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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0:05 302회 0건
색귀는 옥상문을 벗어나면서 선아에게 육체를 넘겼다. 선아는 색귀의 멋진 활약을 보며 멋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이 미희와 그녀의 대결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잔뜩 모여 있다가 그녀가 내려오는 것을 보자 반응한 것이다. 선아는 자신이 한 일이 아닌데 모두 의문과 경악, 존경과 감탄의 시선으로 바라보자 얼굴이 빨개져서 황급히 희정이 있는 양호실로 뛰어갔다. 침대에 누워 있는 희정을 보자 울컥 눈물이 났다.
“희정아, 괜찮아?”
희정이 잔뜩 화난 표정을 짓는다.
“너 내 친구 맞아? 왜 지금까지 날 속인 거야.”
“소, 속이다니... 뭘?”
선아는 변명할 말이 궁색해서 소리가 작게 나왔다. 희정이 따진다.
“너 언제 태권도 배운 거야. 나한테는 그런 말 한 적 없었잖아.”
“나 배운 적 없는데...”
“너 정말... 끝까지 날 속일 거야. 난 우리가 비밀도 없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너랑 말도 안 할 거야. 나가.”
희정이 다시 얼굴을 보지 않겠다는 듯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이다. 선아는 색귀가 몸속으로 들어왔다고 진실을 말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친구의 화를 풀어줘야 해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희정아, 사실은 어렸을 때 태권도 배웠었어. 하지만 초등학교를 다니기 전의 일이야. 너도 알다시피 초등학교 때부터 너랑 항상 함께 다녔잖아.”
선아와 희정은 늘 함께 다녀서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희정도 선아가 태권도를 배우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친구가 갑자기 강해진 걸 납득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친구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궁색한 변명이지만 믿어주기로 했다.
“쳇, 순 거짓말하고 있어.”
선아는 희정의 표정이 풀린 걸 보고 안도했다.
“너 아주 대단하더라. 장미파 애들 때릴 때는 아주 대단했어. 내 친구지만 살짝 무섭기도 하고 하지만 아주 멋있었어. 나 너한테 반했다. 네가 남자친구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실망을 시켜드려서 미안하네요.”
“너 그냥 남자해라. 가슴도 납작하게 하고...”
희정이 가슴을 누르며 장난을 하자 선아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꺅, 무슨 짓이야.”
“성전환수술하면 내가 애인해줄게.”
“미쳤어. 저리 안 가.”
그녀들은 장난을 치며 떠들다가 양호선생님이 들어와서 크게 혼났다. 그러나 몰래 눈치를 보며 낄낄거렸다.
한편, 옥상에 미희 등 장미파가 모였다. 입술이 터진 등의 얼굴을 보며 모두 말이 없다. 나영은 독기가 잔뜩 올라 씩씩거렸다.
“그 년을 가만 두지 않을 거야.”
희주도 상당히 화가 나 있으나 선아에게 덤빌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우리 실력으로는 어렵지 않을까? 미희까지도 졌는데...”
“짜증나지만 확실히 우리보다 강해.”
혜수는 아직도 얼얼할 뺨을 만지며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희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화에 끼지 않고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나영은 힐끗 미희를 보고 말했다.
“용식이파를 끌어들이는 건 어떨까?”
희주가 눈살을 찌푸리며 미희의 눈치를 살폈다.
“너 미쳤어? 그 새끼가 순순히 도와줄 거 같아. 분명 여관방부터 가자고 지랄할 거야.”
“한 번 주자. 이대로는 억울해서 못 살아.”
혜수가 질색한다.
“미친 년. 난 싫어. 그 새끼들은 변태야. 짐승 같은 새끼들한테 돌림빵으로 당하고 싶은 거야. 난 절대 반대야. 그리고 미희도 싫어할 거야.”
