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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07 703회 0건
컴퍼니가 준비한 식사는 뷔페였다. 게임 참여자들이 각자의 접시에 여러 음식들을 적당히 골라서 먹을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기만을 달래려는 듯 음식을 많이 먹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맛은 괜찮은데?”

“그래? 난 입맛이 없어서 그런가... 별로인데...”

민혁과 서영이 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먹고 있었다. 민혁과 서영을 포함한 6팀의 게임 참여자들은 다들 따로따로 앉아서 식사를 하였지만, 눈만큼은 서로를 관찰하는데 쓰고 있었다. 음식을 먹는 와중에도 좌우로 고개를 돌리는 일이 잦았고, 대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벌써 몇 번이나 서로 눈이 맞은 사람들도 있었다.

“나이대가 다양한데...”

“미성년자처럼 어려 보이는 애들도 있고...”

“저 나이든 여자는 마치 제집처럼 지내는데...”

민혁과 서영은 자신들만이 들을 수 있도록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었다. 이건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분위기가 불편했던 것일까?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마치 자기 집에서 먹는 것처럼 식사를 하던 희자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쳤다.

“눈알 돌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던데... 여기는 수캐와 암캐가 넘치는 것 같네... 밥 맛 떨어지게...”

희자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두 분류로 나뉘었다. 몰래 관찰을 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던 사람들은 마치 그렇지 않은 양 식사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고, 또 다른 분류의 사람들은 이제 대놓고 서로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에잇.”

식당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희자가 자리를 벗어났고, 그 뒤를 남편 영철이 따랐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이든 여자가 기가 세네... 남편은 무슨 애완견마저 졸래졸래 따라다니고...”

민혁이 말을 했다.

“어떤 게임이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저 나이든 여자 부부가 가장 위험하겠는 걸?”

서영이 말을 했고, 민혁이 의아한 얼굴로 질문했다.

“왜?”

“재수 없잖아. 우리야 영수와 은희를 가장 싫지만... 이미 한 번 겪었으니...”

“그렇지.”

“나머지 부부들은 우리가 전혀 모르잖아. 아마 그들도 같을 거야. 서로 모르는 상황에서 저렇게 눈을 돌리며 관찰하는데... 저 나이든 여자는 반말로 재수 없게 행동을 하니... 가장 먼저 탈락할 확률이 높지. 경쟁 팀들이 적이기는 하나, 저렇게 노골적으로 나오면... 은연 중 나머지 팀들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나이든 여자 부부부터 탈락시켜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걸?”

“뭐... 틀린 말은 아니네. 나도 별로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서영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민혁이었다. 3라운드가 어떤 게임이 될지, 아직 알 수 없으나, 최초의 탈락 팀이 생긴다면 나이든 여자의 부부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자신 역시 나이든 여자의 행동을 보며 불편해 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방금 생각났는데...”

“응?”

다시 서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영수와 은희가 있는 것을 보면... 다른 부부들도 2라운드에서 경쟁했던 팀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아닐까?”

“서로 아는 체를 하지 않던데?”

“바보. 아는 체를 할 필요가 없지. 우리도 아는 체 안하잖아. 솔직히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은 사람들인데... 여기서 아는 체를 할 필요가 없지. 아는 체 해봐야, 다른 팀들에게 ‘우리는 2라운드에서 경쟁했지만, 서로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어하는 적입니다’라고 광고하는 꼴인데... 그러면 불리하지. 아마 내 생각에는 서로 아는 사이도 있을 거야. 단지 아는 체 하면 불리할 수도 있으니, 다들 처음 만난 것처럼 행동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아하.”

서영의 추측에 민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만약에 영수와 은희와 게임 전에 서로 안면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적의 적은 아군과 같지 않던가. 괜히 적이 하나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영수와 은희는 공작에 능하지 않던가.

“다 먹었어?”

“별로 안 들어가네...”

“일어나서 좀 걸을까. 이곳 구경 좀 하고...”

“응.”

민혁과 서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지하 구조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여기서 저기까지 50미터는 되겠는데? 다른 쪽도 30미터는 되어 보이고...”

“난 여자라 거리 감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꽤 넓어.”

현재 민혁과 서영이 있는 지하의 구조는 직사각형의 모양을 갖춘 큰 로비였다. 로비의 좌측 상단에는 방금 식사를 한 식당이 있었고, 그 밑에는 샤워실 및 화장실이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에는 곳곳에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쇼파와 테이블이 있었다. 이미 희자와 영철이 우측 하단의 쇼파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넓은 공간치고... 별달리 특별한 건 없네... 그런데 여기에 설치 된 카메라만 10대가 넘는 것 같은데...”

