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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1 23:56 1,067회 0건
30. 갈비찜과 주염심


에어컨 때문에 시원한 오라리오를 나서자 밤길은 금방 땀이 날 정도로 덥다. 택시에 타자마자 지혜는 또 에에컨 빵빵을 추가 옵션으로 주문했다. 택시 안은 금방 시원해졌고, 지혜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의 인도를 내다보고 있다.

밤 10시의 밤거리는 별로 볼 만한 것도 없는데 뭘 그렇게 신기한 듯이 열심히 보는지. 여고생인 지혜에게는 이 시간에 이런 곳이 처음이라서 그러나?

지혜의 원피스 위로 검은 생머리에 약간 덮여있는 뒤틀린 하얀 목덜미가, 그리고 하얀 뺨이 더 볼만하다. 물론 원피스가 감싸고 있는 가슴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여자의 몸이 볼만하다고 해서 자꾸 그리고 계속 쳐다보면, 변태라는 말을 듣는 세상.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그래서 기껏 돌린 곳이 지혜의 원피스 아래자락이 끝나는 곳, 바로 허벅지이다. 가늘고 하얀 손가락들로 살그머니 쥐고 있는 주먹이 그 곳에 다소곳이 얹혀져 있다.


택시는 신촌을 빠져 나와서 마포로 넘어온다. 지혜는 그제서야 나의 존재를 인식한 것 같다. 내 손도 잡고 조물락거리기도 하고, 내게 기대기도 한다.




"하아. ... 오빠, 이제 어떡해?"
"왜? 뭘?"

"서지혜라는 여자가 오빠네 세상에 알려져버렸으니 .."
"하하하. 글쎄. .. 은근 고민되네."

"그게 다가 아니거든.
서지혜는 오빠랑 커플링까지 했었잖아."

"이제 내 앞날은 오늘로 종쳤다고 봐야지."

"역시 판단은 빠르고 정확하시네. 하하."

"그렇지만 나 역시 의지의 한국인인데 여기서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겠지?"
"야아아. .. 의미없는 저항은 정력낭비, 인생낭비야."

"그것은 후세에 역사가들이 평가할 일이고."
"역사가들이 밥 먹고 할 일이 없어서 오빠랑, 오빠 주변에 있는 여자들을 평가해? 하하."




우리는 PC방 앞에서 택시에서 내렸다. 지혜가 내 손을 잡아 끈다.



"오래만에 한판 붙을까?"
"난 경식이랑 벌써 했는데?"

"오빠는 점심 먹었다고, 저녁을 안먹어?
"
"경식이가 점심이고, 지혜가 저녁이니?
나한테 선택의 기회가 없는데, 선택형 질문은 왜 하는 거야?"

"그게 바로 독재자들의 첫번째 수법이야. 국민투표를 통한 독재."
"배운 것을 이렇게 써먹어?"

"그래도 이걸 안다는 것이 어디야?"



우리는 이런 말들을 주고받으면서 2층의 PC방으로 올라갔다. 카운터에 앉아있는 알바생이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 아이린은 냉장고를 정리하는 중이다. 아이린과 지혜 그리고 나는 흡연실로 갔다.



"지혜는 오빠 따라가서 훼방을 놓으니까 속이 시원해?"

"하아. .. 훼방이라니?
사람들이 나한테 얼마나 애절하게 부탁했는지 모르지?"

"무슨 부탁을 너한테 해?"
"응. 오빠가 어리버리하니까 잘 관리하라고."

"하하하. 재미있는 사람들이네."

"뭐. .. 어쩌겠어?
내가 쫌 바쁘신 몸이긴 하지만 두 팔을 걷고 나설 수 밖에 ..."

"하하하. .. 이 뻥쟁이, 고만 웃겨.
냉커피 갖다 줄께. 기다려."

"나랑 같이 해."



아이린과 지혜가 흡연실에서 나가고 나니까 갑자기 나 혼자다. 계속 내 옆에 붙어있던 지혜가 없으니까 왠지 허전하다. 나도 흡연실을 나와서 PC 앞에 앉았다.

