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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 9부6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23:58 389회 0건
창작

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9부 6장


본 야설은 강간, 윤간, 성고문 수준의 SM 등 비윤리적이고 중범죄에 해당하며 잔인하고 하드코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취향의 글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은 읽으시지 말 것을 미리 권고 드립니다.





- 9부 - 이어지는 전설 (랑구르시아시 : 갈림길 / 저주받은 검) - 6장 -

그리고, 드디어 보름후.....


"흐음..... 랑구르스는 해가 정중앙에 오는 정오에 나타난다고 했던가?
이제 슬슬 동쪽 성문밖으로 출발해야 겠네!
기대되는데! 헤헤!"

주영이 웃는 얼굴로 가볍게 떠드는 걸 보며, 미영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쟤는 싸움 자체를 너무 좋아하는 쪽으로 점점 성격이 변해가는 것 같아!
응?"


지나가는 줄 알았던 대형마차 2대가 쟌피르의 탑앞에 멈춰서는 걸 느끼며 미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좀 이상해!
모두 조심해!
무장을 한 병사들이 지금 탑 앞에 멈춰 섰어!"

"예?"

"무슨 소리야?"


"덜컹!"

모두들 놀란 표정으로 미영에게 묻기가 무섭게, 꽤 큰 편인 탑 1층 현관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반짝이는 금속제 흉갑옷을 입은 경비대장 페데릭이 긴 칼을 뽑아든 채로 현관문 밖에 서 있었다.

"미안합니다, 아가씨들!
아가씨들께서는, 랑구르스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 끝날 때까지 저와 함께 여기 있어 주셔야 겠습니다."


"무슨 소리에요?"

"젖소" 은주가 따지듯 항의했으나, 무술대회 결승전 진행 당시에는 꽤 온화한 인상이었던, 경비대장 페데릭의 표정은 단호했다.

"아가씨들이 랑구르스를 퇴치하겠다고 나설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아가씨들을 랑구르스로부터 지키고, 또 랑구르시아시를 지키기 위해서죠."


"랑구르시아시를 지켜요?"

미영의 질문에 경비대장 페데릭이 대답했다.

"여러분은 아마 모르시겠지만.....
매년 랑구르스에게 금광에서 산출되는 금의 상당수를 바치고 있습니다.
랑구르스는 자기에게 감히 대항하는 인간들의 시도가 있을 때마다, 일종의 벌로서 그 비율을 점점 올려 왔죠.
이미 그 비율은 전체의 절반 가까이나 됩니다.
더 이상 비율이 올라가면 아마 랑구르시아시는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 겁니다!"


소리도 없이 주영의 양손 손톱이 30센치 길이로 늘어났다.

"힘으로 밀어붙이고 가자, 언니들!"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가 다소 위험스런 느낌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건 아무리 아가씨들이라도 무리입니다!"

경비대장 페데릭이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20여 명의 병사들이 손에 손에 화살을 매긴 활을 들고 현관 주위를 반원형으로 포위한 채, 언제라도 쏠 태세를 갖추고 서 있었다.


"흥! 저 정도라면 나 혼자서도 간단히....."

"안 돼, 주영아!"

앉아 있던 쇼파에서 몸을 일으키는 주영을 보고 미영이 말렸다.

"왜?"

항의하는 표정으로 돌아보며 묻는 주영에게, 미영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제물로 바쳐질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스무 명을 해칠 수는 없어.
게다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스무 명이 쏜 화살이 한꺼번에 날아오면 클로아나 지선이, 은주 언니, 쟌피르씨는 위험하다구!"


30대 후반 정도 나이로 보이는 경비대장 페데릭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아가씨들을 다치게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랑구르스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 시작돼서 얼마 안 걸려서 금방 끝날 겁니다.
이대로 조용히 계십시오.

바람의 정령을 불러낸다던가, 매기아(마법)를 쓰려고 한다던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눈치를 보이면.....
정말 그러고 싶지 않지만, 저희로서도 화살을 쏠 수 밖에 없습니다.

그점은 쟌피르 자네도 마찬가지네.
미안하게 됐네.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게나!"

페데릭과는 원래 어느 정도 알고 지냈던 듯한, 매기아러 쟌피르가 얼굴에 쓴 웃음을 지었다.


활을 팽팽하게 당긴 채로 계속 있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랑구르시아시 병사들은 의외로 훈련이 잘 된 듯, 번갈아서 한 사람씩만 활 시위를 늦췄다가 다시 당기는 식으로, 항상 19개의 활은 팽팽하게 당긴 채로 유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생각을 해 보자!
이제 조금 있으면 정오야!"

미영은 속으로 외쳤다.


......................................................................................................................


"살려 주셔요!
돈도 필요 없어요!
다시 돌려 드릴테니 제발 목숨만 살려 주셔요!"

긴 금발머리의 처녀가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두 개의 나무기둥이 튼튼하게 바닥에 박힌 가운데 처녀를 세워 놓은 채로, 양손목을 묶은 밧줄이 각각 나무기둥에 묶여 있었다.

그 옆에는 칠흑처럼 검은 빛의 저주받은 검 그랑데르(위대함)가 넓적한 큰 바위 위에 박힌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원래 그랑데르를 비바람으로부터 가리고 있던 보라색 천막은 랑구르스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 때문인지 걷어내 버린 상태였다.

금속제 흉갑옷에 뾰족 투구를 쓴 병사 두 명이 천천히 처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날카로운 단검으로 처녀의 옷을 전부 잘라내어 하얀 알몸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뚱뚱한 노영주 타일러 남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벌써..... 저럴 필요는 없지 않나?"


한숨을 쉬며, 노집사 벤쟈민이 대답했다.

"하늘을 보십시오, 영주님!
정오가 벌써 가까와 옵니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고급스런 보라색 튜닉(허벅지까지 오는 긴 웃옷)에 파란 바지 차림의 노영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군.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 일행은 못 나오게 붙잡아 놨나?"


"예, 지시하신 대로 페데릭씨가 잘 붙잡고 있을 겁니다."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노영주보다도 더 주름살투성이인, 노집사 벤쟈민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왠지 몹시 아쉬운 듯한 표정이었다.


"자네가 그 아가씨들에게 뭔가 기대를 품고 있다는 건 알고 있네.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인간의 힘으로 안되는 건 안되는 걸세.
자네도 그만 들어가 보게.
이건 영주인 나의 일이니....."

노집사 벤쟈민이 공손히 고개를 숙인 후, 80여 미터쯤 떨어져서 멀찌감치 둘러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동문 밖의 넓은 공터에는 얼핏 보기에도 20,000여 명이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이제 알몸이 된 채 나무 기둥 사이에 묶여 있는 처녀와 노영주 타일러 남작을 가운데 둔 채.....
랑구르스가 나올 동쪽 숲 방향만 열어 놓은 채, 한쪽이 뚫린 원 모양으로 모두들 비잉 둘러 서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아마도 한쪽이 조금 떨어져 나간 동그란 도너츠 같은 모양으로 보일 터였다.

