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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47 540회 0건
지난주에 꿈을 꿨어요. 꿈이지만 재밌더군요. 그래서 잊기 전에 글로 남겨 두려고 써 봤습니다. 그렇게 한주를 보내고 나니까 애모를 하나도 못썼네요.

최소 일주일에 한편은 올리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었는데.. 그래서 이 글이라도 올립니다.


==================


1일.

집에서 학교까지의 직선거리는 멀지 않다. 그러나 두 점의 최단거리인 직선상에는 작은 산이 있었다. 산의 정상에서 우리 집 쪽으로 보면 작은 집들이 성냥갑처럼 따닥따닥 붙어 있고 수백. 수천대의 차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한 거리를 가득 매웠다.

그 반대쪽으로는 교도소 담장을 연상시키는 높은 담들의 집들이 경사면을 따라 그림같이 서 있다. 차도보다 넓은 골목길에는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다. 가끔씩 비단처럼 반짝이고 여인의 엉덩이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차들이 지나갈 뿐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버스를 타면 복잡한 도로와 많은 사람들 때문에 50분이 걸리고 그 산을 가로질러 가도 50분이 걸렸다.

“뛰어! 지각하겠어..”

“헉.헉...버스탈걸..”

바로 옆집에서 살면서 같이 자란 친구가 있다. 아침을 먹고 만나면 엄마가 밥 먹으라고 소리칠 때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같이 놀았다. 많은 애들이 이사 오고 또 떠나갔지만 인연의 끈으로 묶인 우리는 계속 그 자리에 살았고 그렇게 친했다. 비슷한 가정형편이었지만 친구의 집은 3남매고 나는 외아들이라 엄마의 욕심으로 사립초등학교를 가면서 옆집임에도 잘 만나지 못했다. 중학교도 다른 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고등학교 입시제도가 소위 뺑뺑이로 바뀌면서 같은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다. 엄마의 오랜 노력은 간단히 무시되었다.

그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붙어 있으면서 대부분의 애들이 같은 중학교 출신이었다. 친구 역시 그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고등학교로 이어서 진학했다. 그런 친구의 도움으로 지금 달리고 있는 길도 알게 되었다.

“마지막이야..힘내..”

“헉..헉...응...”

산 하나를 넘고 잠깐 내리막길을 달리다가 학교의 건물이 보일 때쯤 되면 30도 이상의 경사를 자랑하는 오르막길이 나온다. 그 길의 끝에 지금 다니는 학교가 있었다. 처음 소집일 날 왔을 때는 마음에 들었었다. 오르막길 양쪽에는 고래 등 같은 집들이 있고 오르막길의 끝에 하얀 페인트로 칠해진 건물이 그림처럼 보였다.

교문 옆 수위실은 사선의 건물 벽을 가지고 있어 우주선 조종실처럼 보였고, 학교 한쪽에는 경사를 죽이고 계단을 만든 사이사이 농구장이 3개나 있었다. 길 양옆에는 나무들이 푸름을 자랑하며 우거져 있는데 길 양옆의 나무가 지붕처럼 이어져 길을 따라 아치형의 그늘을 만들었다. 나뭇잎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싱그러웠다.

거기까지였다. 환상적인 분위기는. 오르막 끝에 놓인 학교는 창문마다 쇠창살이 달려 있고, 교실 문 역시 철문이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는 학교의 안내서 그대로 너무 낡아 금방이라도 부서질 거 같은 책걸상이. 그것도 나무로 만들어진. 교실마다 수북이 들어서 있었다. 교복은 칙칙한 짙은 녹색으로 타 학교의 세련미를 따라가지 못했고, 각각의 종교관과 상관없이 일주일에 한번 성경공부를 해야 했고 예배도 봐야 했다.

“헉..헉...”

“흑..헉...간신히 지각은 면했다..”

