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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 9부1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23:59 266회 0건
창작

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9부 1장


본 야설은 강간, 윤간, 성고문 수준의 SM 등 비윤리적이고 중범죄에 해당하며 잔인하고 하드코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취향의 글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은 읽으시지 말 것을 미리 권고 드립니다.





- 9부 - 이어지는 전설 (랑구르시아시 : 갈림길 / 저주받은 검) - 1장 -


"와아! 언니들! 성벽이 보여!"

마부석의 주영이 신이 난 듯한 음성으로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조용하던 마차 안에도 갑자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틀 전의 큰 전투로 아직까지도 모두들 피곤한 기색으로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늘어져 있던 참이었다.

"드디어 도착했네!"

"잘 됐어요, 엄마!"

기분좋게 기지개를 펴는 "젖소" 은주의 하얀 팔에, 금발의 클로아가 귀엽게 웃으며 몸을 기댔다.
"아가씨" 지선도, 보통은 무뚝뚝할 정도로 무표정한 수진도, 그리고 오르크 보르카에게서 구출받은 세 명의 여자들도 모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왜 그래, 미영아? 아직도 많이 피곤하니?"

이틀전부터 왠지 시무룩한 기색의 미영에게 수진이 여자치고는 허스키한, 하지만 따뜻한 음성으로 물었다.


"아냐! 괜찮아!"

크고 아름다운 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미영이 마주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힐끔 쳐다본 여검사 재연이 입가에 차가운 느낌의 웃음을 띠었다.



뉘엿뉘엿..... 거의 저물어가는 햇빛을 가린 마차 창문의 검은 커튼을 걷어내자, 높고 긴 회색의 성벽이 점차 가까이 다가왔다.

십오 미터 정도 높이의 회색 돌로 된 성벽은 상당히 많은 병사들이 그 위에 올라가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제법 두꺼워 보였다.
지금은 드문드문 경비병들이 올라가 있을 뿐이었지만.....

성벽이 네모 모양 울타리처럼 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듯 했는데.....
그 규모로 봐서, 랑구르시아시는 이제까지 거쳐온 큰 마을 몇 개를 합친 정도로 거대해 보였다.
랑구르시아 대로와 이어지는 문이 정문은 아닌 듯 했지만, 역시 꽤 크고 육중해 보이는 통나무문이 달려 있었다.

경비병 두 사람이 긴 창을 들고 열려 있는 문앞을 지켜서고 있었다.
둘다 반짝이는 금속제 흉갑옷(가슴과 몸통을 가리는 갑옷)과 위쪽이 뾰족한 금속제 투구를 쓰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본 미영의 표정이 다시 흐려졌다.


"누군지 밝히시오!"

긴 창을 서로 엑스자로 교차해 열려 있는 문앞을 막아서며 경비병들이 소리쳤다.


"저희는 다른 나라에서 왔어요.
랑구르시아시에 볼 일이 있어서요."

마부석의 주영이 어려 보이는 얼굴에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붉은 단발머리와 루비처럼 아름다운 크고 둥근 눈동자가 보석처럼 빛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런 주영의 미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경비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신분증이 있소?"


"여기요!"

주영이 청반바지 주머니에서 꺼내 내민 것을 본 경비병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 보았다.

"이게 대체 뭐요?"


주영이 다시 귀엽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우리나라 신분증(주민등록증)이에요."


황당한 대답이었지만..... 웃지도 않는 채로, 경비병 하나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 나라 신분증이 없으면 성벽을 따라 돌아가서 서기 사무실을 찾아서 새로 만든 후에야 들어갈 수 있소.
사흘 정도 걸릴....."

채 말을 끝내지 못하고 그 경비병의 파란 눈동자가 갑자기 멍하게 풀어졌다.
여전히 창을 엑스자로 교차한 채로, 옆에 서 있던 다른 경비병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여검사 재연이 은빛테 안경속에서 새빨간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었다.

"비켜라!"


"예, 주인님!"

경비병 두 명이 동시에 대답하더니, 창을 치우고 도로 양옆으로 비켜섰다.

"이 안에 메로빙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있니?"

여전히 촛점없는 몽롱한 눈을 한 경비병 하나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예, 있습니다.
이 도로를 따라 똑바로 내려가시다 촛불그림 간판이 있는 여관을 만나서 좌로 틀어서 똑바로 가시면 서 있는 4층 탑입니다."


"알았다."

거만하게 대답한 재연이 미영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가죠!
뻔한 거지만 확인은 해야죠."

미영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리들을 하는거야?"

마부석의 주영이 불안해진 표정으로 묻자, 미영이 다시 한번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이제 좀 있으면 알 수 있을거야.
가자, 주영아!"

"응! 가자!"

주영이 말들을 향해 소리치자, 여덟 마리의 말들이 끄는 대형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옆으로 비켜선 경비병들 사이를 지나 랑구르시아 시내로 들어섰다.
성문 안쪽 시내의 도로들 모두 회색의 넓은 돌로 고르게 포장되어 있었다.
성벽의 규모를 보고 짐작은 했지만, 역시 이제까지 지나친 마을들의 몇 배나 될 정도로 집들도 많고, 큰 도시였다.
또한, 한 채, 한 채 집들의 모습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 등도 상당히 풍요로와 보이는 느낌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주영이 - 경비병들이 알려준 대로 - 여관이 있는 곳에서 좌로 틀어 똑바로 마차를 몰아가자, 제법 높은, 하지만 넓지는 않아 보이는 4층 돌탑이 나타났다.

