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구실에서는 존의 구두보고를 듣고 있는 주도그룹의 과학자들의
뜨거운 열의가 가득하다.
네안데르탈인의 섹스와 사회성과 영靈성의 상관관계가 주제다.
침팬지와 보노보의 연구와 적절히 대조해가며
날카로운 분석을 한다.

침팬지와 보노보 두 종 모두 사회성이 있지만
두 종의 사회성은 구체적인 면에서 매우 대조된다.
침팬지에게는 공동체 외부와의 다툼 뿐 아니라
내부에서의 공격성 역시 상당히 발견되지만,
보노보에게는 외부 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평화를 지양하는 성향이 보이며 그 수단은 섹스이다.
보노보는 갈등의 상황이 되면 공동체 내의 성원들이
섹스를 한다.
보노보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영성의 발현이 있다.
그들은 공동체 성원의 죽음과 그 주검에 대해
나름의 의식을 소중하게 치른다.

“네안데르탈인에게 사회란 직접 대면의 범위를 가진
정서적 교감의 단위입니다.
사피엔스가 글로벌한 범위의 경제적 단위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섹스의 의미는.......
최소한 암컷에게는 정서적 교감과
자연스러운 희열의 의미를 갖는다고
추측해봅니다.
아사녀와의 섹스에서 느낀 감흥은
성적 쾌락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 암컷이 나에게 우주를.......기꺼이 바친다는 느낌.
아마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침팬지와 보노보의 차이를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사피엔스가 침팬지 유형이라면
보노보 유형이 바로 네안데르탈인이라는 것이지요.
단.......
아사달에게 섹스는 공격적이지는 않아도
예측이 불확실할 수 밖에 없는데,
아사녀가 본능적으로 성을 이해한 반면
아사달은 아직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으니
실험 설계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회의가 끝나고 각기 연구의 소주제를 잡은 과학자들이
본인의 연구실로 돌아가고 남은 회의실.
빈과 은비는 커피 한잔의 망중한에 잠시 의식을 맡긴다.
“오빠, 무슨 소리 못들었어?”
“응? 무슨?”
“자료실 쪽 같은데? 누가 있는 거 아니야?”

회의실 옆쪽에 붙어있는 자료실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발걸음 소리.
문이 열린다.

“이건 범죄이므니다.......유박사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스무니까?”
일본의 유전학자 이치로.
“아니 이치로박사 무슨 말을 하시는겁니까......?”
이미 정신줄을 놓은 듯한 표정이 된 빈이 말한다.
“우리가 승인받은 연구 범위를 넘어서는 일 아니무니까!
다음 주에 있을 총회에서 모든 것을 밝히고 상부에도 보고하도록 하겠스무니다!“
빈이 커피잔을 놓친다.
“쨍~”
걷잡을 수 없이 바닥으로 쏟아지는 커피.
은비만이 침착함을 유지한다.
“이치로 박사님 일단 좀 앉으세요.”

이치로는 빈과 은비의 약혼 사실을 아는 상태에서도
남몰래 끈질기게 은비에게 구애를 했던 전력이 있다.
그 사실은 은비 뿐 아니라 빈도 잘 아는 얘기.
빈은 눈앞이 캄캄할 뿐이다.
은비는 이치로를 진정시키며 차를 한 잔 내온다.
숙원의 연구를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이치로 박사님, 우리가 N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가 뭐지요?”
“음.......결국 인간을 탐구하기 위한 연구지요.......”
“바로 그거에요. 우리가 하려는 일이 바로 그거라구요.
인간과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우리의 사촌인 저들을 통해
긍국적으로는 인간을 더욱 잘 이해해 보려는 것이지요.
모든 측면을 빠짐없이 탐구해야만 하나의 그림이 그려질 것이고,
우리는 학자로서 그런 작업을 해나가는 거예요.“
“승인받지 않은 연구는 할 수 없스무니다!
더구나 이 연구는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무니다.
총회에서 이 사실을 여러 연구자들에게 알리고
상부에 보고할것이무니다. 더 이상 할말 없으무니다!“

길 잃은 아기새 같은 표정의 빈.
짐짓 분노를 연기하는 듯한 이치로의 야비한 눈매와 지독하게도 못난
고슴도치같은 외모.......
은비만이 이 모든 것이 보인다.
빈은 이미 머릿속이 텅 빈 일종의 치매와 같은 상태로
멍하게 앉아있고,
은비는 말없이 이치로의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살짝 올린다.
이치로의 눈빛이 순간 빛난다.
빈은 모든 것을 보고는 있으나 아무런 판단도 내릴 수 없다.
“이치로 박사님, 안그래도 찾아 뵙고 연구에 동참해달라고 부탁드리려던 참이에요.
박사님의 도움 없이는 더 이상 진척도 없구요.......“
“으음.......”
이치로가 아무리 굳은 표정을 위장해도
그 속에 꿈틀대는 일종의 기대감까지 가릴 수는 없다.
“동참해 주실거죠?”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이치로는 손을 궂이 빼지 않는다.
“생각좀 해보겠스무니다.”

다음 날 열린 비밀 회의에는 이치로도 참가했다.
어리둥절한 과학자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그간의 연구보고를 했다.
은비에 대한 끌어오르는 성욕에 사로잡혀 있기는 했지만
이치로 역시 동경대를 최고성적으로 졸업한 일본의 천재.
진척이 없는 아사달 실험구상을 비상한 두뇌로 전광석화처럼
실시간으로 해나가며 듣는다.

“아사녀와 같은 방식으로는 안되무니다.
아사달에게는 심리적 장벽을 허물 수 있는 실험설계가 필요하무니다.
연구자 한 쌍의 성교는 아사달에게 그 한 쌍이라는 테두리를 각인시킬 위험이 있으무니다.
원시의 상황 그대로 다양한 파트너와의 성교를 우리가 하면서
아사달에게 그 모습을 노출시켜야 하무니다!“
과학자들은 난감한 표정들이다.
존이 말한다.
“그걸 어떻게 합니까....... 그게 어디 실행하기 쉬운 일입니까?”
“우리는 진리를 탐구하는 열정으로 모인 사람들이무니다.
그 열정으로 못할 것이 있겠스무니까.
예를 들면 최은비 박사님과 음....... 자원자가 정 없다면
솔로인 저라도 그 실험을 해야하는것이므니다!“
은비만이 체념한 표정으로 예상했다는 듯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고,
빈은 그저 멍한 표정.
다른 과학자들은 다소 충격을 받은 얼굴들이다.

이치로의 실험설계가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진척이 없는 아사달의 연구를 위해서는 어쩌면 돌파구가 될 수도 있는 일.
더군다나 이치로의 입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한 실험이라
몇일 만에 실험이 이루어졌다.
모든 계획은 세부적인 항목 하나 하나 이치로가 설계했다.
실험 당일 연구원 휴게실 통제
은비와 이치로의 섹스
이유희와 사만다는 아사달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알몸으로 대기

휴게실에 네 사람이 들어가고
통제실에는 빈과 스미스가 모니터를 응시하며
존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돌발상황에 대비해 휴게실 근처에서 대기중이다.
아사달이 오기 전에 성교를 시작해야한다.

네 사람이 옷을 벗는다.
은비의 새하얀 뒷모습이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