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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44 793회 0건
중간 중간 담배를 피우느라 이야기를 끊는 이정섭의 이야기에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듯하다.
어머니의 어린시절의 아픔이 가슴에 와닿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나보다 더 어린시절의 어머니의 이야기와 그 아픔을 당당히 이겨나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운 감상이었다.

인숙은 돈이 많았다. 군에 갔다오고 대학을 졸업했을때 정민은 인숙의 돈으로 창업을 할수 있었다.
처음에는 잘되었지만 그의 무능은 결국 도산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모든 것을 잃고 도망치듯 가평의 인숙의 동생인 인혜집으로 들어갔는데,

미혼인 인혜가 만나는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서울지검의 검사로 있는 정준식
이미 결혼하여 딸하나가 있던 정준식이 인혜와 불륜이라는 것을 알게된 김정민은
인혜 몰래 정준식을 만나 협박하여 돈이라도 긁어낼 요량이었다.

정준식은 당당했다.
‘당신이 날 협박하려다 죽는수가 있다 혹 돈줄이라도 만지고 싶다면 나랑같이 사업을 하는게 어때’
정준식이 내민 카드는 어린여자를 데려다가 돈 많은 재력가의 후처로 밀어넣는 일이었다.
“때론 여자들이 협박용 카드로 때론 구멍동서의 공범자로 뗄레야 뗄수 없는 파트너가 되는거지”
이정섭이 김정민과 만난것이 그때였다. 이정섭은 춘성군 대갓집의 집사로 실은 인숙이 그집에서 처음만나 윤씨부인을 만나게 해준 사람이 그였다.

정준식은 철저히 그의 어머니인 윤씨부인과, 아버지 정현동에게서 출세하는 법을 배운것이다.
시골출신의 검사가 아무런 연줄도 없이 출세를 하려면 그들의 뒷구멍을 잘메워주는 것만큼 더한 비책이 없으며, 그것을 마다하는 정치가도 판검사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훨씬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하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공공연한 것이었지. 서울지검이 서울 서소문에 있을때, 그 옆에 북창동이 있었지. 지금이야 북창동스타일의 룸싸롱이 전국에 퍼져있다지만, 그때만 해도 북창동스타일은 북창동 뿐이었지. 주로 판검사들과 정치가들이 비밀리에 드나들던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그들 특유의 룸싸롱 문화였지”
아직 그가 보기엔 소년같아 보일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정섭이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업은 일취월장의 수준을 넘어 폭팔적이었지”

