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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1 23:56 933회 0건






33. 한수정에게 가장 괴로웠던 일 (the most painful)




주영심은 윤기숙에게서, 나는 지혜로부터 아메리카노를 받았다. 커피를 마시느라고 우리 네 사람은 한동안 조용하다. 커피가 들어가니까 들떠있던 나는 오히려 차분해지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는 아예 들리지도 않는다. 조용하니까 나는 더 긴장된다. 모든 기다림이 이렇게 초조하지는 않으리라. 나는 주영심에게 물었다.



"오늘 수정이네 집에서는 아무도 못 나오시나?"

"부산에서 오시기가 쉽지 않은가봐.
수정이가 내려가겠지.
그렇게까지 시간이 날 지는 모르지만."

"얘는 지금 무슨 일 때문에 오는데?"
"그건 나한테 묻지 말고 이따가 수정이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겠구만."

"야아. 갈비찜 먹으면서 공항에서 가르쳐주겠다고 했잖아?"
"궁금하면 100원! .. 히히."



일본에서 오는 것이라면, 김해공항으로 도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수정이 집으로 가려면 인천공항보다는 김해공항이 훨씬 유리하다. 집에 갔다가 열차나 비행기로 서울로 올 수 있을텐데. 그런데 왜 인천공항으로 올까? 주영심은 뭔가를 알고는 있지만 입을 열지 않으려는 심뽀다.

우리가 있는 곳과 나오는 문 사이에는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저들도 모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들 중에는 웃고, 이야기하면서 기다림을 즐기는 사람도 눈에 띈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기다림도 엄연히 삶의 한 부분이지만, 나는 아직도 이 기다림에 적응하지 못했다. 2년이 넘는 군복무 기간 동안에 제대 날짜를 기다린 것은 내 생애 최고의 인내와 기다림이었다. 그런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하고 난 지금이 오히려 입대하기 전보다도 기다림을 더욱 못견뎌 하는 것 같다. 한수정도 나와의 만남을 이렇게 초조하게 기다릴까?


드디어 사람들이 나온다. 기다리던 사람들에게서 그토록 지루하던 기다림이 끝나고 곳곳에서 만남이 시작된다. 여지 저기에서 탄식과 환호가 터져 나온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다가 커피를 마시며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한참 뒤에는 드디어 한수정이 걸어 나온다. 나는 한수정을 첫눈에 알아볼 수 있다. 밝은 갈색의 야구 모자 앞쪽에는 큼직한 노란 에스(S)자가 빛나고 있다. 흰색 바탕에 TOMORROW 라고 새겨진 기다란 티셔츠는 허벅지 중간까지 내려온다. 초록색 반바지는 티셔츠에 가려서 아주 조금씩만 보인다. 하얀 다리, 그리고 하얀 운동화. 한 손으로는 분홍색 캐리어를 끌고, 다른 손은 어깨에 멘 가방 끈을 잡고 있다.

한수정, 3년전의 대한대 공대 퀸이다.
대한대 퀸에는 들지 못했지만, 그 때도 2등은 했었다.
어린 소녀시절부터 나와 4년 가까운 시간을 같이 보낸 한수정이다.
그 후 2년이 넘는 공백기간을 거치고 난 지금은 어엿한 여인으로 성숙해있다.

한수정을 보는 순간 지금까지 벌렁거리고 혼란스러웠던 내 가슴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그리워하지 말자고, 또 기다리지 말자고 했는데, 한수정은 과연 그렇게 했을까? 나와 한수정 사이에서 그 동안 정지해 있었던 시간이 이제 잠에서 깨어나는 것 같다.


한수정은 우리가 있는 쪽을 보더니 잠시 머뭇거린다. 주영심이 한수정을 알아보고 큰 소리로 부르며 손을 흔든다.



"야! 한수정! 여기야!"



그제서야 한수정이 우리에게로 걸어온다. 주영심도 한수정에게로 간다. 너무 당당한 발걸음소리가 들린다.

또각 또각.

