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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2:47 491회 0건

그날 저녁, 한강그룹 본사

오후 7시, 손태산이 두 달 만에 다시 본사를 찾자 사람들은 놀란다. 아직 약속한 기일이 남아 있고 다들 태산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산은 회장실로 부축도 안 받고, 안 집사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회장실 안에는 강택과 그의 측근들이 있다. 안 집사는 세영을 찾았지만 세영은 없다. 태산은 회장 자리에 걸터 앉는다. 그곳에는 ‘회장 손강택’ 이란 명패가 당당히 붙어 있엇다.

태산은 그 명패를 집어 던진다.
“아버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강택이 묻는다.

“이놈. 긴 말 필요 없다. 앞으로 30분 내에, 네놈들이 가진 회사의 모든 재무 제표를 내 앞에 대령하지 않으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라.”

태산은 강택의 자리에 앉았고, 경호원들이 “회장 손태산” 이라고 쓴 명패를 그 자리에 올려 놓는다. 강택은 생각했다 .. 아버지가 무슨 노망일까?

“너는 모든 형제들에게 연락해서 가진 기업들의 결산서를 가져 오도록 해! 일단 네가 가진 한강건설과 한강유통의 결산서부터 당장 내게 대령하도록.”

“아버지, 그걸 알아야 할 필요가 어디 있죠?” 강택이 이죽거린다.

“내가 좀 봐야 겠다는데 무슨 개소리냐? “ 태산은 심이철, 유진석 등의 손강택 측근들에게 소리친다. “너희들은 마네킹이냐? 가져오란 거 안 가져오고 뭣들 하고 있어!”

이 때 허겁지겁 손길우가 올라온다. “할아버님 안녕하셨습니까?”

길우는 젊은 시절의 손태산과 매우 닮았다. 하지만 손태산은 외모가 닮았다고 정신도 닮는 건 아니라며 오히려 미워했다.

“네 아내는 아직도 친정에 있지? 데려온다고 했는데 왜 못 데려와?” “…”

“두 가지 선택의 여지를 주겠다. 24시간 내에 데려오든지, 아니면 이혼 절차 시작해!” “네? 그녀가 원치 않습니다.”

“그럼 이혼해야지, 계속 데리고 살아? 그런 정신머리로 회사를 어떻게 이어받아?”

잠시 후 모든 회사의 사장들이 집합했다.. 하지만 그나마 제일 괜찮은 석유화학의 손강찬 사장은 없었다.

“강찬이는 어디 있지?”

강찬 대신 온 부사장이 모기소리만하게 대답한다. “유럽 출장 가셨습니다.”
“그래도 그놈은 싹수가 있어 보여서 조카이지만 중용했는데 안되겠군. 자, 전부다 니들 회사의 결산서를 보여 줘.”

하지만 서로 눈치만 본 채 아무도 보여 줄 생각을 않는다. 전자의 손강호가 말한다. “내일까지만, 내일까지만 여유를 주세요.”
“니가 사장이면 그런 건 외울 정도가 되었어야지!” “일이 바빠서…”
그러자 경호원이 가방 속에서 사진 하나를 꺼내 던져 준다. 중국인 듯한 배경에서 어느 소녀가 열심히 강호의 불알을 핥고 있다. 소녀는 16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인다. 강호는 행복한 표정이었다.

“중국 공장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겠지?”

강호는 그래도 부끄러움도 없이 대답한다. “아버지는 여덞 명의 여자에게서 열세 명의 아들딸을 뽑아 내셨잖아요?”

“이놈! 그래도 나는 기업경영은 똑바로 했다.”

자동차의 손강문이 대꾸한다. “말은 똑바로 하세요. 구강환의 회사 뺏어서 더 빨리 자랐잖아요?”

“니들은 그럴 재주라도 있어? 강택이. 그 코딱지만한 오도어 하나 못 먹어서 정송어패럴에게 빼앗겼잖아?”

“….”

“너희들 중 아무도 회사 경영에 애착이 있는 사람이 없으니, 너희들 모두를 오늘 부로 사장 직에서 면직하고 내일부터는 새로운 사람들이 회사를 이끌게 될 것이다.”

“그게 누군데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우리들의 회사를… “
“우리보다 회사를 잘 경영할 사람이 어디 있다고…”

손태산이 대답한다. “그건 니들이 알 바가 아니고, 이제 니들은 사장직에서 모두 면직이다. 이상.”

태산은 일어나 그 곳을 나간다. 손강택이 소리친다. “이건 아닙니다.”

태산이 말한다. “다른 놈들은 모두 나가라. 나는 강택과 독대할 테니까.”

