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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08 729회 0건

민혁과 서영은 처참함과 분노라는 감정을 잡시 접어두고 이제는 택시기사의 말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그의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알 수 없고, 설령 듣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반드시 머릿속에 기억을 해둬야 했다. 분명 어떤 상황에서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터 이니...

“먼저 사과부터 하지. 너무 오랜만이라 지나치게 흥분했나 봐. 격한 표현을 써버렸네 하하.”

“그건 됐어요.”

“하지만, 나에게 또 고마워해야 할 걸? 방금 전의 경험은 본 게임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조차 되지 않아. 미리 한 번 겪어 보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당신들은 경험을 쌓고, 난 욕심을 풀고... 이런 걸 일석이조라고 하나.”

택시기사의 말은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민혁과 서영은 방금 전 울화통이 터지듯 한 경험을 했지만, 역으로 보면 단지 택시기사의 욕정만 풀어 준 것은 아니었다. 컴퍼니가 제안한 섹스게임에서는 어떤 상황이 연출될지 몰랐다. 차라리 방금 전처럼 한 번이라도 겪어보고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각오는 되었다고 하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고 본 게임에 들어갔을 때, 과연 침착하게 잘할 수 있을까?

“... 됐고 본론이나 이야기 해.”

뒷자리에 앉아있던 민혁이 창 밖 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택시기사에게 말을 했다.

“남편은 전혀 감정을 숨기지 못하니, 차라리 그냥 포기하는 게 어때?”

“그럴 수는 없어요.”

“저렇게 감정을 제 맘대로 표현해야 게임에 이길 수는 있겠어? 거의 초반 탈락감인데... 크?.”

“... 무슨 게임이 나올지 알고 계신건가요?”

“훗. 다시 말하지만 나도 무슨 게임이 진행될지는 몰라... 그런데 그 전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정말 게임에 꼭 참여를 해야 하나? 얼마의 빚이 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내 생각에는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게 최악의 삶을 피하는 것 같은데?”

생각지도 못한 택시기사의 만류, 서영은 그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었다. 왜 컴퍼니가 제안한 섹스게임에 참여하지 않도록 권유하는 걸까?

“설마... 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아니야. 그들은 약속을 지켜. 약속을 지키기 때문에 당신들이 겪는 현재의 삶보다 더욱 최악의 삶도 나올 수 있다는 거야. 물론, 당신들은 장밋빛 미래만 보고 왔겠지만... 하하.”

“지금보다 최악인 삶을 생각도 할 수 없어요. 이대로 돌아가더라도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요. 죽는 길 밖 엔....”

서영이 약간은 격앙된 목소리로 택시기사에게 말을 했다. 그것을 듣는 민혁은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다시 느껴야만 했다.

“뭐... 그건 당신들 선택이니까. 그런데 미리 말하지만 방금 전의 내 권유가 최고의 조언일 거야.”

“......”

“먼저 고속버스에서 당신들이 택시를 탔을 때를 생각해라고...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챘어야 해. 택시 승강장에 단 한 대의 택시가 있는 게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지만, 아까 말했듯이 다 컴퍼니의 통제야. 그리고 지금까지 내 말투 이상하지 않아?”

“말투...요?”

“여긴 강원도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강원도 택시기사는 어떤 말투를 쓰게 될까?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강원도에 왔는데 그쪽 택시기사가 사투리를 쓰지 않는 게 이해가 되나?”

“앗.”

“어험.”

택시기사의 말을 듣고 민혁과 서영은 동시에 뒤통수로 망치를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강원도 택시기사가 표준어를 쓴다는 것 자체를 의심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특유의 괴리감마저 느끼지 못했다.

“관찰력... 당신들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게임에 참여하는 대다수 부부들이 당신들 같겠지만...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있기에... 이런 관찰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부부들은 좀 더 쉽게 게임에 임할 수 있겠지.”

“... 그렇군요.”

“여기까지 오기에 머리로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을 거야. 그러나 머리로 백 날 생각하고 고민을 하면 뭐 해? 본 게임에서는 그보다 몸이 반응해야지. 눈으로 훔치고, 남보다 한 발 먼저 다가서고... 입으로 유혹하고... 그게 승패를 가를 텐데... 크크.”

“게임을 어떻게 하는 것이죠?”

“게임 종류는 아까도 말했지만 몰라. 그리고 게임 방식은 아주 다양할 거야. 단체전도 있을 것이고... 일대일도 있을 수 있으며... 그런데 꼭 탈락자가 생기는 게임만 있는 건 아니야.”

