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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 9부5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23:58 454회 0건
창작

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9부 5장


『 - 사족 -

* 정말 길었던 9부가..... 겨우 끝났군요.

* 다음 주부터는 한동안, 미영 일행의 모험 이야기는 쉴까 합니다.

그 대신..... 이 이야기의 또 다른 한축인 엥파레 데 다르키아(어둠의 여황제)의 이야기가 흐름상 조금 나와야 할 것 같군요.


주영 : "흐음..... 이 야설은 - 야설인지 일반 환타지인지도 종종 잘 모르겠지만 - 보는 독자님들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뭘 그렇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어요, 아저씨는?"

야설가 : ㅜ_ㅜ 』


본 야설은 강간, 윤간, 성고문 수준의 SM 등 비윤리적이고 중범죄에 해당하며 잔인하고 하드코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취향의 글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은 읽으시지 말 것을 미리 권고 드립니다.





- 9부 - 이어지는 전설 (랑구르시아시 : 갈림길 / 저주받은 검) - 5장 -


드디어, 무술대회의 마지막날.....
결승전이 있어서인지 입장 요금도 3세테르에서 6세테르로 2배나 올랐지만, 층층의 나무 계단들로 된 관중석은 제일 꼭대기까지 미어질 정도로 가득 찼다.
최소한 3,000여 명은 결승전 관람을 위해 들어와 있는 듯 했다.

대회장 중앙 앞쪽 관중석 - 가장 좋은 자리에는 고급스런 보라색 천을 깐 위에, 창을 든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뚱뚱한 노영주 타일러 반 앙리아 남작이 자리잡고 있었다.


오늘의 첫번 째 경기에 나서게 된, 수진과 은주가 천천히 원형의 대회장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까지는 일반 병사들이 금속제 흉갑옷(가슴과 몸통을 가리는 갑옷)과 금속제 뾰족 투구를 쓴 채 심판을 봤지만, 이번에는 좀더 고급스런 녹색 튜닉(허벅지 가까이까지 오는 긴 웃옷)을 입은 장년의 남자가 대회장 안으로 걸어 나왔다.
손에는 매기아(마법)가 걸린 듯 하얗게 빛나는 수정구슬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영주님의 경비대장 페데릭씨죠. 제가 조금전 매기아(마법)를 걸어 줬답니다."

비교적 앞자리 관중석에 클로아, 지선, 주영과 나란히 앉은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가 설명해 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위대한 도시 랑구르시아시의 시민 여러분!
가장 먼저..... 이번 대회를 열어주신, 탁월하고 현명하신 우리의 영주님 타일러 반 앙리아 남작님께 경의를 표해 주십시오!"

매기아(마법) 덕분에 남자의 말은 마이크라도 사용하는 것처럼 경기장 구석구석까지 크게 울려 퍼졌다.
관중들이 영주석을 돌아보며 일제히 박수를 쳤다.
뚱뚱한 모습이 별로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 만사가 다 귀찮다는 듯한 표정의 노인이었지만, 시민들은 대체로 영주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첫번 째 시합은 이 대회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샹드로 마을을 밤비르(흡혈귀)들로부터 구원해 준 것으로 알려진.....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도 매우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 일행중.....
두 사람간의 시합입니다.

수잔 리이씨! 세르농(별칭)은 보어 데 브라우니앙(갈색 머리의 멧돼지)입니다!"

수진이 묵묵히 등에 메고 있던 칠흑처럼 검은 빛의 긴 도끼를 빼들자, 관중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으응? 저 도끼의 저 색깔은?"

타일러 남작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에 맞설 상대는 플로라 바카스씨! 세르농(별칭)은 플로 데 그리니앙(녹색 머리의 젖소)입니다!"

관중석에서 터져 나온 폭소와 함성으로 넓은 대회장 안이 소란스러워 졌다.
그러나, 정작 은주 자신은 침착한 표정이었다.
클로아를 구하고 볼피아 마을 사람들로부터 받은 명예로운 호칭..... 남들의 반응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5부 내용 참조)


"시..... 작!"

"살살..... 날려 주세요!"

"콰아아아앙!"

신호가 떨어지자 마자, 은주가 실피안들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은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진이 큰 동작으로 바닥을 향해 검은 도끼를 묵직하게 휘둘렀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도끼날과 자루를 합쳐 130센치나 되는 긴 도끼가 자루의 3분의 2 정도까지 돌바닥에 깊숙히 박혀 들어갔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거센 바람이 수진의 몸을 흔들었으나, 수진은 돌바닥에 깊숙히 박아 넣은 도끼자루를 두손으로 움켜 잡은 채로, 날아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씨이이익!"

수진이 늘 그렇듯 소리없이 무뚝뚝한 느낌의 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이 정도 바람이라면 버틸만 하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왼손을 등뒤로 뻗은 수진이 오른손으로 도끼자루를 꽉 잡은 채, 왼손으로 등뒤에 묶어 놓은 무언가를 꺼내 높이 치켜 들었다.
끝이 뾰족한 - 아마 집지을 때 사용할 것 같은 - 굵고 길다란 쇠말뚝이었다.

"콰아아앙!"

허리를 숙이면서 바닥을 내리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수진의 힘에 쇠말뚝이 돌바닥에 깊숙히 박혔다.

"이야아아아아아앗!"

기합과 함께 천천히 수진의 몸이 쇠말뚝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은주쪽으로 조금 다가왔다.

"지르르르르르르....."

거센 바람에, 바닥을 누르고 있던 발이 미끄러지면서 수진의 양발이 허공에 들려 양팔만으로 바닥에 매달린 모양이 되었다.
그러나, 왼손으로는 쇠말뚝을, 오른손으로는 바닥에 박힌 도끼를 잡은 채로 수진은 여전히 날아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수진이 천천히 거센 바람속에서 몸을 움직여 원숭이처럼 두 발로 도끼를 감았다.
그 상태로 왼손으로는 여전히 쇠말뚝을 잡은 채로, 오른손을 뒤로 뻗더니 또 하나의 쇠말뚝을 집어 다시 바닥에 내리쳤다.

"콰아아앙!"

