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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정(慾 情) - 34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2 00:11 877회 0건
커플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있었을까? 자신이 그런 억울한 일에 희생되기도 했고 피해자라는 걸 드러내고 싶었을지 모를 일이다. 지금 정재희가 털어 놓은 사실만 가지고 민현규를 압박할 수 있을지도... 그런데 그 놈이 무슨 잘못을 했지? 정재희와 여관에서 있었던 일 마저도 그 광주 물류창고의 직원에게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까지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게 정재희를 옭아 매기 위해 만든 시나리오일 거라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까지 그녀에게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움직인 것 역시 민현규라는 녀석의 작품일 것이다.

도둑이 들었고 바로 상품들을 실은 트럭이 도착한다. 그리고 곧 민현규가 왔고 전화로 사정을 했지만 트럭은 물건을 내리지 않고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재희와 그 녀석은 광주로 일을 수습하기 위해 움직인다.

700만원이 넘는 돈을 어이없이 도난당한 정재희 입장에서는 술집과 노래방에서 따라주는 술을 거부할 입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텔에서 잠이 깼고 아침까지 민현규와 섹스를 한다. 이월상품은 아무 탈 없이 도착했고 신학기 세일도 무사히 끝났으니 정재희와 민현규가 그렇고 그런 사이로 발전한 것 외에는 겉으로 드러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정재희가 그걸 눈치 못 챘을까? 나에게 한 말 외에도 다른 사실들... 민현규의 찢어진 옷, 부은 얼굴 등 정황 증거와 젊은 남자의 육체 등이 그녀의 판단을 흐리게 했을지도 모르지만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 일을 부각시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랬다가 민현규가 도난당한 돈이라도 변상하라고 우기기라도 하면 그녀가 감당하기 만만치 않았을 테니...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입장차가 있을 뿐... 다른 곳보다 더 많은 월급과 이런 저런 부 수익... 젊은 남자의 육체에 정재희는 만족했고 아내 외에 중학교 때 학원 선생인 농익은 여체를 거의 공짜로 즐길 수 있는 상황에 민현규는 쾌재를 불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 녀석은 더 많은 쾌락을 원했다. 이대 이 커플 만남... 스와핑? 뭐든 간에 정재희가 그걸 허락하게 되면 민현규는 손도 안대고 코를 풀 수 있다. 자신의 아내에게는 철저히 숨긴 채로... 잘 짜여진 극본은 공연 여부와는 상관없이 배우들 모두가 연극 연습을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관객 한 명이 등장하자 주연 여배우가 배역에 불만을 드러냈다. 처음부터 자신은 연기를 할 의사가 없었고 남자 주연에게 속아 연극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재희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난 그녀가 희생자였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진실이 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더 이상 공연이 연장 되는 것을 막고 싶으니 날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줘야 한다.

“혹시... 도난을 당했을 때 그게 민사장이 꾸민 일이라는 의심은 안했나요? 정재희씨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게... 그 날 아침에 광주에서 내려오는 차안에서 하루를 쉬고 다음 날 출근하라고 하더군요. 전 너무 피곤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그냥 집으로 갔고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했어요. 민사장을 보는 게 민망했지만 매장에 나가지 않으면 도둑으로 의심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출근을 해보니 모든 게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어요. 경찰도 와서 이미 조사하고 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민사장이 누나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그냥 계속 도와달라고 해서... 그 때까지도 현규 얼굴은 여기 저기 부어 있고 멍도 들고 찢겨진 곳도 있었어요. 아주 의심을 하지 않은 건 아닌데... 그렇다고 해도 제가 어떻게 할 수도...”

“혹시 말인데요... 만약... 정재희씨가 민사장이 만들어 놓은 함정... 그러니까... 도둑을 맞게 만든 것도 민사장이고... 그게 모두 당신을 가지기 위한 연극이었다면... 그렇다면 정재희씨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민사장을 심판 받게 할 수 있다면 증언을 할 수도 있나요?”

“예?... 설마요?...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요. 그럼 트럭기사도... 광주 물류창고 그 사람도 다 현규가 꾸민 일이라는 거예요?”

“확실하진 않아요. 물론 가정을 해보는 겁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냐는 거죠...”

정재희가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내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로 조용히 말을 했다.

“그...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증언 같은 걸 할 수는 없어요. 이 좁은 시골에서 소문이 나면 시장에도 못가요. 그냥 조용히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끝나기를 바랄 뿐이죠.”

