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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2:56 628회 0건
프롤로그 부분이 어두운 분위기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소설은 밝은 분위기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괜히 꿀꿀한 기분을 유지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럼 즐감하세요. ^^




1화 나는 다시 태어났다.


1.
따뜻함이 지속되니 왠지 일어나기 싫었다. 이 편안함, 실로 오랜만이다.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나는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대로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이 앞설 뿐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애절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

내 동생....

내 동생의 목소리.

그녀는 내게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있다.

“..................”

눈을 떴다. 마치 오랫동안 잠을 자고 있었던 것처럼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낮선 하얀 천장과 홀로 외로이 있는 병실의 정경에 나는 문뜩 내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근육조차 없는 그저 그런 몸에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말라있었고 더욱이 옆에 놓인 거울을 통해 본 내 모습은 삼협파 보스로서 수많은 밤을 지배했던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그 악마 같은 놈이 분명히 그랬지. 혼을 잃고 죽어가는 인간의 몸에 내 영혼을 집어넣는다고. 그 결과가 이건가?

“누구의 몸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잘 써주도록 하지.”

그러자 갑자기 심한 허기짐을 느꼈다. 아무래도 이 몸의 주인은 식물인간 같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설마 호수로 먹을 것을 넘겼던 게 아니지? 그러나 어디를 둘러봐도 그런 장비는 없고 링겔 외에는 아무것도 내 몸을 구속하지 않았다. 그 즉시 링겔을 뽑아 버렸다. 몸에 이상 따윈 없는 듯 했다. 이런 몸으로 대체 뭘 할 수 있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고 죽지도 않으며 오직 자네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분명히 그 놈은.... 내게 힘을 줬을 거야.’

그가 했던 말을 되새기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탁자에 놓여 진 과일 옆에 놓인 과도를 들었다.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이런 몸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

- 파강!

과도의 날을 수직으로 세웠고 그것을 내 손에다가 힘껏 내리쳤다. 그런데 상처는커녕 피부에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과도는 힘없이 부러져 버린다. 이게 이렇게 약한 거였던가? 하지만 안심은 됐다. 적어도 모든 것을 파괴 할 수 있는 힘이란 것을 조금은 실감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과도로도 내 피부에 어떤 상처도 낼 수 없다는 것을 보면 강철보다 더 단단한 몸일 것이라 생각된다. 근육질 몸매로 성장하는 것은 조금 뒤에 일이니까.

“괜찮은 기분이군. 하지만 우화고라고 했나? 명문사립에 다니는 학생이라니.... 미성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졸업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갑자기 한숨이 나온다. 이왕 환생시켜 주는 거, 건장한 체구에 성인 남자로 해줄 것을 부탁했다면 당장에라도 내 조직을 사등분 하여 가져간 그 놈들에게 복수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이거야 원, 미성년이면 모든 좋을 게 없다. 사고라도 저지르면 당장에 주목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점 때문에 쉽사리 움직이면 안 될 것 같다. 일단 졸업을 하고 볼 문제군.

- 끼익

누군가 문을 연 것 같았다. 돌아보니 길고 긴 검은 머리카락에 조각 같이 아름다운 외모의 소녀가 토끼같이 커진 눈으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얼마나 절실한지 단번에 알아차리게 해주고 있었다. 예쁜 여자아이군. 아름다운 누나와 동생이 있다고 했지? 그럼 누나나 동생, 둘 중 하나 겠군. 하지만 교복을 입고 있는 점을 봐서 나이 차는 그렇게 나지 않는 듯싶다.

분명히 굉장한 미소녀라고 생각되기 십상이겠지만 내겐 별다른 감흥도 오지 않았다. 적어도 내 동생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으니...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다시 거울을 들여다본다. 평범하다고 생각되는 얼굴. 동시에 내가 생각해도 그 놈 참, 만만하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정말 길 가다가 건달이라도 만나면 돈이나 뜯길 얼굴이구만.

“진아... 진이 맞지? 정말... 정말 진이 맞지?”