그렇지만 윤기숙이 한 말이 귀를 떠나지 않는다.

한수정이 지금 도쿄에 와있다. 그녀는 3일 후, 일요일 저녁에 인천공항으로 온다. 주영심은 날더러 공항으로 한수정을 마중나가자고 할꺼다.

나와 한수정이 헤어진 후로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런 세월을 그리워하면서 보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워 하면서 보내는 세월은 착각과 허상을 키울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나중에 더 큰 아픔을 갖게 될 것을 미리 걱정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나는 한수정을 잊으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한수정이 캐나다로 가버리는 바람에 한 때는 다른 소문이 돌았다고 들었다. 소문의 파워는 막강했다. 그 소문에 대해서 나도 뭐라고 말을 했지만, 내 말은 도대체 먹혀 들지 않았다.

정창현 선배와 방효은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방효은이 최수희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데, 최수희는 나에게 밀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계속 떠오른다. 그런데 지혜가 와서 나를 데리고 카운터 옆에 있는 테이블로 갔다. 아이린은 500짜리 잔에 들어있는 냉커피를 나에게 준다.



"오빠 분위기가 게임은 안되겠네."
"왜? 밖에서 안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한두개가 아니더만. 뚜껑을 열기가 겁나."
"안에서랑 밖에서랑 다른가?"

"완전 딴판에 개판이던데? 하하."
"저 입버릇!"



나는 냉커피를 마시면서 아이린과 지혜가 주고받는 말을 들으면서 중간에 말대꾸 몇마디는 해주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은 분명 나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나랑은 별 상관이 없는 느낌이다.



"오빠, 내일 아빠한테 가는 것 잊지마."
"몇시?"

"아까 전화로는 7시에 오라시던데."
"알았어."

"내일 도서관에는 어떡해?"
"나는 갈껀데. 왜? 내일도 또 따라 오려고?"

"관리자가 따라붙어서 밀착 매니지먼트를 해야죠."
"요새 유능한 관리자는 원격으로 한다던데?"

"그게. .. 그러니까 난 아직 고딩이라서. .. 헤헤."

"난 혼자 갔으면 좋겠거든.
거기는 술집도 아니잖아. 어제처럼 재미도 없을껄."

"하긴 무슨 일인가도 대충 알았고. ..
그런데 대학 도서관에는 가보고 싶다. 어떻게 하지?"

"참나. .. 도서관에 따라오겠다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

"그니까, 누가 약속 장소를 도서관으로 정하래?
도서관이 공부하는 데지 연애장이야?"

"내가 여학생을 만난다고 다 연애질이냐?"

"시끄러워. 난 따라갈꺼야.
아니면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지."

"지혜야. 여자가 너처럼 너무 달라붙으면, 남자는 지겨워하면서 튕기는 수가 생기거든."
"엄마, 난 여신이라서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안심하셔. 헤헤."

"12시에 공대 도서관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거든. 집에서 10시에 나간다."

"콜. .. 짜증을 부린다든가, 튕길 생각은 없는 거지?"
"아직은. 그런데 머지않아 곧 그렇게 될 것 같다. 하하."

"콱!"




다음날 아침에 나는 주방에서 아이린과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인터넷 뱅킹으로 그동안 지혜 아빠가 입금해온 것들을 체크했다. 수업료는 처음에 해프닝이 있고 나서 매달 700만원씩 꼬박꼬박 입금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달에는 수업료 이외에, 휴가비라는 명목으로 700 만원이 더 입금되어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아이린에게 보여주면서 이게 뭐냐고 물었다.



"원래 휴가비는 한달분 급여라던데?"
"그래도 이건 너무 많거든요."

"기다려 봐. 지혜 아빠는 자기한테 따로 계산할 것이 아직 더 있대."
"이거면 됐지, 뭘 또?"

"이번에 경식이 일이나, 또 그 동안 수고한 것에 대한 인센티브래."
"이러다가 돈벼락 맞겠네."