"워! 워!"

주영이 대형 마차를 돌탑 앞에 여유있게 세운 후, 마차 문을 열고 모두들 대형 마차에서 내려섰다.

"똑똑똑!"

탑 1층 정면의 나무 현관문에 달린, 사자가 입에 문 고리 모양의 노커(노크용 쇠고리)를 움직여 주영이 문을 노크했다.


"열려 있으니 들어오시오!"

나이 지긋한 노인의 목소리를 듣고 주영이 활짝 현관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드러난 모습은.....

"에에에? 할아버지는 매기아러(마법사)잖아요?
전화기 그러니까 메로빙은 없어요?"

현관문을 열자 바로 꽤 넓은, 응접실같은 방이 나타나았다.
넓은 방안에, 갈색의 고급스런 둥근 나무 테이블을 중심으로 편해 보이는 쇼파들이 양옆에, 정면에는 빈 나무의자 한 개가 등을 보이고 놓여 있었다.
그리고,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 한 명이 이쪽 현관쪽을 본 채로, 테이블 건너편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
은빛 별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있는 부드러워 보이는 보라색 로브, 역시 별무늬가 있는 보라색 뾰족모자, 손에는 작은 수정구슬이 달린 지팡이.....
요컨데, "나는 마법사임" 이라고 말하는 듯한 차림이었다.

노인 앞의, 역시 꽤 고급스런 둥근 테이블 위에는, 주먹만한 크기의 투명해 보이는 수정구슬 하나가 붉은 천과 그 위의 갈색 나무받침 위에 올려져 있었다.


"허허!"

인자한 웃음을 지은 노인이 긴 하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탁자위의 수정구슬을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어린 아가씨가 메로빙 처음 보나 보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이걸로 메로빙을 쓰는 거라오, 예쁜 아가씨!"


"휴우!"

미영이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털썩!"

"젖소" 은주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충격으로 입을 멍하게 벌린 채였다.


"어떻게 해요, 언니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아요?"

"아가씨" 지선이 아름다운 은빛 눈동자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중얼거렸다.


난데없이 변한 분위기에, 파란 눈동자가 동그래진 클로아가 "젖소"에게 물었다.

"왜요, 엄마?
저걸로 메로빙을 쓰면 안돼요?"


탁자 위의 투명한 수정구슬을 가리키는 클로아에게, 연녹색 눈동자에서 눈물을 흘리며 "젖소"가 대답했다.

"메로빙을 사용하면 멀리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할 수 있다고 해서.....
여기 오면 우리나라로 전화를 할 수 있을 줄 알고 여기까지 힘들게 찾아온 거였어.
저런게 아니고....."

클로아에게 대답하던 "젖소"가 갑자기 따지듯 노인에게 물었다.

"하지만..... 왜 메로빙이라고 하죠?
저건 매기아(마법)잖아요?"


"젖소"의 유난히 풍만한 가슴을 힐끔거리며 - 하지만 변함없이 인자한 표정으로 - 노인이 대답했다.

"수정구슬을 사용해서 멀리 떨어진 사람과 대화할 수 있게 해주는 매기아(마법)를 메로빙이라고 부른다오.
정확히는 매기아의 이름이 아니라, 그 시동어(마법을 사용할 때 최종적으로 마법을 불러내는 주문)가 메로빙인 거지만....."


그 말을 들은 미영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혹시 이 나라 밖에 있는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나요?"


주름살 투성이인 얼굴에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노인이 대답했다.

"수정구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군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가능하다오."


"흑흑! 흐흐흐흐흐흑!"

"아가씨" 지선이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리며 흐느꼈다.

"그렇게..... 훌쩍..... 죽을 고생을 해가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흑흑흑....."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에서 역시 눈물을 흘리면서 주영이 아가씨를 꼬옥 안아주자, 아가씨가 주영의 품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깔깔깔깔깔!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

온통 눈물바다가 돼 버린 탑의 방안에 난데없이 높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검사 재연이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뜻밖의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잠시후 웃음을 멈춘 재연이, 여전히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로 입을 열었다.

"왜들 이래요?
이렇게 될줄 정말 몰랐단 말이에요?
여긴 단순히 다른 나라가 아니라, 다른 세상이라는 걸..... 정말로 여태 모르고 있었어요?
이렇게 괴물단지들이 우글거리고, 마법이 판을 치는 곳이 우리가 살던 세상일 리가 없잖아요?"

재연의 입가가 올라가며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하지만..... 여기가 우리가 살던 세상이 아니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사실.....

괴물들이나 마법같은 게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죠!"

미영이 한숨을 쉬며 끼어들었다.
미영의 크고 아름다운 금빛 눈동자에도 다른 일행들과 마찬가지로 눈물이 글썽글썽 맺혀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검사 아줌마하고 언니는?"

여전히 흐느끼는 아가씨를 품에 꼬옥 안은 채로,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오른손으로 문질러 닦으며 주영이 물었다.


"휴우....."

다시 한번 긴 한숨을 쉰 후 미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를 타다가 갑자기 이리로 오게된 후.....
처음 샹리아 마을을 봤을 때는 생각했었어.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혹시 동유럽이나 그 근처 어디쯤이 아닐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깊은 산골 어딘가에 몇백 년전 모습 그대로 살고 있는 마을이 혹시 남아 있어서 거기에 오게 된게 아닐까 하고 말이야.