그 소녀의 음성은 매우 떨렸다. 감격에 젖은 듯 내가 다시 그녀를 보니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흐느끼고 있었다. 아아, 이렇게 담담하게 나올 게 아니라 연기라도 좀 해야겠군. 내 이 몸의 이름이 진이라고? 그렇게 부를 정도면 저 소녀는 누나라는 말이 되는 군. 나는 마치 명연기자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이제 일어났어, 누나.”

“진아... 진아!”

누나라 할 수 있는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내게 달려들었다. 이윽고 나보다 작은 키의 그녀가 내 목을 팔을 두르며 감격에 겨운 듯 내 품 속에서 흐느꼈다.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며 나 또한 그녀를 안아주었다.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어.. 흐흑. 네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게.”

“그래... 그래야지. 엄마도 병상에서 일어나실 거야. 너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 심하셨는지 알아?”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런 말을 들으니 괜스레 미안해졌다. 자살이라... 나 또한 자살했었지. 그 기분은 이해 할 수 있다. 절망감과 함께 겹쳐온 고독함과 그것을 이기려는 극단적인 마음. 이 몸의 전 주인이 무슨 이유로 자살했는지 모르지만 대강 왕따였다는 것을 짐작해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폭력이겠지. 이제는 위험수위에 이르러 조직에 까지 발을 들여 놓는 것을 보면.....

‘흠.... 미성년자로서 잠자코 있기 보다는 학교폭력을 근절시키는 것이 낫겠군.’

적어도 학교 내에서는 학생의 신분이 자유로울 테니까. 그것을 악용하는 놈들이 있으니 왕따라는 것도 생기는 것이겠지. 좋다, 내 첫 복수는 이 몸을 내게 준 전 주인의 복수다. 철저하게 전 주인을 괴롭힌 놈들을 짓밟아 주겠다.

“진아?”

“왜?”

“너 좀 이상해.... 분위기가... 뭐랄까, 성숙하다고 해야 할까? 조금 어른스러워 보여.”

그야 당연하지. 알맹이는 어린 남자에 지나지 않지만 속은 30살도 넘은 아저씨니까. 그것도 밤의 세계를 주름잡던 서울 최대의 세력가였던 남자다. 몰락하기까지 정말 아차 하는 순간이긴 했지만 어쨌든 다시금 찾아온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이 몸의 일부가 되는 것이 목표였으며 지금 내 눈 앞에 혼란스러워 하는 귀여운 동생 같은 누나를 안심시켜야 했다.

“한 숨 자고 났더니 머리가 개운하더라. 오히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어. 앞으로 자살 같은 바보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테니까, 너무 걱정 하지 마.”

“...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윽, 정말 눈물이 많은 아이 군.’

또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보기 민망했다. 세상에서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게 여자의 눈물이라고 했는데. 어쨌든 그녀를 안심시키고 나는 가족들에게 내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정신이 없었던 터라 그런 것을 잊고 있던 가을(교복 명찰을 슬쩍 봤다.)은 핸드폰으로 급하게 전화를 한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기뻐하며 환해진 그녀의 표정을 보니 어째 내 동생과 겹쳐 보이는 것에 조금 우울해 졌다.

잠시 후 가을이 연락해서 들어온 의사와 간호사들은 내가 깨어난 것이 거의 기적과도 같다며 기뻐했다. 나 참, 딸랑 링갤 하나만 달고 누워있었는데 말이야. 어쨌든 의사는 내 상태를 진단해보고는 바로 내일 퇴원 수속을 해도 괜찮다며 완벽히 완쾌되었다고 최종 검진을 내리니 눈물 많은 가을의 눈이 다시 촉촉이 젖었다. 정말 눈물 많은 아가씨구나.

그렇게 다시 한 시간 정도가 흘렀다. 저녁 시간이 다 되가는 데 아직까지 병원 밥은 나오지 않았다.

“배고픈데 뭐, 먹을 거 없나?”

“저녁 나오려면 조금 있어야 하니까... 아! 과일 깎아 줄게.”

