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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09 728회 0건
캠퍼스 시절 은영은 조신하고 말수가 적었다. 모두들 내성적인 그녀에게 신비로움마저 느꼈었다. 남학생들이 그녀에게 근접하기 꺼려했던 반면에 수진은 활달하고 붙입성이 좋아서 남학생들과 자유분방하게 어울렸었다. 여자들은 겉으로 들어내 보이지 않아도 남자보다 질투심이 강한 본능을 소유하고 있다. 사실 그녀들은 친근한 사이이면서도 내심 서로를 경계했다. 그리스 신화의 헤라는 남편 제우스가 건드리는 여자마다 저주를 했다고 한다.

은영은 되도록 자신의 현실을 수진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잘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남편에 대한 감정을 들어낼 것만 같아서였다. 은영은 수진이 남편과 지훈에 관해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서 얼핏 그녀의 사생활에 대한 얘기로 화제를 바꾸었다.

“요즘 사귀는 남자는 있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그냥 부담 없이 만나다가 헤어졌어. 알고 보니 다른 여자가 또 있더라고.......!”

“뭐하는 남자였는데?”
“운동선수야. 조금 아쉽기는 해.”

“아쉽다는 걸 보니, 깊은 관계였구나?”

은영이 미소를 머금은 눈빛으로 수진을 빤히 쳐다봤다. 사과조각을 입속에 넣고 오물거리는 수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은영이 묘한 표정으로 하얗게 눈을 흘겼다. 수진은 스스럼없이 환하게 웃었다.

“호호호......! 내가 순결을 지킬 입장도 아니고. 부담 없이 여행도 다녔지.”
“후회하는구나?”

“조금은.......! 하지만 남자는 많아.”
“그렇게 쉽게 남자들에게 정을 줄 수가 있었니?”

“난, 고민하고 싶지 않아. 누가 열녀문 세워줄 것도 아니고. 호호.......”
“어쩌면 네 생활이 편할지도 모르겠다.”

수진이 손부채로 얼굴에 바람을 일으키더니 재킷을 벗어 옆으로 놓았다. 검은색 엷은 원피스 속으로 속살이 비치고 풍만한 젖가슴이 살짝 들어났다. 다리를 꼬고 앉은 원피스 밑으로 뽀얀 허벅지 살갗이 훤하게 들어나는 보였다. 그녀는 팔을 들어 기지개를 펴며 은영에게 물었다.

“교수님은 여전하시지?”
“그렇지, 뭐 ! 지금 이층 서재에 계셔.”

“강의 안 나가시고.......!?”
“요즘 박사 논문 쓰느라고, 집에 많이 계셔.”

“건강은?”
“요즘 당뇨로 좀 힘드신 거 같아.”

“그래도 언니를 사랑하는 건 여전하지?”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수진이 조금은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들은 남학생들에게 가장 많은 시선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민기의 관심을 받았던 제자들이었다. 졸업 후에도 이따금 민기와 함께하는 모임에 참석하여 식사를 했었다. 그래서 수진이 민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은영은 수진이 물어보는 의미가 뭔지 알면서도 시치미를 뗐다.

“사랑!? 글쎄........! 낭만적인 사랑은 아니지만 사랑하니까, 결혼했지.”
“그런 사랑 말고. 호호.......!”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니? 나이가 있으니까.”
“언니는 젊었잖아. 남녀가 부부 인연을 갖는다는 의미가 뭔데?”

“때로는 정신적인 신뢰로 극복해야지.”
“난. 신체적으로도 건강한 남자가 좋아. 솔직히 남자가 옆에 있으면 관계를 해야 잠을 잘 수가 있어. 호호호........”

“넌, 정말 아직도 젊다.”
“언니는 안 그래!? 앙큼 떠는 것 봐.”

삼십분 가량 서로의 생활에 대한 화제로 얘기들을 나누고 있는데 철문의 차임벨이 울렸다. 은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일어섰다. 차임벨 소리가 나는 액정화면을 들여다보는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밤늦게나 들어오던 지훈의 모습이 비췄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일요일이었다. 그만큼 날자 가는 것도 모르도록 시간을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이다.

은영이 철문을 잠그고 들어왔던 것이었다. 낮에 귀가하는 지훈을 의아스럽게 생각하며 그녀는 철문 개방 스위치를 누르고 소파로 가서 앉았다. 액정 화면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음료수를 마시던 수진이 그녀를 쳐다보며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가 오셨나봐?”
“응! 지훈이.”