"자기가 우리한테 하는 것을 생각해봐요.
그 정도로는 지혜 아빠한테 많은 것이 아니니까 자기는 부담 가질 필요가 전혀 없어."



그런데 지혜가 문을 열고 들어서서 우리에게 걸어온다. 지혜는 녹색 진바지에 하얀 반팔 남방을 겉으로 빼서 입고있다.

이 꼬마아가씨는 이렇게 입으니까 마치 아침에 막 피어난 한 송이 백합처럼 청초한 모습이다. 전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깨끗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이다.

내 눈에만 그런가? 게다가 하얀 야구모자도 쓰고, 등에는 작은 갈색 가방을 메고있다. 완전 여고생티가 줄줄 흐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린은 몇 가지 정리를 하겠다면서 남아있겠다고 했다.



"엄마, 갔다올께요."
"우리 지혜, 화이팅!"


지혜는 아이린에게 두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만들어서 흔든다.



나는 내 차에 지혜를 태워서 도서관으로 갔다. 방학 끝무렵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제법 많고, 휴게실의 분위기도 어수선하다. 나는 지혜와 같이 열람실로 들어가서 나란히 비어있는 자리 두 개를 잡았다.

지혜에게는 내 옆자리에서 공부하라고 했다.



"시간이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 조용히 공부해. 여기는 도서관이야."
"알았어. 그러려고 내 책 가져왔어."



게다가 지혜는 오늘 완전 착한 학생이다. 어제와는 아주 딴판이다. 하루 밤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대학 도서관이라서 기가 죽은 것일까?

나는 최근에 발표된 건축물과 도시계획에 대하여 평가한 내용의 자료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건축법이나 도시계획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눈을 뜨고 둘러보면 공부해야 할 것이 산처럼 쌓여있다. 그런데 돈을 벌겠다고 이런 공부에는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으니, 내 처지가 한심스럽다. 이런 내가 지혜에게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고 아무리 설교를 늘어놓아도, 내 말이 지혜의 귀에 들어가겠는가?

약속 시간이 돼서 나는 지혜를 데리고 도서관 입구로 나갔다. 주영심은 윤기숙과 같이 도서관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너네는 어제도 같이 있었다면서 오늘도 또 같이 있어?"
"기숙이가 너무 궁금해 하는 것 같아서."

"내가 영심이 만나는 것이 뭐가 궁금해?"
"그것 말고 다른 일이 있거든. 점심 안먹었지? 학교에서 먹을까?"

"밖으로 나가자."



우리는 모두 내 차에 탔다. 윤기숙이 강남으로 가자고 해서 나는 압구정동으로 갔다. 이 시간에는 점심시간이라서 강남의 식당들은 죄다 혼잡하다. 그렇지만 압구정동에서 청담동으로 가는 뒷골목이 약간 조용한 편이다. 물론 비싸기는 하지만.

모두 아침을 굶고 나와서 배고프다면서 우리는 갈비찜을 먹기로 했다. 자기들이 언제는 아침을 먹고 다닌 것처럼 뻥을 친다.



윤기숙 : "이거.. 대학생한테 너무 럭셔리 아냐?"
주영심 : "기숙이 너 요새 돈 잘 번다면서 왜 그래?"

윤기숙 : "언니, 땡볕에서 알바해서 번 돈으로 이런 데 와서 먹으면 말짱 도루묵 아녜요? 하하."
주영심 : "걱정 마. .. 우리 오늘은 태현이한테 씌우자."

나 : "왜 또 불똥이 나한테로 튀는데?"
윤기숙 : "바람피게 해줬으면 이거 정도는 당연한 것 아냐? 하하."

주영심 : " 김태현은 오늘 이 밥값을 내게 돼 있거든요. .. 가만.. 얘는 누구야?"
나 : "내 애제자 서지혜다. 인사해."

지혜 : "처음 뵙겠습니다. 서지혜입니다."
주영심 : "태현이 너랑 퀸이랑 사귀는 것 아니었어?"

