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 상황파악


“으으…….”
김범인은 서서히 눈을 떴다. 정신을 잃기 전에 왔던 고통이 아직까지도 남아있었는지, 온 몸이 찌릿찌릿하고 울려 퍼졌다.
김범인은 이상하게도 무거운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그리고 주위를 살폈다.
“여기는 어디지….”
정신을 잃기 전에 있었던 기루 앞이 아니었다. 아무런 것도 없는 넓은 초원이었다.

“에이씨! 기절한 사람을 내다 버리다니! 더러운 새끼들 같은니라고!”
기절해 있는 사람을 아무도 없는 넓은 초원에 버려두니, 김범인으로서는 짜증이 치솟을만한 일이었다.
따끔.
아무도 없기에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김범인은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던 중, 팔이 따끔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니, 이미 오래 전부터 따끔거렸지만 김범인이 흥분한 탓에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어라? 팔이 왜 이래?”
소매를 걷어 팔을 보니, 검게 그을려 있는 자국이 있었다.

척 봐도 화상자국이었다.
“그런데, 이런 곳이 있었나?”
팔에 검게 그을려 있는 화상자국도 이상하건만, 아무도 없는 초원이라는 곳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장소였다.
진천검신이라는 천하십대고수가 되기 위해 수많은 사냥터에서 싸워왔지만, 이 초원은 듣도 보도 못한 곳이다.
“게임 안 인건 맞는 거 같긴 한데…….”

창천에 접속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아는 것은 쉬웠다. 커스텀마이징 시스템으로 인해 현실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스테이터스(Status) 창 오픈.”
김범인은 정보 창을 열었다.

청풍(김범인)
직업 수련자 LV 1 ( 0 % )

생명력 400 / 400 내력 54 / 54
( 0 0 ) ( 0 0 )

힘 5 ( 0 0 ) 민첩 5 ( 0 0 )
체력 5 ( 0 0 ) 지능 5 ( 0 0 )
지혜 5 ( 0 0 ) 운 5 ( 0 0 )

보너스 스탯 0

치명타 0 ( 0 0 ) 　 회복력 1 ( 0 0 )

저항력 화(火) 0 　 수(水) 0
　목(木) 0 　 금(金) 0
　토(土) 0 　 광(光) 0
　암(暗) 0 　 뇌(雷) 0
　독(毒) 0 　

“흐음.”
김범인은 자신의 스탯창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 이상은 없었다. 부캐를 만들 당시 그대로의 스탯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탯창도 열어봤지만, 역시나 게임 안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기루에 갈 기분도 조졌고, 그냥 나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김범인은 김빠진 표정으로 로그아웃 창을 눌렀다.
로그아웃 창은 다른 창들과는 다르게, 실수로 로그아웃할 것을 대비하여 육성으로 실행되지 않게 되어있었다.
‘이제 로그아웃하겠습니다. 3, 2, 1. 라는 말이 들리겠지?’

로그아웃을 알려주는 여자의 목소리는 끝내준다. 한번 직접 얼굴이라도 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게 좀 아쉬울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어라?’
로그아웃을 알려주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로그아웃 창을 누르면 아무리 늦어도 10초 이내에는 들려와야 정상이었다.
초기에 서버가 다운이 될 정도로 많은 유저들이 접속해 있을 때도 그랬다. 10초 이내에는 로그아웃이 됐었다.
그런데 지금은 10초가 지나고 1분이 다 돼가도록 로그아웃이 되지 않고 있었다.
“뭐야 이거!”

김범인은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무슨 놈의 게임이 로그아웃을 안 시켜준다는 말인가!
‘평생 동안 게임 속에서 살라는 말인가?’
김범인은 생각하고는 고개를 홱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게임 속에서 평생 산다는 것은 말 도 안 되는 말이었다.
바깥세상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있다. 창천에서 기루에 다니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여자 친구를 사귀고 ‘그거’를 해야했다.
“아니지.”
김범인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로그아웃이 안 되는 것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신이 기절해 있는 동안 긴급패치에 들어갔다던가, 버그로 인해서 그럴지도 몰랐다.

운영자들이 창천을 항상 모니터링한다고도 했으니, 자신이 로그아웃이 안 되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때까지만 잠시 게임 속에서 있으면 괜찮을 것이다.
“에효. 빨리 좀 해결해 줬으면 좋겠는데.”
배가 고파지면 밖에서 밥을 먹기는 해야 했다. 김범인은 투덜거리며 바지춤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발사체 주변을 긁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가려운 것이다.
따끔.
“아얏.”

발사체 주변을 긁다가 검게 그을린 팔이 바지에 닿으며 따끔거렸다. 어째서 체력도 달지 않았건만 검게 그을려 있는 것인지는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버그때문이가? 라고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무협이라는 설정상이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판타지의 포션과 같은 것은 없었다. 대신 운기조식과 금창약과 같은 것으로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며 체력을 회복시킬 수는 있다.
“뭐 상처에 좋은 건 없나?”
김범인은 초원에 나 있는 풀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풀들 중에서도 약초와 독초가 있다.