2,000여 명에 달하는 시의 병사들이 반짝이는 금속제 흉갑옷(가슴과 몸통을 가리는 갑옷)과 뾰족한 금속제 투구를 쓰고, 손에는 창을 들고 등에는 활과 화살통을 맨 채로, 가장 바깥쪽에 둘러서 있었다.
병사들의 앞에는 50여 개의 대형 쇠뇌들이 1미터도 넘어 보이는 대형 화살들이 매겨진 채로 바닥에 놓여 있었다.
바닥에 고정시킨 채로, 여러 명이 달라붙어 줄을 당겨서 시위를 당기고, 줄을 칼로 끊어서 화살을 쏘는, 그다지 효율적이지는 못해 보이는 쇠뇌들이었다.

랑구르스의 뜻에 따라..... 병사들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남자들은 모두 갑옷을 입고 등에 활과 화살통을 메거나 손에 창을 들고 있었지만.....
그걸 사용해서 싸워볼 각오를 다지고 있는 듯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 쯧쯧쯧! ....."

"..... 저 처녀는 또 어쩌다 돈을 받고 저렇게 제물 신세가 됐나? ....."

"..... 와즐레 패거리 놈들에게 부모가 큰 빚을 졌다는군......"

"..... 쉬잇! 저기 와즐레 일당이 있네! ....."


둘러선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가엾은 처녀를 동정하는 가운데, 시의 병사들이 둘러 선 바로 다음의, 요컨데, 전망 좋은 자리에, 블라키 테아르(검은 공포) 폭력단 일당도 모여 있었다.
덩치 큰 두목 와즐레가, 미영에게 당한 상처로 양허벅지와 어깨에 두껍게 붕대를 감고 목발을 짚은 채로, 십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낄낄대고 있었다.

"겁쟁이 놈들! 무서워서 눈물들 흘리는 꼴 좀 보라지!
사내 놈들이라는게 말이야!"


아첨하듯, 둘러선 부하들중 하나가 굽신거리며 말했다.

"다들 와즐레님처럼 용감할 수야 있겠습니까?"


"낄낄낄낄! 저 년 엉덩이 하얀 것 좀 봐!
괴물이 먹기 전에 내가 한 번 먹어줄 걸 그랬지? 낄낄낄낄낄!"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소리높여 낄낄대며 흥겨워 하는 모습에 모두들 인상을 썼으나, 악명높은 폭력단 두목 일행에게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쿵!"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이 울렸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바닥이 진동하면서 울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와 졌다.
병사들과 시민들 모두, 용감한 척 떠들던 와즐레 일당들도 모두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조용해졌다.


새하얀 알몸으로 묶여 있는 젊은 처녀와 함께 - 20,000여 명이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에 - 서 있던 노영주 타일러 남작은 눈에 띄게 몸을 떨었으나, 그래도 꿋꿋하게 처녀 옆에 서 있었다.
천천히,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나무들보다도 훨씬 키가 큰, 검은 색의 거대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지지지지지직! 쿠우우웅! 쿠웅!"

아름드리 큰 나무 몇 그루가 수수깡대처럼 손쉽게 부러지며 옆으로 넘어갔다.

3개월마다 랑구르스가 지나다닌 탓에, 사실 숲에 뚫린 길은 거대한 랑구르스에게도 충분할 정도로 넓었다.
그러나, 재미삼아서인지 랑구르스는 몇 그루의 아름드리 큰 나무 몇 그루를 그 거대한 검은 몸으로 밀어서 넘어 뜨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랑구르스가 지나갈 수 있도록 동쪽 숲 방향은 충분히 넓게 열려 있었으나, 그쪽 근처에 서 있던 사람들이 겁에 질려 뒤로 밀리면서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쿠웅! 쿠웅! 쿠웅!"

지진이라도 난 듯 바닥을 울리며, 성벽보다도 키가 큰 거대한 괴물 랑구르스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몸 전체가 칠흑처럼 검은 색에..... 15미터 높이의 두터운 성벽보다도 키가 커 보였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은 거대한 몸체는 긴 꼬리까지 합치면 그 길이가 40여 미터에 가까울 듯 했다.
마치 악어를 연상시키는, 두꺼워 보이는 검은 가죽이 몸 전체를 덮고 있었고.....
머리부터 등을 가로질러 꼬리까지, 몸의 정중앙에는 거대한 가시들이 연달아 삐죽삐죽 돋아 나와 이어지며, 선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악어와는 달리, 랑구르스는 앞발에 비해 훨씬 큰 두 개의 뒷발과 굵고 긴 꼬리로 몸을 받친 채 -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인 모습으로 - 두개의 뒷발로 서서 걷고 있었다.
노란색의 눈에서는 - 뱀을 연상시키는 - 세로줄 모양의 검은 눈동자가 잔인한 느낌으로 빛나고 있었다.

[인.간.의. 영.주.여! 제.물.은. 준.비.되.었.는.가?]

입도 열지 않은 채, 괴물 랑구르스가 노영주 타일러 남작은 물론 모여 있는 20,000여 명의 인간들 모두의 정신에 직접 말을 걸어왔다.


"딱! 딱! 딱! 딱! 딱!"

이미 매년 4번씩 수십 차례나 경험한 일이지만, 공포심으로 이를 맞부딪치며 노영주 타일러 남작이 대답했다.

"예! 저기 저 여자입니다! 위대하신 랑구르스시여!"


새하얀 알몸을 드러낸 채, 기둥 사이에 묶여 있던 금발의 처녀가 랑구르스를 올려다보며 애원했다.

"살려 주셔요!
돈도 필요 없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셔요!"


[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

마치 작은 바위산처럼 거대한, 칠흑처럼 검은 색의 괴물, 랑구르스가 소리도 없이 처녀를 - 아니, 모든 나약한 인간들을 - 비웃었다.
그 아래..... 20,000여 명의 인간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파래진 얼굴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천천히 몸을 기울인 랑구르스가 알몸의 처녀에게 그 거대한 머리를 가까이 가져갔다.
큰 소라도 한 입에 삼킬 듯한 거대한 입이 벌어지며 그 안의 새하얗게 반짝이는 이빨들을 드러냈다.
사람의 머리만한 크기의 이빨 하나 하나가 육식동물처럼 날카로왔는데, 특히 위 아래 네 개의 송곳니가 유난히 길게 돌출해 있었다.

"와지지지지지지직! 와지지직!"

