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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0:06 334회 0건
글 : 타케우치 켄
번역 : 초코퍼지
하렘 성(Harem Castle)

제 1장 그리운 날들..

"치고 들어오는 게 얕아!"

날카로운 고함과 동시에, 빠져들 듯한 푸른 하늘로 목검이 풍차처럼 회전하며 날아올랐다.

대륙의 서쪽에 있는 요새도시국가군의 하나인 이슈타르 왕국. 그 왕성의 교외에 있는 연습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대지에 엉덩방아를 찧은 소년 견습기사는, 자신의 손에서 날아간 무기의 행방을 눈으로 쫓았다. 메마른 소리를 내며 멀리 떨어지는 목검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정면을 바라보자, 눈 앞에는 암갈색 긴 생머리와 눈동자의 여성이 목검을 한손에 굳게 잡고 당당하게 서있었다.

여자치고는 상당한 장신이다. 날씬한 긴다리에 꼭맞는 은색의 플레이트 부츠, 허리에는 간단한 은색 요갑(腰甲), 가슴에는 은색 브레스트 플레이트(breast plate), 은색 건틀릿(Gauntlet)을 장비하고 있다.

탄탄한 양 팔과 허벅지, 그리고 복부, 급소라고 할 수 있는 부분까지 대담하게 드러낸 너무 노출이 많은 무장(武裝)이지만, 일견 무방비하게 보이는 곳도 마법석에 의해 방어되고 있기에, 결코 약점이라고는 할 수 없다.

경전사 타입의 여기사로서 이상적인 기능미와 절제된 아름다움을 갖춘 그 모습은 잘 벼려진 한자루의 장검과 같아 [은색의 발키리]라는 별명이 잘 어울렸다.

단지 곧게 뻗은 콧날과 갸름한 눈매의 섬세한 용모와 용맹한 표정이 다소 언밸런스하다.


"필릭스, 싸울 땐 무기를 놓치지마! 그러고도 그 모습을 무방비하게 멍청하게 지켜보고 있다니 말도 안되는 짓이야! 죽고싶은 거냐! 빨리 일어나!"

이 격노한 여기사의 이름은 우르슬라라고 한다. 소년은 그녀의 종자였다.

견습기사는 기사단장의 곁에서 종자가 되어, 시중을 들면서 기사로서의 마음가짐과 일상 생활을 배운다. 그 관계는 스승과 제자와 마찬가지다.

현재 필릭스는 이 아름답고도 늠름한 로드(Lord)에게 직접 수련을 받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서둘러 일어선 제자는 맨손이었지만, 용맹한 스승은 그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목검을 휘둘렀다.

두사람의 기량차는 확연했다. 거기다 무기까지 잃은 상태에서 승부가 될리가 없다. 그런데도 전혀 봐주는 기색 없이 연격을 가해왔다.

가냘픈 소년은 필사적으로 피하려했지만, 결국 몸전체를 얻어맏고,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그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의 얼굴을 밟았다.

"쉬지마! 전쟁터에서 만난 적은 나만큼 무르지 않다!"

얼굴을 밟힌 굴욕감으로, 소년은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겨우 일어났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거기다 쉴틈없이 연타가 몰아쳤다. 암호랑이에 쫓기는 가련한 작은 동물이 몇번짼가 넘어졌을 때, 우연히 손을 짚은 곳에 좀 전에 잃어버린 목도가 만져졌다.

이렇게 되자, 흔히 말하는 최후의 발악을 했다. 다 죽어가는 것처럼 헐떡이면서도 무기를 쥐고 일어서 공격해 오는 쪽을 향해 혼신의 일격을 휘둘렀다.

"우아아아앗!"

타악하는 소리와 함께 목검이 맞부딪혔다. 그리고 가냘픈 체구의 소년이 날려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제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기억이 끊겼다. 정신을 차리자 눈 앞에는 늠름한 여성이 위에서 걱정서러운 얼굴로 내려보고 있었다.

"괜찮니?"
"…… 응"

여성의 얼굴을 커다란 유방의 계곡사이 너머로 올려다보는 것은,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었다.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을 보아, 아무래도 무릎베게를 해주고 있는 것 같다.

