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달에게 세상이란 무엇이었을까?
미로 같은 비밀 연구소에서 보낸 십년.
적어도 3살 이후부터는 스틸 사진 같은 기억들이 존재한다.
다정한 이들 사이에서 부족함 없이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친구 아사녀와의 수많은 추억들도 소중하다.
말을 배우는 것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산수에는 도무지 취미가 없었다.
1?
내용 없는 하나라니....... 그게 뭐 어쨓다는 말인가!
오히려 음악을 들으면 모든 것과 하나가 되는 듯한
거대한 떨림이 마음속에 일었다.
6살이 된 이후부터는 운동이 좋았다.
하루라도 격렬한 운동을 건너뛰어 본 일이 없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온 몸에 희열이 감도는 일이다.
그러나 그 즈음부터는 말장난 같은 공부에는 흥미를 잃었다.

오히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천착한다.
말로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차분한 몸가짐으로.......
아사달에게 삶은 어떠한 에너지 자체였다.
눈을 뜨면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몸을 움직여줘야 한다.
하루가 절반쯤 마무리 되면 다시
내면을 파고들어 이 에너지를 스스로 반추해본다.

운동 중에 제니 박사님의 엉덩이를 보고나서
일어난 혼란스러운 느낌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
나는 나의 에너지를 늘 관찰하며 표현해 왔는데 이번만큼은
종잡을 수 없는 그 느낌이 위태롭게 육박해왔다.
엄청난 불편함과 그보다 더 강렬한 어떤 충동.
심장에 그리고 아마도 고추에 관련된 것 같은데.......

빈과 은비의 침실

모든 얘기를 다 들은 후 은비의 마음 역시 긴장됐다.
학자로서의 호기심과 여성으로서의 부담감 등이 뒤엉킨 심정.
빈의 실험 설계는 이런 것이었다.
B동 체육관에서 빈과 달이 농구를 한다.
그리고는 함께 샤워를 하는데,
샤워장 구석에는 이미 은비가 샤워중이다.
빈이 자위를 하면, 달은 은비의 모습과 빈의 자위모습을
동시에 지켜볼 수 있게 되고,
무언가 깨닿게 되거나 자위를 모방하게 될 지도 모른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아사달의 통제 불능 사태까지도
각오가 되어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사달이 보여 온 모습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배려하는 태도였으므로
그렇게 일이 진행될 가능성은 적다고 볼 수 있다.
복싱에 한창 빠져들었던 7살 때에
특수 헤드기어와 몸통 보호대까지 하고도, 맨몸으로 싸운 달에게
전직 헤비급 아마복서 출신인 이탈리아의 비에리 박사가 실신한 이후
아사달은 눈물을 흘리며 이후 단 한 번의 스파링도 하지 않고
셰도우 복싱만을 즐겼다.

은비는 오히려 아사녀에게 먼저 실험을 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제안했다.
아사달이 성적인 자극을 받은 것은 우선 확실해 보인다.
아사녀도 그런지 확인해 보고 싶다.
아사녀에게 빈의 성기를 보여주는 것보다는
우연을 가장해 슬쩍 둘의 성교 장면을 보여줘 보자는 것이었다.
그 편이 돌발사태의 위험도 훨씬 줄어들고
은비로서는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벌 수 있었으니.......

“그래. 당신말대로 하자. 녀하고 달 둘 다 실험을 통해 확인이 되면,
스미스랑 유희, 존과 사만다에게도 결과를 말해주고,
본격적인 연구를 해보는 거야.......“
“응, 오빠가 얼마나 오래 기다린 연구인지 나도 뻔히 알잖아.
그리고, 그 지적인 호기심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는 오빠 눈빛만 봐도
그냥 알 수 있어. 우리 한번 해 보자.“

아사녀는 사회공부 시간이 빠지고 유박사와 최박사의 신혼집에 초대를 받은 것이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
사회공부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단지 내가 늘 접하는 이들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의미 없는 개념들을 익히는 것뿐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직접 대면하는 소중한 이들이다.
나에게는 오랜 친구 아사달과
셀 수 없이 많은 박사님들 중에서도
특히 주 연구실 박사님들과 탐구활동 시간을 함께하는 박사님들이 소중하다.
서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외에 다른 사람들을 상상해가며
공부를 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노릇.
그 시간에 재즈댄스를 더 하고 싶다.
음악은 사람의 속 구석구석을 후련하게 해준다.
춤을 곁들이면 그 느낌은 배가된다.
산다는 것의 목적은 바로 그런 순간순간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루를 마무리 할 때 즈음이면 늘 드는 생각이다.

F동의 신혼집에 도착했는데
초인종을 누를 필요가 없이 문이 활짝 열려있다.
“최박사님......? 유박사님......?”
안쪽으로 고개를 살짝 들이밀고 살펴본다.
운동할 때의 호흡소리 같은 것만 들린다.
그런데 운동할 때와 무언가가 다른 것 같다.
직감적으로 이것은 무언가 희열의 소리라는 것을 느낀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더 박사님을 부르면 안된다.
방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른 척 지나칠 수도 없다.
열려있는 침실문.
엄청난 충격이 온몸으로 전류처럼 퍼진다.
유박사님이 엎드린 최박사님의 뒤에서
희열의 춤을....... 한 몸이 되어 추고 있다!

‘아....... 왜 이러지.
오줌 같은 게 나온 거 같은데...,...
이건 그런데 오줌이 아니야
저 춤과 관련된 뭔가가 내 몸속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확실해.
젖꼭지까지 어떤 연결된 힘으로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아.‘

춤을 추다 마음으로.......
미묘한 움직임은 아사녀의 다리 사이에
애타는 마찰을 주고,
흐르는 듯 한 춤사위의 손길은
가슴을 스치고
복부를 스치고
붉어진 뺨을 스치고
그녀는 춤을 추다.......
마음으로....... 또 절제된 몸짓으로.......

그날 밤 빈과 은비는
카메라에 담긴 아사녀의 몸짓을
빛을 쏘아내는 듯한 눈빛으로 분석해나간다.
아사녀는 본인의 몸짓이 유사 자위인 줄도 모르고
그저 느낌에 충실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춤의 손길은
압도적으로 가슴과 성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아마도 옷을 벗은 상태였다면
팽팽해진 가슴과 발기된 유두
살며시 젖은 성기의 번들거림을
확인할 수 있었으리라.......
“여보, 달이와 녀 모두 성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존재야.
인간에게도 말이야.......“
“응 오빠. 지난 이삼 년간 오빠 많이 힘들었는데.......
이제 조금씩 길이 열리는 것 같아.“
둘은 감격에 공연히 코끝이 찡해온다.

아사달이 그의 리비도의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반면
아사녀는 그것을 성적 에너지라는 말로 표현은 못할지라도
대지의 희열, 자연의 기쁨과 연결된 힘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스스로 알 수 있었다.
살아있음 자체가 새삼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