가장 지겨운 것은 그 오르막길. 기독교 학교의 학생들답게 우리는 그 길을 골고다라고 불렀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올라갔다는 언덕의 명칭이지만 우리들 심정 역시 예수와 다르지 않았다. 선배들의 재치와 슬픔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

수업은 지겹고 선생들도 학생들도 열의가 없다. 사립과 공립의 차이는 누가 뭐라고 떠들던 분명히 있었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것은 다른 학교보다 일찍 끝난다는 것이다. 중. 고등학교가 붙어 있었고, 고등학교는 야간까지 있었다. 부족한 교실 때문에 대부분 오후 3시에는 종례를 하고 집에 가야 했다. 야간 때문에 주민들은 싫어한다고 들었다. 골목길에서 싸움이라도 나면 사람들은 야간 애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야간 애들이 많이 싸웠다.

“이렇게 3년을 뛰어다니면 진짜 다리하나는 튼튼해지겠다..”

“히히. 나 봐. 벌서 햇수로 4년째잖아..”

매일같이 뛰어서 인지는 몰라도 친구는 나보다 키도 머리하나는 크고 몸도 단단했다. 어렸을 때는 별 차이 없었는데 지금은 남이 볼 때 형제로도 보일정도였다. 다른 것보다 그 큰 키는 언제나 부럽다.

“저거 버리는 건가?”

“어디? 진짜..가볼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도 같은 길로 다녔다. 지름길이었다. 그 길 옆, 문이 어디 있는지 한참을 찾아야 할 것 같은 거대한 집의 한쪽에 버려진 가구들이 싸여 있었다. 아직 멀쩡한 물건들이 함부로 널브려져 있다. 나무를 통으로 만들은 책상과 책장. 책장에는 한문으로 쓰여진 근대사니 철학이니 하는 것들이 가득 던져져 있고, 최신 모델의 슬립형 컴퓨터와 평면모니터도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거울이었다. 전신이 전부 보일정도로 큰 거울인데 다른 가구들보다 더 고풍스러웠다. 거울을 둘러싼 테두리는 알 수 없는 문양이 양각되어 있는데 인도의 만다라처럼 보였다. 깨진 부분도 없었다. 처음 발견한 원인도 이 거울의 반짝임 때문이었다.

“가져도 될까?”

“글쎄...버린 거면..괜찮을 것도 같은데..”

“그지? 난 이 거울을 가질래..”

“음..난 컴퓨터..”

“고장 났을 텐데?”

“한두 군데 고장 났겠지만 이런 최신형이 전부 망가졌기야 했겠어? 부품 몇 개 바꾸면 싼값에 사는 거나 마찬가진데..한번 가져가 볼래..”

“그래..그럼..”

그래서 난 거울을 친구는 컴퓨터와 모니터를 전선으로 묶어 들었다. 여기서 집까지 30분의 거리를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면서 힘겹게 가져왔다. 거울은 닦아낼 것도 없을 만큼 깨끗했다. 시간의 흔적이 오히려 근사하게 보였다.

거울이 특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방에 걸려 있던 거울을 내리고 그 자리에 걸었을 때 바로 알았다. 그것은 거울 속에 내 모습이 비춰지지 않았던 것이다. 원래 걸려있던 거울을 들어서 보자 언제나처럼 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주어온 거울은 그걸 거부했다.

‘왜 몰랐을까?’

처음 봤을 때는 이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기억에는 분명 내 모습을 비춰봤던 것이 있었다. 걸렸던 거울을 겉어내자 마술처럼 내 모습이 나타났다. 걸면서 사라졌다. 나를 제외한 다른 것들은 그대로 보였다. 45도 이상 옆으로 봐도 거울 너머의 내방이 거짓 없이 보였다.

‘신기하네..’

거울에 볼을 대고 180도 가까이 보려고 했다. 볼에 닿은 거울의 감촉이 없었다. 머리가 거울의 표면을 지나 소리 없이 들어갔다. 두 개의 눈이 두 개의 방을 각각 받아들였다. 깜짝 놀라 머리를 빼냈다. 거울도 나도 그대로였다. 몇 번을 해도 똑같은 결과였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저울의 추처럼 똑같이 있었다.

“홍철아..밥 먹어..”

“응!”

“오늘 학교 힘들었어? 기운이 없네?”

“으응...별로..그냥 몸이...”

“몸살기운 있어? 밥 먹고 좀 쉬어..”

“응...”

