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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2:56 482회 0건


많은 분들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열심히 쓰겠습니다. 일단 하루에 한편 내지 두편 정도 올릴 겁니다. 그럼 즐겁게 봐주세요~~


1화 나는 다시 태어났다.


3.


“자, 아~”

“.................”

“뭐해? 빨리 받아먹지 않고. 누나 팔 아퍼.”

“에휴.......”

내가 한숨을 쉬자 울컥한 가희가 단번에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보슈, 손 안 아퍼? 내 머리는 슈퍼 돌 머리인데. 그건 그렇고 여기서 이렇게 밥 먹어도 되나?

“나 참, 친히 먹여주는데 왜 한 숨이야?”

“여자들에게 이런 과잉보호를 받는 내 신세를 한탄해서 내쉬는 한 숨이다, 왜?”

내가 무슨 세 살 먹은 꼬맹이도 아니고. 학교 뒤뜰의 화원에서 들어가지 말라는 학교 경비원을 미인계로 제압한 가희가 나와 가을을 끌고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이젠 먹여주겠다고 덤비는데 받아먹는 것도 민망할 지경이다. 왜 그런가! 주위를 둘러봐라! 이곳에 우리만 있나!

“어머, 쟤들 좀 봐. 깨가 쏟아지네.”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쟤네들 남매로도 유명한 얘들 아니었어? 어째 좀 위험하다.”

“사실 쟤네들 집에서 그거 한 대잖아.”

“진짜? 완전 금단이네!”

내가 귀가 밝은 건지 아니면 저기 반대편 벤치에서 이쪽을 바라보며 수다나 떨고 있는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큰 건지 정말 알 수 없군. 이거 좀 곤란하다. 아무래도 나와 이 두 자매의 관계가 학교 내에서는 꽤 유명한 모양이다. 하긴, 평범하기 그지없는 동생에 비해 그 누나들은 굉장한 미소녀들이니까. 혹시 그런 누나들을 둬서 따돌림 받은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가을이 걱정하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괴롭히는 얘들이 있었어?”

반대로 내가 괴롭혔지. 라고 말하면 또 저 토끼 같은 눈이 커지겠지?

“아니, 괴롭히는 녀석들은 없었어. 모두 내게 사과를 했거든.”

“어머, 진짜? 잘됐다, 얘!”

그러면서 내 등짝을 후려치는 가희다. 그래도 두 자매는 내가 괴롭힘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기뻐했다. 문제는 내가 괴롭혔다는 거지. 이거, 아무래도 이 두 자매만큼은 필히 속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학교를 평정했다는 소릴 들으면 가장 먼저 기절초풍할 사람들이 바로 이 둘이기 때문이다. 그냥 평범한 동생으로 보이는 게 낫겠군.

“정말 괴롭히는 애들이 없는 거지?”

“응.”

가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동시에 정말 잘됐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내가 무사히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 것을 축하했다. 눈물을 조금 글썽인 것을 보면 내 가슴이 다 아플 지경이다. 거짓말을 해버려서. 뭐,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지. 이젠 누구도 날 괴롭힐 생각을 못할 테니까. 그러던 중 가희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아, 고개 좀 돌려봐. 정말 칠칠치 못하게.”

“응? 뭐가?”

“소스가 묻었잖아.”

“그래? 그거야 닦으면.... 엉?”

- 낼름

내 입술 부근에 부드러운 혀의 느낌이 와 닿았다. 깜짝 놀라 화들짝 그녀를 밀쳐냈다. 이, 이거 뭔가 위험한데? 그러자 가희는 오히려 이상한 놈 다 본다는 식으로 눈을 흘겼다.

“왜 그래?”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방금 그건 좀....”

“뭐가? 키스를 한 것도 아닌데 호들갑이네.”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는 그녀에게서 나는 황당함을 느꼈다. 오히려 그 틈을 타서 내 목에 팔을 두르며 안겨오는데.... 아, 아니 요새 남매지간에 이런 스킨십도 있었나? 가을에게 말려 줄 것을 부탁하는 의미에서 눈짓을 보냈지만 오히려 내게 달라붙은 가희를 보는 가을의 눈빛이 좀 이상했다. 그야말로 초점 없이 그저 빤히 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왠지 두려워 지는 군.

“으그그, 그만 떨어져! 더워!”