그때 나는 강남으로 이사를 갔다. 거기서 연지를 만났고.
“연지의 아버지가 사업이 망해서 도망다닐때, 연지를 나한테 넘기면 빚을 청산해준다고 했다네”
아. 연지이야기다.
“연지를 당신이 이용해 먹다가 창녀촌에 팔았다는 말인가”
“연지가 이뻤지. 물론 어린것이 최대의 무기였지만, 그 아이는 무언가 끌리는 청순함 같은 것이 있었지. 황무지에서도 꿎꿎이 피어나는 꽃이랄까”
“연지가 너의 첫사랑이란건 나도 이번에 알았다네. 연지의 일기를 보고 알았지”
연지가 끝내 나한테 보여주기를 꺼리던 일기장을 그가 봤다고 했다.
“그런데 연지는 내가 아니라 자네 아버지가 사갔다네”
이건 무슨 말인가?
“자네 아버지 김정민이 연지를 그녀 아버지 빚을 탕감해주고 데려갔다네.”
“데려 갔다는 이야기는?”
“그 즈음에 네 어머니가 아버지의 돈벌이를 알게 되었지. 연지를 데려가 살림을 차린 것도 알게 되었고”
“아버지가 연지와 살림을 차렸다고요?”
이정섭은 내말을 무시하고 자신의 말을 이어간다.
“네 어머니가 네 아버지를 고발했다네. 고관대작들의 매춘사건으로, 그 사건을 맡은 것이 박인호 형사”
“그런데 사건이 만만치 않았지. 박인호 직속상관이 바로 정준식 검사였지. 정준식은 김정민을 고발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에게도 화가 미칠것을 우려하여 네 어머니를 입막음 해야 했지”
“그래서 당신이 내 어머니를 ..................”
“그렇다네 네 어머니를 납치하는 장면은 실제상황이었지”
힐끗 나를 보는 그의 얼굴에 주먹을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우선은 그의 이야기가 궁금한 탓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경고하려던 참이었어. 박인호와 정준식의 관계를 알고 있었던 것이지. 어떤면에서는 네 어머니가 순진한거라고 봐야해. 경고를 하면 아버지가 정신을 차리고, 새로운 사람이 될수 있을거란 생각을 한거가”
“박인호는 단순히 형사였고, 우연히 그의 상관이 정준식이었다면서요”
“아니. 박인호는 네 어머니의 먼 친척이야, 실은 너의 어머니도 몰랐고, 어느날 문득 정준식이 어머니를 찾아와 억지로 먼친척이라고 밝혔다지”
박인호는 어디까지 이일에 얽혀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그가 새삼 두려워지는 느낌이다.
“그때라도 네 아버지가 정신을 차렸으면 된거였는데, 네 아버지가 새로운 협박을 하였지. 비극의 시작이랄까”
“어머니의 강간장면이 담긴 비디오를 아버지가 모르고 있었나요?”
“그걸 안건 나중의 일이었지. 그때까지도 네 아버지는 정준식과 네 이모 인혜와의 관계 밖에 모르고 있던 참이었지”
“새로운 협박이란것이?”
“정현동은 점점 극악의 변태가 되어갔는데, 결국은 스너프의 세계까지 가고 말았지. 여자를 묶어놓고 강간하게 하고는 지켜보는게 취미였는데, 그만 여자가 죽고 말았어, 정현동은 그걸 보더니 10년? 그 정도만에 자신의 성기가 발기하는 것을 보고는 그날이후 자신이 직접 여자를 납치해온 여자를 죽이고는 그 장면들을 촬영하는 것을 한거야”
“살인까지....”
“그 테입은 일부가 유출되어 네 이모 인혜가 갖고 있었는데”
“정준식이 흘린건가요?”
“그렇다네. 네 이모 인혜에게 자기 아버지 정현동에게서 배운 온갖 추잡한 짓을 하던 정준식이 그 테입을 보여준건데, 인혜가 정준식이 잘 때 몰래 하나를 복사해 놓은거지”
“이모는 그걸 왜 복사한걸까요? 위험하단걸 알텐데”
“그렇지. 정준식은 자신의 실수로 살인장면이 찍힌 테입이 흘러나간것을 알고는 어떻게든 회수하려고 했다네. 그런데 네 아버지는 차츰 관계가 소원해지던 정준식과 관계를 이어갈 참으로 스너프 필름의 존재까지 비추며 협박을 하였는데, 그것이 정준식에게는 참을수 없는 것이었지”

커피숍이 복잡해지며 사람이 많아졌다. 식사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식욕이 나지 않았다. 대신에 얼마나 담배를 피웠는지 입이 텁텁해지고 입술이 바짝 말라있었다. 자리를 옮겼다.

