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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07 661회 0건
서영은 1라운드 게임 참여 장소에 데려다 주었던 택시기사인 ‘에이스’를 떠올렸다. 자신과 헤어지기 직전에 택시기사였던 에이스가 쪽지를 남겼었고, 서영은 남들 몰래 그 쪽지 내용을 읽었고, 또 에이스의 연락처를 머릿속으로 외웠었다.

“그... 그가... 위기 상황에 자신에게 연락을 달라고 그랬지... 찬스를 쓰라며...”

서영은 에이스가 남겼던 쪽지 내용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에이스가 지시했던 사항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남편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었는데...”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서영은 에이스의 존재를 기억해 냈고, 왠지 그라면 서영 부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영은 침대에서 일어난 상황에서 대충 옷을 두른 후, 거실로 나갔다. 혼자 놀고 있던 연아가 급하게 뛰어나오는 서영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어... 엄마!”

“연아야. 잠시만... 엄마... 앞에 좀 나갔다 올게.”

“가... 같이 가면 안 돼요?”

“미안... 금방 올게. 조금만 기다려.”

“잉...”

투정을 부리는 연아를 뒤로하고 서영은 황급히 밖으로 뛰어 나갔다. 거리로 나선 서영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어느 곳을 생각했는지, 왼쪽 방향으로 몸을 돌려 뛰어가기 시작했다.

“헉... 헉...”

서영은 금방 숨이 가빠왔지만, 쉬지 않았다. 서영 부부는 지금 이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몇 분의 시간이 흘렀고, 서영은 여전히 거리를 달리고 있었고, 그녀의 눈에는 익숙한 장면이 들어왔다.

“후아.... 후아...”

공중전화 박스에 도착한 서영은 숨을 내쉬며 심장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동전을 몇 개 꺼냈다. 수화기를 든 채, 공중전화 동전 투입구에 동전 몇 개를 집어넣었고, 서영은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던 에이스의 전화번호를 차분히 누르기 시작했다.

“... 신호가....”

서영은 가슴이 떨려왔지만, 다행스럽게도 신호가 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번의 신호음 끝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아주 짧은 목소리였지만, 서영은 익숙했다. 자신의 귀가 한 번 들었던 목소리임을 확인시켜주었고, 반가운 마음에 서영이 조금은 큰 목소리로 말을 했다.

“에... 에이스?”

- ......

“에... 에이스 맞죠? 저 기억하세요?”

서영의 ‘에이스’라는 부름에 전화를 받은 상대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영은 점점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 에이스라?

“에이스가 아닌가요?”

- 맞긴 한데...

“아... 다행이다.”

서영은 철렁거렸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화를 받은 상대가 에이스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 에이스는 맞긴한데... 넌 누구지?

뜻밖에도 에이스는 서영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고작 며칠이나 지났다고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인가. 서영은 다급한 마음에 두서없이 자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 얼마 전에... 강원도에서 택시... 탔잖아요. 컴퍼니... 게임에 참여...”

- 장난이었어. 훗.

당황해 하는 서영의 목소리를 즐겼던 것일까. 에이스는 장난이라며 밝히며 알 수 없는 웃음을 보였다. 서영은 수화기로 에이스의 장난 섞인 웃음소리를 듣고 화가 났지만,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 그런데... 무슨 일이지?

“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 벌써 위기 상황인가? 그러면 실망인 걸... 날짜 계산을 해보면 고작 2라운드 혹은 3라운드나 끝났을 것 같은데... 마지막 라운드가 어떻게 되지?

“7라운드까지 진행이 되고... 지금 3라운드까지는 통과했어요. 곧 4라운드에 참여할 것 같고...”

- 하하하하하.

“왜... 왜 웃어요?”

- 지금 장난해?

수화기를 통해 듣는 에이스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서영은 비록 에이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목소리만 듣고 있었지만, 온 몸이 서늘해질 정도로 공포심을 느껴야했다.

“자... 장난 아니에요.”

- 나에게는 장난 같이 느껴지는데? 내가 뭐라고 했지? 기억이 안 나? 전체 7라운드 게임에서 아직 절반도 못 끝냈는데... 위기 상황이야? 하하하. 내가 사람을 잘 못 봤군... 이만 끊도록 하지.

“아... 안 돼요. 자... 잠깐만 기다려줘요.”

서영은 에이스가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매우 다급해졌다. 에이스마저 놓치면 수영 부부를 도저히 구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고작 3라운드 통과해놓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이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제... 제발 도와줘요. 조... 조금만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 내가 도와주는 건 일종의 히든카드라고 했었지. 히든카드는 딱 한 번이야. 그런데 4라운드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 히든카드를 써버린다고? 난 이해할 수 없는데...

