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황제여, 나는 레스테리온, 며칠 전에 그대가 사냥하려 했던 바로 그 드래곤이다."

쥬리안트 제국의 황제는 몸을 덜덜 떨었다. 그런 주제에 눈을 데굴데굴 굴린다. 곁에 아무도 없는 것이 불안한 모양이다.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인간은 왠지 다 이렇다.

"그러나 나는 쪼잔하게 그런 것을 가지고 보복따위를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뭣보다 그대의 병사는 내게 패퇴했으니까."

황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화가 나지 않은 것은 아니야. 자, 인간의 황제여. 헤츨링의 비늘과 피를 설명해보라. 그대가 거짓을 말한다면 나는 분노할지도 모르겠다."

황제가 대답을 하지 않는다. 뭘 생각하는지는 인간의 머릿속을 들춰본 적이 없는지라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알겠다. 저놈은 감히 드래곤을 앞에 두고 잔대가리를 굴리고 있는 것이다!

"괜히 머리 굴리지 마라. 진실을 말한다면 잘 봐서 용서토록 하고, 거짓을 말한다면 그대의 머릿속을 헤짚어서 진실을 끄집어내고 말 테니."

사실이 그렇다. 드래곤은 마법의 종족, 인간의 얄팍한 머릿속을 뒤져서 기억을 꺼내는 것 따위는 그리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황제는 체념했다.

"아아, 위대하고 지고하신 드래곤이시여, 부디 저희를 용서하소서. 저희는 황궁의 지하에서 헤츨링을 기르며며 그 피와 비늘을 지속적으로 채취하고 있나이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다."

그 방법 말고는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렇게나 야들야들한 비늘을 가진 헤츨링이 사냥당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눈앞의 인간은 황제가 아니라 유령이 된 지 오래겠다.
나는 최대한 무감정한 목소리를 내며 물었다.

"그 헤츨링은 어떻게 얻었지?"

대답은 즉시 나왔다.

"실버 드래곤 에리세니아를 사냥, 아니, 포획, 아니... 그것이..."

"표현은 어찌되든 좋으니까, 계속하라."

"그 때 알론 존재하던 것이 부화했나이다. 그 뒤로 30년이 조금 넘었사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즉, 사육되고 있는 헤츨링은 실버 드래곤 에리세니아의 자식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것도 아직 종족에게 알려지지 않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헤츨링. 아니, 그 전에, 에리세니아는 이미 죽었다는 얘기군?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있나. 슬슬 찾아가볼까 생각하던 차에...

"그 일을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되지?"

"경비병 4명과 마법사 4명입니다."

"그럼 그들만 없애버리면 그대 혼자 남겠군?"

황제는 흠칫하며 몸을 굳혔다. 역시 인간은 간이 작다. 내가 황제를 죽이겠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대번 몸이 굳어버린다. 이런 소심한 인간이 어떻게 헤츨링을 사육하겠다는 생각을 해낼 수 있었을까?
일단은 궁금하다. 그 헤츨링 말이다. 최소한 풀어주긴 해야겠지. 에리세니아가 죽었다고 했으니 아버지쪽에다 맡겨버려도 될 일이고.

"안내하라. 그대가 말한 황궁의 지하로."

나는 가볍게 웃었다. 흥미로우니까. 틀림없이 재미있어하는 웃음이 얼굴에 떠올라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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