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는 어김없이 찾아와 가을을 모든 산들이 붉게 물드는 가을이 왔다
그 남자와 헤어지고 연락을 하지 않은지 벌써 두 달, 가끔 아주 가끔 그 남자의 목소리라고 듣고 싶어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면서도 주저하며 그러지 못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남편의 사업은 날로 번창하고 그러다 보니 남편은 거의 해외에서 머물다 보니 난 늘 외톨이였다. 물질의 풍요가 나의 모든 것을 채워주기에는 역 부족이었다
늘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은 공허함이 남아 있었고 어김없이 오늘도 난 혼자였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드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문득 늙어가는 내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난 아무 생각 없이 화장대에 앉아 화장을 하고 아파트를 나와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주차장을 빠져 나왔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문득 남자와 함께했던 양평의 하늘궁전이 보고 싶어졌다.
오늘따라 그의 숨소리가 그리웠다 그러나 전화를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고 또 다시 그 남자와 얽힌다면 자신이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착각 때문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마침 라디오에서 흘러간 POP Don"t forget to remember 라는 노래가 흘러나왔고 음악소리에 취해 바라보는 주변의 풍경과 바람은 내 자신의 외로움을 위로하듯이 마냥 싱그럽기만 했다 팔당댐을 지나 양평이 가까워질수록 묘한 기대 속에 마음이 설레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자동차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길로 접어들어 그 남자와 함께했던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원입구에는 시원한 분수가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식혀주고 있었고. 그윽한 음악이 흐르고 있는 것이 그때와 다름이 없었다.
차를 parking한 난, 정원을 가로질러 안으로 들어갔다
은은한 한방차의 한약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있는데 싫지가 않았다
몇 명의 손님들이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여느 카페처럼 시끄럽지가 않았고 마치 아틀리에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 남자와 처음 왔을 때도 그랬지만 은은히 들리는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야금 음률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고 난 대추차의 은은한 향을 음미하며 난 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막연하나마 남자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 속에서...
어느덧 태양이 서쪽 하늘에 기울기 시작하면서 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하나둘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큰 기대도 없었지만 그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교차하면서 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면서 잠시 망설였다
오늘따라 유난히 그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그 자리를 쏜살같이 빠져나와 서울로 향했다

서울이 가까워질수록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왔다
길옆에 종중전화 박스가 눈에 들어오자 난 천천히 브레이크에 발을 올려놓으면서 핸드백 속에 깊이 넣어둔 메모지를 꺼냈다.
한참을 망설인 나는 메모지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면서 버튼을 꼭꼭 눌렀다
전화가 가는 소리가 들리자 내 가슴은 무순 큰 죄를 짓는 것처럼 콩닥거렸다
정말 긴 시간인 것처럼 느껴졌다
{"여보세요 박철민 핸드폰입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난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혹시 부인?"}
{"지금 어디세요 부인! 부인!!"}
반가워하는 남자의 모습을 목소리에서 감지할 수가 있었다
전화기를 들고 있는 나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부인" 부인"}
남자의 목소리에서 애절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에요 바로 나갈 수 있습니다"}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면서 전화를 끊고 말았다
[내가 왜 이러지? 이래선 안 돼!]
자신의 의지와 달리 그 남자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 컸을까? 나는 다시 공중전화 부스로 향하고 있었다.
버튼을 누르고 다시 남자의 목소리가 유선을 타고 흘러 나왔다
{"어디에요? 지금 만나요 부인인줄 알고 있습니다"}
[저~ 양평 가는 팔당호 주변이에요] 주저하며 간신히 말했다
{"거기 그대로 있어요 지금 바로 달려 갈테니... 아니 아니지...지금 서울로 오시던지..."}
남자의 허둥대는 모습을 유선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제가 서울 쪽으로 갈께요]
{"그럼 롯데 호텔 우리 만나던 곳에서....어때요"}
[네~]
전화기를 끊고 차에 돌아온 나는 차를 출발시키며 이래도 되는 걸까 묻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지하 주차장에 차를 놔두고 서둘러 택시를 이용 롯데호텔로 향했다
물론 나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핸드백에서 모두 꺼내놓고 물론 핸드폰 까지도...
이렇게 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자신의 타락을 합리화 시키려는 듯이....
롯데 호텔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콩닥거리고 입술이 타는 듯 했다
이미 그는 나와 있었다
짙은 안경을 쓴 나의 모습이 어떻게 보여 질까 생각하면서도 벗지 않았다
남자가 일어난 고개를 숙이며 반갑게 맞았다
{"혹시 오지 않으면 어쩌나 가슴조이며 기다렸습니다."}
의자를 빼면서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유도하며 웃으면서 말하는 남자를 보면서 난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
{"보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이 남자를 그리워하게 된 것일까?
차를 마시는 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핸드백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말했다
{"저 우리 밖으로 나가요 여기 있지 말고~"}
{"오늘부터 내일까지 당신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어때요?"}
난 그의 뒤를 따라 호텔 문을 나섰다
그곳에는 이미 그의 차가 대기 하고 있었고 조수석 문을 열고 고개를 끄덕였다
차량이 시외를 벗어나자 아까 내가왔던 그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남자가 내손을 꼭 쥐었다
{"부인 ! 정말 그동안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보세요 제눈을 ~ 눈이 부르튼 것이 보이지 않나요?"} 하면서 눈을 내 코앞에 들이밀었다.
[어머~깜짝~]
호탕하게 웃는 남자의 모습이 꾸밈없어 보였다
내손을 쥔 남자의 손바닥에서 점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