윤기숙 : "맞아요. 그런데 방학 때는 빼고요."
주영심 : "이러언. 사귀는 것도 휴가가 있냐?"

나 : "가금씩 이렇게 바람도 펴야 .. 하하."
주영심 : "스승이라는 사람이 애제자가 듣는 데에서 말하는 것 좀 봐. 하하하."
지혜 : "괜찮아요. 하도 들어서.."

윤기숙 : "너, 지금 고2니?"
지혜 : "어머, 완전 쪽집게시네요."

주영심 : "그럼 너 성적이 약간 바닥이구나. 그럼 태현이가 받는 과외비 장난 아닐텐데."
지혜 : "나랑 고1짜리 내 동생이랑 둘이 하는데, 우리 엄마가 깎았어요. 하하."

윤기숙 : "태현 오빠 과외비가 비싸요? 왜요?"
주영심 : "얘가 완전 외계인과라니까."

윤기숙 & 지혜 : "예에?"

주영심 : "과고 다닐 때 태현이는 전교1등, 한수정은 2등.
학교에서 무슨 경시대회에 나가도 얘네 둘한테 1, 2등은 정해져있었대.
나머지로 전교생이 박터졌지.
그런데, 얘네 둘이 또 사고를 쳐요.
그 정도면 다들 의대나 법대로 빠지는데, 이 독종 둘은 우리 대학 건축학과로 온거야."

윤기숙 : "나도 그게 엄청 궁금해요."

주영심 :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고, 그러니까 또 건축과에서도 대박이지.
얘네 둘이는 과 1, 2등을 절대로 안놔주거든."

윤기숙 : "요새 태현 오빠랑 한수정 언니가 복학할까봐 공부 쫌 하는 애들 엄청 긴장모드예요."
주영심 : "그럴꺼야. 그런데 태현이는 진짜 완전 특종 별종 외계인이야."

윤기숙 : "왜요?"

주영심 : "쟤는 시험공부라는 것을 절대로 안해.
그런데 항상 어디가나, 뭘하나 1등이야.
믿어져? 뻥같지? 이해 가니? 이상하지 않니?"

윤기숙 & 지혜 : "어머머. 어쩜."
지혜 : "이 오빠 머리가 좋은가요?"

주영심 : "다들 머리 좋다고도 하고, 아이큐가 어쩌고 하는데,
얘는 아직도 자기 아이큐가 얼마인지를 모르는 애거든.
자기는 그런 것하고는 상관이 없대.

윤기숙 & 지혜 : "저런. .."

주영심 : " 봐라.
한수정은 시험 때마다 날밤 새워서 공부해도 항상 2등.
김태현은 시험 공부라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고 잠만 퍼자도 항상 1등.
이 정도면 한수정이 어떻게 되겠니?"

윤기숙 : "꼭지 돌죠."

주영심 : "꼭지가 돌은 게 아니라, 과고 말년에 애가 완전 폭발했어.
태현이 때문에 그 자존심 하나로 똘똘 뭉친 애가 3년간 단 한번도 1등을 못해봤잖아."

윤기숙 : "어떻게요?"

주영심 : "한수정이 어느 날 얘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대들었어.
그랬더니 태현이 대답이 완전 웃기는 거야.
자기는 딱 한번 책을 읽고, 수업을 듣는 것이 자기가 하는 공부 전부래.
그러면 마치 동영상을 찍는 것처럼 머리에 저장이 된대요.
이거 뭔 일인가 알겠니?"

윤기숙 & 지혜 : "어머머. 그게 말이 돼요?"
주영심 : "그래서 얘 과고때 별명이 외계인이었대."

지혜 : "언니 말대로 외계인도 완전 별종 특종이네. 하하하."

주영심 : "야, 지혜야. 너 혹시 태현이가 네 수업 준비한다고 미리 공부하는 것 본 적이 있니?"

지혜 : "아뇨. 한번도 못봤어요.
회사에서 퇴근하면 바로 수업한다고 덤벼드는걸요."