거의 50센치는 되어 보이는 쇠말뚝이 역시 깊숙히 돌바닥에 박혀 들어갔다.

돌이 몇 겹이나 두껍게 깔려있는 듯한 바닥에, 망치도 없이 손으로 쇠말뚝을 잡고 박아 넣는 황당한 모습에.....
관중으로 꽉 찬 대회장 안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 저 여자..... 인간이 맞는 건가? ....."

누군가 중얼거린 한 마디가 미영의 귓가에 들려왔다.


두발로 도끼자루를 감은 채 버티면서 천천히, 수진이 바닥에 박은 쇠말뚝들을 양손으로 각각 잡은 엎드린 자세로, 자세를 완전히 바꿨다.

"콰아앙!"

왼손에 들고 있는 쇠말뚝을 뽑아드는가 싶더니 다시 돌바닥에 내리쳐 깊숙히 박아 넣었다.
그리고, 양팔에 힘을 주자, 엎드린 자세로 다시 조금 더 은주쪽으로 가까와졌다.


"날아가질 않고 있잖아요!
좀 더 힘좀 써 봐요!"

은주의 불평에 열여섯 실피안(바람의 중급 정령)들이 날카롭고 약간 신경질적인 여자 목소리로 대답했다.

"위대한 어머니를 닮은 인간이여....."

"그대의 동료인.....

"저 인간은....."

"전쟁과 용기의 신....."

"크로안님의 권능을....."

"갖고 있다."

"우리의 힘은....."

"단지....."

"열의 하나만....."

"저 인간에게.....

"미친다."


"예? 수진이도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라구요?"

놀란 표정으로 은주가 묻자 실피안들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셍뜨 아미트레는 아니다....."

"신의 가호가....."

"함께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권능을....."

"갖고 있을 뿐....."

"그 점은....."

"그대와....."

"어제의 상대였던....."

"그대의 또다른 동료도 마찬가지다....."

"모르고 있었나?"


"콰아아앙!"

또다시 돌바닥에 쇠말뚝을 박아 넣은 수진이 다시 양팔에 힘을 주더니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해왔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전력을 다해서 날려 버려요!"

은주가 수진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열여섯 실피안들이 둥글게 모여 서더니 오른손을 한데로 모았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갑자기 바람 소리가 커지는가 싶더니, "우지끈!" 소리와 함께 쇠말뚝들이 빠지면서 수진이 풍선처럼 하늘 높이 날아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떨어질 때는 살짝 내려놔 주셔요!"

흐뭇한 표정으로 웃으며 은주가 말을 이었다.


"플로라 바카스씨! 승리!"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경비대장 페데릭의 선언에 대회장 안이 함성과 감탄의 소리로 가득 찼다.


"말도 안돼!
이번 대회는 더 볼 것도 없이 은주 언니의 우승이야!
수진이 언니의 힘으로도 버텨내지 못하는데 누가 저 바람에 버틸 수 있겠어?"

클로아, 지선, 쟌피르와 함께 관중석에 앉아 있던 주영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일행들과 떨어져 출전자들과 함께 대회장 가장자리에 서 있던 미영도 - 멀리 떨어진 거리였지만 - 주영의 말을 듣고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름드리 나무들을 순식간에 뽑아버리던 실피안들의 힘을 생각하면.....
아무리 수진이라지만, 겨우 쇠말뚝들을 바닥에 박은 정도로 버틸 수 있었을 리가 없는데.....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는 건.....
어쩌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미영이 천천히 대회장 가운데로 걸어 나오자 관중들의 함성이 커졌다.
어깨까지 닿는 금발 머리, 크고 아름다운 신비로운 금빛 눈동자 - 싸울 때면 루비같은 붉은 빛으로 변하지만, 날씬하면서도 건강해 보이는 미영의 아름다운 외모가 많은 관중들의 호감을 얻고 있었다.
갑옷도 입지 않고, 편해 보이는 파란색 반팔티와 갈색 반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이 - 허리에 찬 긴 칼만 없다면 - 어느댁 귀족 아가씨가 여행이나 소풍을 나온 듯한 분위기였다.


"이 대회의 강력한 우승후보이자.....
명성이 높은 샹드로 마을의 세비레(구원자).....
미리어 시엔씨입니다!
세르농(별칭)은 셍뜨 아미트레 데 골쥬앙(금발의 여 성기사)!"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휘이이익!"

관중들의 환호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넓은 대회장에 가득 울려 퍼졌다.


"이에 맞설 상대는 역시 강력한 우승후보이자.....
작년, 그리고 재작년 대회 우승에 이어 3연속 우승을 노리는.....
블라키 볼프(검은 늑대) 용병단의 단장.....
크리스토퍼 반 스타이너씨!
세르농(별칭)은 블라키 다쓰(검은 죽음)!"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악! 와아악! 와아아! 와악! 와아!"

경비대장 페데릭의 소개에 관중석 한쪽에 자리잡은 일단의 용병들 수십 명이 입을 모아 악을 쓰듯 요란한 응원을 보냈다.


사십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큰 키에 비쩍 마른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검은 콧수염을 길게 기른 제법 잘생긴 얼굴에, 가벼운 금속제 흉갑옷을 입고, 검정 반팔과 검정색 긴 바지 차림에, 양손목에는 강철 재질의 토시를 두르고 있었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데..... 3연속 우승을 노린다구?"

미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 세계에서의 운동시합은 거의 젊은 사람들만 나오는 걸 생각하면, 사십이 조금 넘어 보이는 남자가 잘 싸운다는 건 별로 믿어지지 않는 얘기였다.
이번 무술대회에서 이제까지 맞싸운 상대들도 모두 젊은 나이에, 덩치와 힘이 좋은 용병들이었고.....

"어쨌든 방심하지 않는게 좋겠어."


"크리스토퍼가 또 우승하면..... 올해도 "그랑데르"를 뽑는 건 물건너 가겠군."

집사 노인의 중얼거림에, 뚱뚱한 노영주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누가 우승하건 마찬가지라네, 벤쟈민."


"시..... 작!"