하지만 녹색 피부의 소인인 블랑키라는 것들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 이후..... 밤비르(흡혈귀), 말 몸통의 반신족인 카안족들, 저주를 받아 늑대머리 괴물이 된 사람들, 귀가 길고 오래 산다는 엘루시족들을 보면서.....

여기가 정말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맞는지 회의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어.

게다가, 다크 매기아러(흑마법사) 샤운이라는 자를 보고는, 멀리 떨어진 사람과 얘기할 수 있는 메로빙이라는 것도 역시 마법이 아닌가..... 불안감이 커져갔지.

그리고, 이틀전, 녹색의 오르크들과의 큰 전투후.....
정신없는 큰 전투가 끝난 후, 마차에 앉아서 쉬던 중에 확실히 깨닫게 되었어.

추격대로만 만오천 명이나 되는 군대를 보낸 부쳐크라는 오르크가 말하는 세계 정복이라는 건, 절대로 외부와 고립된 채 몇백 년전처럼 살고 있는 마을 한두 개일 수는 없다는 걸 말이야.

여기는 우리가 살던 세상과 별차이 없을 정도로 거대한..... 하나의 세계야.
최소한 "세계"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대륙 하나의 크기를 가진....."


"험..... 험!"

긴 하얀 턱수염을 오른손으로 쓰다듬으며, 마법사 노인이 입을 열었다.

"끼어들어서 미안하지만, 아름다운 아가씨들!
위스토아는 동서, 남북 어느 향이든 가로지르려면, 빠른 마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아마 몇 달은 - 실제로는 이런저런 이유때문에 보통 몇 년은 - 걸릴 만큼 대단히 큰 대륙이라오.
그리고, 열여섯 개의 큰 왕국과 공국들, 그리고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작은 영주령들과 자치 마을, 도시 등이 있다오."


들은 내용을 부인하고 싶은 듯 미영이 고개를 젓자,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 머리가 따라서 흔들렸다.

"하지만....."

미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여기가 우리가 살던 세상이 아니라는 가장 큰 증거는 사실..... 우리들 자신이야.

지금 이 탑을 중심으로 사방 약 오백 미터 주위에는 우리를 제외하고 1,634명의 사람들이 있어.
바로 이 앞에 있는 사람 세 명은..... (미영의 손가락이 탑의 벽 한쪽을 가리켰다.)
앉은 자세로 손을 움직이고 있는게 식사중인가 봐.
보지 않고도, 아니 탑의 벽이 막고 있어도..... 나는 보는 것처럼 느낄 수 있어.
심지어, 일일이 세어볼 필요도 없이, 그 숫자까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고.....

우리중 몇 명은 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나는 소리까지, 원하면 가려서 들을 수 있고, 밤에도 낮처럼 볼 수 있지.
그리고, 보통 사람 몇 명, 어쩌면 수십 명의 힘을 갖고 있기도 하고.....
손톱이 늘어나 뭐든지 바나나 알멩이를 칼로 자르듯 잘라 버리기도 하고.....
신의 힘을 빌어 빛을 내거나.....
한꺼번에 수백 명의 사람들을 동시에 치료해 주기도 하지.....
바람의 정령들을 불러서 수백 그루의 나무들을 순식간에 뿌리채 뽑거나, 만 명이 넘는 병력을 한꺼번에 밀어버리기 하고.....
마법으로 사람을 돌로 만들 수도 있어."

"또르르....."

크고 아름다운 금빛 눈동자에 고여있던 투명한 눈물 방울들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여기는..... 절대로 우리가 살던 세상일 수가 없어.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도저히 우리가 살던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존재들이 되었으니까."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눈물을 흘리고 있던 "젖소" 은주의 약간 옆으로 찢어진 연녹색 눈동자가 반짝 빛나더니 마법사 노인을 보고 물었다.

"그렇지! 우리가 이 세계에 오게된 게 마법때문이라면 마법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을 거야.
매기아러(마법사)님! 혹시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매기아(마법)에 대해 알고 계세요?"


"젖소"의 유난히 풍만한 가슴을 힐끔거리면서, 마법사 노인이 점잖게 대답했다.

"아가씨들..... 정말로 다른 세계에서 왔나 보군.
혹시 어떻게 해서 이 세계로 오게된 건지 얘기해줄 수 있겠소?"


"놀이동산에서 탈 것..... 그러니까 작은 배를 타던 중에,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사방이 깜깜해졌어요."

"젖소"의 대답에 이어 주영이 끼어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밑으로 한참 떨어지더니 "번쩍" 빛이 나면서 모두 정신을 잃었었어요, 할아버지!"


마법사 노인이 주름투성이의 얼굴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감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간 이동에 대해 책에서 본 바 그대로군!
유감이지만..... 아가씨들!"

노인이 안됐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가씨들이 오게 된 방법은 고대 왕국 시절의 매기아(마법)중 하나가 사용된게 틀림없소.
한때, 이 위스토아는 매기아러(마법사)들에 의해서 다스려졌었다오.
그들은 사람의 목숨을 파리처럼 알고, 심지어 매기아 연구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실험재료로 사용하기도 했던, 사악하고 잔인한 자들이었지만.....
그들의 매기아에 대한 지식과 수준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났었다고 하오.
그 시절을 역사가들은 "사악한 질서"의 시기라고 부른다오.

