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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06 632회 0건
검은 상자 안에서 3장의 쪽지를 집어낸 영호는 자연스럽게 손을 빼냈다. 그리고 주먹을 쥔 상태로 3개의 쪽지를 숨겼다. 쪽지를 바지 주머니에 넣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첫 번째 게임에도 주먹을 쥔 상태에서 쪽지를 숨겼으니, 일관된 행동을 보여주어야 했다. 다행히 그 누구도 영호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서영은 유심히 영호를 지켜봤지만 이상한 점은 찾을 수가 없었다. 쪽지를 뽑는 과정도 별달리 특별한 점이 없었고, 영호의 표정 역시 언제나 한결 같았다. 그러나 서영은 찝찝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어떤 일이라도 그에 대해서는 이유가 있는 법이었으니...

‘알 수가 없어... 도대체 왜 그랬을까? 아니면... 내가 너무 걱정을 하는 것일까? 그냥 뽑기를 하는 것일 뿐인데... 더구나 이번 두 번째 게임은 단순히 운에 의해 결정되는 게임이니... 내가 너무 예민했나?’

서영이 영호를 지켜보는 가운데, 5번 부부의 남편이 민석이 검은 상자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 장의 쪽지를 뽑았고, 다음은 명진, 그리고 영수와 민혁이 차례대로 추행범을 결정하는 뽑기를 할 수 있었다.

- 하하하. 다들 한 장씩 쪽지를 뽑으셨지요?

다섯 부부의 운명을 결정하는 추행범을 결정하는 뽑기가 끝났다.

- 첫 번째 게임과 같습니다. 각자의 방에 들어가셔서 남자 분들은 쪽지를 확인하세요. 하하하. 여자 분들은 이번에도 고생을 좀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자, 이제 시작해 보도록 하죠.

치킨 박의 말이 끝나고 모든 참여자가 자신의 방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모든 참여자가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게임이 실시가 되었는데, 특히 추행범이 될 수 있는 남자들의 마음은 급했다. 그래서 피해자가 되는 여자들보다 남자들의 발걸음이 빨랐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쪽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됐을까? 60%의 확률이었는데...”

통로 좌측의 6번방에 들어온 영호는 그 어떤 남자들보다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긴장이라는 것도 영호에게 있어서는 그 성질이 달랐다. 초조함과 불안함이 아닌 흥분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승부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영호였다.

“휴우... 시작해 볼까?”

침대에 걸터앉은 영호가 오른 주먹을 펼쳤다. 영호의 손바닥에는 세 개의 쪽지가 있었다. 남들 눈에 걸리지 않았으니, 영호의 계획은 성공이었다. 그러나 정말 성공하려면 자신이 추행범이 되어야 했기에, 영호는 조심스럽게 첫 번째 쪽지를 펼쳐보았다.

“꽝이군... 하하.”

첫 번째 쪽지에는 아무 글씨가 적혀 있지 않았다. 영호는 이어 두 번째 쪽지를 펼쳐보았다. 추행범이라는 글쓰기 적혀 있기를 바라며, 쪽지를 펼쳤지만, 두 번째 쪽지도 아무 글씨가 적혀 있지 않았다.

“꼭 이런다니까... 하나 남았는데...”

영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자꾸 헛웃음만 나왔다. 종이 한 장에 느껴지는 흥분감에 영호는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그랬지... 다 내 세상 같았어... 마지막 한 판을 지기 전까지는... 그때도 종이 한 장이었는데... 후훗... 이번에야 말로 패할 수 없겠지.”

마지막 쪽지를 영호가 펼쳐보았다. 그리고 그의 입가는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추행범.

마지막 쪽지에서 영호는 그토록 기다리던 세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게임은 영호의 계획대로 그가 추행범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리고 영호가 추행범이 적힌 쪽지를 들고 있는 가운데, 방안의 스크린에는 치킨 박이 등장하였다.

- 하하하. 축하드립니다. 차영호님. 역시 전직 겜블러 다운 솜씨군요.

“풋... 겜블러라니요. 과찬입니다. 그냥 길거리 야바위꾼이었지요.”

- 하하하. 지켜보는 저 치킨 박은 여러분들의 행동과 대화가 너무나 흥미롭답니다. 사실 두 번째 게임을 많이 기대했어요. 누가 과연 하늘의 뜻을 받을 수 있을까? 하하하. 그런데 저를 비롯한 컴퍼니는 여러분들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 차영호님을요. 하늘의 뜻을 직접 만들어 내시니... 새삼 놀라웠습니다. 하하하.

“규칙 위반은 아니지요?”

영호가 치킨 박에게 자신의 계획이 규칙위반이냐고 물었다.