머리에는 거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밥이 무슨 맛인지도 코로 들어가는지 목으로 들어가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걱정스런 엄마를 뒤로하고 일찍 잔다고 하고 내방으로 올라갔다. 바닥에 내려놨던 거울을 다시 걸고 손가락을 넣어봤다.

“..........”

하다못해 물에 넣는 감각도 없었다. 거울의 표면이 물의 표면처럼 파동을 치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다. 팔까지 전부 들어가고 다리와 머리, 그리고 반대쪽 몸 전부가 거울을 지나갔다. 거울 안은 당연하겠지만 내 방이었다. 다시 거울을 통해 원래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막아서는 것이 없었다. 두려움이 엷어지고 호기심이 강해졌다.

결국 거울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내 방의 문을 열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우리 집 그대로였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거실과 부엌이 나온다. 부엌에는 엄마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엄마..”

“............”

“엄마!”

엄마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는 엄마의 뒷모습이 무서웠다. 천천히 엄마에게 다가갔다. 공포영화의 한 장편처럼 돌아선 엄마의 얼굴이 괴물이라거나 아무것도 없는 것이 상상되었다. 엄마의 어깨를 두드렸는데도 엄마는 돌아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엄마의 옆으로 돌아가 얼굴을 봤다. 엄마 그대로였다. 엄마는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가 원래의 방을 통해 부엌으로 다시 갔다. 엄마는 여전히 설거지를 하고 계셨다.

“엄마..”

“응? 왜?”

“아냐..아무것도..”

“싱겁긴...”

거울을 기점으로 두 개의 세계가 있다고 가정했다. 하나는 원래의 세계고 다른 하나는 거울의 세계라고 구분했다. 원래의 세계와 거울의 세계는 똑같다. 그러면서 나는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이건..굉장한 힘인데..’

이것을 나에게 주어진 힘이라고 생각했다. 힘을 갖게 되었으니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알아야 했다.

‘나는 통과했는데...사물도 통과할까?’

책상위에 놓인 사전을 들고 거울을 지나갔다. 사전은 통과했고, 책상위에 놓인 또 하나와 합쳐 두 개가 되었다. 두 개의 사전을 전부 들고 거울을 지나 원래의 방으로 오려고 했다. 그런데 걸렸다. 거울 속 사전이 거울을 지나가지 못했다. 두려운 마음에 그 사전을 떨어뜨리자 나와 원래의 사전은 거울 밖으로 나왔다. 사전을 책상위에 올려놓자 거울 속 사전이 스스로 움직여 책상위로 올라갔다.

‘이걸로 돈은 못 벌겠구나..’

생각처럼 되었다면 많은 돈을 벌었을 텐데 아쉽다. 그랬다면 비싼 물건을 거울에 비추고 그것을 가지고 나올 생각이었다. 그러면 같은 것이 두 개가 되는 것이었다.

‘재석이네 한번 가볼까?’

아쉬움을 털어내고 다시 거울로 들어가 옆집으로 갔다. 같은 업자가 단체로 지은 몇 개의 집이 나란히 있었고 그 중 하나가 우리 집, 또 다른 하나는 재석이 집이었다. 어려서 몇 십번은 드나들었던 현관은 닫혀 있었지만 가끔 하는 대로 담을 넘어 들어갔다. 안쪽 현관은 열려 있었다.

“어머니..저 왔어요..”

“...........”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재석이 어머니는 우리 엄마처럼 나를 보지 않았다. 아저씨와 누나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층으로 올라가 재석이 방으로 갔다.

“아싸! 된다..”

재석이 방은 반쯤 열려있었다. 재석이는 책상위에 주어온 컴퓨터를 올려놓고 부팅시키고 있었다. 컴퓨터는 고장 난 곳 하나 없이 부드럽게 돌아갔다. 재석이는 뜻밖의 행운에 좋아하고 있었고 나도 뜻밖이었다. 멀쩡한 컴퓨터를 버렸으리라 생각 못했다.

“이거..우리가 실수한 거 아냐?”