그래.. 아이나 가족은 둘째고 소문이 나면 정재희는 이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할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관객 한 명이 공연만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극단 문을 닫게 하는 꼴이 되나?

하지만 정재희의 고백이 자신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어서 약간은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민현규라는 놈은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놈이다. 광주 물류창고 직원과 자신의 대화 설정이나 노래방에서의 실랑이 역시 철저하게 약자인 듯 위장하고 있는... 정재희라는 여자의 동정심도 자극할 뿐 아니라 중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학원 선생의 옷을 벗겨 주다 갑자기 음심이 생겼다는 설정도 여심을 흔들기엔 충분할테니...

이런 괴물 같은 놈에게 5년 전에 있던 여중생과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말하게 한다는 건 가능한 일인가? 그리고 그 이유가 미정이가 자살을 한 이유가 나만은 아닐 거라는 막연한 추측이 다인데... 하지만 난 그 막연한 추측을 사실로 만들고 마음의 짐을 벗고 싶어서 휴직을 했고 이런 저런 실마리를 찾다가 여기까지 왔다. 아무 것도 해보지 않고 돌아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직 뭐 하나 밝혀진 게 없으니 증언을 할 필요는 없어요. 그렇다고 이 일을 그냥 넘어갈 수도 없어요. 어렵네요...그래도 개인적으로 영이는 아끼는 동생인데... 그런 일을 벌이는 남편과 살고 있다면... 알려는 줘야겠죠. 그럼...어떻게 될까요? 정재희씨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신도 피해자 인데 영이에게 당신과 민사장과의 사이를 아무리 좋게 이야기 한다 해도 그냥 조용히 넘어갈 수는 없겠죠. 당신은 한참 어린 유부남을 유혹한 이혼녀가 될지도 몰라요. 민현규야 영이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 한 번 실수라고 여기고 넘어갈 지도 모르지만... 당신이 걱정하는 것처럼 온 읍내에 소문이 날지도... ”

정재희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제발... 그냥... 덮으면 안되나요? 시키는 건 뭐든 지 다 할게요.”

“뭐든지요?”

난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순간 정재희의 눈이 반짝거림과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 끄덕임은 내 몸이 탐나면 그렇게 할 용의가 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난 그렇게 움직일 수 없다. 정재희를 아무리 자연스럽게 품는 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면 그녀에게도 칼을 쥐어 주는 꼴이 될 것이고 그렇게 민현규와 수 개월간 쌓아온 만리장성을 허물고 내 연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녀석이 알게 되는 날엔 모든 건 물거품이 된다.

“뭐든지... 그래요... 정재희씨가 그렇게 나온다면... 방법을 찾아 봐야겠죠... 어차피 모든 게 짐작일 뿐 밝혀진 건 없어요. 지금 제가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당신과 민사장이 모텔을 함께 드나드는 불륜관계라는 것 뿐... 그 말은 당신이 설령 민현규의 시나리오 속 피해자라고 하더라도 지금 와서 그걸 당신의 고백만 가지고 들춰낼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민현규를 시험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있을 것 같아요. 문제는 내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나 명분이 없다는 거지만...“

“그 방법이 뭐예요? 딸아이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불쌍한 여자 도와주신다 생각하고 그렇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이렇게 빌게요... 제발...”

“그래요. 그게 걸려요. 그냥 영이에게 이야기하고 알아서 해결하라고 빠지면 되는데... 이혼을 해서 혼자 사는 여자 분이 감당하기엔 만만치 않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라 마음에...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정재희씨는 어떤 남자도 유혹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군요. 그게 또 절 약해지게 만드네요.”

정재희가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고 다소곳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카페 밖을 바라 보았다. 이미 해가 저물어 캄캄해진 밤거리를 바라보는 그녀의 옆모습과 입술을 앙다문 표정이 내가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아는 듯해 보였다. 정재희는 내가 자신을 여자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한편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른 한편으로 민현규 뿐만 아니라 나와도 어쩔 수 없이 몸을 섞어야 한다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하지만 난 정재희를 적어도 지금 안을 생각은 없었다. 내가 그런 표현을 한 건 갑자기 방향을 선회한 것에 대한 일종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었다. 당신한테 관심이 있어서 영이에게 당장 말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게 되었다는...

“기분 나쁘게 듣지 마세요. 직업이 경찰이긴 하지만 저도 남자이고... 아까부터 당신을 지켜보면서 지금까지 당신을 안을 수 있었던 민사장이 너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하는 제안을 들어보고 정재희씨가 응할 것인지 선택을 하세요.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요?”

“...”