시작 신호와 함께 긴 칼을 뽑아든 미영의 금빛 눈동자가 붉은 색으로 변하면서, 긴 칼에서 새파란 빛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낮인데도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한 셍뜨 바인(신성한 빛)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눈부심에 눈을 가리면서도 관중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응?"

미영의 붉은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커졌다.


마주하고 있는 상대방 크리스토퍼의 긴 양날검도 어느새 파란색으로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저 사람도 셍뜨 아미트(성기사)인가?
아냐! 저건 셍뜨 바인(신성한 빛)은 아니다."


미영의 표정을 본 노련한 용병단장 크리스토퍼가 싱긋 웃었다.

"소드 바인(검기)이라네.
조심하게.
인간들끼리의 싸움에서는 셍뜨 바인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으니까."

말을 마치며, 크리스토퍼가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육박해 들어왔다.


소리도 없이, 위에서 아래로 똑바로 큰 동작으로 양날검을 내리치..... 는 듯 했으나, 속임수.....
검날이 빙글 옆으로 도는가 싶더니, 어느새 크리스토퍼의 양날검이 왼쪽 위에서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베어 들어왔다.

미영의 붉은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긴 칼을 휘두르던 도중에 역시 각도를 바꾸면서 마주 올려쳐 막아 냈다.

"채애애애앵!"

크리스토퍼의 양날검이 가볍게 옆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균형을 잃지 않은 채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난 크리스토퍼는 곧바로 다시 검을 찔러 들어왔다.

"채애애애애앵!"

미영이 긴 칼을 옆으로 휘둘러 걷어내자, 파랗게 빛나고 있는 두개의 날들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이번에도 역시 힘에서 밀린 양날검이 옆으로 밀려나자, 크리스토퍼가 네댓 걸음 가볍게 발을 움직여 다시 간격을 벌렸다.
검은 눈동자의 시선이 빠르게 자기의 양날검과 미영의 긴 칼의 날들을 훑었다.

"칼날의 이가 전혀 나가질 않다니.....
별로 좋은 칼도 아닌 것 같은데.....
단순한 셍뜨 바인(신성한 빛)이 아니로군."

크리스토퍼가 믿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미영이 소리없는 가벼운 미소로 대답했다.

"다다닥....."

가벼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미영쪽에서 다가섰다.
어깨에 닿을까 말까 한 길이의 금발머리가 찰랑거리며 뒤로 나부꼈다.
날카롭게 소리도 없이, 긴 칼을 가슴 높이의 가로로 크게 휘둘렀다.


검으로 막지 않고 몸을 낮게 숙이며 아슬아슬하게 피한 크리스토퍼의 양날검이 바닥을 쓸듯 미영의 다리를 노렸다.
그러나, 미영은 가볍게 검을 뛰어넘어 피하며 역으로 긴 칼을 위에서 아래로 똑바로 내리쳤다.

"사가가가강!"

크리스토퍼는 날쌔게 몸을 옆으로 틀며 피했으나, 긴 칼의 끝이 금속제 흉갑옷을 긁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다급하게 - 하지만 균형을 잃지는 않은 채로 - 크리스토퍼가 다시 뒤로 물러섰다.

"털커덩!"

흉갑옷 왼쪽 위쪽이 조금 잘려나가 바닥에 굴러 떨어지며 소리를 냈다.


미영 자신도 느끼고 있었지만, 미영이 존재와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감각과 빠른 움직임을 볼 수 있는 눈에 의지해서 - 요컨데, 마구잡이로 - 공격과 방어를 하고 있는데 반해서.....
크리스토퍼가 검을 휘두르는 자세와 동작에는 어떤 규칙같은 것이 있어서, 전체 동작을 좀더 효율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하나 하나의 동작에도 크리스토퍼의 검에는 규칙만이 아니라, 풍부한 경험과 노련함에서 나온 듯..... 세련미라고 불릴 수 있는 점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우월한 검술과 수십 년의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함에도 불구하고..... 미영의 파워와 스피드가 크리스토퍼에 비해 워낙 압도적이었다.
금속제 흉갑옷의 일부분을 두꺼운 종이라도 되는 것처럼 깨끗하게 잘라 버린, 미영의 긴 칼이 남긴 자국을 내려다 보며 크리스토퍼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네, 아름다운 금발의 아가씨!
내게도 체면이라는게 있으니 여기서 져줄 수는 없다네.
조심하게!
대단히 위험한 기술을 쓸테니....."

크리스토퍼의 검은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나는 걸 보고, 미영도 비스듬히 선 자세로 다가올 공격에 대비했다.

"타다닥!"

빠른 속도로 미영에게 다가서던 크리스토퍼가 중후한 음성으로 외쳤다.

"트라이드 스트라이크!"


"와아아아아아아아악!"

관중석에서 비명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주영이 경악한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빠른 속도로 미영에게 달려들던 크리스토퍼의 양날검의 파란 빛이 강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마치 검이 세 자루가 된 것처럼, 세 줄기로 길게 뻗쳐 나오면서 미영의 머리와 양쪽 가슴을 동시에 꿰뚫어 버렸던 것이다.

"덜커덕!"

하지만..... 관중석의 비명소리가 채 잦아들기도 전에, 4, 5미터나 뒤로 날아가 바닥에 뒷머리를 부딪치며 구른 것은.....
미영이 아니라 크리스토퍼였다.

"언니, 괜찮아?"

"챙그랑!"

미영의 긴 칼이 바닥에 떨어져 구르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놀라운 상황에 모두들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는 바람에, 수천 명이 모인 대회장 안이 순간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물론 양날검이 세 자루로 쪼개진 것은 아니었다.
달려오던 크리스토퍼가 놀랄 만한 속도로, 검을 연속으로 3번이나 날카롭게 찌른 것이다.
미영의 머리와 양가슴을 노리고..... 마치 검이 셋으로 분리돼서 3개의 검이 동시에 찌르는 것처럼 보일 만큼 매서운 속도였다.

"사아악!"

검날을 가로로 눕힌 채, 머리를 향해 들어왔던 첫번 째 일격을 미영은 머리를 움직여서 아슬아슬하게 스치듯 피했다.

"사가각!"

