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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59 264회 0건
가마는 넓다란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었다.
가마의 네 면을 따라, 나무로 된 붙박이 벽의자가 좁다랗게 이어져 마치 벤치로 테를 두른 듯한 구조를 띠고 있었다. 좌석 부위는 붉은 색 다마스커스 천으로 꼼꼼히 포장해 놓았는데, 그 속에 거미줄로 만든 웨이브 스프링이라도 들어가 있는 것처럼, 가볍고 깊은 쿠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들과 남자는 서로 반대편 의자에 앉아 마주 보고 있었는데, 행여나 남자 몸에라도 닿을까 그녀들은 최대한 그와 엇갈려 앉아 있었다. 가마 둘레엔 등받이를 겸하는 나무 난간이 둘러 쳐져 있었고, 등을 대기 좋은 각도로 휘어져 있는 난간엔 매우 정교한 솜씨로 꽃 문양이 투조되어 있었다.
치밀한 마무리 덕에 글라인드 된 금속처럼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는 그 투조는, 하나의 줄기가 세 개씩 두 번 갈라지고, 그 끝에서 각각 또다시 세 개의 잎이 달려나가는 무늬를, 시작과 끝을 연결하여 무한히 순환하도록 새겨서 난간 안쪽을 가득 채워넣고 있었다. 커다란 줄기에는, 배의 닻처럼 보이기도 하고 종이학처럼 보이기도 하는 꽃잎이 일렬로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비밀입니다."
꽃무늬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쇼트웨이브를 향해서 남자가 군부대 벽에 불온 전단지 붙이듯 슬며시 말을 붙였다.
"뭐가요?"
"지금 보시는 꽃의 꽃말이요."
쇼트웨이브가 고개를 갸웃하며 남자를 쳐다보았다. 디지털퍼머가 어디서 시덥지 않은 소릴 다 들어보겠다는 듯이 대꾸했다.
"누가 궁금하기나 하다고 했나요? 별걸 다 숨기세요. 그 꽃말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하지만 쇼트웨이브는 여전히 의아한 눈빛으로 남자를 쳐다보았고 남자 역시 길다란 웃음을 지으며 그녀들을 쳐다보았다.

가마는 차와 전혀 다른 승차감을 가지고 있었다.
서스펜션에 의해 줄여진 차 특유의 진동이나 소음은 없었지만, 가마꾼들의 약속된 보행이나 호흡에 따라 독특한 리듬을 가지고 출렁거렸다. 가라앉고 떠오르는 울렁거림이, 마치 벤토나이트 현탁액으로 이루어진 콜로이드 용액의 바다 속을 잠항하는 잠수함에 탄 느낌이었다. 남자는 이미 가마에 익숙한 듯 편안한 자세로 풍경을 보고 있었지만, 그녀들은 아직 붙잡은 난간을 놓을 수가 없었다.
"오래 걸리나요?"
디지털퍼머가 몸을 약간 기울인채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물고 있던 파이프를 빼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시 입구까지는 금새 도착할거구요,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입니다. 얼마 안 걸릴거예요."
아닌게 아니라 가마는 사람들이 메고 걷는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뒤 편에서 차를 메고 오는 사람들 역시 가마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채 바람처럼 달리는 중이었다. 타고 다녀야 할 차를 어깨에 메고 뛰어 다니는 것을 보는 것은, 아무리 그녀들이 특수한 상황 하에서 겪는 일이지만 그리 평온한 기분으로 볼 만한 일은 아니었다.
"힘들이 장사세요. 무겁지도 않으신가 부죠."
웃음을 참으며 쇼트웨이브가 말했다. 남자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훈련 덕분이지요. 훈련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강아지를 두 발로 걷게 만들고, 곰이 접시를 돌리게도 만들잖습니까."
"험."
쇼트웨이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의 내용이 궁금하네요. 어떤 훈련이길래 사람들이 견인차로 변했을까요."
"별 거 없습니다. 시간나는 대로 달리고 들거나 ,혹은 들고 달리는 거지요."
남자가 방금 양치질을 마쳐서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잇바디를 드러내며 웃었다. 쇼트웨이브는 그의 웃음 앞에다 평범한 남자라면 심장이 멈출 만큼 매력적인 미소를 짧게 지어주었다.
"아까 말씀하신 목적지는 어딘가요?"
디지털퍼머가 물었다.
"아, 그 말씀을 안 드렸군요. 우리는 지금 시청으로 가는 중입니다. 그곳에 아가씨들께서 묵을 숙소도 있고 또 시장님도 계시지요. 당장은 아니지만 시장님도 뵈셔야겠구요."
남자가 꼬고 있던 다리를 풀더니 몸을 바로 세웠다.
"그러고 보니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시장님 곁에서 그 분의 사적인 용무나 집안 일을 맡아 처리해 드리고 있는 집사입니다. 하지만 간간이 비서직을 수행할 때도 있지요. 공무 수행도 한다는 뜻입니다. 시장님께선 비서직을 따로 두고 있지 않거든요."
"시장님이라면?"
