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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립스틱* - 4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22:44 560회 0건
*검은 립스틱*거실 안을 살피던 김도식이 소파로 가서앉았다. 침실로 들어간 엘리츠 킴이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벗는다. 브래지어와 팬티를 걸친 그녀의 날씬하면서도 농익은 몸매가 들어나 보인다. 정기춘이 모니터에 나타난 김도식과 앨리스 킴의 모습을 파일로 저장했다. 브래지어를 벗은 앨리스 킴이 거울 앞에 선다.



팬티마저 벗어낸 앨리스 킴이 자신의 음모를 손바닥으로 쓸어 올린다. 성감을 느끼는 탓인가! 몽롱한 눈빛으로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나신을 바라보던 그녀가 팬티를 갈아입고 투명한 드레스를 걸친다. 투명한 드레스에 들어나는 그녀의 몸매가 다분히 관능적이다. 드레스를 걸친 그녀가 거실로 나오면서 김도식에게 말한다.



“위스키 한 잔 하시겠어요?”

“그럴까?”



미국 교포2세라하지만 앨리스 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유창한 한국어이다. 진열장에서 양주병과 그라스를 꺼내든 앨리스 킴이 소파로 다가온다. 탁자위에 양주병과 그라스를 내려놓은 그녀가 오디오의 스위치를 넣는다. 잔잔한 피아노곡이 흐르고 그녀가 소파에 앉은 김도식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가 각각의 그라스에 양주를 채운다. 서로 마주 쳐다본 그들은 미소를 흘리며 그라스를 들어 부딪친다. 양주 한 모금을 마신 김도식이 그녀의 어깨를 껴안는다. 그녀가 곱게 눈을 흘긴다.



“아이~! 급하시기는.......! 자료는 가져 왔어요?”

“음! 내일, 메일로 전송해줄게.”



“모레는 홍콩에 가야 되니 내일 꼭 줘야 돼요.”

“홍콩은 왜........?”



“시코르스키 매니저도 만나지만, 흑사회와 연락할 일이 있어서요.”

“........!?”



모니터를 주시하던 강민우는 흑사회라는 말에 신경을 곤두 세웠다. 그가 개인적으로 깊은 관심을 갖고 은밀히 조사하고 있는 홍콩의 마피아 조직이다. 어머니와 동생을 살해하고 이진아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안긴 집단이었다. 김도식의 눈동자가 투명한 드레스를 걸친 앨리스 킴의 몸매를 살핀다.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바라보던 김도식이 의아스런 표정을 짓는다.



“흑사회.......!? 그들이 관계되어 있나?”

“아뇨! 다른 사업 때문에요.”



“그런데, 유로콥터 제품이 성능도 월등하고 우리가 제품 생산을 할 경우 기술 이전 등 옵션이 좋다는데, 하지만 상부에서는 미국의 눈치를 보는 모양이라서.......”

“어쩔 수 없잖아요. 미국의 시코르스키도 기술 이전은 해준다는 조건예요. 그리고 우리한테 배당되는 로비페이도 만만치 안잖아요.”



“하여튼 나는 엠에스티를 조종할 테니까, 엘리즈만 믿어.”

“김 국장님이 실수 없이 해야 되요.”



엠에스티는 국방부를 말하는 것이다. 김도식이 다시 양주잔을 들고 마신다. 그리고 앨리스 킴을 당겨 안으며 입술을 찾는다. 그들의 입술과 입술이 마주하여 키스를 한다. 김도식의 손길이 앨리스 킴의 드레스 앞가슴으로 들어갔다. 드레스 앞이 벌어지고 농익은 젖가슴이 들어났다.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홍성식 요원이 ‘꿀꺽!’ 하고 침을 삼킨다.



