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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09:43 581회 0건
3팡그릿샤 근방 왕도사령부 직할대의 대대장실에선 오래간만에 대대장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기분이 좋은지 그는 소식을 듣고는 숨이 넘어가도록 웃어 제꼈다.
“아무리 정무대신이 힘이 있는 자리라고 해도 병부의 인사권을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을 테니, 이제 대대장님께서 병부에 보고서를 올리는 일만 남았군요.”
“아암~, 그렇지…! 속이 다 시원해지는구먼…!”
“정말이지, 상관 알기를 우습게 하는 놈 얼굴을 안 보게 될 생각을 하니, 제 속도 다 후련합니다.”
“왜 아니겠나. 예스프리 그 놈…. 쥐새끼같이 왕궁에 꽁꽁 숨어서 거드름이나 피울 줄 아는 근위대에서 소대장이나 해먹던 놈이….”
“어서 보고서를 작성하십시오, 대대장님.”
“아니다.”
“아니 왜요…?”
“지금 올리면 병부 수장이 바뀌자마자 전임 대신의 아들을 음해한다는 오해만 받기 십상이야. 조금 지나서 올려도 늦지 않아.”
“아하….”
“기다려 보면 때가 올 거다. 분명 신임 병부대신이 회의를 소집하든 뭘 하든 할 거야. 그 때가 기회다.”
예스프리는 휘하 병사들을 도열시키고 단상에 올랐다.
수백 명의 병사들이 한 치도 틀림없이 도열하여 중대장의 말을 듣기 위해 부동자세에 있었고, 단 한 명도 움직이는 자는 없었다. 그는 자신을 쳐다보는 수백 쌍의 눈길들에 하나하나 응답이라도 하듯 천천히 쓸어본 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일장연설을 내뿜었다.
“들어라!! 제군들 모두 아다시피, 새로운 병부대신에 대한 인사발표가 어제 있었다!! 신임 병부대신의 취임식과 함께 왕도사령부에 대한 순시가 있을 것이다!! 훈련에 더욱 집중하라!! 실전과 같은 훈련만이 오직 승리를 위한 지름길이다!! 적에게든, 그 어느 누구에게든!! 우리 중대가 왕도사령부 최강의 부대임을 입증해야 한다!! 알겠는가?!!”
“예…!!!”
중대의 수백 병사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힘차게 대답했다. 그들은 지난번 그가 대대장에게 정면으로 맞섰던 사건으로 이 젊다 못해 어린 중대장에게 큰 신뢰를 던지고 있었다. 이후 예스프리는 다행스럽게도, 적어도 중대 내에서는 지휘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었다. 군사들은 그의 강도 높은 훈련계획을 열성적으로 따랐고, 소대장들 역시 그들을 격려하며 함께 참여하여 부대의 전투능력을 담금질하는 데 경주했다. 남은 문제는 그 윗선이었다.
“중대장님.”
“음.”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말인가?”
3소대장이 병부대신의 교체를 언급하며 대대장의 행보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대대장이 뭔가 손을 쓰려 들지 않겠느냐, 이거였다. 예스프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피식 웃고는 연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별 생각을 다 하는군.”
“하지만 대대장님께서 중대장님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진 건 사실 아닙니까. 게다가 다른 중대장님들도….”
“그만하라. 우리는 군인이지, 정치인이 아니야.”
“군 조직에도 분명히 정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분이 대대장 자리까지 차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말을 삼가게.”
“중대장님…!”
“곧 대규모의 전쟁이 일어날 걸세.”
뭔가 더 이야기하려던 소대장의 말을 젊은 중대장이 끊어먹듯 끼어들었다. 소대장은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그의 말을 들으려는 듯,
“…. 론도 정벌 말씀이십니까?”
예스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공론화되지 않았지만, 대륙으로 귀환하던 시민들이 마도들에게 습격을 받았어. 게다가 레몽 도메네크 경까지 돌아가셨네. 개국 공신가문의 가주가 살해당했네. 이 정도면 명분은 충분해.”
“게다가 종말설도 공공연히 나돌고 있고요.”
“교총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지를 표명하고 나서겠지. 아무래도 국왕 폐하께서 그 위상을 올려주신 격이니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어쩌면 이번 전쟁을 주도하려 들지도 모르지요. 주도권을 조금은 더 가져가기 위해서도 말입니다.”