“지금부터가 진짜일세. 이 모든 일들의 비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정섭이 다시 차분히 말을 이어간다.
“네 아버지는 정준식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했다네. 정현동의 snuff 촬영행각에 질린 정준식이 살인을 흉내내는 연출 snuff로 그의 아버지인 정현동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네 아버지에게 그걸 요청했다네. 사실 네 아버지는 정준식과 같이 여자들을 정치가와 판검사들에게 노리개로 넣는 사업을 하면서 몰래몰래 비디오로 찍기도 하였지. 차츰 포르노 비디오에 맛들린 네 아버지가 포르노 제작까지 하면서 일을 크게 벌려나가자 정준식과 소원해져갔고, 그 자체로도 큰 돈벌이가 되었거든. 정관계의 늙은 퇴물들 거물들에게 포르노 비디오를 파는 것이었지”
“아버지가 아예 포르노 제작을 하였다는 건가요?”
“맞아. 정준식이 그걸 알고 snuff를 아예 만들어서 정현동에게 보여주려고 한거지”
“그럼...?”
“맞아 네 어머니의 snuff 연출 비디오는 네 아버지가 제작한거야”
눈앞이 깜깜해진다. 머리가 어지럽다. 황급히 담배를 하나 꺼내핀다. 담배연기가 눈에 들어왔는지 눈물이 날듯하다.
내 아버지가 그런사람이었다니, 새삼 아버지와 관계가 좋았던 적은 없었다고 해도, 이건 충격을 넘어선다. 아버지는 인간도 아니다.
“그러던차에 네 아버지가 네 어머니의 강간비디오는 물론이거니와 예전에 정현동의 집에서 있었던 일까지 알게 된거지”
“그때가 혹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대략 1년전쯤 아니던가요?”
“맞아. 그때쯤이겠지. 네 아버지의 snuff 비디오에 우연히 연지가 끼어들어갔는데, 네 아버지와 섹스 하는 장면을 찍은 것이었지, 그걸 보고 정현동이 반해서 연지를 달라고 했지. 하여 연지는 정현동에게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 네 아비인 정민과 윤씨마님이 마주하게 되었어. 물론 그땐 인사만 나누었던 거였고.”
연지도 기구한 삶이다. 아버지뻘인 정민에 이어 할아버지뻘인 정현동에게 끌러간 것이다.
“다행히도 정현동은 연지에게 반해서 snuff를 잠시 멈추고 연지에게 빠졌지. 그런데 정현동이 연지에게 너무 빠진거야. 연지가 처녀적의 인숙과 너무나 닮은것이 문제였지”
연지의 웃는 모습이 떠오른다. 맞다. 연지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이 엿보였다. 새삼 이제야 그것을 깨닫는다.
“정현동은 국회의원이 되었었고, 그의 국회의원 시절은 연임으로 이어지진 못했지. 원래 무식했던 정현동을 아무리 윤씨부인이 내조를 잘해주어도 들통이 날 수밖에 없었고, 서울의 정치가들은 다만 그의 돈만을 보고 달려들어, 윤씨부인은 공천댓가로 자금을 쥐어주는 것이 아깝기도 했고, 한번 국회의원 명찰을 달았으니 이제 그만 정계에서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하고 말았던 것이지. 그날 이후 정현동의 일과는 여자들 뿐이었지. 정확하게는 여자들을 변태적으로 괴롭히는 것을 취미로 삼았는데, 그것이 그의 부인에 대한 보복심이었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주로 괴롭힘을 당하던 여자들이 윤씨부인과 닮았을 뿐아니라. 그 여자들에게 침실에서 ‘윤창녀야’ 라고 부르는 것으로 봐선 부정할순 없겠지”
말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는가 싶었는데, 정말 엉뚱한 말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정현동이 실은 인숙을 좋아했던거야. 어릴때부터 인숙을 보면서 공부도 시키고 했던것이 그런 이유였던것이지. 윤씨부인이 인숙을 군벌에게 바친 것을 속으로 ダ隔?있던 모양이었어. 그런데 연지가 인숙을 꼭 닮았지 모야.”
“윤씨부인은 정현동이 여자와 어울리는 것을 다 인정했다면서요?”
“맞아. 그런데 정현동이 연지를 아끼는 것이 도를 넘어간 것이 문제였지. 정치도 끝나고, 정력도 바닥이난 늙은이가 마지막 남은 것이 연지뿐이었는데. 어느날엔가 들통이 난것이. 정현동이 연지에게 박인숙이라는 이름표가 선명한 인숙의 고등학교 교복을 입히고 섹스를 하는 것을 윤씨부인이 본거지. 뿐만아니라 윤씨부인 몰래 연지에게 거액의 유산을 물러주려고 변호사와 상의한 것이 변호사의 밀고로 알게 되었고”
이정섭의 눈이 살며시 초롱해졌다랄까?
“그때 위기에 빠진 연지를 구해준것이 나였지”
“....?”
“인숙을 가장 안타깝게 생각한 것이 나였어. 인숙이 군장성에게 짓밟히는 것을 난 처음부터 쭈욱 지켜보고 있었거든. 그런데 인숙이 너무나 의연한거야.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그런 인숙이 너무 그리웠었지”