주영심 : "거봐. 그게 김태현이야.
쟤는 수학 미적분 계산도 머리로 해.
연필 들고 종이에 하는 계산은 별로 안해.
그래서 과고때 수학교수가 빡친 적도 있었대."

지혜 : "어머. 왜요? 수업 시간에 시키는 계산 안하고 엎드려서 잤나요?"

주영심 : "교수가 시켜서 다른 애들은 전부 열심히 계산하는데,
태현이 혼자 가만히 앉아서 눈만 깜박거리고 있었거든.
교수가 열 받아서 "하라니까 너는 왜 안하고 멍때리냐"고 소리를 쳤댄다.
그랬더니 얘가 자기는 다했다는 거야.
답이 얼마냐고 물으니까, 자기 답을 말하는데 그게 정답이었대.
교수가 약이 올라서 계산 과정을 봐야겠으니까, 계산한 것 좀 보자고 했대.
쟤가 하는 말이 "저는 머리 속에서 하는데요."
교수가 기가 막혀서 물었대. "그걸 어떻게 머리 속에서 하니?"
얘가 아주 당당하게 "제 머리에 자동으로 1페이지, 2페이지 이렇게 열려요.
그럼 거기다 계산해요." 이랬다는 거야.
그러니 교수가 할 말이 있었겠어?
엄청 열받아서 얘를 칠판으로 불러내서 머리 속에 계산한 것을 여기다 해보라고 시키니까,
얘가 엄청 똑소리나게 잘 하는 거야.
그 교수?
애들 앞에서 완전 삽돼서 망했지."


윤기숙 & 지혜 : "어머머.. 와아아. .."


주영심 : "쟤는 수능 끝나고 나서 돈을 벌겠다고 바로 중딩과외를 시작했대.
그런데 말이지 다른 과외샘들 두세달에 가르칠 것을 한달에 끝내고,
계속 비슷한 문제 풀면서 반복시키고..
사실 중딩 공부 할게 뭐 그리 많기나 하니?
확실하게 가르쳐놓고 안잊어먹게 반복만 하면 되잖아?
이렇게 반복을 시켜대니, 애들 성적이 안 오를 일이 뭐 있겠어?
그 때 벌써 쟤는 완전 쪽집게 과외로 소문났었어."

윤기숙 & 지혜 : "하아... 어쩜 ..."

주영심 : "쟤는 시간만 나면 과외해서 돈 벌고,
자기 용돈에 그 돈 얹어서 항상 상류사회 사람처럼 살았어.
저 외계인은 우리랑은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 달라."

윤기숙 : "말이 되네."

주영심 : "태현이는 아무나 돈 들고 가서 수업 해달라고 한다고 수업해주는 애가 절대 아니야.
우선 애를 보고, 자기가 수업을 해서 안될 애를 가려내서 걔한테는 절대로 손을 안댄대.
그 대신에 만일 태현이 손에 걸렸다 하면, 누군가 몰라도, 걔는 진짜 끝장을 보는 거야.
태현이는 고집이 있어서, 걔가 될 때까지 계속 시키거든."

지혜 : "요새 나한테도 그래요."

주영심 : "너 요새 무슨 과목을 수업 받아?
너 정도 예쁘면, 영어, 수학은 기본으로 하고 과학도 할껄?"

지혜 : "맞아요. 우리 지금 그렇게 해요. 그게 예쁜거랑 상관 있어요?"

주영심 : "쟤는 못하는 과목이 없어. 수업이 안되는 과목이 없다고.
그렇다고 해서 과외샘들은 누가 해달란다고 다 해주지는 않거든요.
자기 전공이 어쩌고 하면서 수학샘은 수학만, 영어샘은 영어만 하잖아.
안그래?"

지혜 : "그래요. 또 실력도 그 과목에서만 그럴껄요."

주영심 : "얘도 원래는 한과목만 수업을 해주고 싶대.
그런데 학생을 보면 해주고 싶은 마음이 마구마구 드는 애가 따로 있대요.
그럼 걔한테는 자기 머리에 있는 것을 전부 다 넘겨주려고 덤빈대.
지혜 너 정도로 예쁘면 태현이는 완전 뻑 갈꺼고 ... 하하하. 안그래?"