하지만..... 오백여 년전, 그들 고대 왕국들은 권력과, 몇몇 고위 매기아러(마법사)들만이 독점했던 특별한 매기아 지식을 노린 매기아러들끼리의 내전에 휘말리고 말았다오.
특히 그 내전중 몇 가지 금지된 -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는 - 매기아들이 사용되는 바람에.....
고대 왕국들의 지도층인 매기아러(마법사)들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고, 그로서 고대 왕국들도 멸망하고 말았다오.

그 시절에 대한 얼마 안 남은 몇 권의 책들과 기록들에 따르면....."

잠시 숨을 돌린 마법사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악한 질서"의 시기에는 세계간 이동에 대해서도 연구된 바가 있었다고 하오.
하지만..... 이동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 당시에도 거의 밝혀진 바가 없었다고 하오.
그들 고대 왕국의 매기아러들이 연구했던 것은 주로..... 다른 세계에서 초월적인 존재를 소환해서 위급한 순간에 일종의 무기로 사용하는 방법이었다고 하오."


"젖소"의 - 약간 옆으로 찢어져 조금 사나운 느낌의 - 연녹색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떨렸다.

"그렇다면..... 우리도 무기로서 소환된 건가요?
하지만, 그럴리가 없어요.
보시다시피 우리는 그저 평범한 젊은 여자들일 뿐이에요.
소환된 장소도 전쟁터가 아니었구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특별한 능력들을 갖게 되긴 했지만요."


마법사 노인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경우에는 아마 두가지중 하나로 볼 수 있을거요.

첫째는 이미 단절되어 잊혀졌던 고대의 지식을 사용해서 누군가 소환한 이상.....
아마도 어딘가 잘못되어 실수로 엉뚱한 존재들이 소환되었거나.....

또는....."


"또는요?"

"젖소"의 재촉에 노인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공격 목표의 범위가 작은 한 전투의 적들이 아니라..... 이 세계 자체였던 경우가 있겠소.
요컨데, 세계 자체의 멸망을 노릴 경우라든가....."

잠시, 미영 일행을 - 대체로 빼어난 외모를 가진 - 돌아본 마법사 노인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허허허허허허!
하지만..... 아름다운 아가씨들을 보니, 아가씨들이 정말로 다른 세계에서 소환되어 왔다면 아마도 소환 실패였던 것 같소.
아무리 봐도, 아가씨들은 지옥의 마왕으로는 보이지 않으니 말이오."


"쓸데없는 소리만 자꾸 하는군."

조용히 인상을 쓴 채로 듣고 있던 재연이 안경속에서 사나운 인상의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가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거니?"


재연의 거만한 말투에 기분이 상한 듯 했지만, 마법사 노인이 순순히 대답했다.

"유감이지만.....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가는 방법은.....
그것도 원하는 특정한 세계를 지정해서 이동하는 방법은 - 내가 아는 한 - 알려진 게 전혀 없다오."


"깔깔깔깔깔깔깔깔!"

뭐가 재미있는지 재연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노망난 노인네의 헛소리였지만, 전혀 쓸모없는 얘기만은 아니었군.
모두들 잘 들었어요?
우리는 원래..... 이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소환된 거에요.

나와 함께 이 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합시다!
지금의 우리라면 가능해요!"

일행중 가장 앞에 서있던 재연이 뒤로 돌아서며 일행들을 돌아 보았다.
동시에 안경 속의 검은 눈동자가 새빨간 색으로 변하자, 오르크 보르카로부터 구해온 세 명의 여자들의 눈이 멍청하게 풀어져 버렸다.
미영과 "아가씨" 지선은 아무렇지도 않았고.....
수진, 주영, "젖소" 은주는 재연의 새빨간 눈을 쳐다보는 순간, 아찔한 듯 몸을 비틀했으나 최면술에 걸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예상외로..... 클로아도 멀쩡한 얼굴로 파랗고 귀여운 동그란 눈으로 말똥말똥 재연의 새빨간 눈동자를 마주 쳐다보고 있었다.


"옷을 전부 벗고 내 발을 핥아!"

"예, 주인님!"

대답과 함께 갈색, 빨강, 검정 머리를 한 세 명의 젊은 여자들이 일제히 옷을 벗어 하얀 알몸을 드러냈다.
그리고 재연의 발치에 알몸으로 무릎 꿇고 앉아 경쟁하듯 혀를 길게 내밀고 재연의 오른발을 신발 위로 핥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히죽 웃던 재연이 클로아가 최면술에 걸리지 않은 걸 뒤늦게 깨닫고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어 씨익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때? 재미있어 보이지, 클로아?"

놀라서 동그래진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클로아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나머지 일행들을 돌아보며 재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재미있지 않나요?
우월한 힘으로.....
나약한 것들을 마음껏 짓밟아주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힘이 있어요!
이 년들만이 아니라, 이 세계 위스토아 전체를 이렇게 짓밟을 수 있는 힘이....."


"꿀꺽!"

그 모습을 의자에 앉은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마법사 노인이 침을 삼키더니, 뒤늦게 소리치며 일어섰다.

"이런 사악한 마녀!
정의의 이름으로 이런 짓은 용서할 수 없....."

그러나,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재연의 힐끔 쳐다보는 새빨간 눈과 마주치자, 마법사 노인의 동작이 그대로 멈춰 버렸다.

"바닥을 구르면서 짖어!"

"옙, 주인님!"

마법사 노인이 바닥에 드러눕더니 좌우로 데굴데굴 구르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멍멍! 멍멍멍! 멍멍!"