그녀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민현규에게 전화를 해서 어머니가 갑자기 아파서 저녁 때 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MRI를 찍어보니 자궁에 종양 같은 것이 있어서 구급차를 타고 서울 큰 병원으로 올라가는 중이라고 말해요. 그리고 끊어요. 중간 중간에 민사장이 전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보내면 원자력 병원이나 삼성 병원 같은 곳에서 검사 중이라고 하고...

2~3일을 그렇게 끌다가 암이고 초기가 조금 지난 시점인데 입원을 하고 방사선 치료와 수술을 받는 게 좋다고 의사가 이야기 했다고 하다가... 또 며칠이 지나면... 어머니 수술 날짜가 잡혔고 만약 수술이 잘 되고 차도가 있어서 광주나 순천에 있는 병원으로 옮기려면 서울에 있는 아는 언니 집에서 지내며 4~6개월 쯤 지나야 한다고 말 하세요... 그리고 딸아이는 이모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간병인 사서 한 번 내려갈테니 그 때 이야기 하자고 하고... 어머니는 보험을 몇 개 들어 두어서 수술비나 치료비 걱정은 없지만 어차피 직장을 그만두기는 힘든 형편이니 몇 개월만 한시적으로 아르바이트 여직원을 구하고 내가 내려가면 바로 출근을 할 수 있게 민사장이 좀 도와주면 안되겠냐고 사정을 하세요...

더 자세히 설명 안 해도 아시겠지만 제가 지금 정재희씨에게 말하고 있는 건 일종의 덫이에요. 당신이 그럴 듯하게 이야기를 잘 한다면 민사장은 아르바이트 여직원을 구할 거예요. 아마도... 당신은 이미 자신의 애인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당신이 없는 동안 새로운 먹잇감을 사냥하고 싶을 거고 혹시 당신의 부재가 길어질 때를 대비하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을 거예요. 물론 모든 건 당신과 민사장 사이의 일이 우연이 아닌 민사장의 계획아래 생긴 일 일거라는 가정에서 시작하지만...

큰 줄기는 설명한 것 같고... 민사장이 당신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간다거나 시간 내서 이곳으로 내려오라고 이야기 하는 것들은 그때그때 당신이 적당히 둘러대면 되요. 어머니가 의식이 없는 상태라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하든... 당신도 몸이 아파 못 움직인다고 하든... 중요한 건 당신이 민사장의 욕정을 풀어 주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래야 민사장이 움직일 가능성이 많아지니...

지금까지 제가 한 말들 이해하셨어요?”

“예?...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정도는... 그런데... 민사장이 아르바이트 여직원을 구하지 않거나 여직원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게... 그럴 수도 있잖아요?”

나도 그 부분이 걱정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정재희는 내가 개입함으로 인해 직장을 잃고 내연남을 잃는다. 그녀 입장에선 괜히 손해 본 느낌이 들 수도 있을 터고 만약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조용히 물러난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게 되면 이 두 연놈들이 짜고 고스톱을 칠 수도 있다. 못을 박아야 한다.

“그래요. 그럴 수도 있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당신과 있었던 일도 우연으로 볼 수도 있고 두 사람의 열정적인 사랑을 내가 가로막은 꼴이 될 수도... 하지만 영이를 위해서도 민사장이 그렇게 막 되먹은 남자는 아니라는 증명이 된다면 정재희씨가 저에게 약속한 대로 가게를 그만 둔다는 조건으로 이 일을 덮을 수도 있겠죠. 민사장은 사춘기 시절 짝사랑의 대상인 당신을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한 것이고 당신 역시 그의 어긋난 사랑을 받아준 정도의 죄라면 다시는 안 만난다는 조건으로 말이에요.

그렇지만... 그렇게 된다는 걸... 제가 그렇게 움직인다는 걸 당신이 미리 알게 된다면 당신과 민사장이 함께 절 속일 수도 있다는 건데... 그게 어렵네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아니... 그건 걱정 마세요. 저한테 그런 기회를 준 것도 어딘데... 그리고 저도 궁금하던 참이었어요. 현규가 만약 절 그런 식으로 옭아맸다면... 새로 구한 여직원도 비슷한 방법으로 함정에 빠뜨린다면... 저도 어떤 방식으로든 복수하고 싶으니까요. 그건... 제가 증언같은 걸 하지 않더라도 해주실 것 같아요. 그렇게 해주실 거죠?”

정재희가 내 말을 맞받아치고 있었다. 내가 제시한 조건들이 마음에 든 것처럼 보이지만 한길 사람 속을 알 수는 없다.