그러면서 그녀는 사과 하나를 들었다. 그런데 두 동강이 날 정도로 휘어진 과도를 보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 이 과도 왜 이렇게 됐지?”

내 손 찌르다 휘어졌습니다. 라고 말하면 저 귀여운 토끼 같은 눈동자가 단번에 커지겠지? 다른 과도를 탁자 밑의 서랍에서 꺼낸 가을은 조심스럽게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나는 두 팔을 베면서 천장을 바라볼 따름이다.

- 사각사각

사과 깎는 소리만 적적하게 들린다. 나는 다시 가을에게 시선을 돌렸다. 즐겁게 사과를 깎으며 조금 전 흘린 눈물이 사라진 듯, 그녀의 눈동자에는 기쁨이 가득 차 보였다. 이제 보니...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자, 다 깎았어. 맛있을 거야. 네가 좋아하는 사과니까, 히힛.”
“잘 먹을 게.”
“그런데 너 말 수가 엄청 줄어든 것 같아. 예전에는 나랑 하루 종일 수다나 떨어도 될 정도였는데.”

수, 수다? 미안하지만 그건 전혀 내 성미에 안 맞아. 나 참, 사내놈이 수다라니. 한심하구만. 그래도 이렇게 예쁜 누나를 놔두고 자살이나 하려고 했다니, 정말 어리석은 놈이군.

“..................”
“..................”

조용히 사과를 먹는 동안 조금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긴, 원래 이 몸의 주인이 아니니 본능적으로 어색하고 낮선 느낌이 드는 건 당연하겠지. 그래도 저렇게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예전 귀엽고 사랑스럽던 내 동생처럼 정말 순진하기 이를 데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문뜩 학교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학교는 어때?”
“응?”
“내가 자살했다고 하니까, 학교의 반응은 어때?”
“그게....”

조금 말하기 힘든가 보다. 그래도 그런 명문학교의 학생이 자살 기도를 했을 정도라면 발칵 뒤집혀 있지 않을까?

“평상시랑 다름없어. 네가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 그렇군.”

이거 조금 의외군.

“정말 화가 나. 우린 네가 자살 할 정도로 괴롭힌 학생들에게 징계를 요청했지만.... 오히려 조용히 무마해 달라며 어떻게 해서든 넘어가려고 했어.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해서든 이 부당함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려 했지만....”

“오히려 입막음을 당했다는 거야?”

“그래... 널 집중적으로 괴롭힌 명훈이라는 애를 고소하려고 했지만.. 알고 보니 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에 일을 지급해주는 대기업 회장의 아들이더라고. 정말 놀랐어. 어떻게 그런 대단한 가문의 아이가 그토록 남을 모욕하고 폭력을 일삼는지.... 결국 우리는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

지저분하군. 학교에서까지 그러한 배경에 영향을 받는 건가? 그럼 그 명훈이라는 자식을 반 죽여 놔야겠군. 물론 그들 모르게 적당히 처리해야지. 날 자살로 내몬 장본인이라고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벌써부터 주먹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저기, 진아. 우리 다른 학교로 전학가자. 그런 곳에 있어봤자 너만 힘들어 질 거야.”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명문학교에 나오면 취업이나 대학 가는 일이 쉬워 질 텐데 뭐 하러 나와? 괜찮으니까, 걱정 하지 마.”

“에? 하, 하지만 너는....”

“학교에 다시 나갔다가 또 괴롭힘을 당 할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 응.”

본래 주인이었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야. 내 원한을 모조리 그 놈에게 퍼부어주지. 4대 조직을 무너트리기 전에 우선 안전한 배경과 밑거름을 만들어 놓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니까. 대기업이라고? 내 밑에 무릎 꿇게 만들어주겠어.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 명훈이라는 놈을 박살내야겠지.

“퇴원 하자마자 교복부터 챙겨야겠어.”

“에?”

“아아, 한시라도 빨리 학교에 가고 싶거든.”