그 모습을 보고 나직히 한숨을 쉰 미영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오르크 부쳐크가 보낸 겨우 만오천 명의 별동대(별도로 움직이는 부대)에게도 우리는 전멸할 뿐 했어요. (8부 내용 참조)
만약, 틀림없이 그보다 숫자가 훨씬 많을 부쳐크의 본진과 싸웠다면 꼼짝없이 모두 죽었겠죠.

그 부쳐크도 아직 이 세계를 정복하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아마 그보다 더 강한 군대를 가진 왕국들도 많이 있을 거에요.

게다가..... 아마 이 세계에는 틀림없이 우리외에도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들이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상당히 많이 있을 수도 있죠.

우리들만으로는 무리에요."


"씨익!"

재연이 입가에 사악한 느낌의 미소를 지었다.

"그 오르크들을 만나기 전의 우리라면 무리일지도 모르죠.
지금의 우리가..... 이삼 일만 푹 쉬어서 정상 컨디션을 회복한 뒤에 다시 그 만오천 명의 오르크들과 붙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미영이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지난번의 싸움에서 확실히 - 일찌감치 도망쳤던 재연을 빼고는 - 모두 죽을 뻔 했지만.....
그 대신 - 재연을 포함해서 - 일행중 여러 명이 비약적으로 강해진 능력들을 손에 넣었다.
지금 다시 부쳐크의 오르크 별동대와 싸운다면.....
아마도 그 결과는.....


미영의 표정을 본 재연이 다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설사..... 우리 외에 초월적인 존재들이 이 세계에 더 있다고 하더라도.....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편이 틀림없어요.

오면서..... 모두들 놀라고 신기해하는 걸 봤죠, 여러분도?

게다가.....
꼭 우리들만으로 세계를 정복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들의 초월적인 능력을 보여주고, 세계정복이라는 달콤한 미끼를 던져주면 군대는 얼마든지 모을 수 있을 거에요!

요컨데..... 이 세계의 군대가 전부 합쳐서 설사 백만 명이라고 해도, 우리가 그 백만 명 전부와 직접 싸울 필요는 없어요.
만 명과 싸울 수 있는 힘만 갖고 있다면, 아니, 어쩌면 천 명이나 백 명과 싸울 수 있는 힘만 갖고 있어도.....
그 힘을 바탕으로 백만 명의 군대를 모아서, 다른 백만 명과 싸우게 하면 그걸로 충분한 거죠."


"휴우....."

한숨을 쉬며 미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세계에 온 이래 갖게 된 특별한 능력으로.....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어요.

설사 우리가 소환된 원래 목적이 이 세계의 멸망이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다른 길을 선택해서 갈 수 있어요!"


재연의 입가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어떻게요?

지지리도 운나쁜 괴물들이 용케 우리가 지나갈 때에 딱 맞춰서 쳐들어오면 사람들을 구해줘서요?
월터 반 베리간이라는 자가 이십여 년전인가 그렇게 많은 마을들을 열심히 구해줬었다면서요? (6부 내용 참조)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평화롭게 잘들 살고 있나요?"

재연의 시선이 조용히 말을 듣고 있는 미영과 다른 일행들을 둘러 보았다.

"오면서 여러 번 들은 말이 있죠.
이 세계 위스토아는 벌써 몇백 년째 전란에 휩싸여 사람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언제 죽을지 모를 위험속에서 살고 있다고.....

그리고, 오백여 년전에 멸망했다는 마법사들의 고대 왕국.....
이 시기가 일치하는 것은 우연일까요?

틀림없이.....
"사악한 질서"의 시기라고 불렸던 시절에는, 사람들은 마법사들을 무서워했을지는 몰라도, 이보다 훨씬 안정되고 평화로운 "질서" 아래서 살고 있었을 거에요.

이 세계를 정말로 구하는 방법은..... 어설픈 정의의 용사 놀이가 아니에요!
사람들을 제대로 지켜주지도 못하는..... 약해빠진 지금의 질서를 모두 무너뜨리고, 다시 한번 "사악한 질서"를 세우는 것이죠.

초월적인 존재인..... 우리들이 지배하는....."

재연이 오른손을 들더니 꽈악 주먹을 쥐어 보였다.


미영이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초월적인 힘으로..... 또는 거대한 군대를 일으켜서.....
정복하고, 파괴해서.....
그런 방법으로 평화를 얻을 수는 없어요.

그리고..... 나는 사람들을 힘으로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어요."


미영의 대답에 "역시나 그러시겠지!" 하는 냉소적인 표정을 지은 재연이 다른 일행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때요?
나와 함께 이 세계를 정복해서 마음대로 지배해보고 싶은 생각들이 없나요?"


"아가씨" 지선이 가장 먼저, 단호하게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제 힘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돕고..... 구하기 위한 거죠.
정복을 위한 힘이 아니에요."


주영이 아직도 울먹울먹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다시는 엄마, 아빠를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를 판에, 세계 정복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어요, 검사 아줌마!"


수진이 뒤를 이어 늘 그렇듯 무표정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미영이 옆에 있을 수만 있으면 세계 정복같은 거엔 관심없군요."


마지막으로 "젖소" 은주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평화롭고 안락한 삶은 원하지만.....
돈도 많으면 많을수록 물론 좋겠지만.....
남을 죽이고 뺏으면서까지 얻을 생각은 없네요."


"히죽!"

소리없이 미소를 지은 재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유감이군요.
하지만.....

여러분들이 도와주지 않더라도, 나는 나 혼자서라도 이 세계를 정복할 거에요."