서영은 에이스의 말을 듣고 어떤 대답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에이스라고 하더라도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도와주기는 하는 건데... 그 히든카드를... 쓰는 건 아니에요.”

- 무슨 말이야? 도와주면 도와주는 것이지... 히든카드를 쓰자는 건 아니라니...

“그... 그러니까 제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게임을 도와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은... 제가 아니라 제 친구가 위기에 빠졌어요.”

- 친구의 위기라... 하하하하. 이거 골 때리는 년이구만....

“제발... 이야기만이라도 들어주세요.”

서영은 계속해서 에이스에게 빌 수 밖 에 없었다. 서영의 애틋한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몇 초동안 침묵을 지키던 에이스가 말을 했다.

- 좋아. 대신 3분을 주겠어. 요약해서 말해 봐.

다행히 에이스의 허락이 떨어졌고, 서영은 1라운드 게임부터 3라운드 게임까지 있었던 일을 최대한 간략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3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3라운드 게임에서의 수영 부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다시 한 번 강조를 한 서영이었다. 에이스에게 전화를 건 목적이 수영 부부를 구하기였으니...

“그래서... 전 그들을 구하고 싶어서...”

- 거 참... 지랄하네.

“네... 네?”

- 지랄한다고...

“도와주세요... 제발.”

- 이거 누가 누굴 구한단 말이야. 당신 정말 바보 아니야? 자기 앞길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한다고? 어이가 없군.

“..........”

서영은 에이스의 말에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엄연한 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4라운드 게임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그런데 탈락한 사람을 구한다라? 누가 듣더라도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자기 코가 석자인 것은 안 보이나?

“그렇지만... 구하고 싶어요.”

- 당신 빚이 얼마나 돼?

에이스가 갑자기 서영이 지고 빚의 액수를 물었다. 서영은 에이스의 의도를 알 수 없었지만, 솔직하게 대답을 했다.

“약 30억 정도...”

- 지랄 맞게 큰돈이군... 아마 참여자들 중에서 당신들 부부가 가장 빚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겠는데? 그건 그렇고 우승 상금이 얼마라고 했지?

“치킨 박이라는 사람이 50억이라고 했어요.”

- 50억이라... 우승을 하면 빚을 제외하고도 20억이 남는군.

에이스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서영은 초조하게 에이스의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 20억이라... 적지 않은 돈이야.

“네?”

- 무슨 뜻인 줄 몰라? 당장 1억... 아니 몇 천, 몇 백 만원만 쥐어줘도 사람을 대신 죽여주는 세상이야. 그런데 20억이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돈이지...

“그... 그럼? 우승을 해서 상금으로 수영 부부를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 그건 나도 몰라. 그러나 분명 가능성은 있어. 치킨 박이 그런 말을 했다며? 루저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으면... 직접 루저가 되어 보거나... 우승을 하거나... 이 말은 곧 우승을 하면 루저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고... 방법이야 알 수 없지만... 상금을 가지고 당신 친구를 살려볼 수는 있겠지.

에이스 역시 정확한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서영은 희망의 빛줄기를 발견했다. 우승을 한다면 수영 부부를 살릴 수도 있다는 에이스의 말, 그 말 한 마디가 깊은 절망에 빠졌던 서영을 다시 땅 위로 일어서게 했다.

“사... 살릴 수 있는 것이죠?”

- 나도 확실히 모른다니까. 그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일 뿐이지. 그리고 일단 우승을 해야 이 가능성을 확인해볼 수 있지 않을까?

“... 꼭... 꼭 우승할 거예요.”

- 입은 살아 있나 보군. 쉽지가 않을 텐데... 더구나 이야기 들어보니까 3라운드에 만났던 적들... 같이 4라운드에 진출했던 적들... 만만치가 않은 것 같군... 재밌겠어.

“이... 이겨낼 수 있어요.”

- 비록 3분 동안 짧게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 생각에는 여전히 쉽지가 않을 것 같은데? 당신 남편이... 역시나... 문제가 크단 말이야.

“가... 같이 이겨낼 수 있어요.”

- 과연 그럴까? 내가 당신을 선택했으니... 믿어보는 수 밖 에 없지만... 내가 오늘 크게 양보를 하겠어. 히든카드는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남겨두지. 대신에 담에는 이런 일 가지고 나에게 연락하지 마.

“알겠어요.”

- 그리고... 몇 가지 조언을 줄 텐데....

