰었다.
피에 젖어 저주받은 이름이 아닌, 그녀에게 새 삶을 줄 이름. 디제니라는 그 세 음절은 그녀의 가슴 속 깊숙이 박혀들었다.
감동받은 표정의 그녀를 보며 으쓱한 웃음을 짓던 소녀는 다시금 부모의 목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리다, 뭔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언니! 그 이름 내가 지어준 거니까, 나 만날 때까지 쓰기 없기!"
".....그럼 그때까진?"
"스테니(Stenie)! 언니 이름은 그때까지 스테니야!"

후다닥!

한마디를 남긴 채 소녀는 다급히 부모를 향해 뛰어갔다.
그런 소녀의 뒤를 향해 그녀는 크게 소리쳤다.

"잠깐만! 네 이름을 알려줘야지!"
"은하연! 내 이름은 은하연이야! 엄청나게 유명한 가수가 될 거니까 꼭 찾아와!"

소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부모들에게도 달려갔다.
그녀는 부모의 품에 안기는 소녀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은하연... 이란 말이지."

"반드시 찾아주겠어. 언제까지나 네 옆에 있을게. 그러기 위해선..."

"저것들부터 치워야겠군."

쉭!

저 먼, 허공에서부터 다가오는 "적" 의 존재를 느낀 그녀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연아! 걱정했잖니. 대체 어딜 간 거야!"
"에헤헤, 저~기 엄청 예쁜 언니가 엄청 슬퍼하길래... 어라? 어디갔지?"

소녀, 하연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자가 서있던 곳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벌써 갔나보지. 앞으론 조심해. 엄마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는 거 아니라고 했지?"
"우웅... 조기 넓은데 한가운데 있었는데... 정말로 엄청 슬퍼 보였어. 나쁜 사람 같진 않았는데?"
"아무튼, 앞으론 엄마아빠한테서 떨어지기 없기. 약속!"
"약속!"
"자, 그럼 얼른 가자."
"응..."

하연은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자꾸만 뒤를 힐끔거렸다.

"우웅, 분명히 저기 있었는데... 요정님인가?"

다음 날, 미국 LA에선 5살의 소녀 스테니 한(Stenie Han)이란 이름의 소녀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두 소녀가 만나게 된 것은 11년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다시 현재.

"설마, 은하연이 본명이 아닐 줄은 몰랐지."

"난 그것도 모르고 괜히 고생만 했지. 나참."

디제니는 과거에 했던 고생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일이년이면 될 거라고 생각하던 것이 11년씩이나 걸린 것은 전적으로 에리카가 알려준 이름인 "은하연" 이 그녀의 본명이 아니라, "에리카 은"이 본명이었던 탓이다.

디제니는 창백하게 누워있는 에리카의 볼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넌 절대로 날 떠날 수 없어... 네가 가고 싶어 한다고 해도 이젠 내가 놓아주지 않을 거야. 넌, 내 거야."

"그럼, 치료를 시작해 볼까?"

디제니는 살며시 눈을 감고 두 손을 그녀의 머리와 가슴에 얹었다.
에리카의 상태는 극히 위중. 심한 감기에 과도한 체력소모가 겹쳐 어떤 천하의 명의라도 살려내지 못할, 그야말로 저승의 문에 몸을 걸친- 아니 저승의 문에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디제니에게는 그녀를 살릴 "힘" 이 있었다.
18년간 봉인했던 저주받은 힘. 하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고마운 힘이었다.

"오랜만에 써보는 거지만..."

"네 목숨이 걸린 일인데, 실수라는 건 있을 수 없지."

구우우웅-!

낮은 울림이 방을 가득 메우며, 디제니의 손에서 붉은 빛이 퍼져나왔다. 그 빛이 에리카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감에 따라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창백하던 에리카의 얼굴은 서서히 밝아지며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에 디제니는 살짝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그 순간.

"부숴라! 네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를 뽑고, 그 심장을 씹어 피를 마셔라! 영원히 네 안에서 함께하는 거다!"

"크윽! 서, 설마?!"

"인간은 연약해! 불안한 인간이 아니라, 네 피와 살로 영원히 함께하는 거다! 이 여자를 죽이고 네 여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두 년을 죽이고 찢어버려라! 모든 걸 죽이고 파괴해 버려!"