그러더니 클로아를 쳐다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클로아! 너는 나하고 같이 가지 않을래?"


화들짝 놀란 금발의 클로아가 파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저..... 저요?"


그 순진한 모습에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재연이 대답했다.

"응! 나하고 같이 가자!

가장 좋은 옷들과 크고 예쁜 보석들을 전부 갖고.....
가장 맛있는 음식들을 매일 매일 먹고.....
수천 명, 아니 수만 명의 시녀들을 거느리고.....

너를..... 여왕으로 만들어줄게, 클로아!

네가 갖고 싶은게 있으면..... 뭐든지 말해 봐!
나는 뭐든지..... 다 갖게 해줄 수 있어!

나하고 같이 가자, 클로아!"

유혹하듯 재연의 목소리가 점점 더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클로아는 양볼을 발그레하게 하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저는.....
엄마("젖소" 은주 :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엄마라고 부르고 있음)가 같이 가지 않으면 싫어요." (5부 내용 참조)


"휴우....."

클로아의 대답에 재연이 처음으로 한숨을 쉬었다.
몇 걸음 걸어와 클로아의 두 어깨에 양손을 얹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은..... 힘이 모자라니 어쩔 수 없군.
하지만..... 반드시 돌아와서 너를 힘으로 다시 차지할거야.

내 사랑하는 클로아!"

눈을 감은 재연의 입술이 천천히..... 클로아의 작고 붉은 입술로 향했다.

갑자기..... 재연은 감고 있는 눈앞이 파란 빛으로 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입술의 촉감 대신 느껴지는 이 차가운 금속의 촉감은.....

다시 눈을 뜬 재연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놀라서 동그래진 클로아의 파랗고 아름다운 두 눈동자였다.
그리고.....
어느새 미영의 긴 칼이 재연의 입술과 클로아의 입술 사이를 가로질러 막고 있었다.
재연이 방금 키스한 것은 클로아의 입술이 아니라 미영이 뽑아든 긴 칼의 칼날이었던 것이다.

클로아의 양어깨에 얹고 있던 손을 떼며 재연이 옆을 돌아보자, 미영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원하지 않는데 억지로 하도록 놔둘 수는 없어요."


"씨이익!"

사악한 느낌의 사나운 미소를 지은 재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항상 방해만 되는군요, 당신은!
하지만..... 나를 방해한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미영씨!"

재연의 새빨간 눈동자가 안경속에서 타오르듯 더욱 새빨갛게 변하더니 양주먹이 꽈악 쥐어졌다.


"싸우려는 건가?"

재연에게서 느껴지는 사악한 기운이 오싹해질 정도로 갑자기 폭발적으로 커졌다.
미영의 금빛 눈동자도 붉은 빛으로 변하면서 칼날의 파란 빛이 더욱 강해졌다.
"아가씨" 지선과 수진도 재연의 살기를 느낀 듯 은빛과 갈색의 눈동자들이 각각 붉게 변하면서 재연을 노려 보았다.

하지만..... 그 뿐, 재연은 덤벼들 생각은 없는 듯 했다.

"모두들..... 특히 기운을 느끼는데 민감한 당신은 잘 알고 있겠죠, 미영씨!
지금 이 상태로도..... 당신들 다섯 명을 전부 합친 것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나는 강해요.

게다가..... 하루가 다르게, 내쪽이 당신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점점 더 강해지고 있죠.

당신들이 돕건, 아니건.....
아니, 심지어 내 앞을 막아서서 방해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세계를 정복할 거에요.

만약..... 나를 막고 싶다면..... 지금이 유일한 기회에요."

그러나, 미영도 칼을 뽑아든 채 재연을 쳐다보고 있을 뿐, 공격할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씨익!"

차가운 미소를 지은 재연이 클로아를 한번 더 힐끔 쳐다본 후, 천천히 일행들의 사이를 걸어서 탑의 현관을 지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까지도 과자봉지에 달라붙은 강아지떼처럼 경쟁적으로 재연의 발을 핥으려 들고 있던 알몸의 세 명의 여자들은 재연이 힐끔 쳐다보자, 그제야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주인님!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미영 일행에게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엘루시족 소니야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재연을 따라 뛰어나갔다.
허벅지까지 닿는 소니야의 금발머리가 뒤로 휘날렸다.

"멍멍! 멍멍! 멍멍멍!"

재연이 마법사 노인까지는 신경쓰지 않은 탓에, 노인은 아직까지도 좌로, 우로 번갈아 방안을 구르며 즐거운 듯한 목소리로 짖고 있었다.
양손에서 부드러운 녹색의 빛을 내어 노인과 여자들을 비추면서 "아가씨" 지선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영이 언니!
정말로 재연씨를 저대로 보내도 괜찮을까요?
재연씨가 방금 말한..... 지금이 우리가 자기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말은.....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어요."

미영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재연씨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다른 길을 간다는 이유로, 칼로 벨 수는 없어."


"그 길이 틀림없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길이라도요?"

아가씨가 아름다운 은빛 눈동자에 눈물이 글썽한 채로 외쳤다.


미영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아가씨의 말이 맞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어쩌면 지금의 선택을 두고두고 크게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같은 나라에서, 아니, 같은 세계에서 온 재연을 칼로 벨 엄두는 나지 않았다.


"으잉?"