모두 다 투덜거리고 태산을 욕하는 가운데, 강택은 수하 심이철, 유진석을 옆에 배석시킨 채 태산의 말을 듣는다.
“왜 그들을 네 옆에 두느냐?”
“아버지가 내게 무슨 짓을 할 지 어떻게 압니까? 구강환에게도 …”

“너는 애비인 나를 도청을 했어. 그리고 사람을 시켜 내 집사도 도청을 했다. 왜 그랬냐?”

강택은 주먹을 쥐고 대답한다. “바로 오늘 같은 일이 생길 줄 알았기에 도청을 했습니다. 왜요?”
“그건 불효야. 너는…”
“아무 소리도 없이 구강환처럼 쫓겨나는 것보다야 훨씬 낫죠.”

강택은 조금도 밀려날 기색이 없어 보인다.

태산이 말한다. “내가 너를 너무 잘못 봤다. “
“아버지의 진정한 장남은 접니다. 그 망할 년이 낳은 …”
“네 큰어머니시다!”
“우리 어머니가 그년과 그년의 아들 때문에 어떻게 사셨는지 알아요? 누나가 왜 아이 낳기를 거부했는지 알기는 아냐고요! 다 구강환 그 자식 때문이예요!”

“이놈! 네놈이 그런 소인배이기 때문에 너는 회장이 될 수 없다. 내일까지 회사를 비우고 떠나라!”

“저는 구강환과는 다릅니다. 절대로 조용히는 죽지 않을 겁니다.”

심이철, 유진석도 생각이 없지 않았다. 이젠 손자를 본 할아버지인 손강호를 온 형제들 앞에서 개망신을 주질 않나, 이런 식이라면 손강택이 싸울 만도 했다.

“으음 … 네가 내게 반항한 댓가는 꼭 치르게 될 거다!”
“이미 치렀습니다.”

강택은 옷을 걷어 올리려 하지만 손태산은 보지 않고 그냥 나가 버린다.

강택은 문을 잠근다… 두 부하들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않는다. 강택이 말한다. “빨리 형제들을 모두 우리집으로 모이게 해. 그리고 안세영도 불러.”
“회장님. 안세영은… “ “내 말이 말같지 않아?”

“어떻게 하시게요? “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지?” “강택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

손강택의 집 자체는 크지 않았기 때문에, 손길우의 요새 같은 집으로 모두 모였다. 이곳은 도청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이다.

“아버지의 그런 태도를 이해할 수 없어요. “ “이대로 밀려날 수는 없습니다.” 형제들의 얼굴은 모두 분노로 가득차 있다.

“아버지는 우리들은 더 이상 필요없게 된 거야.” “그게 무슨 말이죠?”

“너희들 구강환 기억하지?”

형제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한때는 손강환이라 불리면서 회장님의 후계자로 불렸던 그 사내.

“구강환에겐 아들이 하나 있어. “
“아, 구선혜 그년이 낳은 아들 말이죠?” 한강병원 한서국 원장의 부인 손강은이 물었다.

“맞아. 구태정이란 놈인데, 이 놈이 아주 맹랑해.”
“뭐 하는 놈인데요?”

“정송그룹이라고 알지? 우리의 신경을 갉아 먹는 신생기업. “ ‘네.”

강택이 말한다. “정송그룹의 실제 오너가 구태정이야.”
“뭐라고요?” 모두 놀란다.
“거짓말이죠?” “이것도 무슨 음모가 아닌가요?”

이 때 안세영은 사진 하나를 보여 준다. 안 집사가 정송그룹 앞에서 서정화를 차에 태우는 장면이다. 서정화가 누군지 그들은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단지 손태산이 정송그룹과 뭔가가 있다는 것만 보여 주면 된다.

다들 모두 충격을 받은 듯하다. 강택이 말한다. “회장님은 구태정에게 모든 걸 넘길 거야.”

“그놈이 뭐 해서 돈을 그렇게 벌었대요? 아주 빈손으로 쫓겨났는데.”

“그건 조사 중이야.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

“우리가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요?” 형제들은 소리소리 지른다.

“길게 말할 것 없고, 구태정을 막아 싸울 사람이라고는 나 하나 뿐이다. 너희들은 모두 나를 도와 줬으면 한다.”
손강호가 소리친다. “형. 형이 우리 회사를 다 먹으려는 거죠?”
“이 멍청한 놈아. 우리의 지분이 분산되어 있으면, 아버지 지분이 구태정에게 갈 때 구태정이 최대주주가 될 회사가 거의 다야.”
“그러면…”

“상호출자된 여러 회사들의 복잡한 지분체계를 통일하여, 모든 지분을 나 손강택에게 집중하고, 나는 너희들에게 그에 해당되는 돈을 지급하겠다. 어떠냐?”


“형님!” 모두 입을 모아 손강택에게 들이댄다. 그러나 강택은 아무 변화도 없다.