“여름도 아닌데 덥긴 뭘 더워? 그런데 좀 차가워졌어, 너. 저번에는 좋다고 더 달라붙었으면서.”

“윽! 내가 언제!”

“흥이다~ 장가가기 전까지 넌 우리 꺼야, 알지?”

그리고는 실컷 내 머리며 가슴이며 마음대로 만져놓고는 떨어진다. 가을은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지만 왠지 부러운 듯이 보고 있어 부담스럽기만 하다. 으, 아무래도 이 두 자매랑 거리를 좀 두어야겠군. 자연스럽게 안기는데 설마 전에도 이런 스킨십이 자유로웠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가을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이내 도시락을 접었다.

“그만 교실로 가봐야겠어. 다음 과목 준비 당번이 우리잖아.”

그러자 가희는 아차 하는 포즈를 취하면서 배시시 웃었다.

“헤헤헤, 까먹고 있었네. 역시 우리 언니라니까. 정말 우리 반은 아가씨들만 모아놔서 그런지 그런 건 칼 같이 지켜야 하니까.”

아, 그러고 보니 3학년서부터 남녀 각반이라지? 우리나라 대학이 아니라 외국의 선진대학을 목표로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서 남녀교제를 엄격히 제한한다나 뭐라나.... 특히나 언어부분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방학도 없다고 하니, 하여간 자기들 마음대로야. 하긴, 사립이니 공립과는 다르게 지극히 개인이 운용하는데다 이사장이라는 직함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어찌 보면 공립보다 훨씬 까다로울 수 있다. 일단 법인재단이니까.

“그럼 우린 이만 가볼게. 이번 주는 야자가 없으니까, 방과 후에 기다릴게. 한 눈 팔 지 말고 아름다우신 누님들을 기다리게 만들지 말도록!”

그렇게 내 볼을 꼬집으며 가희와 가을은 총총 걸음과 같이 3학년 교정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나 참... 이건 완전 애 취급이구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척 봐도 나약해 보이는 이 외모와 누나들에게까지 보호 받아야하는 나약함이 마치 강박관념처럼 형성되어 있는 것을. 그럼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고등학생이자 누님들에게 보호 받는 연약한 학생을 연기해야 하는 거야? 갑자기 혈압이 오르네.

“아, 갑자기 의욕이 없어지네. 이젠 나도 모르겠다.”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나는 유장길인지 뭔지 하는 놈을 박살낼 의욕을 완전히 상실하여 남은 도시락을 마저 다 먹은 후 얌전히 교실로 돌아왔다. 가희의 귀여운 애교 때문에 화가 났던 기분이 수그러들었다. 거, 계집애가 그렇게 달라붙으니 내가 다 부끄럽네. 뭐, 싫은 건 아니지만.

“와, 왔다! 모두 앉아!”

- 후다다닥!

“................”

이건 뭐, 연대 시찰 나온 연대장도 아니고..... 급우들이 마치 군대에 있는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자리에 앉는 것을 보며 내가 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봐, 나는 이러려고 너희들에게 위압감을 준 게 아니란 말이야. 심지어 여 학우들까지 그럴 정도였으니 도저히 익숙지 않아 나는 다시 교단에 섰다.

“이봐, 친구들.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친구끼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되고 재밌게 놀아도 돼. 난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 알겠지?”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해주었으나 여전히 뻣뻣하게 굳어 있다. 그나마 나아진 것이라면 마치 선생이 자습을 시켜 놓고 교단에서 무슨 업무를 하는 동안 작게 소곤거리는 것 정도의 대화만 간간히 할 따름이다. 뭐, 시간이 알아서 해주겠지. 물론 날 열 받게 한 놈이 있다면 주저 없이 박살내겠지만. 그러던 차에 5교시는 음악시간이었다. 우화고는 오전 교시에는 주로 인문계열의 기본적인 교과 위주의 수업을 하며 오후 교시는 주로 실습을 한다. 음악, 미술, 댄스, 체육 등을 고루 하는데 이건 완전히 품위 있는 사람이 되라는 교육이나 마찬가지다.

하긴 사립학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놈들이 있는가 하면 저렇게 내가 무서워서 함부로 나서지도 못하는 녀석들이 있다. 그러나 대개는 상류층 자재들이 다니는 학교답게 눈높이 자체가 달랐다. 지하철로 오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비싼 외제차를 끌고 와 등교하는 학생들의 차이처럼. 하긴 비용만 낼 수 있다면 상류층이 아니어도 입학이 가능하겠지만 그러한 차별적인 대우가 알게 모르게 존재한다. 나 같은 경우도 우리 집은 중류층 수준이기 때문에 은연중에 무시 할 수도 있다. 그것은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고.