한수정의 발소리가 내 귀에 들리면서 내 머리까지 울린다. 온 몸의 피가 머리로 쏠린다. 한수정이 한 걸음 한 걸음 우리 쪽으로 가까이 올수록 내 가슴이 또 두근거린다. 입술이 마르고,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주먹을 쥐고 펴기를 계속 반복한다. 지혜와 윤기숙이 나에게 무슨 말을 했지만 들리지 않는다. 나는 또 커피를 마신다.

앞쪽에서 주영심과 한수정이 서로 손을 잡고 반가워한다. 주영심은 한수정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면서 나를 가리키더니, 두 사람은 나 있는 쪽으로 같이 걸어온다. 주영심이 나를 부른다.



"김태현. 내숭 고만 떨고, 이리 와서 아는 척 좀 하시지?"



윤기숙이 내 팔을 잡아 끌다시피 하여 나도 몇 걸음 한수정에게로 간다. 지혜도 내 뒤를 따른다.

한수정이 나에게 오다가 멈추니까, 이제는 내가 한수정을 향하여 가까이 가고 있다. 그런데 나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윤기숙의 힘을 빌리고 있다. 내가 한수정 앞에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주영심도 하는데, 나는 왜 지난 날의 한수정을 손잡고 맞이하지 못할까?

한수정이 내 앞에 와서 멈춘다. 우리는 모두 조용하다. 나는 한수정에게서 눈길을 뗄 수가 없다. 한수정 역시 나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다. 갑자기 한수정의 눈이 젖는다. 눈물 방울은 결국 한수정의 뺨으로 흘러내린다. 한수정의 그 젖은 눈이 나를 부른다.



"김태현."
"한수정."



한수정은 나에게 안기고, 나는 한수정을 간신히 안는다. 한수정의 손을 떠난 캐리어의 손잡이를 주영심이 간신히 잡으며 우리를 빈정거린다.



"하이고오. 진짜 눈물 난다.
이거 지금 완전 이산가족 상봉이잖아?"



그렇지만 한수정은 주영심이 한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내 귀에 소근거린다. 나도 한수정의 귀에 소근거렸다.



한수정 : "김태현. 너, 내가 누군줄 알아?
나, 김태현 여친 한수정이야. 니꺼, 2등짜리."

나 : "그래. 오느라고 수고했다."

한수정 : "이 나쁜 외계인아.
"보고 싶었다. 만나서 반갑다. 그 동안 얼마나 고생했니?" 가 먼저지."

나 : "미안. .. 보고 싶었다. 만나서 반갑다. 그 동안 얼마나 고생했니?"

주영심 : "하하하. 얘들 지금 앵무새 키우니?"

한수정 : "언니, 지금 얘가 한 말에 진심이 보여?"

주영심 : "전혀 & 네버!"

나 : "비록 시키는 대로 따라 하기는 했지만, 내 진심이야.
한수정이 내 마음을 콕 집어낸거야."

한수정 : "김태현. 지금까지 우리는 잠시 헤어져 있었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알지?
나는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결코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어."

나 : "그래. 돌아와주어서 고마워."

한수정 : "It hurts to love you and not be loved in return, but what is the most painful is to love you and that you never know how I feel."

나 : "너를 사랑하면서 너에게서 사랑 받지 못하는 것은 아픔이야. 그러나 가장 괴로운 일은 너를 사랑하면서도 내가 느끼는 것을 네가 모른다는 것이야."

주영심 : "벼어얼. .. 기자회견 하냐?
기왕에 할꺼면 큰 소리로 하든가. 우리도 귀동냥 좀 하게."

한수정 : "아이. 참. 옛날에 동아리에서 연극했던 것이 갑자기 생각나서 .."



한수정은 젖은 눈으로 내 얼굴을 보며 우선은 이렇게 내 가슴에 대못을 콱 박았다. 자칫하면 내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그리고 나서 한수정은 팔을 내 목에 걸고 내 입술에 키스한다. 나도 같이 응한다. 예전에 키스할 때의 한수정의 촉촉한 입술과 부드럽게 빨아들이던 것이 생각난다.