“어떠냐. 구태정은 너희들 모두에게 엄청난 한이 있다. 나는 그래도 너희들의 형이다. 내가 너희들을 지켜주길 원하면 그렇게 하고, 구태정의 처분에 맡기겠다면 그렇게들 해라!”

모두 할 말을 잃는다. 구태정은 그들 모두에게 원한이 있고 결코 해피엔딩으로는 끝날 수 없는 상황이니까.

“내일 아침 8시 반까지 서류를 갖춰라. 니들 변호사들 부를 테면 부르고. 그룹 법률팀은 모두 내 편이다. 시간 없으니 오늘 밤 안으로 다들 일을 끝내라. “

다들 모두 망연자실하며 나가고, 강택이 손짓하여 안세영 등 측근들도 모두 나간 후 길우만 남았다. 그가 묻는다. “아버지. 그러면 우리들의 희생이 너무 큽니다. 그들의 지분을 다 사들이려면…”
“아버지에게 다 생각이 있단다. 일단 지분을 먹고 난 후에는, 차일피일 시간을 끌어서 이들이 다 포기하도록 해야지.”

‘법정 투쟁으로 간다면… “
“나는 한강그룹 현직 회장이다. 아무래도 내가 유리하겠냐, 그들이 유리하겠냐? 그리고 이들의 입을 막게 할 방법이 내게 다 있다.”

길우는 아버지를 붙잡으며 말한다 . “할아버지는 당하고만 살 사람이 아닙니다. 분명히…”
“떽! 나도 당하고 살 사람이 아니야. 이 모든 건 다 너를 위한 일이니, 너는 그냥 보고만 있어라.”
“저도 후계자입니다. 알 건 알아야지요.”

손강택은 웃는 얼굴로 대답한다.
“세상에는 내 선에서 끝내야 할 일도 있는 것이다. 너는 나중에 자연히 알게 될 것이야.”

“아버지. 이 모든 게 다 언젠가는 제 것이 될 겁니다. 저도 알아야 싸움을 할 수 있을 게 아닙니까?”

“아직 네가 자식이 없어서 모르는구나. 아버지라면 자식에게 숨겨야 할 것도 있는 법이고 자식은 그걸 굳이 파내지 않는 게 효도란다.”

길우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버지는 저도 의심하시는 겁니까?”
“내가 네 나이 때 어떻게 했는지 아느냐?” “…”
“나는 내 능력으로 일을 결행했다. 그런데 너는 그 나이가 되도록 네 아내 하나도 휘어잡지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내가 하려는 일을 짐작하려 들어? 섣부르게 건드리다간 오히려 산통 깨지니, 너는 네 아내 문제부터 어떻게든 해결하고 와서 이야기하자.”

==

구태정은 눈을 뜬다. 오경훈이 그의 옆에 있다. 텐트 안인 듯하다.

“정신이 드나?” “…네.”

“자네는 3일 동안 혼수상태로 있었네.” “네?”

“덕분에 남극 탐험도 그만큼 늦어졌지. 대장은 가야 한다고 우기는데 내가 버텨서 겨우 막았네.”

“그렇다면…”

구태정은 처음으로 추위를 느낀다. 지금까지 남극에 와서 추위라고는 느낀 적이 없는데…

“자네는 얼음에 갇혀 있었네. 내가 고집을 부려서 연료를 대부분 소모해서 자네를 꺼내 줬다네.”
“그 이유가 뭡니까?” “자네 아버지가 구강환 맞지?”

그렇다. 경훈은 아무리 봐도 태정이 강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태정이 주는 느낌은 구강환이 주던 느낌과 같았기 때문에 기대를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네.”

“남극에 온 이유가…”
“아버지의 영혼을 달래러 온 것입니다. 아버지가 유골을 남극점에 뿌려 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관광단을 따라 오든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도 있지 않은가? 왜 자네는 사서 이 고생을 하는가? 자네는 이런 데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오경훈은 마치 아버지 같이 태정에게 말한다.

“이 일은 오로지 제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

경훈은 입을 다문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용호에 대한 경계를 좀더 강화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우혁은 탐험에 적당치 않고, 한주필은 태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앞으로는 정방형이 아프든 말든 태정과 한 조로 집어 넣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하영섭 단장도 자신의 텐트에서 걱정을 하고 있다…

구태정은 아무와도 친해지려 하지 않고 누구와도 대화를 안 한다. 그런데 오직 오경훈 부단장만 태정과 이야기가 가능했다. 한국에서 스폰서가 따로 집어 넣은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태정인가?

하영섭에게 중요한 건 남극 대장정의 성공이었지 일개 대원이 아니었다. 주용호 등은 구태정에 대한 특별대우를 대단히 싫어하는 것 같았고, 이들의 의견도 참조를 해야 했던 것이다.

