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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34 330회 0건
"유리안느님, 괜찮으세요?"

정적이 맴도는 가운데 시엘의 목소리가 울렸다.
시엘이 허겁지겁 쓰러져있던 유리안느에게로 뛰어갔다.
이미 유리안느에게서 느껴지던 차갑고 강인한 기운은 사라졌다.
이제는 달빛처럼 시린 여인이 아니라 원래의 그녀로 느껴졌기에 다가설 수 있었다. 창백해진 뺨을 쓰다듬고 손목에 손을 가져다가 맥을 짚었다.

그레이 역시 다가섰다. 이리아스와 예린은 주변을 살피며 또 다른 위험요소가 있지 않은 지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이리아스는 검을 다시 검집으로 집어넣었다.
후방에 숨어 있었던 히리네 역시 안전하다고 느끼고는 일행에게 다가왔다.

"예린님 상처가…. 어디봐요."

그리고는 먼저 예린의 상처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먼저 깨끗한 천으로 상처주위를 닦아내었다. 히리네의 손이 자신의 가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분주하게 움직이며 고운 점액질이 담긴 병을 꺼내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예린의 상처에 발랐다.

"조금 따끔거릴거예요."

살짝 웃으면서 말하고는 다시 상처를 살폈다. 상처를 살피는 히리네의 표정이 이내 진지해졌다.
그녀의 주변으로 손등으로 생명의 기운이 조금씩 모이더니 손가락 주변으로 꽃가루처럼 흩날리면서 흐름을 만들었다.


"생명의 흐름, 재생"

예린의 얼굴이 조금 찡그려졌다. 아픈 것은 아니였지만, 마치 상처에 딱지가 생길 때처럼 간지러워졌기 때문이었다.

"고마워"

예린이 손으로 히리네의 머리를 쓰다듬자 히리네의 표정이 환해졌다.


치웅-

맑고 경쾌한 소음이 흘렀다. 이리아스가 집어넣었던 검을 다시 빼어 든 것이었다.

"끝나지 않았어요. 조심해요."

이리아스의 존재감이 있는 듯 없는 듯 흐려졌다. 주변에서의 이질감을 포착하기 위해서 집중하였다.


"호오, 역시 수호자인가. 어둠의 그늘에 숨어 있었건만,"

달그림자가 비친 성곽의 아래에 짙은 검은 오로라가 피어올랐다. 그 속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흘러나왔다.

"라플라스!!!"

비정상적인 오로라를 뿜어내는 공간 쪽으로 이리아스와 예린의 시선이 돌아갔다. 예린의 눈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멍청한 녀석, 우리의 임무는 황후를 모시는 것이지. 마법의 호기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란다."

라플라스의 공허한 눈이 죽어버린 노인을 향했다.

"후후, 뭐 너의 허튼짓 덕분에 목적한 바를 쉽게 달성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네가 수호자를 이리로 데리고 온 덕분에 황후를 모실 육체를 쉽게 찾았으니…."

"어딜"

쒸이이잉-

이리아스의 화살이 라플라스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쏘아졌다.

끼릭-

거북한 소음이 공간을 찢었다.

"이런"

이리아스의 화살이 다른 방향으로 튕겨져나갔다. 라플라스의 앞을 막아선 여인이 화살을 퉁겨낸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길고 강인한 붉은빛의 손톱이 드러났다.
바위를 자르고 쇠를 퉁겨내는 묘인족의 손톱이었다.

큰 키, 긴 다리, 헝클어진 붉은 단발머리, 강인한 눈빛, 옷 입는 것 자체가 귀찮은 듯 대충 걸친 옷 아래로 단련된 육감적인 여인의 붉은 피부가 살짝 내비치었다.

그리고 야성적인 몸매에 어울리는 도발적인 표정으로 화살을 쏜 이리아스를 노려봤다.

"묘인족?"

묘인족이 라플라스쪽에 있는 것이 의아한 이리아스가 짧게 내뱉었다.