“어쨌든…, 곧 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이 틀림없다면, 그 선봉에 설 돌격대로서 우리는 조금도 시간을 낭비할 수 없네. 상관의 부당한 처사가 있다면 바로잡으려 노력해 볼 수는 있어도, 이 자리를 지키자고 수싸움을 할 여유가 우리에겐 없어.”
“….”
“자네도 그런 생각은 그만하게. 우리는 우리가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돼. 설령 내가 파직을 당한다 해도, 이 부대를 강군으로 만드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게 되는 거다, 소대장.”
“…, 알겠습니다.”
통제실을 나선 소대장은 감탄과 근심이 동시에 담긴 얼굴을 한 채 훈련장으로 향했다. 집단검술 훈련을 맡고 있던 6소대장이 그를 발견하고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그래, 중대장님께선 뭐라시나? 꼼짝도 안하셔. 괜히 군인 가문 출신이 아닌 것 같애.
“그게 무슨 소린가? 그럼 이제….”
“곧 전쟁이 일어날 걸 확신을 하고 계시더라고.”
“그거야 누구든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전쟁을 앞두고 상관하고 수싸움 하기 싫다더구만. 정말 골수에 사무치게 군인이야.”
“… …. 참 대단한 사람일세, 중대장…. 여러 가지 의미로…”
“감탄을 하고 칭찬을 해야 할 지…, 동정하고 염려를 해야 할 지….”
한편 새로이 병부대신이 된 플로랑 메르히네는 국왕으로부터 남작의 작위와 교서를 하사받은 즉시 집무실로 향했다.
“폐하의 일등공신답지 않은 집무실이로군….”
“….”
라크라오스의 집무실은 단촐했다. 책상 하나, 무수한 군사 자료와 보고서들이 즐비한 책장들과 찾아온 이와 앉아 차 한 잔 나눌, 장식이 극도로 자제되어 있는 조그마한 탁상, 그리고 의자 세 개가 전부였다. 플로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살펴보고는 책상 한쪽에 있던 연초 상자를 밀어 시종에게 내밀었다.
“치우게. 난 연초는 태우지 않네.”
시종이 연초를 들고 나가자 부총관이 취임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취임식 준비부터 지시하겠습니다. 달리 지시하실 것은…, 부총관의 말을 자르며 플로랑은 취임식 이야기를 일축했다.
“취임식은 없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취임식이 없다니요?”
“다시 말해야겠는가?”
“그래도 새 대신께서 들어오셨는데, 취임식이란 건….”
“취임식이 무슨 말인지 설명하고 싶은 거라면 그만두게. 나도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으니까….”
“병부대신…!”
“일단 가장 눈썰미 좋고 기민한 자들 다섯 명을 뽑아봐. 곧바로 내일부터 순시를 할 예정이다. 왕도사령부는 내가 직접 중대 단위로 살필 것이고, 국경과 지방 순시는 그들에게 맡길 생각이다. 명령서는 내가 직접 쓸 테니 자네는 지역별 군사편제에 관한 자료를 좀 찾아오게.”
“….”
“한 번 더 말해야겠나?”
“…, 아닙니다. 그대로 시행하겠습니다.”
“가 봐.”
부총관이 당황한 기색으로 집무실을 나선 뒤 그는 곧바로 종이를 꺼내어 편 후 직접 명령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생각해둔 일인 듯, 그의 손은 거침이 없었고, 깔끔하고 수려한 필치로 순식간에 명령서 한 장이 작성되었다. 다 써진 명령서를 접어 불붙인 파라핀을 떨어뜨려 봉하고, 병부대신의 직인을 찍어 한쪽 옆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다시 한 장을 꺼내어 지체 없이 새로운 명령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취임식을 안 해?”
“그렇다고 합니다.”
“… ….”
라크라오스의 말을 들은 국왕은 어어, 그럴 리가…하는 반응을 보였다가 이내 허허 하고 소리 내 웃었다. 생각해둔 것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곧바로 순시를 한다고 하더군요. 그 친구, 의욕이 넘치는군 그래.
“폐하께서 사람을 잘 알아보신 것 같습니다.”
“잘 알아봤는지, 의욕만 앞세우는 애송이인지는 두고 봐야지.”
“….”
“그보다, 교총 원로회의는 언제쯤 열린다던가?”
“내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공주가 잘 해냈겠지?”
“믿어보십시오.”