지혜 : "제가 그럴 정도로 예뻐요? 언니, 고마워요. 하하하."

주영심 : "그럼 태현이한테 한달에 1000은 내야 할껄?
과목당 200씩만 계산해봐."

지혜 : " 그런데 우리는 깎아서..."

주영심 : "세상에. .. 과외비도 깎나?
그런데 얘가 왜 깎아줬지?
혹시 지혜 미모 때문에 그랬나? 하하하."

"지혜 : "그게 ..."

주영심 : "지혜 너 지금 네 성적이 바닥에 있어도 걱정하지 마.
너, 머리 웬만큼 되고, 게으름만 부리지 않으면 1등급 나오는 것은 시간 문제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태현이가 시키는 대로 확실하게 해. 알았어?"

지혜 : "예."
윤기숙 : "와아아. .. 지혜가 엄청 부럽 부럽이네."

주영심 : "기숙이 너도 이번에 셋이 태현이랑 스터디 했다며? 그 때 뭐 못느꼈니?"
윤기숙 : "해설을 쉽고, 명확하고, 또 항상 그림으로, 엄청 잘 하던데요."

주영심 : "교수보다 훨 낫지?"
윤기숙 : "당연하죠. 엄청 낫죠."



주영심 : "야. 김태현. 이 정도면 내가 오늘 네 홍보 확실하게 했지?"
나 : "듣고 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

주영심 : "그럼 오늘 갈비찜은 네가 쏠꺼지?"

나 : "네가 안그랬어도 쐈거든.
나랑 밥먹으면서 내가 너보고 돈내라고 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어?"

주영심 : "저거 봐. 쟤는 꼭 밥값은 쟤가 냈어.
그치만 그 때 그랬던 것은 한수정 때문이었고.
야. 맞네. ..
한수정 일요일 저녁 7시 20분 비행기로 인천 공항 도착이야. 나갈꺼지?"

나 : " 글쎄 .. 그 시간에 .."

주영심 : "어쭈? 글쎄라고 했니?
한수정이 이번에 왜 들어오는 줄을 알기나 해?"

나 : "난 전혀 모르지."

주영심 : "그거는 내일 공항에 나오면 말해 줄께. 오늘은 여기까지."

지혜 : "언니, 내가 내일 이 오빠 확실하게 공항에 데리고 나갈께요."
주영심 : "네 말은 듣니? 저 고집이 보통 고집은 아니거든."

지혜 : "오빠가 내 말을 듣는게 아니라 .. 오빠가 내 말을 안들으면 죽음을 ... 흐흐흐."
주영심 & 윤기숙 : "이러언. .. 도대체 과외한답시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야?"

나 : "알았어, 갈께. 학교 정문에서 5시 정각에 영심이 너 태워가면 되는 거지?"

주영심 : "그래.
그리고, 지혜가 하는 짓이나 말하는 것이 엄청 예쁘거든요.
내가 한가지 비밀을 말해준다."

지혜: "어머. 감사해요. 뭔데요?"

주영심 : "얘가 1학년에 입학하자마자 한수정이랑 CC를 했거든.
그런데 한수정이 2학년때 공대 퀸에 뽑혔어.
이번에 군에서 제대하고는 여기 윤기숙이랑 사귀거든.
윤기숙도 지금 2학년이고, 이번에 또 공대 퀸에 뽑혔어.
그럼 지혜 너는 어떻게 해야 하겠니?"

지혜 : "이 오빠랑 사귀면 퀸이 되네요? 하하하."
주영심 : "너도 바탕은 될 것 같으니까, 태현이 놓치지 말고 꼭 붙잡아. 알았지?"

지혜 : "예. 알겠습니다. 그럼 한수정 언니나, 윤기숙 언니는 어떻게 해요?"