“지훈이.......!?”
“우리 집 아들.”

“호호호........! 뭐 그렇게 어렵게 말해. 언니 아들인데.”
“나이가 있으니. 어떤 때는 부담스러워.”

“호호호........!”

현관문이 열리고 건장한 체격에 훤칠한 이목구비의 지훈이 들어왔다. 그를 보자 순진이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흐트러진 원피스자락과 앞섶을 여미었다. 새침한 표정으로 바뀐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지훈을 빤히 쳐다봤다. 은영이 지훈을 바라보지도 않고 물었다.

“식사했니?”
“응.........”

마른 목소리로 건성 대답하는 지훈이 자신의 방으로 향해 걸음을 옮겼다. 슬쩍 거실을 돌아본 그가 걸음을 멈추고 수진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를 쳐다보고 있던 수진과 시선이 마주쳤다.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수진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놀라는 표정으로 변하며 은영에게 물었다.

“저 학생이 지훈이야?”
“응......!”

수진의 묻는 말에 은영이 외면한 채 대답했다. 다시 되돌아서려던 지훈이 멈칫거렸다. 수진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올려졌다. 뒤늦게 은영이 수진과 지훈을 번갈아 쳐다봤다. 입가에 엷은 웃음을 흘린 수진이 지훈에게 물었다.

“나, 기억해요?”
“...........”

“석 달 전, 아파트 앞에서........”
“아! 네. 그 분이시군요. 어떻게........!?”

“나, 은영언니 후배예요.”
“그러시군요.”

한동안 대답을 하지 않고 바라보던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 번 수진을 확인하고 그는 방으로 들어갔다. 영문을 모르는 은영이 수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수진이 은영의 어깨를 붙들며 간드러지게 웃었다. 그리고 의아스러워하는 은영에게 말했다.

“참! 세상이 좁다더니.......”
“어떻게 지훈이를 알아?”

“나, 큰 봉변당할 뻔했어. 언니 아들 아니면 지금 이렇게 있지도 못할 거야.”
“무슨 일인데......?”

수진은 남자들에게 봉변당했던 날을 상기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늦은 밤에 퇴근하다가 아파트로 향하는 골목에서 고등학생 정도의 불량배에게 손가방을 뺐기고 성폭행 당할 뻔 했던 순간과 지훈이 나타나서 그들을 물리치고 그녀를 병원까지 데려다 주었다는 말을 했다. 말도 없이 사라져서 인사도 못한 것이 여운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으나 그녀는 그 휴우 증으로 2 주일이나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정말, 언니 아들 아니면 큰일 날 뻔했어. 경황이 없어서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말 다행이다.”

“언니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는지. 정말 세상은 좁네.”
“여자들은 밤길 조심해야 돼.”

“그날따라 차가 고장 나서 카센터에 맡겼어. 그래서 그 후로는 택시를 타더라도 아파트 정문 앞에서 내리게 되더라고.”

수진과 은영은 잡다한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한 시간 가량 지나서 시계를 들여다보던 수진이 약속이 있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머뭇거리며 이층 서재와 지훈의 방문을 한동안 바라보던 그녀는 재킷을 집어 들고 현관을 나섰다. 정원을 지나면서 그녀가 멈추어 서며 은영에게 말했다.

“아! 참. 교수님에게 인사도 못하고 가네.”
“다음에 해. 한창 논문 작성에 열중하고 계실거야. 나도 교수님 서재에 있을 때는 지장을 줄 것 같아서 잘 안 들어가.”

“그래. 언니가 말해줘. 다녀갔다고. 그리고 지훈 씨한테도 고맙다고 전해주고.”
“알았어. 시간 나는 데로 자주 놀러와.”

“그럴게. 언니.”

은영은 철문 밖까지 쫓아나가 승용차에 오르는 수진을 배웅했다. 그녀의 승용차가 사라지고 은영은 넋을 잃고 서 있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한창 수진이 수다를 떨고 간 거실 안은 휑하니 찬바람이 불었다. 그녀는 탁자위에 남은 과일과 음료수를 치우다가 다른 쟁반에 과일을 담아서 들고 이층 서재로 갔다.