"물론 제천시 시장님이시죠. 제천시를 총괄하시는 분이십니다."
디지털퍼머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군요. 제일 높은 분이신가 부죠? 선거로 뽑으시는 건가요?"
집사는 마치 그녀들이 시장의 명예에 구정물 폭탄이라도 투척했다는 듯이 질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선거라니요. 저희 제천시는 시장님이 만드셨어요. 터를 잡고, 기틀을 세우고, 제도를 정비하고, 인구를 모으는 모든 일을 그 분이 하셨습니다. 그 분 말고 누가 시장이 될 수 있겠습니까. 자연히 그냥 시장이 되신 거지요."
그녀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대단하시네요. 인구가 얼마나 되시는데요?"
"대략 만 2천명 정도 됩니다."
디지털퍼머가 애걔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생각보다 많진 않네요."
"아마도 아가씨들이 살던 세계에 비하면 작을 테지요."
"그럼 집사님은 시청 직원이세요?"
"아니요, 저는 말 그대로 집사일 뿐입니다. 사적인 고용원이지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공무는 가끔씩만 수행할 뿐이예요."
집사는 가마를 메고 온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들이 시청 공무원들이구요."
그녀들이 조금 놀랐다.
"정말이요? 무슨 공무원들이 가마를 메고 다녀요?"
디지털퍼머가 어이없다는 듯이 한마디 덧붙였다.
"교통과 직원들이신가부죠?"
집사는 또다시 파이프를 손바닥에 대고 두드렸다.
"아니요. 시민복지과 직원들이예요."
"시민복지과 직원들이 왜 가마를 메지요?"
"제일 할 일이 없으니까요."
집사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가슴 앞으로 손을 올려 처음 보는 것처럼 물끄러미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어느 부서가 시민복지과 보다 한가하겠습니까."
집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데 아가씨들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무의식적으로 디지털퍼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려 했으나 쇼트웨이브가 그녀의 옆구리를 치는 바람에 흠칫 멈췄다.
"숙녀한테 이름을 먼저 말하라고 하는 것은 실례죠. 집사님부터 가르쳐 주세요."
집사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세계에서 제일 맵다는 맥시코의 아바네로 고추를 타바스코 소스에 졸여 먹은 사람처럼 기침을 했다.
"제 소개는 한 걸로 아는데요. 특별히 제 이름을 부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모두들 저를 집사라고 부르니까요. 아가씨들도 집사라고 부르세요. 그게 편하실 겁니다. 저도 편하구요."
"아, 네.."
쇼트웨이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편한 호칭이 있는 것을. 집사셨군요. 우연히 저희들도 그런 호칭이 있답니다. 집사님께서 부르시기 편하게끔요. 저는 집 안사라고 불러주세요."
디지털퍼머가 웃음을 터뜨렸다.
"저도 소개해야겠네요. 저는 집 팔아예요."
잠시 집사가 그녀들을 노려보았다.
"무슨 얘길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아가씨들 이름으로 장난 칠 사람으로 보이시나요?"
쇼트웨이브는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얘기요? 저희는 아무런 얘기를 못들었어요. 여기선 이름으로 장난을 칠 수도 있나요?"
"예,예. 좋습니다. 저를 못 믿으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집사가 머리를 돌려, 땅을 스치듯 점프하여 넓이뛰기 세계 신기록이라도 세우려는 사람처럼 엄청난 거리를 한걸음에 가로지르지는 가마꾼들의 스텝을 바라보면서 투덜거렸다.
"제가 정말로 아가씨들을 집 안사,집 팔아 뭐 이렇게 부르길 바라시는 건 아닐테지요. 그러시다면 편의상 제가 호칭을 하나 짓도록 하겠습니다."
집사는 그녀들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디지털퍼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 아가씨께서 키가 좀 더 크시니까 큰 아가씨, 그리고 다른 분은 작은 아가씨라고 부르지요. 괜찮으시죠?"
쇼트웨이브가 집사가 하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편하시다면요."

말을 나누는 도중 일행은 카펫이 깔린 길을 거의 통과하여 골짜기 입구에 도착하였다.
골짜기의 입구는 장방형의 거대한 건축물로 완전히 틀어 막혀있었는데, 그것은 벌판에서 그녀들이 본 바로 그 건물이었다. 가까이서 본 건물은 커다랗고 위압적이며 육중한 석조판으로서, 지구의 등뼈 속에나 들어있을 단단한 웅회암 덩어리를 잘라서 축조한 것이었다.
석조 건물의 안 쪽으로는 세 개의 아치가 뚫어져 있어, 말 그대로 그 건물은 골짜기를 통과하는 문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건물의 외벽 쪽으로는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흙더미가 건물의 지붕, 그러니까 엔타블러쳐까지 덮여있어, 솔개가 아닌 이상 아치를 통과하지 않고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기란, 파라오가 모세를 쫓아 홍해를 건너는 것 만큼이나 난망해 보였다.