“무... 무슨 말이죠?”

“일방적으로 게임은 경쟁이야. 승자가 있다면 패자가 있고... 그 패자는 탈락이 되겠지. 결국에는 우승자를 가려야 하니까... 그러나 경쟁을 하면서 꼭 탈락자를 만들지 않는 게임도 컴퍼니에서 제안을 하지. 그게 무서운 점이고... 쉽게 말하자면 모두가 이길 수 있는 게임도 제안한 단 말이야. 그런데... 쉽지가 않아.”

“왜죠? 서로 협력하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자본주의는 살아남았고, 왜 공산주의는 망했을까? 그것으로 대답을 하지.”

택시기사의 말을 들으면서 민혁과 서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게임이라... 그게 무엇일까 매우 궁금했다.

“마저 이야기 하지. 게임은 몇 라운드로 진행될지 몰라. 오늘 단 하루에 끝나는 것도 아니지. 아마 지속적으로 컴퍼니에서 연락이 갈 거야. 물론, 매 게임에서 살아남는다는 전제 아래... 각 게임에 들어가면 어떤 경우에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으로 움직여야 하는 경우가 있고, 어느 경우에는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주어질 거야.”

“... 음.”

“시간이 촉박하면 고민하지 마. 그런 게임의 경우 몸으로 재빠르게 승부해야 해. 이미 전략은 머릿속에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하지.”

“그게 말이 되나요?”

“그래서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나? 당신들이 택시를 탔을 때, 내 말투를 이상하게 여겼으면 먼저 정체를 의심했을 것이고... 좀 더 똑똑해서 나를 컴퍼니 쪽에서 보낸 사람이라고 가정했다면 이런저런 상상도 해봤을 테지... 안 그래?”

“... 그래요.”

“시간이 촉박한 게임이라도 그 전에 기회는 있다는 말이야. 아주 짧은 시간 대비하는 자와 대비하지 못하는 자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하지. 또한 방금 전 언급했지만, 지나치게 시간을 많이 주는 게임도 있단 말이야. 그 때는 몸부터 움직이면 패배자가 될 확률이 높아지지. 많은 시간이 주어지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그동안 서로를 알아보라는 것인가요?”

“그렇지. 상대방을 관찰하고 분석할 시간이란 말이야. 내가 한 가지 게임을 예로 들지. 10명의 사람이 있고 이들은 가위바위보 게임에 참여했어. 이들은 그 누구와도 가위바위보 게임을 10번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면 1점, 지면 -1점일 때... 총 1시간의 게임 시간이 주어지고, 1시간이 지난 후 마이너스 점수를 받은 사람들은 탈락한다면, 당신들은 어떻게 할 거야?”

“그야 먼저 가위바위보를 하는 사람들을 관찰하겠지. 가위바위보는 사람마다 습관이 크게 작용하는 게임이거든. 짧은 시간에 습관이 바뀌지는 않으니...”

침묵을 지키던 민혁이 먼저 대답을 했다.

“저도 남편과 같은 생각이에요.”

서영도 민혁의 말에 동의를 했다.

“후훗.... 먼저 가위바위보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게임 패턴이 눈이 들어오지.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런 관찰력은 승률을 높여주지. 그런데 정답은 아니야.”

“네? 그러면...”

“이때의 승자는 가위바위보를 하지 않은 사람이야.”

“무슨 말이죠?”

“내 말을 잘 기억해 봐. 이 게임에서 중요한 점은 마이너스 점수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야. 마이너스 점수는 탈락을 하지. 그리고 나에게는 총 10번의 가위바위보게임 참여 권리가 있어. 권리란 말이야. 의무가 아니야.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지. 안 그래? 그러면 남들 가위바위보 게임을 보면서 1시간을 보내도 내 점수는 0점이야. 0점은 마이너스 점수가 아니지. 그러면 난 그 게임에서 위험을 전혀 감수하지 않고도 승리하게 되는 거야.”

“억지 아닌가요?”

서영이 따지듯 택시기사에게 물었다.

“억지라니? 게임에서 ‘반드시 가위바위보를 해야 한다’ ‘점수가 플러스가 아니면 탈락한다’라는 규정이 있던가?”

“그... 그건 아니죠. 그래도...”

“그러면 난 게임에서 승리한 사람이 되지.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당신들의 경쟁자는 당신들 같은 부부가 전부가 아니란 이야기야. 컴퍼니에 대해서도 집중을 해. 모든 게임을 그 컴퍼니가 제시하지만, 완벽한 게임만 있는 건 아니지. 때로는 이런 허점으로 손쉽게 게임을 통과할 수도 있다는 거야.”