"조심해, 이마를 봐. 세뇌된 것 같아."

그 묘인족의 이마에 박혀 있는 크고 영롱한 결정을 보고서 그레이가 주의를 주었다.
강해 보이는 묘인족이 살기를 띈 채 그레이일행을 노려보았다.

"아아..."

예린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넋이 나간 듯 벌벌 떨었다.

"어…. 엄마"

마을에서 실종되어 헤어졌던 어머니를 적으로서 다시 만났다.


"오호라, 서로 아는 사람인가? 하지만 미안하군. 상봉의 시간을 더 주고 싶지만, 나에게는 임무가 우선이라서"

라플라스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마나의 벽에 갇혀버린 소녀와 아기가 천천히 드러났다. 나기니을 꼭 껴안고 온몸을 움츠린 몽령이었다.
라플라스의 마력에 압도당해 몸이 조금씩 부서지면서도 품에 안은 아기를 놓지 않았다.
그 모습이 감동 받은 표정을 지으면서 라플라스가 말했다.

"묘하군, 묘해. 여신을 돌보는 현실화된 정령이라."
"하지만, 여기까지."

라플라스가 마력의 막 속에 갇힌 몽령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몽령의 목을 잡아 그대로 들어 올렸다. 라플라스의 손가락이 몽령의 희고 긴 목 속으로 파고들었다.

"정령이라,…. 물리력은 잘 버틸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순수한 힘에는 약한 존재이지."

"악의 의지"

라플라스의 어둠의 기운이 몽령의 몸속으로 파고 들었다.

[ ... 하아 ...]

소리로 변하지 못한 비명이 몽령의 몸속에서 비틀렸다. 몽령의 몸이 점점 검게 변했다. 원래부터 순함으로 가득 찬 존재이었다면 강하게 반항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몽령의 몸에는 어둠의 기운 역시 자리 잡고 있었기에 그녀의 몸짓은 점점 약해졌다.


[아 안돼. 도 도와.]

자신의 의지가 점점 사라지고 완전한 어둠으로 물드는 것을 몽령은 느꼈다.

쒸아아아-

어둠의 막을 깨트리는 화살이었다.
화살을 쏜 그레이는 몽령에게 외쳤다. 몽령을 다시 불러드리는 것이었다.

"이리와."

몽령이 몸을 비틀었다. 라플라스에게 잡혀 있던 목 부분이 부서져 몸이 흐려졌지만 그레이를 향해 날아올랐다.

"호오, 반항하는 것인가?"

"악의 의지"

라플라스의 음산한 목소리가 울러 펴졌다.
라플라스에게서 어둠의 덩어리가 뿜어져 나왔고 몽령의 몸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몽령에게서 찢겨 나간 부분은 비명과 함께 허공 속으로 흩어졌다.

[ 으... 그만 ]

그레이가 다가섰다.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레이가 몽령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몽령이 어둠에 염색된 그대로 그레이에게 천천히 스며들었다.

"흐흑,"

이젠 그레이에게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레이의 무릎이 굽혀졌다. 그레이의 고개가 숙여졌다. 그 숙여진 그레이의 눈빛이 조금씩 어둠으로 물들었다.


"이게"

이리아스가 검을 들고 흩날리듯이 움직이었다. 그녀의 검 끝이 흔들리고 흰빛이 꽃잎처럼 날렸다.
이리아스의 검끝이 예린의 어머니에게로 향했다.

"아, 안돼. 우리 엄마야."

혼란에 빠져 있었던 예린이 벌떡 일어났다.

콰가가가강-

거대한 충돌이었다.
예린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하였다. 자신의 어머니가 염려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충돌한 두명의 여인 모두 뒤로 열 걸음씩 밀려났다.

"이, 이런"

오히려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이리아스의 얼굴에 낭패감이 서린 반면 성숙한 묘인족 여인의 얼굴에는 도도함으로 가득 하였다.