‘.............“

재석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거 같다. 청소나 도배 같은 것을 하기 위해서 잠깐 내놓은 물건을 우리가 가져온 것일 수도 있었다. 재석이는 걱정을 하면서도 마우스를 클릭해 폴더들을 열어보고 있었다.

“내용도 하나도 안 지웠네..”

‘..............’

“앗!”

‘우와..’

재석이 뒤에서 같이 보고 있다가 열려진 파일을 보고 동시에 비명이 나왔다. 폴더 안에는 수십 장의 사진들이 차례도 나타나면서 보였다. 열려진 사진은 여자의 나체사진이었다. 마우스 휠을 따라 넘어가는 사진들은 계속해서 한명의 여자를 보여주고 있었다. 점점 음란해지고 그로테스크해졌다.

“음...”

밧줄을 사용해서 여자를 묶는 것은 만화로는 본적이 있지만 사진으로는 처음 봤다. 대략 한명이 3~40장 정도의 사진을 남기고, 그런 여자들이 10여명 이상이었다. 재석이도 나도 완전히 몰입되어 버렸다. 만화나 영화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만으로 남자의 상징이 터져버릴 지경이었다.

“으음...”

재석이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문을 잠그고는 휴지 두루마리를 찾아 책상에 앉는다. 재석이가 뭐를 하려는지 문을 보는 순간 알았다. 친구의 그 짓을 보는 것이 웃기면서 미안했다. 재석이 물건에 대한 호기심에 옆으로가 어깨 너머로 들여다봤다.

“와...”

완전 흉기였다. 사진을 보고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다. 사진은 아름다웠고 재석이 물건이 그로테스크했다. 묘하게 열등감이 생겼다. 나 역시 바지를 내리고 꺼내봤다. 재석이와 비교해 보기 위해서였다. 재석이 물건은 영화의 백인이나 흑인 정도로 크지는 않았지만 나보다는 월등히 컸다. 두께도 손가락 두께만큼 더 두꺼웠고 길이도 마디 하나정도 더 길었다. 내가 평균보다 작은 건지 재석이가 큰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키보다 그것이 더 부러워졌다.

‘크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

그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재석이가 손으로 흔들자 나 역시 그렇게 했다. 크기는 작아도 얼마나 오래하느냐가 중요하다.

‘윽...’

“음...”

거의 동시였다.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안심은 되었다. 그런데 재석이는 또 시작하려고 했다. 나 역시 질수 없다는 기분이었다. 사진은 자동으로 넘어갔다. 다시 새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알아서 일어났다. 2번. 3번.

‘더 이상 못해..’

3번을 하고 나자 물건이 완전히 시뻘게졌다. 건드리기만 해도 아팠다. 그런 나와는 달리 재석이는 5번까지 했다. 방 안은 그 냄새로 진동을 했다. 쓰레기통 하나가 휴지로 가득 찼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것이 나오지 않았다. 거울 안 세계에서는 그 물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괴물 같은 놈..’

재석이와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 방을 나왔다. 여전히 사진에 몰두하고 있는 재석이는 내가 나가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안에서 문을 잠그고 문을 닫았다. 기운도 없고 패배감도 생겨 더 이상 돌아다니고 싶지 않아 집으로 갔다. 막 원래의 세계로 들어서는 순간 바지 안에서 그 물들이 터져 나왔다. 배설의 쾌감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3번에 걸쳐 내보냈던 물의 양이 팬티를 묵직하게 만들었고, 3번에 걸쳐 느꼈던 쾌락이 한꺼번에 몰아쳤다.

“아앗...”

여자들이 느낀다는 멀티 오르가슴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풀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바닥에 나른하게 누워서 전신을 강타하는 전류를 온전히 음미했다. 바닥이 차갑다고 느끼면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팬티는 물론이고 허벅지와 엉덩이까지 엉망이었다.


---------------


그래픽 카드나 파워 정도가 나간 거라면 10만 원 정도에서 괜찮은 사양의 컴퓨터를 장만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들고 온 것이었다. 집에 3대의 컴퓨터가 있었지만 제일 좋은 것은 큰누나가 그 다음 것은 작은누나 차지였다. 내 방에 있는 것은 큰누나가 5년 전에 쓰던 것이었다. 용돈을 모아 꾸준히 업그레이드를 해줬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더 이상의 업그레이드는 부품이 없었다. 업체들의 농간인지 신형은 다른 코드로 개발되기 때문에 결국은 케이스 말고는 쓸 수 있는 것이 없게 된다.