최고의 베게의 감촉도 기분좋았지만, 고된 훈련중에 그녀도 땀을 흘렸다. 그 상큼한 체취가 풍겨와, 이렇게 안겨있는 것이 묘하게 행복했다.

"왜 그래?"

눈을 떴지만, 아직도 멍한 눈을 하고 있는 제자에게, 스승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르게 상냥하게 미소지으면서, 뺨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우르 누나는 역시 굉장한 미인이라고……"
"바,……바보"

소년 견습 기사의 진지하고 직설적인 말에, 다부진 여기사는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그 표정엔 수줍음이 엿보였다.

"그리고 지금은 기사단장이다"
"죄송합니다."

우르슬라 쪽이 열 살 정도 연상이지만, 같은 왕국 기사 가문 출신으로서 두 사람이 알고 지낸 지는 오래되었다.

형제가 없는 필릭스는, 그녀를 [우르 누나]라고 부르며 따랐고, 우르슬라도 친밀감을 담아 [필리] 라고 부른다. 기사와 종자가 된 지금도, 단 둘일 때는 애칭으로 서로 부르는 일이 있다.

"좋아! 이제 괜찮은 거 같네."

은빛 전투의 여신은, 소년의 겨드랑이 아래에 손을 넣어 일어켜 세웠다.

그리고, 마주 보고 서서, 허리를 굽혀 서로의 시선이 같은 높이가 되도록 맞추었다.

수저으로 만들어진 듯한 투명하고 아름다운 얼굴이 가까이 닿은 사춘기의 소년의 심박수는 자연히 빨라졌다.

서로의 코끝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우르슬라는 파안했다.

"마지막에 받아 친건 좋았어. 앞으로도 그렇게 힘내라."

필릭스의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헝크러ㅤㅈㅕㅅ다.

"잠깐 쉬자. 얼굴을 씻고 와."
"수고하셨습니다!"

허락을 받은 소년은 만신창이가 되어 비틀거리는 몸으로 연습장 바로 옆에 흐르는 시냇물까지 걸어갔다.

초여름이다. 햇살은 따스하고 부드럽다. 상공에는 매가 춤추고, 시냇물에는 송사리가 헤엄치고 있고, 작은 돌 위엔 개구리가 올라 앉아 있었다.
"아야야, 우르 누나는 진짜로 봐주질 않는다니까……"
그토록 무지막지하게 얻어맞았는데도, 타박상이나 멍,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은 기절해있는 동안 우르슬라가 마법석을 이용해 치료를 해줬기 때문이 틀림없다.

또, 막무가내로 두들겨 패는 것 같아도, 마법으로 치유할수 없을 정도의 큰 부상은 당하지 않도록, 분명히 적당히 수준을 맞춰주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계까지 혹사 된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차가운 물에 손을 담가, 촤악촤악 얼굴을 씻고, 가지고 있는 수건으로 닦았다. 그러면서 아무 생각없이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 보니, 초록색 융단같은 풀밭 끝에, 하얀 바탕에 금테가 둘러진 화려한 마차가 보였다.


무슨 일인지 수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지친 몸을 나무에 기대어 가을 바람이 실어오는 풀꽃의 냄새를 즐겼다. 별 생각없이 구경하고 있으려니, 마차에서 두명의 여성이 내려섰다.
 
한 사람은 빨간색 원피스, 다른 한명은 짙은 남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윗사람인지, 검은 여성은 반 발짝 뒤로 물러서 있다.
하지만, 그 둘중 누구도 마차의 주인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머리에 하얀 머리띠를 하고, 앞에는 프릴이 달린 에이프런을 하고 있었다. 즉, 전형적인 메이드 차림이기 때문이다.

분명 기사단장에게 용건이 있어서 온 것일 거다. 막사 안으로 안내할 생각으로, 필릭스는 지친 몸을 일으켰다.

그녀들은 망설임없는 발걸음으로 다가와, 소년의 앞에 멈쳐 섰다. 그리고, 빨간 옷의 여성이 정중하게 물어왔다.