물론 믿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바루나가 등을 기댔다.
“너무 걱정마십시오, 폐하. 만일 일이 잘 안되더라도 크게 나빠질 것은 없습니다. 조금 껄끄럽기야 하겠지만….”
“오히려 교총으로부터 군사를 회수하고 이 나라에서 축출할 명분은 되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외교적인 명분이 약해지게 되네.”
“그것도 그렇군요.”
“최대한 많은 군사와 군자금을 끌어 모으려면 그래도 교총을 이용하는 게 가장 편리해.”
왕도로부터 보르틴 교원총연합회의 본단으로 가는 길은 마차를 타고 하루치 거리였다. 앙느쿠테의 집전을 위해 와 있었던 총장 레오 움베르티노와 전임 총장이자 원로교원인 마놀로 융베리, 그리고 왕도 대교구의 수장인 비센테 발데스와 윌토르 베스피아노 대주교는 원로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 대교구로부터 본단을 향해 길을 잡았다.
“총장께선 이번 사안에 대해 어떤 입장이십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융베리 원로…?”
“…국왕 폐하께서 전쟁에 관한 논의를 함께 해달라고 요청하셨던 것 말입니다.”
“일단 요청은 받았으니 상정은 해야겠지요….”
대답하는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이번 원로회의는 애초부터 그걸 위한 게 아니었잖습니까.”
“어차피 예언서의 종말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고 대륙 전체로 교총의 위상을 확대시키기 위한 방도를 찾는 것이 이번 원로교원 소집의 목적이었습니다. 국왕폐하께서 제안하신 문제는 생각해볼만한 일이란 것이…, 이 사람의 생각입니다.”
“총장의 생각입니까, 아니면 저 뒤의 마차에 탄 두 사람의 생각입니까?”
“…!”
총장은 순간 뜨끔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어차피 교총의 실세는 왕도 대교구의 추기경과 대주교였다. 자신이 내어놓은 오피퀴움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국왕의 반응에 속수무책이었던 터에, 은근한 협박조로 전쟁 이야기를 꺼낸 국왕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융베리는 우회적으로 이 점을 지적하며 총장을 설득하기 위해 갖은 논리를 다 쏟아냈다.
“생각해보십시오, 총장. 언제까지 미키네오스의 입장에 이끌려서 교총이 좌지우지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이지 정치인이 아니지 않소?”
“…나라고 그걸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도 조직이고, 사람이 모여서 만든 단체요.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라곤 해도….”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 어떻게 피를 흘려 제 이권을 챙기려 하는 무리들과 결탁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사람이 참으로 악한 겁니다. 원로. 사람의 마음이 항상 그렇게 순수할 수만 있다면 신은 왜 필요하겠습니까….”
총장의 한숨은 깊었다. 실권이 없는 총장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 이만큼 교총이 한 나라의 국교로서, 명분상으로나마 공경을 받게 된 것은 모두 바루나의 정책 덕을 본 것도 사실이었으니 도의적으로도 그를 무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론도 산맥에 숨어있는 저 사악한 무리들을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됩니다. 교총의 원로회의를 통해 우리가 내고자 하는 결론이 무엇입니까? 땅에 떨어진 교회의 위상을 보르틴 전 대륙에 걸쳐 재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모든 이들이 사원에서 평안을 얻고 신의 사랑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함이 아니었습니까?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미키네오스의 영명하신 국왕 폐하의 요청을 받아들여, 론도 정벌의 명분에 힘을 실어드려야 합니다.”
윌토르의 발언이 끝나자 이번엔 비센테가 거들고 나섰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총의 권위가 이토록 무너져버린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 사람이 보기에 그 시점은 바로 20년 전, 론도 산맥에 숨어있는 저 마도의 무리들로 인한 참상부터였습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비센테가 좌중을 한 번 쓸어본 후, 그들에 대한 응징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교총의 권위를 되찾았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점을 양지하셔서 부디 현명한 판단들을 내리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은근히 융베리를 꼬집는 말이었다.
그가 자리에 앉자 일리 있는 말이라는 듯 수군거리며 모두들 동의하는 기색을 보였다. 융베리는 격세지감을 느꼈다. 지금 그들의 말에 동의하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자신이 총장직에 있을 무렵, 함께 교리를 편찬하며 연구했던 동지들이었다. 회의를 주재하는 의장이 다른 의견을 청하자 융베리는 침통한 안색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씀하시오.”