멍멍 짖으며 바닥을 구르던 마법사 노인이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바닥에서 주춤주춤 몸을 일으켰다.
자기 스스로 좌우로 번갈아 구르다가 깔아 뭉개 버린 듯 납작하게 찌그러진 보라색 뾰족모자를 집어들고 손을 넣어서 바로 펴면서, 노인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노인 모습으로 자주 있었더니 정말 노망이 든건가?
이게 어떻게 된거야?"


"꺄아아악!"

갈색, 빨강, 검정색 머리를 한 세 명의 여자들도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알몸의 주요 부위들을 가렸다.
그리고 주섬주섬 급한 동작으로 옷들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미영이 여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기서 가족들이나 친척들 집을 찾아들 가실 수 있겠어요?"

옷을 주워서 대충대충 급하게 걸치면서 여자들이 대답했다.

"예! 여기까지 태워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여자들도, 마법사 노인도..... 재연의 최면술에 걸린 사람들이 늘 그랬듯이 조금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듯 했다.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여자들에게 미영이 말했다.

"혹시 생각했던 대로 일이 잘 안될 수도 있으니 여비를 좀 가져 가셔요."

"젖소" 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루에서 돈을 꺼내 1인당 1,000세테르씩 내주었다.

"오르크들에게서 구해주신 것만으로 고마운데..... 이렇게 큰 돈을....."

"이 은혜를 어떻게 갚죠?"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분!"

여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몇 번씩 고개를 꾸벅하며 탑밖으로 떠나갔다.


여자들이 사라진 후, "젖소" 은주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나라로 돌아갈 희망도 사라져 버렸고.....
앞으로는 뭘해서 먹고 살지?
남은 돈이 66,000세테르 정도 있으니 아껴쓰면, 아무 일도 안해도 최소한 10년 정도는 여유있게 살 수 있을거야.
하지만..... 역시 뭔가 직업이나 할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주영이 검지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빼며 입을 열었다.

"흐음..... 샹리아 마을과 샹드로 마을에서 했던 대로, 식당 일을 해보면 어떨까?
돈이 많으니 이번에는 아예 우리가 식당을 하나 사서 차리는거야.
미영이 언니와 은주 언니가 요리를 하고, 나머지는 서빙을 하는거지."


"와아! 재미있겠어요.
저도 고기 스튜는 꽤 잘 끓여요!"

어린 클로아가 신이 난 목소리로 찬성했다.


"식당이라....."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됐지만,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했다.
조금전 재연이 말했던 세계 정복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얘기가 갑자기 나오니, 어쩐지 실감이 안나는 느낌이었다.


"험! 험! 험!"

마법사 노인이 갑자기 헛기침을 했다.

"정말 노망이 났나?
조금전에 뭐라고 한참 아가씨들과 얘기한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군.

하지만..... 아가씨들은 외모만 예쁠 뿐 아니라 매기아(마법)에도 탁월한 소질이 느껴지는구려.
내게서 신비로운 매기아의 세계에 대해서 배워볼 생각들은 없소?
잘들 알겠지만 매기아러는 꽤 돈벌이가 잘 되는 직업중 하나라오."


"젖소" 은주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미 세 가지 정도 매기아를 쓸 줄 알아요.
더 가르쳐주실 매기아가 있으세요?"


"히죽!"

"젖소"의 터질듯이 풍만한 가슴을 힐끔거리면서, 노인이 안면에 가득 웃음을 지었다.

"아니! 정말로, 이미 매기아를 조금 쓸 줄 안다니 놀랍소.
하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물론 더 가르쳐 줄 것이 많이 있다오.
나는..... 5레벨의 매기아 유저라오."

마법사 노인은 자랑스럽게 말했으나, 실망스럽게도..... 미영 일행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어진 주영의 질문이 그 이유를 바로 알려 주었다.

"흐음..... 매기아(마법)라는 건 100레벨까지 있는 거에요, 할아버지?"


"커억! 콜록! 콜록!"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점잖은 표정을 짓던 노인이 주영의 질문에 깜짝 놀라더니 사래가 들린 듯 기침까지 했다.

"아니! 콜록! 아가씨는 산골에서 왔소?
그렇게 무식한 소리는..... 내 생전 처음....."

역시나, 마법사 노인은 재연의 최면술에 걸렸던 후유증으로 조금전에 했던 얘기들을 몽땅 잊어버린 듯 했다.


한숨을 쉬며 미영이 설명했다.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왔어요."


"호오! 그거 놀랍구려!"

마법사 노인이 재미있다는 듯 감탄했으나, 그저 어린 여자들의 재미있는 농담 정도로 생각하는 듯 믿지는 않는 눈치였다.

"어쨌든..... 알려진 바로는, 매기아는 총 9레벨까지 있다오.
하지만..... 4레벨을 넘는 매기아 유저는 사실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오."


"수업료는 얼마나 드리면 될까요?"

돈에 항상 민감한 "젖소" 은주가 묻자, 마법사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름다운 아가씨들의 사랑이면 족하다오. 허허허!"


최소한 일흔은 넘어 보이는 노인의 새하얀 머리와 역시 새하얀 긴 턱수염, 콧수염을 보면서, 미영 일행 모두 서로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재연의 최면술의 부작용으로 잠깐 머리가 어떻게 된게 아닌가 모두 의심하는 표정이었다.


미영 일행의 표정을 보고, 마법사 노인이 자기 손으로 이마를 치더니 입을 열었다.

"참, 아직도 이 모습을 하고 있었군."

수정구슬이 달린 지팡이를 높이 쳐들며, 마법사 노인이 외쳤다.

"콘페시오 레아르!"