잘 정리된 책꽂이로 가득한 서재에는 민기가 돋보기안경을 쓰고 논문 작성에 열중하고 있었다. 조금은 어두워 보이는 서재에 탁상용 전등이 켜져 있었다. 서류를 들추며 들여다보던 던 그가 힐끔 돌아보았다. 방안으로 들어서는 은영을 발견하고 그는 길게 기지개를 컸다. 그녀는 조용한 발걸음으로 책상 앞으로 다가가서 과일 쟁반을 내려놓았다.

“수진이가 다녀갔어요.”
“아........”

잠시 벽을 응시하던 민기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엎드려 컴퓨터 좌판을 두들겼다. 은영은 방안을 둘러보고 서재를 나왔다. 그리고 다른 쟁반에 과일을 담아 지훈의 방문 앞에 가서 섰다. 그녀가 노크를 하려는데 방문이 열렸다. 그들은 잠시 마주서서 서로를 주시했다. 그녀는 흔들리는 그의 눈빛을 피하며 말했다.

“어디가려고?”
“약속이 있어서.........”

현관으로 향하던 지훈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주춤거리며 뒤돌아섰다. 은영은 공연히 긴장이 되었다. 그가 그녀를 향해 한발자국 다가섰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인형처럼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심장 뛰는 소리까지 들렸다. 그가 그녀의 양팔을 잡았다. 순간 그녀는 왠지 다리가 휘청거리는 것만 같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주춤거리던 그가 돌아섰다.

지훈이 현관문을 나서고 은영은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그녀는 은연중에 그가 애정의 표현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려웠었다. 그리고 그도 그녀처럼 깊은 열정을 느낄수록 두려울 것이라고 추측했다. 철문 여닫히는 소리, 그리고 승용차 시동 거는 소리, 둔탁한 엔진소리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는 ‘바보같이......’ 라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집을 나와 승용차를 몰고 가는 지훈은 못내 아쉬웠다. 사실 그는 그녀를 껴안고 스킨십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에 휘말렸었다. 그러나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웠다. 아버지 승용차가 있는 것으로 봐서 이층 서재에는 분명히 아버지가 있었고, 그래서 아버지를 의식한 건지. 아니면 그녀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진정시키지 못할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지훈은 수진을 떠올리고 헛웃음을 흘렸다. 그녀를 만난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가 아니면 젊은이들에게 성추행 당했을 그녀 모습이었다. 등에 업혔던 그녀의 체온과 뭉클 하는 젖가슴의 감촉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랬던 그녀가 마치 정결한 여인처럼 버티고 앉아 있었다. 물론강간을 당하고도 없었던 일처럼 그녀는 태연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문득 세상은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지훈은 이틀 후에 우연히 수진을 다시 만났다. 당구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간단하게 술을 마시려고 스탠드바로 갔었다. 양주를 시켜놓고 별로 술도 많이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 잡담들로 시간을 보냈다. 그의 시선을 끄는 여자가 있었다. 바텐더 앞의 말끔한 양복을 걸친 남자와 나란히 앉아 양주잔을 기울여 마시는 여자였다.

검은색 엷은 원피스 속으로 피부가 들어나 보이는 여자는 수진이 분명했다. 간드러지게 웃는 여자는 이따금 남자를 발로 걷어차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남자의 턱을 치켜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후 남자가 나가고 나서도 그녀는 혼자 앉아 있었다. 그가 그녀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동안 친구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한 친구만이 취해 마주앉아 있었다.

감상적인 발라드 음률이 흐르고 무희가 작은 스테이지로 나와서 현란한 춤사위를 연출했다. 힐끔 돌아보던 수진의 시선이 지훈에게 멈추었다. 자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그녀가 묘한 미소를 지어 보냈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그녀가 그를 손짓했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는 그녀 옆의 둥근 의자에 가서 앉았다.

“안녕하세요.”
“지훈 씨라고 했지?”

“네. 기억하시네요.”
“이런데서 또 볼 줄 몰랐네. 호호호........”

“그러게요.”

수진이 바텐더를 불러 지훈에게 잔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취했는지 탁자를 짚었던 팔이 미끄러지면서 그의 어깨를 붙들고 늘어졌다. 그리고는 그를 빤히 쳐다보며 윙크를 했다.

“다시 보니, 더 잘 생겼네.”
“고맙습니다.”

“애인 있지?”
“글쎄요. 하하.....! 노력중입니다.”