서영은 에이스에게 전화를 한 것에 대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 부부를 구할 수 있는 일말의 방법도 제시 받았지만, 또 다시 조언을 들을 수가 있다니...

“부탁해요.”

- 게임을 포기할 생각이 없나? 내 최고의 조언은 게임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인데...

“아... 기억나요. 그러나 이제는 더욱 더 포기할 수 없어요. 친구를 구해야 하니까...”

- 참... 오지랖도 넓어서... 쯧쯧. 좋아. 두 가지 조언을 해주겠어. 먼저 더 이상의 친구를 만들지 마. 이 게임은 해봐서 알겠지만, 마음이 약해서는 절대 이기지 못해. 믿음은 부부 사이에서나 가능하지... 이번처럼 다른 참여자와 믿음을 나누면, 그것 역시 일종의 게임이 돼. 서로 믿냐, 안 믿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알겠어?

“알겠어요.”

- 수영 부부라고 했나? 그들을 구하고 싶으면... 더욱 더 다른 참여자와 손을 잡는 행위를 하지 마. 굳이 함께 하고 싶으면... 반드시 배신 해. 다른 참여자의 눈물에 인정을 보이지 말라는 거야.

“... 알았어요.”

서영이 에이스의 말에 힘없이 대답을 했다. 배신을 하라는 말, 썩 듣기에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 마지막으로... 조언이 아닐 수도 있으나...

“네. 말씀 하세요.”

- 행운이 따르기를....

“네? 무슨 말이죠?”

- 내가 이 말까지 할 줄은 몰랐지만... 나 역시 루저 출신이야.

“네? 뭐라고요?”

서영은 에이스의 말에 깜짝 놀랐다. 에이스가 루저 출신이라니...

“루저 출신이라면... 루저가 되면... 그래도 괜찮은 걸까요?”

- 하하하하하. 웃기는 소리. 내가 왜 게임에 참여하지 말라고 했을까? 총 100쌍의 부부가 참여했다고 했지? 상금만 타고 게임에 포기할 수 있다고 했지?

“네. 이론상으로는 그게 가능해요.”

- 좆까는 소리지. 100쌍의 부부 중 우승하는 팀은 딱 한 팀. 나머지 99쌍은 루저가 된다. 그 누구도 게임을 포기하지 못하지. 그게 바로 섹스게임의 마력이야. 그만두어도 되는 상황에 또 다시 게임에 참여하게 만드니까. 물론, 빚이 클수록 마지막까지 갈 수 밖에 없어. 당신 부부 역시 마찬가지야. 그런데 거기에 친구를 구한다고 하니까, 반드시 우승해야겠지?

“... 그래야겠죠.”

- 결국 당신 부부는 우승 아니면, 루저야. 그런데 루저는 99쌍이 될 것이고... 당신 부부는 어느 쪽일까? 당신! 루저가 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모... 몰라요. 치킨 박의 말에는 오히려 위너가 될 수도...”

- 아주 개새끼야. 아니 닭대가리라고 해야 되나? 하하하.

에이스가 치킨 박에게 욕설을 내뱉은 후,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웃음을 멈추고 이어서 말을 했다.

- 죽는다.

“네에... 진짜 죽는다고요?”

서영은 루저가 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예상을 하긴 했다. 그러나 에이스는 단호하게 루저는 죽는다고 말을 했다.

- 나 역시 너무 많은 비밀을 누설해 버리는군. 컴퍼니가 알면... 나 역시 죽은 목숨일 뿐... 루저가 되면 대다수 죽는다. 그리고 그 중 몇은 살아남을 수 있지. 살아남은 사랑 중 몇은 평생 부귀영화도 누릴 수가 있다. 그러나 그건 사람 사는 게 아니지. 어찌 보면... 다 죽는 거나 마찬가지... 나 역시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야.

“더... 더 자세히 알려주세요. 루저가 되면... 어떻게 되나요?”

- 당신 우승하고 싶지?

“네.”

- 골때리는년, 양심도 없이 질문을 하는군. 더 이상 말해주면... 당신에게 독이 될 거야. 아는 것이 힘이 될 때도 있지만, 때론 지나치게 알면, 먼저 죽기 마련이지. 내가 왜 행운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을까?

“모... 몰라요.”

- 당신 부부가 어렵게 우승을 했어. 엄청난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겠지. 그리고 상금으로 30억의 빚을 갚고, 20억으로 수영 부부를 구한다고 할 때... 이런 생각도 해봐야지.

“무슨 생각이요?”

서영의 질문에 에이스가 싸늘하게 대답을 했다.

- 돈은 있어. 그런데 구하고 싶은 사람이 이 세상에 없어.




@ 49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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