“… ….”
잠시 호흡을 고르듯, 그는 좌중을 둘러보며 뜸을 들였다. 본단 사제관 총무, 교리 편찬실장, 참회당주 등 한 명 한 명 이전에 자신과 함께했던 동지들을 향해 눈길을 보냈다. 전쟁 중 변을 당하여 이 자리에 없는 이들도 있었고, 또는 그가 알 수 없는 다른 사정으로 이 자리에 없는 이들도 있었다. 그 자리들엔 그가 모르는, 그러나 분명히 비센테 추기경과 윌토르 대주교의 말에 맹목적이라고까지 할만한 지지의 뜻을 내비치는 이들로 채워져 있었다.
“융베리 원로. 말씀하시오.”
“…. 이 사람은…. 단 한 번만 발언을 하겠습니다. 그러니 바라건대 의장님께선 이 사람의 말이 끝날 때까지, 발언권을 보장해 주시겠습니까?”
“….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융베리 원로. 그럼 원로께선 할 말을 다 하고 이 자리에서 빠져나가기라도 하겠단 말씀이십니까?”
“… ….”
융베리는 비센테의 반박에 대답하지 않은 채 의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역시 자신과 함께했던 동지였으나, 이 자리에 서고 보니 총장과 그가 다를 바 없는 처지임을 알 수 있었다. 융베리를 보는 의장의 눈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마치 그가 왜 꼭 그렇게까지 해서 화를 자초하느냐 질책 아닌 질책을 하는 듯 보였다. 융베리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말했다. 내가 그런 사람인 것을 어떻게 그대가 모른다 할 것이오…, 비록 전쟁이 일어나고 자리를 피해 이 목숨을 부지하긴 했으나…, 이제 나는 죽을 자리를 찾아온 것입니다…. 의장은 그의 결연한 시선을 피해 눈을 감았다. 무겁게 내려앉은 안색으로 그는 융베리의 요청을 수락했다.
“모두…, 융베리 원로의 발언이 끝날 때까지 반박이든 뭐든….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원로께선 말씀하시오.”
고맙다는 눈인사를 하려 했으나 의장은 눈을 뜨지 않았다. 비센테와 윌토르는 제깟 놈이 뭐라고 지껄여봐야 이젠 끝이지 뭐 하는 얼굴로 콧방귀를 뀌었고, 이내 융베리의 음성이 차분하게 실내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지난 17년간 아슈람에서 20년 전의 부끄러웠던 행동에 대해 늘 반성을 해왔습니다. 보르틴이라는 거대한 대륙, 그 곳에 사는… 여섯 나라와 세 개의 부족들은… 그 이전에는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아왔었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메르앙의 이름으로 은총을 받고 위안과 평안을 누리는 시민들도, 자연을 숭상하며 마법을 통해 생명의 지고함과 삶에 대한 모든 신비를 찬양하는 부족국의 사람들, 그들 모두가 이웃을 공경하고 사랑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라는 교리에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그들 모두를 포용하고자, 우리 교총이 그들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진정한 신의 사자가 될 수 있도록 이 사람은 그들의 교리를 종합하여 편찬하는 일을, 추기경 시절부터 30년 가까이 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신탁을 빙자하여 피를 보고자 하는 무리들에 의해 이 땅이 유린당하고, 이 부족한 사람은 그 전쟁의 참상을 피해 도주를 하였습니다. 변명을 하고자 하지는 않겠습니다. 살아남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어쩌면 나야말로 위선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교원총연합회의의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은 그 때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신했습니다.
성스러운 앙느쿠테에서 전혀 설득력 없는 명분으로 남녀의 자연스러운 행위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그것을 신의 뜻인 양 치장하는 어처구니없는 기도문을 들었습니다. 또한 신의 사자로서의 본분을 잊고 욕정에 몸을 던진 수녀도 보았습니다. 금욕이란 위명 아래 저질러지는 교총의 무수한 악행들은 모두가 신의 뜻이라는 허울 좋은 말과 기도문으로 치장되었고, 무지한 시민들은 사제들의 세 치 혀에 속아 그저 신의 뜻인 줄로만 알며 그것이 과연 인간으로서 좋은 것인지, 해도 되는 일인지 또는 할 필요가 없는 일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모조리 박탈당한 채 허수아비로 살고 있습니다.
