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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0:05 368회 0건
“선아야, 일어나”
선아는 엄마가 깨우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그녀는 낮의 자세 그대로 누워 있었고, 엄마가 옆에 서 있었다. 창문 밖은 어둡게 변해 있었다.
“피곤하니? 그래도 밥 먹고 자!“
“엄마!”
선아는 왈칵 눈물이 나서 엄마의 품에 안겼다.
“왜 그래? 나쁜 꿈 꿨니?”
진아는 딸이 안정을 되찾았다 느꼈는데 그게 아닌 듯 했다. 지금도 매우 불안해하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무서워하지 마”
진아는 딸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나 쉽게 안정을 찾지 못하였다. 뭔가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선아와 함께 의사를 만나봐야겠어.’
진아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봐야 할 것 같았다. 선아는 엄마의 품에 안겨 절망했다.
‘엄마, 나 어떡해. 악귀가 내 몸에 달라붙었어. 악귀가 날 갖겠다고 했어. 하지만 엄마에게 말할 수 없어. 엄마가 슬퍼할 테니까. 그냥 나만 힘들면 될 거야. 나로 인해 엄마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나로 인해 엄마와 언니가 죽게 놔두지 않을 거야.’
선아는 만약의 경우 자살까지도 각오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각오가 되었다.
‘우리 가족은 반드시 지킬 거야’
선아의 몸의 떨림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마음을 독하게 먹자 몸도 안정을 되찾았다. 선아는 엄마의 품에서 떨어지며 쑥스럽게 웃었다.
“엄마, 미안... 갑자기 아빠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어.”
“아빠 꿈 꿨니?”
선아는 엄마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
“응, 아빠가 엄마 지켜주라고 신신당부하셨어. 그래서 내가 그러겠다고 했으니까 엄마는 아무 걱정하지 마”
“우리 딸 기특하기도 하지. 엄마가 아주 든든하구나.”
진아는 선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일 병원에 한 번 가보지 않겠니?”
“병원? 싫어. 그때 일은 잊어 버렸어. 그 일은 걱정하지 마.”
“그래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좀 나을지도 모르잖니. 한 번 의사를 만나보자.”
“엄마 딸 그렇게 약하지 않아. 딸을 좀 믿어봐!”
선아는 꿍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장난칠 때 짓는 표정이었다. 진아는 딸이 예전 그대로인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알았어. 그 대신 또 나쁜 꿈을 꾸면 의사를 만나보자. 알았지?”
“응, 그렇게 할게. 나 배고파. 밥 줘?”
“조금 있다 내려와. 밥 차려둘게”
“응!”
선아는 엄마가 방을 나가자 심호흡을 하고 악귀를 불렀다.
“여기 있나요?”
“그래”
선아는 혹시 없기를 기대했으나 대답이 들려왔다. 그녀는 굴하지 않고 당차게 말했다.
“우리 가족을 헤치지 않겠다고 약속해요.”
“네 가족을 헤칠 생각은 애초에 없었어.”
“확실히 하고 싶어요. 우리 가족을 헤치지 않겠다고 맹세해요.”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 신중한 대답이 들려왔다.
“네가 약속을 지킨다면 네 가족을 헤치지 않겠다고 맹세해. 그리고 내가 존재할 때까지 너를 지켜주겠어.”
선아는 지켜주겠다는 말에 상당한 무게감이 느껴져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러나 그런 자신을 꾸짖었다.
‘악귀의 농락에 놀아나면 안 돼. 결국에 나를 헤치려고 할 거야.’
그녀는 마음을 굳게 먹고 물었다.
“나를 언제 안을 거죠?”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떨렸다. 마음은 굳게 먹었으나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소중히 간직한 순결이 악귀에게 짓밟히는데 냉정할 수 있는 여자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예전에 좋다고 쫓아다니던 남자친구에게 처녀를 줄 걸 하는 후회까지 생겼다.
“글쎄... 네가 허락해줄 때까지 기다려주지.”
그녀는 황당했다.
“내가 당신을 허락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차라리 내가 잠들었을 때 강간하는 것이 어떤가요? 나도 모르게 당한다면 한결 마음이 편할 것 같군요.”
그녀는 악귀에 대한 불만이 쌓여 도전적인 태도로 대들었다.