젖가슴이 들어난 앨리스 킴이 김도식의 손을 잡고 일어선다. 선정적인 몸매를 비틀어 보인 그녀가 김도식의 손목을 잡아끈다. 그들이 침실로 들어가는 장면이 다른 모니터에 클로즈업된다. 앨리스 킴이 남도식의 양복 상의를 벗겨낸다. 남도식의 양복하의와 와이셔츠, 그리고 러닝셔츠까지 벗겨낸 앨리스 킴이 돌아서서 자신의 드레스를 벗는다. 팬티만 걸친 앨리스 킴의 뒷모습과 발밑으로 미끄러져 내리는 드레스가 모니터에 클로즈업되었다.



김도식이 앨리스 킴의 등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를 돌려 세운다. 모니터 안에는 그녀의 나신이 그대로 들어나 보인다. 다시 그들이 서로를 포옹하며 키스를 하였다. 김도식이 앨리스 킴을 껴안고 침대로 다가간다. 침대위에 쓰러지듯이 눕는 앨리스 킴의 몸 위에 김도식의 상체가 포개진다. 김도식이 자신의 팬티를 벗어던지고, 조각만한 그녀의 팬티를 끌어 내린다. 김도식의 뒷머리가 분주하게 앨리스 킴의 얼굴과 목덜미를 지나다닌다.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강민우는 침실의 습한 열기가 도청하고 있는 사무실까지 전달되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두 남녀의 벌거벗은 알몸. 앨리스 킴의 허벅지가 벌어지고 갈색 음모가 덮인 하복부가 들어난다. 김도식의 발기된 남성이 여인의 허벅지 사이를 파고든다. 둔부를 들어 올리는 앨리스 킴의 신음소리가 도청을 하고 있는 헤드셋 속으로도 흘러나온다.



김도식의 엉덩이가 앞뒤로 흔들리고 여자의 팔이 남자의 허리를 부둥켜안는다. 남자의 몸 아래 깔린 여자의 묘하게 일그러진 여자의 표정. 남자의 거칠어지는 숨소리. 남자의 엉덩이가 높이 들어 올려졌다가 추락할 때마다 아랫입술을 깨무는 앨리스 킴의 나신이 출렁 거린다.



습기 찬 열기의 신음소리와 거칠어지는 숨소리. 발가벗은 두 남녀의 끈적끈적한 몸부림. 도청하고 있는 실내의 요원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체위를 바꿔가면서 정사하는 그들의 장면이 이십여 분 간 지속되었다.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던 홍성식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거 원! 에로영화보다 더 찐하네요.”



“하하........!”

“크크........!”



모니터를 주시하며 도청을 하던 요원들이 서로 마주보며 어색한 웃음을 흘린다. 모니터 화면에는 거친 숨소리를 흘리며 몸부림치던 그들이 부둥켜안은 채 정지되었다. 김도식이 지친 모습으로 앨리스 킴 옆에 눕는다.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침대 옆의 수건을 들어 김도식의 성기를 적시고 있는 진액을 닦아낸다. 침대에 누운 김도식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앨리스 킴의 탄력 넘치는 젖가슴을 더듬는다. 김도식을 내려다보며 눈웃음을 친다.



“좋았어요?”

“음, 대단해.”



앨리스 킴이 침대를 벗어나 드레스를 걸치고 침실을 나갔다. 다른 화면에서 세면장으로 들어가는 앨리스 킴의 모습이 보인다. 발가벗고 샤워기 밑에 서있는 앨리스 킴과 침대에서 일어난 김도식이 팬티를 걸쳐 입고 거실로 나오는 장면이 동시에 모니터 화면에 나타난다. 거실 소파에 앉은 김도식이 양주를 한잔 따라 마신다.



강민우의 시선이 다른 모니터 화면으로 향했다. 가로등이 비치는 건물 입구의 골목으로 검은 그림자들이 재빠르게 움직이더니 전신주 뒤로 몸을 숨겼다. 모니터를 주시하던 정기춘이 줌렌즈를 동작하니 전신주 뒤에 몸을 사리고 있는 그림자가 확대되었다. 동양인의 모습이 아니고 미국인이었다. 홍성식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 양키네. CIA 요원들 아닌가!?”

“........!”