재물과 권력에 대한 욕망, 남녀간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욕정이 나쁘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제 또한 사람이므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사람은 불완전하기에 신이 필요합니다.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사제 또한 그런 욕망을 품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신심만으로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 사람의 나이는 이제 98세가 되었습니다. 이 말을 하기 전의 저는 아마 백수를 넘길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늦었음을 압니다. 또한 충분히 살았으니 후회도 없습니다. 다만 삶의 마지막에서 이제 여러 사제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욕심은, 사람인 이상 부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우리 사제들에게 있어 욕심이란 어쩌면 더욱 위험한 일일수도 있습니다. 포기해야 할 것들을 포기하는 만큼, 허용되는 욕심이 도를 넘을 수가 있으니까요.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신을 바로 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신심을 통해 조금씩이라도 보완하기 위해 하루 하루를 채워갈 때, 우리는 비로소 인생의 마지막에서 사제로서의 본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제 우리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피를 흘리는 데 앞장을 서겠다는 것이 신의 사도로서 과연 합당한 결정인지 우리는 신중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모시고 받드는 신은 사랑과 자애와 은총의 신이지, 권위와 힘으로 억누르며 복종을 강요하는 신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여러분들에게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교총의 권위나 미키네오스 국왕과의 관계, 도의적 책임,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 마느냐 하는 그 모든 세상의 일들로부터 눈을 감고, 오직 신을 향해 모든 감각을 열어둔 채 기도한 후 결정을 내리시기를 말입니다. 우리가 주도권을 찾아오기 위해, 국왕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도의적인 책임을 지기 위해 선택을 하고 수를 읽느라 애쓰는 동안, 지난 전쟁의 여파로 인해 아직까지도 헐벗고 굶주리는 많은 시민들은 계속해서 고통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긍휼히 여기며 자신의 고통을 잊고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가진 바 모든 것을 내던지며 살아가셨던 전능하신 아버지 메르앙의 삶을 되새겨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사람 역시, 그런 생각을 하며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비난을 하시려거든 비난을 하시고, 돌을 던지실 분들은 돌을 던지십시오. 기꺼이 그 비난을, 그 벌을 청하겠습니다. 대륙의 정신적 구심점에서 가장 큰 권한을 쥐고 있었던 자로서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목숨을 구걸했던 이 부실한 사람의 죄를 비난하시고 벌하십시오. 그러나, 다시 그 시간이 온다고 해도 이 사람은 그 때와 똑같이 할 것입니다. 그것은 목숨을 구걸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 시민들이 받을 고통을 외면한 채 나 혼자 죽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20년이나 지나버린 지금에 와서 제겐 그럴 기회가 오지 않을 것임은 알고 있습니다. 이미 저질러버린 일이니까요. 그러나 여기 계신 다른 분들께선, 저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말씀을 드립니다.”
긴 발언을 마친 융베리는 눈을 감았다. 이제 처분만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의장의 입에서 소리 없는, 그러나 깊이 가라앉은 한숨이 토해졌다. 끝까지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회의실 안은 조용했다. 수십 년 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왔고, 보르틴 대륙 전역에 걸친 영향력이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지대했던 대석학의 길고도 결기에 찬 발언이 그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나직했지만 힘 있는 발언이었다. 자리에 모인 사제들은 뭐라고 반박을 해야 할 지, 어떤 이는 반박을 해야 하는 것인지조차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비센테 추기경이 먼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치며 입을 열었다.
“가관입니다. 그려….”
“추기경…!”
“총장 예하께선 막지 마십시오. 지금 융베리 원로께선 신앙으로 돌아가라는 뜻을 아주 우회적으로, 그것도 감동적으로 하셨습니다만…. 그 속에는 아무 내용도 없습니다. 그저 화려하고 장대한 수사만 들어 있었지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융베리를 똑바로 주시했다.
“역시 보르틴의 역사에 남을 대석학다우십니다. 융베리 원로. 하마터면 여기 계시는 모든 원로분들께서 융베리 원로의 일장연설에 홀딱 속아 넘어가 신의 뜻을 받들어 신의 아들들을 해치려는 저 무도한 무리들을 정벌하려는 국왕 폐하의 고귀한 뜻을 반대라도 하게 될 뻔했습니다.”