"역시 수호자인건가. 강화된 묘인족과 비슷한 힘이라니…."
"후후 그렇다면 물러나지. 목적은 달성했으니"

라플라스는 자신에게 세뇌된 묘인족이 있는 이상 이대로 싸운다면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하지만, 난전을 벌어져서 나기니를 빼앗긴다면 이겨도 소용없는 것이었다.

라플라스의 손끝에서 어둠의 기운이 터져나왔다.

콰카카광-

그레이 일행들에게 마법이 퍼부어졌다.
하지만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다만 그 폭발의 기운이 사라졌을 때는 이미 라플라스는 나기니와 함께 사라졌다.





-----------------------------------------------------------------


"으으, 제길"

이리아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나기니를 보호하는 것 역시 임무중에 하나이었다.
이리아스는 다른 엘프들에 비해서 여행도 많이 다니고 타종족과도 접촉을 많이 한 편이었다. 그렇게 많은 경험이 있는 이리아스의 경우도 자신의 종족에 대한 고정된 인식 때문인지 다른 종족과 자신의 종족 사이의 혼혈에 대해서는 낯을 가렸다.
이번 여행에서 이리아스는 나기니를 보호하는 것을 무의식중에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직접 보호하지 않고 그레이의 몽령이 보호하는 것을 보고 괜찮겠지 방심하고 있었다.
이리아스는 임무 중에 우선순위를 낮게 잡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이러한 결과가 나기니가 엘프와 리자드맨의 혼혈이라는, 종족의 편견에 자신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후회하기 시작하였다.

"되찾아야겠어."

단호한 목소리이었다. 물론 임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라플라스의 행동에는 의문점이 있었다. 이리아스의 자신과 엘프종족이 그저 혼혈로만 받아들였던 나기니를 중요한 취급을 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라플라스는 마치 나기니가 자신들의 다음 계획을 위한 열쇠가 되는 것처럼 그레이일행들을 처치하는 것보다 우선해서 행동하였다.

"그렇다면, 더 큰 이익이 있다는 것…. "

이리아스는 두 눈을 감았다. 천천히, 느리고 고요하게, 하지만 깊이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다시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한쪽을 바라보았다.
엘프는 조화의 존재, 흑마법사는 그 존재 자체가 부조화이었다.
이흑고 이리아스의 머리가 한쪽을 향했다. 미세하게나마 어긋남이 남아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잠시 히리네를 바라보며 고민을 했지만 길지 않았다.
이제 이곳에 강한 적은 없었다. 성안의 일반 병사라면 히리네 혼자서 처치하지는 못하더라도 엘프의 움직임으로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라플라스가 의도하는 것은 엘프 한두 명의 목숨 정도가 아닌 더 큰 일이 벌리려고 한다는 불안감이었다.
오랜 시간 수호자로서의 경험으로 단련된 감이 그레이의 부상보다도, 히리네의 여행보다도 라플라스를 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히리네, 엘프마을로 돌아가. 난 라플라스를 추적한다."

마음을 결정하자 행동은 빨랐다.
쭉 뻗은 두 다리가 땅을 박차자 점이 되어 사라졌다.

"이리아스"

예린이 다급하게 이리아스를 불렀다.

"으으,..."

예린의 시선이 그레이로부터 히리네에게, 다시 그레이에게로 향했다.

"히리네, 그레이를 부탁해."

예린 역시 이리아스가 향했던 방향으로 사라졌다.
어렵게 찾은 어머니이었다. 그것도 세뇌가 당한 모습이었다. 이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당장 구해내지는 못하더라도 흔적이라도 찾아 숨어서 기습이라도 할 기회를 찾아야 했다.
그레이의 부상이 걱정되어지만, 히리네의 치료술이라면 괜찮을거라고 되뇌면서 이리아스의 뒤를 ?아 달려나갔다.

"예린님..."

히리네의 대답이 헛되이 흩어졌다. 아무래도 사회 경험이 적어서 상황 판단이 느린 히리네이었기에 그녀가 입을 열어 대답했을 때는 이미 이리아스와 예린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예린의 상처가 걱정되었지만 이미 그녀는 떠났다.