미희가 전학 오기 전 장미파는 나영, 희주, 혜수 세 명이었다. 그녀들은 성깔이 사나워서 많은 사고를 일으키고 다녔다. 대다수가 그녀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피했지만 간혹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가 생겼다. 건드린 여자의 남자친구가 친구들을 데리고 찾아오는 경우가 그 중 하나였다. 그때는 그녀들로써 어찌할 방법이 없어서 캡짱 용식이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용식은 천부적인 싸움꾼이었다. 중2인데도 학교짱을 하고 있고 폭력배들이 찾아와 조직으로 들어오라고 설득할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폭력조직에 들어간다는 스스로 말하고 다녔다. 그녀들이 용식에게 도움을 청하면 그 대가로 의례히 여관으로 가서 몸을 바쳐야했다. 용식이 불러서 그냥 몸을 대줘야하는 경우도 많았다. 용식이 밑으로 들어가는 녀석들에게 몸을 대주는 경우였다. 용식은 그녀들을 걸레라고 불렀고 혜수는 그런 용식을 싫어했지만 곤경에 처하면 어쩔 수 없이 그를 찾아가 몸을 주고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미희가 전학을 오고 장미파로 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미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용식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고, 용식이 여관으로 오라고 통보해도 가지 않았다. 용식의 성격이라면 그녀들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갈 것인데 이상하게 미희를 보고는 순순히 물러났다. 미희가 강남 일대를 주름잡는 흑곰파 두목의 딸이라는 것을 용식의 입을 통해 듣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후로 그녀들은 미희라는 방패막이가 생겨서 용식이파에게 육체봉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나영이 다시 그 짓을 하자고 하자 혜수가 화를 내는 것이다.
나영은 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없고 막노동을 하시는 아버지가 술주정뱅이라는 이유 때문에 많은 놀림을 받으려 자랐다. 처음에는 울면서 아버지에게 말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잔혹한 아버지의 손찌검이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그녀의 울음소리에 화를 내고 때렸다. 가족과 친구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악이 받쳐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놀리던 남자아이의 다리를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남자아이는 마구 때렸으나 그녀가 떨어지지 않자 결국 울음을 터트렸고 지나가던 어른이 나서서 그녀를 떼어놓았다. 그 후로 남자아이는 그녀를 괴롭히지 못했고, 그때 그녀는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를 상대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것이 그녀가 깨달은 방법이고, 그 방법은 다른 아이들이 그녀를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그녀가 다른 아이를 괴롭힐 여유까지 생겼던 것이다.
나영은 미희가 장미파에 들어오고 흑곰파 두목의 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후로도 한참을 티격태격 다퉜고, 용식에게 여러 차례 미희를 강간하라고 종용했다. 미희가 그녀들과 동등한 친구의 신분으로 장미파에 가담하기로 하고서야 싸움을 멈췄다. 장미파에서 가장 조심하고 경계해야할 일순위가 바로 나영이었으니 그녀의 지랄 같은 성격은 아주 유명하다.
그러한 그녀가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뺨을 맞고 구타를 당했으니 그 아픔보다 더 큰 모욕을 견딜 수 없었다. 이대로 넘어간다는 건 그녀의 신조와 맞지 않는다.
나영은 미희가 싫어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물었다.
“미희야. 네 생각은 어때?”
미희가 나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넌 정말 어쩔 수 없는 년이구나. 자기 자신을 그렇게 초라하게 만들면서까지 자존심이 중요하냐. 걸레처럼 남자한테 보지를 벌리는 것이 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는 걸 인식조차 못하냐. 시간이 지나면 변하겠지 싶었는데 네 썩은 기준은 정말 변하지 않는구나. 더 이상 상종 못하겠다.’
미희는 나영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소곳한 범생이 타입이 아니어서 장미파에 들었으나 할 일 없이 놀고 다른 애들을 협박, 구타하는데 환멸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래도 이 학교에 와서 처음 사귄 애들이라서 같이 다녔지만 이제는 밥맛이었다.
“하려면 너 혼자서 해. 다른 사람 끌어들이지 마.”
미희는 그 말만 하고 옥상을 나갔다. 반대했던 혜수도 얼른 따라갔다. 나영은 아직 남아 있는 희주를 보았다. 그녀 둘은 항시 붙어 다니는 죽이 잘 맞는 오랜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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