어느새 이정섭은 어머니를 인숙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의 눈이 부르르 떨리는 듯하다.
“박인호가 네 어미를 강간하라고 시켰을때, 난 솔직히 반가운 마음이었네. 그런데, 막상 강간을 하려고 하니 발기가 되지 않았어. 늘 바라보기만 하였던 터라. 내 맘 같지 않았어. 그래서 네어미가 강간당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네”불끈 나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는 날 보는 이정섭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날 원망하는 것을 아네. 하지만 나도 어쩔수 없었네. 시키면 시키는 데로 하는 수 밖에. 그런 내가 연지를 탈출시킨것은 정말 내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는달까. 윤씨부인이 연지를 푸데자루에 넣어 춘천호 밑으로 넣어버리라고 시켰을때 차마 그럴수가 없어 연지를 빼내고 말았지. 물에 빠뜨리는 척하고 네 아버지에게 구조하라고 하였지. 연지는 죽은걸로 하고, 내가 아는데가 없어. 서울갔다 오는 길이면 들르던 청량리의 단골 창녀집에 연지를 맡기면 된다고 하였지. 어쩌면 거기에 맡기고서 가끔 들를 속셈인것도 사실이었고, 네 아버지도 마땅히 연지를 감출수 없어, 내 제안에 응했지. 창녀촌이란게 얼굴에 잔뜩 화장하고 있으면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든, 몸을 숨기기엔 최고의 장소라 여긴거지.”
어느 순간엔가 느릿하던 이정섭의 말이 빨라져 있었다.
“그런데 정현동이 네 아버지를 불렀지. 연지를 내 놓으라고, 그 양반은 연지가 없어진 것을 알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네 아버지를 부른건데 이성을 잃은 정현동이 인숙의 과거를 발설하고 만거야. 심지어는 내가 인숙을 강간한 비디오의 존재도 알게 되고 말았지”
“이해할수 없는건 왜 경고정도의 의미로 신고한 어머니의 비디오를 찍게 한거죠. 특별한 이유가 없자나요”
“그게 박인호의 무서운 점인거지. 박인호는 한마디로 하이에나야. 그는 한때 공안정국의 정보과 형사였는데, 세상이 바뀌면서 설자리를 잃었지. 동대문서의 그저그런 형사로 자신을 마무리 할수 없었던 그에게 우연히 세운상가의 불법비디오 유통을 조사하던중 김정민의 비디오가 눈에 들어온거지. 정준식의 바로 윗 상사인 지검장이 어린 여자애와 섹스를 하던 비디오였지. 예사 물건이 아님을 감지한 박인호가 혼자 몰래 조사를 하다 김정민을 밝혀내었지. 정준식과 네 어머니가 어릴때 같은 동네에 살았던 것도 알았고, 박인호가 파면 팔수록 구미가 당기는 것이 한두개가 아닌거라. 억지로 네 어머니와 친척임을 강조한 것도 이때였고, 김정민, 정준식과 같이 어울리게 되었지. 일개 형사에겐 전도유망한 검사의 후원이 필요하였고, 그 검사는 자신의 종으로 맘대로 부릴 머슴이 하나 필요했는데, 박인호가 거기에 어울리는 인물이었지”
“..................”
“박인호는 일이 복잡하게 꼬이기를 바랬지. 정준식이 위태위태하면서도 늘상 정민과 손을 잡는 것에 불만이 많았지. 자기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늘 변두리였던 거야. 실은 처음에 인숙과 친척이라고 갖다 붙인것이 정준식의 마음을 잡는것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정준식에 대한 충성의 의미로 비디오를 찍은거라고 봐야지.”
“어머니와 친척이라고 갖다붙인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된것이다?”
“그렇지 처음에는 정준식에게 내 친척이 비디오를 찍었는데 실수로 유통이 된것을 자기가 알게되어 서로 좋게 처리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무마해주겠다고 정준식에게 접근한거지”
“박인호가 모든 것을 꼬이게 한건가요?”
“그러던차에 네 어머니가 자살을 하고 만거야”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느날 심하게 다투셨죠. 박인호는 그 비디오 테입이 원인이라는 투로 말했죠”
“맞아. 그전에 알아야 할것은, 네 어머니는 순교자의 심정으로 사신분이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허물을 탓하지 않고 당당히 사셨지만, 끝내 네 아버지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만거지”