뭉게뭉게 흰 연기가 피어올라, 넓은 방안을 덮었다.

"마법이다!"

"모두 피해!"

석화 마법이나 그런게 아닌가 싶어 깜짝 놀란 미영 일행이 제각기 연기를 피해 몸을 움직였다.
미영은 어느새 뽑아든 긴 칼에서 파란 빛을 내고 있었고, "아가씨" 지선은 양손에서 녹색의 빛을 내어 방안을 활짝 비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연기에 닿아도 특별한 해는 없는 듯 했다.

잠시후, 흰 연기가 걷히면서 약간 느끼한 느낌의 부드러운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연기 사이로 새어 나왔다.

"천재 매기아러(마법사) 쟌피르 반 그레슬렌..... 아름다운 아가씨들께 인사 드립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갈색 머리에, 공들여 기른 갈색 콧수염, 그리고 살짝 기른 갈색 턱수염에, 녹색 눈을 한, 제법 잘 생긴 남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 정도로 보였지만, 보라색 로브를 입고 있는 것이 조금전의 마법사 노인이 변한 모습임에 틀림없었다.


"에에에? 아저씨가 방금 그 할아버지에요?"

주영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묻자, 매기아러 쟌피르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게 제 진짜 모습이랍니다,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의 아가씨!"


"흐음..... 혹시 조금전 할아버지 모습이 진짜인 건 아니에요?"


쟌피르의 젊은 얼굴에 당혹스런 표정이 번졌다.

"아닙니다! 이게 진짜 제 모습입니다.
믿어 주세요!
사업상 필요해서 노인 모습으로 변신했던 것 뿐이랍니다.
노인 모습이 매기아러를 찾는 손님들에게 좀더 신뢰를 주거든요."


"매기아 수업료가 사랑이라구요?"

"젖소" 은주가 볼을 약간 붉히며 묻자, 매기아러 쟌피르가 능청스런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보다 더 가치있는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름다우신 분?"

"젖소"가 잠깐 밖으로 나가는가 싶더니 마차에서 뭔가를 꺼내서 다시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쟌피르가 기겁을 하며 놀랐다.

"아니! 그 끔찍한 건 뭔가요?"


인간의 남자 성기와 불알을 꼭 닮았지만, 그보다 훨씬 큰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은주 언니! 어떻게 그걸 가져오실 수가 있어요?"

말의 몸통에 인간의 상체를 한 숲의 수호자, 카안족들을 유난히 좋아했던 주영이 항의하자, "젖소"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미안! 사냥꾼들이 일부러 잘라낸게 아무래도 무척 비쌀 것 같아서 안버리고 뒀더니 글쎄 전혀 썩지도 않더라구."
(4부 내용 참조)


그제야 그것이 인간의 그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매기아러 쟌피르가 수정 지팡이를 들이대며 소리쳤다.

"코노써르 아티끌!"

그러자, 신기하게도 허공에 천천히 금빛으로 글자가 새겨졌다.
아직 이 나라 글자를 모르는 미영 일행을 위해, 클로아가 큰 소리로 읽어 준 그 내용은.....

"카안족의 좆과 불알!"

어리고 귀엽게 들리는 클로아의 목소리가 말한 너무 적나라한 내용에 미영은 저도 모르게 양볼을 붉혔다.


매기아러 쟌피르는 녹색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라서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이... 이걸 정말로..... 수업료로 주시겠다는 건가요, 제게?"


"젖소" 은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마음에 드시면요!"


"마음에 들다마다요!
평생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주인님!"


주인님 소리까지 하는 쟌피르를 보며, 미영이 작은 소리로 - 쟌피르가 알아듣지 못하도록 우리말로 - 입을 열었다.

"하지만..... 카안족 슈바인님의 말에 따르면 저것에는 아무 효과도 없다고 했잖아요, 언니?"


"아무렴 어때? 저렇게 좋아하잖아!"

"젖소"가 뻔뻔한 목소리로 - 역시 우리말로 - 대답했다.


매기아러 쟌피르는 평생 원하는 대로 그게 불뚝불뚝 선다는 전설의 정력제를 얻은 기쁨에 - 인간 남성의 그것과 너무 똑같이 생겨서 사실 좀 섬뜩한 카안족의 그것을 볼에 비비면서 - 감격의 눈물까지 흘리고 있는 참이었다.


"자! 아름다운 나의 주인님들! 숙소는 있으신가요?
제 탑에 묶으시라고 하고 싶지만, 침실이 너무 작아서.....
이제 저녁때가 다 돼가니, 먼저 여관부터 잡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매기아러 쟌피르가 들뜬 목소리로 떠들자, 미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예, 좋은 숙소로 안내해 주실 수 있으셔요?"

"물론입죠, 주인님들!"

매기아러 쟌피르가 여전히 신이 난 음성으로 앞장서서 탑을 나섰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됩니다!"

탑의 문을 잠근 쟌피르가 수정 구슬이 달린 지팡이를 들더니 바닥을 가리키며 외쳤다.

"콘페시오 푸마르!"

그러자 탑의 현관문 앞 바닥에서 보라색 연기가 뭉개뭉개 높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뭘 한 거에요, 아저씨?"

"손님들이 왔다가 헛걸음하지 않도록, 제가 쉰다는 걸 멀리서도 알 수 있게 알리는 거죠.
손님은 영주님이니까요. 아하하하하하하!"

매기아러 쟌피르가 쑥스러운 듯 오른손을 뒷통수에 댄 채, 넉살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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