내 말에 또 그 귀여운 토끼눈이 커진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학교를 들쑤시고 다닌다고 하면 기절이라도 할지 모른다. 그만큼 심약한 느낌이 들었다. 가을이가 내게 뭐라고 말하기 전에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나와 가을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돌아갔다. 부서질 것 같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려진 문 사이로 정숙해야 하는 실내에서 그런 것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소녀가 단숨에 내 품안으로 뛰어들었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다.

“진아! 드디어 깨어났구나! 요 말썽꾸러기!”

“으악!”

어이쿠, 깜짝이야! 뭐, 뭐야? 엉거주춤 나를 안고 침대에 쓰러진 소녀는 계속해 내 볼을 자기 볼로 비벼댔으며 가슴 크기 또한 제법 커서 그런지 내 가슴을 짓누르는 부드러운 느낌에 아찔해졌다. 향긋한 라벤더를 맡으며 초점하나 흐트러짐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는 가을의 시선이 왠지 두려워져 어떻게 해서든 때어내려고 했다.

“아잉, 우리 귀염둥이! 이 누나가 안아주는데 왜 뿌리치는 거야?”

응? 누나? 자세히 보니 가을과 완전히 똑같이 생겼다. 서, 설마 쌍둥이? 쌍둥이 누나에 대해 저승의 그 녀석에게 들은 것이 없어서 내심 당황했다. 혹시 그 녀석 누나를 동생으로 착각한 거 아냐? 그건 그렇고 얼굴은 똑같아도 얌전한 가을과는 다르게 이 소녀는 노는 것을 좋아하는지 은색 귀걸이에 팔찌나, 매니큐어를 보면 정말 활발한 소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가을이가 조용히 말했다.

“가희야, 너무 심한 표현은 삼가 해. 진이가 곤란해 하잖아.”

“어머머, 언니야! 설마 질투하는 거야?”

“에?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화들짝 놀라며 얼굴이 붉어지는 가을을 보며 대체 이 쌍둥이 자매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둘 다 대단한 미녀들이라서 장래가 참 기대된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전에 나는 소란스러운 이 분위기보다 조금 조용히 있고 싶었다. 마치 분위기 메이커라고 해야 하다는 표현이 적당할 만큼 소녀의 시원한 말투나 성격은 정말 쿨 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가을과 똑같은 교복에 명찰까지 한가희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니 나이는 같아도 먼저 나온 사람이 언니라는 공식을 여지없이 지킨 것 같다. 뭐, 둘 다 내 누나라는 것은 변함없지만.

‘후, 이 가희라는 아이가 들어오니까 순식간에 분위기가 밝아지는 군. 뭐, 어색하고 있는 것보다 낫지만.....’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정다운 자매의 모습을 보니 사랑하는 동생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커지는 것 같다. 언제나 아침을 준비해주고 항상 늦잠 자는 나를 닦달하면서 깨워주고 그래도 키스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겨오든 사랑스러운 동생을. 가족이라는 것은 정말 소중한 것이다.

“흐응.”

‘응?’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데 마치 키스할 것처럼 얼굴을 가까이 댄 가희는 관찰하는 것처럼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놀라서 조금 움찔했다. 마치 생각하는 듯 가희는 검지를 입술에 갔다대면서 말했다.

“전과는 좀 다른데? 분위기가 말이야. 조금 틀린 것 같지, 언니야.”

“응. 그런 것 같지만.... 하지만 분명 틀림없는 진이야.”

“헤에? 설마 대역을 데려다 놓은 건 아니지?”

“서, 설마 그럴 리가!”

“헤헤, 농담이야!”

의외로 날카롭군. 나야 알맹이는 너희들이 잘 알고 있는 동생이겠지만 영혼은 그렇지 않거든. 하긴 30대 후반 남자라고 그러면 이 자매는 아마도 기절초풍하겠지. 물론 당연히 믿지 않겠지만.

“그나저나 엄마한테 연락했어?”

“응. 진이가 깨어났다고 하니까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셨다고 삼촌이 그러셨어. 곧 오실거야.”