"귀공이 왕국기사 가문 질베르트의 적자 필리스공이십니까?"
"아, 네. 접니다."

설마 자신에게 용건이 있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못했던 소년은 깜짝 놀라, 목소리가 흥분해 버렸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원피스의 여성이, 마차쪽을 향해 양손을 머리위로 크게 들고 원을 만들었다.

맞았다던가, OK라던가 하는 신호일 것이다. 마차 안에는 아직 사람이 남아있었다. 아마도 그녀들의 주인이 틀림없다. 하인이 타고 다니기에는 너무 호화로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상당히 상류계급일 것이다.

붉은 메이드는, 빨간 눈동자로 소년을 훑어 보았다. 일종의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여성이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 은발에 붉은 눈. 여성 치고는 키가 크고, 자세가 당당하다. 빛나는 은색의 풍성한 머리카락을 메이드 캡으로 꽉 묶고 있어, 약간의 강풍으로는 흔들릴 것 같지 않다.

복장은 주름 한줄 없이 빳빳하게 다려져, 깔끔하고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퍼프 슬립의 어깨깃은 초여름답게 반소매, 가슴에 보이는 하얀 드레스 셔츠는 멋진 리본으로 매듭져 있다.

복장이나 머리 모양 뿐만 아니라 행동거지에 있어서도, 전혀 틈이 없는 지성적인 미모는 일을 잘하는 여성이라는 것을 외견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메이드라기 보다도, 수완 좋은 문간같은 인상이다.

필릭스는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반항하지 않는 편이 몸에 좋다.
비위에 거슬렸다간, 폭력같은 직접적인 위험이 아니라, 훨씬 교활한 수단으로 제거당할 것 같다.

별로 거리낄 이유는 없지만, 그녀와 마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왠지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느낀 소년은 시선을 내린다.

원래 그녀 쪽이 키가 크다. 소년의 시선은 눈 앞에 있는 거녀의 가슴에 멈췄다.

(크, 크다……!)

빈틈없이 깔끔하게 차려 입은 메이드복의 밸런스를 무너트릴 정도로, 가슴팍이 크게 부풀어 올라 있다. 옷 사이즈가 작은 것은 아닐테지만, 정면에서 보니 몸 양쪽으로 벗어날 정도로 너무 불편해 보인다. 가슴 속에 커다란 과일이라도 두개 숨겨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무심코 얼굴과 비교했다. 그 무서운 분위기를 풍기는 지성적인 미모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의식하면서 차분히 보니, 허리는 가늘고, 둔부는 충실한 풍만한 육체의 소유자다. 일을 위해 사는 여자로서 본인 나름대로 색기를 숨기고 있을테지만, 숨길 수 없는 성숙함이 느껴진다.

분위기도 좋고, 거유도 좋다. 여러기지 의미로, 보통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하얀 에이프런에 수 놓아진 [일곱 잎의 단풍]의 문장을 본 순간 필릭스는 납득했다.

그 문장은 이슈타르 왕국의 문장. 즉 그녀는 왕가의 메이드다. 그런 메이드니 몸가짐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녀들 중에서도 선발된 엘리트. 본인도 그에 대한 자부심을 충분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귀족의 서열에 포함되기는 해도 작위가 없는 왕국기사가문의 적자 따위 보다는 훨씬 세속적인 지위가 높다.

"그렇군요……과연 닮은 데가 있어요."

붉은 색 메이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서 수행하고 있던 검은 메이드도, 흥미롭게 소년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듯 하더니, 갑자기 소리쳤다.

"귀, 귀여워!"

필릭스는 몸을 떨며 반사적으로 반발짝 물러섰다.
짙은 남색 원피스의 여성은 나이는 아직 스무살이 안된 것 같다. 나이가 어려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붉은 메이드에 비교해, 관록이 전혀 없다.

얼굴 생김새만으로는 만인이 인정할 흠잡을 데 없는 미인이지만,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져 있는 것 같은, 느슨한 표정을 하고 있다.