이정도 기종이면 케이스가격만 10만원은 한다. 몇 개의 부품을 살릴 수 있냐에 따라서 수십만 원의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멀쩡했다. 고장 난 부분을 찾지 못했다. 모니터 역시 불량화소 하나 없었다. 컴퓨터에는 정품 프로그램들이 까려 있었고, 그 가격 역시 컴퓨터 한두 대 가격은 할 것이다. 자료들 역시 지워져 있지 않았다. 이건 버린 물건이 아니었다.

사진의 이름은 영문 이니셜과 숫자로 되어 있다. 6자리의 숫자는 쉽게 날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오래된 사진이 대략 1년 정도 전이었고, 최근 것이 한 달이 안 되었다. 시간의 순서대로 보면 여자의 변화가 보였다. 처음은 공포. 두려움 그리고 나서 체념. 수치스러움. 또 다른 공포가 나타나고 그것들은 계속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없어지고 포기. 쾌락. 음란함에 젖어갔다. 그에 따라 그녀들의 몸도 변해갔다. 음모가 없어지기도 하고 가슴이 커진 듯하기도 했다. 몸에 문신도 하나씩 늘었다. 가슴에는 방울이 달리고 음부에 고리가 끼워지기도 했다. 끈으로 묶여서 매달린 사진들도 있었다.

음란한 사진에 모든 에너지를 소모해버렸다. 멈출 수가 없었다.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눈동자를 고정시킬 힘까지 소모해 버리고 나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컴퓨터가 문제가 아니다. 사진들이 문제였다.

단순히 어딘가에서 다운받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같은 여자의 사진이 너무 많았고, 다른 여자들 역시 비슷한 구도, 스타일로 찍혀 있다. 한사람이 찍은 것이 분명했다. 수백 장의 사진들이 모은 것이라면 여러 사람들의 사진들이어야 했고, 그 사진마다 다른 특징이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외국인도 섞여 있어야 했다.

처음부터 다시 찬찬히 봤다. 5번이나 사정했는데도 다시 병기가 일어난다. 그런 기분이 들기 전에 생각했던 것을 확인했다. 그건 배경이었다. 같은 배경이 10여명의 여자 사진에서 전부 있었다. 수백 장의 사진으로 그 집의 내부가 머릿속에서 맞춰졌다. 우리 집보다 최소한 3배는 큰 내부를 가졌고, 넓은 정원과 테니스코트가 있는 집이다.

‘그 집?’

3미터는 충분히 되는 담장이었다. 그 안에 뭐가 있던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사진의 장소가 컴퓨터를 버린 그 집이라면 그 집은 평범한 집 일수 없다. 조직폭력배나 음란물 제작업자의 집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런 곳의 물건을 함부로 주워왔다는 것은 큰일이었다. 잡히면 어딘가 팔려갈지도 모른다. 엄마나 누나들 역시 수십 명의 남자들에게 능욕당하고 이런 사진들이 찍혀 팔려갈지 몰랐다.

‘절대 비밀로...’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컴퓨터 안의 내용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사진만 봤다. 300기가의 하드는 텅텅 비어 있다. 프로그램이 차지한 것이 15기가 정도였고, 사진만 4기가 있었다. 문서파일이 2.5메가 있는 것이 다였다.

‘장부라도 있는 건가?’

거래처 정보나 조직의 비밀문서 같은 것이 있다면 큰일이다. 그래서 열어본 문서는 기록 같은 거였다. 인터넷에 떠도는 야설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다른 점은 소설은 읽으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설명이 있게 마련인데 이 기록에는 그것이 없었다. 혼자만 알아도 상관없다는 태도가 글 안에 있었다.

‘게이트가 뭐지?’