약초를 찾아서 먹는다면, 그나마 상처를 조금 더 빠르게 치료하려는 것이다.
김범인은 진천검신을 키우며 의술에 대해 배운 적은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게임에서는 파티플레이가 기본이다. 파티에 의원이 포함되어 있기에 기본적인 지식과 스킬 정도는 알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흔한 풀들 중에서도 약초가 있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뚜둑.

김범인은 중얼거리며 눈에 보이는 풀들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뿌리가 깊게 박혀있는 풀들은 잎 혹은 줄기가 뽑혀 나왔다. 뿌리가 얇게 박혀있는 풀들은 뿌리까지 통째로 뽑혀 나왔다.

이름 없는 잡초를 획득했습니다.
쓸데없는 잡초를 획득했습니다.
고사리를 획득했습니다.
개나리를 획득했습니다.

시스템 알림음들이 빠르게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풀들을 전부 쥐어뜯고 있기는 하지만, 쓸모 있는 것들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에이 썅! 스킬은 언제 생기는 거야!”
김범인은 짜증을 내며 마지막으로 풀을 뽑아들었다.

약초 채집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약초 확인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그 순간, 스킬이 생성되었다는 시스템 알림음이 들려왔다.
“드디어 생겼군!”
김범인은 빠르게 스킬창을 열어 스킬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창천에서 스킬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비급을 얻어 획득을 하거나, 무림인NPC에게 무공을 전수 받는다거나 말이다. 하지만 다른 게임들과는 차별화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반복행동을 통한 스킬의 생성과 진화였다.
보통 일반 가상현실온라인 게임은 반복행동을 통한 스킬의 생성까지만 구상되어있다. 하지만 창천은 그것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서 스킬이 진화되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어떤 물건을 잡는 것을 반복을 한다고 치자. 그렇게 되면 잡는 것에 관련된 스킬이 생성된다. 그것은 초기 스킬이기에 최하급 스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을 계속 반복해서 사용하면 숙련도와 등급이 오른다. 그러다보면 금나술로 스킬이 진화하기도 한다.
“이런 시스템은 참 좋단 말이야.”

약초 채집과 약초 확인 스킬을 확인한 김범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초 채집 스킬은 말 그대로 약초를 채집하는 스킬이다.
약초도 어떻게 채집 하냐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약초로 쓰이는 부분이 훼손이 심하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약초 채집스킬 등급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약초의 훼손 정도가 더 적어진다.
약초확인스킬은 채집하려고 하는 풀이 약초인지 확인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등급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확인 가능한 약초의 종류가 많아진다.
김범인은 자신이 쥐어뜯은 풀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약초 확인!”

약초 확인 스킬이 발동되었습니다.

시스템 알림음이 들리며 풀 위로 이름이 생겨났다.
“잡초잖아?”
괜스레 맥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실망하기에는 남은 풀들의 양은 많았다.
“약초 확인! 약초 확인! 약초 확인! ……”
김범인은 스킬을 사용해서 풀들을 전부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건 잡초고 이것도 잡초고, 저것도 잡초고……”
모두 확인한 결과 10개 중 8개는 잡초였다. 고사리와 같이 식용 식물이 10개 중 1개가 포함되어 있었고, 확인이 불가능 한 풀들도 있었다. 약초로 쓸 만한 것은 최하급 약초밖에 없었는데, 양도 적었다.
“약은 어떻게 만들지? 에이 뭐 대충 하다보면 스킬이 생기겠지.”
김범인은 자문자답하며 바로 행동으로 실천했다. 약초들을 널찍한 돌 위에 올린 것이다. 그리고 손아귀에 딱 들어오는 돌을 쥐어 들고는 내려찍었다.

물론 그전에 돌들을 깨끗하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신의 팔에 바를 약인데, 더러우면 안 되지 않겠는가?
퍽, 퍽, 퍽.
약초들이 짓이겨지며 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김범인은 빠르게 액을 수습하며 약초들을 뭉쳤다.
“아썅! 이렇게 하는 거 맞나?”

스킬에 대한 것은 알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은 NPC를 통해 전수를 받거나 비급을 사서 스킬을 익힌다. 더구나 약 제조 스킬같은 경우에는 더 그랬다. 구리 몇 문이면 살 수 있는 가격인데, 누가 반복행동을 통해서 익히겠는가?
하면서도 확신이 서질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약초들을 완전히 짓이기고 뭉치자 겉 생김새는 그럴듯하게 만들어졌다.

이름 모를 약이 만들어졌습니다.

시스템 알림음이 들려오며 약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김범인은 왠지 모르게 약에서 불안한 기운을 느꼈다.
“…발라볼까…?”
생김새는 그럴듯하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름이 ‘이름 모를 약’ 라는 것에서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김범인은 잠시 고민하던 끝에 눈을 딱 감고 팔에 약을 발랐다.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3초 동안 30의 생명력이 소모됩니다.

“……이런 씨부럴.”
저절로 욕설이 입 밖으로 나왔다. 약초로 약이 아닌 독을 만든 기사를 벌였기 때문이었다.
“검공을 익히지 않고 의원으로 나갔으면 큰일 날 뻔했네.”
잘못하면 환자들에게 미안해질 뻔했다. 하지만 김범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상처를 치료하려면 스킬을 익혀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그랬을까?
김범인이 환영할 만한 시스템 알림이 들려왔다.

약 만들기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독 만들기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