“그러게... 직원들이 또 캠코더로 영상을 찍을 텐데... 왜 이렇게 영상을 좋아하는 걸까?”

“알 수야 있나... 미천한 우리들이... 그건 그렇고... 이번에는 영화라도 보여주려나? 왜 이렇게 스크린이 커? 닭대가리 모습을 저렇게 큰 화면으로 봐야 해?”

“진짜 극장에 온 것 같다.”

로비의 중앙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가 되어 있었다. 마치 극장의 스크린처럼 매우 큰 스크린이었는데, 민혁은 벌써부터 큰 스크린으로 치킨 박을 볼 생각을 하니, 구역질이 나오는 듯 했다.

“진짜 마음에 드는게 없다니까...”

민혁과 서영은 로비를 한 바퀴 둘러본 후, 중앙 하단으로 걸어갔다. 중앙 하단에는 폭이 약 5-6미터 정도 되는 통로가 있었는데, 그 길이는 약 25미터 정도 되는 듯 했다. 통로의 끝에는 철문이 있었고, 그곳은 컴퍼니 직원 2명이 지키고 있었다.

“저기로 내려와나 봐.”

“응.”

민혁과 서영이 통로에 들어서서 걷기 시작했다. 통로의 좌우측에는 각각의 방이 있었는데, 점심 식사 전에 게임 참여자들이 머물렀던 곳이었다. 민혁과 서영은 통로를 천천히 걸어가면서 방 개수를 세었는데, 총 12개임을 알 수 있었다. 좌측에 6개, 우측에 6개...

“방마다 숫자가 적혀 있는데?”

“응. 좌측 방 입구부터 마지막 방에 1번부터 6번이라고 적혀 있어. 그리고 우측도 마찬가지야, 마주보는 방은 방 번호가 같은데?”

“우리가 6팀이라.. 방이 6개인 건 이해가 되는데.. 왜 2개의 방씩 12개가 필요하지? 각 방에 한 명씩 들어가나? 그러면 게임이 돼? 아... 모르겠다.”

“고민한다고 알 수야 있나...”

민혁과 서영은 12개의 방의 비밀을 알려고 머리를 굴렸지만, 결코 치킨 박의 입에서 게임 설명이 나오기 전까지는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 그만! 더 이상 오시면 안 됩니다.”

어느덧 통로 끝에 다다랐고, 철문을 지키고 있는 컴퍼니 직원이 민혁과 서영을 제지했다.

“알겠어요.”

서영이 대답을 했고, 민혁과 뒤를 돌아 다시 로비로 걷기 시작했다.

“구조가 참...”

“........”

민혁의 말에 서영이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점심 식사 전에 방을 나오면서 알 수 있었지만, 이곳 지하 구조는 남자 성기를 본 따서 만든 것 같았다. 치킨 박이 나타날 로비의 대형 스크린을 기준으로 보면 정확히 남자가 발기한 모습으로 구조를 만든 것 같았다.

“훗... 욕일 수도 있어.”

서영이 살짝 웃으며 민혁에게 말을 했다.

“무슨?”

“서양 애들이 하는 거 있잖아. 가운데 손가락 욕...”

“아하... 그만큼 게임이 좆같다는 건가.....”

지하 구조의 형태가 남자의 성기를 본 딴 건지, 퍽 유라는 욕설을 본 딴 건지, 민혁과 서영이 알 길은 없었다. 또한 알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이건 분명했다. 그만큼 험난한 게임이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은...

***

점심 식사를 마치고 6팀의 부부들은 각자 로비의 쇼파에 자리를 잡아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대화를 할 의지는 없는 듯, 마냥 눈으로만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먼저 움직인 쪽은 참가자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명진과 수영이었다.

“힘들어도... 참아야 해. 알았지?”

수영이 명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느릿하지만 또박또박 발음하며 말을 했다. 그리고 명진은 수영의 입술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명진은 말을 하지 못했다. 또한 듣지도 못했다. 하지만, 지난 수 년 간의 노력 끝에 사람 입술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상대가 누구든지 말을 하면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지는 게... 이기는 거래... 두 번? 아니, 이번 라운드만 버티면... 운이 좋으면 다음 라운드에서 게임을 포기할 수도 있어... 그러면... 우리 아기는 살릴 수 있을 거야. 알았지?”

다시 한 번 명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명진에게 수영이 활짝 웃어 보이며 손을 잡았다. 그리고 수영이 명진을 어디론가 이끌기 시작했다. 수영이 명진을 데려간 곳은 영수와 은희가 앉아서 쉬고 있는 쇼파였다.

“안녕하세요.”

