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루이의 숨이 멎었다.
그녀의 몸은 어깨 위쪽부터가 뜯겨져 나가고 없었다.
보이는 것은… 바닥에 지저분하게 흩어진 뇌수와… 얼굴의 파편 몇 개가 전부.
맥이 탁 풀려버린 다리가 바닥에 푹 꺽였고, 황금의 기사 아톰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미안. 약간 장난 좀 쳤어. 그녀는 저쪽이야.”
“뭐? 하지만…”

널브러진 시체와 얼굴의 조각은 분명 쉘이 맞다. 하지만 그는 그게 그녀가 아니라고 한다.

“도저히 그대로 놔둬선 살아있을 수 없겠더라고. 그래서 임시 육체에 넣어뒀지. 그녀는 저쪽이야.”
“저어… 뭔가 입을만한게 없을까요?”

무척 곤란한 표정으로 손으로 위험한 부분 몇군데를 가리고 서있는 금발의 미소녀.
분명히 얼굴도 다르고 가슴도 겁나게 커졌…지만… 왠지 알 수 있다.

“쉘…”
“그러니까 뭔가 가릴 것 좀…”
“이런 이런… 이 녀석이 좀 무뢰한이라서 말야… 내 껄 주도록 하지.”

허허 웃으며 넉살좋게 망토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씌워주려는 황금의 기사 아톰.
하지만 보기 좋게 날아온 루이의 날아차기가 녀석의 머리에 명중하면서 그의 노력(?)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런데 임시 몸이란게 무슨 말이지?”
“아… 내가 그런 말 했던가?”
“했어!”
“안했던 것 같기도…”
“절대로 했어!”
“꼭 그렇게 알고싶어?”

어디서 꺼냈는지 썬글라스를 쓰고 팔짱을 끼는 아톰.
그의 애검 스톰브링어는 어디로 갔는지 그는 지금 빈손이다.

“아아… 물론.”
“모든 인간의 몸은 반드시 유한성을 갖고 있어. 언젠가는 반드시 사멸하지. 그녀 역시 다르지 않아. 이거면 충분하지 않아?”
“충분하지 않아!”
“그럼 좋아. 그 몸의 수명을 알려주지.”
“그래!”
“애초에 100살까지 살 수 있도록 제작된 몸에 17년 분을 성장 시켰으니 남은 수명은 83년이다.”

충분히 납득하다 못해 너무 길지 않나 싶은 세월이다.

“그래? 가자! 쉘.”
“아니… 잠시만요!”
“아직 부족한가? 욕심쟁이 아가씨.”
“이 몸은 내 몸이 아니예요!”
“하지만 이제 당신 몸이야. 소중히 쓰도록 해.”
“아니오! 난 이 몸을 내 몸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아요! 자세히 설명하긴 뭣하지만… 아무튼 그래요! 이건 내 몸이 아니예요!”
“쿡… 쿡쿡쿡쿡… 아하하하하하하하하! 걸작이야! 정말 걸작이야! 크하하하하하하하!”

아주 허리를 제껴놓고 웃는 아톰.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한참을 웃던 그가 돌연 웃음을 뚝 그쳤다.

“당연하다. 지금 그건 단순히 링크만 시켜놓은 상태니까. 제대로 정착하지 않으면 5분 이내에 넌 그 육체에서 이탈되어 그대로 사망처리 되겠지.”
“이 빌어먹을 자식!”

‘텁!’
코어웨폰의 지원을 받지 못한 루이의 펀치는 허무할 정도로 무력하게 잡혔다.

“그녀의 영혼을 제대로 이식하려면 막대한 힘이 필요하지. 뭐, 그 정도는 내가 해줄 수 있어. 하지만 말이지… 생명체에겐 생명 레벨이란게 있어. 예를들어 1레벨의 생명체에게 주어진 수명은 약 100년.
이걸 생명 수치라고 부르지. 하지만 말이야… 그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그게 거의 다 깍였어. 솔직히 말해줄까? 그녀의 생명 수치 잔여량은 이미 여기에 오기 전에 마이너스야. 자… 묻지. 이미 생명이 소진된 그녀를 어떻게 하면 유지할 수 있을까?”
“그건 말도 안돼요! 이미 마이너스였다면 절 살리는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전 이미 죽었었다는 말이 돼요!”
“아아… 죽었지. 다만 이곳은 영혼조차 빠져나가는게 허용되지 않은 공간이거든.”