더우기 태정을 찾느라 연료를 꽤 많이 소비했다. 이대로 가면 무보급 남극탐험이 성공할 수 있을 지도 불투명했다.

마침 오경훈이 들어오자 영섭이 묻는다. “도대체 구태정이 뭐기에 모든 걸 희생하고 그 대원만 찾는 겁니까?”

“그 사람은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의 아들이기 때문이야.” “네?”

경훈이 태연히 대답한다. “구태정은 구강환의 아들이야.”
하영섭은 구강환이 누군지도 모른다. 사진을 본 그는 말했다. “하나도 닮은 데가 없는데요?”
“자네는 구강환을 잘 모르니까 하는 소리야. 느낌으로 봐선 분명히 구강환의 아들이 맞아.” “하긴 부자간에 별로 닮지 않을 수도 있지요.”

“그러니 나는 태정을 돌봐 줘야 할 의무가 있어. 어쩌면 태정을 내 아들로 삼을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깐 말이지.”

부자라… 경훈에겐 영원히 인연이 없을 말이다… 하지만 경훈의 아래쪽에서 약간의 힘이 솟아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그의 잃어버린 성기능을 이 남극에서 되찾을 수도 있곘다는 생각을 경훈은 실로 22년만에 하기 시작했다…

한편 같은 시각, 어우혁은 태정이 있는 텐트로 찾아왔다.

“캡틴, 큰일났습니다.”

우혁은 태정에게 메시지를 보여 준다.
“손강택 자칭 한강그룹 회장이 모든 형제들의 지분을 입수하여 한강그룹 최대 주주로 올라섰습니다.”

흠흠. 네놈이 네 무덤을 파는구나. 손태산, 그 다음에는 손강택이라. 덕분에 일이 매우 쉬위지게 되었군.

“좋아요. 지금 당장 석경 회장에게, 일단 적색 봉투에 있는 대로 하라고 하세요.” “네.”

우혁은 태정이 지니고 있는 뭔가를 발견한다. “그게 뭡니까?”

태정이 갖고 있는 직육면체는 뭔가에 싸여 있었다.
“아, 알 거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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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그룹 본사

최근 여러 수주에서 정송건설이 한강건설을 무찌른 지금, 정송그룹의 사기는 높아져 있었다. 메시지를 받은 석경은 부하들과 논의를 하고 있다.

“캡틴께서 일단 한강자동차 공략을 중단하고, 한강건설을 공략하라는 명령이 내렸습니다. “ “그건..”
“한강건설은 손강택의 핵심 회사입니다.”
“그렇지만 한강건설 자체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회사인데 왭니까?”
“아마도 손강택을 혼란시키기 위함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캡틴의 명령을 잘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석경은 회의가 끝난 후 부하들을 돌려 보냈다. 그리고는 이미 개봉된 적색 봉투 말고, 2개의 밀봉된 봉투를 만져본다.

녹색 봉투는 캡틴이 무사히 남극점에 도착한 후 귀국 비행기를 타는 순간 개봉할 것이다.

그리고 노란 봉투는, 캡틴의 유고시 즉각 개봉될 것이다.

녹색 봉투가 무엇인지는 석경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노란 봉투의 내용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것이 열리는 순간 한강그룹은 흔적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는 손씨 일가 전체에 대한 멸문지화도 들어 있을 것이었다.

오늘 한강그룹 여러 계열사에서, 손태산이 임명한 경영인들과 손강택 이하 여러 손씨 일족들 사이에서 싸움이 있었다고 헀고, 손강택은 급히 법정명령을 받아 손태산의 사람들을 내쫓았다고 했다.

캡틴(태정) 이 나를 회장 자리에 앉힌 것도, 한국 비지니스 실정을 잘 모르는 캡틴이 한국식으로 일어나는 더러운 일들을 나에게 하라고 맡긴 게 아니겠는가? 그렇다… 자기만 살겠다고 튄 대아 나회장 대신 하늘은 나 석경에게 대아정신을 부활시키라고 했고 캡틴은 그 사자인 것이다.

나는 하늘의 뜻을 따를 것이다.
==


은하그룹 소속의 고도 호텔의 어느 방

손태산은 자기 회사 일을 논하는데 다른 재벌 소유의 호텔을 빌려야 하는 게 한심했다. 한강그룹 소유의 강변호텔은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미 부도가 나서 사실상 망한 한강해운의 노 이사는 리오에 있는 한강해운 지사장의 직계 선배였고 친한 편이었다.

“회장님이 직접 저 같은 걸 그것도 여기서 뵙겠다고 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노 이사가 말한다.

“긴말 할 것 없고 한 가지만 대답하게. 거짓말할 경우는 살아나갈 수 없을 테고, 진실을 말한다면 한강해운 사장으로 임명하겠네.”