주영심 : "이건 뭐. .. 이따가 나중에 너네 둘이 있을 때 하면 안돼?"
한수정 : "잠깐이면 돼. 우선 급한 불부터 끄고. 헤헤."
윤기숙 : " 맞아. .. 언니, 좀 놔둬요."



키스가 끝나고 한수정은 내게서 떨어져나갔다. 지혜는 가방에서 티슈를 꺼내서 한수정의 손에 쥐어준다. 저 쪼끄만게 또 무슨 말을 할 지 나는 긴장한다.



지혜 : "언니, 저는 서지혜입니다. 엄청 반갑네요. 헤헤."

한수정 : "고마워. 그런데 너는 누구지?
네가 그 당돌하다는 여고생이야?"

지혜 : "예. 아마 그럴껄요."

한수정 : "이렇게 예쁘게 차려 입어서 그러나?
여고생으로 알아보기가 쉽지 않네."

지혜 : "감사해요. 헤헤."

한수정 : "음.. 그럼 너는 윤기숙?"
윤기숙 : "예. 말로만 듣던 레전드의 귀환이시네요."

한수정 : "이러언. .. 퀸께서 직접 왕림하시다니. .. 하하."
윤기숙 : "선배 퀸께서 오시는데, 당연하죠. .. 하하"

한수정 : "여고생! 그리고 퀸!
내가 Return To My Love 한 것 아시겠죠?
이제 내 사랑을 나에게 반납하세요. 아셨죠?"

윤기숙 : "예. 그러죠. 뭐 ..."

지혜 : "언니, 저.. 완전 반납은 쫌 그런데..
혹시 계시는 동안에 제가 잠시 빌려드리는 것으로 하면 안될까요?"

한수정 : "뭐야? 하하하. 역시 당돌하네."

주영심 : "김태현. 이제 나가자."

윤기숙 : "그럼 .. 언니는 어디로 가시죠?"

한수정 : "글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태현이가 알겠지."
주영심 : "맞다. 태현이 있으니까 그건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닌 것 같다."

나 : "음.. 우리 같이 가서 저녁 먹고 헤어지자."
전부 : "콜."

지혜 : "오빠, 우리 지난 번 그 갈비찜 진짜 맛있던데."
주영심 : "나대지 마. 오늘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거든."

지혜 : "얍! .. 죄송요. .. 그런데 .. 저기요. 한수정 언니!"
한수정 : "어?"

지혜 : "이번에 얼마나 계시나요?"
한수정 : "글쎄. .. 태현이가 마음에 들면 2주 정도?"

지혜 : "안들면요?"
한수정 : "1주일? .. 그게 왜 궁금해?"

지혜 : "오빠가 내 수업하는 것을 얼마 동안이나 부실하게 할까 계산해두려고요. .. 하하."
한수정 : "오빠가 수업을 엉망으로 하면, 내가 대신 해 줄께. 조금도 걱정 하지 마. .. 하하."

지혜 : "어머머. 정말요? .. 꼭 부탁해요. 진심으로요."

한수정 : "나도 일단 조금은 쉬어야 하거든요.
쉬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

지혜 : "예, 언니!"



쪼끄만게 한수정에게서 벌써 한 건을 올렸다.

우리는 다 같이 신촌으로 가기로 하고 내 차에 탔다. 내 옆에는 한수정이 타고, 뒤에 나머지 셋이 탔다. 한수정은 도쿄에서 일주일 동안 일식을 지겹도록 먹고 살았다면서 한식이나, 이탈리안으로 가자고 했다. 우리는 피자집으로 갔다. 피자와 파스타를 먹으면서 수다가 계속된다.



주영심 : "몇 년 만에 만난 여친에게 겨우 피자니?"
한수정 : "언니, 우리 외계인이 가자고 하는 데에는 믿고 따라가도 돼."

윤기숙 : "언니, 이 피자 완전 수제라서 먹을 만 해요."

주영심 : "그래? 왜 나는 지금까지 여기를 몰랐지?
그런데 피자가 수제 아닌 것도 있나?"

지혜 : "파스타가 수제 아닌가?"

한수정 : "언니가 외계인 자주 좀 챙겨주지 그랬어?
쟤가 이런데 구석구석 잘 찾아서 데리고 가는데."