금발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잘려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잘린 머리카락들이 채 자리를 떠나기도 전에, 옆으로 틀며 세로로 세워진 검날이 오른쪽 가슴을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쓰윽!"

몸을 왼쪽으로 급하게 움직이며 미영이 몸을 피했다.

그러나 검날을 세로로 한 채, 곧바로 세번 째 찌르기가 이번에는 왼쪽 가슴을 노리고 들어왔다.
도저히 피할 수 없을 듯한 속도였다.
다급함에 손에 들고 있던 긴 칼을 놔 버리며, 미영의 몸이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급하게 움직였다.

"사가가가가각!"

아슬아슬하게, 미영의 왼팔 안쪽과 왼쪽 가슴 사이..... 겨드랑이 밑으로 양날검의 날이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옆에서 보면 마치 양날검이 미영의 왼쪽 가슴을 관통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바로 앞에서 크리스토퍼의 검은 눈동자가 낭패감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미영은 주먹을 다시 쥘 여유도 없이, 오른손 손바닥인 채 그대로 전력을 다해, 크리스토퍼의 턱을 세차게 밀어내듯 후려쳤다.

"덜커덕!"

조금 열려 있던 크리스토퍼의 입이 다물려 지면서 턱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뒤로 4, 5미터나 날아간 크리스토퍼는 뒷머리를 돌바닥에 거세게 부딪쳤다.
이어 몸을 두어 번 꿈틀하더니 그대로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언니, 괜찮아?"

어느새 관람석에서 대회장 가장자리까지 내려온 주영이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챙그랑!"

그제야 미영이 급한 김에 놔 버렸던 긴 칼이 떨어져 바닥에 부딪치며 울리는 소리를 냈다.


"응! 걱정하지 마!
다친 데는 없어!"

미영이 동생을 돌아보며 환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미리어 시엔씨의..... 승리!"

잠시 얼떨떨한 표정으로 있다가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경비대장 페데릭이 소리높여 선언하자, 관중들의 환호성이 넓은 대회장이 떠나갈듯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맙소사! ....."

"..... 필살기까지 쓰셨는데....."

"..... 단장님께서 지셨잖아! ....."

한쪽 관람석에 모여 있던 수십 명의 용병들이 당황해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미영의 귀에 들려왔다.

"휴우..... 힘들었다!
아무래도, 검술도..... 가르쳐줄 사람을 찾아서, 정식으로 배워야 할 것 같아!"

병사들이 가져온 들 것에 실려 나가는 크리스토퍼를 바라보면서, 미영이 고개를 저었다.
어느새 이마에 밴 식은 땀을 오른손으로 훔치며 천천히 미영은 대회장 바깥쪽으로 걸어 나왔다.


"대단한 대결이로군요.
마지막에는 어떻게 됐던 건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크리스토퍼가 이긴 줄 알았습니다만....."

집사 노인 벤쟈민이 주름살 투성이의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때, 조금 다급한 걸음으로 병사 한 명이 집사 노인에게 다가 오더니, 작은 소리로 뭔가 보고하기 시작했다.

"..... 뭐라구? 그걸 왜 이제야 보고하나? ..... 이런! ....."

잠시후, 병사를 돌려보낸 노집사 벤쟈민이 뚱뚱한 노영주 타일러 남작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얼굴 가득 낭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영주님! 죄송합니다만, 방금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저들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 일행은 이미 닷새전 바위에 꽂힌 저주받은 검 그랑데르(위대함)를 뽑으려 시도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섯 명중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하는군요.
파악이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집사 노인에게 타일러 남작이 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죄송할 것 없네, 벤쟈민.
애초부터..... 아무 기대도 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셍뜨 아미트레든 뭐든 말이야."



미영과 용병단장 크리스토퍼의 대결 이후, 벌어진 남은 경기는 노련한 두 용병들간의, 별다른 특징이 없는 대결이었다.
무려 30여분 가까이, 긴 양날검과 도끼가 날카롭게 부딪치기를 최소한 백여 차례, 두 용병 모두 적지 않은 상처를 여기 저기 입고 붉은 피를 줄줄 흘렸다.
급기야는, 서로 멀찌감치서 빙빙 돌며 눈치만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잠깐!"

심판을 보던 경비대장 페데릭이 둘이 간격을 벌린 사이에 끼어들어 경기를 잠시 중단시킨 후 물었다.

"무승부를 선언하고자 합니다.
동의합니까?"

살았다는 듯, 두 용병 모두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우우우!"

실망한 관중들이 야유를 보내는 가운데, 경비대장 페데릭이 수정구슬 지팡이를 입에 대고 크게 울리는 소리로 선언했다.

"그러면, 이어서 이 대회의 결승전을 갖기로 하겠습니다."


천천히, 미영이 대회장 가운데로 걸어가자 관중들이 열광하며 응원을 보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쥬빌리아(만세)! 셍뜨 아미트레 리에(여 성기사님)! ....."

어깨 길이의 금발에, 루비처럼 빛나는 동그랗고 아름다운 눈동자.....
파란색 반팔, 갈색 반바지 차림으로 환히 드러난, 약간 그을린 피부색의 날씬한 팔다리.....
날씬하면서도 제법 풍만하고 빵빵해 보이는 가슴과 동그란 엉덩이.....
건강하고 매력적인 미영의 외모와 침착한 모습이 많은 랑구르시아시 시민들을 매혹시키고 있었다.


이어, 은주도 대회장 가운데로 걸어나가 사십 걸음(20여 미터)쯤 간격을 두고 미영과 마주 보고 섰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깨를 한참 지나는 긴 연녹색의 머리와 약간 사나워 보이지만 매력적이기도 한, 가느스름한, 붉은 눈동자의 눈매.....
하얀 반팔 셔츠가 터질 듯 풍만한 가슴, 꽤 하얀 편인 피부.....
"플로(젖소)"라는 깜짝 놀랄 만한 세르농(별칭)을 자칭하는 오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태도.....
역시 많은 랑구르시아시 시민들이 감탄 속에서 열광적인 응원을 보냈다.


그리하여, 3,000여 명의 시민들의 응원과 함성 속에서, 의례적인 소갯말을 마친 경비대장 페데릭이 마침내 선언했다.