주영심 : "지혜 너, 만일 대학 들어가기 전에 태현이랑 이상한 짓거리 할 생각하면,
네 인생은 그걸로 다 털린 끝장이야.
태현이는 그런 게임에 넘어가는 척 해주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절대로 넘어가지 않아.
쟤랑 사귀는 일은 우선 네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가능해."

지혜 : "왜 그래야 해요?"

주영심 : "태현이는 실력없는 여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지금이야 태현이 주변에 한수정도 있고, 윤기숙도 있어.
그런데 앞으로 네가 대학 가려면 1년 반 남았나?
얘들이 그 때에도 있겠니?
만일 있으면?
네가 밀고 들어가서 확 가로채버리는 거야. 알았어?"

지혜 : "네 ..."

주영심 : "그러려니까, 네가 남의 떡을 가로채려니까, 그 떡이 또 김태현이니까.
너한테는 실력이라는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해요.
안그러면 떡이 너한테 절대로 안가려고 해.
지금 네가 공부하기 싫다는 말은, 너 스스로 좋은 대학에 가기를 거부하는 것이고.
그럼 김태현은 너 같은 애들을 거들떠 볼 시간이 없을꺼야.
내 말 알겠니?"

지혜 : "이 오빠를 채가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
윤기숙 : "언니, 그럼 지혜가 내 경쟁자네?"

주영심 : "지금이야 지혜가 아직은 어린 독수리 아닌가?
기숙이 네가 무슨 수로 자라고 있는 지혜를 당할래?
하긴, 넌 실력이 있다고 하던데 .. 그걸로 될까?
그런데 또 두고 봐야 해.
태현이 여자 문제가 아직은 한수정 손에 달려있는 거잖아?
일요일 저녁이 지나면서 교통정리가 시작될꺼야."




주영심이 이렇게 나오는데, 내가 갈비찜 값을 안낼 수가 있나?
일요일 저녁에 인천 공항에 가서 한수정을 태워오는 것도 내가 못하면 말이 안되지.

서지혜?
하하하.

이 꼬맹이는 나나 아이린이 고민하고, 골머리 썩을 일이 전혀 아니었다.
오늘 주영심의 파워는 참으로 막강했다.
서지혜는 주영심의 한마디 한마디를 듣고, 이해하고, 질문하고, 메모까지 했으니까.


우리는 다시 학교로 갔다.
주영심과 윤기숙은 학교로 들어가고, 나와 지혜는 집으로 갔다.

내 텔에 들어가지마자 지혜는 아이린을 전화로 불렀다.



"엄마. 나 지금 엄청 급하거든. 빨리 와줄래? 시간이 별로 없어."



나는 지혜에게 한마디 했다.



"엄마 놀라시겠다. 뭘 갖고 또 호들갑이야?"
"그 언니 만난 결과 보고를 해야지. 하하."

"뻥치지 말고 들은 대로만 전해."
"예. 알겠습니다."

"뭐?"
"시키시는 대로 열심히 잘 하겠습니다."

"참나."
"언니가 이러라고 했거든. 헤헤."



그런데 키스를 퍼붓는 일은 또 열심히 했다. 지혜는 내 목을 팔로 감아당기며 내 입술과 혀를 열심히 빨았다. 지혜의 키스에는 소신과 신념이 있는 것 같다. 나만의 착각인가? 나도 이 키스에는 나도 모르게 열심히 반응하게 된다.



"이러지 말라고 했을텐데?"
"키스하고 섹스하고는 다르거든. 키스마저 안하면 오빠 눈 돌아가서 안돼."



아이린이 들어오는데도 나와 지혜의 키스는 끝나지 않는다.





- - - - - - - - - -



주영심의 폭로로 말괄량이 지혜 길들이기가 웬만큼은 성공한 것 같아보입니다.
주영심이 예고한 바로는 일요일 저녁 이후에 있을 한수정의 교통정리가 문제입니다.
아직까지는 사실 별로 크게 터진 사건도 없는데 ..

그렇지만 "한수정의 일시 귀국" 이 뭔가 대형사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
끄응...

혹시 힌트 주실분 계신가요?


- Ja"d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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