주영심 : "나도 그러고야 싶지.
그런데 쟤 주변에 젊고 싱싱한 애들이 워낙 많거든.
나 같은 늙은이한테는 차례가 전혀 안 와. 하하."

한수정 : "하긴. 쟤가 그러고도 남지. 하하."

윤기숙 : "언니는 캐나다에서 열공 한다고 들었는데,
헬쓰도 열심히 다니셨나?"

한수정 : "헬쓰? 거기는 그런 것 싼 값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엄청 많다고 들었는데,
난 아직 구경도 못해봤어."

주영심 : "그런데도 퀸의 몸은 어찌하여 아직도 이렇게 탱글탱글?"
한수정 : "어? 나는 내 몸에 대해서 신경 쓴 적이 전혀 없거든?"

윤기숙 : "그런데도 이런 상황이면 .. 진짜 부럽다."
한수정 : "신이 내린 미친 몸매, 뭐 이런 말 있잖아요? 하하."

주영심 : "기숙이 너한테는 란제리나 화장품 모델 제의 들어오는 것 없어?
전에 수정이한테는 엄청 많았었는데."

윤기숙 : "모델 얘기는 지금도 들어와요.
그치만 난 아나운서 쪽으로 해보려고 .."

주영심 : "어? 그래? 그럼 건축은 어쩌고?"
윤기숙 : "건축이야 .. 뭐가 어찌 돼도 항상 제 메인이죠."

한수정 : "그럼 .. 기숙이는 무엇을 하고 싶은데?"

윤기숙 : "태양열 보존 주택요.
쉽게 말하면, 풍부하게 넘치는 여름에 보존했다가, 부족한 겨울에 사용하는 .."

한수정 : "그거 하려면 태양열 배터리가 있어야겠네. .. 우리나라에서는 쫌 .."
윤기숙 : "저는 프랑스로 계획하고 있어요. 일단 졸업부터 하고 나서요."

주영심 : "야아아. 너 프랑스로 가면, 그럼 김태현은 어쩌고?"
윤기숙 : "언니, 그거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위장커플이었는걸요? 하하."

한수정 : "뭐야? .. 왜, 위장?"
지혜 : "하아아. 어떡해?"

윤기숙 : "워낙 벌레들이 많이 끓잖아요.
그래서 나랑 오빠랑 사귄다고 소문이나 나라고 일부러 그랬어요.
수정이 언니도 태현 오빠랑 사귀니까 남자들이 일체 접근을 하지 않았다면서요?"

한수정 : "맞아. 외계인이 완벽한 살충제였어. 하하."

주영심 : "그럼 그 커플링도 위장이었단 말이야?"
윤기숙 : "사기를 치려면 확실하게 쳐야죠. 하하."



저녁을 먹고 나서, 나는 헤어지자고 했지만, 주영심과 윤기숙이 엄청 아쉬워하는 눈치이다. 한수정도 이 상황을 기분 좋게 접수해버린다.



"오라리오가 어디야?"
"저쪽, 길 건너편. 왜?"

"외계인, 너 요새 거기 알바생이랑 썸탄다며? 걔 구경이나 해보자."
"너는 피곤하지도 않아?"

"도쿄 인천은 3시간 비행거리야. 그걸로 피곤하면 내가 퀸이니?"
"어차피 너는 3년 전 퀸이거든요."

"낸들 그거 모르냐? .. 이 퀸 킬러야."
"위장이라니까!"




윤기숙은 그 자리에서 권혜주와 전화통화를 한다. 혜주에게 우리가 곧 도착해서 비지니스룸을 사용하겠다고 알렸다. 얼마 후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오라리오로 건너 갔다. 윤기숙이 나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윤기숙 : "오빠, 오늘 돈 너무 많이 쓰는 것 아냐?"

한수정 : "어머머. 너 지금 태현이 지갑 걱정하니?
그럼 진짜로 위장인 것이 맞네.
김태현이 돈을 쓰겠다고 나서면, 이 나라에서 말릴 사람이 없어요.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거든?"

윤기숙 : "아, 예에."