“네가 잠들었을 때 지상계에 머물기 위해서 필요한 음기를 취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널 안겠다는 건 아냐. 말한 대로 네가 허락하지 않으면 영원히 널 안지 않을 거야.”
다소 의외의 발언이었다. 그녀는 이를 물고 늘어졌다.
“그 말 정말인가요?”
“그래. 맹세라도 할까?”
“하세요!”
“네가 허락하지 않는 한 영원히 널 안지 않을 것을 맹세하겠어.”
선아는 악귀가 쉽게 맹세를 해버리자 도리어 신임할 수 없었다. 악귀이니 거짓말도 쉽게 할 것이라 생각했다.
“당신은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건가요?”
“지금은 내 기가 약해 네가 없으면 지상에 머물 수 없어. 그래서 항시 너와 함께 있을 거야. 하지만 네가 원하지 않으면 나서지 않을 테니 걱정할 필요 없어.”
마치 그녀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대답했다.
“선아야. 내려와!”
선아는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마음 단단히 먹자.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와 언니에게 해가 없도록 지켜야해.’
선아는 굳게 다짐하고 방을 나섰다.
그런데 그녀는 모르고 있으나 그녀에게 달라붙은 색귀는 뭔가 이상했다. 아니 많이 이상했다.
본래 색귀란, 사악한 마귀로써 여인의 음정을 취하는 악독한 본성을 지녔다. 여인의 감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온갖 사악한 방법으로 여인을 취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약속과 맹세는 여인을 옭아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뿐, 구속력은 없었다. 그리고 한 명의 여자로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음정을 착취할 여자를 찾아 마력을 키우려고 한다. 그래서 사악한 마귀로 분류된 것이다. 일단 색귀가 붙은 여인은 음정이 고갈되어야만 색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즉, 죽어야만 자유를 찾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선아의 색귀는 여러 면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색귀와 많이 달랐다. 왜 그러한지는 알 수 없고, 그 이유를 설명할 방법도 현재로서는 없었다.
색귀는 선아와 하나가 되어 그녀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았다. 그녀는 계단을 내려가 주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곳에 성숙한 아름다움을 갖춘 여인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가 선아의 모친임을 그녀들의 대화를 통해 알고 있었다.
“맛있다. 엄마가 저녁밥 해주니까 너무 좋다”
선아는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이제 매일 해줄게. 엄마가 너희들에게 너무 무관심했었던 거 같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진아는 맞은편에 앉으며 맛있는 반찬을 몰아주었다.
“엄마는 지금까지도 잘 했어. 엄마가 우리를 위해 일하는 거잖아. 언니와 나는 엄마의 사랑에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구나. 그래도 이제 너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너희들만 괜찮다면 영화도 같이 보러 다니자.”
“나도 좋아.”
“그럼 말이 나온 김에 이번 주말에 엄마하고 영화 보러 갈까?”
“정말? 좋아. 무슨 영화 볼까?”
두 모녀는 식사를 하면서 주말에 볼 영화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선아는 색귀에 관한 일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선아는 식사를 마치고 거실의 티비 앞에 앉았다. 평소라면 방으로 올라가 공부하려고 하겠지만 색귀와 단 둘이 있고 싶지 않았다.
“티비 보려고?”
진아는 설겆이를 마치고 거실로 나오다 딸이 리모콘을 들고 채널을 고르는 모습을 보자 웃으며 물었다.
“응, 재밌는 드라마 있어?”
“네가 웬 일이니. 드라마는 아줌마들만 보는 거라고 구박할 때는 언제고 말야.”
“치, 내가 언제 구박했다고 그래. 엄마가 리모콘을 쥐면 안 놓으니까 그냥 해본 소리였어.”
“무슨 말이니? 엄마는 너희들이 볼 거 있으면 보라고 줬다. 엄마는 독재자가 아냐.”
“무슨 말을 못 해. 알아 모실 테니 엄마가 좋아하는 드라마 보시죠.”
“요즘에는 인연이란 드라마가 재미있어.”
선아는 엄마가 틀어놓은 인연이란 드라마를 보았다. 잘생긴 남자배우와 예쁜 여자배우가 기묘한 인연으로 만나며 아픔을 딛고 사랑을 확인하는 내용이었다. 다소 뻔한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드라마가 끝날 때쯤 언니가 왔다.