“의외인데.......!? 세상은 불공평해. 이런 멋진 남자를........”

말하는 수진의 몸이 조금 흔들렸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무릎을 짚고 몸을 위지했다. 그는 그녀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빙긋이 미소를 지은 그녀가 바텐더가 가져다준 잔에 양주를 부어 지훈 앞에 내밀었다.

“자! 한 잔 해. 오늘 내 친구 할래?”
“아까 옆에 친구 분 계시던데........”

“아~! 게! 호호호.......! 술보다 내가 필요하데. 그래서 가라고 했어.”
“처음 만나는 분이세요?”

“아니. 항상 나를 쫓아다녀. 재수 없는 놈! 자. 마셔!”

수진은 술잔을 들러 내밀었다. 지훈이 술잔을 드니 그녀가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시면서 무엇이 우스운지 간드러지게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혼잣말처럼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아까 게. 말이야! 너무 빤질빤질 하지 않니? 꼭 샌님처럼 생겨가지고. 밥맛없어.......! 나하고 결혼하제. 그런 말을 어떻게 쉽게 하지! 그리고 섹스나 하다가 싫어지면 이혼하나? 호호호.....”
“깊은 관심에 그런 것이 아니고요?”

“난, 안다! 연애해도 좋은 놈! 결혼해도 좋은 놈! 금방 싫증을 느낄 놈! 여자에게 빌붙어 먹는 놈! 호호호.......! 그런데 지훈인 좀 달라 보이는데.”
“어떻게요?”

“글쎄......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는......! 여자들이 탐내는 남자.”
“하하........!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그런 게 있어. 친구보다는, 우리 애인할 가!? 호호호........”

지훈은 수진이 어지간히도 취해서 그런 말들을 한다고 생각했다. 어의가 없으나 흥미 있는 여자였다. 그녀는 이따금 그의 어깨에 기대기도 하고 팔짱을 끼기도 했다. 쌍꺼풀이 짙은 눈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아~! 그리고, 그날은 정말 고마웠어. 인사도 못했는데........”
“많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그냥 말 편하게 해. 내가 불편하잖아.”
“그래도........”

“괜찮아. 때로는 여자를 무시하고 막말을 하는 남자가 역겹지만, 지훈인 괜찮은 남자야.”

수진은 그렇게 긴 시간 동안을 넋두리 하면서 술을 마셨다. 지훈도 그녀가 권하는 술잔을 비우기도 했다. 그녀는 넋두리처럼 쉬지 않고 종알거리면서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는 그녀가 캠퍼스 시절부터 흠모하던 장 교수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은영은 장 교수의 아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그들을 주시하던 젊은 남자 바텐더가 다가왔다.

“누님! 많이 마신 거 같은데, 그만 들어가세요.”
‘나, 별로 안 취했는데. 가라고? “

“대리운전 불러 드릴가요?”
“음.......! 그래. 내일은 또 오니까.”

수진은 거침없이 바텐더의 와이셔츠를 잡고 당겼다. 그리고 바텐더의 볼에 입맞춤을 했다. 바텐더가 무표정한 것을 보면 그녀의 스스럼없는 습관인 것 같다고 지훈은 생각했다. 바텐더가 전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것을 보고 수진은 짓궂은 생각이 들었다. 지훈을 향해 한쪽 눈을 감아 윙크하며 물었다.

“차 가지고 왔어?”
“네......!”

“차 놔두고. 나, 바라다 줘.”
“너무 늦어서........”

“괜찮아. 은영 언니에게 내가 말할게. 우리 집 가서 한잔하자고. 고마워서 그래.”

대리운전사가 왔다는 바텐더의 말에 수진은 손가방을 열러 수표 한 장을 집어 탁자에 내려놓았다. 일어서려던 그녀가 비틀 거렸다. 지훈의 어깨에 의지하여 일어선 그녀가 거스름돈을 내미는 바텐더에게 말했다.

“나머지는 놔둬. 다음에 계산할게.”
“.........”

돌아서려던 그녀가 의자 다리에 걸려 휘청거렸다. 지훈이 얼른 그녀의 허리를 잡아 주었다. 나긋나긋한 그녀의 허리에서 전달되는 감촉이 무척 부드럽다고 지훈은 느꼈다. 그녀가 한쪽 눈을 살짝 감아 보였다. 짙은 눈썹이 깜박이는 그녀가 그의 귀에 입술을 대고 귓속말을 했다.