정기춘이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강민우와 홍성식의 눈치를 살핀다. 그리고 일어서서 뒤편에 놓인 전화기로 다가간다. 어디론가 전화기 다이얼을 돌린 정기춘이 수화기를 바짝 대고 기다린다. 정기춘은 뒤를 힐끔 힐끔 돌아보며 속삭이듯이 작은 목소리로 통화를 한다.

단지 몇 마디를 하고 끝내는 통화 내용을 강민우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강민우는 정기춘이 마스터에게 보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엄연히 팀장인 자신을 무시하는 정기춘의 행동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모니터 화면의 세면장 문이 열리고 큰 타월로 몸을 가린 앨리스 킴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녀가 김도식의 옆으로 다가오는 순간, 어디선가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몸을 돌려 침실로 들어간 그녀가 침대 옆의 전화기로 다가갔다. 한동안 벨소리를 듣고 있던 그녀가 수화기를 집어 든다. 그리고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뭐라고.......! 알았어.”

“.........!?”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던 강민우나 홍성식은 그녀가 무슨 전화를 받고 놀라는지 궁금할 뿐이다. 통화를 끝낸 정기춘이 자리로 돌아와서 모니터를 주시했다.

앨리스 킴이 침실 안을 서성거리며 망설이더니 빠른 몸놀림으로 옷을 추슬러 입는다. 그리고 김도식의 옷가지를 집어 들고 급하게 거실로 나간다. 탁자위에 김도식의 옷가지를 내려놓은 그녀가 빠르게 말한다.



“가실 거죠?”

“응......!? 그런데, 왜 급하게 서둘러?”



“CIA와 안기부가 우리를 추적했는지, 광주에 와있데요.”

“그래......! 그걸 어떻게 알아?”



“흑사회 정보원에게 연락해 왔어요.”

“흑사회......!?”



강민우는 로비스트 앨리스 킴과 흑사회는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아직도 흑사회는 정보기관과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니터 안에는 옷을 추슬러 입는 김도식의 얼굴 표정이 당황스러워 보인다. 그들이 급하게 현관문으로 향한다. 앨리스 킴이 거실을 되돌아 본 후에 벽스위치를 눌러 전등을 끈다. 홍성식이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체포해야 되잖아요?”

“아니, 증거를 잡아야 관련자들을 체포하지. 지금 체포하면 저들에게 증거 인멸할 기회만 주게 되는 셈이야.”



강민우는 정적이 깃든 실내의 흐릿한 광경의 모니터를 주시하며, 급히 지휘본부와 연락을 시도한다. 모니터 한쪽에는 건물 입구가 보인다. 건물 입구의 전등이 자동으로 켜지고 현관을 나선 앨리스 킴과 김도식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골목 안쪽으로부터 검은 승용차가 미끄러져 나온다. 아마도 그들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강민우의 헤드셋으로 연결된 지휘본부의 음성이 들린다.



“점프 넷! 무슨 일인가?”

“장미와 꿀벌이 화원을 나갔음. 지시바람.”



“화원 주위에 있는 점프에게 맡기고 대기하라.”

“우리 정보가 흘러 나간 것 같습니다.”



알았다는 멘트와 함께 통신이 끊겼다. 앨리스 킴과 김도식이 올라탄 승용차가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색 지프차 한 대가 거리를 두고 승용차 뒤를 따른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고, 좀 더 세밀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그들에 대한 혐의점은 들어났으나, 증거와 관련자들을 알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 강민우는 흑사회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얻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작전 중에 이런 상황을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니고, 지휘본부의 지시를 기다릴 뿐이다. 어차피 밤을 새워야 하기에 교대로 어둠이 쌓인 모니터를 주시하면서 잠을 청한다. 그러나 이틀 밤이 지나도록 그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강민우의 허리에 찬 삐삐호출기가 진동한다. 이진아에게서 온 것이다. 만약을 대비하여 강민우는 적지 않은 돈을 들여서 이진아에게 모토로라 호출기를 사주었다. 이진아가 호출기로 보내오는 문자에 답신을 한다. 별다른 내용도 아니고 이진아의 투정과 응석이 섞인 문자였다.