글은 게이트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문. 통로. 차단기. 방법이라는 뜻이 있다. 글의 주인의 서술에 따르면 게이트를 인도에서 가져왔다. 인도에는 수십. 수백 개의 종교가 있는데 그 중에서 영혼의 자유를 주장하는 종파의 유물이라고 했다. 게이트를 이용하면 영혼은 육신으로부터 분리된다. 그 종파에서 게이트를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는 주인도 모르지만 그는 그대로 사용처를 찾았다.

첫 번째 여자는 주인이 게이트를 이용해서 그녀가 화장을 지울 때 화장대 거울에 메시지를 남겼다. 여자가 공포로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릴 때까지 괴롭혔다. 방어체계가 완전히 절단 난 그녀는 그의 말에 절대 복종하고 길들여졌다. 주인은 그녀의 몸에 NO.1.이라는 문신을 새겼다고 한다.

‘N.O.1"

사진 속에서 문신을 찾았다. 문신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있었지만 숫자는 보지 못했다. 포토샵으로 사진을 불러들여 최대한 크게 확대를 했다. 여자들 등과 엉덩이 사이에는 뱀 두 마리가 꼬인 듯 한 문양을 봤었다. 요즘 유행하는 헤나인줄 알았었다.

‘있다..’

확대한 문양 중앙에 숫자가 있었다. 같은 여자별로 새폴더를 만들어서 분류했다. 1번부터 13번까지 있었다. 1번 여자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긴 생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오고 적당한 크기의 가슴과 날씬한 허리. 야무져 보이는 엉덩이가 인상적이었다. 음모가 정확히 삼각형을 만들고 있어서 깨끗한 이미지였다.

그녀 이름은 안미영. 나이 29살로 비서실 직원이며 독신이라고 되어 있다. 그녀가 첫 번째 희생자였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가장 많았고 그만큼 그녀는 망가졌다. 결국은 얼마안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예쁜 사람이..’

대강 훑어본 바로는 13명의 여자중 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1번. 2번. 3번. 4번. 7번. 10번. 6명이나 되었다. 마음에 안 들어 버렸다는 여자가 6번. 8번. 11번. 12번. 4명이었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5번. 9번. 13번에 대한 기록은 진행 중에 끝났다.

몇 번이나 계속해서 사진과 문서를 보면서 여자들의 공포와 두려움이 느껴졌고, 그녀들의 변해가는 과정이 손끝에 잡힐듯했다. 기록만으로는 과연 사실일까 하는 내용들을 사진이 증면해 주고 있었다. 시작이 어떻든 그녀들은 쾌락에 빠져들었고 행복해 보였다. 행복해지지 못한 여자들은 망가져버린다는 사실과 다른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할 권리가 기록의 주인에게는 없다는 것은 잊어버렸다.

‘만나보고 싶다..’

그 기록의 진실성도 확인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녀들을 직접 보고 싶었다. 모두 아름다운 여인들이었다. 만나보고 싶지만 기록의 주인과 그 일당에게 잡힐까봐 무서웠다. 여인들에 대한 프로필은 너무 간단했고 그나마 없는 여자들도 있었다. 뒤로 갈수록 이름조차 나오지 않고 단지 번호로만 표시되었다. 사는 동네라도 적혀 있다면 그곳에서 기다렸다가 지나가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었다. 내용이 황당해 실존인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밤이 깊어 가는데 잠들지 못했다. 초등 학교 때 친구 집에서 처음으로 불법성인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여자의 성기를 그때 처음 봤다. 서양 여자였는데 큰 입처럼 보였다. 화면 가득 생생하게 잡혔었다. 그걸 보고 먹은 음식을 토했다. 아주 역겹고 무섭게 보였다. 남자의 고추를 잡아먹었다. 그 영상은 두 달 정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지금까지 생각이 났다.

지금은 처음처럼 역겹게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흥분이 되었다. 흥분은 되지만 현실감은 없었다. 여자에게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것을 엄마나 누나를 보면서 떠오르지는 않았다. 엄마와 누나들에게 그런 곳이 있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사진속의 그녀들은 역겹거나 추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름다웠다. 여자를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기록의 주인이 부러웠다. 영어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보다, 수학 문제 하나 더 풀 줄 아는 것보다 그것이 더 중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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