"그럼, 그레이님을..."

히리네는 천천히 그레이에게로 다가섰다. 히리네가 그레이을 치료하기 위해 다가가는 모습을 본 시엘 역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시엘은그레이는 히리네에게 맏기고 탈진한 듯 쓰러진 유리안느에게로 다가섰다. 라플라스의 공격에 당한 그레이의 상처가 걱정되었지만, 의술은 히리네가 나으니 그녀에게 맞기고 유리안느를 보살폈다.

흙바닥에 머리를 둔 채로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히리네에게 보였다.

"그레이님"

히리네의 고개가 기우뚱거렸다. 평상시의 그레이의 느낌과 어두운 느낌이 휘몰아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감각을 집중해 그레이을 살피자, 어두운 느낌이 점점 커져감이 느껴졌다.

"히리네, 떨어져."

그레이의 입이 간신히 떨어졌다.
힘이 드는 듯 탁한 목소리이었다.

그레이의 고개가 들렸다. 히리네와 눈이 마주쳤다.
탁한 어둠과 붉은 욕망으로 타는 듯한 눈빛에 순간 히리네는 몸을 움츠렸다.

"멀 어 져 라."

다시 한번 갈라지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히리네는 탁하지만, 너무 진한 기운에 물러섰다. 그레이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자연스럽지 못했다.

"으흐... 아아악"

그레이가 비명처럼 소리를 내질렀다. 온몸을 벌벌 떨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뒷쪽으로, 성의 뒷편으로 뻣어져 있는 산맥으로 달려나갔다. 어둠에 의식이 장악되어 정신을 잃어버리기 전에 본능적으로 유리안느와 시엘,히리네을 위해서 자리를 피하는 것이었다.

"아, 그레이님 멈추세요. 치료를..."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그레이을 향해 히리네는 외쳤다. 순간 예린이 그레이의 치료를 자신에게 맡기고 간 것이 생각난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레이가 사라진 방향으로 히리네 역시 달려갔다.
히리네는 아직 미숙한 엘프이었다. 히리네가 조금만 더 경험이 많았더라면, 특히 악한 존재를 겪어보았다면 그레이을 따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자신의 힘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고 오히려 치료하지 못하고 자신이 해를 입을 수 있는 경우임을 히리네는 알지 못하였다.


----------------------------------------------

움찔-

순간 히리네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기묘함이 느껴졌던 곳으로 시선을 행했다.

휑하니 부는 바람.

"휴-"

그냥 바람에 풀잎이 쓸리는 소리였을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레이 ?아서 들어온 숲 속, 평범한 숲이었지만, 그레이를 쫓아들어온 히리네는 자꾸만 이유없이 긴장하는 자신을 느꼈다.

"그냥, 바람일 뿐이야."

어색함을 잊으려는 듯, 자기 자신을 다독거리려는 듯 소리 내서 말했다.
이미 그레이의 흔적은 놓쳐버린 지 오래이었다.
불안감, 수상한 공기, 히리네는 조금씩 숨쉬기가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히리네는 숲의 아이이었다. 아무리 어둠에 둘려싸여져 있다고 해도 숲 속이라면 그녀에게는 편안한 공간이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공기는 끈적거림마저 포함되어 있었다.

"돌아가야겠어."

그레이를 부탁하는 예린의 말이 기억났지만,지금은 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판단 내렸다.

"흡"

하지만 그 판단은 너무 늦었다.

히리네는 짧게 신음을 흘렸다. 끈적거리는 느낌, 이제 뜨거움마저 더해졌다.
히리네의 등 뒤에서 무언가가 허리를 감고 낚아채었다.
세네 발자국 뒤로 끌려갔다.
당황한 히리네는 고개를 흔들며 허리를 감은 물체를 풀어내려 몸부림쳤다.

"그레이님?"