그제서야 떠오르는게 있었다.
지난번에 봤던 영혼로…

“이제야 눈치챈 것 같군. 이 일대가 전부 영혼로 시스템 안이야. 좀 변형된 녀석이라 프로메테우스 녀석 조차 눈치채지 못했지만 여긴 영혼만 빠져나가지 못하는 무형의 영혼로 그 자체지.
물론 제대로 살아있는 존재는 아무렇지도 않게 오갈 수 있어. 하지만… 여길 벗어나는 순간 그녀는 죽어. 자아… 어떡하면 좋을까?”

즐거워 죽겠다는 눈빛.
이 미쳐버린 영웅의 눈동자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것을 먹기 직전인 대식가의 그것처럼 빛나고 있다.
참을 수 없는 즐거움… 녀석은 지금 괴로워하는 루이를 즐기고 있다.

“간단한 방법을 가르쳐 줄까? 여긴 지구가 아니라 모든 제한이 풀린 세계. 거성이니까… 방법은 있어.”
“그게 뭐지?”
“보다 높은 생명레벨을 지닌 자가 자기 생명수치를 통째로 넘겨주는 거지. 찔끔 찔끔 잘라서 줄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이것 만큼은 내 마음대로 안돼. 자아… 선택해보시지. 네 생명을 잘라 그녀에게 이어붙여줄까?”
“아아… 그러지!”
“안돼요!”

부들부들 떨고 있는 쉘.
어느 쪽도 반길 수 없는 일이지만 자신 때문에 이 남자를 죽게 할 수는 없다.

“루이… 돌아가요. 유키와 엘리스가 기다리고 있잖아요?”
“웃기지 마!”
“그녀들은 중요하지 않은건가요?!”
“그건…”

‘뿌드드득…’

“돌아가요.”

이것이 옳다.
그녀 안의 냉철한 두뇌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아니 그 두뇌는 저기 으깨어져 있으니 영혼이라고 해야하나?
하긴 어차피 두뇌 역시 영혼의 단말기에 불과하니 모든 판단은 영혼에서 나왔다고 보는게 옳겠다.

“안돼!”
“아아~ 즐거워라! 남자가 죽으면 여자가 살고, 여자가 죽으면 남자가 살고! 하지만 둘 모두 살아남지 못하면 로맨스는 불가능! 이 무슨 사천 육백 년만의 짜릿함이란 말인가!”
“그러면 어쩔거예요!”

아톰의 갈굼을 깔끔히 씹어버리고 쉘이 소리쳤다.

“생명 레벨이 1이 넘어가는 녀석은 나 말고도 또 있잖아. 마테리얼 라이즈!”
“어이 어이… 네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스톰브링어!”

세 자루의 전설의 무기들이 나왔다.
어째선지 이유는 잘 모르지만 에어리얼은 전설의 공평의 검 이퀄라이저였고, 그냥 이름 없는 마법 건틀렛인 줄 알았던 그것은 전설의 영웅이 사용하던 마도포 게센이었다.
그것도 스스로의 자아를 갖고 있는 그야말로 전설급에서도 최상급에 해당하는…
그리고 아톰의 손에 쥐여진 거대한 황금빛의 양손검은 전설의 신검 뇌격의 지배자 스톰브링어!

“이겨야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큭큭큭… 미리 말해두지만 넌 절대로 이길 수 없어.”
“의외로 간 큰 소릴 하는데? 넌 방금도 이퀄라이저와 게센이 격렬하게 반응하자 쫄았어.”
“아아… 그 두 녀석은 확실히 무섭지. 하지만 말이야…”

그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아아아아아아아악!”

쉘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잊었나? 그녀의 몸과 영혼을 연결시켜주고 있는 건 나라고. 단 1초만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줄까? 자아… 선택해라. 어리석은 인간이여! 자아… 선택해라! 네가 죽고 그녀를 살리겠느냐? 너 혼자 살아서 돌아가겠느냐?”
“난…”
-어리석은 대화는 그만하도록 하죠. 아톰!-
“어이… 이런것도 허락할 수 없는건가? 레아!”
-난 당신의 영혼을 느낄 수 있어요. 그대는… 그대의 영혼은 이제 안식을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조용해진 아톰.
뭔가 접근할 수 없는 분위기에 루이와 쉘은 얌전히 입을 다물고 이퀄라이저와 그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다.

“다른 녀석이면 몰라도 그대는 내게 이런 말 해선 안되잖아?”
-미안해요.-
“약간의 심술을 부리겠어. 괜찮겠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한다면.-
“그대는 말이지…”

피식 웃는 아톰.

“정말 어리석은 여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