그래도 가을과 가희가 차별 받는다느니 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두 자매는 분명 학교에서 아주 인기가 많거나 사교성이 좋아서 그런 것 같다. 나 같은 우울모드의 인간은 다르겠지만. 저 봐, 물건 떨어트리는 소리가 컸다고 내 눈치 보는 것 봐. 어 휴... 괜히 겁을 줬나? 후회가 되기는 했지만 그런다고 잘못은 아니다. 분명히 이 반 대부분 놈들은 내가 싫어 집단적으로 따돌렸으며 자살을 시도했을 정도로 비관적이었음에도 걱정은커녕, 고인이 됐을 법한 자리에 쓰레기와 온각 지저분한 낙서, 사물함의 교과서까지 찢어버렸을 정도다. 그러니 등교하자마자 본 내 신발장에서 완전히 빡 돌아 들어오자마자 위협부터 가했지.

더욱이 시설을 정비하는 부서에서 새 걸로 교체해도 계속 그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에 이제는 아예 포기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내가 이렇게 열 받은 거지.

그래, 차라리 지금이 낫다. 어차피 여기 있는 녀석들은 내게 관심조차 없다. 그저 지랄 같은 성질이나 부리지 말라는 심산일 것이다. 친구 따윈 없어도 된다. 그냥 누나들하고 즐겁게 등교나 하교를 하는 게 낫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해둬야 할 일이 1반에 있는 명훈이라는 놈을 어떻게 해야 족칠 수 있을 까 하는 문제다. 날 집중적으로 괴롭혔다고?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데.... 거기다 대기업 아들이고, 동시에 아직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내 아버지의 회사 일을 쥐고 있다고 하니까 조심스러워 질 수밖에 없다. 젠장, 대체 어떤 녀석인지 쉬는 시간에 구경이나 가야겠군.

어쨌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다음 5교시가 음악시간이라서 교과서와 같이 아주 조용하고 정숙하게 음악실로 이동했다. 여긴 다른 학교와는 다르게 쉬는 시간을 제외하면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아주 조용히 질서정연하게 이동하도록 가르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질서를 어지럽히고 꼭 튀는 존재가 있기 마련이지만 내가 뒤에 있는데 그럴 수 있으려나? 어이, 꼭 직립보행 밖에 못하는 아사모가 걸어가는 것 같잖아.

“그러고 보니 지금 시간은 우리 담임이구나.”

아침에 무척 화가 나 있는 상태여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제법 늘씬하고 예쁘단 말이야. 적당한 스커트 길이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거 척 봐도 밖에서 놀았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찰랑거리는 윤기 나는 머리에 긴 웨이브의 매력적인 성숙한 여성이었기에 분명히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이다.

이번 음악시간에는 직접 악기를 연주한다. 학생들에게 직접 악기들을 연주하게 하여 반 전체가 하나의 악단을 만드는 수업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어느 학교에서도 볼 수 없는 막강한 자금력과 신선함을 확실히 느끼게 해준다. 이제 생각해보니까, 내 학창 시절 그냥 노래만 대충 부르면 그만이었는데. 이 악기 하나하나가 2학년 7반용이라서 써 붙여 있는 걸 보니까 다른 반 전용 악기도 있을 거라 생각된다. 허매, 이거 엄청나게 교역투자를 하는 구만. 하긴 그러니까 천하의 명문 사립고교지.

“...............”

- 쨍...

“................”

- 쨍...

에휴....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것은 심벌즈라는 것으로 그 모양은 바깥쪽으로 약간 구부러지고 중앙 부분이 접시 모양으로 부풀어 있으며 중앙 구멍에 손잡이용 끈이 달려 있다. 완전 쟁반 두 개를 들고 있는 느낌이다. 교향악단을 축소한 구조라 하는데 반 24명 인원 중 바이올린 3명, 첼로 2명, 콘트라베이스 1명, 피콜로 1명, 플루트 1명, 오보에 1명, 잉글리시 호른 1명, 클라리넷 1명, 베이스 클라리넷 1명, 파곳 1명, 콘트라 파곳 1명 호른 1명, 트럼펫 2명, 트롬본 1명, 팀파니 1명, 큰북 1명, 심벌즈 1명, 트라이앵글 1명, 실로폰 1명, 글로켄슈필 1명이 구성원이다. 튜바는 다루기가 어렵고 인원도 부족해서 제외했다고 한다.