결국, 지휘본부에서는 강민우와 전산팀원들에게 현장에서 철수하라는 지시를 했다.



강민우와 전산팀원이 서울에 도착한 시각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시각이었다. 강민우와 정기춘은 무교동의 음식점 안에서 마주 앉아 있었다. 음식점 안은 담배연기가 자욱하고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불판위에는 돼지고기 삼겹살이 냄새를 피우며 익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앞에 놓인 빈 잔을 채워주었다. 정기춘이 강민우 앞으로 잔을 내밀었다.



“자! 한잔 하자고!”

“술 마셔본지도 꽤 되는군.”



그들은 서로의 잔을 부딪고 단숨에 잔을 비운다. 강민우는 기회가 되면 정기춘에게 최태웅과 남경식에 관하여 묻고 싶었다. 정기춘은 NDSS 시절부터 전산을 담당한 베테랑이기에 내부의 기밀에 접근 할 수 있는 요원이다. 그렇지만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흔적을 쫓는 강민우는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통해서 광주교도소에서 풀려났던 흑사회 조직원들을 추적한다는 것은 험난하고 긴 여로가 될 수 있다. 그들에게 신분을 노출 당하지 않고 현재의 신분을 유지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고 해도 믿을 수는 없었다. 강민우는 정기춘의 눈치를 살피며 물어볼 기회를 노린다. 불판위의 삼겹살을 뒤적이던 정기춘이 빙긋이 웃으며 먼저 말문을 열었다.



“온다고 했는데.......”

“누가........!?”



“전산실에 같이 있는 미스 송. 너도 잘 알잖아?”

“아! 송나희. 미스 송이 웬일로.....!?”



“몰라. 밖으로 나오는데 어디 가냐고 묻기에, 너하고 술 한잔한다고 했더니 같이 가도 되냐고 하더라고. 그래서 별 생각 없이 그러라고 했지.”

“아......!?”



“아마 사무실 들렸다가 올 모양이야....... 혹시 널 좋아하는 거 아니냐?”

“하하~! 지금 개그 하는 거야?”



“하하하.......! 그나저나 가정은 언제 가질 거니?”

“가정!? 생각도 안 해봤고, 능력이 있어야지.”



“그만하면 넘치지. 외모 있고, 체격뿐만 아니라, 재력도 있겠다, 그만하면 어느 여자가 싫다고 하겠어.”

“하하~! 아직, 필요성을 못 느끼니까.........”



정기춘은 결혼한 지 삼년이 지난 기혼자였다. 강민우는 몇 번인가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같이 마셨던 송나희를 떠올렸다. 그녀는 경찰 특공대 출신으로 안기부로 개편되면서 신입으로 들어와서 첩보대원을 거쳐 전산요원이 되었다. 강민우가 그녀를 처음 만나 것은 안기부 출범이후 첫 번째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강원도에 북한 고정간첩이 활동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체포 작전에 들어갔었다. 그런데 고정간첩이 여자라는 정보가 입수되고, 지휘본부에서는 여자요원을 투입한다고 했다. 이인일조였던 강민우의 잠복 근무조에 공교롭게도 여자요원이 투입되었었다. 그때 신참으로 투입된 여자요원이 송나희이었다.



어촌의 작은 골방에서 강민우는 여자요원과 함께 있는 것이 서먹서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갸름한 미인형의 미모의 송나희는 남자도 힘든 훈련으로 단련된 날렵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적막이 깃든 공간에서 있으려니 답답하여 두런두런 대화를 하기 시작하였다. 안기부에서 다뤘던 작전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여 조금씩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강민우보다 네 살 아래인 송나희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사랑했던 남자와 헤어져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셔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한동안 좌절해 있다가 경찰 특공대에서 안기부로 발탁되어 옮긴 것은 아픈 기억의 사회로 돌아가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민우의 짐작으로는 사랑했던 남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충격을 받은 그녀가 현실도피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염려스러웠다. 그 이후 강민우는 송나희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일상생활에 몰두하느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간간이 마주치게 되고 몇 번 같이 커피를 마시면서 그녀만의 여성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호출기음이 울렸다. 송나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던 강민우가 허리에 차고 있는 호출기의 액정화면을 들여다봤다. 이진아에게서 온 것으로 빨리 집으로 오라는 문자였다. 강민우는 ‘G G"라고 회신을 했다. 이진아와의 약속된 문자로 금방 간다는 뜻이었다.