여전히 나는 듣기만 하고 그가 띄엄띄엄 이야기를 이어간다. 다시 처음처럼 끊길듯 끊길듯 길게 길게
“네 어머니는 자살을 택한거야. 네 아버지가 자신의 죽음으로 정신을 차리길 바란거지. 대학때의 그 자상한 선배로”

“네 아버지가 한때 나와 술을 먹으면서 이렇게 말했다네. 인숙의 과거를 알게 되었을때 충격이었지만, 그녀가 가족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것을 탓하지 않고 보다듬어 주려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고, 그리고 무능한 자신이 그렇게 쉽게 돈을 벌게 되는 것을 보고는 잠시 정신이 나갔다고도 했다네. 그리고 자신의 아내가 강간당하는 비디오를 보고는 이 여자가 이걸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해를 했고.”

이정섭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꼬깃꼬깃한 그것을 펼친다.
“이게 자네 어머니의 유서네”
영후가 처음 보는 것이다.
거기에는..............

[사랑이 무언지 알려준 당신께

그간 고마웠어.
내가 절망에 허덕일때 당신은 날 감싸주었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는 날 부르지 않았어.
난 가족을 위해 날 희생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는 날 집안의 수치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당신에게 내 과거를 알려줄 용기가 나지 않았었어.

당신이 나에게 영후가 당신 자식이 맞냐고 물었을때 난 절망했어.
그때 이후 이 악물며 내가 지켜온 모든 것들이 이젠 소용없게 되고 말았어.

연지에게서 대학때의 나를 보았다고 하는 말이 오히려 나에게 위로가 된것이 사실이야
지금의 당신의 모습보단 대학때의 당신 모습을 기억하려고 애쓴다는 말이니까.

................. 그래서 이렇게 죽음을 택한 것인지도 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애써 날 탓하고 심지어는 인혜에게도 해를 끼치고 있자나.

당신의 지금은 영후에게까지 해를 끼치게 할지도 몰라.

사랑이 무언지 아르켜준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할게
모든 것을 청산하고 영후와 행복하게 살아줘.

내가 그런 비디오를 찍고 참아야 했던 것은 이 모든걸 영후에게 말하겠다는 협박을 받아서야.
그들을 이길순 없어.
그들에게 더 이상 기대하지도 말아야 해. 그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야.

그리고 이 유서는 영후에게 보여주면 안되는 거 알지]

“네 아버지가 나에게 준 네 어미의 유서다.”
어머니의 유서를 처음본다. 있다는 것도 몰랐다.
어머니의 쓰라린 심정을 내가 얼마나 이해할수 있을까? 죽음으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려던 마지막 시도를 내가 이해할수 있을까?

아버지가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고한 것을 지켰다는 것으로 보긴 힘들었다. 청량리에서 잡혀 오피스텔로 들어간 이후에도 아버지는 큰 돈을 나에게 주지 않았던가.
“아버지가 어머니의 자살에 큰 충격을 받긴 했지만, 그들과 대립하진 않았던 것으로 압니다. 불과 얼마전까지도 그들과 함께 한 것 같은데요?”
“네 아버진 돌이킬수 없는 길로 예전에 이미 들어선거지. 어머니의 죽음으로도 그를 설득할순 없었다네”
“그런데 어떻게 아버지와 정준식, 박인호가 대립하게 된건가요”
“서로 복잡하지만 나름 질서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중간에 연지가 끼어들면서 모든 것이 뒤엉켜버렸지. 연지와 네 아버지가 연결되어 윤씨부인과 마찰이 발생한거지. 마침내 연지가 살아 있는 것이 밝혀지고 말았어. 청량리 창녀촌에 있던 연지가 미성년자 일제단속에 걸려서 잡혔는데. 형사인 박인호가 알아낸거야. 박인호가 넌지시 윤씨부인에게 알려주었어. 김정민과 정준식의 위태한 동거에 불안을 느낀 박인호가 연지를 빌미로 윤씨부인에게 붙을 기회를 마련하게 된거지.”“윤씨부인도 snuff의 존재를 알고 있었나요?”
“알고 있었지. 연지에게 유산을 물려준다는 노망만 들지 않았어도 윤씨부인은 연지가 정현동의 살인취미를 잊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었었지. 그런데 윤씨부인은 그것으로 정준식이 위협을 받고 있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던 것이지. 박인호가 말해서 그때 알게 되었지.”
“윤씨부인이 전면에 나선건가요?”
“윤씨부인은 모든 것을 감추어야 했지. 정현동은 물론이거니와 정준식도, 온 집안이 뒤짚힐 큰 사건인거지”“그래서 박인호가?”
“윤씨부인은 박인호에게 네 아비와 미국에 있는 네 이모, snuff에 관련된 모든 관계자를 죽이라고 시켰지. 이 일을 알고 있는 모두를”
“이젠 나도 알게 되었군요”
“그런데 알수 없는 것이 윤씨부인이 너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시켰다더군”“예? 그건?”
"그 이유는 나도 몰라. 박인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야“
이정섭이 모르는 또다른 무언가가 있는것 같다.
“네 아버지는 snuff 비디오의 존재를 무기삼아 버티고 있었지. 자신을 헤치면 snuff 비디오가 언론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지.”