"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랑구르스가 약한 이쑤시개라도 분지르듯 굵은 통나무 기둥 두 개를 차례로 입에 물고 분질렀다.
랑구르스의 날카로운 이빨들에 두꺼운 줄이 끊어져 버리자, 갑작스레 자유를 얻은 처녀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거대한 덩치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른 동작으로 랑구르스는 어느새 처녀의 왼쪽 팔을 가볍게 지그시 입에 물고 있었다.

"아아악! 놔 주셔요! 살려 주셔요! 아아아아아아악!"

알몸의 처녀는 비명을 지르며 자유로운 오른손 주먹으로 랑구르스의 거대한 입께를 두들기며 손을 빼려 애썼으나, 마치 거대한 두 개의 검은 바위 사이에 끼인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끄아아아아악! 아파!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갑자기 처녀가 풀려 나왔다.
아니, 풀려 나온 것이 아니라 랑구르스가 과자라도 베어먹듯이 처녀의 왼쪽 팔을 팔꿈치 근처에서부터 잘라서 먹어버린 것이었다.
순식간에 잘려나가 버린 왼팔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보면서, 처녀는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붉은 피가 뿜어나와 돌이 깔린 바닥과 처녀의 하얀 알몸을 온통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으아아아! 으흐흐흐흐흐흑!"

공포에 질린 뚱뚱한 노영주가 뛰다가, 넘어지고, 다시 기다가, 일어나서 또 넘어지면서, 갈팡질팡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도망쳐 오고 있었다.
60쯤 되어 보이는, 볼살이 늘어진 얼굴에는 어린애처럼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영주님을 어서 모셔라!"

노집사 벤쟈민의 외침과 함께, 10여 명의 병사들이 벤쟈민과 함께 그들의 영주를 맞이하러 뛰어 나갔다.
노집사 벤쟈민도 주름살 투성이의 얼굴에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노영주 타일러 남작이 벤쟈민, 그리고 병사들과 함께 겨우, 사람들이 - 80여 미터쯤 간격을 두고 - 원을 그리듯 빙 둘러서 있는 곳까지 도망나왔을 때였다.


갑자기 사람들 한쪽이 웅성웅성하는가 싶더니, 마치 파란 빛의 태양처럼 밝은 빛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사람들이 놀라며 양옆으로 갈라서 열어준 길을 헤치고, 긴 칼을 높이 쳐든 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멈춰라, 랑구르스!"

그 뒤에 주영과 수진, "젖소" 은주, "아가씨" 지선도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쓰으으으윽!"

랑구르스가 그 거대한 - 칠흑처럼 검은 - 몸체를 똑바로 일으켰다.
작은 바위산처럼 보이는 그 거대한 괴물의 입가에는, 빨간 피투성이인 알몸의 금발 처녀가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입에 물려 있는 오른쪽 다리를 제외한, 양팔과 왼쪽 다리는 이미 잘려 나가 피가 줄줄 바닥에 떨어지며 돌바닥에 붉은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아마도 사탕이라도 조금씩 깨물어 먹듯 장난치고 있었던 듯 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직도 숨은 붙어 있는 듯, 처녀가 고통스런 비명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여자를 내려 놔라!
네 상대는 우리다!"

단호한 음성으로 미영이 소리높여 외쳤다.
긴 칼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날카로운 느낌의 새파란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그 옆에서 녹색의 빛의 기둥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올랐다.
녹색의 긴 여신관복을 입은 지선이 하늘을 향해 양팔을 벌린 채 높이 쳐들고 있었다.
녹색의 기둥을 중심으로 퍼져 나온 빛이 거대한 광장 전체를 부드러운 녹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젊은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가 오른손에는 수정구슬 지팡이를 들고, 왼손으로는 지선의 어깨를 잡은 채로 서 있었다.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요란한 기합 소리가 광장 전체를 울릴 듯 울려 퍼졌다.
칠흑처럼 검은 빛의 묵직한 긴 도끼를 빼든 수진이 소리 높여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긴 도끼가 하얀 빛에 휩싸인 채 빛나고 있었다.


"실피안!"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거센 바람소리와 함께 열여섯 실피안(바람의 중급 정령)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은주와 클로아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하얀 구름이 뭉쳐서 된 여자 모습인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은주의 연녹색 눈동자도 지금은 미영, 수진, 지선과 마찬가지로 붉은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역시 손에는 수정구슬이 달린 - 쟌피르의 것보다는 다소 짤막한 -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주영의 양손 손톱들이 30센치 길이로 늘어나 은빛으로 날카롭게 반짝거렸다.


[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

까마득히 높아 보이는 위에서 - 인간들을 내려다 보고 비웃으면서 - 랑구르스가 모든 인간들의 마음에 바로 말을 걸어왔다.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에, 셍.뜨.레.(성녀), 전.사, 정.령.사, 변.신.술.사.까.지.....
정.말. 화.려.한. 파.티.(모험가 집단)로.군.]

조그만 새앙쥐를 입에 문 큰 고양이처럼, 거꾸로 매달린 금발의 처녀를 대롱대롱 입에 문 채로, 작은 바위산처럼 거대한 괴물 랑구르스가 오만하게 물었다.

[나.를. 이.기.려.는.가?]


입으로 대답하는 대신, 파랗게 빛나는 긴 칼을 높이 쳐들고, 미영이 랑구르스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주영과 수진도 뒤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녹색의 빛의 기둥을 만들고 있는 채로, 지선도 천천히 랑구르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는 꼭 가까이 갈 필요는 없는데.....
하긴, 시민들이 말려들면 안되니까."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은주도 천천히 지선과 함께 랑구르스에게 다가갔다.


조그만 생쥐들이 덤비겠다고 달려오는 걸 보는 큰 고양이와 같은, 오만한 표정으로 랑구르스는 그 모습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하아아아아아아앗!"

어느새, 랑구르스의 몇 미터 앞까지 뛰어간 미영이 기합소리와 함께 허공에 몸을 날렸다.
아차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높이까지 뛰어오른 미영이 그대로 랑구르스의 배에 긴 칼을 박아 넣었다.
70센치가 조금 넘는 칼날이 칼자루 가까이까지 랑구르스의 배에 깊숙히 박혀 들어갔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랑구르스가 거대한 몸을 떨며 고통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거대한 입이 크게 벌어지자, 그때까지도 입에 물린 채 거꾸로 대롱거리던 처녀가 바닥에 뚝 떨어졌다.

주영이 날쌔게 몸을 날려 떨어지는 처녀를 받아들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시 뛰어왔다.
뛰어오던 도중에 지선의 녹색의 빛을 받자, 처녀의 잘린 팔다리에서 줄줄 흐르던 피가 멎었으나 시간이 짧은 탓이었는지 재생까지 되지는 않았다.