우리가 오라리오에 들어서자, 나를 보는 권혜주의 두 눈은 왕사탕 만큼 커진다.



권혜주 : "뭐. .. 뭐야. .. 오빠!
지금 한꺼번에 여자 몇 명을 데리고 오는거야?"

윤기숙 : "혜주야. 오을 오빠는 무죄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모시고 온 내 손님들이거든요. .. 하하."

주영심 : "뭐야아. 여기도 위장이었어?"

윤기숙 : "언니, 얘는 내 친구 권혜주.
태현 오빠가 데리고 오는 여자를 감시하는 일도 해요. 하하"

한수정 : "윤기숙이 이런 정도면 나는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잖아?"
주영심 : "그러네. .. 하하. .. 기숙이가 태현이를 감시하려고 친구를 끌어들이다니."

윤기숙 : "선배 퀸을 위해서 이 정도 서비스 정도야 뭐 .. 하하."
한수정 : " 후배 퀸아. 나 지금 또 눈물 나려고 하네. .. 하하."

권혜주 : "그런데 누구세요? 오늘 저희 가게에 처음이시죠?"
윤기숙 : "태현 오빠 오리지널 여친이셔."

권혜주 : "어머머. 그래요? 그럼 캐나다에 계시다는 분 맞죠?
3년 전에 대한다 공대 퀸이셨다면서요?"

윤기숙 : "그래. 도쿄 거쳐서 지금 도착하셨어."
한수정 : "나는 꿀 먹은 벙어리 해도 되겠네. .. 하하하."




우리는 거기서 한 시간 정도 와인을 마시면서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다. 윤기숙과 주영심은 각자 택시를 타고 갔고, 나는 한수정과 지혜를 내 차에 태우고 오피스텔로 왔다. 차에서 내리자 지혜는 우리에게 인사하고 먼저 올라갔다. 나는 그 때까지도 한수정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한수정. .. 불편하더라도 내 방에서 잘래?
아니면 모텔에 가서 편하게 잘래?"

"자기 방 놔두고 지저분하게 모텔은 왜 가?
그때 겨울에 부산 왔을 때, 송도에 있는 모텔에서 하루 밤 혼자 재웠다고 보복하려고?"

"그게 아니라 네 생각을 .."
"됐어. 어디야? 앞장 서."



나는 한수정을 데리고 내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나는 한수정에게 옷방을 가리켜주면서 캐리어를 내 옷방에 넣어두었다. 한수정은 바로 욕실로 들어가고, 나는 주방으로 가서 커피를 내리도록 해놓고 재빨리 지혜에게로 내려갔다.

지혜의 오피스텔 앞에서 벨을 누르자, 지혜가 문을 열어주어서 나는 안으로 들어섰다.



"오빠, 왜 내려왔어?"
"지혜가 걱정 돼서."

"왜 나를 걱정한대? 나 지금 자고 내일 아침에 학교에 가야 하거든."
"그러니까 너 별 일 없는 거지?"

"벼얼. .. 어차피 저 언니 때문에 이번 주에는 수업을 못하네?"
"글쎄. 그렇지는 않을꺼야. 수정이도 일정이 있으니까."

"오빠는 우리 일에 신경 쓰지 말고, 한수정 언니한테 집중해.
괜히 쓸데없는 일로 언니 빡치게 하지마.
개학 첫 주 이니까 나나 경식이는 별 일 없으니까 안심해도 돼. 알았죠?"

"알았다."
"하아아. .. 언니는 오늘 밤에 진짜 좋겠다. .."

"왜?"
"몇 년 만에 자기 남자 만났는데 어떻게 안 좋을 수가 있겠어?"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잘 자."



지혜는 나에게 키스하고, 내 손을 당겨가서 자기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게 한 후에 나를 올려 보냈다.


나는 내 텔로 올라와서 최수희에게 전화를 해서 월차를 쓰든 어떻게 해서라도 이번 주를 쉬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최수희는 어차피 이번 주는 외근으로 짜여져 있으므로 자기가 알아서 할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한수정이 욕실에서 나오고 내가 들어갔다. 내가 샤워하고 나왔을 때 한수정은 이미 잠옷으로 갈아입고 주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아까 공항에서 보니까 윤기숙이나 여고생 지혜가 전부 너랑 똑같은 반지던데?"
"그게 왜?"