수영이 고개를 숙이며 영수와 은희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뒤를 따라 명진도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러나 뜻밖의 인사를 받아서였을까? 영수와 은희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영수는 인사는커녕 대꾸도 하지 않고 손으로 저리가라며 휘저었다.

영수와 은희의 반응에 수영이 명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두 사람을 뒤로 한 채, 은희가 중얼거렸다.

“남자가 병신인가 봐. 아까부터 봤는데... 말을 못해.”

“누가 알아? 연기라도 하는 것일지... 저렇게 어린 새끼들이 더 지독하거든...”

명진은 듣지 못했지만, 수영은 확실히 두 귀로 자신들을 욕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수영은 어떤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표정이 변하면 명진이 그것을 읽어낼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수영과 명진이 다음으로 찾아간 사람들은 영호와 효진이었다. 수영과 명진이 인사를 다니는 모습을 봤던 영호와 효진은 영수와 은희와는 다르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영호와 효진의 반응에 수영이 살짝 수줍은 미소를 띠었다. 분위기가 생각보다 화기애애함을 느낀 명진도 기분이 풀어지고 있었다.

“잘 부탁드려요.”

“우리야 말로....”

간단한 인사를 마친 수영과 명진이 다음 부부를 찾았다. 이번에는 민석과 지민 부부였다.

“안녕하세요.”

수영이 인사를 하고, 명진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바라 본 민석과 지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의 손을 각각 덜썩 잡았다.

“아유... 이런 어린애들이... 왜 이런 곳에...”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 민석과 지민의 얼굴이 울상이었다. 정말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민석과 지민의 반응에 오히려 당황 한 수영이 괜찮다는 말을 했다. 그 모습을 바라 본 민석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 기도할까? 이런 시련이야...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단다. 기도를 통해서 이런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또 감사드리며...”

민석은 마치 목사나 되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명진과 수영에게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수영은 민석의 말을 다 알아듣고 있었지만, 명진은 그러지 못했다. 민석의 말이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충 분위기는 감지할 수 있었다. 기도라는 말이 수없이 반복되었기 때문이었다.

“교회 다니니?”

“그건... 아니지만...”

지민의 물음에 수영이 대답을 했다.

“우리 기도를 통해서 서로 영적인 교감을 주고받자꾸나. 그러면 이런 시련이야 함께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수영은 당황해서 대답을 할 수 조차 없었다. 민석과 지민이 각자 명진과 수영의 손을 꼭 잡은 상태에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민석의 인도 아래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느님 아버지. 이 지옥 같은 어둠 속에 두 어린 양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명진과 수영은 얼떨결에 민석과 지민의 손에 잡혀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민석과 지민의 뜻이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희자가 로비가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를 쳤다.

“지랄한다... 아주...”

***

명진과 수영이 각 참여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니던 모습을 바라 본, 민혁과 서영은 각자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저 어린 애들 뭐야... 도대체... 순진한 거야... 아니면 영악한 거야...”

“남자 애는 말을 못하는 것 같은데?”

“그걸 믿을 수가 있어? 연기라도 하는 것일지...”

비교적 민혁은 의심이 많았다. 각 참여자들에게 인사를 다니고 있는 명진과 수영의 모습이 의심스러웠고, 도대체 무슨 의도가 있는 지 궁금했다. 그에 반하여 2라운드에서 배신당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영은 명진과 수영의 모습이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생각은 명진과 수영이 미성년자라고 보일만큼 어리다는 것도 한몫했다.

“그건 그렇고 저 사람들은 뭐야... 별의 별 사람들이 다 모였네... 예수쟁이라니...”

“좋은 뜻으로 기도할 수도 있지.”

“좋은 뜻은 개뿔. 이런 곳에 무슨 하느님의 은혜와 뭐? 시련? 좆 까라 그래.”

민혁의 말이 험했지만, 결코 틀리지는 않았다.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곳에 직접 참여를 하면서 고작 하는 것이 기도라니... 더구나 이런 상황도 하나님의 은혜에 비하면 아주 작은 시련이라나. 참여자들이 듣기에는 분통이 터지는 말이었다.

“기도 끝났나 봐?”

“그러게... 참 길게도 한다.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지...”

“어? 이제 우리에게 와.”

“쩝.”

명진과 수영이 민혁과 서영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민혁은 왠지 어린 그들이 반갑지는 않았다. 그러나 게임이 시작되기 전이라 불편한 기색은 내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어느새 민혁과 서영에게 다가 온, 수영이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옆에서 명진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바라본 서영 역시 웃음을 띤 표정으로 명진과 수영에게 인사를 했다.

“반가워요.”

민혁의 생각은 달랐지만, 서영은 수영 부부와의 첫 인사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왠지 기분이 좋았다.



@ 27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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