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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0:05 550회 0건
“쩝, 처음 치고 너무 무리했다. 그녀를 만나는 시간이 늦어지겠군.”
흔적 없이 사라졌던 남자의 육신처럼 목소리도 바람에 실려 사라졌다.
한편, 선아는 꽃길을 지나 사람들이 많은 거리로 나오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싶어 뒤를 보았으나 쫓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옷이 심하게 구겨지고 단추마저 뜯어져 붙잡고 있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자 왈칵 눈물이 나오려 했다. 그러나 주변에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자 고개를 푹 숙이고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남자들과 마주칠 때마다 움찔움찔 떨면서 겨우 집에 도착했다. 그녀의 집은 이층의 단독주택이고, 정원은 크고 넓었다.
“선아니?”
폰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선아는 비로소 안도하였다.
“네, 저예요. 얼른 문 열어주세요”
“너 목소리가 왜 그러니? 어서 들어와라!”
벨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리자 황급히 들어가 문을 꽝 하고 닫았다. 집문이 열리고 엄마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
선아는 엄마한테 달려가 안겼다.
“선아야. 무슨 일이야? 왜 그러니?”
“흑흑흑흑!”
진아는 딸이 하염없이 울음을 터트리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구겨진 옷, 그리고 그녀의 품에 안기느라 벌어진 상의와 살포시 드러난 유방 등이 그녀의 예감을 더욱 부추겼다.
‘설마 이 애가...’
진아의 마음도 두려움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혼란스러워하는 딸부터 안정시켜야 했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진아는 딸을 꼭 안아주고 위로했다.
선아는 엄마의 따뜻한 체온에 차츰 안정을 찾았다. 남자의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음을 느꼈다. 이제 엄마가 그녀를 지켜줄 터였다.
“엄마!”
선아는 아직도 눈물이 담겨 있는 눈으로 엄마 진아를 보았다.
“일단 들어가자!”
진아는 딸이 뭔가를 말하려 하자 다독거리며 집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혀주고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이것부터 마셔!”
선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우유를 마셨다. 몸이 따뜻해지나 긴장이 완전히 풀어졌다.
“어떻게 된 일이니?”
진아는 바짝 긴장해서 딸의 입술을 보았다. 곧 터져 나올 일들에 대해 놀라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어떻게든 선아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나 집에 오는 길에 치한을 만났어!”
‘아...’
진아의 눈이 심하게 떨렸다. 딸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예상되었다. 뭐라고 위로해야 할까? 어떻게 딸의 마음을 달래주어야 할까?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선아는 울고 있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 울지 마세요. 위험한 일을 당했지만 엄마가 생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사실은 누군가 절 도와줬어요.”
“오, 정말이니? 하느님, 감사합니다.”
진아는 왈칵 눈물을 쏟으며 딸을 꼭 끌어안았다.
자신의 딸에게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남편이 죽고 사업에 매진하느라 한동안 얼굴도 제대로 못 봤던 딸들이었다. 그럼에도 아주 잘 자라준 것이 못내 고맙고 미안했다. 만약 선아가 큰일을 당했다면 그녀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남편이 죽은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충격이 예고됐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봐라!”
진아는 약간 안정을 찾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선아는 조금 전의 상황을 생각하자 다시 무서워져 몸이 떨렸다. 진아는 더 꼭 안아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지켜줄게”
선아는 한참이 지나서야 떨림을 멈추었다.
“엄마, 나중에 말하면 안 될까? 무서워서 말 못 하겠어”
그 끔찍한 상황을 다시 생각하기조차 무서운 선화였다. 진아는 딸이 그 무서운 상황을 빨리 잊기 원했다.
“그래. 말하지 마. 오늘은 엄마하고 자자!”
“그래도 돼? 고마워 엄마!”
“엄마랑 같이 목욕하자!”
“응!”
두 모녀는 곧 알몸이 되어 욕실로 들어갔다. 선아는 샤워를 하다가 남자의 손길이 뱀처럼 지나갔던 것을 생각하자 그 흔적들을 전부 씻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비누칠을 하며 씻고 또 씻었다. 그 모습을 본 진아는 뭐라 말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저 고통을 자신이 대신 지고 싶었고, 딸을 공격한 괴한을 갈가리 찢어죽이고 싶었다.
“그만 씻어도 돼. 넌 깨끗해!”
진아는 쉬이 멈추지 않는 선아를 붙잡았다.
“그 남자가 내 몸을 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 기분을 씻어내고 싶어!”
선아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유방을 계속 비누칠로 닦아냈다.
“그만, 그만해. 넌 누구보다 깨끗한 내 딸이야”
진아는 혼란스러워 하는 딸을 끌어안았다. 선아는 포근한 엄마의 품에서 안정을 찾았다.
“엄마, 나 깨끗하지?”
“그럼, 잠깐 악몽을 꾼 것뿐이야. 다시 그런 꿈을 꾸지 않도록 엄마가 지켜줄게”
두 모녀는 목욕을 끝내고 안방의 침실로 갔다.
딩동!
벨소리가 들렸다. 민아가 돌아온 모양이다. 가뜩이나 막내딸로 인해 민아의 늦은 귀가마저 불안하던 진아는 안심하며 폰으로 민아를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왜 이렇게 늦게 오니!”
진아는 민아에게 화를 냈다. 민아는 어리둥절했다.
“야자하고 온 거야”
“앞으로 야자하지 마”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진아는 흥분해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쓴 것을 알고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말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 올라가서 쉬렴. 선아는 오늘 엄마하고 잘 거야”
“엄마하고? 나도 같이 잘래.”
민아는 오랜만에 어리광을 부렸다. 그러나 진아는 잘라 말했다.
“네 동생이 많이 힘들어해서 그래”
“왜?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인데 그래?”
진아는 힐끗 안방을 보고 작게 말했다.
“조용히 하고 들어. 네 동생이 오는 길에 치한을 만나서 지금 매우 힘들어해. 다행히 누군가 도와줘서 큰일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혼란스러운 모양이더구나. 그러니 오늘은 네가 이해해주렴”
민아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 하다가 급히 입을 막고 작게 말했다.
“치, 치한? 어쩌다가... 선아 괜찮아?”
“그래, 괜찮아. 놀란 것뿐이야. 괜히 물어보지 말고 그냥 모른 척 하도록 해. 알았지?”
“응, 알았어. 난 올라갈 테니 어서 선아한테 가봐”
민아는 동생이 걱정되어 엄마에게 얼른 들어가라고 말했다.
“그래, 그럼 씻고 자라”
진아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선아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그녀가 침대로 올라가자 선아가 아기처럼 그녀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언니한테 말했어?”
“어? 응”
“언니 놀랬지?”
“너보다 더 놀랐겠니. 어서 자자”
“우리 엄마 품 너무 따뜻하다. 매일 이러고 자고 싶어”
선아는 엄마의 허리를 꼭 안았다.
“그래, 매일 이러고 자자!”
선아는 너무 긴장한 탓인지 쉽게 잠들었다. 진아는 잠든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딸을 구해준 은인에게 감사하고, 치한을 저주하며,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켜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애들에게 너무 무심했어. 이제 회사도 안정적으로 돌아가니 일을 줄이고 일찍 들어와서 애들과 시간을 보내야지’
진아는 딸이 당한 고초를 생각하자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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