“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신건가요? 그리고 박인호와 정준식이 말하듯 아버지가 살인자가 맞나요?”
“토끼문신? 해바라기? 그들은 박인호가 죽인거네. 스너프 필름을 찍은 그들을 입막음 하기 위해 죽인거지. 지금은 내가 마지막으로 죽어야 할 참이고, 네 아버지가 죽은건 나도 잘 모르네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갑자기 등골이 싸해진다. 박인호가 죽였다니.
“정준식도 알고 있나요?”
“정준식도 알고 있다고 봐야지. 모른척할 뿐”
“................”
“그들이 네 아버지를 죽인것은 아닌것 같아. 아직 snuff의 행방을 모르거든. 그래서 네 아버지가 죽자. 혹시 네 아버지 말대로 언론에 흘려들어갈까봐, 다급한 마음에 너에게 일부를 털어놓고 단서를 잡으려 했던거였지”
“인혜 이모는?”
“네 아버지가 죽기전에 인혜와 만나려 했었어. 인혜가 비밀리에 한국에 왔었고, 서로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네 아버지가 직전에 죽고 말았지”
“그런데 처음에 인혜 이모와 연지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죠?”
“춘성군 대갓집에 있다네”
“............. 설마 죽일까요?”
“모르지. 일단 잡혔으니 목숨이 위태롭다고 봐야겠지”
“........... 그런데 나를 찾은 이유는 뭐죠?”
“마지막 카드가 있지”
“예? 마지막 카드라 함은?”
“정주연일세. 자네가 정주연을 만나는 것을 이제 다들 알고 있는데, 이상한 것이 아무도 자네를 직접 다그치지 않고 있다네. 그래서 말인데...”
“.................”
“자네는 인혜이모와 연지를 살릴 생각이 있는가?”

언제나 뒤로 물러서 있는 나약한 나 아닌가. 이 모든 일들을 들은 지금도 실은 덤덤할 뿐인 내가 스스로 화가 날뿐.
“내가 무언가 할수 있는 일이 있는건가요?”
이정섭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진다.
“날 이용해서 당신의 안위가 나아질 무슨 방도가 있는건가요? 그리고 연지와 인혜이모를 살릴 방법이 있다는 것인가요?”
내가 길길이 날뛰며 연지와 이모를 살리기 위해 불길이라도 뛰어들 것이라고 이정섭이 생각했다는 것인가? 라고 묻는 나다. 이정섭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네 어머니가 죽은 이유는 너를 지키기 위해서였고, 네 아비가 죽은 이유도 최소한 너를 보호하고자 함이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연지는 자기발로 그곳에 들어갔다네”
“............ 잡혀갔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정섭이 ‘후’하고 한숨을 쉰다.
“연지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도 일단 가만 놔둔 이유는, 정현동이 폐인이 되어 이제 더 이상 연지를 찾지 않기 때문이었는데, 다시 노망이 나서 또 snuff를 찍는다고 하면 연지를 다시 넣을 생각이었을거야. 감시만 하고 있었던거 였겠지. 실은 얼마전에 용케도 연지가 날 찾아왔다네”얼마전이라면 수원역에서 연지와 헤어진 다음일것이다.
“내가 갈데가 어디 있겠나. 청량리 창녀촌의 단골집에 은신하고 있었는데, 연지가 날 찾아왔지. 그리고서 하는말이”
“.......”“그때 날 구해주어서 고맙다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너 영후를 보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네. 마치 모든 것을 정리하는 말투였지. 연지가 사실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상당부분은 알고 있다고 봐야하네. 다 네 아비가 말해주었겠지. 자네 아버지가 죽은것에 충격을 받은듯해. 내가 쫓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리고 자네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불안해 했다네. 그래서 날 찾아온 이유는 춘성군의 대갓집의 구조를 나에게 물어본다고 했다네. 내가 그집의 돌맹이 하나까지 다 알고 있으니까. 아마 윤씨부인을 죽이려 한다는 분위기였다네.”
헉. 이런 바보같은. 말문이 막힌다.
“총기는 네 이모가 밀반입하였다네 미국에서, 둘은 서로 오래전부터 연락을 하고 있었다지”
이런 우수꽝스러운 일이 어디있는가. 여자둘이 날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려 한다니.
“이런 무모한 일을 벌이는 그들을 당신은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것인가?”
“............ 미안하네. 나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정섭이 고개를 푹 숙이는데, 눈물이 그렁하다.
“그런데 몇일이 지나도 뉴스에 윤씨부인의 부고 소식이 없어서, 수소문해보니 그 집 지하에 잡혀있다는 소식을 들었네”
“..............”
“그 집 구조를 알려준 이가 나란걸 알았을테고 그녀들이 그 집에 들어간 것을 아는 이도 나니까. 내가 잡히기 전까지는 아마 목숨을 부지할수 있을걸세. 내가 잡힌다면 아마 셋다 죽은 목숨이겠지”