“회장님. 그 회사는 이미.. “ “잡소리는 말고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게. 잡소리 할 경우는 노로 인정하겠네. “ “네.”

손태산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끝내 강택이를 버려야 하는가…

“리오 지사장이 칠레로 갔는가, 안 갔는가?”

이미 알고 하는 말이리라.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갔습니다.”
“한강상사 파리 지사장과 한강건설 두바이 지사장과 같이 갔지?” “예.”

“좋아. 거짓말 말고, 왜 갔는가만 답하게. 왜 갔는가?”

“그건 저도 모릅니다.”

“이유없이 근무지를 이탈했으면 보고가 있을 게 아닌가?”

“그건…”
“말 안 하면 나가는 즉시 해고일세.”

지사장, 날 용서하게. 나도 살아야 하잖아?

“작은 회장님 (손강택) 이 직접 관리하시는 일이라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떤 일인가?”
“그건 비밀 업무라 작은 회장님 이외에는 보고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

“그러면 특별히 지급 명령된 돈이 있는가?”
“없습니다.”

“알았네, 나가 보게. 자네의 승진 발령은 내년 봄에 있을 거야. “

“회장님. 그런데 한강해운도 모두 작은 회장님 손에 있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그건 네가 신경쓸 문제가 아니야!”

사람이 나가자 손태산은 축 늘어진다. 안 집사가 말한다. “회장님!”
“강택이 놈이 결국 이런 짓을 하는군. “
“어떻게 할까요?”
“방법은 하나 뿐이야. 지금 당장 정송그룹의 석경을 만나야겠네.”

==

다시 1회 첫 장면으로 돌아가서

남극 진군은 착실히 잘 이뤄지고 있었다.

오늘은 남위 80도를 지났고, 앞으로 약 20일 정도면 남극점에 도착할 것이었다.

태정은 얼음 속에서 거의 하룻 동안 갇혀 있은 뒤 몸에서 나오던 열기를 거의 다 잃었다. 그래서 남쪽으로 가는 길이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그냥 참았다.

오경훈이 말했었다.

“네 아버지도 누군가에 의해 남극으로 들어가는 배 위에서 집어 던져졌어. 지영재 대원은 네 아버지를 구하려다 죽었고, 네 아버지는 초죽음이 되어 그냥 거기서 돌아올 때까지 혼자 버티다가 폐인이 되어 집에 돌아간 건 너도 알 거야.”

“그 떄 대원들의 명단을 알 수 있습니까?” “이 사람아. 지금 알아서 무엇 하나?”
“부단장님이 협조 안 하시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알아낼 겁니다. 한 사람씩 족치면 뭔가가 나오겠지요.”

“…”

그렇다 … 이 모든 건 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한편, 조용호는 우진하가 실패하자 방법은 총 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기회를 보아 태정을 쏘려고 했지만 오경훈이 버티고 있어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에게 주어진 이리듐 폰으로 전화가 온다.

“예, 조용호입니다.” 이 전화를 할 사람은 한강그룹 사람밖에 없다.

“나 한강건설 두바이 지사장이오. 회장님 (손강택) 께서 빨리 일을 실행하라는 명령이십니다. 결행하는 순간 지체없이 연락하시오. “

“3일 후면 어떻겠습니까? 지금은 폭룽우가 심해서 …”
“일주일 여유를 주지. 그 동안 아무 일도 없으면 계약 취소요.” 전화가 끊긴다.

아무래도 노출된 사람과는 안 되겠다… 마침 한주필이 지나간다.

“한 대원님. 아무래도 구태정이 더 이상 갈 수는 없겠죠?’
“힘들어. 우리의 힘만 빼고.”

“기회 있을 때에 면담 한번 부탁드립니다. 놈에게 탐험의 실체를 깨닫게.” “응.”

한주필은 이제 태정의 적이다.

==

정송그룹 회장실

석경은 안준성 집사의 전화를 받자 매우 놀랐다. 이틀 후에 만나자고?

일단 캡틴에게 보고를 하긴 했지만 매우 중요한 문제다. 지금 한강그룹의 상황이 막장드라마처럼 조석으로 변하는 이 때, 손태산이 자길 만나자고 한 것의 의미를 모를 만큼 석경은 어리석지 않았다.

석경은 긴급히 중역회의를 열었고, 이들은 태정이 특별한 지시를 내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석경에게 결정을 넘겼다는 결론으로 나아갔다. 석경도 동의한다 … 이제 석경도 캡틴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캡틴이 생각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석경은 사람을 시켜, 이틀 후에 손강택 일당들이 알 수 없을 만한 곳에서 회동하기 위해 장소를 섭외토록 명령했다.

회의가 끝나고 다들 나갔는데 뜬금없이 서정화가 들어온다.

서정화는 최근 며칠 견딜 수가 없어서 몸을 떨었다.