등 뒤에서부터 안겼기에 목을 뒤로 젖기고 나서야 자신을 부서질 듯이 안은 것이 그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 이런,"

그의 행동에 놀란 히리네가 질문할 시간을 그레이는 주지 않았다.
아직 여물지 못해 여리디여린 소녀의 입술을 그레이의 입이 덮었다.
그레이의 무례한 혀가 소녀의 작은 입술을 뭉개듯이 짓눌렀다. 그리고 윗입술을 떨쳐내며 소녀의 입을 열고 소녀의 혀를 약탈하기 시작하였다.

"흐흡, 이러 으흐흥"

이러지마라는 소녀의 거부가 침입자와 뒤섞여서 기묘한,하지만 생물을 자극하는 소리로 흘러나왔다.
등 뒤에서 껴안은 채 시작했던 키스는 소녀가 피하지 못하도록 한 손으로는 뒷머리를 한 손으로는 목과 소녀의 턱을 잡은 자세로 변해 소녀의 거부를 막았다.

"으흐 으음"

히리네의 놀란 비명이 비음이 되어 숲 속에 흘렀다.
그녀의 두 눈에 비친 그레이의 얼굴은 욕망으로 뒤범벅 되어 있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히리네에게도 그 욕망이 자신을 소유하려는 욕망이라는 것을 몸서리쳐지도록 느낄 수 있었다.

"우흐웅"

"그만, 안 돼요."

그레이의 오른손이 소녀의 목 부분의 옷깃을 붙잡아 찢어버렸다.
질긴 옷감으로 만들어진 엘프의 옷이었지만 그대로 찢겨나갔다. 소녀의 두 손은 히리네의 목을 잡은 그레이의 손을 치우기에도 벅찼기에 옷을 찢는 손길은 막을 수 없었다.

"크큭 크크..."

이성을 잃어버린 그레이의 목에서 마치 짐승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이 찢어버린 옷 사이로 드러난 근육의 핏줄들이 터질 듯이 부풀어올랐다. 그가 익혀왔었던 기운과 오염되어 흘러들어온 어둠의 기운이 핏줄 사이사이에서 부딪히며 불타올랐다.

"크흐.. 흑"

이번에 욕망이 섞인 비음이 아니었다. 그레이는 몸속에서 일어나는 충돌에 고통의 신음을 흘렀다 그레이의 떨리는 손이 더욱 히리네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입술을 탐했다.
조금씩이지만 히리네의 부드럽고 고운 기운이 그레이에게로 흘러들어 가기 시작하였다.

그레이의 고통은 줄어들었지만, 욕망은 점점 더욱 커지기 시작하였다. 그레이가 익힌 것은 자기 자신의 억제하고 남을 바라보며 어울림을 추구하는 무공이었다. 비록 그레이가 단련을 위해서 익혔고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였지만 그러한 무공이 지향하는 바는 사실 그레이가 세상을 보는 방법과는 격차가 있었다. 그레이는 고생하면서 커온 만큼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무공을 남긴 자처럼 세상을 포용할 정도로 마음을 다스리지도 못했다.
이 틈을 외부에서부터 스며든 어둠이 그레이를 오염시켜버린 것이었다. 그 어둠은 그레이가 수련을 통해서 쌓아올린 토대를 그의 마음과 더욱 가깝게 밀착시켰다.
그레이 역시 욕망이 있는 인간, 그에게 있어서 선인의 무공은 마음의 심연까지 연결되지 못했기에 한계가 있었다.
이 틈을 욕망이라는 이름의 어둠이 메우며 그레이의 진원과 쌓아올린 토대를 하나로 휘몰아치며 섞어 들어갔다.

하지만 그 두 가지 기운의 충돌은 거대한 고통을 일으켰다. 거기에다가 어둠이 장악하면서 치밀어오른 살기와 욕망은 이미 극에 달했다.