머리 위에 자리한 메이드 캡은 머리카락을 묶는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옅은 밤색 장발을 바람에 흩날리게 하고 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하얀 피부, 전체적으로 색소가 적은 어딘지 버드나무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울 듯한 몸이었다. 가슴도 나이에 어울리게 부풀어있지만, 곁에 있는 폭유 누님이 있으니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우후후, 여자애 같은 얼굴. 홍안의 미소년이구나~♪"

실없는 미소를 띤 시녀의 손이 소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견습기사를 하고 있다고 해도, 연령적으로 골격이 완성되지 않은 필릭스는, 근육도 그다지 드러나지 않은 날씬한 몸매에 키가 크다고도 할 수 없어 중성적인 느낌이다.

그 모습이 연상 여인의 모성본능이나 성욕을 절묘하게 자극한다. 여러가지 의미로 귀여워해주고 싶은 타입의 소년이었다.

"아~잉, 한눈에 반해버렸을지도♪"

한가로운 메이드는 당장이라도 군침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필릭스의 머리카락을 뒤죽박죽으로 헝클였다.

"사샤, 무례합니다."

사샤라 불린 누나는 붉은색 여성의 조용한 일갈을 받아 손을 내렸다.

"사죄하세요."
"죄송합니다."

놀랖게도 사샤는 바로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필릭스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곤혹스러워진 소년과는 상관없이, 무서운 누나도 역시 땅에 업드려 정중하게 사죄를 했다.

"죄송합니다. 거슬리셨다면, 이 아둔한 아이를 죽여 주십시오."
"아뇨…… 그런. 죽이라뇨, 펴, 편하게 대해주세요."

(역주: 원문에선 無礼打- 일본 봉건시대엔 무사에게 무례를 범한 백성을 그 자리에서 베어죽이는 풍습이 있었죠.)

왕궁 시녀라고 하는 것은 기사라든가 견습 기사에 편견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 정도의 일로 죽이다니 있을수 없는 일이고, 하물며, 필릭스는 아직 전쟁에 나가 사람을 죽여본 적도 없는 견습기사이다.

"너그러움을 베풀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빨간 옷의 메이드가 일어나고, 검은 옷의 메이드도 따라 일어났다. 놀랐던 건지, 사샤의 눈에는 눈물까지 맺혀있다. 그리고,

"너, 상냥하구나. 누나, 감격했어♪"

젊은 메이드는 지나칠 정도로 기뻐하며 소년을 끌어안았다.

신장의 차이 때문에, 필릭스의 얼굴은 사샤의 가슴 계곡에 파묻혔다.
좌우에서 뺨을 부드럽게 압박해 오는 푸딩같은 부드러운 살덩이의 감촉에, 놀라고 당황한 필릭스가 도망치려고 했지만, 뒷통수를 꽉 붙잡은 가녀린 손의 힘은 의외로 강했다.

"자, 잠깐만요, 그만하세요."

물론, 여성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것은 첫경험이다.

외아들이라, 여성에게 면역이 없는 소년은 그녀의 어디를 잡고 밀쳐야 좋을 지 알지 못해, 손을 버둥버둥 거렸다.

아니면, 콧속을 가득 채운 젖냄새나, 얼굴 전체에 느껴지는 따스함에 기분이 좋아 힘이 빠져 생각한 것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예쁜 누나의 가슴 속에서 허둥지둥거리고 있는데, 이런 타이밍에는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필릭스, 뭐하고 놀고 있는 거지!"

늠름하면서도, 불쾌감이 배어있는 목소리만으로 정체를 알 수 있다.

"단장, 아닙니다. 이건!

부드러운 여성의 가슴에 질식 할 것 같은 중에도, 필릭스는 필사적으로 변명을 하며, 양손으로 사샤를 밀쳐내려 했다.

"아앙♪ 그렇게 강하게 주무르면~ 색마♪"

머리위에서 들려오는 달콤한 목소리. 당황한 소년은, 양손으로 그녀의 젖가슴을 꽉 붙잡고 있었다.