밤마다 누군가가 태정의 머리에 총을 쏘는 것 같은 꿈이 계속 꾸어졌다.

그녀는 오늘 모든 걸 걸고 석경을 만나러 온 것이다.

“회장님.” 방 안에는 그녀와 석경 두 명만 있다.

“정화 양 .여긴 왠 일이신지요?”

“단도 직입적으로 말하겠어요. 태정 씨는 지금 위험에 빠져 있지요?”

“그런 건 정화 씨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외삼촌이 말했어요. 봉투 3개를 회장님꼐 줬어요. 그 내용이 뭐죠? 저는 태정 씨와 같은 사람이라고 봐도 되잖아요?”

“그 내용은 공개할 수 없습니다. 저도 그 내용을 모릅니다.”

서정화는 눈썰미가 좋았다. 한번 돌아보자 봉투가 있을 만한 손금고를 본다. “저걸 열어봐도 되나요?”
“좋을 대로 하세요. 봉투 내용만 뜯지 않으면 됩니다.”

그녀는 손금고를 연다 . 봉투 하나는 이미 뜯겨져 있다. 그리고 두 개의 봉투가 있다… 봉투의 두께는 노란 쪽이 녹색보다 훨씬 두꺼웠다.

“알겠어요… 미안해요. 이 이야기는 태정 씨에겐 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곧장 밖으로 나간다… 태정의 성격으로 볼 때 노란 봉투를 뜯어야 할 일이 생길 때에는 태정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공중전화로 들어가 전화를 건다.. “안 집사님?”

잠시 후 손태산의 차는 서정화를 태우고 모 고급 한정식당으로 향한다. 서정화는 생전 처음 보는 진귀한 음식들을 보고 놀랐다. 이것이 부의 세계인가…

손태산이 말한다. “나는 늙었으니 많이 먹지 못하오. 마음껏 드시오.” “네.”

손태산은 서정화를 보며 생각했다… 비록 집안도 별로고 돈도 없지만, 제대로 된 아이구나. 이런 사람을 손자 며느리로 두게 되다니…

안 집사도 그녀를 보며 생각한다. 역시 이런 사람은 손 회장님 같은 분의 손자며느리가 되어야지. 아이고 내 아들은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

“길게 말 안할 께요. 태정 씨는 누군가에게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듯해요.”
“뭐라고?”
“석경 회장님은 정, 관계에 줄이 없어요. 회장님은 정관계 전체에 인맥이 있으세요. 태정 씨를 구해 줄 방법을 찾으러 여기 왔어요.”

그녀는 진정으로 구태정을 걱정하는 듯했다.

이제 태정과의 화해를 위해 손태산은 마지막 베팅을 결정을 했다.

“솔직히 말해 봐. 정화 너는 석경을 더 믿어야 하는 게 아닌가? 석경은 길정이의 부하인데…”

서정화가 대답한다.
“석 회장님은 태정 씨가 잘못되면 제일 이익을 볼 사람이예요. 그에게 맡길 수는 없어요.”

“네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냐?”

“석 회장님은 태정 씨를 일 관계로 만나는 사람이지 캡틴을 목숨 바쳐 위하는 사람은 아니예요. 회장님은 태정 씨를 지켜 주실 생각이고 그럴 수 있어요…”

손태산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

5일 후, 남극

이제 83도선을 넘어 간다. 그 동안은 조용호는 태정을 죽일 기회가 마땅히 없었지만, 오늘은 잠시 쉬고 가기로 결정했기에 더 이상 늦출 순 없다.

보아라, 구태정. 오늘이 너의 마지막 날이다.

미리 약속한 대로, 한주필이 태정을 불러냈다.

한주필은 태정에게 이야길 시작했다. 그 동안 용호는 권총을 꺼냈다. 엽총도 좋지만, 단거리에선 권총이 더 위험부담이 적다.

이제 끝이다. 끝나고 나면 곧바로 전화를 걸 것이고 그 돈과 탐험대장 자리는 내 꺼다!

그는 정확하게 권총을 겨냥했고, 총알은 정확히 태정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소음기를 단 권총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총알은 태정의 목에 정확히 맞았다!

기쁨을 감추지 못한 용호는 권총을 크레바스에 던지고, 조용히 다가간다. 한주필이 말했다. 이봐!

문제는 오경훈이 엽총을 들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멀리서 봐도 얼음에 피가 흐르지 않는다.

그 대신 왠 하얀 가루가 잔뜩 흘러나와 있었다…

잠시 후 쓰러진 태정이 목을 만지며 일어선다. 목 뒤에서는, 찢어진 부적 포장지가 떨어져 나온다.

“아버지!” 태정은 무릎을 꿇고 땅에 앉는다. 그로서는 죽을 뻔한 것보단 아버지의 유골이 남극점에 닿지도 못하고 이런 곳에서 흩날리게 된 게 더 큰 일이었던 것이다.