“증거를 확보할 생각이에요. 비슷한 방식으로 함정을 판다면 캠코더 같은 걸로 도둑 역할을 한 사람이 누군지 찍을 수 있겠죠. 자기 물건을 자신이 가져가는 걸 절도라고 할 수는 없으나 여직원에게 무언가를 잃어버린 죄책감이 들게 해서 성관계를 맺으려 한다면 부녀자 약취·유인 죄 같은 것으로 엮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런 정황들을 영이에게 이야기하고 결정하라고 하면 되겠죠. 법의 심판을 받게 할 건지 그게 아니라 이혼을 한다면 위자료 같은 걸 요구하는 데 도움이 될 테고... 민현규는 상당한 대가를 치룰 거예요. 하지만...”

정재희는 내 얼굴을 쳐다보며 또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직도 전 당신과 민사장을 완전히 믿을 수 없어요. 이렇게 하죠. 내일 아침부터 제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요. 앞으로는 한동안 민사장을 만날 기회는 당신에게 없어요. 그리고 민사장과 통화를 하는 낮 동안은 제 옆에 계속 있어요. 문자를 보내는 것과 통화를 하는 것 모두 제게 보여주거나 제 앞에서 있는 동안 해야 돼요. 당신과 민사장의 통화나 메시지 내용에서 이상한 게 감지되면 바로 영이에게 갈 겁니다. 당신이 저에게 신뢰를 주지 않는다면 저도 이 일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또... 하나 조건이 있어요. 좀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뭐죠?”

정재희가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난 천천히 그녀의 몸을 흩어 보며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당신에게도 꼭 필요한 일일수도 있어요. 그래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당신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는 동안 내내 당신의 벗은 몸을 상상했어요. 그리고 만지면 터질 듯이 탄력 있는 당신의 몸을 안으면 어떤 느낌일지도...

제가 지금 영이에게 달려가지 않는 진짜 이유는 당신과 밤을 보내고 싶어서 일지도 몰라요. 만나본적도 없는 당신의 딸아이나 어머니 때문도 아니고... 당신이 이혼녀이기 때문도 아니에요.

저와 하룻밤을 약속해줘요. 그 하룻밤이 당신에게는 보험이 될 수도 있겠죠. 나중에 내가 당신을 더 이상 핍박할 수 없도록 지켜주는...

이 일이 끝나고 나면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민현규와 당신의 사이가 정리되면... 제가 당신을 안을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줄 수 있겠어요? 그렇게 해준다고 약속을 하면... 아주 단순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이 일이 얼마나 꼬일지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그 말을 끝내면서 그녀의 몸을 바라보던 시선을 얼굴로 옮겼을 때 얼굴이 빨개진 채 미팅에 나온 수줍음이 많은 여고생처럼 고개를 숙인 정재희를 볼 수 있었다.

“괜찮겠어요?”

“...”

정재희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머리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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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황지연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후 긴 잠에 빠졌던 난 저녁 무렵 일어나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로 나갔다. 그 곳에서 조금 놀다 여섯 살 딸아이가 닭강정이 먹고 싶다고 해서 동네 상가 치킨 집에서 사서 입에 물려주자 함박웃음을 짓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먹는다. 아들 녀석도 마찬가지...

어렸을 땐 저렇게 군것질 거리 하나만 있어도 그렇게 좋았고 바로 얼마전인 것 같은데 내일 모레 사십을 바라보고 있으니 난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 아쉽게도 지금은 입 속을 즐겁게 하는 것만으로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 그건 아마 황지연도 마찬가지 일 것이고 난 그녀의 욕구를 모두 채워줄 수 없다. 나와의 정사는 이유성이 그녀에게 준 쾌락의 절정에 비하면 양에 찰리 없을 것이다. 그녀의 주변 상황으로 인해 다른 만남들이 자연스럽게 차단되기 때문에 그 빈자리에 내가 들어갈 수 있었지만 황지연이 이유성을 놓아 버린다면?

난 아이들과 같이 있는 시간에도 계속 같은 질문을 나 자신에게 되풀이하고 있었다. 녀석이 그녀의 삶에서 빠져 나간다고 해도 황지연이 지금처럼 나를 향해 움직여줄까?

익숙한 전화벨이 울렸고 마누라가 저녁 먹으러 들어오라는 전화를 한 걸로 생각하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찾아 들었을 때 난 깜짝 놀랐다.