"으학, 죄송합니다."
"우후후, 귀여워♪ 너라면 내 가슴, 얼마든지 만져도 좋아. 주물럭주물럭♪"

"아뇨, 그런……주무르다니, 게다가 우리는 처음 만났고, 이런 건……"

존경하는 상사의 질책에 겁이 난, 그리고 처음 느끼는 여체의 감각에 매료당한 소년은 혼란스러워만 할 뿐, 가슴 계곡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유방을 잡은 양손을 뗄 수도 없었다.

"……쯧."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고, 노기를 띤 인영이 성큼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필릭스의 뒤에서 옷깃을 잡고, ㅤㅈㅓㄼ은 시녀의 팔 속에서 강제로 끌어냈다.

"으앗!"

견습 기사 소년은 초록색 잔디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픔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자, 거기엔 예상대로의 인물이 그를 지키듯이 서 있었다.

"우르 누나……"

암갈색 머리카락을 한 기사단장은 일어 선 소년을 아무 말 없이 보호자로서 등뒤로 숨겼다.
필릭스는 무의식중에, 무섭지만 의지할 수 있는 여기사의 허리를 끌어 안고 있었다. 우르슬라는 그런 그를 나무라지 않고, 낯선 치입자들에게 날카로운 안광을 발했다.

"왕궁시녀가 연습장에는 무슨 용무인가?"

귀여운 동생같은 아이를 희롱당한 우르슬라는 마치 조용히 분노하는 암호랑이같았다.

필릭스는 알고 있었다. 이 기사단장은 아름다운 얼굴과는 정반대로 철저한 맹장 기질이라는 것을. 맘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이 나간다. 아무리 상대가 왕궁 시녀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서는 때려눕힐 수도 있다.

사샤는 겁을 먹었지만, 중후할 정도로 지성적인 시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실례지만 귀공은?"

여기사가 비우호적으로 딱딱한 목소리였기 때문인지, 대답하는 왕궁 시녀의 목소리도 냉담했다.

서로 이름도 밝히지 않았는데, 상성이 최악인 듯 하다.

"왕도방위기사단 소속의 제 12소대 [포효하는 익룡] 대장 우르슬라. 견습기사 필릭스는 나의 종자다."
"호오. 그렇다면 귀공이 그 성기사 우르슬라공이었습니까? 용명은 예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빈말은 필요없다. 이쪽은 이름을 밝혔으니, 그쪽도 이름을 대라."

날이 선 여기사와는 대조적으로 빨간 시녀는 스커트 깃을 잡고 우아하게 인사를 돌려주었다.

"이거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글로리아나 비 전하를 모시고 있는 시녀 루이즈 크림힐트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수상하게 상대를 보고 있던 여기사였지만, 확연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크림힐트?"

상관의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한 종자가 불가사의하다는 듯 올려다 보았다.

"왕비 글로리아나 전하의 친가다."
 
설마 자매를 시녀로 거느리고 있을리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왕비가 동족으로서 친가에서 데려 온 신뢰가 깊은 가신이 틀림없다.

얼마 전, 긴 투병 생활을 하고 있던 국왕 로겐하이드가 서거했다. 그 다음 왕위를 어떻게 하는가로 중신들 사이에 암투가 있는 듯 하다.

국왕의 처이자, 명문 크림힐드가 출신인 왕비 글로리아나를 옹립하자는 일파와 국왕의 친동생이자, 무용으로 명성이 높은 히르메디스를 옹립하자는 일파가 있다.

우르슬라는 이슈타르 왕국기사가문 치고는 이르높은 무문 출신이다. 실력도 있고 운도 좋아 무공도 많이 세운 덕분에 젊은 여자의 몸이면서도 이례적인 속도로 기사단의 일익을 맡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고작 기사 스물다섯명을 지휘하는 분대장에 지나지 않는다. 결코 왕위계승문제에 참견할 입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인의 몸이기에 얼굴이 예쁜 걸 빼면 장점이 없는 귀족 아가씨보다는 무용이 높은 왕제 히르메디스를 심정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왕비를 모시는 시녀가 여기에 무슨 일인가. 여기엔 정쟁의 도구가 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어."

무와 문 분야는 다르지만 왕국 굴지의 유능한 여성들. 하지만, 첫인상으로서 서로 이녀석과는 마음이 안맞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노골적으로 빈정거리는 우르슬라에게 루이즈는 냉소로 보답했다.