이 때 김송수가 뒤에서 나타나 한 발을 쏜다… 총알은 조용호 쪽에 날아가나 용호는 피한다. 그러나 그걸 본 오경훈의 엽총이 불을 뿜는다. 김송수는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빙판에 쓰러진다.

안에서 하영섭 단장도 총을 들고 나온다. 그리고 우진하, 어우혁 등도 모두 달려왔다… 조용호는 다시 총을 가지러 갔지만 정방형의 발길질에 쓰러진다.

하영섭이 소리친다. “조용호를 묶어!”

이 떄 우진하가 주머니칼을 뽑아들고 태정에게 달려온다… 왜 그랬는지는 그도 모른다. 아마 약기운 탓이었으리라.

그러나 오경훈의 엽총은 우진하의 목을 꿰뚫는다.

남아 있는 윤동환, 정방형, 어우혁과 하영섭 대장은 조용호를 마구 때린다. 태정은 얼떨떨하여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주필! 너는 오늘 부로 더 이상 내 부하가 아니다!” 하영섭이 소리친다. 조용호는 순식간에 사지가 묶였고, 조용호의 권총도 수거되었다.

태정은 정신을 차리고 조용호의 얼굴을 발로 밟는다.

“이놈! 왜 나를 죽이려 했느냐? 내가 널 언제 봤다고.”

“분하다. 나도 이 지랄 그만 하고 싶었는데.” 조용호는 영어로 말한다… 하지만 태정은 이를 한국어로 곧바로 받아 올린다.

“한 가지만 묻자, 손태산이냐, 손강택이냐? 그것만 말해 주면 너는 미국에서 재판받을 수 있게 해 주마.”

이 말을 들은 용호는 그제서야 태정이 보통 인간이 아니고 미국사정도 잘 아는 사람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젠 늦었다.

“내가 죽었으면 김송수가 너를 쐈을 것이다. 그들은 김송수에게도 작업을 해 놨었다. 결코 너를 살려 둘 자가 아니다. 어떠냐? 살 테냐, 아니면 여기서 죽을 테냐?”

조용호도 계산이 빠른 사람이다. 일단은 살아야 한다. 혼자 죽을 수는 없다.
“난 그 사람들은 모른다 . 내가 아는 손씨는 손길우뿐이다.”

손길우 … 손강택의 아들이다!

태정은 소리친다. “어우혁! 쏟아져 있는 아버지를 최대한 뭔가에라도 담아라!” “네!”

센 바람이 분다. 몇 가루나 모을 수 있는 지는 모르지만 한 줌이 남더라도 반드시 아버지는 남극점에 뿌려질 것이다.

총알은 뼈에 반사되는 게 아니라 뼈를 빙빙 돌고 뚫고 나가는 습관이 있다. 위생병 출신이던 장산 스님은 이걸 알고 아버지의 유골을 벽돌 형식으로 묶었고, 부적도 특수 재질로 하여 최대한 방탄효과를 내려고 애쓰셨던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스님은 미리 예견하셨을까?

돌아가서는 스님이 원치 않더라도 자모암을 초현대식으로 다시 지어 드려야겠다. 스님에게 해 드릴 수 있는 건 그거밖에 없지 않은가.

하영섭 대장이 말한다. “자네에게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네, 미안하네.”
“….”

손강택! 네놈이 그렇게 악할 수가! 그래도 내 숙부라 참으려고 했는데, 이젠 어쩔 수 없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날씨도 좋다. 영하 19도밖에 안 되는데 이 정도면 남극에서는 폭서다.

이젠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없다. 어우혁에게 이리듐 폰을 가져오게 했다.

서울의 석경은 곧바로 전화를 받는다.
“석 회장. 미안하오. 서울은 한밤중인데.” “아닙니다 캡틴.”

석경 옆에 누운 여자는 석경을 붙잡으려 한다… 하지만 지금은 결정적인 순간이다.

“미안, 좀 비켜 줄래?” “당신…. “

석경은 이미 옷을 입고 있었다. “예.”
“당장 회사로 가서 노란 봉투를 개봉하시오.”

“하지만 아직 손태산 회장의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 “

태정은 온갖 충격과 감정에 싸여서 너무 서둘렀다는 생각이 든다.

“좋소. 일단 손태산을 만난 후에 당장 연락하시오..”

“그런데 요새 정화 씨의 동태가 좀 이상합니다. 몰래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도 손태산 회장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소. “

이 때 헬리콥터 소리가 난다. “나중에 연락하겠소.”


여자는 석경의 동창이다. 오늘 우연한 기회에 만났다.. 여자의 남편은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였고 지금 외국에서 세미나 중이라고 했다.

