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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9:55 532회 0건
도시의 가로등과 거리의 간판 불빛이 유난히 내 눈을 자극한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 천원짜리 두장과 삼백원뿐.. 막막했지만 용기를 잃지 않으려
두 눈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자꾸 눈물이 나려 해서 하늘만 보고 걸어가는데 왜 이리
눈물이 날까?

하늘나라에 있는 엄마와 아빠. 동생은 잘 지내고 있을까?
‘엄마..아빠 저에게 용기를 주세요..’

배가 고팠다. 거리의 식당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자장면..짬뽕.. 탕수육...
언제 먹어 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맛있었다는 추억뿐..지금의 나로서는 바라보기
조차 힘든 음식들 이였다.

가을의 날씨는 무척 스산했다. 어쩌면 나의 마음을 그래도 날씨가 알아주는 것 같아
기분은 상쾌했다. 비라도 내렸으면 좋으련만..내 눈의 눈물을 씻어 내리게..

배가 너무 고파서 걷기조차 힘이 들었다. 집에서 나올때 옷가지를 몇 개 주워 와서인지
가방도 꽤나 무거웠다. 거리가 너무 밝았기에 조금 어두운 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도 싫었기에 나를 바라보는 것조차 싫었다.

어느 낡은 건물의 입구..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무척 좁아 보였고 사람의 왕래가
적어 보였다. ‘그래..여기가 좋겠군.. 오늘 밤은 여기서 보내자..’
가방을 옆에 내려놓고 편의점으로 가서 빵과 우유를 샀다. 계단에 앉아 빵과 우유를 먹는데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빵을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너무나 배가 고픈 나머지
부스러기 하나 없이 먹어 치웠다.

저녁에 이모랑 싸우고 집을 나오느라 저녁도 못 먹고 거리를 헤매느라 기운을 소진해서인지
앉은 자리가 너무도 편했다. 무릎을 베개 삼아 가방을 가슴에 품고 머리를 수그리자 잠이
절로 오는 듯 했지만 여자 혼자서 이런 건물 아래서 자고 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였다.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지를 쇠뇌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을 보고 있었는데 깜빡 잠이
들었는지 내 어깨를 툭!~ 치는 느낌에 잠을 깼다.

“얌마! 따라 와...”

검은 점퍼 차림에 머리가 긴 남자가 내 어깨를 치고는 위로 걸어 올라가며 나에게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겁이 났다. 도망을 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를 망설이고 있는데 벌써 저만큼 올라간 그 사내는 나를 보더니 다시 말했다.
“얌마~! 걱정말고 올라와~! ”

그의 부드러운 말투와 힘이 있는 어조에 나는 그만 눌렸는지 내 발걸음은 어느새 계단을 밟고
올라가고 있었다. 문앞에 다달았을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글로브를 끼고 웃옷을 벗고
나를 노려보는 포스타가 눈에 들어왔다. 격투기 체육관이였다.

철문을 살며시 열고 안을 엿보았다. 가운데는 링이 있었고 샌드백이며 거울이 사방에 걸려 있었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창문사이로 거리의 가로등 불빛만이 흘러 들어와 이시시한 느낌만 들어보였다.

들어갈까를 망설이고 있는데 문이 덜컹 열렸다.

“괜찮암마!! 들어와.. ”

검은 옷의 사내는 한 손에 누런 냄비를 손에 들고 한 손엔 냄비 뚜껑을 들고 있었다.
나에게 들어오라는 말을 남기고 옆으로 걸어며 나에게 다시 말을 던졌다.

“너..라면 몇 개나 먹냐?”

“라면?”
라면이라는 말에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아..라면에 신 김치를 먹으면 정말 맛있겠다를
연상하며 국물에 밥 말어 먹는 상상을 하는데 사내는 어느새 냄비에 물을 한 가득 담고는
내 앞에 서서

“신라면 좋아하지?”

하고 약간의 미소를 던지더니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뻘쭘하게 서서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운동 좋아하냐?”

“네?..아..네..”