"시..... 작!"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작 신호와 함께, 미영의 긴 칼에서 폭발적으로 뿜어나오는 새파란 빛에 관중들이 놀라며 경악성을 질렀다.
칼만이 아니라 미영의 몸 전체가 날카로운 느낌의 파란 빛으로 - 마치 땅위에 내려온 파란 태양처럼 - 빛나고 있었다.


"날려 주세요!"

미영을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은주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잉!"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어깨까지 닿는 미영의 금발 머리가 살랑거리며 뒤로 휘날렸다.

"뭐하고 있는 거에요!
전력을 다해서 힘 좀 써봐요!"

열여섯 실피안(바람의 중급 정령)들이 둥글게 모여서며 오른손을 한데로 모았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바람 소리가 더욱 강해지며, 미영의 금발 머리가 더욱 세차게 휘날렸다.


"전혀 날아가지 않잖아요!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날카로운 느낌의 조금 신경질적인 느낌의 목소리로, 구름이 뭉친 나체의 여자 모습의 실피안들이 번갈아 입을 열었다.

"위대한 어머니를 닮은 인간이여!"

"정의와 수호의 신....."

"마르 신의 가호가....."

"그 권능이....."

"우리의 힘을 차단하고 있다."

"우리의 힘이 미치는 정도는....."

"단지....."

"천에 하나....."


"예엣! 천의 하나밖에 힘을 쓸 수 없다구요?"

경악한 음성으로 은주가 소리쳤다.
실피안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고 그 소리도 들리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마치 정신이 나간 듯한 모습이었지만.....
이미 몇 차례나 보여준 압도적인 모습에, 바람의 정령의 존재와 힘을 의심하는 사람은 - 적어도 이 대회장 안에는 - 아무도 없었다.


"꿀꺽!"

어느새,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미영의 모습에 은주가 침을 삼켰다.
빼들고 있던 긴 칼을 다시 칼집에 집어 넣으며 미영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기권이죠, 언니?"


멋적은 얼굴로 웃으며 은주가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응! 어쩔 수 없네!
기권합니다!"


"..... 어떻게 된 거야? ....."

"..... 그러게....."

관중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경비대장 페데릭의 선언이 이어졌다.

"플로라 바카스씨의 기권으로.....
제 41회 무술대회의 영예로운 우승자는 미리어 시엔씨가 되었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결승전치고는 다소 싱거운 경기였지만..... 3,000여 명의 구름처럼 모인 랑구르시아시 시민들이 우뢰와 같은 함성과 갈채를 보냈다.


작은 탁자 위에 갖다 놓은 포도와 이런 저런 과일을 먹으면서 다소 지루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랑구르시아시의 노영주 타일러 반 앙리아 남작이 천천히 뚱뚱한 몸을 일으켰다.
이어 다소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남작이 대회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녹색 튜닉 차림의 경비대장 페데릭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마법이 걸려 하얀 빛을 내고 있는 수정구슬 지팡이를 페데릭으로부터 받아든 타일러 남작이 입을 열었다.
예상외로 낮고 묵직한, 중후한 목소리였다.

"위대한 전사여!
랑구르시아시민들을 대표해서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이네.
부디..... 저주받은 검 그랑데르(위대함)를 바위에서 뽑아내어 랑구르스의 퇴치에 앞장서 주겠는가?"

아마도 무술대회 우승자에 대한 일종의 전통적인 인삿말인 듯 했다.


소리 증폭 마법이 걸려 있는 수정구슬 지팡이를 남작으로부터 공손하게 받아든 경비대장 페데릭이 지팡이의 구슬을 손으로 살짝 가렸다.
미영을 보고 웃으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례적인 인삿말입니다.
감사를 표하시고, 동문밖으로 마차를 타고 가서 검을 뽑는 시늉을 하신 후에 상금을 드리게 됩니다."


미영이 페데릭에게 마주 웃으며 공손하게 하얗게 빛을 내고 있는 수정구슬 지팡이를 받아 들었다.

"위대한 앙리아시의 시민 여러분!
그리고 존경하는 앙리아시의 영주님!"

역시 수정구슬에 걸린 마법이 미영의 목소리를 넓은 대회장 안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지게 해주었다.


"..... 왜 앙리아라고 부르는거지? ....."

관중석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것이 미영의 뛰어난 청각에 잡혔다.


"괴물 랑구르스의 퇴치를 위한, 이 영예로운 대회를 열어주신 영주님과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미 대회 참가전에, 저는 그랑데르를 뽑을 수 있을지 시험해 본 바 있습니다.
그 검은 저로서도..... 도저히 뽑을 수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미영이 잠시 말을 멈췄다.


너무 살이 찌고 나이를 먹어서, 불독처럼 볼살이 볼 품 없이 늘어지기 시작한, 노영주는 씁쓸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네." 내지는 "물론 그랬겠지."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조금 떨어져 서 있던 경비대장 페데릭 역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런 말 할 필요는 없었는데....."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말이 미영의 귀에 들려왔다.


랑구르시아시 시민들이 미영의 말에 웅성거렸지만..... 특별히 낙담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나잉족 무챠바크가 만든 뭐든지 자를 수 있다는 검 그랑데르(위대함)가 마르 신의 저주로 바위에 꽂힌 것도 벌써 40여 년전.....
언젠가는 강한 전사가 나타나 뽑아줄 것을 바라고 매년 무술대회를 개최한 것도 벌써 41년째.....
그러나, 이제껏 아무도 뽑지 못했던 검을.....
41번째 무술대회 우승자가 - 그것도 힘쓰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꽤 미인인 젊은 여자가 - 뽑아줄 거라고 특별히 기대했던 사람은 사실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미영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제 동료들과 함께.....
랑구르스를 퇴치할 것을 원합니다!

영주님과 시민 여러분 모두의 지원과 도움을 청원하는 바입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반드시 랑구르스를 퇴치할 수 있습니다!"


"웅성! 웅성! 웅성!"

넓은 대회장 안이 3,000여 시민들이 저마다 놀라서 떠드는 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

"..... 뭐라고 한 거야? ....."

"..... 랑구르스를 퇴치한다고? ....."