이중 내가 심벌즈 1명이고. 가장 필요도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4개월 간 학교를 나오지 않은 내게 걸 맞는 그런 악기나 마찬가지다. 하긴 다른 녀석들은 2학년 올라와서 생활한지 6개월 정도 되었으니까 진도가 많이 나간 모양이군. 아니, 내겐 진도고 뭐고 소용이 없잖아. 생전 처음 배우는 것이니까. 이거 아무리 이래도 폼이 안나. 바이올린 정도나 되어야지. 이건 뭐, 폼도 안 나고 좋은 것도 아니고...

“자, 이번 시간에도 저번에 이어서 모차르트의 교향곡 41번 C장조의 주피터를 연주해보겠어요. 그 동안 많은 연습을 했지만 반 음악실기시험은 어렵다는 걸 인지해주세요. 오늘은 교정을 위한 연습을 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학생에 대한 존중을 의사로 선생들 대부분이 존댓말을 쓴다. 하지만 대뜸 모차르트의 교향곡 몇 번? 주... 뭐시기? 아니, 딸랑 눈앞에 세워진 악보를 보고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학생들의 악기를 교정해주던 선생님은 내게로 향해왔다.

“한진 학생은 간혹 중간에 나오는 스크래치 부분에 한 번 쳐주면 되요. 이 곡에는 심벌즈가 단 네 번만 나오기 때문에 무리가 없을 거예요.”

따, 딸랑 네 번..... 스크래치라는 것이 이건가? 거 참 그냥 마디가 굵게 생겼구먼. 각 장마다 하나 씩 있는 것을 보니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주가 시작되었다. 쥬피터란 창조신을 뜻하는 것이었기에 매우 웅장하고 패기 넘치며 당당함을 자랑한다고는 했지만 교향곡과 상당히 거리가 먼 나는 대체 어느 부근에서 스크래치를 쳐야 하는지 몰라 옆에 큰북 치는 놈이 알아보는 악보를 따라 어렴풋이 짐작하여 흐르는 대로 스크래치 부분에서 정확하게 한번 쳐주었다.

“..................”

금세 음악시간은 끝이 났다. 이거야 원, 연주하는 애들 중에 몇몇이 틀려서 난 그냥 2번 하다가 말았네. 나 참, 이래가지고 반 음악실기시험을 어떻게 치르려고. 하긴 나는 그래도 가장 쉽고 편한 거네. 졸리긴 하지만 전혀 어렵지도 않고 악보만 좀 볼 줄 알면 되겠어. 괜히 바이올린 같은 거 만졌다가 골치 아파지는 것보다야.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반은 잔 실수만 없다면 B급 수준이네요. 다른 반 학생들은 C급 수준인데 반해 우리 반은 꽤 높은 거니까 분발하길 바래요. 그럼 다음 수업 준비하고 반으로 돌아가세요.”

그렇게 말하고 반장의 인사와 함께 담임선생님은 다른 교정으로 향했다. 거 참, 열심이인 선생이네. 그렇게 열심이면 자살 시도한 학생에게 관심 좀 가져줄 것이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누군가에게 입막음을 당했던가. 하긴 전자든 후자든 이젠 내 알바 아니지. 어쨌든 나는 다른 급우들과 같이 교실로 귀환했다. 어디 다음 수업이..... 체육이구만.

금세 반 옆에 붙어 있는 탈의실(각 반에 탈의실 하나)로 들어갔다. 그런데.....

“.... 후우, 또 열 받게 만드는 구만.”

아아, 어째 내가 쓰는 물건들은 대체 왜 이럴까? 분명히 여기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어야 할 체육복이 보이지도 않고 탈의함에는 아주 낙서투성이구나. 씨익 웃어주면서 나는 옷을 벗으려던 급우들에게 분노의 살기를 내뿜어줬다.

“누구냐? 당장 튀어나와.”

그러자 아침에 내게 한 대 씩 맞은 그 세 명의 남정네들이 부들부들 떨며 내게 다가왔다. 마치 살인마 앞에 겁을 잔뜩 집어 먹은 피해자 같은 심정인 양 그들의 얼굴에선 진작 교체해 줄 걸! 이라는 후회가 막심히 밀려오는 뜻한 표정이 드러났다. 뭐, 좋아. 이번에는 봐줬다.