"무슨 말슴을 하시는 건지. 이슈타르 왕국은 굳건한 반석과도 같습니다. 정쟁따위가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이번에 왕비 글로리아나 전하가 이슈타르 왕국 제 7대 국왕으로서 즉위하시게 되었습니다."

"……뭐? 그게 정말인가?"

왕비를 모시는 시녀가 이렇게까지 단언하는 것다. 어떤 사전 교섭이 있었는지 재상 캔버라를 후견인으로 왕비 글로리아나의 즉위가 결정된 것 같다.

눈을 치뜬 우르슬라에게 루이즈는 정중하게 계속했다.

"그래서 신여왕 즉위식의 의식으로, 견습기사가 여왕께 검을 바치고 정식으로 기사로 임명되게 되었습니다. 그 역할을 필릭스경에게 맡기려고 하는 것이지요."

어때, 불만이 있으면 말해봐라, 라고 말하고 있는 재원의 얼굴을 묵묵히 보고 있던 무뚝뚝한 여인은 이윽고 뺨을 붉히며, 깊히 고개를 숙였다.

"굉장히 명예로운 일입니다. 그러한 중임을 맡은 자가 우리 부대에서 선택된 걸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일단 필릭스의 상관으로서 본인을 대신해 감사를 드립니다."

사자를 대하는 개인적인 호오는 문제가 아니다. 대대로 왕국을 섬겨온 가신으로서 충성심이 가득한 우르슬라는 이러한 영예로운 일에 자신이 손수 돌보고 있던 기사가 선택되었다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감동으로 떨리는 여기사와는 대조적으로, 수완가인 시녀의 얼굴은 냉담했다.

"그러면, 세세한 사항은 나중에 다시. …… 가죠. 사샤."

아직까지 미소년에게 미련이 남은 얼굴을 하고 있는 부하를 재촉해 루이즈는 마차로 돌아갔다.

   ※

"신왕의 즉위식에서 기사서임을 받는 건 자손 대대로의 영광이다."

여왕의 대관식에 있어서의 축하의식으로서, 신왕에게 가장 먼저 검을 바치고 영원한 충성을 맹세한다. 그리고 기사의 칭호를 받는 것이다.

무사하게 마치면, 그것만으로 여왕의 기억에 좋은 인상을 주어, 출세가 빨라질지도 모르고, 필릭스의 가족은 물론 친척들 전체가 축하할 일이다.

즉위식까지 일개월 그것은 마치 폭풍과도 같은 날들이었다.

물론 필릭스의 상사이자, 지금까지 누나처럼 보살펴 준 기사단장 우르슬라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그리고 즉위식 전날 밤
필릭스나 그의 친족들에게는 기사서임의 전날 밤

기사가 된다고 하는 것은 국가에 생명을 바치는 일이다.
성당에서 성수를 끓인 뜨거운 물로 씻어 세속의 때를 말끔히 씻어내야 한다. 이때 견습기사의 등을 기사단장이 밀어주는 것이 관례였다.

어느 의미로, 친자식 이상의 정을 가진 사제지간 최후의 스킨쉽. 알몸이 되는 것으로, 성장을 확인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우르누나와 단 둘이 목욕탕에 들어가는 건가……"

상상하는 것만을, 필릭스의 뺨은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남자기사는 알몸이 되지만, 여기사는 욕의를 입는 것이 상식이다. 우르슬라도 분명 수건을 감던가, 욕의를 걸칠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좁은 밀실에서 단둘이 되는 거다.
아무리 수건을 가슴에 감고 있다고 해도, 어쩌다가 우연히 벗겨질 지도 모른다.

신성한 의식의 하나다. 이상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묘한 기대로 가슴이 뛰었다.

알몸이 된 필릭스가 성당의 욕탕에 들어가니, 이미 우르슬라가 있었다.
-------------
새로운 글입니다. 여러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만, 여하튼 올립니다.

이전의 "해적", "여왕의 오욕" 등과 같은 세계관, 다른 나라입니다.

끝까지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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