융베리는 아무 말도, 아무 반응도 없이 눈을 감은 채 앉아있었다. 이미 모든 것을 각오한 그였다. 더 이상 어떤 음해나 모욕도 그에게는 음해나 모욕이 아니었다. 마치 형장에 나아가 목을 늘어뜨린 채 처형만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앉아 있는 융베리의 모습에 의장은 안타까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원수를 사랑하라, 좋습니다. 그것은 신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형제를 사랑하고 내 몸과 같이 아끼라는 것 또한 신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형제입니다. 보르틴 대륙의 모든 시민들이 형제입니다. 그런 우리의 형제들이 마도의 무리들에게 지난 20년간 수십, 수백 차례나 참살을 당해왔습니다. 융베리 원로 말씀 참 잘 하셨습니다. 신의 뜻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지요? 형제를 사랑하고 내 몸과 같이 아끼라는 말씀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 말씀을 어기고 원수를 사랑하겠다며 보르틴 대륙의 전 시민들을 살상해 온 마도의 무리들을 감싸고돌아, 대체 원로께서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오!!!”
비센테의 언성이 높아지자 윌토르가 질 수 없다는 듯 책상을 치며 벌떡 일어나 목청을 높였다.
“이런 불경한 자를 원로라고 데려오다니, 총장 예하! 당장 종교재판에 회부해야 합니다!!”
“어허, 윌토르 대주교. 진정하시오.”
“못합니다…!”
이번엔 다른 교구의 추기경이었다. 교총의 이름으로 미키네오스의 영명하신 국왕 폐하와 합의하여 귀환자 건을 결정했습니다. 레몽 도메네크 경이 변고를 당하신 걸 눈앞에서 보고, 또한 귀환자 행렬을 직접 끌고 온 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입에 담을 수가 있단 말이오! 추기경이 불을 붙이고 윌토르가 거기에 기름을 붓자 이젠 너도 나도 용기백배(?)하여 벌떡 벌떡 일어나 융베리를 향해 거침없는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도들이 신심을 가질 수 있다면 그런 전쟁을 일으킬 리가 없습니다! 마도들을 향한 포교 활동을 강조했던 자가 바로 누굽니까?! 전임 총장 융베리 원로 아니었습니까?!! 오늘의 교총을 만든 근본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데 이제 와서 저런 허튼 수작을 부린답니까?!!”
“흥! 교리를 포용한답시고 잡술들을 섭렵했다더니, 그 사악한 술법 따위로 마도들을 제 편으로 끌어들인 건 아닌지 모르겠군…!”
“정말 그런지도 모르지…! 그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 돌아왔으니 아주 근거 없는 말도 아닐 거요…!”
“진정들 하시오, 진정…!”
“마도들을 정벌하고자 하는 국왕 폐하의 의지에 정면으로 대서고 교회의 가장 성스러운 행사를 모독했소이다!! 종교재판이 아니라 해도 백 번은 죽을 대죄인이오!”
“융베리 원로를 재판에 회부하시오!”
“회부하시오…!”
장내는 난장판이 되었다. 의장은 허탈한 얼굴로 황망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던 반면, 총장은 씁쓸한 기색을 입가에 떠올리며 가만히 장내의 분위기를 좌시하고만 있었다. 오직 융베리만이 이 모든 소란과 아무 관련이 없는 듯 고요하게 눈을 감은 채 앉아있을 뿐이었다.

리토르나(여기서부터는 본명을 쓰기로 한다)는 비사카의 보고를 받고도 별반 반응이 없었다. 이미 예상한 일이었으니 그저 희미하게 고개만 끄덕여 보일 뿐이었다.
‘하온데…, 전하. 달리 아뢸 것이 있사옵니다.’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비사카의 전음마법이었다. 무슨 은밀한 말을 하려고…. 이어지는 비사카의 전음마법은, 그렇다고 딱히 그녀에게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이었다.
‘공주의 처소에 은밀히 배치되어 있는 이들 중 하나가 며칠 전부터 이곳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리토르나는 방금 전 보였던 반응을 그대로 보였다. 이미 알고 있다는 뜻으로 알아차린 비사카가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기색을 보이자 리토르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를 지나쳐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비사카가 일어서서 그녀를 따랐다. 마침 수련 장소를 얻은 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온 몸이 땀에 젖어 들어오는 하백이 그녀를 발견하고는 얼른 뛰어와 공손히 예를 올렸다.
“그래, 오늘도 수련을 하고 오는 모양이구나.”