“넌 그 옷 내놔. 그리고 탈의함에 그려진 낙서를 오늘 안에 깨끗이 지우도록.”

이틀에 한 번씩 청소부가 정기적으로 탈의실을 청소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지저분한 걸 보면 분명 유성이거나 하도 이렇게 해놔서 고치지도 않았을 게 분명하다. 그래도 쥐어 패지 않은 게 어디냐? 일단 오늘 안이라고 했으니까 그들은 필사적으로 지워야 할 것이다.

체육 시간에는 뭐, 별 것 없다.

그저 운동장만 뛴다. 이건 뭐 체력 강화 프로그램이라나? 그저 뛰는 것 밖에 없구만. 잔디 운동장인데 축구나 한판 할 것이지, 재미없게. 하여간 무료한 시간을 보내면서 다음 수업 준비를 해야 했다. 화요일 마지막 수업으로는 댄스교실이 잡혀 있는데 내심 이런 것에 흥미가 조금 있다. 내가 이래 봐도 전생에 명동 나이트에 떴다 하면 박우진이라고 못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느니라. 그런데....

“................”

“.......저, 저기.”

아놔, 진짜 오늘 첫날부터 열 받더니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열 받는 구나. 하나 못해 못생긴 여 학우라면 내 이해라도 하겠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놈은 뚱뚱한 체격에 안경과 주근깨, 어리버리 해 보이는 표정의 남학생으로 진짜 척 봐도 오타쿠 같은 느낌이 풀풀 나는 그런 녀석이었다. 이 녀석 집안은 잘 사나 보다. 옥의 티 같이 느껴지다니. 오늘 배우는 댄스 시간은 재즈로 남녀가 파트너가 되어 춰야 하거늘, 이 시츄레이션은 뭐란 말인가?

“혹시 예전에도 네가 내 상대였냐?”

“으, 응.”

두려운 눈빛이 가득했지만 그런다고 이 녀석이 싫은 건 아니다. 문제는 재즈를 남자하고 춰야하는 이 상황이다. 각반에 24명의 인원이 평균적이고 우리 반도 마찬가지일 것이데, 어째서 짝짝이 맞지 않은 거지? 자세히 돌아보니 여자끼리 붙어 있는 한 조를 발견했다. 아, 골이 땡기는 군. 분명히 우리를 상대하느니 차라리 자기들끼리 추겠다고 지껄인 거겠지. 아직 선생이 들어오지 않았으니 난 그년들을 불렀다.

“야, 거기 여자애들. 이리 와봐.”

- 흠칫!

마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어린아이처럼 잔뜩 쭈뼛 거리며 긴장된 걸음걸이를 보여주니 이런 걸 보고 도둑이 제 발 저린 다는 표현하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잘못이 있으니까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둘 다 그저 그런대로 봐줄 정도의 외모였다.

“넌 나랑 추고, 넌 이 녀석하고 추는 거다.”

이럴 때 표정이 극명하게 바뀌니 좋아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의 뚱땡이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들은 창백해진 여 학우였다. 쯧쯧, 자업자득이다. 그렇게 평등(?)하게 조를 짜고서 제법 반반하고 동안인 댄스 여선생이 들어오자 신나는 음악과 함께 즐거운 재즈댄스를 배우게 되었다.

“자 모두, 원 투 쓰리 포~ 스텝을 주고, 발이 꼬이지 않게! 파트너를 소중하게 다루듯이! 신나고 즐겁게!”

호오~ 이거 꽤 재밌군. 내가 봐도 나는 재즈에 일가견이 있나보다. 허리를 중심으로 추는 것이며 동시에 부드러운 선율과 절로 신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춤이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시간마다 다른 춤을 가르친다지만 왠지 가장 마음에 드는 시간이 될 것 같았다. 하긴 댄스를 가르친다는 발상 자체가 대단하구만. 하지만 이게 다 상류층 사람들이 학교에다 요청하여 생긴 것이라는 말도 안 돼는 이유를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았을 때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투자하는 사람들 마음이라니. 하긴 누나들 말로는 가장 공부를 빡세게 하는 시기는 3학년 때일 뿐 일반적으로 1, 2학년은 입문과 실기가 적절히 된 선진적인 교육시스템이라는 것에 놀라긴 놀랐다. 그래서 명문 사립 우화고등학교라고 하면 전국에서 최고로 알아주는 이유겠지.