"랑구르스의 가죽이..... 뚫렸다!
제대로 된 큰 상처를 입혔어!
어쩌면..... 지난 240여 년간 이번이 처음일지도....."

뚱뚱한 노영주 타일러 남작이 놀라움으로 입을 크게 벌리며 소리쳤다.


"물론이죠!
저 분들이라면 가능합니다!"

옆에서 활짝 웃으며 즐거운 듯이 말하는 사람을 본 노집사 벤쟈민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경비대장 페데릭씨!
저 아가씨들이 여기 오지 못하게 막으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었습니까?"


바보처럼 히죽히죽 웃으며 경비대장 페데릭이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하지만, 영주님도 기뻐하실 테니 걱정말고 같이 가자고, 저 금발의 미인 아가씨가 말씀하셨거든요.
그래서, 저도 제 부하들도 기꺼이 따라왔답니다."


그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고 노영주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최면술?
하지만, 밤비르(흡혈귀)도 아니고, 인간이 20여 명에게 동시에 최면술을 거는게 가능하단 말인가?"


"물론이죠!
저 분들이라면 가능합니다!"

경비대장 페데릭이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아마도 최면술의 후유증으로 일시적으로 지능이 낮아져 버린 듯, 멍청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저 괴물을 갈기갈기 찢어 주셔요!"

은주가 오른손에 든 수정구슬 지팡이로 랑구르스를 가리키며 단호하게 외쳤다.


그러나, 열여섯 실피안(바람의 중급 정령)들은 차례로 대답했다.

"위대한 어머니를 닮은 인간이여!"


"또 안되나요?"

은주가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실피안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 괴물은....."

"매기아(마법) 저항력이....."

"어쩌면....."

"신들보다도....."

"더 높다!"

"정령력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정도는....."

"절반 이하!"

"우리로서는....."

"정령력을 모아서....."

"어쩌다 한 번씩....."

"움직임을 멈출 수 있는 정도가....."

"전부다."


"할 수 없죠! 그렇게라도 해 주....."

"은주 언니!"

미영, 주영 등 일행들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눈앞이 어두워지는 걸 느낀 은주가 위를 올려다 보았다.

마치, 거대한 검은 탑이 갑자기 솟은 것처럼 가시가 잔뜩 달린 랑구르스의 거대한 꼬리가 똑바로 위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무베아!"


"콰아아아아아아앙!"

"와아아아아아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돌이 깔린 광장 바닥이 부서지면서 사방으로 돌조각들이 날았다.
거대한 힘에 광장 전체가 울리고 흔들리면서 멀찌감치 둘러서 있던 시민들이 경악의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은주는 30여 미터 옆으로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큰일날 뻔 했다!
순간이동 마법이 아니었으면 죽을 뻔 했네!"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은주가 입을 열었다.


[이. 미.천.한. 것.들.이.....]

랑구르스가 모든 인간들의 정신에 말을 걸어와 외쳤다.
거대한 괴물의, 하늘을 찌를 듯 터질듯한 분노에 - 80여 미터나 떨어져서 멀찌감치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랑구르시아시 시민들 모두 두려움에 움찔 몸을 움추렸다.


미영이 큰 동작으로 높이 뛰어 오르며 깊게 찌르는 공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처음 단 한 번뿐이었다.
몸길이 약 40여 미터에 가까운 - 마치 작은 산과 같은 - 거대한 몸체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랑구르스가 움직이는 속도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거대한 뒷발과 꼬리가 - 마치 큰 덤프트럭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 바닥을 내리칠 때마다 미영과 수진, 주영은 공격은 고사하고 피해다니기에도 바빴다.


"콰아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악!"

위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뒷발을 피했으나 날아오는 돌조각들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은 수진이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옆으로 몸을 날리며 겨우 피해서 그나마 즉사를 면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다행히도, 지선이 비추는 셍뜨 바인(신성한 빛) 덕분에, 채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피가 줄줄 흐르는 상처는 이미 나아 있었다.


"파아아악!"

파랗게 빛을 내고 있는 미영의 긴 칼이 랑구르스의 오른쪽 뒷발에 박혀 들어갔다.
그러나, 더 깊이 박기도 전에 거대한 검은 기둥같은 그 발이 그대로 - 생쥐라도 걷어차는 것처럼 - 미영을 향해 움직였다.

"팍삭!"

"아아아악!"

겨우 몸을 피했으나, 거대한 랑구르스의 발에 왼쪽 어깨를 비스듬히 맞으면서, 어깨뼈가 뒤틀리며 부러져 버렸다.
미영은 몸을 옆으로 떼굴떼굴 굴려서 좀더 옆으로 몸을 피하며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도, 긴 칼로 바닥을 짚으며 겨우 몸을 일으켰을 때, 부러진 어깨는 어느새 뼈가 제자리로 돌아오며 깨끗히 나아 있었다.


미영, 수진에 비해 몸이 훨씬 빠른 주영은 그보다는 좀더 여유있게 랑구르스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체엣! 가죽이 너무 두꺼워서 찢어지질 않아!
힘을 모아서 찔러야 겨우 뚫리잖아!"

고양이처럼 날쌔게 몸을 날리며 주영은 여러 차례 랑구르스의 발이나 꼬리의 두꺼운 가죽을 뚫고 피가 흐르는 상처를 입혔다.
그러나, 30센치 길이의 손톱으로 가하는 찌르기 공격은 몸길이가 40여 미터에 달하는 작은 산처럼 거대한 랑구르스에게는 그다지 타격을 입히지 못하는 듯 했다.

"체엣! 왜 내 손톱은 그 검사 아줌마처럼 더 길게 늘어나지 않는 거야?" (8부 내용 참조)

주영은 투덜거리며 랑구르스의 몸을 타고 올라가 좀더 치명적인 부위를 공격할 틈을 계속 노렸다.
그러나, 몸을 타고 높이 기어올라가기에는, 랑구르스의 거대한 몸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 움직이는 속도가 너무나 빨랐다.


"도무지, 땅을 딛고 있는 발과 꼬리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공격을 할 수가 없군!
놀라운 치유의 권능을 가진, 지선이의 셍뜨 바인(신성한 빛)이 없었다면 이미 우리 모두 전멸당했을 거야!
하지만..... 이대로는 치명타를 입힐 수가 없다!
게다가....."

미영이 절망감으로 고개를 저었다.


[정.말. 제.법.이.군! 하.지.만, 벌.써. 몸.이. 지.쳐.가.는.가. 보.구.나, 미.천.한. 것.들.아!]

저 높이 10여 미터도 넘는 위에서, 거대한 괴물 랑구르스의 - 세로로 가느다란 - 뱀의 눈동자가, 조그만 인간들을 내려다 보면서 비웃고 조롱했다.