언니 민아는 한 살 많은 연년생으로 고등학교 1학년이다. 공부보다 음악을 더 좋아해서 엄마 몰래 야자를 빼먹고 콘서트를 보러 다녔다. 언니의 노래실력은 수준급이다. 언니가 노래를 부르면 그녀의 목소리에 모두 빠져들었다. 꿈이 가수라고 하는데, 노래를 잘하고 얼굴도 예뻐서 꼭 가수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밥 먹었니?”
“응. 티비 보는 거야?”
민아가 엄마 옆에 찰싹 붙어 앉았다.
“민아야. 이번 주말에 영화 보러 가기로 했는데 너도 같이 가자.”
“영화? 엄마랑 선아랑 가려고?”
“오랜만에 가족끼리 극장에 가보자.”
민아가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어쩌지. 나 이번 주말에 약속이 있는데... 다음 주에 가면 안 될까? 그때는 시간 비워둘게. 엄마, 그렇게 하자. 선아야, 괜찮지?”
“큰딸이 도움이 안 되네. 그래, 그럼 다음 주로 미루자. 선아도 다음 주말에 약속 잡으면 안 된다.”
“네.!”
세 모녀는 잡다한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민아가 먼저 쉬겠다고 방으로 올라갔다. 진아도 설거지를 하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선아는 멀뚱멀뚱 티비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색귀와 단 둘이 있을 것을 생각하니 무섭고 떨렸다. 이럴 때는 엄마와 함께 자면 좋을 텐데 색귀가 엄마에게 나쁜 짓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그럴 수도 없었다.
진아는 딸이 아직 거실에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오늘은 공부 안 할 거니? 엄마하고 같이 잘까?”
“아, 아냐. 공부해야 돼.”
선아는 약한 모습을 보일까봐 방으로 올라갔다. 책상에 앉아 교과서를 폈다. 그러나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나를 보고 있을까? 무섭다.’
부들부들.
선아는 공포심에 눌려 미세하게 몸을 떨었다. 그러다 문득 가족을 생각했다.
‘약해지면 안 돼.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엄마와 언니까지 위험해질지 몰라. 내 한 몸 망치는 걸로 끝내도록 막자.’
선아는 떨림이 멈추는 걸 느꼈다. 마음이 심란하지만 억지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다행히 색귀가 나타나지 않았다. 새벽 1시가 되자 슬슬 졸음이 쏟아졌다. 침대에 가서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색귀가 덮칠까봐 그러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잠시 눈을 붙인다고 생각한 것이 그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스르르륵!
그녀가 잠들자 방안의 공기가 흔들리며 그녀의 몸에서 색귀가 빠져나왔다. 뚜렷한 형체가 없이 투명해서 보이지는 않았다.
색귀는 잠시 잠든 선아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잠들면 그녀와 밀착해서 미세하게 방출되는 음정을 취해야 하는데 지금의 자세는 그게 힘들었다. 침대로 옮기려면 육신을 이뤄야한다.
“날 아주 힘들게 하는군.”
색귀는 정신을 집중해서 자연의 기운을 흡수해서 육체를 만들었다. 머리와 몸통, 팔과 다리가 생겨났다. 자신의 뜻대로 육체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색귀로 탄생된 순간부터 이미 정해진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이라서 본인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또한, 투명해서 볼 수도 없었다. 음정이 충만해져서 능력이 강화되어야 육체를 완전히 완성하게 된다.
‘다행히 인간과 닮은 모습이군.’
색귀는 육체를 움직여보고 인간과 비슷한 구조임을 깨달았다. 그녀가 덜 부담을 느낄 것 같아 안심하며 그녀의 몸을 안았다. 그리고 침대로 옮겼다. 겨우 3m도 안 되는 거리에 불과했으나 음정이 아닌 본래 타고난 기운을 소모해야 하므로 수명이 단축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힘을 낭비하면 수명이 단축되는 결과를 낫는다. 그럼에도 침대로 옮긴 것은 음정을 흡수하지 못하면 수명이 더욱 단축되기 때문이다. 그의 노력도 몰라주고 그녀는 다리를 쭉 뻗고 자고 있었다.
색귀는 그녀 옆에 누워 팔베개를 해주고 그녀를 안았다. 그녀가 그를 향해 돌아눕더니 품에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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