“정말 다행이야.....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검지로 내 관자놀이 부근을 꼭꼭 찌른다. 이 가희라는 아이는 정말 사람 사귀기 좋은 소녀라고 생각된다. 저렇게 거침없고 자신의 표현을 정확히 하며 시원스러워 보이니 말이다. 반대로 가을은 뭐라 그럴까... 마치 아가씨 같은 소녀라 표현하는 게 어울릴 듯싶었다.

“후훗, 그렇게 진이보고 너무 뭐라 그러지 마. 눈을 뜬 것만 해도 어디야?”

“흥, 그러면 뭐해? 사람을 있는 대로 걱정시켜놓고는.”

가희는 표독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침대에 걸터앉은 체로 나 먹으로 가을이 깎아준 사과를 먹기 시작했다. 이봐요, 아가씨? 난 뭐 먹으라고?

“자~ 아~ 해봐.”

“아, 아니 그냥 내가... 웁!”

“이 아름다운 누님이 먹여주는데 그냥 먹을 것이지.”

컥, 그렇게 쑤셔 넣으면 어떻게! 아주 그냥 사과 몇 개를 내 입속으로 억지로 밀어 넣으며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얻은 듯 가희의 눈은 장난 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을은 눈웃음을 지으며 남은 사과를 마저 깎는다.

“하아~ 요즘 공부하기도 참 힘들다~”

그러면서 걸터앉은 자세를 바꾸어 이제는 침대의 반을 차지하며 가희는 아예 드러누웠다. 조금 멍한 표정의 그녀를 보니 아무래도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조금은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나는 그런 가희를 내버려 두고 다시 누웠다. 사과를 깎는 소리만 들려왔고 왠지 졸음이 쏟아졌다. 하지만 바로 잘 수 없는 게 어느 세 내 품으로 들어온 가희가 마치 고양이처럼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나 참, 다 큰 처녀가 아무리 동생이라도 남자 품에 그렇게 들어오면 어쩐다니.

“저기....”

“왜?”

“동생 침대 좀 그만 차지하고 좁으니까, 제발 나가주세요. 네?”

“뭐야!? 이 녀석을 그냥!”

가희는 벌떡 일어나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가을을 무시하고 곧바로 내 목에 헤드락을 걸었다. 이, 이봐. 그렇게 하면 가슴이 얼굴에.... 뭐, 말해도 소용없을 테니 나는 그냥 얌전하게 당해준다. 그렇게 쥐어봐야 자기 팔만 아플 뿐 내겐 어떠한 타격도 줄 수 없으니.

그러던 그때 이번에도 유감스럽게 부서질 것 같은 문이 또 다시 충격을 받으며 아예 문짝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열어 재낀 굉장히 아름다운 여인이 눈물을 호소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인 옆에는 그녀를 부축한 잘생긴 남자가 서있었다. 아무래도 저 여인이 내 어머니이고 남자는 삼촌인가? 어머니 치고는 무척이나 젊어 보였다.

“진아... 진아!”

어머니는 헤드락에 걸려 꼼짝도 못하는 내게 달려와 나를 꼭 안아주었다. 제법 커다란 가슴에 얼굴이 묻히는 격이었으나 이 느낌.... 전혀 달랐다. 너무나도 포근하고 따뜻했다. 어머니의 품이 이런 건가? 고아로 자란 나와 동생이 느낄 수 없었던.

“진아.. 이제 몸은 괜찮아졌니?”

“예. 전 이제 괜찮아요. 의사선생님도 내일 퇴원해도 좋다고 하셨어요.”

“정말.... 정말 이 엄마를 걱정하게 만들고.”

그간 병상에 누워있으셨다고 했는데 자세히 보니 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였다. 이렇게 가족들이 걱정해주는데 그렇게 나약한 마음을 먹었을 까... 이 전 주인이 말이야. 계속해서 어머니는 내 볼과 얼굴 이곳저곳을 만지시며 기쁨의 감격을 누리셨다. 부모의 마음은 전부 이런 거구나. 하긴... 나 같은 경우는 부모에게 버림 받은 경우였지만...