"위대한 어머니를 닮은 인간이여!"

"랑구르스의 움직임을....."

"아주 잠시 멈출 수 있을 만큼....."

"정령력이 모였다!"

둥글게 모여서서 오른손을 한데 모은 채로 실피안(바람의 중급 정령)들이 입을 열었다.


"정지시켜요!"

은주가 큰 소리로 외쳤다.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끊임없이 움직이던 랑구르스의 거대한 몸체가 아주 잠시 - 1초도 채 안될 시간 동안 - 정지했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주가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들 잘 봤지?
이제부터, 실피안들이 정령력을 모아서..... 내가 신호를 보내는 대로, 랑구르스의 움직임을 종종 정지시킬 거야!
내가 "지금이야!" 라고 외쳐서 랑구르스의 움직임을 멈추면, 좀더 치명적인 부위들을 공격해!"


"오케이!"

주영이 신이 난 음성으로 대답하며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몸을 움직였다.

미영과 수진도 이제까지처럼 공격을 해보려려고 애쓰는 대신, 랑구르스의 거대한 두 발과 꼬리 공격을 피하는 데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콰아아아아앙!"

수진의 도끼가 큰 동작으로 랑구르스의 거대한 오른발을 후려 갈겼다.
도끼라는 무기의 특성상 깊숙히 박히지는 않았으나, 한 장, 한 장이 작은 방패처럼 큰 검은 비늘들이 네댓 장이나 한꺼번에 벗겨져 날아가며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푸우우우욱!"

파랗게 빛나는 미영의 긴 칼이 랑구르스의 큰 기둥처럼 굵은 다리와 몸통 사이를 깊숙히 파고 들었다.


"푸욱!"

랑구르스의 가슴 가까이까지 기어올라간 주영이 30센치 길이의 열 개의 손톱 전부를 랑구르스의 몸에 박아 넣었다.


"크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랑구르스가 천둥소리처럼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질렀다.
멀찌감치 둘러서 있던 20,000여 랑구르시아시 시민들은 귀를 막고 몸을 움추렸다.


"왜들 구경만 하는 거에요?
언니들을 도와 주셔요!"

허리까지 닿는 긴 금발머리에 파란 눈을 한 귀여운 어린 여자 한 명이 갑자기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오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뚱뚱한 노영주 타일러 남작과 시민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양손에 큰 활을 들고 어깨에는 등뒤로 화살통을 메고 있었다.

클로아였다.
미영 일행이 안전한 마차에 머물러 있을 것을 신신당부했으나, 활과 화살을 들고, 겹겹이 서 있는 시민들과 병사들을 힘들게 헤치고 앞으로 나온 것이었다.

하얀 깃이 달린 화살 한 개를 화살통에서 뽑아 활을 팽팽하게 당기더니 힘껏 랑구르스를 향해서 쏘았다.

"피잉!"

"파악!"

날아간 화살이 랑구르스의 목께에 꽂혔다.
하지만 몸길이 수십 미터의 거대한 랑구르스에게는 그다지 타격이 되지 않는 듯 했다.

"싸워요!
제발 함께 싸워 주셔요!"

절규하듯 외치며 클로아가 2번째, 3번째 화살을 계속 랑구르스를 향해서 쐈다.


"이무베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랑구르스의 거대한 꼬리가 또다시 지선을 노리고 떨어졌다.
다행히,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가 그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순간이동 주문을 외워, 몇십 미터 옆으로 지선과 함께 이동해 몸을 피했다.
지선의 뒤에 선 쟌피르의 왼손이 지선의 왼쪽 어깨를 꼬옥 잡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수정구슬 지팡이를 꼭 쥔 채였다.


"이무베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이번에는 은주가 순간이동 마법으로 아슬아슬하게 랑구르스의 거대한 꼬리 공격을 피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땅이 울리며 사방으로 돌조각들과 먼지들이 날아 올랐다.


크고 작은 부상들을 계속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영, 수진, 주영 - 공격을 맡은 여자들이 아직까지도 쓰러지지 않고 있는 것은.....
하늘을 향해 새하얀 양손을 뻗은 채, 녹색의 빛의 기둥을 만들어 내고 있는 지선의 셍뜨 바인(신성한 빛)이 가진 기적같은 치유력 덕분이었다.

땅을 딛고 있는, 검은 색의 거대한 기둥같은 랑구르스의 두 발과 거대한 꼬리밖에는 공격할 수 없었던 미영 등이 배와 몸통 등 좀더 치명적인 부위에 공격을 가할 기회는.....
오직, 은주의 실피안(바람의 중급 정령)들이 드물게 아주 잠깐씩 랑구르스의 움직임을 멈추는 그 순간들뿐이었다.

요컨데, 지선과 은주만 처치하면 자신의 승리라는 걸 확실히 깨달은 랑구르스는 모든 공격을 지선과 은주에게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순간이동 주문은 마나(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비교적 고급 주문이었다.
연속해서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게된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며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쉴 틈이 없었다.

"이무베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해를 가리듯 큰 나무처럼 높게 솟아올랐던 랑구르스의 거대한 꼬리가 다시 - 쟌피르와 지선이 함께 서 있던 - 빈 자리를 거세게 내리쳤다.


"하아! 하아아아! 하아아아악!"

은주쪽의 상태는 더 심각했다.
입고 있는 하얀 반팔 셔츠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숨을 몰아쉴 때마다, 터질듯이 풍만한 두 가슴이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위대한 어머니를 닮은 인간이여!"

무표정한 실피안들이 걱정스런 말투로 입을 열었다.

"우리를 소환한 채로....."

"매기아(마법)까지 사용해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곧, 지쳐서....."

"정신을 잃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잖아요!
좀더 힘써서 더 자주 저 괴물을 멈춰 주셔요!
이무베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두꺼운 돌바닥이 마치 스폰지로 만든 것처럼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나며 사방으로 튀었다.


"타일러 남작님!"

바로 앞에서 울면서 연거푸 화살을 쏘고 있는 금발의 클로아와, 멀리서 미영 일행이 랑구르스와 힘들게 싸우고 있는 모습을.....
힘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던 노영주 타일러 남작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날카로운 인상에 검은 콧수염을 기른 사십대 초반의 용병단장 크리스토퍼였다.

"저런 어린애조차 활을 들고 싸우는데, 명색이 전사라면서 어린 아가씨들과 어린애에게만 맡기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군요.
하지만..... 저와 제 부하들은 용병들입니다.
댓가가 없이 싸울 수는 없어요.
1인당 500세테르의 보수를 약속하십시오."