석경은 여자에게 말한다. “자, 다시 시작하자.”

석경은 여자를 눕힌다. 그는 성욕이 일어나 견딜 수 없었다. 여자는 비아그라를 잔뜩 먹어야 발기가 될까 말까 하는 남편과 이 남자가 비교가 되었다.

여자의 얼굴은 아직도 젊었으나 어깨에는 역시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석경은 그녀의 배를 한번 만져 준 후 잔뜩 일어선 좆을 집어 넣는다.

“아악.. 아아아악!”

석경은 옛날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던 그때를 생각하며 골반을 움직인다. 여자는 몸을 비튼다. 석경은 여자의 유방을 빤다… 여러 차례의 시술로 축 늘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탱탱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는 그런 거에는 개의치 않고 그녀의 낡은 샘 안에 정액을 토해낸다… 어차피 누군가에게라도 해야 했던 일이다. 그는 그 후 거의 30분 동안 움직이지 않고 그녀의 품 안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그녀는 매우 기뻤지만 이 남자가 좀 무서웠다. 어차피 다시 볼 일 없을 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으로 끝내긴 좀 아깝다..

--

“이게 무슨 헬리콥터입니까?” 태정이 묻는다. 오경훈이 대답한다. “그러지 않아도 조용호 등의 행태가 이상해서 불렀네. 이런 유혈극이 있을 줄은 몰랐지만 말일세.”

조용호는 혹시 자살할 까봐 입까지 단단히 포박했다. 한주필은 죄가 크지는 않지만, 이제 산악계에선 끝난 존재이다.

하영섭 대장이 말한다. “이미 2명이 죽고 2명이 잡힌 지금 더 이상 남극 탐험을 이어 나간다는 건 의미가 없네. 이런 놈들을 데리고 온 나의 잘못일세.”

“아닙니다 대장님. 대장님, 부대장님, 그리고 여러 분들의 공적은 잊지 않겠습니다.” 태정이 말한다.

“정방형, 어우혁의 공은 알지만 윤동환은 어떻게 할 텐가? 그는 조용호 우진하를 따르던 사람인데?”
“일단 그들과 동조하지 않고 조용호 체포에 도움을 줬으니 역시 공을 인정합니다.”

윤동환은 머쓱해진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이래서 어우혁이 캡틴 캡틴 한 건가?

헬리콥터는 멈추었고 무장한 칠레 군인들이 내려온다. 태정은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유일한 대원이었기 때문에 스페인어로 이러이러한 설명을 한다.

군인이 말한다. “어쨌든 모두 참고인 자격으로 프레이 기지까지 가셔야겠습니다. 그곳에서 간단한 조사를 한 후, 죄인들은 칠레 감옥으로 압송하고 나머지 분들은 본토로 돌아가시게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비용은 모두 제가 지불하죠.”

==

프레이 기지

칠레의 대표적인 남극 기지인 이곳 부근에는 중국, 한국 등 여러 나라의 기지들이 몰려 있으며, 특히 이곳에는 칠레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어 골치아픈 일이 생기면 이곳에서 해결하곤 한다.

태정은 하영섭 대장, 오경훈 부대장 등을 통역하느라 쉴 틈도 없었고, 목에 그슬린 총알 때문에 아프기도 했다… 부적 자국이 그의 뒷목에 문신처럼 박혔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대충 조사가 끝나자, 죄인들은 따로 방 두개에 감금되었다. 김송수와 우진하의 시체는 그냥 천만 덮어서 얼어붙은 대지에 방치되었다. 어차피 가족들도 없는 자들이니, 아마 이곳 바다에 묻히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 그는 석경의 전화를 받는다.

“회장님. 손태산 회장이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역시, 그랬구나. 그자는 내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잠시라도 그자에게 혈육의 무엇인가를 기대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그리고 정화 씨도 행방이 묘연합니다.”
“…”

으음, 그랬구나… 너도 별 수 없이 그져 갈대 같은 여자일 뿐이었구나. 돈 주면 혹하고 돈 없으면 버리는… 손태산, 결국 나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좋아. 노란 봉투는 개봉했지?” “예.”

“지체 없이 실행에 옮기도록. 이제 더 이상 용서고 화해고 그런 건 없다..” “네.”

“서울에 가면 자리 5개를 만들어 놓도록. 내 은인들이다.” “네.”
:

“그리고 칠레에서 서울까지 갈 수 있는 전세기를 구해 보도록 해라. 이제 나는 하루라도 빨리 서울로 돌아가 그놈들과 결전할 일만 남았다.” “네.”

태정은 주머니에서 서정화의 사진을 꺼낸다.. 이것을 찢을까, 말까? 일단 서정화를 한번 만나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혹여 이것도 손태산의 음모일 수도 있으니까.

이제 손강택과 구태정의 생사를 건 승부가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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