"..... 하지만, 그랑데르를 뽑지도 못했다고 했잖아! ....."


용병 부하들에 둘러싸여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앉아 있던 용병대장 크리스토퍼가 검은 콧수염이 난 얼굴에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뭐야? 저 아가씨..... 처음부터, 무술대회가 목적이 아니었군!"


고급스런 보라색 튜닉 차림의 뚱뚱한 노영주가 손을 뻗자, 경비대장 페데릭이 미영에게서 수정구슬 지팡이를 다시 받아 노영주 타일러 남작에게 돌려 주었다.

불독처럼 볼살이 늘어진 뚱뚱한 노영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젊은 혈기란 참으로 좋은 것이지.
랑구르시아시를 구하고자 하는 그대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네.
하지만..... 우리 랑구르시아시가 이제껏 랑구르스를 퇴치하기 위해 아무 시도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는 말게나.

정확히 243년 전에 처음 랑구르스가 나타났을 때, 당시 1,000여 명의 시 병력중 절반 가까운 500여 명이 희생당했네.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내 4대조 조상되시는 분은 7레벨의 고위 매기아러(마법사) 한 명과 4, 5레벨의 매기아러 10명, 그리고 용병들을 포함한 2,000여 명의 병력으로 랑구르스의 퇴치를 시도하셨었지.
그 결과, 매기아러들 전원과 시의 병사들, 용병들 대부분과 함께 내 4대조께서도 돌아가시고 말았다네.

그 뒤에도, 내 3대조께서 소드 바인(검기)을 사용할 수 있는 우수한 검객 10여 명과 5,000여 명에 가까운 대병력을 모아 랑구르스를 퇴치하려 하셨던 적이 있다네.
결과는 그 전번과 마찬가지였지.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랑구르스를 퇴치할 수 있다라....."

노영주 타일러 남작의 입가에 자조적인 웃음이 번졌다.

"예전에도 똑같은 소리를 했던 젊은이가 한 명 있었지.
참 멍청하고 바보같은 젊은이였는데.....

세상에는 객기만으로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네.

특별히, 뭐든지 벨 수 있는 검 그랑데르라도 있다면 모를까.
그대의 객기를 만족시키기 위해 더 이상 큰 피해를 감수할 수는 없는 일이네.

상금을 받아서 돌아가도록 하게.
젊은 여전사여!"

미영의 대답도 듣지 않고..... 노영주가 천천히 몸을 돌려 약간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웅성거리면서, 대회장에 운집해 있던 3,000여 랑구르시아시 시민들도 천천히 대회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시 중앙에 있는 영주님 저택으로 오시면..... 바로 상금을 드릴 것입니다.
무운을 빕니다!"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경비대장 페데릭이 고개를 저으며, 상냥한 얼굴로 미영에게 말한 후 영주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흐음..... 역시 우리끼리 할 수 밖에 없나 봐!"

어느새 옆에 다가온 주영이 입을 삐죽하며 말을 꺼냈다.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와 다른 일행들도 이편으로 걸어오는 걸 보면서, 미영도 원형 대회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매기아러 쟌피르가 쑥쓰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거..... 공연히 무술대회 말씀을 드려서, 번거롭게 헛고생만 하게 해드렸군요.
죄송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래도..... 뜻밖에 도박으로 25,000세테르가 넘게 벌고.....
이제 상금 26,000세테르를 받을게 있으니, 대회에 참가하길 잘했어.
이번 대회에서 랑구르시아시는 크게 적자를 봤을 걸?

이제 우리가 가진 돈이 110,000세테르를 넘었어!"

"젖소" 은주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으나, 미영의 표정은 어두웠다.

"결국..... 랑구르스의 퇴치는 우리끼리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잘 될지 몰라."


"물론 잘 되지!
우리는 강해!"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주영이 자신있게 소리쳤다.
수진도 동감의 뜻으로 소리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미영의 표정은 계속 어두운 채로 풀어지지 않고 있었다.



"허허! 아직 젊은 아가씨들이 대단들 하시군요.
이 노인네는 영주님의 집사를 맡아 보고 있는 벤쟈민 오스왈트라고 합니다."

주름살 투성이의 노집사가 금화가 가득 든 자루를 건네주며 따뜻한 표정으로 웃었다.
단추가 달린 정장같은 느낌의 짙은 남색 튜닉(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웃옷)과 남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마르 신님의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인 미리어 시엔(신미영)이라고 합니다.
과분한 상금에 감사 드립니다."
하지만, 사실..... 저희는 상금 때문에 무술대회에 참가했던 게 아닙니다."

미영이 고개를 저으며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영주님을 뵙고 랑구르스의 퇴치를 청원하기 위해서였겠죠."

노집사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리고..... 아마도 "랑구르시아시 영주와 시민들은 전부 겁쟁이라서, 역시 우리끼리 할 수 밖에 없겠군!" 하고 생각했겠죠.
그렇지 않은가요?"


정곡을 찌르는 노인의 말에 미영이 꿀꺽 침을 삼켰다.


"휴우....."

다시 한번 한숨을 쉰 노인이 입을 열었다.

"이 노인네는 이 도시에서 태어났답니다.
제 아버님도 전 영주님의 집사셨었고 해서.....
현 영주이신 타일러 남작님과는 어려서부터 같이 놀면서 자랐었죠.

아까 우리 영주님이 말씀하신 걸 기억하고 있는가요?
예전에도,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치면 랑구르스를 퇴치할 수 있다고 말한 멍청한 젊은이가 있었다는.....

노인네의 쓸데없는 헛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니까, 이제는 벌써..... 3년 전의 일이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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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우리 앙리아시에는 정규 병력만 2,000여 명에, 그 외에도 활을 쏘고 창을 던질 수 있는 남자들이 10,000명에 가깝게 있습니다.
게다가 필요하면 용병들을 얼마든지 고용할 수 있는 - 금광에서 나오는 - 풍부한 자금력이 있구요.
아무리 랑구르스라도 이 많은 인원이 일제히 공격한다면 견뎌낼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치면 랑구르스를 퇴치할 수 있습니다!