얼이 빠진 듯한 멍한 표정으로 타일러 남작이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블라키 볼프(검은 늑대) 용병단과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용병들아!
영주님이 보수 지급을 약속했다!
랑구르스를 해치워라!"

용병단장 크리스토퍼의 굵은 목소리가 넓은 광장에 울려 퍼졌다.

"피잉! 피잉! 피잉! 피잉! ....."

"휘이이익! 휘이익! ....."

사방에서 일반 시민들 사이에 섞여 있던 용병들이 활을 꺼내 쏘기 시작했다.
활쏘기에 자신이 없는 몇몇 용병들은 겁도 없이 좀더 가까이 접근해서 랑구르스를 향해 긴 창을 던지기 시작했다.
무술대회가 끝난지도 벌써 보름이 지난 탓인지, 전부해서 불과 사오백여 명밖에 안되는 숫자였지만.....
클로아 혼자서 쏘고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화살들과 창들이 랑구르스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거대한 몸체와 두꺼운 가죽을 갖고 있는 랑구르스에게는 여전히 큰 위협은 되지 못하고 있는 듯.....
랑구르스는 날아오는 화살과 창들을 무시하고 연거푸 지선과 은주만을 집중 공격하고 있었다.


화살이 다 떨어진 금발의 클로아가 노영주 옆에 서 있던 어느 병사에게 달려와 손을 내밀며 소리쳤다.

"화살 좀 더 주세요!
어서! 빨리요!"

금발의 클로아가 울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울어서 퉁퉁 부은 파란 눈동자에서 볼을 타고 두 줄기 눈물이 줄줄 흘러 내리고 있었다.


"여..... 여기요!"

옆에 서 있는 영주의 눈치를 보면서, 그 병사가 등에 메고 있던 화살통을 벗어 어린 클로아에게 내밀었다.


"랑구르스는..... 아무도 이길 수 없다!
내 4대조께서도, 3대조께서도..... 내 하나뿐인 외아들 놈도..... 모두 개죽음 당했어!
도저히 이길 수 없는데.....
왜들 싸우는 거야?"

불독처럼 볼살이 늘어진 주름살 투성이 노영주가 파란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영주 옆에 서 있던 병사에게서 화살통을 받던, 어린 클로아가 양손으로 키가 훨씬 더 큰 노영주의 가슴께를 잡고 거칠게 흔들면서,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이길 수 있어요!
언니들과 함께 싸우면 이길 수 있어요!
우리 모두가 힙을 합치면 이길 수 있단 말이에요!"


"지금이야! 허억! 허어어어억!"

은주의 목소리와 함께 랑구르스의 움직임이 아주 잠깐 다시 멈췄다.


"하아아아앗!"

"푸우우우욱!"

붉은 피가 뿜어 나오며 미영의 긴 칼이 다시 랑구르스의 배 한 가운데에 깊숙히 박혀 들어갔다.


"이야아아아아아아아!"

"퍼어어어억!"

수진의 묵직한 긴 도끼가 랑구르스의 왼발 뒷꿈치를 거의 부숴 버렸다.


"푸우우우욱!"

이번에는 목가까이까지 기어오른 주영이 열 개의 긴 손톱을 랑구르스의 목께에 박아 넣었다.


"크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작은 산처럼 거대한 검은 몸을 고통스럽게 떨며 랑구르스가 천둥처럼 포효했다.


뚱뚱한 노영주의 투실투실한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다구?
정말로.....
정말로.....
저 저주받을 랑구르스를 퇴치할 수 있단 말이지?"

뒷말을 절규하듯 외친 노영주 타일러 남작이 갑자기 옆에 서있던 병사가 손에 들고 있던 긴 창을 뺏어 들었다.

"야아아아아아앗!"

뒤뚱거리며 몇 걸음 달려나간 노영주가 요란한 기합소리와 함께 창을 던졌다.
창은 불과 이십여 미터 정도 날아간 후 중간에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챙그랑!"

그러나, 노영주는 굴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며, 찢어질 듯 입을 크게 벌리며 중후한 음성으로 목청껏 소리쳤다.

"나의 병사들이여!
위대한 앙리아시의 시민들이여!

싸워라!

모두 힘을 합쳐서 싸워라!

지금이야말로.....
지금이야말로.....

랑구르스를 퇴치할 때다!"


잠시 모두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소리치는 노영주 타일러 남작을 바라 보았다.
그러나, 곧바로 역시 영주만큼 늙은 집사 벤쟈민이 창을 들고 나가 랑구르스를 향해 던지며 목이 터지도록 소리쳤다.

"싸워라! 모두 함께 랑구르스를 해치우자!"

"챙그랑!"

노집사가 던진 창은 불과 십여 미터를 날아가서 중간에 떨어져 굴렀다.


"피잉!"

어느 병사가 쏜 화살이 랑구르스를 향해 똑바로 날아가 거대한 괴물의 어깨께에 박혔다.

그 화살을 시작으로..... 하나 둘씩 화살들이 이어졌다.
마침내, 사방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화살들과 창들이..... 말그대로 빗발치듯, 랑구르스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 이런! 고맙기는 한데....."

등뒤에서 날아오는 화살들을 힘겹게 피하면서 미영이 중얼거렸다.


"저 아저씨들 누구한테 쏘는 거야?"

주영이 몸을 날쌔게 움직여 화살들을 피하면서 역시 투덜거렸다.


불규칙하게 사방에서 빗발치듯 날아오는 화살들은 사실 랑구르스보다는, 갑옷도 입지 않은 채인 미영 일행에게 더 큰 위협이 되고 있었다.


그 때였다.
누군가가 중후한 목소리로 우렁차게 외쳤다.
단순히 큰 목소리가 아니라 마나(에너지)가 담겨 있는 듯한 울림이었다.

"아무렇게나 쏴서는, 저들이 싸우는데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오!
한 발, 한 발 침착하게..... 랑구르스의 머리를 겨눠서 쏘시오!"

넓은 광장 구석구석까지 웅장하게 울려퍼진 그 목소리에 다들 정신을 차리고..... 침착하게 한 발, 한 발 겨눠서, 랑구르스의 머리를 향해서 쏘기 시작했다.
여전히, 더러더러 어림도 없이 빗나가는 화살이나 창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랑구르스의 거대한 머리를 향해 날아가면서.....
랑구르스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랑구르스는 오히려 눈알에 다른 곳보다 더 두꺼운, 투명한 껍질을 갖고 있는 듯, 몇 발의 화살이 눈알을 정통으로 맞혔으나, 살짝도 박히지 않고 그냥 미끄러져서 튕겨나 버렸다.

[이. 미.천.한. 것.들.이..... 감.히.....]

작은 산처럼 거대한 괴물 랑구르스가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를 담아 인간들에게 외쳤다.
그러나, 그에 움추러드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었다.