- 하하하. 그에 대해서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규칙위반이었다면 이미 저희가 통제를 했을 겁니다. 규정에는 쪽지를 바꿔치기 하면 안 된다라는 내용이 없으니... 하하하. 저희 컴퍼니가 준비한 게임의 허점을 이용하는 것도 게임 참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저희야 말로 이번에 배웠습니다. 하하하. 쪽지를 바꿔 칠 생각을 하다니... 상상도 못했지요. 또한 놀랐습니다. 다른 참여자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아주 자연스런 행동이었어요. 만약에 다른 참여자가 쪽지를 한 장씩 뽑는 것을 확인하자라는 말만 했다면... 계획은 무산되었을 텐데... 그런 생각 자체를 못하게 할 정도로 좋은 연기였습니다. 하하하.

치킨 박은 영호가 대단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 짧은 시간에 또 그 역경 속에서 기지를 발휘하여 모든 참여자들을 속여 버린 것이었다. 마치 콜럼버스가 달걀을 세웠던 것처럼,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영호는 실행하고 있었다.

“그럼 제가 추행범이니...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하하하. 좋습니다.

영호가 추행범으로 결정이 되면서 본격적인 두 번째 게임이 시작이 되었다. 영호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일단 계획대로 해볼까? 마침 기분도 풀 겸...’

영호가 방문을 열고 통로로 나갔다. 그리고 피해자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두 번째 게임 직전, 영수가 떠나고 영호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해 5번 부부인 민석과 지민을 찾아갔다.

“아이고... 형제자매님. 안녕하십니까?”

영호는 민석과 지민을 향해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민석과 지민은 얼떨떨하긴 했지만, 영호가 말하는 ‘형제자매’라는 소리에 썩 기분이 좋았다.

“아... 영호님도 은혜를 아시는 분인가요?”

민석이 영호에게 물었다. 그리고 영호는 손사래를 치며 민석에게 대답했다.

“은혜는... 아직 어리석은 사람일 뿐입니다. 그 분의 은혜를 느끼고 또 고마워하고 싶지만... 언제나 저는 사탄의 유혹에 빠지는 어리석은 사람일 뿐이지요.”

“사탄의 유혹... 그것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겨낼 수 있답니다.”

“사람을 의심합니다. 또 괴로워합니다. 그 분께 기도를 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하지만, 저는 똑같은 잘못을 반복합니다. 민석님과 지민님을 의심했습니다. 큰 죄지요. 의심을 했기에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래도 용서를 하세요. 잘 오셨어요.”

영호의 뜻하지 않는 고백에 지민이 웃는 얼굴로 대답을 해줬다.

“민석님과 지민님을 지켜봤습니다. 언제나 그 분께 기도하는 모습...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저 역시 그 분께 항상 다가가고 싶지만... 왜 두 분을 의심해야 했는지, 지금도 후회가 된답니다.”

“사람은 항상 죄를 짓지요.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는 항상 지켜보시면서 또 용서를 하신답니다.”

“네. 맞아요. 영호 형제님은 이미 용서를 받으셨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두 분 말씀 들으니까, 제 마음이 조금 나아지네요.”

영호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민석과 지민 앞에서는 마치 기독교인처럼 행동을 했다. 무릇 종교라는 것이 다 그렇지만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누워서 떡 먹는 것보다 쉬웠다. 따로 공부할 필요도 없고 준비할 것도 없었다. 그저 하느님을 찬양하고, 믿으며, 또 은혜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알리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기도도 빠질 수가 없었지만...

“두 분이 추행범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니었거든요. 물론... 이런 생각이 죄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머리는 계속 두 분을 의심하며 저를 죄의 구렁텅이로 끌고 갔습니다.”

어느 정도 대화를 이어가면서 영호가 추행범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지 않은, 즉, 아무것도 쓰이지 않는 빈 쪽지를 민석과 지민에게 보여줬다. 영호의 말과 행동은 아주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이런 영호의 행동을 보면서 민석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역시 아무것도 쓰이지 않는 쪽지를 꺼내 펼쳐보였다.

“저희도 아니었답니다. 괜히 걱정을 하셨군요.”

“아... 역시... 제가 의심을 하며 죄를 범했던 것 같습니다.”

영호는 민석이 펼쳐 보인 쪽지를 확인했다. 확실히 아무것도 쓰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쪽지와 같음을 또 확인했다.

“이런 종이가 뭐라고... 서로를 의심하고 미워했는지...”

영호가 계속해서 자책을 하며 자신이 가지고 온 쪽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 영호의 행동을 바라보며 민석 역시 쪽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우리 영호 형제께서 많이 괴로워하셨나 봅니다.”