‘게임 룰에 대한 허점이라...’

민혁은 마음속으로 택시기사의 말을 되 뇌였다. 억지 같아 보이지만 택시기사의 말이 결코 틀린 것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현재의 대한민국 법도 그러하지 않았던가. 자신 역시 사업을 하면서 법망을 조금 비틀어 편법을 쓴 경우도 종종 있었다. 편법이 옳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으나, 회사 운영에서 불법을 행한 것도 아니었으니...

“컴퍼니에서 초대장을 받았지? 그러면 다른 무언가가 있었을 텐데...”

“칩이요. 빨간 칩이 있었어요.”

“그래? 우리 때는... 음.”

택시기사는 말을 하다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설마... 게임이 참여한 적이 있었나요?”

재빠르게 택시기사의 말실수를 잡아 낸 서영이 되물었다.

“음... 젠장. 그래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 그럼 이겼나요? 이기신 건가요?”

급한 마음에 서영이 연속해서 택시기사에게 물었고, 잠시 멈칫거리던 택시기사는 불쾌하다는 듯 거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

“쩝... 내가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은 건 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그건 말할 수 없지. 그런데 빨간 칩이라...”

“내 빨간 칩이에요.”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서영이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렇게 이번에는 빨간 칩이군... 그건 잊어버리면 결코 안 돼.”

“우리가 생각해 봤는데... 카지노에서 쓰는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하나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 빨간 칩은 게임에 참여하 수 있는 권리가 되고, 또 내 성적이 되기도 해. 모든 게임을 마치고 살아남은 팀이 여럿이라면... 우승팀은 가려야 할 것 아니야. 이때, 그 칩 개수가 많으면 우승자가 될 수 있지.”

“... 네.”

“그래서 그 칩은 반드시 지켜내야만 해. 만약 그 칩이 다 떨어지게 되면... 더 이상 게임에 참여할 수도 없을 거야... 게임에 이겨도 탈락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지...”

민혁과 서영은 게임에 이겨도 탈락하는 경우가 어떤 것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이겨도 탈락이라니... 아무쪼록 택시기사의 말대로 빨간 칩을 소중히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은 확실하게 가질 수 있었다.

“거 참...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더 있는데... 시간이 다 됐군.”

택시기사의 말을 듣고 서영과 민혁은 자동적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약 3분의 시간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컴퍼니는 게임에서 룰도 그렇지만,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자동 탈락이지. 이제 두 사람 가면을 쓰지 그래?”

분명 아쉬웠다. 서영은 시간만 더 있었으면 게임 참여자였던 택시기사에게 좀 더 많은 것을 묻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출발을 해볼까나”

택시가 다시 한적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고, 민혁과 서영은 가면을 써서 나름 정체를 숨긴 모습이 되었다.

“저기 건물이 보이 는 구만... 내가 마지막으로 차선의 조언을 해주지. 최고의 조언은 아까 말했듯이 지금이라도 게임 참여를 하지 않는 거지만...”

“무언가요?”

이제 민혁과 서영의 눈에도 컴퍼니가 제안한 섹스게임의 참여지, XX리조트 실내스포츠 체육관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택시는 쏜살같이 달려 점점 그 건물과 가까워졌고, 민혁과 서영이 거의 내릴 때 즘에 택시기사의 마지막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보니까 당신 부부는 사이가 너무 좋아. 그래서 그게 독이 될 거야. 세상 모든 부부가 사이가 좋은 건 아니거든. 따지고 보면 혼인 신고서? 그거 한 장짜리 종이일 뿐이잖아? 그 누구라도 그 종이 한 장만 있으면 부부라고 될 수 있지? 설령 원수라도 말이야.”

“.....”

“돈이 급하고, 또 돈독이 오른 그들을 당신들처럼 사이좋은 부부가 감당해서 이길 수 있을까? 그리고 사이가 좋은 부부인지, 그렇지 않은 지, 당신들은 구분할 수 있을까?

어느새 택시는 실내체육관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택시기사의 마지막 말을 듣고 있는 서영과 민혁은 차마 내릴 수가 없었다.

“뭐해? 이제 내려야지... 크크.”

“그래서요?”

서영이 급하게 되물었고, 택시기사는 짧게 대답했다.

“믿어야지... 믿는 수 밖 에 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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