명성만 중시하고 상류층의 지저분한 것들이 다니는 것 같은 인식은 조금 바꿔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차별이나 계급에 대한 열등의식이 높은 편이어서 무지막지하게 비싼 운영지원비 때문에 자퇴하는 녀석들도 생길 정도였으니. 좋은 점도 있다면 반대로 나쁜 점도 있는 것이다. 대기업의 아들이랍시고 우리 가족을 괴롭히는 그 명훈이라는 놈만 봐도. 아직은 얼굴조차 모르지만 만나면 일단 족쳐놓고 보자는 식으로 나올 것 같다.

댄스 수업이 끝났다. 내가 하도 열심히 춰서 그런지 내 파트너였던 여 학우는 아예 기진맥진 상태. 뭐, 나랑 제법 호흡이 맞으니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크크. 반으로 돌아와 담임의 간단한 하례를 마치고 드디어 책가방을 들었다. 청소는 학생들이 하는 게 아니라 학교 전용 청소부들이 있다고 하니, 다시 한 번 그 재력에 감탄하다. 아침에 소동을 빼고는 그럭저럭 얌전히 하루를 넘긴 나는 유장길인지 뭔지 하는 학교 짱과 명훈이 놈을 만나보지도 못한 체 그렇게 하교를 한다.

커다랗고 화려한 교문 앞에 서있는 가을과 가희를 보니 그럭저럭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예쁜 누나들과 같이 하교한다는 것도 충분히 부러움을 살만 것일 것이다.

“헤에? 오늘은 재즈였어?”

“응. 제법 재밌었어.”

내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가을이 토끼 같은 두 눈을 껌벅이며 말해다.

“하지만 저번에 댄스 시간이 가장 싫다고 하지 않았던가? 남자랑 짝이었다고.”

“......여학생으로 바꿨어.”

하긴 본래 이 몸 주인은 진짜 싫어 할만 했겠군. 하지만 내가 여학생으로 바꿨다는 말에 가희가 눈을 빛내며 내가 달려들었다.

“예쁜 아이야? 재즈니까 여러 군데 만졌겠지? 이렇게?”

그러면서 슬쩍 허리를 쓰다듬는데 주변을 지나치는 학생들의 시선을 받으니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그녀를 밀어내려고 했다.

“정말 그만 하고 떨어져!”

“아이, 참 왜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거야?”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 이 아가씨야. 그러나 내가 거부하면 거부 할수록 더욱 더 달라붙는 가희였기 때문에 빤히 바라보는 가을의 시선을 느끼며 모든 것을 불태웠다. 훗, 마음대로 하시라고들. 더듬던지 벗기던지. 그러던 차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사이좋은 남매군. 차라리 애인 관계라고 그러지?”

“..........?”

나와 가을, 등에 매달린 가희가 동시에 돌아보니 검은 색의 아주 고급스러운 외제 승용차가 상당히 멋들어진 것을 배경으로 주변에 보디가드로 보이는 사내 대여섯을 거느린 긴 머리에 누가 봐도 빼어난 미남이라 생각될 정도로 잘생긴 남자가 서있었다. 무언가 주변을 압도하는 그런 분위기를 가진. 뭐지, 저 기생오라비는?

“뭐야, 너는?”

내가 묻자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눈웃음을 짓는다. 그러자 잔뜩 굳어진 가을과 가희는 동시에 내 뺨을 꼬집었다. 가희는 어처구니 없어했다.

“얘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나봐, 모르는 걸 보면.”

“그러게...”

반대로 가을은 걱정스러운 눈빛이 한 가득했다. 두 누나의 반응이 이상하자 나는 녀석의 가 왼쪽 가슴에 달린 노란 글리세를 명찰을 유심히 보았다.

.... 그랬군. 그런 거였군. 네가 바로....

“명훈이구나.”

내 말에 마치 기다리고 기다리던 먹이를 발견했다는 듯이 그의 미소가 더욱 더 짙어졌다. 오냐, 잘 만났다. 두 손에 들어간 주먹에 각기가 풀릴 정도의 소리가 소름끼치게 울린다.









- 쓰다 보니... 야한 게 없네, OTZ

그럼 즐감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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