마치, 때로는 벌떼에 쏘여서 사람이 죽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죠.
왜 제 말을 들어주지 않으십니까?"

잘해야 이십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금발의 젊은 남자가 열렬한 표정으로 외치고 있었다.
고급스런 보라색 튜닉에, 녹색 망토를 입은 모습이 잘 어울리는..... 제법 탄탄해 보이는 체격의 젊은이였다.
파란 눈동자에서는 불꽃이 튈 듯 했다.


제법 넓고 아늑해 보이는 영주 집무실에서..... 고급스런 갈색 나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노영주 타일러 남작이 웃으면서, 아들을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약간 살이 쪄가는 기미를 보이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볼살이 늘어질 정도로 비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내 아들 필립!
대대로 남작 가문이자, 학자에 가까왔던 우리 집안에 너처럼 무술에 소질이 있는 아들이 나와서.....
이 애비는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과, 해도 안되는 일이라는 게 있단다.

이미 몇번이나 얘기했지만.....
네게는 4대조, 5대조가 되시는 네 조상들께서도 이미 랑구르스의 퇴치를 시도해 보셨던 바 있다."


금발의 젊은이, 필립 반 앙리아가 고집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름난 매기아러(마법사)나 검사 몇 명과 그리고 용병 몇천 명으로 하셨던 시도였었죠.
만 명이 훨씬 넘는..... 우리 앙리아시의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원이 늘어나 봤자.....
그만큼 피해가 더 커질 뿐이다."

얼굴을 찌푸리며 노영주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수긍할 수 없습니다, 아버님!"

외치듯 말을 남기고, 필립 반 앙리아가 영주실 밖으로 뛰어 나가다시피 사라졌다.
치밀어 오르는 분과 격정을 참지 못한 듯 했다.


"괜찮을까요, 영주님?"

노집사 벤쟈민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으나, 노영주 타일러 남작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젊은 애들의 객기를 누가 말리겠나?
제 풀에 곧 잠잠해질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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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좀더 필립 도련님께 주의를 기울였었어야 했는데.....
우리 모두 그걸 다만 한 때의 객기라고 생각했었답니다."

깊은 한숨과 함께, 노집사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졌다.

"그리하여, 그 다음번 제물을 바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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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이 녀석이 어디 갔는지 아나, 벤쟈민?"

노영주 타일러 남작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아침부터 통 뵙지 못했습니다."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노집사 벤쟈민이 죄송스럽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에잉! 아비도 늙어서 힘에 부치는 구만.....
하나밖에 없는 자식 놈이 아비를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노영주는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20,000여 명에 가까운 랑구르시아시 시민들 남녀노소 거의 전부가 동쪽 성문밖의 드넓은 공터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2,000여 명의 병사들은 물론, 그외에도 9,000여 명 가까운 수의 남자들이 손에 손에 창이며 활을 들고 있었다.

손에 손에 무기를 든 채, 더 큰 무력감과 공포에 떨기를 원한..... 괴물 랑구르스의 뜻에 따라서였다.


[인.간.의. 영.주.여!
제.물.은. 준.비.되.었.나?]

"예, 저기 저 여자입니다, 위대하신 랑구르스시여!"

노영주 타일러 남작이 벌벌 떨며 랑구르스에게 대답했을 때였다.


랑구르스가 살고 있는 동쪽 숲쪽을 제외하고, 한쪽이 뚫린 원 모양으로, 80여 미터쯤 간격을 둔 채 비잉 둘러서 있던, 시민들 한쪽이 웅성웅성거리는가 싶더니 10여 명의 젊은이들이 손에 큰 활을 들고 뛰어 나왔다.

그 선두에 자신의 아들 필립이 서 있는 걸 알아차린 노영주가 경악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안 돼! 안 돼!
돌아가라! 필립!
안 돼에에에에에!"


녹색의 망토를 휘날리며 금발의 젊은이 필립이 소리 높여 외쳤다.

"자랑스런 앙리아시의 시민 여러분!
이제야말로 랑구르스를 퇴치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치면 반드시 랑구르스를 퇴치할 수 있습니다!"

말을 마치며, 팽팽하게 활 시위를 당긴 필립이 똑바로 랑구르스를 겨누며 소리쳤다.

"사악한 괴물 랑구르스여!
나의 화살을 받아라!"


"피이이잉!"

"퍼억!"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화살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랑구르스의 배 근처에 박혔다.
이어 필립의 뒤에 서 있던 10여 명의 젊은이들도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그중 일부는 빗나가 버렸고, 서너 개의 화살이 랑구르스의 가죽을 뚫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버렸지만, 추가로 두 개의 화살이 랑구르스의 몸에 박혔다.

그러나..... 거대한 랑구르스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사람이 모기에게 몇 대 물린 것처럼, 아무 타격도 입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끝.났.냐? 미.천.한. 것.아!]

랑구르스가 거대한 몸에 힘을 주는가 싶더니 겨우 박혀 있던 세 개의 화살들이 툭툭 빠져서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아아아아아아!"

빈 활을 들고 있던 젊은이들중 하나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몸을 움추렸다.


"안 됩니다!
위대하신 랑구르스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저 가장 앞에 있는 녀석은 제 아들입니다!
안돼요! 안돼에에에에에에에!"

노영주 타일러 남작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히스테릭한 비명을 질렀다.


"아드득! 아득! 아드득!"

마치 개가 별사탕이라도 주워 먹는 것처럼, 어느새 다가선 랑구르스가 필립과 두어 명의 젊은이들을 한 입에 물어올린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세 명을 한꺼번에 과자처럼 씹어먹기 시작했다.
사람의 뼈와 살이 터져나가는 끔찍한 소리가 들려 나오며 붉은 피가 랑구르스의 입을 타고 바닥에 줄줄 떨어졌다.
거대한 입에 물려 눌리는 순간 숨이 끊어져 버렸는지 비명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콰아아앙!"

도망칠 엄두도 못내고 겁에 질린 채 떨고 있던 나머지 7, 8명의 젊은이들이 랑구르스의 큰 발에 밟히며 그대로 벌레처럼 납작하게 온몸이 터져 나갔다.


"크흐흐흐흐흐흐흐흑!"