“염려 마. 나 안 취했어.”
“...........”

엉거주춤하던 지훈은 수진과 나란히 스탠드바를 나왔다. 기다리던 대리 운전기사가 그녀의 승용차 뒷문을 열어주었다. 지훈은 그녀의 집까지 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뒷좌석에 오르는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까닥하여 인사를 했다. 그녀가 빤히 쳐다보며 검고 큰 눈동자를 크게 떴다.

“뭐야! 내 성의를 무시하려고? 숙녀를 혼자 보내는 남자가 어디 있어?”
“.........!”

난처한 표정을 지은 지훈이 마지못해 그녀 옆에 올라가 앉았다. 그는 예기치 않은 상황들에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서 전해오는 진한 체취가 조금은 역겨웠다. 그녀가 눈웃음을 치면서 그의 팔을 잠아 당겨 팔짱을 꼈다. 그리고 운전기사에게 코맹맹이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천호동 미성 아파트로 가주세요.”
“넵~!”

승용차가 어두운 밤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늦은 밤의 거리를 달리는 차량들은 대체로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운전기사가 백미러로 그들을 힐끔 쳐다봤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훈의 턱 밑에서 올려다보며 눈동자를 깜박거렸다.

“호호호.......! 순진하네. 내가 안 잡아먹을 테니 걱정 마.”
“하하하......! 재미있으시네요.”

“또......!? 편하게 말하라니까!”
“.........”

지훈은 대담하고 거침이 없는 수진의 태도에 놀랐다. 그를 집까지 데려온 그녀의 의도가 아리송했다. 독신이라서 외로운 것인가. 선배 은영의 가족이라서 친근감 때문이었던가. 아니면 유혹? 술에 취해서 다른 남자로 착각하나. 하지만 그녀의 모습으로 봐서 정신이 없을 정도로 취하지 않은 것 같았다. 지훈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녀가 그의 어깨에 잠시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고 있는 사이에 승용차는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운전기사가 승용차를 주차시키고 브레이크를 잡아당기는 소리에 수진이 눈을 떴다. 두리번거리던 수진이 차에서 내려 운전기사에게 수고비를 지불하더니 지훈의 팔짱을 꼈다. 눈빛을 반짝인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잠간만 자도 술이 깨! 이상한 체질인가 봐.”
“.........”

수진은 팔짱을 낀 지훈을 아파트 입구로 당기며 걸어갔다. 밤이 이슥해서 인척이 드문 아파트 단지에는 어둠과 정적으로 휩싸여 있었다. 아파트 입구로 들어선 그녀는 엘리베이터로 타고 올라가는 동안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는 자신의 집문 앞에서 번호 키를 잘못 눌러 다시 확인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현관 안으로 들어간 수진이 돌아서서 눈동자를 깜박이며 그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하였다. 집안으로 들어선 지훈은 그녀만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면적이 꽤 넓은 거실에는 온통 흰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흰 커튼이 쳐진 주방의 냉장고. 그리고 가구들도 온통 흰색으로 설경의 초원에 들어선 것 같았다.

수진은 들어서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고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리고 커피포트 수위치를 누르고 돌아섰다. 그때까지 지훈은 거실 입구에서서 다른 세상에 온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재킷을 벗어 소파에 올려놓은 그녀가 그에게 손짓을 했다.

“앉아 있어! 커피 끓일 동안, 나, 샤워 좀 할게. 괜찮지?”
“아.......!? 네”

지훈이 주춤거리는 대답도하기 전에 수진은 리모컨을 집어 벽걸이 TV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대형 화면에 선정적인 옷차림의 걸 그룹들이 노래를 하며 춤을 추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머뭇거리던 지훈이 소파에 가서 앉고 그녀는 침실로 들어갔다. 민소매의 헐렁한 나이트가운을 걸치고 나온 그녀가 욕실로 들어갔다.

어색하기만 지훈이 실내를 두리번거리며 TV 화면을 이따금 바라보는데, 수진이 물기에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문지르며 나왔다. 취기가 사라진 상큼한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는 주방으로 들어간 그녀가 쟁반에 들고 거실로 나오는 모습을 곁눈질로 보고 있었다. 그녀가 탁자위에 내려놓은 쟁반에는 커피 잔과 위스키 병, 그리고 마른 안주였다.