아치들을 만드는 4개의 지주와 균형을 이루는 것은, 지주의 앞쪽으로 튀어 나와 있는 4개의 기둥이었다. 이 기둥은 로보트 태권브이의 종아리 만한 사다리꼴 초석 위에 놓여 있었으며, 돌출된 기둥 위로는 입상 조각이 얹혀져 엔타블러쳐까지 솟아 있었다.
엔타블러쳐 위에는 어떤 미묘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 조각들이 돋을 새김으로 새겨진 옥상이 있었다. 중앙의 아치는 주요 아치로서 다른 2개의 아치보다 크고 넓었는데, 폭이나 넓이의 비율은 거의 동일해 보였다.
쇼트웨이브는 한 눈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개선문이로군요. 맞죠? 로마의 것인가요? 콘스탄틴과 비슷한데.."
집사가 놀랍다는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맞습니다. 이전에 보신 적이 있나요?"
"박물관에서 작은 모형으로 본 적이 있어요. 직접 보지는 못했구요."
"사실 똑같지는 않습니다. 로마의 것보다 좀 더 크고 좀 더 치밀하지요. 그 외에도 다른 점이 있지만..뭐, 굳이 아셔야 할 필요는 없으실테죠."
쇼트웨이브가 손가락으로 기둥을 가리켰다.
"어떤 것이 시장님이죠?"
"예?"
"콘스탄틴 개선문의 기둥에 있는 입상 조각들은 위대한 로마 장군들을 조각해 놓은 거라고 들었어요. 여기선 시장님께서 대단히 위대한 분이실테니 저 조각들 중 하나는 시장님일 것 같은데요."
집사가 쇼트웨이브를 쳐다보며 콧수염 끝을 만졌다.
"사실은 4개 모두 시장님입니다."
그러자 쇼트웨이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4개의 조각이 모두 달라보이는데요."
"아마도 너무 높이 있는 바람에 잘 살펴볼 수가 없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겁니다. 가까이서 자세히 보시면 모두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아실 거예요."
쇼트웨이브는 조각을 쳐다보았다가 다시금 집사를 보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디지털퍼머 역시 흥미가 생겨서 조각을 올려다 보았다. 다른 것 같기도 같은 것 같기도 했다.

가마가 아치 안으로 들어서자 붉은 색 카펫이 끝이 났다.
아치 안은 흡사 검은 동굴 같았는데, 넙치의 입 속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답답하게 이어지다가, 산호색의 희미한 빛으로 어른거리는 반대편 입구에서 끝나고 있었다. 입구까지는 짧은 거리임에도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고, 마찬가지로 낮은 것 같으면서도 높은 천정이 머리 위에서 휘어졌다. 양측의 홍예굽은 담벼락에 난 틈새처럼 좁게 느껴졌지만, 가마 서너개 정도는 들어갈 만큼 넓게 떨어져 있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헝클어진 원근감 때문에, 그녀들은 낙하산이 펴지지 않는 스카이 다이버처럼 불안감에 휩싸였다.
"잠시 멈추게."
가마가 멈췄다. 가마꾼들은 집사가 내리기 좋을 만큼 가마를 밑으로 낮추었다.
그는 난간을 넘어 가마에서 내리더니 카펫 끝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빈 파이프를 들어 마치 담뱃재를 털듯 카펫 위에 톡톡 손가락으로 두들겨,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터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만약 담뱃재가 떨어졌다면 바로 그 위에 떨어졌을 것 같은 부위에서부터 천천히 카펫이 녹아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변두리 삼류 극장에서 과열된 영사기에 필름이 녹아 눌러붙는 과정이 스크린에 영사되는 모습과 흡사했다.
연기도 나지 않고 불도 보이지 않았지만, 구멍은 마른 불쏘시개에 옮겨붙은 불똥처럼 카펫의 끝자락 전체를 삼켜버리더니 빠른 속도로 카펫을 잠식해 올라갔다. 녹는 부위는 카펫이 깔렸을 때 만큼이나 신속하게 벌판 쪽으로 번져가, 붉은 색으로 채색된 오솔길을 지우개로 지우듯이 카펫을 없애버렸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집사가 돌아와 제자리에 앉았다. 흔들거리며 또다시 가마가 올라갔고 덕분에 그녀들은 다시 난간을 붙잡아야했다. 가마가 출발하자 설명을 해주어야 할 의무라도 있다는 듯이 집사가 말했다.
"흔적을 없애야 하거든요."
"매우 인상적이네요."
쇼트웨이브가 대꾸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아치를 빠져나와 제천시로 진입했다. 붉은 달은 여전히 떠 있었으나, 사위는 벌판보다 한층 어두웠다. 그것이 밤이 깊어져서인지, 제천시의 모습이 원래 그런 것인지 그녀들은 알지 못했다. 무언가 황폐한 분위기가 주위를 메우고 있었다. 그것은 서늘하다기보다는 차가운 느낌을, 더 나아가 모공이 융기하여 털이 곤두설만큼 오싹함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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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6-08-11
접속일 2024-09-21
서명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태그
황진이-무료한국야동,일본야동,중국야동,성인야설,토렌트,성인야사,애니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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