너무나 큰 절망감에 무릎을 꿇은 채, 하얀 백발의 노영주 타일러 남작이 어린애처럼 큰 소리로 흐느껴 울며 눈물을 흘렸다.


......................................................................................................................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의 탑으로 돌아오는 대형마차 안에서는 모두들 조용했다.

"불쌍해요!"

금발의 클로아가 구슬처럼 예쁜 파란 눈동자에서 눈물을 흘리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란히 앉아 있던 "젖소" 은주가 손을 뻗어 어린 클로아를 품에 꼬옥 안아 주었다.


"먹을 것만 밝히는 겁장이 뚱보 영감인 줄 알았더니....."

마부석의 주영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오늘 듣고서야 알았습니다만.....
소드 바인(검기)을 사용할 수 있는 검객 10명에 5,000명이 한꺼번에 덤볐어도, 랑구르스에게는 상대가 안됐다는 군요.
아무래도 포기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넓은 마차 안에, 은주, 클로아와 나란히 앉은 매기아러 쟌피르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아니요! 우리의 초월적인 힘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주어진 거에요!
우리는 반드시 해내야만 해요!"

녹색 여신관복 차림의 아가씨 지선이 단호한 표정으로 마차 안의 모두를 돌아보며 외치듯 말했다.


동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미영이 한숨을 쉬었다.

"이 세계에 온 이후, 주영이도 성격이 점점 잔인하게 변해가는게 아닌가 걱정되지만.....
지선이 쟤도 성격이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아.
종종 심지어는, 광신도처럼 보일 때도 있고.....

생각해보면, 재연씨도 처음 봤을 때부터 이기적이고 집착이 강한..... 착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이긴 했지만, 히틀러처럼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할 정도로 보이진 않았었는데..... ("강제로 길들이기" 12부 내용 참조)

어쩌면..... 성격이 변해가는 게 아니라,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초월적인 힘들을 갖게 되면서.....
감춰져 있던 진짜 모습이나 성격들이 드러나고 있는 건가?"


잠시후, 일행들 모두 쟌피르의 탑 1층의 원형 테이블 주위의 의자와 쇼파 등에 둥글게 모여 앉았다.

"다음 제물을 바치는 날이 언제죠?"

미영의 질문에 날짜를 꼽아보던 쟌피르가 대답했다.

"아마 보름 후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미영이 일행들을 돌아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준결승전에서 싸웠던 크리스토퍼라는 용병단장도 소드 바인(검기)을 썼었지.
그런 검객 10명이 5,000명의 병사와 함께 싸웠었도 소용없었다니.....
랑구르스는 확실히 엄청나게 강한 괴물인 게 틀림없어.

매기아(마법)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니, 은주 언니의 정령술도 통할지 아닐지 알 수 없는 일이고.....
사실..... 우리가 이전에 랑구르스의 퇴치를 시도했던 사람들에 비해서 확실하게 더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지선이의 치료 능력 뿐이네."

"젖소" 은주가 한숨을 쉬며 끼어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미영이 말을 이었다.

"지선이의 셍뜨 바인(신성한 빛)이 비춰주는 한은 즉사하지 않는 한, 우리는 죽지 않아!
따라서 최선을 다해서..... 지선이를 항상 지켜주면서 싸워야 해!

아마도 우리 중에 주영이 너는 계속 지선이 옆에 붙어 있어야 할 것 같아."


그 말에 주영이 입을 삐죽하며 말했다.

"체엣! 나도 랑구르스와 싸우고 싶은데....."


은주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끼어 들었다.

"아마..... 그래서는 이기기 힘들거야!
만약에 실피안(바람의 중급 정령)들의 힘이 랑구르스에게 통하지 않는다면.....
게다가 주영이가 계속 지선이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면.....

그 말은 결국..... 미영이 너하고 수진이, 이렇게 둘만으로 랑구르스와 싸워야 한다는 얘기라고....."


"어머! 저도 활을 쏠 수 있어요, 엄마!"

금발의 클로아가 동그래진 눈으로 항의하듯 말했다.


"안 돼!"

미영과 은주가 동시에 외치듯 말했다.


"랑구르스는 활솜씨로만 상대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괴물이야!
그리고..... 네 안전까지 신경쓰면서는 우리도 제대로 싸울 수 없어!"

미영의 단호한 말투에 클로아가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안 돼! 안전한 곳에서 구경하고 있어, 클로아!
같이 싸우는 건 절대로 안 돼, 클로아!
알았지?"

은주가 다시 한번 다그치듯 말하자 클로아의 어리고 예쁜 얼굴이 더욱 울상이 되었다.


"저....."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가 입을 열었다.

"쥬리아(주영)씨가 쟈넷(지선)씨 옆에 붙어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쟈넷씨를 지켜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그 말에 주영이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에에에? 아저씨가 어떻게요?
랑구르스에게는 매기아(마법)도 전혀 통하지 않는다면서요?"


"랑구르스에게는 매기아가 통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앞에 가면 매기아 자체를 못 쓰게 되는 건 아니니까요.
쟈넷씨와 같이 순간이동 매기아로 도망다니는 정도는,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쟌피르의 말에, 미영의 둥근 금빛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그런 매기아가 있었나요?
보여주실 수 있으셔요?"


"보여드리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만.....
마나(에너지)를 꽤 많이 소모하는..... 4레벨의 꽤 고급 매기아(마법)라서요.
여러분이 익히시는 건 무리입니다."

미영과 은주가 마법을 보면 - 마나의 흐름을 눈으로 보고 - 바로 익힐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쟌피르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은주가 다시 끼어들었다.

"쟌피르씨도 같이 싸우시게요?
위험할 텐데요."


"특별한 보물을 받았으니 그 값을 해야죠!
와하하하하하하하!"

오른손을 뒷머리에 댄 채, 매기아러 쟌피르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꿀꺽!"

전설의 정력제로 알려진..... 하지만, 어쩌면 효과가 전혀 없는 엉터리 정력제일지도 모르는 물건 - 카안족의 잘린 성기 - 을 매기아(마법) 수업료로 줬던 은주가 찔리는 표정으로 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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