슬쩍 고개를 돌리니 가희와 가을은 잘됐다며 흐믓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고 삼촌으로 보이는 남자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건 아버지인가?

“어? 근데 아버지는?”

가희가 내 대신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의 표정이 기쁨과 동시에 어두워졌다.

“일이 너무 바쁘시다는 구나. 이번 주만 해도 터무니없는 발주를 받으셨다고 하니...”

“에? 아, 아무리 그래도 몇 달 만에 깨어난 자식을 보러 오지 않다니! 그건 너무하잖아요!”

가희가 화를 내려고 했지만 가을이 그녀를 제지했다.

“가희야, 너도 알잖아. 아버진 그 대기업의 물건을 대주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계신 걸. 우리가 이해하자. 진이도 이해하지?”

가희는 가을의 시선을 피하며 가만히 침대 쪽을 바라본다. 그녀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알지 못한 나조차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다. 명문사립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는 돈도 돈이거니와 재력도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내게 명훈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화가 난 우리 가족들이 명훈을 고소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명훈의 집안이 엄청난 집안임과 동시에 아버지가 운용하는 회사가 그들의 하청업체라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분명히 놈들은 일부로 아버지의 회사에 손을 쓴 것이 분명하다. 내가 이렇게 짐작 할 정도니 가희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 정말 억울해. 그렇게 잘난 놈들은 계속 잘나고.... 우리는 왜 항상 피해를 입어야 하지?”

진심으로 억울한 듯, 가희는 눈물까지 보이려고 했다. 그러자 삼촌이 가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자상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어쩔 수 없잖니. 그래도 창위원 덕분에 돈도 많이 벌어 좋은 집도 사고 너희들도 명문사립학교에 다닐 수 있었잖아. 비록 안 좋은 일을 겪었지만 운명이니 하고 그쪽은 신경 쓰지 말자.”

“하, 하지만 진이가 학교에 가면 분명히 또.....”

이번에는 가을이가 나를 걱정하며 전학이라도 시키자는 의견을 내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재빨리 어머니 품에서 벗어나 그녀를 제지했다. 전학? 미안하지만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야. 왠지 이번에는 목표가 뚜렷해진다. 명훈이란 놈을 박살냄과 동시에 그 녀석을 좀 이용해 먹어야겠다. 대기업이란 이름으로 중소기업들을 휘두르다니. 아무리 하청업체라도 말이야.

“괜찮아. 내일 퇴원하자마자 학교로 가겠어.”

“괜찮겠니?”

걱정스러운 듯 어머니가 부드럽게 내 뺨을 어루만져주자 나는 그녀의 손을 포개주며 자신 있게 말했다.

“전 피하지 않아요. 맞서야 한다면 끝까지 맞설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일을 도와주세요. 누나들은 누나들 학업에 신경 쓰고 삼촌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도와주시고요.”

내 말이 조금 이상했을까? 어머니는 매우 놀랍다는 듯이 두 자매에게 설명을 구하려는 뜻한 시선을 보냈지만 두 자매는 어깨만 으쓱이며 고개를 흔든다. 흠... 아무래도 내가 너무 진지하게 나갔나? 하긴 일반 학생들이 생각하기 쉽지 않은 발상이지.

“그래... 엄마는 널 믿고 있을 게. 하지만 혹시라도 또 괴롭히려는 학생들이 있으면 바로 전학 가자꾸나.”
“예.”

그리고 다시 어머니는 나를 품에 꼭 안으셨다. 솔직히 어머니의 품이 뭔지는 모르지만 내 진짜 어머니도 이러셨을까? 우리 남매를 버리고 사라져버린 본래의 어머니를 잊은지 오래지만 동생과 더불어 자꾸만 생각이 나니 어느 세 나는 울적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 드디어 나는 내일 곧바로 퇴원 할 수 있었다.






윽, 처음 쓰는 거라 조금 허접합니다. ㅠㅠ

당장 야한 거 안나오냐고 하시는 분들, 조금 참을 성을 가지시고(삐질;;)

그럼 다음 편 쓰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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