정기춘이 들어 올린 잔을 내밀면서 술 마시기를 권한다. 강민우는 오늘따라 술에 취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직은 술에 취하지 않았기에 조심스러웠다. 반잔을 마시고 내려놓은 강민우가 넌지시 정기춘에게 물었다.



“중정시절 요원들의 신상기록이 남아있나?”

“남아 있을 걸. 기밀문서나 파일로 저장되어 있을 거야. 그건 왜?”



“아니 그냥, 중정시절 알았던 사람이 궁금해서.”

“문서는 거의 파기 됐을 것이고, 컴퓨터 기밀파일은 허용된 책임자급만 접근 가능한 걸로 알고 있어. 전산실에서는 전산실장만 접근 가능해. 어떤 사람인데.......!?”



“마스터였는데, 이름이........! 뭐더라, 아! 최태웅, 그리고 남경식이던가........!?”



강민우는 이름을 정확히 모르는 체 하였다. 자신의 의중을 들어내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다. 다행히 정기춘이 대수롭지 않게 받아드렸다. 그런데 기밀파일이라는 말에 강민우는 더욱 관심이 집중된다. 정기춘이 소주 한 잔을 벌컥 들이키며 강민우를 빤히 쳐다봤다.



“최태웅.......!? 그건 왜 물어?”

“그냥 같이 근무도 했었는데 요즘 보이지 않아 궁금해서.”

“그 사람, 파워가 대단했던 사람인데 모르겠고, 남경식은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테러 진압 작전도중 사망했다는 사람 아닌가.......!?”

“아......! 그런데, 전산실장이 최재인이던가?”

“음~! 맞아. 소령으로 예편했는데 전산 정보통신 분야의 일인자야. 직원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묵묵한 스타일이지만, 나하고는 가끔 양주 한잔씩 하지. 카투사 정보장교로 근무한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양주를 좋아해.”



강민우의 눈치를 살피는 정기춘은 최재인 실장과 가깝다는 것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이었다. 강민우가 정기춘의 빈 잔을 채워주며 눈치를 살핀다.



“혹시.......! 남경식 고향이 어딘지 알아?”

“그걸 어떻게 알아.”



“........!?”

“아! 저기 오는군. 미스 송! 여기야.”



강민우의 질문을 정말 모르는지 정기춘은 관심 없다는 태도로 음식점 입구를 향해 손을 흔든다. 음식점 입구에 발목을 감싸는 구두에 카키색 점퍼와 바지를 걸친 송나희의 모습이 보인다. 머리 뒤로 질끈 동여맨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그녀가 다가온다. 음식이 놓인 테이블 앞으로 다가온 그녀가 새삼스럽게 강민우를 향해 고개를 까닥여 인사를 한다.



“강 선배님도 계셨네요.”

“내가 이 친구하고 술 한 잔 한다고 그랬잖아. 자! 미스 송도 한 잔 해.”



넉살스런 표정을 지은 정기춘이 의자를 당겨 앉는 송나희에게 술잔을 권한다. 이어서 송나희기 정기춘과 강민우 앞에 비어있는 잔에 술을 따른다. 곁눈으로 바라보는 송나희와 강민우의 시선이 마주치고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털털한 웃음을 흘린 정기춘이 잔을 들면서 강민우를 바라보면서 목소리를 낮춘다.



“저번에 전산실 팀 회식할 때 보니까. 미스 송, 술 실력도 만만치 않더라고.”