"김태현의 여자들이 전부 다 나와서 무엇을 어쩌자는 것이었어?"


"뭐야? .. 하하하하.
너, 진짜 웃긴다.
윤기숙은 위장이라고 분명히 말했고,
윤기숙이 오늘 거기에 왜 나갔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걔는 원래 계획에 없었어.
지혜는 걔가 내 반지랑 똑같이 만들어서 낀 거야.
지혜는 너 보고 싶다고 공항패션까지 신경 써가면서 나간거였어.
그 동안 내가 내 여친 얘기를 워낙 잘 했나봐.
나나 걔네들이 너한테 뭘 어쨌다고?"

"아무래도 그 고딩이 제일 위험한 것 같다."
"아직 어린 애를 놓고 왜 그래?"

"내가 너한테 빠졌을 때가 고딩때였다는 것을 잊었어? 하하."
"그 때는 나도 고딩이었거든? .. 그 때 나는 안 그랬을 것 같지?"

"너는 모르겠고. 너는 고딩이냐 대딩이냐가 문제가 아냐.
어떤 여자든 김태현 너한테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

"별 소리를 다 듣네."

"그럼 너는 윤기숙이나 서지혜의 몸에 손 하나 대지 않았다고?"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어. 안심해."

"말 바꾸지 마.
그런 일이 일어났고, 안 일어났고가 문제가 아니야.
손 댔어, 안 댔어?"

"안댔어."

"주영심 언니랑은?"
"네가 오늘 보고 들은 것이 전부 다야."

"와인바 알바생은?"

"윤기숙 친구인데, 지금까지 나를 감시했대잖아?
내가 걔를 왜 건드려?"

"오늘 나오지 않은 여자는?"

"나는 더 이상 보여줄 여자가 없어.
더 필요하면 네가 노력해서 알아내."

"없다고는 안 하네."
"있다고도 안 했거든."

"그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 지는 내가 판단할 일이야."
"네 마음대로 해. 너 엄청 피곤할테니까 오늘은 이만 자자."

"나, 어디서 자?"



우리는 침실로 갔다. 나는 한수정에게 침대를 양보하고 거실로 나왔다. 나는 주방에서 잔과 와인을 들고 소파로 와서 TV를 켰다.

잔에 와인을 따라서 마시면서 눈길은 TV 화면에 두고 있다. 그러나 머리 속에는 온통 침대에 누워 있을 한수정에 대한 생각뿐이다.

나는 우리가 지난 번에 마지막으로 같이 모텔에서 보낸 밤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한 짓이 있어서 그런지 아기가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대해서 아직까지 아무 말이 없는 것을 보면 아기는 생기지 않았던 것 같다.

한수정이 캐나다에서는 어떻게 살며, 공부는 어떻게 했을까? 한수정이 하겠다고 독기를 품고 덤벼들면 해내는 성격인 것은 이미 나도 알고 있다. 과연 캐나다에서도 그랬는지가 궁금하다.



그런데 침실 문이 열리고, 한수정이 거실로 나온다. 내 옆에 와서 앉으며 내게 묻는다.



"기다렸는데, 안 오고 여기서 뭐해?"
"나는 여기서 잘껀데?"

"뭐야? 너 진짜 이럴꺼야?"
"어?"

"너 진짜 완전 어이없다.
우리가 몇 년 만에 만났는데, 날더러 혼자 자라고?"

"그게 ..."
"나도 마시자."



한수정은 내 잔을 들고 와인을 마신다.




=*=*=*=*=*=





기어코 한수정은 나타났습니다.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 주십시오.



제가 다음 글을 빨리 올리면, 그 글 읽으러 너무 급하게 가시는 바람에
이 글에는 추천도 댓글도 안주시잖아요?

그래서 하루에 한개씩만 올려요.

이번에는 다시 한개 더 올려보는데, .. 어떻게 하시는가 함 두고 볼께요. ㅋㅋㅋ




- Ja"d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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