이 무모한 일들이 이렇게 쉽게 벌어졌다는 것이 기가막힌다. 철이 없어도 이렇게 없단 말인가. 그것에 동조한 이정섭 이놈부터 쳐죽여야 하나 싶다.

“그래서 제가 할수 있다는 일이 뭔가요?”
“정주연을 이용하는 것일세. 정주연의 포르노 비디오를 찍어서 윤씨부인과 정준식을 협박하는 것이지. snuff 비디오는 수중에 없어 위협이 되지 못하니 새로운 협박거리를 만들어서 이용하자는 것이지”
“정주연의 포르노 비디오?”
“정준식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딸일세. 정주연은 실상 어릴때부터 제집에 있는 온갖 포르노테입을 보고 자랐네. 정준식이 어릴때 인숙의 비디오를 보았던 것 처럼”
“그 집은 그런걸 아무나 보게 하나요”
“윤씨부인은 실상 너무 바빠. 세세한 부분에 까지 신경쓰지 못하네. 그집의 세아들이 있는데 그나마 정준식만 그럴듯하고, 첫째아들은 의사인데 돈쓰고 의대들어간 돌팔이야. 어찌어찌 졸업은 했는데, 개업은 못했지만, 돈으로 쳐발라 그집 명의의 큰 병원 이사장으로 있지. 결혼을 하였는데 아들하나가 있긴해. 그런데 그 아들은 공부를 너무 못해. 겨우겨우 대학졸업하고선 아버지 병원의 총무로 있지. 매일 공금 빼돌리고 술집에 드나드느라 아직 결혼도 안했어. 셋째는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하나가 불편하지. 결혼도 않고 춘성군 대갓집에서 숨어 살고 있어. 그 셋째가 툭하면 주연에게 포르노를 보여주었지. 자기는 문뒤에 숨어서 지켜보면서”
알만한 집안이다.
“윤씨부인은 이 모든걸 치다꺼리하느라 정신이 하나없지. 그 집이 아직 안망한건 오로지 정준식의 존재 때문이지. 그런 정준식의 여식을 처참하게 무너뜨릴 협박무기가 있다면 그집은 끝이야”
“그런데 정주연의 포르노 비디오를 어떻게 찍냐구요? 강제로 협박해서?”
“아닐세 정주연은 그 모든 포르노에 숙달되어 있다네. 어릴때부터 아주 흥미롭게 포르노를 보았거든. 아마 개와 하는 것을 찍자고 해도 스스로 찍을 준비가 되어 있을거야.”
“그런 난잡한 섹스를 하자고 꼬드겨서 찍어선 자의로 찍었다고 하면서 언론에 흘린다고 협박한다?”
“맞아. 바로 그거야”

이정섭이 제정신인가 싶다. 하긴 그 머리로 여자둘을 사지에 몰아넣은 인물 아닌가.
“그 집 구조를 잘아신다며요. 그냥 총하나 들고 들어가서 윤씨부인을 죽이고 나오시죠.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인듯한데. 그리고 연지와 인혜이모도 구해 나오시고”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무모한 사람이 있나 싶은데. 그가 한말이 다 사실일까 하는 의구심이 문득 든다.
"일단 연락처 주시고 숨어계세요. 뚜렷한 대책은 없지만 다음에 다시 뵙는걸로 할께요“

그를 이렇게 돌려보내고 집으로 왔다.
실은 그동안 팽계쳐 놓았던 연지가 준 USB가 생각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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