오랜만에 "힘" 을 끌어내서일까, 완전히 봉인했다고 생각했던 끔찍하고 기괴한 "목소리"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검게 반짝이던 디제니의 눈이 새빨간 핏빛으로 물들며 그녀의 손이 에리카의 연약하고 가냘픈 목을 움켜잡았다. 그녀의 힘이라면 아주 조금만 쥐어도 그 연약한 목은 힘없이 부러져 버리리라. 아무리 그녀라 해도 한번 죽은 사람을 살려낼 능력은 없었다.

"그래! 그대로 꺾어버리는 거다! 살짝 힘을 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모든 것을 파멸시켜 버리는 거다!"

"크, 크윽...!"

"아, 안 돼, 버틸 수가-"

디제니는 에리카의 목을 움켜쥔 손을 부르르 떨며 손을 떼어내려 노력했지만, 18년간 봉인되어있던 "목소리"의 힘은 너무나 강해, 그녀의 손은 점점 에리카의 목을 죄어가고 있었다.
그 거대한 의지에 그녀가 절망이란 두 글자를 머릿속에 떠올리려던 그 순간.

"제니야..."
"리카...?"
"제니야... 울지 마... 내가 지켜줄테니까....."
"......!"

잠꼬대에 가까운 한마디. 그 한마디에 디제니의 마음속에는 벼락이 쳤다.

으득!

"그래, 나는...언제나... 리카 옆에 있을 거야! 네놈 따위한테 굴복하지 않아! 당장 사라져!"

"네년...! 또 반항이냐!"

쿠구구궁!

디제니의 필사적인 외침과 함께, "목소리" 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아직도 "목소리"는 건재해, 그녀는 자꾸만 떨리는 손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머릿속에서 계속 울려퍼지는 악의로 가득찬 외침은 자꾸만 연약한 목을 죄어가도록 만들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녀의 머리에 새겨진 십자로도 하나 둘 늘어갔다.

"부숴라! 죽여라! 모든 것을 없애 버리는 거다!"

"안 쨈鳴?.. 했잖아앗!!!"

"크윽?!"

순간적으로 디제니가 손을 아예 에리카의 목에서 떼어내자, "목소리"는 경악에 찬 소리를 냈다.
디제니는 그런 "목소리"의 반응에 의기양양해하며 가슴을 쭉 펴고 본심을 크게 외쳤다.

"개수작 부리지 마! 난 아직 할게 많단 말이다! 리카가 알몸으로 수영하는 것도 봐야되고, 야외 섹스도 해야되고, 애들 끼워서 9p도 해야 돼! 아직 계획이 엄청나게 남았단 말이다아아아!!!"

".......뭐?"

디제니의 본심이- 아니 흑심이 가득 담긴 외침에 "목소리"도 어이가 없었는지, "목소리"는 순간 맥없는 소리를 내며 팽팽하던 힘의 균형을 탁 풀어버렸다.
그리고 디제니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단숨에 "목소리"를 밀어붙였다.

"다시 들어가, 이 빌어먹을 자식아-!!"

"크으윽! 이, 이번엔 물러가지만... 언젠가 넌 내 말을 따르게 될 거다! 인간의 수명은 길지 않아! 결국 네게는 파멸뿐이다! 행복한 시간은 길지 않아!"

다시금 자신의 깊은 곳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목소리"의 존재를 느끼면서 그녀는 씩 웃으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지."

"크하하하! 그때를 기다리겠다! 파멸의 그때를!!"

"닥치고 꺼져."

완전히 "목소리"가 봉인된 것을 느낀 디제니는 살며시 손을 들어 새근새근 잠든 에리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번에도 리카 네가 날 구해주는구나. 그리고... 이 별도. 후훗, 넌 모르겠지만 넌 지구를 구한 영웅이라구. 그것도 두 번이나 말야."

쪽!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니까."

살짝 에리카의 입술에 입을 맞춘 디제니는 에리카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보고 있었다.

--------------------------

이번 편은 솔직히 말해서 약간 중2병 삘.
수정하면서 최대한 고치긴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좀 거시기 하네요.

참고로 여기서 "목소리"의 정체라던가, 그런건 저도 모르니까(응?) 묻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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