“예, 황녀님….”
“피곤하겠구나. 들어가 쉬어라.”
“예. 하온데….”
“…? 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
고개를 드는 하백의 눈이 조금은 단단해져 있었다. 융베리의 서한을 받아본 뒤 그간 많이 혼란스러웠을 텐데, 마음을 정한 모양이구나. 리토르나는 그렇게 알아보았다. 둘은 리토르나의 거처로 들어갔다.
“앉게.”
“….”
“그래. 뭘 물어보고 싶은가?”
이제 리토르나는 완연히 황녀의 신분으로서 그를 대하고 있었다. 말투 또한 격의 없이 하던 이전과는 달리 사뭇 엄격했다. 하백은 몸을 곧게 하고 앉았다.
“황녀님께선 어느 정도는 미래를 내다보시는 것으로 아옵니다.”
“…. 본다기보다는 예측을 좀 하는 정도란 것이 정확하겠지.”
“… …. 소인은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날더러 네 점을 쳐보란 말인가?”
피식 웃는 리토르나, 그러나 하백은 황망해하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명을 받고자 하옵니다.”
“명이라…?”
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묘하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리토르나를 향해 무릎을 꿇고 앉았다. 리토르나는 가만히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굳게 다문 입술이 열리며 하백의 결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소인, 나라와 부모를 잃고 뿌리를 잃었다 여겨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였사오나, 비로소 진정하여 이제 가야 할 길을 찾고자 하오니, 황녀께서 부디 긍휼히 여기시어 명을 내려주시길 간곡히 청하나이다.”
“… ….”
“소인의 길을 하명하여 주옵소서.”
“… ….”
리토르나는 말없이 그를 보고 있다가 비사카에게 고개짓을 했다. 그가 나가고 그녀는 하백을 일으켜 세웠다.
“단군 하백은 일어나 앉으라.”
“황녀님…!”
“어서.”
자리에 앉아 몸가짐을 단정히 한 하백을 향해 리토르나는 자신이 이곳에 계속 머무르는 이유를 꺼냈다. 그대의 나이 열여덟, 나는 열아홉이다. 하백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둘 다 한 국가를 다스리기엔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어린 나이지.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 대륙에서 가장 치열하게, 복잡하게 돌아가는 이 나라의 정치판 속에서 정치의 원리를 배우고자 함이다. 내 나라는 황제나 그 뒤를 이을 이들에게 그런 자비는 베풀어지지 않는다. 황제는 절대자이니 언제나 완벽해야 되기 때문이지…. 해서 나는 지루함을 견디며 이곳에서 나를 연단시키는 것이다.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들으며, 그것으로부터 훔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훔치면서, 염치없이 배우는 중이다. 신민들을 생각한다, 신민들의 풍족함이 곧 군주의 복이다, 이런 말들은 제 잇속을 챙기려는 무수한 신하들의 농간을 파악해내는 정치력이 없는 한 허구에 불과한 까닭이다.”
잠시 숨을 고르는 리토르나,
“그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구에게든 기회는 준비되었을 때 찾아오는 것이다. 그대의 나라는 이제 없고, 그대의 신민은 이제 없으니 단군 하백의 자리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네게 큰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융베리 구루께서 말씀하셨으니 나는 그 말을 믿는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아직 모른다. 하지만….”
하백을 바라보는 리토르나의 얼굴에 신뢰가 담긴 웃음이 떠올랐다.
“그대의 눈빛과 말과 몸가짐을 보니, 마음을 굳게 하고 바로 세운 흔적이 엿보이는구나.”
“황공하옵니다.”
“기다리거라.”
“….”
“스스로 준비가 되었고 때가 왔다고 여겨질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거라. 그것이 1년이 되었건 10년이 되었건…. 참고 참으며 하루하루를 준비하라.”
“…. 황공한 말씀 망극하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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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첫 번째 이야기의 중반쯤 왔네요. 갈 길이 멉니다. ㅎ...
요즘은 일 때문에 다른 시나리오를 하나 쓰다 보니
이 글은 진도가 잘 안 나가는군요. 당분간은 문제가 없을 듯하지만 그게 언제까지일는지....;;;

오늘 날씨를 보니 바야흐로 환절기란 생각이 들더군요. 감기들 조심하시고요.
어제는 샤워를 하고 나니 으슬으슬 하더군요. ㅎ.. 건강하십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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