“그래?..나도 운동 좋아하는데.. 뭘 그렇게 서 있어? 이리와 앉어..”
“계란 몇 개나 먹냐? ”

그는 라면에 계란을 몇 개 넣어 먹는지를 물어보는지 냄비에 계란을 넣는 시늉을 해 보였다.
나는 한 개만 넣는다고 어색하게 손가락을 들어 보였는데 그는 어이없게도 계란을 네 개나
넣는게 아닌가? 이게 라면이야 계란 국이야...이렇게 계란을 많이 넣으면 비린내 나는데...를
속으로 생각하며 별루라는 인상을 지어 보였다.

“일루와 앉암마!! 여기..젓가락..글구..너가 뚜껑에 먹을래?”

그는 내게 뚜껑을 내밀었다. 나는 뚜껑을 받아 들고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시장이 반찬이랬던가?
라면이 그처럼 맛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라면을 순식간에 먹어치우자 그는 밥통을 열더니
밥을 꺼내서 라면 국물에 말았다. 그리고는 숟가락으로 퍼 먹는게 아닌가?
그것을 보니 나도 먹고 싶은 생각에 숟가락으로 같이 퍼 먹었다.

우리는 먹으면서 친해 졌는지 이제는 거부감이나 무서움 따위는 없었다. 그저 배불리 먹여줘서
고마울 뿐이였다. 배가 어느 정도 차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집 나왔니?”

말없이 머리만 끄덕였다. 배가 너무 불러서 말이 나오질 않았기도 했지만 내 목소리를 들려주기가
싫었음 더 크리라.

“갈 덴 있는겨?”

다시 나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곤 머리를 수그려 바닥에 놓여있는 가방만 바라보았다.
먹다 흘린 라면 국물이 가방의 멜빵에 노랗게 묻어 있었다. 무슨 라면에 그리도 계란을 많이 넣는데?
맛은 있었지만..그래도..계란은 너무 많이 넣었어..흠!


우리 아버지는 동사무소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나를 낳으신 아버지는 집안에 아들이 있어야 한다며 동생을 낳았다.
나와 동생은 두 살 차이가 난다. 동생과 나는 방과후엔 늘 아버지가 계신 동사무소에서 놀았다.
내가 5학년때 겨울방학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산의 친척집에 사촌언니가 결혼을 한다고
해서 내려갔다. 나는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병원에 누워있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동생을 데리고
병원에 와서 병간호를 하고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부산으로 가셨다.

“은수야~ 몸 조리 잘해라.. 아빠..저녁에 올께..우리 은수..하루동안은 혼자 있어도 되지?”

하루 동안만 혼자 있으라고 말씀하시고 떠나신 아버지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고속도로에서 눈길에 미끄러져 앞에 가던 덤프트럭을 받고 그 자리에서 우리 가족은 나와 영영
이별을 고했다. 저녁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자 나는 조금은 뾰루퉁한 얼굴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는데 돌아온 것은 이모 뿐이였다.

이모는 말없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셨다.
영문도 모르고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랑 아빠가 언제 오냐고 물어 보았지만 이모는
말없이 그냥 눈물만 흘리더니 이내 소리내어 우셨다.

“으이구..못난년.. 복도 지지리 없는년..으이그.. 흑흑흑...”
이모는 아픈 나의 가슴을 치며 하염없이 우셨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이모의 머리를 만지며
왜 그러냐고 물어 보았지만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다음날이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서 간호사 언니가 나에게 빵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 이쁜 은수..이 거 먹어.. 언니가 주는 선물이야..”

간호사 언니가 건네는 단팥빵을 들고 나는 마냥 즐거워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단팥의
향이 짙게 묻어 났다. 너무 맛이 있었다. 문득 동생 생각이 나서 반 쯤 먹다가 비닐 봉지를
접어 머리맡에 놓았다.

“은수야..왜..맛이 없니?”

“아니..동생오면 줄려고.. 동우가 빵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거든..헤헤”

언니는 눈물을 감추더니 나에게 그냥 먹으라고 했다. 이제 동우는 돌아오지 않는다면서..
나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아버지의 직장 동료들이 몰려와서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동생 동우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이라는 것을..