“정 선배님은.......! 그날 분위기 맞추느라고 마셨다가 취해서 혼났어요.”



“그런가!? 어쨌든 새사람이 왔으니 또 한 잔 해야지. 마시자고!”

“하하~!”



네 사람은 다시 술잔을 부딪고 잔을 비운다. 취기가 오르는 정기춘이 빈 술병을 들고 주방을 향해 소주 한 병 더 달라고 외친다. 종업원이 소주를 가져오고 술병을 딴 정기춘이 다시 술잔을 채운다. 매캐한 연기 속에 취기기 오르는 높아가는 손님들의 목소리가 음식점안의 흥을 돋운다. 정기춘이 송나희와 강민우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둘이 참 잘 어울리네.”

“호호~! 정 선배님 취하셨나 봐요.”



“놔둬요! 하고 싶은 말 실컷 하게. 저사람 생각 없는 말을 하는 재미로 사는 걸요.”

“강 선배님! 편하게 말씀 낮추세요.”



“그래! 그래! 모두 술친구하지 뭐. 어렵게 살 것 뭐있어.”

“하하하.......!”



두서없는 말로 좌석은 오히려 허물없이 편안함을 느낀다. 술잔이 오가고 취기가 오른 좌석은 잡담이 오고갔다. 강민우는 이따금 바라보는 송나희의 눈빛을 의식한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서로에 대한 감정을 읽고 있는 것이다. 강민우는 새삼스럽게 송나희를 특별한 감정으로 바라보는 자신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쌓여 온 감정일 수도 있다.



음식점 안은 뽀얀 담배연기, 고기타는 냄새, 손님들의 술 취한 목소리가 술을 더 취하게 한다. 정기춘이 취기가 달아올라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고 강민우가 종업원을 불렀다. 종업원에게 계산서를 가져오라고 해서 술값을 치루기도 전에 정기춘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음식점을 나오니 술기운에 후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강민우는 지프차를 운전하지 못할 정도로 취한 상태는 아니었다. 정기춘이나 송나희는 승용차가 없었다. 음식점을 나온 정기춘은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가며 손을 흔들고 사라진다.



뒤쳐져서 서있는 송나희는 강민우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안기부에 들어와서 강민우와의 첫 만남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다. 강민우와 파트너가 되어 잠복근무를 하던 하룻밤을 의미 깊게 기억하고 있다. 깊은 대화를 한 것은 아니지만 강민우에게서 풍기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에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배반을 당한 아픔이 있어 강민우에게 다가서기가 두려웠다. 그녀의 아버지와 사랑했던 남자도 정보계통에서 일을 했었다. 육군 방첩대에서 근무하다가 순직한 그녀의 아버지와의 인연이 되어 CIA 한국지부요원으로 근무하던 남자와 사랑을 했었다.



한 번의 사랑에 실패를 했고, 아니 배신을 당했다고 하는 것이 편한지 모르지만, 그녀는 남자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만일 그것이 첫 번째 사랑이 아니더라도, 첫 번째가 아닌 사랑이 도대체 있을까마는, 상대가 마지막 사람이어야 한다고 확신하지 않는 연인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마는, 마치 홍수에 떠내려가듯이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그 끝에 도달해버렸던 것이다.



사랑의 대가로 치러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을 알았을 때는 아픔이었다. 한 순간의 즐거움이나 기쁨은 너무나 많은 대가들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나희는 남자들을 마주하기도 역겨웠다. 그런데 강민우를 자주 마주하고부터 그녀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강민우의 모습이 언뜻 떠오르고 차갑게 식었던 그녀의 가슴이 온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사랑은 그렇게 온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날마다 바라보던 낯익은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거나, 흐린 아침, 가까운 산이 부드러운 회색 구름에 휩싸이고 그 낯익은 풍경이 어쩐지 살아 있었던 날들보다 더 오래된 기억처럼 흐릿할 때, 그때 길거리에서 만났더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버렸을 한 타인의 영상처럼 불쑥 그녀의 인생으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이 강민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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