"이것들아! 뭐 해! 도망가자!"

"예? 두목님?"

"랑구르스가 진짜 열받았다!
이러다 애매하게 우리까지 죽는다구!"

두목 와즐레의 말에 뒤늦게 깨달은 듯, 블라키 테아르(검은 공포) 폭력단의 졸개들 수십 명이 - 목발을 짚고 절름거리는 - 와즐레를 부축한 채, 활을 쏘는 사람들을 밀어 젖히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랑구르스가 다시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냈다.
수진의 도끼가, 주영의 손톱들이..... 머리에 집중되는 화살들로 주의력을 잃은 랑구르스의 거대한 몸통 여기저기에 끊임없이 크고 작은 상처를 냈다.
만여 명이 넘는 랑구르시아시 - 아니, 앙리아시 시민들과 병사들, 용병들이 쏘아대는 화살들과 창들이, 드물게는 거대한 쇠뇌용 화살들이, 옆으로 쏟아지는 비처럼 날아들면서 랑구르스의 거대한 머리에 자잘한 상처들을 내며 수도 없이 박혀 들었다.

그러나.....
랑구르스에게 정말로 치명타를 날릴 수 있는 사람은.....
랑구르스의 목이나 머리까지 높이 뛰어올라 치명적인 공격을 날릴 수 있는 사람은.....
만여 명이 넘는 이 많은 사람들중.....
오직 단 한 사람.....

새파란 태양처럼 빛나는 긴 칼을 휘두르고 있는.....
오직 단 한 사람 뿐이었다.


"허어어어억! 허억! 꺼억! 지.... 지금!"

은주의 숨가뿐 신호와 함께 실피안들이 랑구르스의 움직임을 멈춘 순간.....
미영이 마치 새처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뛰어 올라, 파랗게 빛나는 긴 칼을 랑구르스의 기둥처럼 굵은 목 아랫쪽 깊숙히 박아 넣었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 아아아아아! ....."

"..... 성공한 건가? ....."

활을 쏘고 창을 던지던 사람들이 감탄의 소리를 지른 것도 잠시, 미영쪽을 향해 온 몸을 내던지듯 한 랑구르스가 산처럼 거대한 몸을 바닥에 굴리면서 미친 듯이 꼬리와 온몸을 휘저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쿠콰콰콰콰콰콰콰콰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쿠콰아아앙!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아아앗!"

"꺄아아아아악!"

"와앗!"

거대한 검은 덤프트럭이 옆으로 미끄러져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닥을 온통 쓸어오는 랑구르스의 거대한 꼬리를 미영과 주영은 아슬아슬하게 뛰어 넘으며 피했으나, 수진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도끼를 놓치며 몇십 미터나 공처럼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
팔다리, 갈비뼈 등이 모두 부러져 나가며 엄청난 중상을 입은 수진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지선의 셍뜨 바인(신성한 빛)이 없었다면 아마도 기절한 채로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졌을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기절한 채로 천천히 상처들이 치유되고 있었다.

"이무베아!"

"이무베아!"

지선을 잡고 있는 매기아러 쟌피르와, 은주가 거의 동시에 오른손에 든 수정구슬 지팡이를 빛내며 순간이동 주문을 외쳤다.
가로로 쓸어오는 랑구르스의 거대한 꼬리를 아슬아슬하게 겨우 피한 은주가 쓰러질듯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숨을 골랐다.
바로 그 위에서 랑구르스의 거대한 꼬리가 검은 산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똑바로 은주를 향해 떨어졌다.

"이무베아!"

매기아러 쟌피르가 다급한 나머지 지선의 왼쪽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은주의 바로 옆으로 순간이동했다.
그러나, 다시 주문을 외울 틈도 없었다.
오른손에 들고 있던 수정구슬 지팡이를 던지고 은주를 감싸 안으며 쟌피르가 힘껏 몸을 날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스티로폼 조각들처럼 산산히 부서진 하얀 돌조각들과 먼지들이 뿌옇게 날렸다.

"허억! 허어억! 괜찮아요, 쟌피르씨?"

몸을 일으키며 은주가 외쳤으나 매기아러 쟌피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의식을 잃은 채인 쟌피르의 양쪽 허벅지 아래가 육중한 트럭에라도 치인 것처럼 깨끗이 잘려 나간 모습이 은주의 눈에 띄었다.
다행히 지선의 셍뜨 바인(신성한 빛) 덕분에 피는 급속도로 멎어 갔다.

"이무베아!"

"콰아아아아아앙!"

그 위에 또다시 내려치는 랑구르스의 꼬리를 피해 다시 순간이동 주문을 외운 은주의 모습이 쟌피르와 함께, 80여 미터쯤 떨어져 열심히 화살을 쏘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 나타났다.

"크으으윽!"

거기서 기운이 다 빠져 버린 듯, 은주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털그럭!"

오른손에 들고 있던 수정구슬 지팡이가 은주의 손에서 떨어져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엄마!"

화살을 쏘고 있던 금발의 클로아가 다급하게 외치며 은주를 향해 달려갔다.


"주영아!
지선이에게 가!"

지선이 무방비 상태가 돼버린 걸 알아차린 미영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나, 건물처럼 높이 치솟았던 랑구르스의 거대한 꼬리는 지선이 아니라 미영쪽을 향해 내리쳐졌다.

미영은 급하게 옆으로 몸을 날려 피했으나 들고 있던 긴 칼끝이 랑구르스의 거대한 꼬리에 치이면서 칼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아아아아아악!"

박살이 나면서 사방으로 날아가는 돌조각들에 큰 부상을 입고 피투성이가 된 미영이 비명을 질렀다.


"언니?"

지선을 품에 안으며 주영이 다급하게 소리쳤으나, 랑구르스의 거대한 꼬리가 곧바로 가로로 바닥을 통째로 쓸어버리 듯 공격해 들어왔다.
주영은 지선을 든 채 급하게 위로 뛰어 올랐으나, 지선을 품에 안은 채로는 충분히 높이 뛰어 오를 수가 없었다.
랑구르스의 거대한 꼬리에 주영의 발목께가 걸리면서, 지선을 품에 안은 채로 주영과 지선 둘다 한꺼번에 수십 미터나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주영과 함께 단단한 돌바닥을 몇 바퀴나 구른 지선이 그대로 의식을 잃으면서 양손에서 퍼져 나오던 녹색의 환한 빛이 사라져 버렸다.
주영은 의식을 잃지는 않았으나 양발목이 부러져 나가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렸다.

"크으으윽!"

엎드린 채로 저 멀리 랑구르스를 노려 보며 주영이 분한 소리를 냈다.