“휴우... 사실 괴롭습니다. 두 분의 말을 들으며 마음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괴롭습니다. 제가 두 분을 찾아온 이유는...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부탁 말씀 입니까?”

“네. 괴로워하는 저를 위해 기도를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믿음이 강하신 두 분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조금이나마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싶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영호가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민석과 지민은 그런 영호의 모습에 측은한 마음을 느끼며 그의 옆에 무릎을 꿇고 역시 두 손을 모았다.

“우리 영호 형제님을 위하여... 부족한 제가 우리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를 하겠습니다.”

영호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민석의 주도 하에 세 사람은 바닥에 꿇은 채로, 약 5분이 넘는 시간동안 기도를 하였다.

기도가 끝난 후에는 영호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민석과 지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민석과 지민 역시 웃으며 자신들의 방을 나가는 영호를 보며 뿌듯한 감정을 느껴야 했다.

물론, 민석과 지민은 영호가 떠난 후 바닥에 내려놓은 쪽지가 사라졌음을 전혀 인식할 수 없었다.

***

5번 부부로부터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쪽지를 훔친 영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쪽지를 함께 이용하여 두 번째 게임에서 추행범이 될 수 있었다. 기존의 가지고 있던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쪽지 2개를 뽑기를 하면서 검은 상자 안에 넣어버렸고, 그와 동시에 검은 상자 안에 있던 쪽지 3개를 가져온 것이었다.

각 부부마다 20%의 확률로 추행범이 될 수 있었지만, 영호는 이 방법으로 자신의 추행범이 될 확률을 60%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호는 자신이 반드시 먼저 뽑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었다. 만약에 또 다시 마지막에 뽑기를 했다면, 검은 상자에는 바꿔치기를 할 쪽지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계획은 대 성공을 했는데... 갑자기 갈등이 되네.’

현재 추행범으로 결정된 영호는 2번방과 3번방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3번방에 들어가야 했다. 먼저 3번 부부를 피해자로 만들고 투표를 통해서 1번 부부를 탈락시키면 되었는데, 갑자기 다른 생각이 든 것이었다.

‘내가 2번방에 들어가서 영수 아내 은희를 피해자로 만들고... 5번 부부는 기권을 했으니, 1번부부와 3번 부부를 꼬셔서 기권시키고, 나도 기권하면, 2번 부부만 탈락이고 전원 10개의 칩을 상금으로 받으며 4라운드 진출인데...’

영호에게 있어 매우 군침이 도는 시나리오였다. 문제는 현시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였다.

‘1번 부부와 3번 부부가 나를 좋게 보지는 않겠지만.... 2번 부부는 반드시 탈락시키려고 하니... 합의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5번 부부가 되겠군.’

추행범 뽑기 결정을 할 때, 영호의 의견을 반대한 사람은 서영과 수영이었다. 그것 하나만 보더라도 영호의 적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영호 생각에는 오히려 이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1번 부부가 증오하는 사람은 2번 부부였으니, 오히려 말만 잘하면 기권 규정을 이용하여 2번 부부를 탈락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5번 부부가 감이 안 온단 말이야. 다 기권했는데... 그들 부부만 투표를 해버리면... 그들만 빼고 전원 탈락이니... 오히려 중립을 지키는 척 감정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더 무서운 법이니...’

사실 예전 같으면 영호는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적군의 적은 아군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번 부부와 3번 부부를 이용하여 2번 부부를 탈락시키고 4라운드에 진출할 계획을 그대로 실행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과 다르게 뒤가 없다. 한 번 실패하면 그대로 나락이었다. 더 이상 기회가 존재하지 않았다.

‘참... 승부사 기질도 다 버려야 하고... 재밌군... 재밌어... 두 번째 게임은 안전하게 가야하나... 쓰리고 하려다가 고박 쓰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 쩝.’

결심을 한 영호가 왼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방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열고 천천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

“제발... 제발...”

수영은 두 팔이 침대에 묶인 채, 나체의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중얼거리며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어떤 신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제발 이번 게임만큼은 반드시 서영과 자신이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제발... 이번만 이기면... 이번만...”

얼마나 간절했는지, 수영의 작은 몸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번 한 번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

“서영 언니와... 함께 4라운드에 가야 해... 이번만...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수영의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누구에게 들으라고 수영이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만큼 간절하고 애절했기 때문에 수영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을 뿐이었다.

찰칵.

그러나 수영의 간절한 바람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방문이 열리며 찬바람과 더불어 누군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수영은 다 끝났다는 생각에 절망에 빠져들었다.




@ 38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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