지훈은 옆에 와서 앉는 수진에게서 기분 좋은 샴푸 향기를 느꼈다. 그를 보고 옅은 미소를 지은 그녀는 커피 잔과 위스키 잔을 각각 내려놓았다. 위스키 병을 집어 들면서 그를 향해 눈웃음을 지었다,

“한 잔, 더해도 괜찮겠지?”
“네......!”

“편하게 말하라니까! 내가 무서워? 호호호........”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세상은 갑자기 변하기도 하고, 돌발적인 인연으로 인간관계를 이어가기도 하던 걸.”

수진은 위스키 병을 기울여 지훈이 집어 드는 잔을 채워 주었다. 그도 그녀의 잔에 위스키를 따라주었다. 그들은 잔을 들어 가볍게 마주쳤다. 그가 잔을 비우자 그녀도 단숨에 술을 마시고 다시 그의 잔과 그녀 자신의 잔을 채웠다. 그녀가 TV 화면으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지훈인 어떤 여자를 좋아해?”
“글쎄요.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지 생각 안 해봤고, 여자들은 모두 아름다워 보여서......”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렇구나. 언니가 잘해주지?”
“언니.....!?”

“큭~! 은영언니 말이야. 지훈이 엄마!”
“아~! 마미!?”

“마미라고 부르나?”
“그냥 편해서........”

“그렇구나!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데, 괜찮아?”
“별로 생각 안 해 봐서...... 외국에서는 흔한 일이라서.......”

“하기야, 요즘은 스무 살 이상 차이의 부부도 있고, 나이가 같은 양부모도 있으니까...... ”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수진은 위스키 잔을 들어 비웠다. 그리고 자세를 비스듬히 하여 지훈에게 기대면서 두 다리를 소파 위에 올려놓았다. 나이트가운 자락이 말아 올라가고 윤기어린 피부의 허벅지가 들어났다. 그리고 리모컨을 들어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다. 토크 쇼를 하는 외국 방송 채널이었다. 그녀가 눈을 위로 치떠서 그를 올려다봤다.

“자꾸 볼수록 멋진데. 남자답고.”
“........애인 없다고 했지. 진행 중이라고 했나? 어떤 여자인데?”

“그냥 평범해서.......”
“그래서 진행 준이라고 했구나! 저기, 잔 좀 집어 줘.”

위스키 잔을 집으려고 손을 뻗었던 그녀가 말했다. 지훈은 자신의 어깨에 기댄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흐르는 향기에 정신마저 몽롱할 것만 같았다. 아니 그 자신이 술에 취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술잔을 들어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 빤히 올려다보던 그녀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술친구 하자고 그랬지! 아니 애인하자고 그랬나.......! 먹여 줄래?”
“.........!?”

지훈은 마치 그녀의 장난감이 된 기분이 들었다. 나이트가운 앞자락이 벌어져서 그녀의 젖가슴이 들어나 보일 것만 같았다. 조롱당하는 것도 같고, 아니면 유혹.....!? 취기는 깬 것 같은데.......! 왠지 무시당하는 것도 같아서 그는 그녀를 놀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입가에 미소를 띤 그는 위스키 잔을 들어서 그녀의 입술에 대고 기울였다.............[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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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3 Ecstasy Life - 6부 08-22   735 최고관리자
642 지워진 인연 - 에필로그 08-22   928 최고관리자
641 산행의 추억 - 26부 08-22   926 최고관리자
640 잠만보의 단편소설 - 1부 08-22   853 최고관리자
Ecstasy Life - 7부 08-22   729 최고관리자
638 엄마친구?친구엄마? - 2부 HOT 08-22   2105 최고관리자
637 산행의 추억 - 27부 HOT 08-22   1141 최고관리자
636 한낮의 섹스(SEX) - 10부 08-22   619 최고관리자
635 36살의 일탈 - 1부 08-22   937 최고관리자
634 여자의 일생(김 성혜) - 프롤로그프롤로그 08-22   708 최고관리자
633 상하극장 : 아줌마들의 대화 - 상편 HOT 08-22   1402 최고관리자
632 상하극장 : 아줌마들의 대화 - 하편 HOT 08-22   1345 최고관리자
631 섹스 게임 - 2부 08-22   846 최고관리자
630 섹스 게임 - 10부 08-22   842 최고관리자
629 Ecstasy Life - 에필로그 08-22   646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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