그 후로 나는 이모집으로 살림을 옮겼다. 밤이면 밤마다 동생 생각에..엄마생각에...아빠 생각에
나는 울고 또 울었다. 하지만 아마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모집에는 이모부와 사촌오빠 사촌언니
이렇게 넷이 살고 있었는데 나까지 다섯식구가 되었다.

처음 몇 달 간은 눈물로 지내느라 그 추운 겨울이 어떻게 지나 갔는지 몰랐다.
따뜻한 바람이 불고 들판에 새싹들이 하나 둘씩 잎을 내밀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봄..
이제는 울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하며 학교에 나갔다. 이모도 부모님의 교통사고로 받은 보험금
때문인지 나에게 각별히 신경을 써 주셨고 이모부도 나를 다정하게 대해 주셨다.

하지만 내가 중학교에 입학 할 때 쯤에는 사촌 오빠는 대학에 진학하고 언니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느라 돈이 무척 많이 들어갔다. 그래서 인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점점 달라졌다.
어떤 때는 많이 먹는다고 구박을 하더니 방청소니 거실청소니..심지어 화장실 청소까지 시켰다.
막내라서 내가 해야지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수위가 높아졌다.

도시락을 싸 주는데도 신경질을 내셨고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날이면 손찌검까지 하셨다.
사춘기의 나로서는 점점 버티기가 힘이 들었다. 하루는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저녁에 늦게
들어왔는데 저녁밥이 없다며 굶은 적도 있었고 생활비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용돈같은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사춘기가 지난 나에게 신체의 변화는 급격히 왔다. 가슴이 커지고 생리가 시작되었다.
어떤 날엔 생리대 사야 한다는 말도 못 꺼내고 언니의 생리대를 훔쳐서 사용하기도 했고
친구들에게 빌려서 사용해야 만 했다. 키가 점점 커지면서 교복이 맞지 않아 새로 구입해야
했지만 이모는 어디선가 헌 교복을 주워 오셨다. 그래도 작은 교복을 입고 다니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빨고 또 빨아서 다려 입었다.

참고서는 나에게 사치스런 존재였지만 교사였던 어머니의 영향 이였는지 반에서 10등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었다. 나의 담임은 어머니와는 친구분였기에 늘 나에게 잘 대해 주셨다.
참고서도 빌려 주셨고 상담도 자주 해 주셨다.
나에겐 너무나 큰 용기가 되었고 기둥이 되셨던 분. 정숙희 선생님. 그 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난다.

“툭!~ 툭~툭!”

“야~~ 저기 간이 침대에서 자라.. 난 나갈테니깐 걱정말고 다리 뻗고 자..”

그 검은옷의 사내는 내가 졸고 있는 동안 설것이를 다 하고는 사무실 문을 잠그고 나갔다.
나는 가만히 사무실을 돌아 보았다. 낡은 책상.. 이력서처럼 보이는 종이들이 몇 장 뒹글거리고
금전출납부와 싸움에 관한 책들.. 한 켠에는 칸막이가 있었고 그 뒤로 국방색 간이 침대가 보였다.
베개라고 하기엔 허접했지만 그래도 베개가 있었고 난로도 피어 있어서 따뜻했다.

그가 나간 문을 확인했다. 잠겨있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입구의 철문도 잠겨 있었다.
나는 보조 잠금장치를 다시 잠갔다. 조금 안심이 되어서야 사무실로 들어와 간이 침대에 몸을 뉘었다.
따뜻했다. 난로의 열기가 따뜻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편하다는 생각이 나를 더 따뜻하게 한 것 같았다.

이모네 집에서는 언니와 같은 방을 썼는데 언니가 고등학생이라서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였다. 일주일이면 3~4일은 거실에서 자야만 했다. 오랜만에 편하게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무언가를 툭~툭~ 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창문 사이로 아침 햇살이 조금씩 들어왔고

누군가가 샌드백같은것을 혼자서 열심히 치고 있었다. 가만히 문가에 서서 바라보았다. 문은 유리문이였기에
체육관은 한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의 그 사내였다. 봄이라지만 아직은 겨울의 추위가 가시지 않아 싸늘한
봄의 아침에 런닝차림으로 땀을 흘리며 운동하고 있는 그 사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이~~ 꼬마친구..잘 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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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6-08-11
접속일 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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