그런 그의 앞에 히리네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히리네을 덮쳤다.
만일 히리네가 숲의 아이가 아닌 인간이었다면, 순수한 정기가 가지지 못했더라면 그레이의 내부 기운들의 충돌 여파를 다독거려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레이의 혀가 끈적끈적함을 품고 히리네의 치아를 쓸어담을수록, 우악스러운 손이 어린 가슴을 쥐어 잡을 때마다, 그리고 그의 단련된 손바닥이 아침이슬처럼 촉촉한 습기를 머금은 둔덕에 오르자 그레이의 기운이 사방에서 충돌하고 부딪히는 것이 아닌 오히려 느리지만 커다란 흐름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아흐.. 제발 정신차려요."

이미 작고 여린 몸을 가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붙잡혀 안긴 채 그의 꿈틀거리는 손길에 흠칫 놀라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이었다.

소녀의 작은 두 눈이 커졌다. 그레이의 양손이 자신의 두 발목을 잡고 끌어올려 그녀의 두 발목은 소녀의 머리 옆까지 당겨졌다. 온몸이 둥글게 말려서 하체의 부끄러운 부분이 온전히 그레이에게 드러났다.

"안 돼요. 제...발"

몸을 비틀어 당겨보지만 땅에 박힌 바위처럼 미동조차 없었다.

"아악. 그만. 그만. 악"

기운 충돌의 여파 때문이지 인간의 크기가 벗어난 짐승 같은 그레이의 중심이 결국은 히리네를 뚫어버렸다.

"아아악 움직이지 ...아하."

거친 율동이 시작되었다. 검은 바다에 폭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그레이는 용서가 없었다.
히리네는 짓눌려진 채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자신의 몸속에 느껴지는 크고 묵직한 느낌에 몸서리쳤다.

"카아하하하"

갑자기 그레이가 광소를 터트렸다.
기운의 충돌이 만들었던 흐름이 순수를 범함으로 인해서 이제는 웅장하게 맥박치며 흘러내렸다.
히리네의 두 눈이 치켜떠 졌다. 금세 의식이 잃어버린 듯 두 눈의 초점이 흐려졌다. 그레이의 기운이 커짐으로써 이전에는 건드리지 못했던 그녀의 심연을 두드렸기 때문이었다.
히리네의 마음는 다른 안정적인 엘프들과는 상태가 달랐다. 흑마법사들에게 납치를 당하고 실험을 당하면서 마음의 굳건함은 엷고 흐렸다. 그렇기에 그레이의 기운이 그녀의 심연마저 뒤흔들기 시작하였다.

"예린... 님..."

넋이 나간 듯 잔잔한 흐느낌이 흘러내렸다.

이러한 변화 가운데 그레이에게서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레이에게 이제는 기운의 충돌로 말미암은 고통스러운 모습은 없었다. 폭포와 같은 치밀어 부수는 듯한 움직임을 계속하면서 어린 엘프의 순수한 심연의 기운을 몸속으로 끌어 삼켰다.

"크하악"

그레이가 검은 덩어리를 토해내었다. 그리고 그의 몸이 조금씩 허물이 벗겨지듯이 갈라졌다.
그레이가 자신의 욕망이 어둠에 부합하면서 만들어낸 길로 이때까지 수련으로 쌓아올렸던 기운과 흡수했었던 기운들이 맴돌며 휘몰아쳤다.
그 기운이 히리네의 순수한 기운에 보호받아 움직일 때마다 그레이의 근육 하나하나 핏줄 하나하나가 노폐물을 토해내고 새로워졌다.





히리네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비추는 햇살에 눈을 떴다. 누군가에게 안겨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흐으..."

몸을 일으키려고 무릎에 힘을 주려다가 하체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다시 몸의 중심을 잃어버렸다.
히리네가 깨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정신차리고 있었던 그레이는 자신의 품속에서 자신의 중심을 받아들인 채 깨어났다가 다시 쓰러지는 히리네를 그저 안아 올렸다.

이제 이성이 돌아온 그레이는 품속의 히리네를 잠시 토닥거리다가 침묵에 잠기었다.
이미 몸의 고통은 사라졌다. 아니 고통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몸은 가벼워지고 힘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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