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리안트 제국은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대제국이다. 현재 대륙을 삼등분하는 세 개의 제국 중 하나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런 대제국의 수도에 갑작스럽게 드래곤이 한 마리 출현했다. 그 엄청난 덩치를 끌고 유유히 날아와 황궁의 뜰에 사뿐히 내려선 것이다. 물론... 나다.
기사나 경비병이 긴장하는 것이 느껴진다. 저들은 내가 먼저 공격하지 않은 이상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드래곤에 대한 예의 정도는 아는 놈들일테니. 혹시라도 내게 무기를 겨누기라도 했다면 당장 브레스 한 숨 뿜었을 것이다.

- 인간의 황제여, 모습을 드러내라. 그대를 만나러 왔다.

나는 위압감을 가득 실어 말했다. 내 근처에 있던 놈들은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양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린다.
쥬리안트의 황제가 허겁지겁 뛰쳐나와 바닥에 넙죽 업드렸다. 아무리 상대가 드래곤이라고는 하나 너무 과한 예의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오한이 들기라도 했는지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다.

"위대하신 드래곤이시여, 어쩐 일로..."

위대하긴 뭐가 위대한지 원. 위대하다느니 어쩌느니 주절거리는 놈이 이런 짓을 하나?
나는 앞발에 쥐고 있던 것을 땅에 떨어뜨렸다. 전에 얻어뒀던 갑옷과 칼 등이었지만 쇳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드래곤 스케일과 드래곤 클러는 엄연히 말하면 금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색깔부터가 다르다.

- 설명하라.

드래곤 피어를 약하게 섞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정도만으로도 죽기 직전까지 간다. 이렇게 근거리라면 말이다.

- 드래곤의 시체가 썩어나는가 보지? 게다가 강도를 보아하니 헤츨링 같은데...

대마법 방어진이 고룡의 피로 그려졌다면 브레스를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으리라. 고룡이 아니라 성룡의 피였더라도 최소한 얼음가루까지는 안 되었을 터. 대마법 방어진이 어지간히 덜떨어진 것이 아닌 다음에야 관건은 피에 깃든 마력이다.
게다가 드래곤 스케일 역시 강도가 많이 떨어졌다. 드래곤 입장에서 따지면 아기 피부나 마찬가지다. 내 발톱에 흠집이 날 정도라면야 이미 말 다 했다.

- 출처를 밝혀라, 인간의 황제여. 나는 제국의 멸망을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나는 벌벌 떨고 있는 황제를 안심시키기 위해 달래는 투로 말했다. 버러지들에게 이렇게까지 해줄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 황제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위대하신 분이여, 이런 곳에서 쉽게 할 이야기가 아닌 줄 아룁니다."

일리는 있다. 이 정도 되면 인간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작게 쳐줘도 기밀 사항 정도는 될 테니.
나는 그 즉시 폴리모프를 시도했다. 인간의 시점으로는 까마득하게만 보일 내 거체가 빛에 감싸이며 점차 작아졌다. 그리고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는 백금발을 흩날리는 미청년의 모습으로 당당히 섰다. 옆에 흑발의 엘프 여인, 라이아를 대동한 채로. 내 등에 타고 있다가 내가 인간으로 폴리모프하니 자연스레 옆에 서게 된 것이다.

"안내하라.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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