전화를 건 사람은 김유미였다. 이 여자가 내게 전화를 먼저 걸어올 줄 몰랐는데...

“여보세요?.. 깜짝 놀랐어. 당신이 전화를 걸 거라는 기대는 안했는데... 무슨 일이야?”

난 살짝 미소를 띠며 부드럽게 전화를 받았고 그건 김유미에 대한 배려였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고 반강제로 유부녀의 몸을 취한 남자에게 전화를 하는 건 자존심이 무척 상하는 일일 것이다.

“아... 저... 할말이 있어서요.... 혹시...”

“혹시 뭐? 말해도 돼. 아이들과 놀이터에 나와 있어서 옆에 아무도 없어.”

“전화로 이야기하는 건 좀 그래요. 내일 저녁에 시간 어때요?”

김유미가 내게 무언가 액션을 취할 거라고 생각을 해 본적은 없다. 수많은 벌들이 달려드는 것에만 익숙한 꽃이라 여겼고 그녀는 황지연과 다른 입장이다. 이유성을 만나고 있으며 남편도 있다.

그녀의 전화가 너무 반갑기 하지만 난 황지연과의 만남에 집중하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거절을 하는 게 좋을 듯 했다. 내가 김유미까지 욕심을 내는 건 그녀의 등 뒤에 있는 이유성과 엮일 가능성이 생기는 건 물론이고 그 사실을 혹시 황지연이 눈치 채게 되는 날에는 죽도 밥도 못 먹고 굶어야 한다. 그 것도 겁이 나지만 어떻게 보면 거절을 할 수 있는 더 큰 이유는 황지연에 대한 연민의 정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황지연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당분간 내 힘이 필요할 테니...

“내일은 회식이 있어. 좀 힘들 것 같은데...”

“회식이 몇 시에 끝나는 데요? 9시나 10시 쯤 보면 되지 않나요?”

“그게 잘 모르겠어. 12시가 넘어갈 때도 있고 분위기 상 도저히 못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뭐라고 확답을 주기 힘든데...”

“그래요?... 그럼 화요일이나 수요일은 어때요? 저녁 7시 넘으면 전 시간 괜찮은데...”

잉? 김유미가 쉽게 물러나지 않고 있었다. 9시나 10시 쯤 보자는 데도 남자가 애매하게 이야기한다면 그건 만나기 싫다는 이야기로 해석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정말 만나고 싶다면 회식은 1차에서 끝내고 어떻게든 시간을 맞추려고 하는 게 대부분 남자들이란 걸 모르나?

언제든 시간만 비워라.. 내가 맞추겠다고 나오는 여자는 매력이 없지만... 상대는 만날때마다 여신급 포스를 풍기는 김유미... 음... 더 이상 빼는 건 자연스럽지가 않았고 난 무언가 방향을 틀어야 했다.

“화요일, 수요일은 약속을 잡기가 애매해. 야근을 해야 할 수도 있어서... 그리고... 실은... 나 저번에 말한 그 문제가 아직도 해결이 안됐어. 그런 상황에서 널 만나는 건 가슴이 많이 아플 것 같은데... 물론 니가 날 보자는 이유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차라리 오늘 보는 건 어때? 일요일 저녁이라 부담스러워?”

“괜찮아요. 몇 시에 어디서 볼까요?”

주중엔 황지연이 연락을 해 올 수도 있다. 강원도에 있다고 안심하기엔 그녀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갑자기 휴가라도 내고 날아 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월요일이 괜찮을 듯 하지만 아까 회식이라고 이야기 해버렸으니 난 오늘을 이야기 하며 김유미가 시간이 없기를 원했다. 우리 마누라도 야근하고 집에 늦게 온 사람이 저녁에 술 마시러 간다 하면 보내야 주겠지만 좋은 소리는 안할 것이다. 하지만 김유미는 고민도 하지 않고 콜을 했고 난 꼼짝없이 패를 까야 했다. 함부로 레이스하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그 쪽으로 갈게... 8시 어때? 그 근처에서 맥주나 한 잔 하자.”

오피스텔에서 보자고 하려다 나란 놈을 믿을 수가 없어서 제안을 바꿨다. 오늘 새벽까지 황지연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를 안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지는 않지만 상대가 김유미고 그 공간에 단둘이 있게 되면 흔들릴 것이다.

“그래요...”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유성을 만나던 이 여자가 나와 자고 싶어서 보자고 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뭐지? 내 발기부전을 해결해주고 싶어서 그럴까? 내가 슬쩍 뒤로 빼도 도망치지 않은 건 사명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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