[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

여전히 사방에서 빗발치듯, 그 거대한 검은 머리를 향해 화살들과 창들이 날아오고 있었으나.....
랑구르스가 오만하게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모든 일행들이 중상을 입거나 전투불능 상태가 된 채, 미영 혼자만이 칼조차 놓쳐버린 맨손으로 필사적인 시선으로 바닥에 떨어뜨린 긴 칼을 찾고 있었다.

[잘. 싸.웠.지.만. 여.기.까.지.인. 거.다, 미.천.한. 인.간.들.아!
이.제. 절.망.을. 느.끼.면.서. 죽.어.라!]

맨손인 미영을 향해, 랑구르스가 또다시 마치 건물처럼 거대한 꼬리로 바닥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듯 가로로 쓸며 공격해왔다.

그때였다.
빗발처럼 날아드는 다른 화살들과 창들에 섞여서, 파랗게 빛나는 창 한 자루가 마치 혜성처럼 날아와 랑구르스의 오른쪽 눈알을 꿰뚫어 버리며 깊숙히 박힌 것은......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엄청난 고통에 작은 산처럼 거대한 검은 몸을 떨며 랑구르스가 천둥소리처럼 큰 소리로 신음했다.


"지금이오!
어서 공격하시오, 셍뜨 아미트레(여 성기사)여!"

아까 모두에게 랑구르스의 머리를 공격하라고 외쳤던 중후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어디서부터인지 울려 퍼져 넓은 광장을 울렸다.


그러나, 아무리 바닥을 둘러봐도 미영의 눈에는 아까 랑구르스의 공격에 떨어뜨려 버린 긴 칼이 눈에 띄지 않았다.
보이는 칼이라고는 오직..... 넓은 바위 위에 깊숙히 꽂혀 있는.....
마르 신에게 저주받은 검 "그랑데르(위대함)"뿐.....


"말도 안 돼!
저 검은 빠지지 않아!
나는 물론, 수진이의 힘으로도 뽑지 못했던 검이야!"

속으로 크게 외쳤지만, 미영은 자신도 모르게 겨우 몇 걸음 떨어져 있던 넓은 바위 위에 올라가, 양손에 힘을 주며 필사적으로 "그랑데르"의 검은 손잡이를 잡고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앗!"

소리도 없이..... 40년이 넘게 바위에 박혀 있던 저주받은 검 그라페르(쓰레기)..... 아니 그랑데르(위대함)가 바위에서 뽑혀 나왔다.

"파아아아아아아앗!"

마치 파란 태양이 바위 위에서 폭발한 것처럼...... 눈부신 파란 빛이 양날검 그랑데르를 중심으로 퍼져 나와 드넓은 광장을 뒤덮었다.


"그랑데르가.....
저주받은 검이 뽑혔다!"

노영주 타일러 남작이 입을 크게 벌리며 소리쳤다.


"크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작은 바위산처럼 거대한 괴물 랑구르스가 태양처럼 찬란한 새파란 빛을 부정하듯, 고개를 높이 쳐들며 포효했다.


"지금이야!
바로 지금이..... 결정타를 날릴 때야!"

태양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파란 검을 높이 하늘로 쳐든 채로 미영이 외쳤다.

"이무베아!"


사라졌던 미영의 몸이 십오 미터쯤 위 허공..... 랑구르스의 머리 바로 옆에 나타났다.
바로 앞 랑구르스의 거대한 - 뱀처럼 세로줄의 -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커졌다.

[이. 미.천.한. 것.이. 지.팡.이.도. 없.이. 매.기.아.(마법)를.....
게.다.가. 매.기.아.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여.지.껏. 감.춘. 채.로. 싸.우.고. 있.었.다.니.....]


채 몸이 아래로 떨어지기도 전에..... 미영의 허리와 양팔이 원을 그리듯 크게 회전하면서, 랑구르스의 턱밑을 태양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긴 양날검 그랑데르로 후려쳤다.

"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치 질긴 천을 자르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 조그만 집처럼 거대한 랑구르스의 머리가 목에서 떨어져 나가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중심을 잃은 미영의 몸도 거꾸로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그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털썩!"

머리를 세차게 바닥에 부딪친 미영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쿠우우우우웅!"

작은 집처럼 거대한 랑구르스의 검은 머리가 그보다 몇 미터 옆에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괴물 랑구르스의 머리없는 거대한 몸통이 산사태로 통째로 무너지는 검은 산처럼..... 천천히 바닥을 향해 쓰러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넓은 광장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이 들썩거리며 흔들렸다.


"이제야 알았다!
마르 신께서 그랑데르를 바위에서 뽑히지 않게 만드신 것은 저주가 아니었어!"

그 모습을 보며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노영주 타일러 남작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랑구르스는.....
뭐든지 자를 수 있는 검이 있다고 해서.....
그리고 그 검을 휘두를 수 있는 뛰어난 검객이 한 사람 있다고 해서.....
해치울 수 있는 괴물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눈물과 피와 땀이.....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야만.....
겨우 해치울 수 있는 그런 존재였어.

마르 신께서는 그랑데르(위대함)에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거셨던 거야!
모든 준비가 다 갖춰진 뒤에.....
우리 모두가 정말로 힘을 합친 뒤에.....
정말로 랑구르스를 해치울 수 있는 상황이 된 뒤에야, 사용돼서.....
틀림없이 랑구르스를 해치울 수 있도록.....

정말 크고, 고마운 축복을....."


"주르르르르르르!"

두 줄기 뜨거운 눈물이 불독처럼 볼살이 늘어진 노영주의 두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깜짝 놀란 표정이 된 노영주가 주위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셍뜨 아미트레님들 일행을..... 조심해서, 신속하게 영주 저택으로 모셔라!
의사들을 전부 불러!

어서!"


"예, 영주님!"

랑구르스가 마침내 쓰러진 모습에 넋을 놓고 있던 주위의 병사들이, 노영주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노영주의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사람들 앞에 서 있던 어느 거지 노인을 똑바로 가리켰다.

"저 분이 도망치시지 못하도록 단단히 잘 붙잡아서.....
정중하게..... 내 저택으로 모셔라!"

더러운 누더기 차림에, 왼팔, 왼다리가 잘려 나갔고, 파란 빛이 조금 남아 있는 지저분한 머리카락이 거의 새하얗게 세어 버린.....
목발을 짚은 초라한 불구 거지 노인이었다.



그렇게 해서.....

무려 240여 년 동안이나 랑구르시아시 - 아니, 앙리아시를 괴롭히면서......
무려, 1,000명에 가까운 젊은 처녀들을 제물로 잡아먹고.....
저항하는 수천 명의 인간들을 벌레처럼 학살해 온.....

거대한 괴물 랑구르스는.....

마침내, 다섯 마녀의 손에 퇴치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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